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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62화 (63/230)

< 62화. 들르고 나서 연락드릴게요 >

62화. 들르고 나서 연락드릴게요

토요일 아침 휴일을 맞은 유도진이 보조석에 실려있는 보따리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진짜 같은 사람 맞나?’

공진단뿐만 아니라, 기어이 녹용대보탕도 포장까지 깔끔하게 끝내다니.

다른 한의사가 들으면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물을 법한 말이지만, 무려 야간진료를 마친 뒤에 남아서 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하긴, 툭하면 진료 끝나고 탕약을 달이던 사람이니.’

심지어는 그날 동상환자들의 저녁 진료도 허준 선생이 직접 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혹시 다른 사람보다 간이 크거나 실한가?

한의학적으로 간이 컨디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니,

그 엄청난 체력에 의문까지 생기는 유도진이었다.

그런 유도진이 잡념을 떨치고 눈앞에 보이는 벨을 눌렀다.

“열려 있으니, 들어오게.”

“안녕하세요. 선생님.”

유도진의 양손에 들린 보따리를 보며 김정우가 물었다.

“나는 또 자네가 갑자기 찾아온다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보약을 가져다주려고 온 건가?”

“네.”

“진료는 어쩌고? 오늘은 토요일인데?”

“휴무입니다.”

“휴무? 아, 그러고 보니 한의사 선생 하나가 더 있었지. 그럼, 가서 푹 쉴 것이지. 뭐하러 아침부터 이렇게 찾아오나. 다음 주에 한의원에서 진료 보고 주면 될 것을.”

유도진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안 그래도, 이것만 전해드리고 바로 가려고 했습니다.”

“왔으니 그냥 보낼 수는 없고, 차나 한잔하고 가게.”

“네.”

그렇게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한의사.

뜨거운 물에 차가 우러나는 동안에 유도진이 보따리를 풀어 공진단을 꺼내 들었다.

공진단은 아침, 공복에 먹는 것이 효과가 가장 좋기 때문이었다.

“하나 드셔 보시지요.”

“생각보다 빨리 만들었네? 며칠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김정우가 궁금하다는 듯이 공진단이 들어있는 작음 함을 열어 꺼냈다.

금박으로 쌓인 동그란 덩어리에서 기분좋은 향이 풍겨나왔다.

“냄새는 좋군. 그럼, 어디 맛 좀 봐볼까?”

김정우가 손에 들린 공진단을 입에 쏙 넣고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한번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향긋한 향이 터지면서 내쉬는 숨에 그 향이 묻어 나온다.

이어서 괜스레 몸에 활력이 돋아서 나는 것 같은 기분.

오랜 세월 한의사로 지내면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종종 공진단을 먹은 김정우였지만, 지금의 이 공진단은 무언가 달랐다.

마치, 이전에 먹었던 공진단들이 기성복의 느낌이었다면, 지금 입안에 있는 이것은 몸에 딱 맞춘 맞춤 정장이라고나 할까.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느낌이란 뜻이다.

‘이거, 약재를 다루는 솜씨도 기대 이상인걸?’

허준 선생이 침을 잘 놓는다는 것은 소문으로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한의원을 찾아갔을 때 진료를 받으며 진단과 처방에서 의외의 실력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약재를 다루는 솜씨 또한 보통이 아니었으니 내심 놀랄 수밖에 없는 김정우였다.

“좋군. 공진단을 보니, 녹용대보탕도 기대해볼 만하겠어. 이걸 전부 허준 선생 혼자 만들었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자네가 약재의 가감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고?”

“저는 옆에서 다른 환자의 탕약을 달이다가 마지막에 포장만 살짝 도왔습니다.”

대답을 들은 김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진석 자네가 괜히 허준 선생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군.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자네라면 분명 처음부터 무언가 느꼈던 것이겠지.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

여기에 경험이 더해지면 손꼽히는 명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김정우가 기분 좋게 웃으며 유도진에게 물었다.

옆에서 아마 많은 자극을 받고 있을 거다.

“그래. 자네 내가 준 자료들은 잘 보고 있나?”

“네. 물론입니다. 오늘도 가서 살펴볼 예정이고요.”

“물려준 보람이 있군.”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암, 그래야지.”

“그런데 선생님. 혹시, 복귀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제 곧 선생님께 보약을 맞추시던 분들이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정우한의원에서 가장 비싼 보약들을 사가던 사람들.

유도진이 그들을 떠올리며 답했다.

“정우한의원이 사라졌는데, 어디로 오라는 말인가? 허준한의원으로? 게다가 자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제가 선생님의 이름에 누를 끼칠 지도 모르고...”

“자네답지 않게 왜 그러나? 뭐, 손 떨림이 멎으면 생각해보도록 하지. 차 식겠네. 들게나.”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래. 어서 마시고 가서 쉬게.”

*   *   *

월요일 아침.

허준이 한의원으로 출근했다.

한의원의 가장 바쁜날인만큼 월요일 휴무는 없었기에 모든 선생님이 출근한 상황.

김예진이 입원실 당직 도영철에게 받은 인수인계를 출근한 정윤희 선생님에게 인수인계를 마쳤다.

정윤희 선생님은 본래 정우한의원에서 근무하시던 간호조무사 선생님으로, 주4일 입원실의 주간 근무를 하신다.

유도진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흔쾌히 일해주시기로 해주신 좋은 분이셨다.

간단한 파이팅과 함께 월요일의 진료를 시작하려는데,

“참, 유도진 선생님.”

“네?”

“정우 선생님께는 잘 가져다드리셨나요?”

“아, 네. 만족해 하셨습니다.”

“잘 됐네요.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말씀하시죠.”

허준이 잠시 뜸을 들였다.

아토피로 한의원을 찾아온 지훈이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김지훈 환자 있잖아요?”

“김지훈이라면... 아토피 환자 말하시는 거군요?”

“네. 원래 유도진 선생님이 담당하던 아이요.”

“지훈이가 왜요? 혹시, 아토피가 재발이라도 한 겁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맡아도 될까 싶어서요.

유도진이 잠시 망설이다 되물었다.

“제 처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럴리가요. 처방은 완벽했습니다.”

“그런데요?”

“토요일에 선생님이 쉬실 때 지훈이가 진료를 받으러 왔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신 진료를 봤는데. 치료실에서 지훈이가 침을 맞으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해서요.”

“재미난 이야기라면?”

“몽글몽글하다 던데요?”

유도진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몽글몽글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나, 지훈이 또래의 아이의 표현일 터.

그것이 곧 침감 중에 하나를 뜻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훈이의 치료 중에서 남은 과정이 화기를 빼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허준의 침술이 자신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유도진이 입을 열었다.

“그러시죠.”

허준이 그 모습에 살짝 놀랐다.

유도진 선생님의 성격 상, 한참 설득을 해야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허락해 줄 줄이야.

그 의외의 모습에 허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진료.

첫 번째 환자는 최서윤이었다.

원장실 문이 열리며 최서윤이 들어왔고

허준의 눈에는 진행도가 나타났다.

* 진행도 : 99%

완치가 코앞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주말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죠?”

“네. 말씀하신 대로 관리 잘하고 있어요.”

“일단 볼까요?”

허준이 최서윤의 손을 돌려가며 엄지 손가락과 검지 중지를 여러각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드퀘르뱅병을 진단하는 방법을 행했음에도 그녀의 평온한 표정을 보니, 통증은 없는 듯 하다.

이어서 진맥.

맥도 박자에 맞춰서 훌륭하게 잘 뛰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그녀의 자세였다.

허준의 앞에 앉은 그녀는 더 이상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았다.

눈에는 총기가 돌고, 피부도 화사하며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어떤가요?”

“아주 좋네요. 오늘도 추나랑 간단하게 침 몇 방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알겠어요. 준비 할게요.”

허준한의원에서 가장 많은 추나를 받은 그녀였기에,

이제는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두둑-

가벼온 소리와 함께,

「퀘스트 ‘피아노의 숲’을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7321

허준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녀의 치료가 끝난 것이었다.

그렇게 치료실에서 침까지 맞고 난뒤에, 허준이 데스크에 부탁하여 최서윤을 한 번 더 원장실로 불렀다.

“최서윤 님.”

“네?”

“제가 아까 깜빡하고 말을 안했는데.”

“네...”

“이제 치시죠. 피아노.”

허준의 말에 최서윤이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여태 다녔던 곳 어디에서도 피아노를 다시 치라는 말을 한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을까요?”

“네. 그렇다고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고, 천천히 조금씩 늘려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최서윤이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제가 다음 진료가 있어서.”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손을 바라보며 원장실을 나서는 최서윤.

그런 그녀의 귓가에 낯익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다 똑같은 곡이겠지만, 최서윤은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가수가 자신의 노래가 길거리에서 들려오면 기분이 좋듯, 최서윤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때, 최서윤의 귀에 사람들의 말이 들려왔다.

“피아노 소리가 아주 좋네?”

“몰랐어? 요즘에 피아노 곡으로 틀어 주더라고.”

“그래? 유도진 선생님 취향인가 본데?”

“그렇지. 허준 선생은 피아노랑은 좀 안 어울리지.”

동시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그런 최서윤을 김예진 선생이 다가와 안아 주었다.

“축하드려요. 저 사실은 예전에 팬이었어요. 작은 거인 최서윤 님.”

안겨있던 최서윤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한 번씩 쳐다봤으나, 그게 전부였다.

허준한의원에서는 간혹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최서윤의 치료가 끝났다.

*   *   *

“성호야 오고 있는 거지?”

“네. 어머니. 지금 가는 중이에요.”

“빨리 들어와. 오늘 비오니까 운전 조심하고.”

“걱정 마세요. 여기만 지나면 금방 가요.”

그렇게 통화를 마친 남자의 눈에 파란 신호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엑셀을 밟았고, 차는 부드럽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앞 차량의 브레이크등을 보고 멈춰선다.

가다서다의 반복.

강남에서 이어진 이 도로의 퇴근길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만 통과하면 금방인데.’

그렇다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자니, 종종 외근을 나가야 하는 업종 상 차량은 필수였다.

게다가 퇴근 시간의 지하철 또한 만만히 볼 것은 절대 아니었으니.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흔들렸다.

“아우- 씨, 뭐야!?”

백미러를 보니, 뒤 차가 비상등을 깜빡인다.

이어서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다가와 창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괜, 괜찮으세요?”

“아니, 운전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정중히 사과하는 남자의 모습에 순간 치밀어 올랐던 화가 다시 내려왔다.

김성호가 몸 여기저기를 움직여 보니 딱히 아프거나 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좀 전에 있었던 충격에 놀라서 화를 잘 내지 않던 성격임에도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온 정도.

그거야 뭐 사고가 났으니 당연하겠지.

“어디 아프시면, 구급차 불러 드릴까요?”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놀라셨을 텐데...”

몸이 멀쩡한 것을 확인한 김성호가 운전석에서 내려 차를 확인했다.

뒷 범퍼에 약간의 기스가 보였지만, 지금 사고로 난 건지 아니면 원래 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한 마디로, 딱히 수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는 것.

하지만, 교통사고는 당일보다는 시간이 지나서 아픈 경우가 많다고 했으니.

“차는 괜찮은 것 같은데. 명함 한 장 주시겠어요? 혹시, 모르니 병원 가서 검사는 해봐야 할 것 같으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김성호가 그것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 들르고 나서 연락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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