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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50화 (51/230)

< 50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주로 하시는 일인데 >

50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주로 하시는 일인데

“또에요?”

“네.”

막 전화를 끊은 김예진이 윤 선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윤 선생이 이제는 질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 진료 내내 걸려온 문의 전화만 해도 수십 통이었으니 당연했다.

물론, 그만큼 환자들의 심정은 절박하다는 뜻이겠지만.

“확실히 우리 원장님이 대단하긴 대단하시네요. 오늘 초진 분들 보니까, 서울뿐 아니라 경기도에서도 찾아오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그랬다. 아직은 지방에서까지 올라온 사람은 없었지만, 동네가 아닌 서울 경기권에서 동상 치료를 위해 환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요?”

“네.”

그 말을 들은 김예진이 윤다희에게 비장하게 말했다.

여태까지 이곳에서 겪은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아마도 며칠 동안 꽤 바빠질 것 같으니 미리 각오하세요. 윤 쌤.”

“걱정하지 마세요.”

윤 선생도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라, 자신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앞의 대기실에는 동상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환자들 몇 명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때문에, 평소처럼 느긋하게 한의원을 찾아온 단골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도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시간에 맞춰서 온 것인데도 이렇게 대기실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금 막,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온 단골 환자가 들어와 윤 선생에게 손짓으로 조용히 불렀다.

그만큼 윤 선생이 단골들과의 관계에서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뜻이리라.

그녀는 윤 선생에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윤 선생.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여?”

“그게... 어머님도 발가락 총각 아시죠?”

모를 리가 있나.

이미 시장 골목에서 소문이 파다했는데.

“아~ 그 청년? 다 나아서 이제 집으로 돌아갔다면서?”

“맞아요.”

“그런데 그 청년은 왜?”

“지금 기다리는 분들이 멀리서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말이야. 내가 오늘 시장에서 또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는데, 덕순이 있잖어 덕순이 알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건 말이죠···.”

그 말에 윤 선생이 또 신나게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 봤을 때부터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느니, 김 선생님이 병원까지 업고서 뛰쳐나갔다느니 등등의 소문들.

기다리는 환자들의 귀가 쫑긋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허준 홀로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면 기다리는 환자들의 진료를 전부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테지만, 지금의 허준한의원에서는 다행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두 선생님이 있었고,

특히 부원장으로 있는 유도진 선생님 때문이었다.

허준과 혜민서 멤버들은 서로 아낌없이 치료법과 경험을 공유했으니, 이미 실력이 출중한 유도진 선생님 또한 동상환자의 진료에 무리가 없었다.

허준이 진료를 받으러 원장실로 들어온 환자와 인사를 나누며 말했다.

“진맥 먼저 잡아볼게요.”

“진맥이요?”

“네.”

허준이 눈을 감고 환자의 맥을 잡았다.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이 감각이 익숙해진 상황.

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동상환자였어도 이렇게 굳이 진맥을 잡는 이유는 장기들의 균형을 맞춰 빠르게 회복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 좋은 능력을 아낄 필요는 없겠지.

‘위장이 약한 체질이니, 빠른 회복을 위해서라면 위의 균형을 맞춰줘야 할 터.’

허준의 머릿속에 위장에 도움이 되는 혈 자리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손목 아랫부분의 양곡혈과 발목의 해계혈을 보해주고, 발목 옆의 임읍혈과 중지 발가락 위의 함곡혈을 사해준다.

동상 환부는 아시혈 위주로 보하여 재생을 도우면 되겠군.

이렇게 또 한 명의 치료계획이 완성되었다.

“침과 뜸으로 치료를 할 겁니다. 아마 침은 꽤 아플 텐데, 꾹 참고 이겨내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식사하실 때는 자극적인 음식을 가능하면 드시지 마시고, 최대한 꼭꼭 씹어서 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치료실로 가시죠.”

박상준의 경우에는 워낙 그 정도가 심한 데다가, 아침 진료시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치료가 시작되었으니 원장실에서 직접 침과 뜸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참,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진료 시작 전에 동상환자로부터 진료에 대한 동의서를 미리 받는 것이었다.

이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처하기 위해서 유도진 선생님과 의견을 조율한 결과였다.

그렇게 치료실.

허준이 침을 꺼내들고 보를 위한 양곡에 먼저 침을 찔렀다.

보는 말 그대로 혈 자리에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한 치료. 따라서 허준은 찔러넣은 침을 잡아 흔들고 다시 찔러넣기를 반복했다.

염전과 제삽.

쉽게말해 비틀고 다시 찔러넣는다는 뜻.

보를 위해 9번을 비틀어 다시 찔러넣었다.

허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손끝에서 환자의 손목에서 움찔거림이 느껴진다.

‘좋아. 이곳은 됐어.’

그렇게 발목의 해계열까지.

그리고 기운을 빼는 사에서는 굳이 여러 번 자극을 넣지 않았다.

경락의 흐름에 반대로 침을 놓기만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리라.

이어서 직접적인 환부인 엄지발가락으로 침이들어갔다.

박상준 씨와 비교하면 상태는 심각하지 않았다. 발가락 중에서도 한마디 정도만 검게 괴사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겉은 검게 변해있었으나, 안쪽에서는 아직 살아있다는 듯한 촉감이 침을 타고 전해져 온다.

‘다행이다. 금방 회복되겠어.’

물론, 이것은 허준의 생각이었고,

침을 맞은 환자는.

“흐윽...”

고통에 흐느껴 울었다.

저것까지는 어쩔 수 없겠지.

*   *   *

최인호가 오랜만에 시장골목을 거닐었다.

그의 눈에 이제는 시장 골목 한쪽의 텅 비어 버린 점포들이 들어왔다.

과거 정우한의원이 있던 곳부터, 시장의 입구까지.

이제는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왼편의 가게들.

기분이 묘했다.

시원함과 섭섭함 그리고 조금이나마 부끄러움까지 합쳐진 오묘한 감정.

그렇게 조금 걸어서 도착한 곳은 허준한의원이었다.

진료가 끝난 시각임에도 여전히 불은 켜져 있고, 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싸늘한 초겨울 공기를 타고 한약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참, 저 친구도 여전하네.’

그렇게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전보다 훨씬 강한 탕약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어서 오세요. 최 대표님.”

“오랜만이야.”

허준이 최인호에게 인사하며 가볍게 악수했다.

“자넨 여전히 탕약을 내리고 있구만?”

“그렇죠 뭐. 그리고 이젠 혼자가 아니에요.”

그런 둘의 뒤에 탕약실 문 앞에서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입니다. 최인호 선생님.”

“자네도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

“감사합니다. 탕약을 달이던 게 있어서 저는 이만.”

유도진이 그대로 탕약실로 들어갔다.

최인호가 그런 유도진의 뒷모습을 보더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저 친구 성격은 여전하네? 그보다, 우리는 이제 슬슬 올라가 볼까?”

“네. 바로 가시죠.”

둘은 이전에 허준한의원이 있던 자리로 계단을 올랐다.

그곳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허준이 생각한 입원실의 모습이었다.

“오... 밖에서 보기에는 썩 괜찮네.”

“감사합니다. 모두 대표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이 정도쯤이야 언제든 해 줄 수 있지. 딱히 돈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자네가 먼저 연락해 올 줄은 몰랐거든.”

허준이 입원실을 만들고자 생각한 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바로 최인호 대표였다.

당장 혜민서 멤버중에서는 입원실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입원실로 체인을 늘렸다고 한 최인호 대표야말로 전문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때문에, 허준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연락했고 최인호도 그런 허준에게 흔쾌히 도움을 주기로 했다.

차마 말하지 못한 아들 일도 있었고, 정우 선생님과의 대화 이후부터는 어느새 친한 후배라 할만큼의 거리감으로 좁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층의 허준한의원 입원실 입성.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최인호가 날카로운 눈으로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인테리어는 뭐 이 정도면 괜찮군. 그런데 자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입원실을 만드는 건가? 혹시 이거 때문인가?”

최인호가 엉큼하게 웃으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물었다.

요즘에 생기는 입원실이 있는 한의원들은 대부분 교통사고 환자를 받기 위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입원 환자들한테 인기 있는 한의원은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는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허준의 성격을 아는 최인호로서는 당연히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아, 제가 동상환자를 치료했는데.”

“그건, 들어서 알고 있네. 정말 잘했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치료를 하는 중에 보니까, 하루에 2번씩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효과가 가장 좋더라고요.”

“그럼, 설마 일반 환자를 받으려고 입원실을 만들었다고?”

“네. 아무래도 그러는 게 편할 것 같아서요.”

“허...”

최인호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허준을 바라봤다.

난 또 유도진 선생을 등에 업고 날개짓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는데.

“자네 욕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저 돈 좋아하는데요?”

“그래? 그럼 됐고.”

허준의 빠른 대답에 최인호가 헛기침을 했다.

“입원실 운영에 관해서 묻고 싶은 거겠지? 일단 병실이 8개니까 법적으로 간호사가 필요하네. 개인적으로는 남자간호사를 추천하네. 그리고 당직으로 근무를 할 선생님과···”

*   *   *

허준은 딱히 홍보를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장에 있는 위치상 온라인 홍보를 해봐야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고, 그 뒤에는 홍보비가 비싸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홍보할 필요도 없이 환자들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더욱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초진환자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으니, 가끔은 이런 환자도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처음 오셨으면 이것 좀 적어 주시겠어요?”

눈썰미 좋은 김예진이 초진환자를 알아보고 상냥하게 물었다.

그녀는 살짝 마른 체형과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의원에 오는 것 치고는 나이가 젊은 편이라 더욱 알아보기 쉬웠다.

그녀가 종이에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주소를 간단하게 적었고,

환부를 적어야 하는 공간은 빈칸으로 남겨둔 채 데스크로 건넸다.

“최은정 님. 어디가 아프셔서 오신 건지, 간단하게나마 적어 주시겠어요?”

“저도 그걸 잘 몰라서 왔거든요.”

“아... 그럼, 일단 접수해 드릴게요.”

“네.”

그렇게 최은정이 대기실에 앉아 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슬쩍슬쩍 바라보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환자들이 조용히 기다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용하다더니, 그냥 평범하네.’

굳이 이 동네가 아니어도 한의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

줄이라도 서서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최은정의 이름이 불리고, 허준이 있는 원장실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최은정 님.”

“안녕하세요.”

“어디가 안좋아서 오셨나요?”

그 물음에 최은정이 대답대신에 손을 내밀었다.

허준이 최은정을 바라봤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보면 간혹 겪을 수 있는 상황으로, 지금의 이 행동은 진맥을 잡아서 직접 맞춰 보라는 그런 의미다.

보통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주로 하시는 일인데.

그런 그녀의 옆에는,

<수수께끼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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