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을 겁니다 >
73화.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며칠 전, 허준이 김정우 선생님에게 간호조무사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다가 이어진 이야기였다.
“그래서 좋은 약재를 구하고 싶다고?”
“네.”
허준이 유도진 선생이 가져온 약재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공진단과 녹용대보탕을 만들 때 사용했던 것들이었다.
‘무언가 달라 보였어.’
즉,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약재들이 아니라는 뜻.
본래 한의원으로 유통되는 모든 약재는 GMP 인증 약재라고 하여 KFDA(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성분 분석을 통해 약효가 있다고 판단한 약재들만이 유통된다.
예를 들어 같은 인삼이라도 GMP 인증이 있는 인삼과 삼계탕에 들어있는 식용인삼과 다른 것처럼 말이다.
김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슬슬 이야기를 꺼낼까 말까 하던 차였네. 자네. 이번 주말에 시간 되는가?”
“주말에요? 네.”
“좋아. 그럼, 나와 같이 갈 곳이 있으니 아침에 한의원에서 만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는 건지요?”
“어디기는, 물건을 가져오려면 물건 주인을 만나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김정우 선생님을 따라서 도착한 곳이 바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저택.
잘 가꿔진 정원을 지나 넓은 현관으로 들어서자 새하얀 머리를 한 할아버지 한 분이 소파에 앉아 계셨다.
김정우 선생님과는 오랜 인연이 있는지 인사를 나눴고,
“반갑네. 박용찬이라고 하네.”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얼굴이 딱 한의사 하기 좋은 친구로구먼.”
“감사합니다.”
“앉지.”
허준이 소파에 앉았다.
얼마나 좋은 소파인지 그저 앉았을 뿐인데, 긴장이 풀어질 정도였다.
이어서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차를 아주머니가 가져다주었다.
“들게.”
“잘 마시겠습니다.”
“듣자 하니, 자네가 실력이 그리 좋다던데, 어디 진맥 한 번 해보겠나?”
갑작스러운 제안에 허준이 김정우 선생을 바라봤다.
김정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안 하겠다고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터.
“그럼,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진맥.
손끝을 타고 맥이 느껴져 온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맥.
종잡을 수가 없다.
‘여태 수많은 환자를 봐오면서 경험이 꽤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경험이 아닌 그동안의 공부에서 배워왔던 한의학 지식을 떠올려 조합한다.
그런데도 알아낸 것은 위와 비장이 허하다는 것뿐.
즉, 비장과 위장에서 시작된 병증이란 뜻이다.
이어서 반대쪽을 잡았다.
연세 때문에 전체적으로 맥이 약한 것은 당연하지만, 이 정도면 아주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맥이었다.
결국, 알아낸 것은 저거 하나뿐이었다.
그 이상은 진맥만으로는 알아내기에는 무리.
허준이 눈을 뜨며 답했다.
“비위에 병증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이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준이 있는 그대로 고하자,
대답을 들은 박용찬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과연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 마치, 김 선생을 처음 만난 그날 같구먼. 자네를 나에게 직접 소개해 준 이유를 알 것 같아.”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정확한 질환을 알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난 30여 년 전에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으니까 말이야.”
“네? 그렇다면...”
위암 수술이란 것이 무엇이던가.
결국은 위를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그것도 30여 년 전이라면 지금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이었을 터.
‘그래서 아까 30여 년간의 인연이란게...’
위암 수술 이후에 김정우 선생님을 만나면서 시작된 것이었겠구나.
“요즘에야 의학의 발전으로 치료 방법이 많이 발전됐지만, 당시에는 선택권이 없었거든. 그러다가 여기 김 선생도 만나게 된 거고.”
박용찬과 김정우 둘의 눈이 그때를 떠올린 듯이 반짝였다.
그러더니 박용찬이 허준에게 말해다.
“어쨌든, 옛날이야기는 이쯤 하고. 한약재들을 받고 싶다 이 말이지?”
“네. 질 좋은 약재들이 필요합니다.”
“난 장사꾼일세.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지. 아마, 지금 약재들보다 가격이 조금 나갈 텐데 괜찮겠나? 그러면 자네 수익이 줄어들지도 모르는데.”
허준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돈은 이전과 다르게 충분히 벌고 있으니까 걱정 없었기 때문이다.
“상관없습니다.”
“좋아. 자네 정도면 적어도 내가 가져다주는 한약재들이 아깝지는 않겠구먼. 앞으로 많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어 주길 바라네.”
* * *
새로 가져온 한약재들이 허준한의원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전 것들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이 약재들은 유도진 선생에게는 익숙한 것들이었다.
정우한의원에서 사용했던 것이니까 말이다.
“원장님. 좋은 약재들을 가져오셨군요.”
“네.”
“그럼, 가격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은... 이대로 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격책정은 한의원을 이끄는 원장의 몫인 데다가, 허준의 성격이라면 굳이 가격을 높이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 바였다.
그렇게 새로운 한약재로 만든 첫 탕약의 완성.
「포인트를 30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 30?
원래 탕약을 달이면 20이었던 포인트가 30으로 늘어났다.
처음 전기탕약기에서 불로 가열하는 옹기로 바꿨을 때 20.
이번에 한약재를 바꾸니 30이라니, 효능도 50%나 증가한 것일까.
아무렴 좋았다.
20포인트에서 30포인트로 올라갔다는 것은, 지금 허준의 눈앞에 있는 여러 대의 옹기탕약기에서 그만큼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생각에 허준 자신도 모르게 히죽거렸는데,
그 모습을 본 유도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다 좋은데, 가끔 저렇게 이상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단 말이지.’
그렇게 허준한의원에서는 다음 날부터 서비스용 쌍화탕이 나가기 시작했고,
“뭐야? 이거.”
“이전보다 더 찐해진 것 같네? 오늘 내가 몸이 안 좋은가?”
“그러게... 나도 더 진득해진 것 같아.”
“나는 이거 먹으니까 겨울인지도 모르겠는걸?”
진료를 보러 온 환자들 모두 호평 일색이요,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최우중이었다.
새로운 한약재로 만든 첫 번째 탕약이었기 때문이다.
‘왠지 이걸 마시니까 몸에 힘이 생기는 것 같아.’
플라세보 효과일까?
아무렴 상관없었다. 매일같이 이 추운 야외에서 이어지는 촬영에 도움이 되는데 플라세보면 어떠하리.
그렇게 몇 번 더 먹고 나자 이런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다.
이 약 때문이 확실해.
최우중이 탕약을 쪼오옥 빨아 마시며 확신했다.
처음에는 그저 사촌 형의 추천으로 잠시 쉬러 갔던 건데,
진료 때,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면서 사생활을 맞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놀라웠다.
이어서 이렇게 직접 효과를 느끼니, 이제는 그 놀라움이 믿음으로 바뀐 상태.
‘촬영이 끝나도 종종 들려야겠어.’
아니,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힘들어 보이는 동료들에게도 추천해야겠다고 다짐한 최우중이었다.
물론, 이 변화를 가장 빠르게 눈치챈 것은 당연히 촬영장의 스태프들과 감독들이었다.
평소 인성 좋기로 유명한 배우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으니 당연했다.
이는, 당연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지금은 쉬는 시간마다 차 안에서도 편안하게 잠을 잘 정도였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컷! 우중 씨, 요즘 컨디션 장난 아니네요?”
“하하, 그런가요?”
“네. 아주 표정이랑 눈빛이 영화가 아니라 진짜 현실 같아요.”
“감사합니다. 감독님.”
“아니죠. 제가 더 감사하죠. 앞으로 남은 촬영도 이렇게만 나가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쉬었다가 다음 씬 들어갈게요.”
최우중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차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현장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게, 첫 촬영 때랑 완전히 다른 사람 같지 않아?”
“이제 슬럼프를 극복했나 보지. 왜 배우들도 보면 중간에 한 번씩 오는 거 알잖아.”
“그런가? 그래도 사람이 갑자기 확 달라져서 적응이 안 된달까.”
그때,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최승빈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알려줄까?”
“최 감독이?”
“오~ 그래. 최 감독이 최우중 씨 사촌이잖아. 그러니까 뭐라도 알지 않겠어?”
“우리 촬영 현장 옆에 한의원 하나 있거든. 거기 다녀온 뒤로 저렇게 돌아왔어.”
“에이~ 설마 한의원 때문이라고.”
“진짜라니까?”
반신반의하는 사람들.
최승빈이 쐐기를 박았다.
“못 믿겠으면, 한 번 봐봐. 밥 먹고 난 다음에 꼭 한약 먹는다니까?”
* * *
남승연이 한의원을 찾았다.
아직 탕약을 다 먹지 않았으나, 탕약을 먹은 뒤부터 멈출 수 없는 식욕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치료실에서 진료를 마친 허준이 원장실로 돌아왔다.
보자. 다음 진료는 남승연 환자.
‘찾아올 때가 되었지.’
대충 예상을 하고 있던 허준이었다.
무리한 3번의 보디 프로필을 진행하는 성격에 살이 쪄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허준이 데스크로 메시지를 날리자,
원장실 문이 열리며 남승연 환자가 들어왔다.
진행도 : 50%
그녀의 얼굴은 한눈에 보기에도 이전보다 훨씬 생기가 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직 탕약 다 안 먹었을 텐데, 일찍 오셨네요?”
“그게..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그래요? 어떤 점이 이상한가요.”
허준이 시치미를 뚝 떼면서 답했다.
“이상하게 탕약을 먹은 뒤부터 자꾸 많이 먹게 돼요. 주말에는 참을 수 없어서 치킨에다가 떡볶이에 진짜 먹어서 안 되는 것들 많이 먹었거든요? 그런데도, 계속 먹고 싶어 져요. 아무래도 뭔가 부작용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그래요? 그럼, 일단 진맥부터 잡아보죠.”
그렇게 잡은 진맥.
확실히 영양분이 들어가니 장기들의 맥이 이전과 다르다.
아마 조금 더 지나면 완전히 건강해질 테지.
물론, 그만큼 몸무게는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음... 좋네요.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그래요?”
“네. 그런데, 이건 한의사로서 묻는 건데요. 혹시, 건강을 위해서 보디 프로필을 그만두실 생각은 없나요?”
허준의 질문에 남승연이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거부의 표시였다.
‘역시 쉽게는 포기 안 하겠네.’
사실 허준으로서는 저게 가장 좋은 치료였다.
보디 프로필이란 것은 결국 단기간에 몸을 혹사시켜서 만들어 내는 과정.
그 과정에서 이런 부작용들이 생겨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
결국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역시 두 번째 방법밖에는 없겠군.
보디 프로필을 그만두지 않겠다면,
직접 관리까지 가능한 곳에서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 보디 프로필을 이곳에서 해보는 건 어떤가요?”
“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허준이 책상 서랍을 열어서 전단지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MH GYM이라 적힌 전단지였다.
‘이걸 쓸 날이 있을 줄이야.’
홍보 차원에서 만들었다며 김명훈 관장이 주고 간 전단지다.
당연히 그곳에서도 보디 프로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보디 프로필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부작용을 겪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그건 사람마다 다르니...”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비유하자면 속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목표로 향하는 남승연 환자의 속도가 몸이 버티지 못할 만큼 빠른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 속도를 늦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요.”
허준이 남승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진료받으시면서 이곳에서 진행하시면, 남승연 님이 원하는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허준이 내린 두 번째 처방은 한의학 처방과 김명훈 관장이 가진 운동지식으로 최대한 몸에 무리가 덜 가도록 완충의 역할을 해내는 것.
허준의 설명을 들은 남승연이 전단을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