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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76화 (77/230)

< 76화. 보약 맞췄거든요 >

76화. 보약 맞췄거든요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난 허준.

주변에는 해부학책과 여러 한의학책들이 여전히 굴러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씻고 출근해야겠네.

그렇게 출근길에 오른 허준의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아, 네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평소와 똑같은 출근길인데, 만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뭔가 조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부터 공사 들어간다고 해서 그런 건가.

그렇게 한의원에 도착한 허준.

역시나 유도진 선생님과 김 선생님이 일찍 출근해 있었는데,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허준을 보자마자 하던 이야기를 멈췄다.

“원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네. 두 분 모두 좋은 아침이에요.”

두 사람도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살다 보면 기분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 법이었으니, 그중에서 오늘이 유독 기분 좋은 날이라 생각한 허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오늘 오전 입원실 환자 진료는 고요한 선생이 맡는다고 했었지.

이제는 처음과 다르게 믿음직스러운 고요한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요한 선생님이 맡은 환자가 최근에 완치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허준이 탕약실로 향해 포장된 박스들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무려 5박스나 되는 쌍화탕.

엊그제 최우중 씨가 촬영장 사람들을 위해서 주문해 놓은 것들이었다.

오늘 매니저가 오전 중으로 가져간다고 했으니, 따로 빼놔야겠지.

허준이 오전 데스크를 맡은 남 선생님에게 말했다.

“남 선생님. 그 쌍화탕 5박스 주문 들어온 거, 탕약실에 따로 빼놨거든요.”

“아, 네. 신경 쓸게요.”

“감사합니다.”

굳이 사족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척하면 척, 손발이 잘 맞아떨어지는 이럴 때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럼, 진료 시작하죠.”

“네. 원장님.”

3시간 30분 뒤,

허준한의원 점심시간.

초진 2

재진 20

오전 진료에 총 22명의 환자를 본 허준.

이전 같았으면 이것만으로도 버거웠을 텐데,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어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이어진 잠시간의 휴식시간.

그 틈을 타서 데스크의 김 선생과 윤 선생이 메신저로 수요조사를 마친 뒤, 커피를 사러 한의원을 나섰다.

“쌤. 그런데, 그 이야기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아~ 고 쌤이요.”

“고요한 선생님이요?”

“네.”

둘이 말하는 것은 엊그제 허준이 거액의 제의를 뿌리쳤다는 이야기였다.

본래 성격이 조용하고 말을 아끼는 성격의 고요한 선생이었기에, 김예진과는 친한 편이 아니었지만, 윤 선생과는 달랐다.

그녀가 워낙 말주변이 좋고 밝은 성격인 데다가 친밀감까지 높았으니 말이다.

덕분에 고요한 선생님은 고 쌤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지.

“고 쌤이 그러는데, 누가 찾아와서 원장님을 스카웃 하려고 했다나 봐요. 그런데, 그걸 원장님이 듣더니 진짜 1초도 망설이지도 않고,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라고 딱 하니까.”

“하니까?”

“상대가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 뒤로, 막 뭐라고 횡설수설하다가 그대로 가버렸대요.”

윤다희의 말에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벅차 올라왔다.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증명을 해주는 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대체 어떻게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원장실에서 대화 내용이 밖으로 들렸다면, 이건 꽤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을 터.

진료 때, 환자의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문제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고 쌤은 그걸 어떻게 들었대요?”

“아~ 저도 궁금해서 그거 물어봤는데. 원장실이랑 부원장실 사이에 원래는 문하나 있잖아요? 예전에 원장실에서 치료실로 가던 문이요. 그걸 그대로 막아서 지금은 벽처럼 사용하는 중이고요.”

“아, 네.”

“그 때문인지 한의원 진료 마감하고 음악 끄고 그러면 그 틈으로 들린다던데요?”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없던 방을 만든것이었으니,

‘아무래도 원장님한테 말해서 수리를 해야겠네.’

그렇게 둘이 커피를 가져와 카페인을 충전한 뒤에 이어진 오후 진료.

그리고 진료 마감.

보유 포인트 : 2917

‘오늘 3천 포인트를 넘길 수 있겠네.’

허준이 포인트를 확인하면서 원장실을 나섰다.

이제 곧 혜민서 팀이 올 시간이니, 그전에 입원실에 있는 환자들의 진료를 끝내기 위해서였다.

“원장님. 수고하셨어요. 퇴근할게요.”

“수고하세요. 원장님~”

“네. 선생님들도 수고하셨어요.”

퇴근하는 데스크 선생님들을 뒤로하고, 허준이 입원실로 향했다.

평소처럼 빠르게 한 명, 한 명씩 진료하는 허준.

침을 놓던 허준이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인수인계를 마치고 근무 중인 도영철 선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묘한 표정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 선생님은 갑자기 왜 저러시지.’

혹시 어디 아픈 것은 아닐까.

유일한 당직근무인 도 선생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면, 입원실 운영에 큰 어려움이 발생할 터.

“도 선생님,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래도 기우였나 보다.

진료가 끝난 뒤에 도 선생을 보니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 오히려 힘이 넘쳐 흐르는 모습이었다.

“그럼, 오늘 밤에도 수고해주세요.”

“네. 원장님도요.”

그렇게 다시 허준한의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혜민서 멤버들이 모여있었다.

“선생님. 오셨어요? 식사부터 하시죠.”

박 원장이 눈을 빛내며 허준에게 도시락을 건넸다.

내가 잘못 느끼는 건가, 오늘따라 이상하네.

허준이 도시락을 받아들자, 식사와 함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첫 번째 내용은 조금 의외의 소식이었다.

“선생님. 그런데, 이번에 저희 의료봉사에 정형외과 선생님께서 지원하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정형외과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허준이 서울역 노숙자 쉼터를 떠올리면서 답했다.

의료봉사 때 한의사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의사 선생님들이 함께했었던 기억.

‘오히려 좋다.’

전문 분야를 막론하고 진료를 볼 수 있는 선생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오히려 환자들도 다양한 처방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같은 증상에 대해서도 정형외과 선생님의 진료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볼 환자의 진료에 크게 도움이 될 터.

“우리야 오히려 감사하죠.”

“네. 그럼 같이 가는 걸로 할게요.”

그다음 주제는 당연히 설 연휴에 관한 이야기였다.

허준한의원뿐 아니라, 태용한의원에서도 설 연휴 이벤트는 1년에 한 번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이번이 인수 이후의 첫 이벤트인 셈이었으니,

“그런데, 허준 선생. 이번에 설 이벤트 말인데.”

“네. 말씀하시죠.”

“우리는 이번에 경옥고 위주로 하려고 하네만.”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희는 이번에 따로 정하지 않고, 보약 위주의 할인이벤트로 하려고 합니다.”

“따로 이벤트 없이 그냥 할인으로 하려고?”

“네. 그러려고요. 그러니, 김 원장님께서 경옥고 말고도 괜찮은 가격으로 환약이나 단약도 진행해 보세요.”

“그럼 우리야 고맙지.”

사실 김 원장도 혹시나 허준한의원과 품목이 겹칠까 싶어서 미리 이야기를 꺼내 본 것인데, 따로 준비를 안 하고 할인이벤트만 하겠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같이 활동하면서 친해진 터라, 같은 식구끼리 경쟁을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냥 넘기자니 원장으로서 매출을 신경 써야 했으니까 말이다.

김 원장이 허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자네를 보다 보면 가끔은 내가 참 부끄러워진다니까?”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이건 진심에서 하는 말이야. 참, 자네 고기 좋아하지? 여기 이것 좀 더 먹게나.”

그러면서 허준에게 도시락에 담겨있는 불고기를 건네는 김 원장.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식구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 있었다.

*   *   *

“한 번만 더!”

“선생님. 저 죽어요!”

“아니야. 안 죽어!”

“끼아아악-”

묘한 기합과 함께 남승연이 주저앉았다.

그 뒤에 서 있는 김명훈이 잘했다는 의미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선생님. 저 인바디 한 번 재봐도 될까요?”

“에헤이~ 병이 또 도졌네.”

“그래도 궁금해서...”

김명훈이 팔짱을 끼며 남승연에게 말했다.

“우리 처음에 어떻게 한다고 했죠?”

“느리고 건강하게요.”

“그래. 그거만 기억하고 따라오면 돼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몸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달달한 커피부터 초콜릿 과자 등이 당기기 시작하고,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신체 부위들.

오랜만에 느낀 이 감각을 눈치챈 남승연이 한의원을 찾았다.

“원장님 만나러 오셨죠? 진료 접수해드릴게요.”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원장실로 들어간 남승연을 허준이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보기 좋네요.”

“그런가요?”

“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으시죠?”

“아주 좋아졌어요.”

약간 발그레한 얼굴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남승연.

허준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엔 나도 놀랐었지.’

어제 퇴근 후에 샤워하다가 갑자기 1000포인트를 얻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

이로써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은,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어디서든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진맥부터 잡아볼까요?”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야겠지.

혹시나 다른 증상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

허준이 남승연의 맥을 잡았다.

이게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활발해진 맥.

게다가 손끝에서 구슬이 굴러가는 느낌이 든다.

활맥이었다. 활맥은 몸 안의 혈기가 실하고 담이 쌓여있을 때 나타나는데, 여성의 월경과 관련이 깊었다.

진맥을 마친 허준이 눈을 떴다.

그러고는,

“이제 돌아왔네요?”

그 말에 남승연이 놀라 허준을 바라봤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안 것일까.

설마 좀 전에 진맥을 잡고서?

혼란스러움에 남승연의 눈이 흔들렸다.

그야말로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실력이 좋다고는 이미 한의원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여러 번 들었지만,

이런 일까지 가능할 줄은..

허준이 그런 남승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몸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아셨죠?”

오늘따라 그 목소리가 따듯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남승연이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면서 힘차게 답한 것은.

“네!”

*   *   *

강남의 한정식집.

안에는 중년의 여인들이 각양각색의 패션을 뽐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계모임 좀 자주 하면 안 될까?”

“왜?”

“좋잖아.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말이야.”

이런 간단한 이야기부터,

“우리 둘째도 이번에 학원 보냈잖아. 요즘엔 뺑뺑이 안 돌리면 어쩔 수 없다니까? 안심이 안 돼 안심이.”

“그래? 그 학원이 좀 더 좋아?”

“당연하지. 거기가 스타강사들 모여있다니까? 학원비는 좀 비싼데, 그래도 작년에 S대에 몇 명, K대에는 몇 명···.”

자식들 교육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 피부과 갔는데, 돈 왕창 깨졌잖아. 계주 언니한테 말해서 순서 좀 바꿔달라 해야겠어.”

“왜? 얼마나 깨졌는데.”

“아니 뭐 좀 시술하고 그러면 기본이 백 단위라니까?”

“소정 씨, 소정 씨는 어디 피부과 다녀? 오늘따라 피부가 좋아 보이는데?”

“그러게. 아니면 화장품 바꿨어?”

피부과 이야기를 하던 여인들의 눈이 박소정에게 향했다.

박소정이 수줍게 답했다.

“아니요. 이번에 보약 맞췄거든요.”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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