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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68화 (69/230)

< 68화. 이게 최고지 >

68화. 이게 최고지

“네...?”

김정우와 유도진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알지 못한 허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김정우 선생님이 어떤 분이던가.

그야말로 하늘 같은 대 선배님이자, 건물주 그리고 무엇보다 전국에서 진료를 보기 위해 찾아올 정도의 명의반열에 계신 분이셨으니,

“아, 유도 진 선생에게 못 들었나 보군?”

“예... 제가 들은 게 없어서요.”

김정우가 허준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 성격이라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을 터.

“별거는 아니고. 손 떨림이 좋아지면 복귀할 생각이 있다고 했거든. 그런데, 이를 어쩌나 정우한의원이 사라졌으니, 여기에다 남는 자리라도 물어볼 수밖에.”

“아...”

“게다가 여기가 정우한의원에 다니던 환자들이 제일 많이 오지 않던가.”

“그건 맞습니다.”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료를 기다리면서 보니, 아이들이 많던데. 아토피 때문에 온 환자들 아닌가? 그 아이들을 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역시 김정우 선생님다운 말씀이었다.

과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치료비도 제대로 받지 않고 치료를 해주셨다던데.

허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정우 선생님이 한의원에 합류해 주신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전력증가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문제는 역시나 산정할 수 없는 급여가 아닐까.

보통, 대형 한방병원에 있는 한의사들의 몸값조차 기본으로 억이 넘어간다.

하물며 오랜 경력과 용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선생님이라면...

그때, 허준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김정우가 말했다.

“돈 걱정은 하지 말게. 내가 도움을 좀 주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자네 직원으로 계약해서 일하기에는 모양새가 좀 우습지 않나?”

“확실히 그렇죠.”

“게다가 자네도 알다시피 현재 내 상태로는 매일같이 나와서 근무를 하기에도 어렵지.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이 정도가 딱 좋아 보이더군.”

현실적인 허준의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김정우.

그의 말이 이어졌다.

“직접 진료는 최소화할 생각이야. 대신 자네들의 업무를 보조해주도록 하지. 일종의 의료자문이라고 해야겠군. 그러니, 급여도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공진단과 보약 정도로 퉁치자고. 어떤가?”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김정우 선생님의 40여 년 가까이 쌓아온 살아있는 지식을 바로바로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 가치는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말 그 정도면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내가 뭐 돈 벌려고 나오는 건 줄 아나?”

“저야 선생님께서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좋아. 그럼 이야기는 끝났군.”

그렇게 진료가 끝나고,

허준이 퇴근 준비를 하는 한의원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선생님들. 김정우 선생님은 다들 아시죠?”

“네. 그럼요.”

“물론이죠.”

“오늘부터 우리 허준한의원 자문으로 일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정말요?”

“네.”

허준의 발표에 데스크의 두 선생, 이제 막 출근한 도영철 선생과 입원실에서 내려온 정 선생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도진 선생은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요한 선생은 옆에서 그런 유도진과 허준 그리고 김정우 선생님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김정우라고 하네.”

김정우가 한의원 식구들을 한 바퀴 쓱 둘러보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 그럼 다시 여기서 진료 보시는 건가요?”

정우한의원에서 오래 같이 일했던 입원실의 정 선생이 반가움에 물었다.

“오랜만이야. 정 선생. 직접 진료보다는 옆에서 여기 선생들 도움이나 조금 주려고. 체력이 예전만 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러시군요. 그래도 어쨌든 정말 반가워요. 선생님.”

“나도 반갑네. 앞으로 잘들 부탁하네.”

김정우 선생님의 첫 자문은 탕약실에서 이루어졌다.

“허준 선생.”

“네?”

“우선 탕약기부터 전부 옹기로 바꾸는 것이 어떤가?”

“알겠습니다.”

허준이 곧바로 답했다.

사실, 안 그래도 새해에는 남아 있던 탕약기들을 전부 옹기로 대체할 생각이 있었던 터였다.

이미 옹기탕약기를 사용하면서 익숙해지기도 했고, 유도진 선생에게 효능에 관하여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포인트를 자동탕약기에 비해서 2배나 받을 수 있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네. 그럼 이제 이야기를 좀 나눠보도록 할까?”

“저녁 식사하시면서 하시죠. 도시락이 맛이 꽤 좋습니다. 선생님.”

“그러지.”

그렇게 허준한의원이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김정우 선생님이 허준한의원에 계신다는 소문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렇다니까. 허준한의원 윤 선생에게 직접 들은 말이라고.”

“그럼, 진료 한번 받으러 가 볼까?”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당연히 시장 입구의 태용한의원 원장들에게도 들어갔다.

혜민서 활동을 위해 모인 두 원장이 허준을 불렀다.

“허준 선생.”

“네?”

“정말로 정우 선생님이 한의원에서 근무하신다고 하셨어요?”

“아~ 그게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은데요.”

“무슨 오해요?”

“의료자문으로 오셨어요.”

“의료자문이요?”

“네.”

허준의 대답에 김 원장과 박 원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때, 탕약실에서 고요한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정우가 나왔다.

“어? 김정우 선생님?”

“자네들이 최인호 선생과 같이 일했던 선생들인가?”

“네. 맞습니다. 태용한의원의 김태식이라고 합니다.”

“박용준입니다.”

“모두, 반갑네. 다 같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한다더니 보기 좋구먼.”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김정우가 허준에게 물었다.

“허준 선생. 혹시, 오늘 동상환자 치료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나?”

“네. 동상환자뿐 아니라, 이번에 완치한 아토피 환자에 대해서도 준비했습니다.”

“그래? 그럼 나도 같이 들어도 될까?”

“그럼요. 물론이죠.”

김정우의 말에 태용한의원의 두 원장이 긴장했다.

마치, 선생님이 과제발표를 검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긴장들 하지 말고, 그저 같이 보고 듣고 배우고 싶어서 말이야.”

“아, 네..”

그렇게 이어진 허준의 이야기.

다들 원론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던 터라, 사례와 증상에 따른 치료 기간 등을 기록했다.

김정우도 설명을 듣고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상을 입었을 때의 화기를 빼는 치료처럼, 동상은 한기를 빼내는 치료가 핵심이라는 것을 단번에 이해했다.

이어서 아토피 치료사례의 공유.

허준이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직 완치사례라고 볼만한 케이스는 하나였기에 동상이나 화상처럼 자세한 토론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그때, 김정우가 입을 열었다.

“아토피 치료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탕약이라고 할 수 있네. 결국, 면역질환이라고 할 수 있으니, 환자의 체질과 상태의 진단을 내리고 그에 맞는 탕약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가 핵심일 걸세. 그러니, 환자의 케이스에 따라서 처방을 잘 기록해 둔다면 큰 도움일 될 걸세.”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 이런 걸 가지고. 잘 들었어. 나는 이만 가보겠네.”

그렇게 치료사례 교육 시간이 끝났고, 이어진 시간은 혜민서에 모인 기부금의 사용에 대한 안건이었다.

박 원장이 나서서 금액을 말했다.

“저희 혜민서 앞으로 기부금이 현재 천만 원이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하여, 연말이니만큼 사용처를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허준이 여태 의료봉사를 했던 곳들을 떠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규모가 작았으니.

그때, 유도진 선생이 말없이 손을 들었다.

“말씀해 주세요. 유도진 선생님.”

“저는 미혼모 센터에 기부하고 싶습니다. 혼자서 애를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게다가 성인이 아니라면 더더욱.”

평소 저런 의견을 말하지 않던 유도진이었기에, 선생들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유도진 선생이 저런 말을 할 줄이야.

박 원장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곳이 가장 많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리라.

“좋은 생각이시네요.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가 한 바퀴 쓱 둘러보며 시선을 건네자, 선생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할게요.”

그렇게 혜민서 활동이 끝난 허준한의원.

하나둘 귀가하는 중에 박용준이 허준을 찾았다.

“선생님.”

“네?”

“이번에 새로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선생님들이 연락을 해왔거든요.”

“그래요?”

“네. 마침, 이번 봉사활동 선정을 한곳이 난이도가 꽤 쉬운 곳이니, 전부 다 같이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봬요.”

대체 어디길래 난이도가 쉽다고 하는 거지?

의문과 함께 홀로 남은 허준.

원장실을 나서기 전에 한의원 식구들의 월급에 더해서 연말 보너스를 이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두가 고생했으니.’

허준의 머릿속에 올해 겪었던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정말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네.

혼자라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처음 적었던 금액을 지운 허준이 다시 새로운 숫자를 입력하고는 그대로 이체를 눌렀다.

역시 감사의 표시는 이게 최고지.

*   *   *

올해의 마지막 날.

한 여인이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름은 남승연, 최은정의 친구.

그녀는 조금 낯설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번 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렇게 찾아온 허준한의원.

문을 열자 눈앞에 트리와 함께 잔잔한 음악 그리고 익숙지 않은 한약재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처음이시죠?”

눈썰미 좋은 김예진이 단번에 그녀가 초진 환자임을 알아봤다.

“네... 여기 원장님한테 진료받아보려고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여기 이것 좀 적어주시겠어요?”

남승연이 김예진이 건넨 종이를 받아 들었다.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을 적어 내려가다가 진료를 원하는 항목 난에서 망설이더니, 데스크로 다가가 속삭였다.

“저... 여기는 원장님께 직접 말씀드려도 될까요?”

김예진이 남승연을 위아래로 훑었다.

오랜만에 진상인가? 언뜻, 보기에는 그냥 성깔이 좀 있어 보이지만, 진상 같은 특유의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대신에 원장님한테는 꼭 자세히 말씀해 주셔야 해요. 그래야 제대로 진료를 볼 수 있으니까요.”

“네. 그럴게요.”

그렇게 남승연의 이름이 불리고 들어간 원장실.

허준이 들어오는 남승연을 반갑게 맞이했다.

미리 데스크에서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남승연이 조금 눈치를 보며 인사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퀘스트가 나타나 있었는데,

<차가운 여인>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1000

허준이 퀘스트와 그녀의 행동을 보면서 무언가를 떠올렸다.

처음 진료하는 질환이자, 젊은 여환자가 부끄러워할 만한 질환.

‘여성 질환일 확률이 높다.’

간단한 예측과 함께 진료가 이어졌다.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어요?”

“그게...”

남승연이 망설였다.

여의사나 여한의사가 아닌 곳에서 이런 말을 하기는 처음이었기에 창피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그게...”

“괜찮아요.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딱히 아프지는 않고... 제가 그.. 불순이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허준이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행동에 들어갔다.

한의학적으로 여성의 월경은 스트레스부터 다이어트 또는 식습관이나 잠자는 습관 등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인 만큼, 신체 전반적인 상태를 고루 살펴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 때문에 묻고 싶은 것이 많은 허준이었지만, 창피해하는 환자를 생각하면 우선 신뢰부터 쌓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생식기 관련 질환이라면 아무래도 신장과 방광의 허실을 우선순위로 둬야겠지.’

“진맥부터 한번 잡아볼게요. 손을 줘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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