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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72화 (73/230)

< 72화. 자네가 말한 그 친구인가 >

72화. 자네가 말한 그 친구인가

사단 예하 1대대 지휘통제실.

혜민서 일행을 맞이한 것은 주말 당직사관을 맡은 최 대위였다.

“아이구~ 선생님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교통편을 지원해 주신 덕에 편하게 왔습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저희 쪽에서 해드려야죠.”

최 대위가 웃으며 답했다.

최전방의 중대에 의료봉사가 다녀간 뒤로 병사들이 굉장히 만족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장교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그 이야기가 사단장님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덕분에 지금 이렇게 대대적으로 진행되었으니까 말이다.

“진료는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미리 이야기 해주신 대로 병력을 각 생활관에 전부 대기시켰습니다. 경계근무 병력은 가장 먼저 진료받고 교대할 예정이고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허준이 무언가 떠오른 듯, 최 대위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위님.”

“네?”

“오다 보니, 연병장을 돌고 있던 병사가 있던데요.”

최 대위가 연병장에 돌고 있는 병사가 누구인지를 단번에 눈치채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대에서 가장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폐급중에 폐급이었기 때문이리라.

“아, 김 일병 말씀이시군요. 부대에서 폐급으로 유명한 녀석입니다. 야간 근무를 설 때면 가끔 소리를 꽥꽥 지르기도 하고, 훈련에 나가서는 부대 망신도 종종 시키는 녀석이죠. 그래서 주말에는 보셨듯이 저렇게 연병장을 돌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소리를 지른다고요?”

“예. 그래서 야간 근무에서 어쩔 수 없이 뺐더니, 병사들은 그걸 또 불만스러워하고. 참, 여러모로 골치 아픈 녀석입니다.”

허준이 혼자 연병장을 돌던 병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흐리멍텅한 눈빛.

‘아무래도 내가 직접 진료를 봐야 겠어.’

*   *   *

“그럼, 진료 시작하죠.”

간단하게 이곳에서 이뤄지는 진료 방식의 설명을 마친 허준이 말했다.

기존 5명의 멤버가 새로 온 선생들을 이끌고 각각 생활관으로 흩어져서 진료를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진료.

처음에는 조금 삐걱거리는 듯싶었으나, 1시간쯤 지나자 모두가 능숙하게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모두 한의원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당연히 간단한 진료는 익숙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얼굴에는 기존 혜민서 사람들이 진료를 보는 모습이 경이로워 보였지만,

“선배. 벌써, 그쪽 진료 다 보신 거예요?”

박용준에게 후배인 한의사가 물었다.

“물론이지. 이 정도로 가벼운 질환들이야 간단하잖아? 안 그래?”

“아.. 하하, 그렇죠.”

“우리가 빨리 끝내야, 이 친구들도 주말에 쉴 수 있지 않겠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박용준 선배가 원래 저렇게 너그러운 성격이었던가?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흐! 찌릿합니다.”

“에이~ 어린 친구가 엄살은. 좋은 반응이야. 그래야 담 걸린 게 금방 풀리거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병사들의 탄성들.

허준뿐만 아니라, 혜민서 활동을 쭉 해오던 선생들의 실력이 늘어난 탓이었다.

분명히 같은 침으로 같은 증상을 진료하는데에도, 누구는 반응이 격하고 누구는 없었으니.

“아무 느낌 안나요?”

“네. 아무 느낌 없습니다.”

“여기는요?”

“네. 거기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것을 단순하게 체질이나 증상의 경증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터.

그때, 어느새 진료를 마치고 다가온 박용준이 후배의 어깨를 두르렷다.

“너도 열심히 하다 보면 될 거야.”

그러고는,

“다음 생활관으로 가자. 발침 해주실 분?”

“제가 남아서 발침 끝내고 따라가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허준이 있는 생활관에서도 이어졌다.

허준 앞에 있는 한 병사.

삽질하고 났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맥도 잡아봤지만, 역시나 건강하다.

‘이래서 정말 좋아.’

진맥을 얻은 뒤로 더욱 생생히 느껴져 오는 만큼,

매일 환자들을 진맥하다 보면 지금처럼 생생하고 건강한 젊은이들의 맥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었다.

맥이란 것이 사람, 체질 따라서 다르고 병증마다도 달랐으나, 병사들에게서 느끼는 맥이야말로 건강한 맥의 기준이 아니겠는가.

엎드린 병사의 허리를 손으로 눌러 뭉친 근육을 확인하고는,

망설임 없이 침을 꽂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느끼며 머릿속의 그곳에 정확하게 들어간 침.

“선생님, 짜릿합니다.”

“좋은 거예요. 그만큼 뭉친 근육이 빨리 풀릴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어서 엎드려 있는 병사의 체질을 고려해 약한 장기에는 침을 놓아 보하고, 실한 장기는 사하여 균형을 맞춰 주었다.

물론, 굳이 이렇게 놓지 않아도 건강할 테지만,

‘이왕이면 확실하게 해야지.’

이렇게 한 명씩 빠르게 진료를 나가기 시작하는 허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혈 자리는 경락 자리 아니야?”

“그러네. 저기 폐경락 같은데...”

“허준 선생님은 장기들의 실허를 따져서 침도 같이 놓아주시나 본데?”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허준의 이어진 침을 본 선생들은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망설임 없이 찔러 들어가는 침과 여지없이 반응하는 환자의 모습.

그리고 발침 이후에는 환하게 웃는 모습까지.

그만큼 환자가 만족했다는 뜻이리라.

허준이 진료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생활관으로 향했다.

어느새 진행도는 80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

‘역시 사람이 많은 게 깡패야.’

규모가 더욱 커지면 더 많은 포인트를 얻고,

그 포인트로 능력을 강화할 수 있을 터.

새 생활관으로 들어선 허준의 눈이 한 병사에게로 향했다.

연병장에서 본 그 병사였다.

허준이 다가가자 병사가 긴장한 듯이 침을 삼켰다.

가슴에는 이준호라는 이름이 박혀있었고, 여전히 눈빛이 총명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픈 데는 없나요?”

“일병. 이준호. 아, 아픈 데는 없습니다.”

“그래요? 병사들에게 들어보니, 막 근무 나가서 소리치고 그랬다던데.”

“그, 그건...”

“이준호 일병.”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이준호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긴장 풀고, 손 줘보시겠어요?”

“네.”

허준이 진맥을 잡았다.

건강하다. 다만 한군데.

‘심장이 허하다.’

공황장애로 찾아온 환자의 맥과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심장이 허하다는 것.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심장이 허하면 작은 일로도 긴장하고 놀라는 일이 잦아진다.

이러니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겠지.

진맥을 다 마친 허준이 물었다.

“이준호 일병. 숨을 깊고 천천히 내쉬세요.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아, 네.”

“군 생활이 익숙지 않죠?”

“아닙니다.”

“힘든 거는 알겠지만, 힘내세요. 그리고 여기랑 여기를 틈나는 대로 꾹꾹 눌러주면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특히, 심장이 뛰거나 겁이 날 때면 심호흡과 함께, 누르면 더욱 효과가 좋을 겁니다.”

허준이 가리킨 곳은 수소음심경에 속하는 엄지발가락의 대돈혈과 새끼손가락에 있는 소충혈이었다.

한의원이었다면 여기에 더해서 다른 혈 자리를 사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준호 일병이 그냥 겁이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해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람 많이 만나보다 보면 알죠.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에요. 한의원에서 환자들 보다 보면, 여기 이거 침 보이죠? 이거 번뜩이는 것만 보고 긴장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사실... 저도 긴장됩니다.”

“알고 있어요.”

허준이 대답과 함께 재빨리 새끼손가락의 소충혈에 침을 놨다.

“어? 안... 아프네요?”

“그렇죠?”

이어서 그 옆으로 한 번 더 침을 놨다.

이번에는 일부러 아주 천천히.

처음 겪은 침이 아프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이준호가 침이 천천히 자신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 눈 뜨고 바라봤다.

“어때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처음이라서 긴장이 되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죠. 그러니 조금 느긋하게 생각해 봐요. 오늘 진료보다 보니까, 이준호 일병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겁내 하더라고요.”

허준의 말에 이준호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의료봉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퀘스트 ‘XX 부대’를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3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4687

의료봉사가 끝나고 한의원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 완수했던 퀘스트 때문에 손쉽게 진료할 수 있었어.’

허준이 최은정을 떠올렸다.

그녀를 진료해보지 않았다면, 분명 오늘은 제대로 진료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버스 안의 분위기는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모두가 봉사에 참여하면서 조금이나마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같이 한 선생님들의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

‘오늘 오길 정말 잘했어.’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 유도진 선생이 허준에게 물었다.

“원장님.”

“네?”

“그런데, 아까 그 부대 주소는 왜 적어오신 겁니까?”

“아, 약하나 지어서 보내주려고요.”

*   *   *

“선생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네. 담당관님도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도착한 태용한의원.

유도진 선생과 고요한 선생은 입원실 진료로 인해 빠져서 현재 인원은 총 17명.

의료봉사가 끝났으니 이번엔 교육의 차례였다.

‘일단 시작은 추나로 시작하는게 좋겠지.’

태용한의원의 원장실의 카이로베드에서 허준 시범을 보였다.

도우미는 당연히 김 원장님과 박 원장이었다.

“이렇게 손을 올려 주시고, 다리를 들어서 이쪽을 고정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힘의 방향은 교정을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해주시고 가볍게.”

투툭-

카이로베드 특유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돌아가면서 차례차례 간단한 실습을 끝내고,

“오늘 추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준비한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는 동상과 화상 치료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확실히 사람이 많아지니, 그만큼 설명하기는 어렵네.’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 앞에서 치료법을 나눠본 적은 없었기에 살짝 어색한 허준이었지만, 이미 치료법의 여러 사례와 완성에 가까운 설명은 찾아온 선생님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요. 앞으로 몇 번 더 배우시고 직접 실습을 하다 보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실습도 할 수 있는 겁니까?”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허준한의원의 입원실 환자들에게도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사정을 설명했고, 더 많은 환자를 위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의해 주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동상환자들의 특수성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이어서 질문시간.

허준에게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선생님 하루 두 번 진료를 못 보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용준 원장이 답했다.

“우리 한의원을 찾아온 동상환자들의 경우에는 하루 한 번 치료로도 예후가 좋았습니다. 다만, 경증이란 점은 참고해야겠지만요. 중증 이상이라면 입원 치료가 가장 좋습니다.”

이어진 질문,

“선배님. 동상환자 치료 시에는 환부에 감각이 없을 텐데, 침감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자연히 알게 되실 겁니다.”

박용준 원장이 사악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모두가 만족스러운 혜민서에 관한 이야기가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   *

일요일 아침.

화려한 저택으로 두 남자가 들어섰다.

소박한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저택은 앞서 걸어가고 있는 김정우의 집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정원을 지나서 현관으로 들어서자,

소파에는 나이든 노인 하나가 링거를 꽂은 채 앉아 있었는데.

“김 선생 왔는가?”

“예. 어르신.”

“어르신은 무슨,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아닙니다.”

김정우가 노인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무려 30여 년간 이어져 온 인연.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다, 자네 덕분이지.”

“저도 어르신 덕을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그 옆에 있는 친구가 자네가 말한 그 친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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