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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57화 (58/230)

< 57화. 그래서 올라간 건가 >

57화. 그래서 올라간 건가

“엄마!”

“왜? 아들~”

이민혁이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던 엄마를 불렀다.

“여기 있던 한약 어디 갔어?”

“어디 가긴? 다 네 형한테 보냈지.”

“전부?”

“그럼, 다 보내지. 집에다 남겨서 뭐해? 먹을 사람이 없는데. 왜?”

“아, 아니야. 아까 보니까 빈 상자길래.”

“그냥 내버려 둬. 엄마가 내일 분리수거 할 때 치울게.”

대답을 들은 이민혁이 재빨리 생각을 끝냈다.

형은 재수한답시고 기숙학원의 겨울방학 캠프에 들어가 있는 상황.

‘그렇다고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면 등짝이나 맞겠지.’

학원 땡땡이치고 PC 방에 놀러 갔다가 엄마에게 몇 번 걸린 적이 있었으니.

사달라고 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

직접 찾아가서 구해보는 수밖에.

‘이번 달 용돈이 얼마 남았더라.’

*   *   *

원장실에서 눈을 감았던 허준이 살며시 눈을 떴다.

동시에 손목을 잡고 있던 허준의 손도 함께 떨어졌다.

그리고,

「퀘스트 ‘수수께끼의 여인’을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4219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 너머에는 퀘스트의 주인공인 최은정이 허준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처음 한의원을 찾아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는데,

음침하고 어두웠던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마, 지금 모습만 보면 과거에 공황장애를 앓았었다고 하면 놀랄 사람이 꽤 많을 거다.

“최은정 님.”

“네?”

최은정이 재빠르게 답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수수께끼부터 직접 치료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제는 허준의 말이라면 껌뻑 죽게 된 그녀였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은...?”

되묻는 최은정을 향해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하랴.

아마,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그녀의 말대로 요즘에는 공황장애의 증상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굳이 찾아온 이유는, 아마 완전히 끝났다는 확인을 받기 위해서였을 터.

그것을 알고 있던 허준이었기에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최은정이 두 손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드디어 지긋지긋했던 악몽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정말 끔찍했었는데...”

과거가 떠오른 탓일까.

최은정이 울먹인다.

허준은 공황장애를 직접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어줍잖게 그녀를 위로하는 대신에 농담을 건넸다.

“그래서 다이어트 한약은 언제쯤 지어 가실 건가요?”

“선생님. 저 요즘에 운동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그 말에 울먹이던 최은정은 온데간데없고 허준을 노려보며 답했다.

그걸로 족했다.

“농담이에요. 앞으로 운동 열심히 하시고,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가능하면 한의원에는 찾아오시지 마시고요.”

“당연하죠.”

그렇게 최은정 환자의 치료이자, 허준의 첫 정신 질환 치료가 끝이 났다.

허준이 잠시 정리를 하고 올라온 차트를 확인했다.

보자. 이름이 이민혁. 10대에 초진.

진료 란은 비어있네.

‘설마, 또 스무고개 내고 그러지는 않겠지.’

허준이 몸서리를 쳤다.

어쨌든 일단, 진료를 봐 볼까.

허준이 OK사인을 보내자,

원장실 문이 열리며 앳돼 보이는 소년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리로 와서 앉으세요.”

허준이 의자로 걸어오는 이민혁을 살펴보았다.

앳돼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학생인데?

길에서 교복을 입은 친구들한테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머리 스타일과 안경 그리고 지금 입고 있는 패딩까지.

누가 봐도 영락없는 학생의 모습이었다.

초진 때에는 보통 학생이 아프면 보호자가 같이 오기 마련인데, 이렇게 혼자 오다니.

굉장히 드문 경우다.

아니, 애초에 학생이 혼자 찾아온 적은 처음이었다.

어찌 됐든 진료를 시작해 볼까.

딱히 어디가 아파 보이지는 않는데.

학생이 한의원을 주로 찾는 이유는 발목이나 손목 같은 곳을 삐어서 부었을 때가 가장 많았기에 걸음 걸이나 움직임에서 딱히 통증을 느끼는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선입견을 가질 수는 없는 법.

허준이 진지하게 진료에 임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저, 그게...”

이민혁이 말을 더듬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내용물이 없는 찢어진 탕약 포장지였다.

한의원 로고가 없는 평범한 무늬의 포장지였는데,

“혹시, 이거 여기서 살 수 있는 거 맞죠?”

그것을 꺼내며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스무고개가 아니라, 탐정이었나.

이민혁이 건넨 포장지를 받아든 허준이 그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최근 허준한의원에서 나가는 탕약에는 허준한의원이라는 로고가 박혀 있었지만, 지금 손에 들려있는 이 포장지는 2층에서부터 얼마 전까지 사용하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개원할 때, 당연히 잘 될 줄 알고 넉넉하게 주문했던 과거의 유물이기도 했다.

“그런 것 같네요. 냄새를 맡아보니, 총명탕 인 것 같고요.”

허준의 대답에 이민혁이 눈을 반짝였다.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했다는 듯이 말이다.

“그 총명탕을 사고 싶은데, 얼마에요?”

초진의 10대의 학생이 홀로 와서 총명탕 가격을 묻는다니,

굉장히 이상했다.

애초에 고3으로 올라가는 학생이었다면 부모님이 함께했을 테고, 이미 처방을 받아간 환자였다면 초진으로 올라오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일단, 진료를 보고 체질에 따라 맞춰야 해서 가격이 조금 달라지는데,”

“그, 그런가요?”

이민혁이 인터넷에서 찾아본 총명탕 가격을 떠올렸다.

지금 자신이 가진 용돈으로는 살 수 없다.

허준이 앞에서 눈을 굴리는 이민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몇 학년이에요? 진료신청서를 보니 10대라고 적혀 있던데, 고3 올라가는 학생 같지는 않아 보여서요.”

“아... 저 이제 고1 올라가요.”

“고1이요?”

“네.”

“그럼 이 총명탕은 어디서 난 거예요?”

“그건 제 형건데, 제가 필요해서 몇 개 먹었거든요.”

“형 거를요? 왜요?”

“지금, 제 삶에서 진짜 중요한 시기거든요. 그래서 꼭 필요해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제 갓 고1이 된 학생이 삶을 들먹이며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선생님. 진짜 죄송한데, 이거 낱개로는 살 수 없을까요?”

이민혁이 창피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에 허준이 답했다.

“그보다는, 우선 뭐에다 쓰는 것인지부터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아까 말했듯이 체질상 안 맞을 때는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제가 지금 중요한 승급전을 앞두고 있거든요. 2승 2패에요. 한 판만 이기면 챌린저 승급인데.”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허준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듣는 승급전과 챌린저라는 단어.

그것만으로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공보의 시절에 허준도 친구들과 같이 종종 즐기던 게임이었으니까 말이다.

잠깐, 그런데 챌린저라고?

실제로는 처음 보네.

무려 10년 가까이 세계 최고라 꼽히는 게임.

챌린저는 그 안에서 상위 300등에게까지만 주어지는 등급이다.

‘생각도 못 했어.’

총명탕을 먹고 게임을 할 줄이야.

그런데,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게임도 저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면 사실상 스포츠와 다름없어서 E 스포츠라 불리지 않던가.

즉, 스포츠 선수들이 컨디션 관리를 위해 보약을 먹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이참에 여러 컨셉으로 탕약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민혁이 자신을 바라보는 허준과 눈을 마주치자 시선을 피했다.

이상하게 이 방안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허준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이민혁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 줘봐요.”

“손이요?”

“말했듯이, 총명탕을 처방하려면 진료를 먼저 받아야 하거든요.”

“그럼...?”

“진료비는 당연히 받을 거고, 탕약은 실버가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세요. 꼭 승급에 성공해서 챌린저 되라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민혁이 고개를 숙이며 힘차게 답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단어가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허준을 바라봤다.

‘선생님. 그런데, 실버는 좀..’

*   *   *

허준한의원의 입원실은 1인실 3개와 2인실 4개로 이루어져 있다.

총 11명이 입원할 수 있는 시설.

2층에 있던 허준한의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으니, 이것도 최대한 구조를 뽑아서 만든 것이었다.

원래는 2인실로만 6개를 뽑으려 했었는데, 허준의 이야기를 들은 김 선생의 말에 그나마 1인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원장님. 그러다가 여자 환자가 입원하면 어떻게 하시게요.”

당장에는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이 동상에 맞춰져 있었지만, 다른 질환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여성 환자가 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기에 허준이 이를 받아들였다.

현재 입원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는 총 4명.

그들이 한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입원하면서 같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정든 탓이었다.

게다가 같은 증상으로 입원을 했으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동병상련의 처지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일 퇴원하신다고요?”

“네. 유도진 선생님께서 퇴원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냉동 창고에서 일하다가 손끝에 동상을 입은 환자로, 다른 환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보여주었다.

완전히 깨끗하게 회복된 모습.

“오늘 병원에 갔다 왔는데, 아무 이상이 없대요.”

“좋겠다.”

“부럽네요.”

“유도진 선생님도 장난 아니시네. 나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요.”

“걱정하지 말아요. 보니까 좀 있으면 퇴원하시겠는데요?”

손을 흔들었던 남자가 맞은편에 앉아있는 환자의 발가락을 보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거짓말인 줄 알고 찾아 왔는데, 이렇게 나을 줄이야.”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다 퇴원하면 언제 다 같이 모여서 간단하게 밥이라도 한 끼 하죠.”

“좋죠.”

그때, 당직으로 근무하던 도영철이 나타났다.

“내일 퇴원하신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인수인계를 받을 때, 전해 들은 이야기다.

입원실 근무의 첫 퇴원 환자. 도영철에게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전부 선생님들 덕분이죠. 도 선생님도 마찬가지고요.”

“아니에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에이~ 선생님께서 저희들한테 이렇게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잖아요. 처음에는 완전 군대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건 그렇네요. 그러니 다른 분들도 빨리 나으시려면 오늘도 일찍 주무셔야죠. 잘 자고 잘 먹어야 한다고 선생님들이 그러시지 않았어요?”

“물론이죠. 안 그래도 딱 선생님 오실 타이밍이라서 이제 슬슬 자려고요.”

그렇게 환자들이 각자의 병상으로 향했다.

도영철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환자들이 자신에게 감사하다고 하니, 조금은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다음 날 점심.

“선생님들, 식사하세요.”

김 선생이 도시락 4개를 들고 나타났다.

2층의 입원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입원실을 운영하면서 허준한의원 식구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심시간이었다.

입원실 규모가 작았기에 따로 주방이나 식당을 만들지는 않았고, 이렇게 업체와 계약을 맺어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었다.

허준이 김 선생과 윤 선생에게 물었다.

“유도진 선생님은요?”

“아, 환자분과 잠깐 이야기 중이세요. 그분 있잖아요 첫 퇴원 환자 분이요.”

“아~ 그분 오늘이었죠?”

“네.”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도진 선생님이 맡은 동상 환자 중에서 첫 환자였기 때문이다.

마침, 부원장실 문이 열리고 환하게 웃는 환자와 그 뒤에 유도진 선생이 나타나자,

김 선생과 윤 선생이 박수로 퇴원을 축하했다.

그리고 같이 박수를 치던 허준의 눈앞에는,

「포인트를 20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얻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허준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대체 뭐 때문에?’

그때, 허준의 눈이 유도진에게로 향했다.

첫 퇴원 환자라는 말과 유도진 선생님이 맡은 첫 동상 환자라는 말이 합쳐졌다.

이는 유도진 선생님이 맡은 첫 동상 환자의 완치를 뜻했고,

그 치료하는 법을 알려준 것이 본인이었으니.

설마, 그래서 올라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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