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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64화 (65/230)

< 64화.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

64화.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선생님 맞으시죠?”

김정우도 문 앞에 있는 최미라를 알아봤다.

그녀 특유의 공격적인 말투 때문이었다.

“최 여사?”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녀도 김정우 선생님에게만큼은 조심스럽게 대했다.

연장자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진료를 맡아 호전되게 만들어준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만난 둘은 어느덧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마침, 김정우도 진료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필요했고, 최미라는 오랜만에 김정우 선생을 만나자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예진 선생이 김정우 선생님의 진료를 알아서 접수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보약 지으러 온 거구먼?”

“네. 좀 전에 유도진 선생에게 진료받고 나왔어요. 3일 뒤에 오라더군요. 약이 조금 밀려있다고.”

김정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전부터 정우한의원의 보약은 유도진 선생이 종종 지어왔으니, 이제는 알아서 잘 맞춰줬을 터.

유도진의 실력을 믿고 있는 김정우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나?”

“네. 혹시, 유도진 선생 만나러 오신 거예요?”

“아니, 나도 진료받으러 왔지.”

“진료요? 혹시, 어디 아프신 거예요?”

“내 나이쯤 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만 이상해도 찾아오는 게 병원이야. 나는 한의사였으니 당연히 한의원에 온 것이고. 게다가, 여기 허준 선생이 솜씨가 꽤 좋거든.”

김정우의 대답에 최미라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입에서 유도진 선생이 아니라, 허준 선생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허준 선생이라면...?”

“여기 한의원 원장 선생 있잖나.”

최미라의 머릿속에 유도진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실력이 출중하다고 했던 이야기. 아무래도 그냥 한 말은 아닌가 보다.

자신의 발언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그녀였다.

“선생님. 여기 원장 선생 실력이 그렇게 좋아요?”

“왜? 최 여사도 진료 한 번 받아 보게?”

“그냥, 궁금해서요.”

“궁금하면 직접 한번 받아 보면 되지.”

그때, 데스크에서 김정우의 이름을 불렀다.

“김정우 선생님. 원장실로 가실게요~”

“벌써, 내 차례가 되었구만. 그럼, 또 보자고.”

“네, 선생님. 다음에 봬요.”

그렇게 동네로 돌아온 최미라.

애들을 학원에 보내고 나서 늘 모이는 카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기들, 내가 오늘 한의원 갔다 왔는데.”

“정우한의원? 거기 이제 없어졌다면서.”

“그러게, 정우 선생님 은퇴하셨다고 문자 왔던데.”

“좀, 들어봐.”

최미라가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유도진 선생이라고 알지?”

“알지. 정우한의원에 계시던 분이잖아.”

“그 선생님 약 잘 지으시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유도진 선생이 있는 한의원에 내가 보약을 지으러 갔다가 김정우 선생님을 만났거든?”

“정말? 어떻게, 잘 지내고 계셔?”

“이제 한의원은 안 하신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정우 선생님이 유도진 선생이 아니라 다른 선생한테 진료를 받으시더라고.”

최미라의 이야기를 들은 아줌마들이 귀를 쫑긋거렸다.

흥미가 돋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프면 잘하는 의사를 찾아가듯, 한의사도 아프면 잘하는 한의사를 찾아가지 않겠는가.

“거기가 어딘데?”

“허준한의원이라고 정우한의원 있던 자리에서 바로 대각선에 있는 곳이야.”

*   *   *

치료실에서 한 차례 시침을 마친 허준이 원장실로 돌아와 차트를 보고 데스크로 사인을 보냈다.

‘이번 환자는 족저근막염.’

재진 환자로, 이번이 세 번째 내원한 젊은 환자다.

젊으니만큼 회복은 금방이겠지.

게다가 이런 간단한 진료야말로 허준에게 가장 익숙한 질환이었으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발바닥은 좀 어떠세요.”

“거의 다 나은 것 같아요. 이제 별로 안 아파요.”

“그래요? 그럼, 발을 이리로 올려주시겠어요.”

환자가 올린 발을 허준이 망설임 없이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환자의 표정을 살폈다.

‘음, 정말 많이 좋아졌는걸?’

역시 젊음이 깡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환자의 살짝 찡그려진 눈썹.

아직 완치는 안 되었다는 뜻이다.

“정말 많이 좋아졌네요.”

“그렇죠?”

“그런데, 아무래도 오늘은 침을 한 번 더 맞으셔야 할 것 같아요.”

허준의 말에 환자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미 두 번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벌어진 작은 우발사건이다.

워낙 아팠으니까.

그렇게 치료실에서 누군가의 눈물이 조금 흐르고,

이어진 진료의 다음 환자는 지훈이였다.

원장실 문이 열리며 밝은 표정을 한 지훈이가 걸어 들어왔다.

엄마의 손을 잡고서.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지훈이 어머님, 그리고 지훈이도.”

씩씩하게 침을 맞던 지훈이는 어느새 진행도가 98%가 되어있었다.

완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유도진 선생님에게 넘겨받은 이후 진료 때마다, 1% 정도 진행도가 올라가고 다시 진료를 보러 올 때마다 1~2%씩 올라가 있었다.

그러니 아마 오늘이 마지막 진료가 될 터.

진맥을 잡은 뒤에 허준이 물었다.

“요즘에는 어떠세요?”

“아주 좋아요. 밤에도 긁지도 않고.”

“잘됐네요.”

대략 두 달가량의 싸움.

생각보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동안, 지훈이 보다 지훈이 어머님의 표정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어떤 것 같아요. 선생님? 제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 것 같은데...”

“네. 좋네요. 간단하게 침만 놓죠.”

“탕약은 더 안 먹어도 될까요? 이제 거의 다 먹어가는데.”

“오늘 봐서는 딱히 더 안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침도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화기를 빼기 위해서 놓는 거라서요.”

허준의 설명에 지훈이 엄마 박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침을 맞을 때마다 화기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에 이해한다는 뜻이었다.

“앞으로는 어머님께서 생활만 잘 관리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곧 면역력이 제대로 형성되기 시작하면, 더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허준의 대답에 지훈이 어머니의 눈이 껌뻑였다.

최근에 지훈이의 상태를 보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대답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아마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치료실.

허준이 지훈이의 족삼리혈과 곡지혈에 침을 찔렀다.

그러고 이어서 환부인 팔꿈치 안쪽에 세 개.

“잘 참을 수 있지?”

지훈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허준이 타이머를 맞추고 원장실로 돌아왔다.

15분 뒤,

다음 환자의 진료를 보는 와중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여린 아이’를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2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9682

곧 1만에 가까워지는 포인트.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   *   *

저녁 8시.

한의원 야간진료가 끝난 시각.

허준한의원에 혜민서 멤버들이 모였다.

“아이고~ 오늘도 고생들 하셨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저녁 식사 못 하셨죠? 간단하게 저녁부터 먹고 시작할까요?”

“저녁이요?”

허준의 말에 박 원장이 반문했다.

“네. 저희 도시락 있거든요.”

항상 혜민서 활동을 하고서 저녁을 제때 먹지 못하다 보니, 허준이 내린 결정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게다가 앞으로 더욱 열심히들 해주셔야 하고.’

이번 주 들어서 퇴원한 환자부터 완치한 환자들로 얻은 포인트가 무려 100여 점 가까이 되지 않던가.

허준이 내민 도시락에 박 원장과 김 원장이 살짝 실망한 감을 비추었지만, 이내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애초에 이곳에 모인 이유는 놀려고 모인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허준이 박 원장에게 물었다.

“박 원장님. 그때 말씀드린 것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아, 네. 제 동생이 웹디자이너여서 대충 용돈 좀 주고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아마, 곧 완성될 거에요.”

허준이 주문한 혜민서의 홈페이지였다.

“나도 박 원장에게 대충 들었는데, 혜민서 활동을 다각화하자고?”

“네. 그러려고요. 김 원장님도 동상환자 치료했다고 시장 사람들이 소문 나신 거 알죠?”

“그럼~ 내가 그걸 모를까?”

김 원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왕이면 많은 한의사 선생님들이 보고 배워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요.”

“뭐, 허준 선생이 그렇다면 야.”

이야기를 들은 유도진이 밥을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돈이야기를 할 때면 욕심이 많아 보이나, 환자 이야기가 나오면 돌변하는 허준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일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 옆에 있는 고요한 선생에게도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피아니스트 손가락도 고쳤다면서? 박 원장에게 다 들었어. 만성이었으면 처방하기 힘들었을 텐데.”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저도 처음 치료해 봤는데, 한의학적으로 원인이 워낙 복잡해서 진단할 때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래도 일단, 환자의 의지가 매우 강했고 처방에도 잘 따라와 줘서 치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이네.”

“그분 SNS 보니까, 내년 콩쿠르를 위해서 출국하셨다고 하던데요?”

역시 SNS 시대다.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홈페이지는 된 것 같고, 박 원장님.”

“네.”

“그 혜민서 SNS에 봉사지원자들에게 치료법에 대해 공유도 하겠다고 적어두세요.”

“그런데, 한다고 해서 과연 올까요?”

박 원장의 질문은 타당했다.

동상과 화상 둘 다 하루 2번씩의 치료를 기본으로 깔고 갔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힘은 들지만, 돈은 크게 안 된다는 뜻.

“당연히 그냥은 안 올 수도 있죠. 하지만, 여기 추나 잘하는 선생님들 많잖아요?”

“아하!”

박 원장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나 치료는 요즘에 가장 핫한 과목으로 개원뿐만 아니라 부원장으로 취직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추나 치료 경력에 따라서 급여가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허준의 답은 인기가 많은 추나를 미끼로 여러 치료법을 공유하겠다는 이야기였으니,

“추나부터, 동상, 화상 등등 그리고 앞으로 환자의 치료 케이스가 많아질수록 치료법의 공유도 늘려갈 생각입니다.”

“호오...”

이야기를 들은 선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봉사활동과 기부 그리고 교육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혜민서의 시작이었다.

*   *   *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했던 김성호는 점심시간에 팀장과 함께 밥을 먹고 돌아와 한약을 꺼내 뜯고는 입에 털어 넣었다.

당연히 쓰고 텁텁하다.

하지만,

‘이 한약 때문인가?’

불쾌감과 피로감 등등.

자신을 괴롭히던 느낌들이 전부 사라졌다.

진짜 용하긴 용한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 대리.”

“네. 팀장님.”

“오늘 부장님께서 회식 어떠시냐고 하시던데.”

“아... 회식이요?”

“응. 그런데, 자네 보니까 한약 먹잖아. 약 먹을 때 술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렇죠?”

김성호가 고민하면서 답했다.

자신의 진료를 봐준 한의사 선생님이 술을 절대 금하라고 신신당부했던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식도 회사생활의 일부.

게다가 부장님이 직접 하는 행사에 토를 달 수 있는 대리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뭐, 가서 양해를 구하고 딱 한 잔만 하면 되겠지.’

회식 자리.

영업팀 부장 임석주가 호탕하게 웃으며 김성호의 술잔을 가득 채웠다.

“자네들이 우리 영업팀의 자랑이지! 암, 그렇고말고.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맘껏 들게!”

“감사합니다. 부장님.”

김성호가 눈을 질끈 감고 입으로 털어 넣은 한잔.

캬- 소리와 함께 잔을 내려놓고는,

‘어? 뭐야. 평소랑 똑같잖아?’

아무렇지도 않다고 느껴지는 몸 상태.

이어서 안일함과 업무상의 익숙함이 김성호를 반겼다.

한잔으로 시작된 술은 두 잔이 되었고, 두 잔은 세잔이. 세잔은 한 병이.

이렇게 늘어난 술에 결국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김성호는 택시를 타고서야 집에 귀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억...’

산에서 구르기라도 한 걸까.

온몸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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