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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40화 (41/230)

40화. 직접 물어보는 게 어떻겠나

40화. 직접 물어보는 게 어떻겠나

본래 발목을 접질렸을 때는 경락을 통해 치료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군 생활 중인 우진이에게는 썩 어울리는 방법이 아니었다.

하여 허준은 조금 자극이 심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을 택했다.

김우진의 눈이 허준의 손에 들려있는 침으로 향했다.

자신도 모르게 침이 꿀꺽하고 넘어간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용감한 군인이라고 매일 군가를 불러대지만,

형광등의 불빛 아래에서 차갑게 빛나는 금속 앞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허준이 씨익 웃더니,

“좀 아플 거야.”

이어서 한 손으로는 딱딱한 침상 위에 올라간 발을 잡았고, 침을 들고 있는 손이 망설임 없이 침을 놓았다.

눈앞에서 침이 들어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이는데,

‘어?’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발목을 접질릴 때가 훨씬 통증이 컸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따끔한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

찌릿-

이어서 발부터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찌릿함이 위로 올라온다.

자연스럽게 목 뒤가 시원한 느낌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선생님. 짜릿한 것 같습니다.”

“원래 그런 거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왜 그런가 보아하니, 발목에 들어간 침을 그대로 잡고는 빠르게 여러 번 쑤시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마다 짜릿한 느낌이 쭉쭉 솟으며 머리카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 짜릿한 경험에, 김우진이 뭐라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역시, 군인이라서 그런지 아주 용감하네.”

허준이 선수를 쳤다.

그 신기로운 치료 모습에 생활관으로 몰려든 몇 명의 선 후임들.

이전에 진료를 받던 병사들은 대부분 침을 놓고 20분 정도의 시간을 잰 뒤에 뽑은 데 반해 김우진의 경우가 신기할 터.

“우진이는 치료를 다르게 하네?”

“저도 신기해서 구경왔지 말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여러 번 찌르면 더 아픈 거 아니야?”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김우진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당당하게 답했다.

“짜릿할 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오~ 우진이~”

“역시 우리 중대 에이스.”

군대란 곳이 어떤 곳인가.

우습게 보이는 순간부터 새로운 별명이 생겨나는 곳이었으니. 앞으로의 군 생활을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었으리라.

게다가 처음과는 다르게 이어진 침은 짜릿함이 덜하기도 했고.

허준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발목이 아니라 정강이 쪽을 꾹꾹 누르면서 물었다.

“여기는 어때요? 누르면 아픈가요?”

“조금 아픈 것 같습니다.”

계단에서 넘어진다거나, 갑자기 발목을 심하게 꺾인 경우에도 발목 위로 이어진 신경까지 충격이 타고 올라오지만, 김우진 일병처럼 만성이 되어 갈 때도 당연히 이곳이 정상일 리는 없을 터.

그렇게 정강이 쪽도 마찬가지로 침을 놓으며 김우진 일병의 치료가 끝났다.

허준이 알콜솜으로 침을 맞았던 자리를 소독하면서 말을 이었다.

“샤워는 3시간정도 있다 하는게 좋을거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우진이 발목을 살살 움직여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준이 그것을 보고 김우진의 어깨를 찰싹 두드렸다.

“에헤이~ 그렇게 막 움직이면 안 돼요.”

“아... 죄송합니다. 아까보다 통증이 많이 사라져서...”

김우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허준이 옆에 서있는 손 하사를 불렀다.

“손 하사님.”

“네.”

“제가 군 생활을 직접 한 것은 아니라서,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어떤 거 말씀입니까?”

“군대에서 달리기를 자주 하죠?”

“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이렇게 두 번 구보를 뜁니다.”

“그럼, 한 일주일 정도만 김우진 일병을 구보에서 빼주실 수 있을까요?”

“구보에서 말입니까?”

“네. 저 친구가 발목을 접질린 지가 오래돼서 충분히 휴식이 필요하거든요. 달리기 정도만 빼주셔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중대장님께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퀘스트 ‘XX 중대 막사’를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2913

허준이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김우진을 불렀다.

“김우진 일병.”

“일병 김우진.”

“집이 어디예요?”

“서울 XX동입니다.”

“아 잘됐네. 혹시 휴가 나오게 되면 이리로 연락 한 번 주세요. 그때 한 번 더 봐줄 테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가 오히려 감사하죠. 여러분들이 있어서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생활관에 남아있던 군인들의 눈이 반짝였다.

군대에 오고 싶어서 온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막상 와보니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힘들기만 했는데, 저런 말이 들리니 가슴이 벅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모두들 잘 지내요. 아프지 말고.”

허준이 그렇게 손 하사와 함께 중대장실로 향했다.

가져온 쌍화탕은 직접 전달했으니 문제없을 테고, 굳이 다른 생활관을 둘러보지 않아도 중대장실에 모여있는 선생님들을 보고 의료봉사가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료가 끝났다는 것을 보고받은 박대현 대위가 허준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저희도 이런곳까지 와서 진료를 보게되어 기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시죠. 들어오실 때와 마찬가지로 제 차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허준이 모여있는 혜민서 팀을 둘러보며 말했다.

“선생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오늘 좋은 경험 했네요. 이거 종종 이렇게 와도 괜찮겠는걸요?”

“그러게요. 어린 친구들이 나라 지킨다고 하다가 다치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김 원장과 박 원장의 얼굴이 훤했다.

먼 곳까지 왔지만, 보람찼을뿐더러 군대라는 특성상 진료를 보는 데에 있어서 한결 편했기 때문이리라.

“자, 그럼 이만 돌아가죠.”

그렇게 허준과 일행이 탄 차가 박 대위 차량과 함께 부대를 벗어났다.

지나가는 차를 향해서 병사들이 경례했고, 그 모습을 본 허준과 일행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말 보람찬 하루네요.”

*   *   *

“김우진 일병님 기상입니다.”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김우진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경계근무를 나갈 시간이어서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인 것이었지만.

그렇게 자리에 앉아 미리 준비해둔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평소처럼 전투화를 신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어?’

오른쪽 발목에서 느껴지던 시큰했던 감각이 많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놀란 김우진이 발목을 살살 움직여 보았다.

진짜로 시큰거림이 줄어들어 있었다.

매일 파스를 바르고 붙여도 효과가 별로 없었는데, 평소와 달라진 것이라면 어제 왔다간 한의사 선생님 뿐이었다.

아참, 선생님이 이렇게 돌리지 말라고 하셨지.

문득, 자신의 어깨를 찰싹이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몸으로 직접 느껴지는 차이에, 이전까지 한의학에 대한 불신으로 일관해 오던 김우진의 머릿속에서 허준은 어느새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김우진이 그대로 천천히 전투화를 신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가볍다.’

대체 이전까지 어떻게 걸어다녔던 것인지 모를정도로 오른발이 가벼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한마디로 현재의 느낌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묵직하고 시큰거리던 발목이 가볍게 느껴진 탓이었다.

이 변화에 김우진의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절대 무리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한발자국씩 내딛었다.

어차피 구보도 열외 된 상황.

조금 천천히 걸었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행정반에서 사수인 이 병장을 만나서 경계근무를 나가니,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병장이 김우진을 보며 말했다.

“발은 좀 괜찮냐?”

“괜찮습니다.”

“다행이네. 이왕 구보 열외 된 거 내가 애들한테 말해둘 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 다녀.”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의 장.

2시간가량 두 사람이 서 있는 경계근무였으니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물론, 때로는 안 좋은 쪽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우진아.”

“일병 김우진.”

전역할 때 된 병장들이 늘 그렇듯, 허무맹랑한 이야기나 장래희망 아니면 버킷리스트를 말하기 마련이었는데,

“내가 원래 침, 보약 이런거 잘 안믿었거든? 예전에 말했잖아 나 보약 잘못 먹고 어릴 때 개고생했다고.”

“기억납니다.”

“근데, 어제 침 맞아보니까 이건 또 느낌이 색다르더라고. 신기하단 말이지. 그냥 얇은 바늘로 찌르는 거랑 별반 다름없는데, 너 알지? 나 일병 때 허리 삐끗해서 지금까지 맨날 파스 바르고 다니는 거.”

“네. 그래서 휴가 때마다 병원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근데 지금 일어날 때 뭐랄까 느낌이 달라졌다고 할까? 넌 안 그래?”

이는 김우진도 마찬가지였으니.

“저도 비슷합니다.”

“그치? 신기하지? 이래서 사람들이 한의원을 다니나 싶네.”

이렇듯 허준이 다녀간 부대 내에서 몇몇 사람들이 한의학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군대 또한 소문이 빨랐으니.

전방부대 안에서 쓰러진 일병이 침을 맞고 벌떡 일어났더라 같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   *   *

휴일을 맞은 유도진은 아침 일찍부터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침에 대한 연구 사례부터 논문 그리고 옛날부터 이어져 온 책까지.

그러더니 어느샌가 손에 침을 쥐고는,

두루마리 휴지를 꺼내와 천천히 찌르기를 반복했다.

‘이 느낌이 아닌데.’

대체 이허준 선생은 어떻게 그런 침술을 얻은 걸까.

유도진의 근원적인 의문.

그렇게 점심시간쯤 되자, 스마트폰이 울리며 연락이 왔다.

김정우 선생님이셨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그래, 유도진 선생. 잘 지내지? 소식은 들었어. 허준한의원으로 갔다며?”

“네. 어차피 출근하던 길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전세 기간이 아직 남아서 조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마트폰 너머로 대답을 들은 김정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선생님.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허, 자네는 이제 은퇴한 사람까지 괴롭히려는구먼. 그래. 말해보게.”

“제가 며칠간 이허준 선생과 같이 일하다 보니, 조금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뭐가 이해가 안 되는데?”

“본래 한의학이란 오장육부의 건강에서 시작하는 학문이지 않습니까.”

유도진이 말한 것은 한의학의 원론에 해당하는 이론이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일단은 오장육부가 건강해야 하고, 어딘가 병이 생기면 오장육부 중에서 균형이 깨졌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판단하는 이론이다.

때문에, 유도진은 보통 환자에게 침과 뜸 약침보다는 탕약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것이 모든 치료의 기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김정우가 답했다.

“왜, 이허준 선생이 환자들에게 한약을 권하지 않아서 그러는 건가?”

“네.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치료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려면 당연히 약재를 사용해 오장육부를 보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닙니까.”

“흠. 자네, 허준한의원에 간 진짜 이유가 뭔가? 내가 아는 유도진 선생이라면 전세 기간이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갈 사람은 아니네만.”

“사실은... 이허준 선생에게 침을 맞았습니다.”

“어떻던가?”

“꼭, 선생님께 맞는 것 같더군요.”

“그럼, 자네와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야...”

유도진이 말을 잇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이끌린 게지. 자네에게 없는 것을 이허준 선생이 가지고 있으니까. 이러지 말고 자네가 직접 물어보는 게 어떻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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