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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42화 (43/230)

42화. 제가 한번 보도록 하죠

42화. 제가 한번 보도록 하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갑작스러운 유도진의 제안에 당황한 허준이 눈을 끔벅였다.

며칠간 같이 일하며 유도진 선생님의 성격이 소문대로 꽤 괴팍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허준이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

아니지. 이건 오히려 좋은 기회다.

성격은 조금 이상해도 실력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베테랑 한의사가 아니시던가.

그런 유도진 선생님이 혜민서에 들어오는 것은 인원과 진료의 수준. 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허준이 유도진을 향해 왼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요. 저희야 언제든지 환영이죠. 잘 부탁드립니다. 유도진 선생님.”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허준의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손을 마주 잡은 유도진의 눈이 빛났다.

그때, 딸랑딸랑하는 작은 종소리와 함께 한의원 문이 열리며 두 남자가 들어왔다.

태용한의원의 김태식 원장과 박용준 원장이었다.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김 원장과 박 원장.

그중 김 원장이,

“어? 유도진 선생님?”

둘은 구면이었던 터라, 서로를 알아봤다.

아무래도 허준이 이곳에 개원하기 이전부터 있던 한의원에서 근무했었으니, 친하지는 않아도 서로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는 듯했다.

“김 원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야 유도진 선생. 허준한의원으로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직도 퇴근을 안 했을 줄은 몰랐어.”

한의사들끼리는 같은 대학교의 선후배가 아니어도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편이었기에, 김 원장이 자연스럽게 유도진 선생에게 말을 놓았다.

“개인적인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

김태식 원장이 유도진의 오른손에 있는 침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늦었지만 개원 축하드립니다.”

“땡큐. 참 이쪽은 박 원장이라고. 우리 한의원에서 나와 같이 일하는 친구야.”

“안녕하세요. 유도진 선생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박용준 이라고 합니다.”

“유도진입니다. 그런데, 두 원장님께서 이 시간에 여기에는 무슨 일로?”

유도진의 물음에 박 원장이 대신 답했다.

“아~ 저희가 혜민서 팀으로 활동하면서 같이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이렇게 가끔 모여서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도 하거든요.”

최 대표가 시작한 경희한의원과 허준한의원이 교류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최 대표가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모여서 추나부터, 환자들의 치료 사례에 관한 공부 그리고 여러 이벤트까지 함께하는 중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허준이 가볍게 손뼉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마침 잘 됐네요. 원장님들, 오늘부터 저희와 함께 하시게 된 유도진 선생님입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세요.”

“네? 정말로요?”

김 원장과 박 원장이 허준을 바라보았다.

특히 김 원장의 눈이 커진 것은 그만큼 유도진 선생의 성격에 대해서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네. 앞으로 같이 활동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와... 잘 됐네요. 그럼 오늘부터 함께 하시는 건가요?”

박 원장이 유도진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최근에 허준에 대한 소문이 시장골목에서 오르락내리락 했다면,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유도진 선생의 차지가 아니었던가.

그만큼, 살아있는 지식이 풍부하다는 뜻이었다.

유도진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환영합니다. 유도진 선생님.”

“자네가 이런 일에 흥미가 있는 줄은 몰랐어. 어쨌든 나도 환영이야.”

“감사합니다.”

그렇게, 허준이 탕약기에 탕약을 올려두고 원장실에 모인 네 한의사.

가볍게 몸을 풀고 허준의 추나가 시작되었다.

사용하지 않은 칼은 결국 녹이 스는 법.

최인호 대표에게 며칠을 배웠지만, 허준한의원으로 추나 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틈틈이 연습하는 중이었다,

오늘의 짝꿍은 김 원장.

김 원장이 내심 기대하는 눈으로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허준이 김 원장의 목을 잡고 살살 흔들더니,

뚝-

“허윽.”

카이로 베드 위에 누운 김 원장의 입에서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시원함이 퍼져나갔다.

유도진이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전통적인 치료를 우선시하는 정우한의원에서는 추나 치료를 하지 않았기에 유도진도 당연히 추나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배워보고 싶군.’

“어우~ 시원하시겠네. 허준 선생님 예전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은데요?”

유도진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박 원장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도 이미 맛본 적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때, 허준한의원 문에 달려있는 종이 딸랑이며 한 명의 인물이 더 들어왔다.

“이허준 선생 있나?”

익숙한 목소리의 등장.

경희한의원의 최인호 대표였다.

*   *   *

최인호의 아들 최호진이 수능을 보고 난 뒤에 가져온 가채점을 시작했다.

이는 같은 스터디그룹에 있는 친구들과 비슷한 시간에 끝났으니, 서로의 점수에 대해 서도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역시나 공부를 잘하던 재윤이와 영수는 몇 문제 틀리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도 평소보다 조금 더 잘 나온 듯했다.

물론, 본인의 성적 또한 생각보다 좋게 나왔다.

‘총명탕 때문인가?’

한동안 반에서 불었던 열풍의 주인공.

스터디그룹내에 있는 친구들 대부분이 같은 한의원에서 총명탕을 사다 먹었으니 의심할 여지는 있었으나, 그런 생각은 잠시 뿐.

여태 공부한 시간이 얼마던가.

만약 도움이 되었다고 치면 아주 약간의 도움은 되었겠지.

애초에 이 스터디그룹에 있는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상위권 학생들이었기에, 컨디션과 시험문제 그리고 찍은 문제의 운 등 복합적인 요소가 너무 많았다.

아버지가 한의사인 최호진은 한약을 먹는다고 공부 못하던 사람의 점수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마법 같은 일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그런 한약이 있다면 자신의 아빠가 눈에 불을 켜고서라도 그것을 찾으러 다녔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최호진이 기분 좋게 이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렸고,

“여보! 호진이가 해냈어!!”

고3 어머니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의 남편도.

치이이이익-

덕분에, 숯불 위에 올라간 고기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고기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다섯 명의 한의사.

허준을 비롯해 오늘 새로 온 유도진 선생님을 포함한 혜민서 식구들과 최인호 대표였다.

허준네가 찾아온 곳은 순철이네라는 정육식당으로, 지금의 허준한의원이 있던 자리에서 과거에 정육점을 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가장 연장자인 최인호가 앉아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부담 갖지 말고 많이들 먹어. 내가 언젠가 자네들에게 고기 한번 사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온 거니까 말이야.”

최인호의 입가가 씰룩이며 미소를 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이허준 선생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밥이나 한 끼 사주려 들렸던 거였는데.

이게 웬걸.

막상 허준한의원으로 와보니 김 선생과 박 선생 그리고 오랜만에 본 유도진 선생까지 있는 것이 아닌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대표님!”

불판위에서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고기들.

그때,

“주문하신 새우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제가 더 고맙죠. 선생님들이 이렇게 단체로 찾아와서 팔아주실 줄은 몰랐어요. 참, 이쪽은 특수부위인데 맛보기로 조금씩 넣었습니다. 배부르게 드시라고.”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와 함께, 혜민서의 첫 회식이 끝났다.

“잘 먹었습니다 대표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도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좀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자네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기름칠 좀 했어.”

최인호가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으며 답했다.

그런 최인호를 보며 허준이 물었다.

“참, 대표님. 그래도 의료봉사는 나오실 거죠?”

*   *   *

병원 대기실에 한 남자가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그을린 구릿빛 피부,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성인병과는 거리가 먼 것같이 다부진 체격은 병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나,

휠체어에 앉아 한쪽 발을 감싼 붕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딩동-

21번 박상준 님.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을 인지한 박상준과 그의 어머니 김영심은 자리에서 일어나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는데, 그런 모자의 앞에 진료실에서 걸어 나오는 모녀가 보였다.

“아영아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대.”

“정말?”

“응.”

“만세! 그럼 나 이제 놀이터에 나가서 애들이랑 놀아도 돼?”

“그럼, 당연하지! 오늘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응!”

“뭐 먹고 싶어?”

밝게 웃으며 엄마 손을 잡고 나가는 여자아이.

박상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런 어린아이가 이런데까지 찾아 왔을 줄이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박상준의 감정과는 반대로 휠체어를 미는 김영심의 가슴은 먹먹했다.

이제는 그저 하늘이 도우기를 바랄 뿐이었다.

진료실로 들어선 박상준과 김영심.

두 모자의 얼굴은 어느새 대기실에서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어서오세요 박상준 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떻게든 밝게 인사하는 의사와 반대되는 박상준의 무미건조한 인사.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가 이런 병원을 한두 군데 오간 것이 아니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 한번 볼까요?”

박상준이 휠체어에 앉은 채로, 무미건조한 눈으로 자신의 발에 감긴 깁스를 풀고 살피는 의사를 바라봤다.

의사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박상준에게는 꽤 익숙한 일이 되어있었다.

“이건... 상태가 너무 심각하네요.”

그 뒤에말은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모두가 하는 말이 같았으니까.

“최대한 빨리 날짜를 잡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죠?”

박상준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어디가 다치거나 아플 경우에 세 군데의 병원을 가보라고 하지 않던가.

이미 그 세 번보다 더많이 다녀본 박상준이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잡아 주세요.”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박상준.

그는 이것을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꿈을 위해 도전한 대가.

이렇게 된 것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면 감수할만한 그런 대가였다.

그리고 그 뒤에 서서 이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김영심.

“날짜는 제가 최대한 빨리 잡아 드렸는데, 혹시 시간이 되시면 이쪽에 한번 가보시겠어요?”

“이쪽이라면?”

“한의사 선생님이신데, 혹시 몰라서요. 들어오면서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전에 나간 아이 손가락을 살려낸 분이시거든요.”

박상준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한의사 선생님이 나올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어머니 김영심의 말이 이어졌다.

“거기가 어딘데요?”

*   *   *

그날 저녁.

모두가 퇴근하고 홀로 탕약을 달이던 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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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3000이 넘게 모인 포인트.

지금 당장 추나의 효과를 상승시킬 수 있겠지만, 허준한의원을 찾는 환자 중에 추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정우한의원이 침과 뜸 그리고 약으로 치료하는 방식을 고수했던 영향도 있었다.

덕분에 추나 치료는 큰 대로변과 시장 입구가 만나는 구 경희한의원, 즉 지금의 태용한의원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무래도 이 벽을 넘어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 같아.’

이 기묘한 생각이 포인트가 모이면 바로바로 사용하여 효과를 상승시키던 허준의 의지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때, 허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그리고,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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