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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70화 (71/230)

< 70화. 되돌려 줄지도 몰라 >

70화. 되돌려 줄지도 몰라

이른 아침.

허준한의원으로 출근한 윤다희.

평소 진료 시작 20분 전에 출근하던 그녀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이유는 간단했다.

‘연말 보너스를 이렇게 많이 주실 줄이야.’

건강한 직장인의 기분을 가장 좋게 만들어 줄 때는 월급날, 그리고 연말정산. 마지막으로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를 받았을 때가 아니겠는가.

콧노래와 함께 출근한 허준한의원에는 이미 김 쌤을 비롯해서 유도진 선생님이 출근해 계셨다.

“윤 쌤. 어서 오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김 쌤.”

“요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윤다희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원장님이 보너스 두둑하게 주셨잖아요. 당연히 기분 좋죠. 김 쌤은 안 좋으세요?”

처음과는 다르게 허준한의원의 사람이 많아질수록 일은 힘들어졌지만,

그만큼 급여는 빠르게 늘어났다.

허준이 만든 급여 시스템 자체가 기본급에 더해서 환자 수가 늘어나 매출에 따라 받는 인센티브를 다른 곳에 비해서 많이 주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이번에 고생했다고 보너스까지 받았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까.

“저도 당연히 좋죠.”

김예진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사는 집이라고 해서 월급날과 보너스의 기분 좋음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곧이어 허준이 출근을 했고, 진료가 시작되었다.

오늘 오전에는 윤다희가 데스크를 맞았는데,

“그 이야기 들었어?”

자주 오시는 시장 아줌마 두 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윤다희가 환자들의 진료 접수를 받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저기 건너편 재개발 구역에서 뭐 촬영한다던데?”

“텅텅 빈 동네에서 뭐 찍을 게 있다고?”

“진짜라니까? 내가 아침에 백반집 성님에게 들었는데, 어제저녁에 감독인가 하는 양반이 와서 식당 예약이 되냐고 하더래.”

접수를 모두 마친 윤다희가 잠시 한가한 틈을 타서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머님들. 그래서 뭐 찍는 거래요?”

“그 뭐라더라? 거 있잖아. 젊은 애들 좋아하는 거. 막 죽은 사람 돌아다니고 하는 거.”

“좀비요?”

“그래. 그거 좀비.”

윤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한의원 건너편에서 좀비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다 이 말이지?

손은 이미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영화.

[나 혼자 살다.]

주연 : 최우중, 이지현···

‘주연이 최우중이라고?’

윤다희가 눈을 빛냈다.

연기파 배우 최우중을 실물로 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   *   *

젊은 한의사 둘이 점심을 먹고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주제는 SNS에서 본 사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침으로 이렇게 치료한 거라고?”

“그렇다니까? 내가 이 선배님 아는데, 과대광고하실 분은 아니시거든.”

“그래? 그럼, 이거 정말로 가입하면 치료하는 법 알려주시는 건가.”

“선배님한테 전화해서 한번 물어볼까?”

그렇게 전화를 건 한의사.

상대는 태용한의원의 박용준 원장이었다.

“선배님. 저 호윤입니다.”

“어, 그래.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선배 SNS보다 보니까 혜민서라고 태그되어있는 거 말이에요.”

“응. 왜?”

“정말 여기 적힌 치료법을 다 공유해 주시는 건가요?”

“물론이지. 그러려고 만든 단체인데, 단, 조건이 있어.”

전화를 건 정호윤이 잠시 대답을 기다렸다.

“너 학생 때, 의료봉사 좋아했지?”

“그거 다 옛날 이야기죠.”

“아니야. 거기 적혀있는 데로, 의료봉사에 참여하는 것이 조건이거든.”

설명을 들은 정호윤이 옆에 앉은 한의사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겠냐는 제스쳐였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

“그럼, 저희 두 자리 신청해도 될까요?”

“알았다. 그럼, 토요일에 보자.”

그 시각 다른 한의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이거 진짠가?”

“그냥 블로그 광고 같기도 한데.”

“동상에 화상, 아토피에다가 근골격까지, 이건 뭐 거의 장르에 상관없이 다 치료한다는 소리잖아?”

“혼자 한 게 아닐 수도 있지. 단체니까. 여러 사례를 모아서 짜깁기 한 걸지도.”

“그런가?”

그때,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두 한의사 앞으로 지는 그림자.

“대표님?”

“우리 두 원장님께서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이렇게 모여서 하고 계셨을까~? 혹시, 내 욕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가?”

“아닙니다. 그냥 재미난 걸 발견해서요. 여기요. 대표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한의사 하나가 스마트폰을 보였다.

그것을 본 최인호.

‘혜민서?’

아래에 나와 있는 참여 한의원들 이름이 낯익다.

허준한의원과 태용한의원.

화면을 넘겨서 치료사례 사진들 몇 개와 활동 의의 등을 확인한 최인호가 입을 열었다.

“자네들 생각은 어떤데?”

“저는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새로운 체인점 모집방식이라고 보입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저도 뭐, 비슷하다고 봅니다. 의료봉사 껴서 이미지 관리하면서 교육을 핑계로 체인화하는 전략 같단 말이죠.”

대답을 들은 최인호가 씨익 웃더니 앉아 있던 두 한의사의 어깨를 툭 하고 동시에 두드렸다.

두 젊은 친구에게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미안한데, 사실은 나도 이 혜민서 멤버라서 말이야.”

“네...?”

“저, 죄송한데 대표님 이름은 없는데요? 우리한의원 이름도 없고요.”

“이것 참, 거기 교육 항목에 추나 있지? 그거 내가 알려준 건데?”

최인호의 대답에 두 원장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실제로 최 대표의 추나 실력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의 이 한의원이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거기 나온 치료사례들 전부 사실이야. 내가 보증하지.”

“정말입니까?”

“그래도,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여러 분야를...”

“거기 허준 선생이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 일종의 천재라고나 할까? 궁금하면, 자네들도 직접 가봐. 아마 배울 게 많을 테니.”

이어진 말에 두 원장이 눈빛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최인호가 한의원을 나서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이번엔 후원을 좀 더 해야겠는걸.’

언젠가 크게 확장해나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한의원이 아니라 혜민서 일 줄이야.

역시나 허준 선생다운 모습에 최인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이체 버튼을 눌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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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나타난 포인트.

태용한의원에서 또 환자의 치료를 성공한 모양이다.

‘좋았어.’

적극적인 마케팅 때문인지 가벼운 동상이나 화상 환자는 태용한의원으로도 종종 찾아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토피 환자들이 몰려들었음에도 진료에 큰 지장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물론, 심각한 환자의 경우에는 당연히 입원실이 있는 이곳을 찾았지만.

허준이 모니터에 나타난 프로그램의 숫자를 확인했다.

늘어난 환자 수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이대로라면 분명 무리가 올 거야.’

연말 보너스로 선생님들을 독려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결국에는 일이 너무 힘들면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었으니 말이다.

한의학에서도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듯이, 일과 휴식도 조화롭게 이뤄줘야 장기적으로 갈 수 있을 터.

최근 한의원은 앞으로 환자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 허준이었다.

이는, 치료실의 숫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니.

‘그렇다고 치료실을 늘릴 방법이 당장에는 없다.’

현재 상황에서 치료실 숫자를 늘리는 방법은 옆 상가건물의 벽을 허물어 새로운 치료실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간호조무사 선생님의 확충으로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현재 고용된 선생님은 총 네 명이지만, 그중 두 명은 입원실을 맡고 계셨으니 실제로는 두 명이 한의원을 맡고 있는 셈.

‘아무래도 두 선생님의 말을 들어봐야겠어.’

그렇게 원장실로 호출된 김 선생과 윤 선생.

“원장님. 무슨 일이세요?”

“별거는 아니고, 요즘 데스크 상황은 어떤가 해서요. 연말에 매출 확인해 보니까 많이 늘었더라고요.”

“조금 버거워요. 가뜩이나 이번에 아토피 치료 이후에 환자들 많이 늘어나서. 게다가 핫팩 빠지면서부터 치료실 회전율이 빨라졌잖아요.”

윤 선생의 대답을 들은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한 그대로였다.

“김 선생님. 생각은 어때요?”

김예진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 생각도 같아요. 이번에 고생했다고 보너스 많이 넣어주신 거는 알겠는데, 아마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윤 선생님이 먼저 쓰러질지도 몰라요.”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두 분께 직접 물어보고 인원을 늘릴 생각이었어요. 혹시, 주변에 아시는 선생님들 계실까요?”

허준이 두 선생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이제 경력이 얼마 안 된 두 선생이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

그때, 김 선생이 허준을 불렀다.

“원장님. 김정우 선생님께 물어보면 어떨까요?”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정우한의원에서 일했다면 그야말로 베테랑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서로 아는 얼굴들도 있으니, 일하는 데 있어서 불협화음이 일어나지는 않을 터.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선생님께 직접 물어볼게요.”

*   *   *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회의를 시작했다.

“그쪽은 어떻게 됐어?”

“네. 장소 섭외 끝났고, 근처 식당도 확보해 놨습니다.”

상석에 앉은 남자의 물음에 최승빈이 답했다.

“역시. 우리 최 감독이야. 일 잘하네.”

“감사합니다. 재개발 구역이라서 따로 주민들의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시공사가 예정된 철거 기한 안에 촬영을 끝내 달라는 조건을 달아 왔습니다.”

“그래?”

“네.”

총괄 감독 김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시선이 그 옆으로 향했다.

“거기는 어떻게 됐어?”

“조연 배우들까지 섭외 다 끝났고,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최우중 있잖습니까? 요즘에 영 상태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럼, 인제 와서 어떻게 해. 계약 취소하고 주연 갈아? 그거 완전히 영화 엎어버리자는 이야기잖아?”

“그건 그렇죠...”

최우중. 호남형의 외모와 목소리 그리고 특유의 눈빛은 그의 연기를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배우.

오죽하면 외모가 연기에 묻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찍는 영화마다 손익분기점은 물론이요, 중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다 보니.

어느새 연기파 배우 중에는 손에 꼽는 배우가 되어 있었고,

덕분에 주연배우에 따라 투자자가 붙는 이 영화판에서 그는 보증수표로 불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최근에 그의 폼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건강상의 문제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실제로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자주 보인다고 한다.

그 때문에 최근에 촬영을 마친 감독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

이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제작발표와 더불어서 투자자까지 모은 상황이니 빼도박도 할 수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지. 잘 달래서 가 보는 수밖에.”

그렇게 시작된 첫 촬영.

카트!

감독의 말에 달리던 최우중이 숨을 헐떡이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에이 씨.”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모니터로 다가오는 최우중.

“우중 씨. 다 좋은데, 이거 뭔가 달리기가 조금 어색한 것 같아.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가보자고.”

“네.”

최우중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카메라를 돌리고 있던 최승빈이 최우중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힘내. 다들 너한테 바라는 장면이 있어서 그럴 거야.”

“형. 솔직히 나 지금 너무 피곤한데...”

“그래? 그러면, 내가 좀 쉬었다 하자고 말할까?”

“됐어.”

대답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사촌 동생의 모습.

예전에는 항상 환하게 웃으면서 촬영에 임했는데, 대체 왜 저렇게 된 것일까.

그때, 카메라에 담긴 사촌 동생의 얼굴을 본 최승빈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였다.

그래 거기라면 미소를 되돌려 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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