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돈 좀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 >
59화. 돈 좀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
딸랑-
현관문에 매달려 있는 작은 종소리와 함께,
데스크에 있던 김예진이 들어온 환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초진 환자분이시네.’
그녀도 근무하면서 김정우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지언정,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본 적은 없었으니,
“처음 오셨죠? 먼저 오신 환자분들이 있으셔서 조금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물론, 당연히 기다려야죠.”
김정우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답했다.
“그럼 이것 좀 적어 주세요.”
그 말에 김정우가 펜을 꺼내 들고 각 항목을 살피고는 하나씩 적은 뒤에 데스크로 건넸다.
‘김정우?’
김예진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며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 선생님?”
대기실에 앉아서 안마기를 쓰고 있던 환자가 반갑다는 듯이 다가오며 말을 거는 게 아닌가.
그녀는 정우한의원에 다니던 단골이었으니,
“정우 선생님. 맞으시네~ 잘 지내셨죠?”
“나야 늘 잘 지내지. 자네도 별일 없지?”
“그럼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혹시, 유도진 선생님 만나러 오신 건가요?”
“뭐, 겸사겸사 나와봤지. 나도 보약이나 한 재 지어 먹으려고.”
* * *
허준이 치료실에서 침을 놓고 타이머를 맞췄다.
그러고 다시 원장실로 향하는데,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렇게 데스크로 나가보니,
“어?”
김정우 선생님이 와계시는 것이 아닌가.
이러니 당연히 웅성거릴 수밖에.
“선생님?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
“어쩐 일이긴? 자네가 지난번에 언제든지 들리라고 하지 않았나?”
“아, 제가 그랬죠.”
허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설마 진짜로 오실 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야, 오히려 잘됐어.’
“아직 환자들이 있어서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지. 자네는 가서 자네일 보게. 나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테니.”
김정우의 대답에 허준이 사람들을 둘러봤다.
하긴, 예전에 정우한의원에 다니셨던 분들은 엄청 반가우실 거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그렇게 대기실 환자가 원장실과 부원장실을 번갈아가면서 들어가고,
마지막 진료인 김정우가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실로 들어가실게요. 김정우 선생님.”
“참, 선생님들이 친절하네. 자네들이 허준한의원의 기둥이구만.”
“과찬이세요.”
김 선생이 원장실 문을 열자, 김정우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에 허준이 내심 긴장했다.
“이리로 앉으시죠.”
김정우가 자리에 앉으며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허준한의원 안에는 오늘 처음 들어와 보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네.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딱, 옛날 정우한의원에서 느끼던 그 분위기야.”
“감사합니다.”
“이건 추나 치료할 때 쓰는 침대인가 보지?”
“네. 저도 배운지는 얼마 안 됐는데, 환자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허준이 최서윤을 비롯한 몇몇 환자를 떠올리며 답했다.
“참, 나때에도 이런 것이 진즉에 있었더라면, 더 많은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충분히 하셨죠.”
“은퇴했으니, 그 칭찬은 고맙게 받겠네.”
김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런데, 저기 뒤에 걸려있는 그림은 무언가?”
“아, 저것은 제가 완치한 첫 화상 환자가 저에게 선물로 준 것입니다.”
“어쩐지, 그럼 저 액자에 있는 사진도?”
“네. 비슷한 겁니다. 출근해서 볼 때마다 왠지 훈장처럼 느껴져서요.”
“좋군, 좋아. 덕분에 원장실 분위기도 한결 따듯한거 같아.”
“그런데, 선생님. 차트를 보니 보약을 맞추러 오셨다는데, 혹시 어디가 안 좋으신 건가요?”
“그냥 화환 대신에 매출이나 조금 올려주려고 온 거지. 보약이나 맞춰주게. 아주 비싼 거로.”
“알겠습니다. 그럼 진맥부터 잡아볼게요.”
김정우가 천천히 손목을 내밀었다.
허준이 심호흡과 함께 집중하며 입원실 공사를 구경 했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이상한 맥이 느껴졌었지.’
그저 착각일 수도 있다.
워낙 찰나의 순간에 느껴진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악수를 나눈 뒤에 본 선생님의 손이 떨리던 증상은 절대로 착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도진 선생님의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
허준이 김정우 선생님이 내민 오른손의 맥을 짚었다.
오른손은 오장 중에서 비장과 폐의 맥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맥에 힘이 없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묘한 맥박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어서 왼손. 간장과 심장 그리고 신장.
그중에서 간장의 맥은 특히나 약하다.
허준에게 있어서 이런 맥은 매우 낯익었다.
의료봉사를 다니며 흔하게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허로증의 증상.’
허로증.
즉, 몸이 쇠진한 증상이란 뜻이다.
역시나 이쪽에서도 그때의 맥은 찾을 수 없네.
허준이 눈을 뜨면서 손을 뗐다
그러자 김정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떤가?”
과연 어떤 진단을 내릴지 궁금하다는 듯한 물음이었다.
“간이 균형을 무너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
김정우가 살짝 놀란 얼굴로 허준을 바라봤다.
근골격계나 외상에서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진맥도 수준급이었기 때문이다.
허준이 정답을 맞추자,
웬지 모르게 즐거워 지기 시작한 김정우였다.
“그래. 그럼 처방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직은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해보게, 지금 이 순간에 자네와 나는 환자와 한의사의 관계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손 떨림은 언제부터 있으셨던 겁니까?”
김정우의 눈이 커졌다.
손이 떨린다는 것을 언제 눈치챈 것인가.
“자네도 알고 있었나?”
“네. 지난번에 입원실에서 악수했을 때요.”
“그렇군... 그럼, 뭐 더 숨길 필요는 없겠지. 맨 처음은 아마 자네가 의료봉사를 하러 다닌다고 할 때쯤이었을 거야.”
“혹시, 다른 증상은 없으셨던 건가요?”
“다른 증상이라면 뭐 검사결과라던가 이런것들 말하는 건가?”
현대사회에서 노인에 손떨림이 합쳐지면 가장 먼저 의심되는 질병은 파킨슨병으로, 뇌와 관련 있는 질환으로 신경세포가 죽어가면서 나타나는 퇴행성 질환이다.
“다행히 그것은 아니라고 하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이런저런 가정을 많이 세워봤으나, 딱히 해당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네. 참, 웃기지. 그렇게 환자의 질환은 잘 치료해왔는데 막상 본인 질환조차 진단하지 못하다니 말이야.”
“아닙니다. 선생님. 당연한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당장 스스로 진맥만 잡더라도 환자를 잡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게 되니까요.”
“그것도 그렇군.”
허준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자신의 생각을 전부 말해 볼 생각이었다.
자신이 언제 정우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일단, 제 진단은 허로증같습니다.”
“허로증?”
“네. 선생님도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그동안 쉬지 않고 몸에 무리가 오랜 기간 가다 보니 이리된 것 같습니다.”
“자네 생각보다 진단도 제법 하는구먼. 나도 같은 생각이었네. 그래서 한의원을 그만둔 것도 있지. 덕분에 요즘은 집에서 푹 쉬고 있는 중이고.”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래 말해보게. 또 뭐가 있는가?”
“비장입니다.”
“비장?”
“네. 지난번에 아주 잠깐이었지만, 처음 느껴보는 묘한 맥을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간에서 시작된 허증이 비장까지 간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대맥이라고 생각 하고 이습니다.”
“대맥이라...”
김정우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장육부의 관계에서 간장이 허하면 심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 악영향을 받은 심장이 다시 비장으로 비장은 이어서 폐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폐는 신장으로와 다시 간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중에서 대맥은 비장의 원기가 상했을 때 발생하며, 잘 뛰는 맥이 비정상적으로 교대하여 뛴다고 하여 붙어진 맥이다.
“그럼, 자네 생각은?”
“침으로 하는 보사는 한계가 있을 테니, 저는 역순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장의 허증을 치료하기 침을 사용하고, 뜸으로는 심장에 탕약으로는 녹용대보탕으로 몸 전체를 보하며 마지막으로 가장 문제인 간허에는-”
“공진단?”
허준이 생각하던 답을 김정우가 웃으며 대신 말했다.
둘이 서로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같아졌기 때문이리라.
그 모습에 허준이 웃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돈 좀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
* * *
“후~”
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화사한 얼굴에 더 이상 어두운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은 최은정.
그런 그녀의 가슴에는 숫자가 달려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같은 처지의, 치열한 서류심사를 뚫고 면접장까지 올라온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최은정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고는 무언가를 조용히 혼자 되뇌었다.
그 반대편에 앉아있는 사람도 중얼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최은정도 마찬가지로 떨렸으나,
‘이건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자신을 옥죄고 있던 정신병에서 해방되니, 이런 것쯤은 이제 그렇게 큰 스트레스도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어있었는 지도 몰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하게 좋은 회사에 취직할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계획이 무너진 그순간부터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으니까.
허준 선생님에게 치료받으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세상일은 계획한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래. 선생님 말씀이 맞아. 내가 천재도 아니고,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잖아.’
“다음 면접자분들”
“네!”
최은정이 대답하며 자신 있게 일어섰다.
그 모습에 같이 기다리던 면접자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리고 며칠 뒤,
[축하드립니다. 최은정 님께서는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일정은 추후에 유선으로 개별통보될 예정입니다.···]
최은정은 스마트폰을 침대에 집어 던지며 환호했다.
‘이거 진짜로 다이어트 한약 사러 가야겠는걸?’
회사 나가기 전에 뱃살 좀 빼야지.
최은정이 먹고 있던 치킨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 * *
“와 성님들. 오다가 봤는데 저 앞에 말이에요.”
“으이~ 우리도 봤어.”
“와~ 장난 아니던데. 뭐 들어온다고 저렇게 공사를 한데요?”
“내가 슬쩍 가서 물어봤더니, 정형외과가 들어온댜.”
“정형외과요?”
“응.”
“그게 뭔데요.”
“뭐야? 자네 정형외과 한번도 안가봤어?”
“네. 여기동네에는 정형외과가 없어가지고요.”
그 말에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 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정형외과가 뭐냐면, 우리 오십견이랑 허리 아프고 목 아프고 발목 아프고 그럴 때 가는 병원이여.”
“어? 그럼 한의원이랑 똑같네요?”
“아니지~ 똑같지는 않지. 거기는 막 그거 있잖아. 막 사진 같은 거 뭐더라.”
“엑스레이 말하는 거요?”
“그래. 엑스레이. 막 그런 거로 찍어서 다 보여준다니까? 내 관절이 어떤지.”
“그래도 여기 허준네랑 태용네 한의원 있는데, 우리가 정형외과에 갈 일이 있겠어요?”
“그것도 그렇네.”
모여있던 시장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해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다. 한의원에서 근골격계를 치료하는 범위와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보는 범위가 상당 부분 겹쳐있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소리. 자네들이 정형외과를 안 가봐서 그렇지 한번 갔다 오면 아주 시원해. 내 말 믿고 나중에 한번 가보라니까?”
“비싸지 않아요?”
“한의원보다 쪼끔 더 비싸지, 그래도 느낌이 다르다니까?”
“그런데, 성님 그 이야기는 들었수? 엊그제부터 정우 선생님이 허준한의원에 계신다던데?”
“뭐? 그 정우한의원의 김정우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