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벽에 걸어둬야 겠네 >
48화. 벽에 걸어둬야 겠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김 원장이 허준에게 말했다.
둘 앞에는 카이로 베드 위에 누워있는 유도진과 추나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는 박 원장이 있었다.
“자- 여기서 숨 들이마시고 깊게 내쉬고~”
허준이 김 원장에게 답했다.
“아직 완치된 것도 아닌데요.”
“아니지, 이 사람아. 감각이 다 살아났으면 완치까지는 이제 시간 문제지.”
김 원장이 자기 일이라도 된 양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박상준의 이야기였다.
“다 됐습니다. 유도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박 원장님.”
“별말씀을요. 이러려고 모이는 건데요.”
추나를 끝낸 박 원장이 허준가 김 원장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 그런데, 진짜 완치되면 이제 한의원 대박 나는 거 아니에요?”
“글쎄요? 아영이 완치 이후에 화상 환자가 찾아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많이 오지는 않았거든요.”
“그래도 그때랑 다르지 않을까요?”
“일리가 있어. 아니, 우리 박 원장이 아주 정확해.”
조용히 듣던 김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다른 스포츠보다 인기가 없는 등산이라도, 에베레스트의 봉우리 중 하나인 초오유에 오른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야구로 따지면 메이저리그요, 축구로 따지면 EPL 진출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으니.
지금이야 박상준 씨의 상태 때문에 쉬쉬하느라 신문 한구석에 한 줄, 또는 인터넷 뉴스에 잠깐 지나가듯이 나 있는 상태겠지만, 완치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터.
당장, 치료가 어렵다는 난치병을 치료했다는 소문만 나더라도 전국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어디 한두 군데던가.
더해서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인간승리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하게 될 테고, 그때에는 아영이 때와 다르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유도진도 정우한의원 때의 일을 떠올리며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우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보약을 맞추기 위해 종종 지방에서까지 올라오지 않았던가.
“아마 환자들이 꽤 몰려올 거야.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말이야.”
허준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이미 잠깐이나마 방송의 힘을 맛봤기 때문이리라.
‘진료도 진료인데..’
가장 큰 문제는 찾아온 환자들의 거취에 관한 문제였다.
박상준 씨야 운 좋게도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친척 집이 있었으니, 그곳에서 편하게 내원할 수 있겠지만, 다른 환자들이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타이밍에 맞춰서 입원실을 준비해야 겠어.’
동상의 치료가 하루아침에 끝나는 경우는 없으니, 아무래도 입원실의 필요성을 느낀 허준이었다.
마침, 허준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매달 지출되고 있는 월세가 떠올랐다.
본래 허준한의원이 있던 2층의 자리.
지금 한의원과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같은 건물의 2층이니, 입원실로 쓰기에는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네. 수고하셨어요 두 원장님들.”
“수고는 무슨,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
“수고하세요 원장님들.”
그렇게 태용한의원의 두 원장이 떠나가고,
허준이 유도진을 불렀다.
“유도진 선생님.”
“네?”
“잠시, 할 말이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아무래도 유도진 선생님의 진료에 탕약은 필수 시죠?”
“네. 안그래도 저도 그말을 하려고 하던 참입니다.”
“그런가요?”
“정우한의원에서부터 오시던 단골 환자들이 이제 슬슬 찾아올 때가 되었거든요.”
“마침, 잘됐네요.”
“그래서 말인데, 탕약실의 구조를 조금 바꿨으면 합니다.”
“구조를요?”
“네. 정우한의원에서는 스테인리스로 된 탕약기를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허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대체 뭘로 탕약을 달이시겠다는 거지?
둘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탕약실로 향했다.
“일단 이쪽에 선반 하나에 2구짜리 가스레인지를 하나만 준비해주시면 됩니다.”
“가스레인지요?”
“예. 정우한의원에서부터 쓰던 옹기탕약기로 달일 생각이거든요.”
옹기탕약기라니.
허준도 말로는 들어본 적이 있는 방식이었다.
많은 약재가 기철. 즉, 쇠를 꺼리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금속에 닿으면 그 성질이 변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반 탕약기에 비해서 옹기로 탕약을 달이면, 효과가 훨씬 극대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옹기로 된 자동 옹기탕약기도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긴 했는데,
‘전부 직접 달이겠다고?’
그야말로 지극정성을 들이겠다는 말과 같은 셈이었다.
가스레인지로 인해 옛날보다야 훨씬 편하겠지만, 스테인리스 전기 탕약기에 비하면 5시간 동안 확인을 불 조절과 물 조절을 직접 해가면서 달여야 했으니까 말이다.
‘저게 정우한의원의 비법이었을지도.’
어쨌든, 탕약을 내리는 탕전 업무를 말하기도 전에 직접 참여하시겠다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그럼, 나도 당연히 그 정도는 해드려야겠지.
“알겠습니다.”
* * *
살다가 보면 가끔은 완벽하게 준비를 해도 어긋나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 아침 허준이 그러했다.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출근했는데, 지하철의 오류로 중간에 멈춰 선 것이었다.
그것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철교 위에서.
‘보기에는 좋다만..’
진료시간에 늦을 것 같으니 아무래도 미리 연락해야겠어.
허준이 스마트폰을 들고 한의원에 전화를 걸었다.
“네. 허준한의원입니다.”
“여보세요. 김 선생님?”
“어? 원장님?”
“네. 제가 지금 출근 중에 사정이 생겨서 조금 늦을 것 같거든요.”
“아~ 그러세요?”
“네. 유도진 선생님은 오셨죠?”
“그럼요. 아침 일찍 오시잖아요.”
유도진 선생님이 있는 게 정말 다행이였다.
“제가 최대한 빨리 갈건데, 그래도 조금 늦을 거 같거든요. 일단 환자분들 오시면 유도진 선생님께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정말 별일 없으신 거 맞죠?”
“네. 곧 뵐게요.”
그 시각.
진료가 시작된 허준한의원.
지훈이 엄마가 지훈이 손을잡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여기가 맞나?’
오면서 보아하니, 듬성듬성 이가빠지듯이 비어있는 시장골목에다가 한의원의 간판 또한 썩 못미더워 보였다.
무엇보다 지훈이의 아토피 때문에 다녀본 한의원이 한두군데던가.
다녀본 곳 중에서도 이곳의 시설은 가장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진료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김지훈이라는 이름이 불렸다.
“이리로 따라 오실게요.”
데스크를 지나서 빙 둘러도착한 진료실.
그곳에는 유도진 선생이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토피 때문에 오셨다고요.”
“네.”
“어디 쪽이시죠?”
“지훈아 팔 걷어서 선생님 보여드려.”
지훈이도 이런 진료에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게 옷을 걷어서 팔이 접히는 부위를 보여줬다.
붉게 올라와 있는 피부와 그곳을 긁어서 여기저기 딱지가 져 있는 모습.
유도진이 그것을 본 뒤,
“진맥 먼저 잡아볼게요.”
지훈이가 내민 손목을 진맥했다.
정우한의원에서도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아토피 환자가 찾아온 경우도 몇 번 있었고, 그 환자들이 완치되어 가는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유도진이었다.
허준 원장이 뛰어난 침술로 근골격에서는 뛰어나나 이런 면역질환의 경우에는 유도진도 자신이 있는 분야.
‘허열이 많고, 폐와 대장이 약한 체질이군.’
아토피란 것도 결국은 염증.
즉, 면역력 때문에 생기는 질환이다.
허즉보 실즉사.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낸다는 원리.
유도진이 머릿속으로 침으로 열독을 빼내고, 탕약으로 몸을 보하여 면역력을 높이는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이곳까지 찾아 왔다면, 이미 여러 군데를 돌고 온 것일 터.
그런데도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어머님. 다른 병원에 다닐 때에도 효과를 보지 못했나요?”
“아, 네. 잠깐 효과가 있는 듯 싶더니, 다시 올라오더라고요.”
“그렇군요.”
만성이라는 뜻이다.
어린 나이에 면역력이 이렇게까지 떨어졌을 때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인스턴트 식품은 가능하면 피해주십시오.”
“네. 알고 있습니다.”
“잠은 규칙적으로 자야합니다.”
“그것도 정해서 하고 있어요.”
“잘때에는 스마트폰도 뺏어야 합니다.”
“아...”
무언가 놓쳤다는 듯이 지훈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끔 해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처방은 침이랑, 탕약으로 내리겠습니다. 탕약은 내일 모레 오셔서 찾아가시면 됩니다. 치료실로 가시죠.”
그렇게 지훈이의 자침이 끝날 때쯤,
허준이 허겁지겁 한의원으로 들어왔다.
‘아 15분이나 늦었네.’
허준을 알아본 단골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야, 허준 선생 지각한겨? 한 번도 이런 적 없더니 별일이네?”
“죄송합니다. 지하철이 한강 위에서 멈춰서요.”
그 이야기에 대기실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훈이 엄마가 귀를 쫑긋거렸다.
‘저분이 허준 선생님이라고?’
허준한의원이라고 소개를 받았으니, 당연히 좀 전에 지훈이의 진료를 본 선생님이 허준일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준에게 다가가 말했다.
“허준 선생님?”
“네?”
“제가 소개로 선생님을 찾아 왔는데요···”
허준이 자초지종을 대충 듣고는 걱정말라는 듯이 답했다.
어쩌면 유도진 선생님이 아토피에는 자신보다 더 잘 맞을수도 있다는 판단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유도진 선생님도 이 시장에서 용하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시거든요.”
“그래요?”
“네. 아마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허준의 대답을 들은 지훈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중에 처방에 대해서 한 번 물어봐야겠어.’
* * *
박상준이 친척 집에서 머무른 지도 어언 4주째.
이제는 친구보다 허준한의원이 있는 시장 골목 사람들의 얼굴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어? 오늘도 한의원 가나봐?”
“네.”
“거의 다 나은거 아니야?”
“선생님이 며칠만 더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럼 그 말대로 하는 게 맞겠지. 그래서 이제 다 나으면 다시 내려갈 건가?”
“그래야죠.”
“이제 정들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있으면 내려가겠어.”
시장 사람들과 그렇게 인사를 하며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진 한약 냄새와 함께 허준한의원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셨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누나들처럼 느껴지는 두 선생님과
“오늘은 일찍 왔네?”
허준 선생님. 그리고 그 옆에서 고개만 꾸벅이는 유도진 선생님까지.
허준이 그런 박상준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이게 뭔가요?”
“열어봐요.”
쇼핑백을 열자 그안에는 운동화가 담긴 박스가 들어있었다.
그것을 본 박상준이 허준을 바라봤다.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선생님...”
“그동안 진짜 고생 많았어요. 엄청 아팠을 텐데.”
“아니에요. 선생님이 수고 많이 하셨죠. 이렇게 멀쩡해 질 줄 몰랐거든요. 정말 감사해요.”
“다행히 울지는 않네요?”
“그럼요.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우는 거라고 선생님이 침놓을 때마다 말해주셨잖아요.”
박상준이 코를 훌쩍이고는 답했다.
“원장님. 우리 다같이 사진 한 번 찍을까요? 기념으로.”
“그게 좋겠네요.”
윤 선생의 제안에 시작된 촬영.
환하게 웃는 박상준과 허준 그리고 두 선생 그리고 미소를 지을까 말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유도진 선생까지.
‘이것도 벽에 걸어둬야 겠네.’
그렇게 박상준의 치료가 끝이 났다.
박상준이 한의원을 나서며 다시 산에 올라갈 수 있는 꿈을 꾸게 되었고, 동시에 또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산에 오르면서 봤던 동상에 걸린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허준은,
「퀘스트 ‘꿈을 잃은 등산가’을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3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6317
「‘진맥 Lv. 0’에 5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진맥 Lv. 0’이 ‘진맥 Lv. 1’이 되었습니다.」
[진맥 Lv. 1]
- 진맥의 정확도를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