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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37화 (38/230)

37화. 대체 뭐지

37화. 대체 뭐지

SNS의 세상은 생각보다 넓다.

그래서 SNS 셀럽이라는 SNS상의 유명인이 생겨날 정도며, 그들이 가지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 추천받은 다이어트 한약 복용 1일 차. 무게 변화 없음.

- 다이어트 한약 복용 2일 차. 100g 정도 줄어든 듯?

- 다이어트 한약 3일 차 식욕이 조금 줄어든 것 같기도...

···

- 다이어트 한약 복용 15일 차 1.7킬로 빠짐. 대박. 나 어제 케이크도 먹었는데.

김예진의 친구 이소연의 SNS에 올린 내용이었다.

물론, 이런 내용의 광고는 SNS 세상에서는 흔하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광고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소연이 몸무게를 찍어 올린 사진에 달린 댓글들을 바라보며 다이어트 한약을 주-욱 들이켰다.

맛있다고는 절대 할 수 없는 맛이지만, 살이 빠지는데 맛이 중요하리.

그렇게 다이어트 한약을 원샷한 이소연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위로 바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그냥 알려주는 것은 재미없으니.

# 허준한의원

“허준한의원이래. 이거 어딨는 거야?”

“몰라, 검색해보니 몇 군데 있던데?”

“여기 중에 대체 어디야?”

이렇게 퍼져나간 정보로 몇몇 사람들이 허준한의원을 찾기 시작했다.

SNS의 사진으로 얻을 수 있는 단서는 로고가 없는 포장지와 허준한의원이란 이름 그리고 수도권이라는 점.

그렇게 몇몇 사람들이 허준한의원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다이어트 한약 맞추러 오셨다고요?”

“네. SNS에서 보니까 여기 한약이 효과가 좋다더라고요. 그래서 검색하고 또 검색해서 여기까지 찾아왔죠.”

언제 SNS에 퍼진 거지?

따로 홍보한 적은 없는데.

허준이 눈앞에 앉은 환자를 보았다.

다이어트 한약만으로는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할 것 같군.

아무리 다이어트 한약의 효과가 좋다고 한들, 살이 빠지는 기본원리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만약 그 원리를 무시할 만큼 강하게 약을 쓴다면 그건 그 순간부터 약이 아니라 독일 터.

그런데도 찾아온 사람들 대부분은 더욱 강력한 효과를 원했다.

허준은 진맥과 문진을 통해 최대한 그녀들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탕약을 처방했다.

그날 진료 마감 이후.

주문이 들어온 다이어트 한약을 달이면서 허준은 이력서들을 살피고 있었다.

정우한의원으로 인해 몰려든 환자에다가 다이어트 한약을 맞추러 온 환자까지 더해졌으니 어제보다 더욱 녹초가 된 허준이었다.

‘일단 무조건 빨리 뽑자.’

여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

그러나 지금은 물불 가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괜찮은 사람을 뽑아서 무조건 면접을 보자고 연락부터 해야겠다.

이름 : 한지혜

K 한의대 졸업.

XX한의원 1년.

음, 나쁘지 않네.

일단 킵해두고.

이름 : 김대훈

S 한의대 졸업.

XX한의원 1년

XX한의원 1년

대훈한의원 2년

이분이 경력이 훨씬 좋네.

그런데, 대훈한의원이라니. 개원하셨다 돌아오신 건가.

왠지 모르게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 허준이었다.

···

그렇게

몇몇 지원자들에게 연락을 보내고 하루를 마감했다.

*   *   *

불이 꺼진 정우한의원 한쪽에서 마지막 환자가 침을 맞고 있었다.

침을 놓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는 그 흔한 웃음이나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침에 집중할 뿐이었다.

“됐습니다.”

이어서 차갑게 말하는 한의사.

정우한의원의 부원장 유도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가 끝나고, 유도진이 김정우 원장이 있는 원장실로 향했다.

방 안에 있는 짐을 하나둘 챙기고 있는 김정우.

유도진도 오늘이 정우한의원의 마지막 진료 날이라는 것을 알기에 김정우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 마지막 진료 끝났습니다.”

“마지막까지 자네가 고생이 많구먼.”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역시 유도진 선생이야.”

김정우가 그런 유도진을 보며 애틋한 눈빛을 보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됐네. 자네 짐 챙기기도 바쁠 텐데. 중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내일 업체가 와서 가져다주기로 했어.”

말을 하는 김정우가 원장실을 한 바퀴 둘러보니 한의원을 하면서 벌어졌던 온갖 일들과 환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참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

그런 김정우 원장의 눈이 마지막으로 유도진을 향했다.

“유 선생도 그동안 정말로 수고 많았어. 우리가 같이 일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던가?”

“네. 선생님이 고생 많으셨죠.”

“고생은 무슨.”

“저야말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정우한의원에 오는 환자들 사이에서는 유도진 선생을 김정우 선생의 제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친구 겸손하기는. 알려준다고 전부 알아듣는 사람이 세상에 흔한 줄 아나? 다 자네가 열심히 한 결과야.”

“아닙니다.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자네 정도 실력이면 아마 어디를 가더라도 환자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 거네.”

김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우한의원을 거쳐 간 선생 중에서 유도진은 손에 꼽을만한 재능을 가진 선생이었다.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배우려 노력하고, 진료에 집중하는 모습은 김정우의 마음을 열기에 충분했다.

그 덕에 5년 동안 부원장으로 일하며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지식을 흡수해 나가더니, 이제는 자신이 맡고 있었던 환자들 대부분을 넘길만한 수준의 한의사가 되어있었다.

다만, 유일하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도진의 성격이었다.

그의 말투에서 알 수 있듯이 환자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차가운 성격이라는 것이다.

뭐,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차차 좋아지겠지.

사람이 완벽할 수 없기도 하고.

“아쉽습니다. 전 아직 선생님에게 배울 것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진맥에 대해서는 아직도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물어오는 유도진의 질문에 김정우가 웃으며 답했다.

“이 사람, 이거 내가 자네의 열정은 높게 평가하네만, 진맥이란 것이 어디 하루이틀가지고 될 일인가?”

“그렇긴 합니다만.”

“더군다나 요즘엔 나 때와는 달라서 상황이 많이 복잡해지지 않았나. 고혈압 환자는 혈압약을 먹고 오기도 하고, 때로는 영양보조제나 각종 약으로 인해 변수가 워낙 많으니까 말이야. 그러니, 제대로 된 진맥을 하기 위해서는 나 때보다 더욱 많은 경험이 필요할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서 갈 곳은 정했나?”

“일단은 조금 쉬면서 찾아볼 생각입니다.”

“음... 좋은 선택이야. 쉬는 것도 좋지. 자네도 그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지 않았나.”

“예. 그래서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자네 먼저 퇴근하게. 나는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아서.”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참, 자네 그동안 고생한 건 따로 보냈으니 확인해보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우한의원을 나선 유도진.

지난 5년간 출퇴근하며 정들었던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 유도진의 눈에 불 켜진 허준한의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할머니들이 이리로 많이 가셨다던데.

*   *   *

다음 날.

정우한의원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잘 다녔어~”

“그러게 이제 정우 선생 없어져서 어디로 다녀야 하나.”

“이젠 허준네 아니면 경희네 가야지 뭐.”

한마디씩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유도진이 멍하니 정우한의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젠 정말 끝이네.’

시원함과 섭섭함이 동시에 올라왔다.

아무리 차가운 성격을 가진 유도진이라 할지라도 5년의 시간이 담긴 장소는 평범한 장소가 아닐 수밖에.

그렇게 정우한의원이 사라지고 유도진이 허준한의원을 지나쳐가는데,

허준한의원 문이 열리며 정우한의원에 다니시던 할머니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안녕하세요.”

“유 선생? 유 선생이 웬일이야?”

“오늘 정우한의원에 마지막으로 확인하려고 왔죠.”

“아쉽겠어. 나도 그래. 정우한의원 사라져서 여기로 왔는데, 글쎄 1시간이나 기다리라고 하잖아.”

“이제 10시 좀 넘었는데요?”

“원장이 허준 선생 하나라서 그런지, 아침에는 조금만 늦으면 이렇다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여기서 침을 맞으면 시원한걸.”

이야기를 들은 유도진이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침을 얼마나 잘 놓기에 이렇게 칭찬이 자자한걸까.

“참, 유 선생도 그거 알지? 허준 선생한테 밤에 정우 선생이 찾아갔다는 이야기.”

“그래요?”

“몰랐구나? 여기 소문 쫙 났잖아. 글쎄 그 어린아이 손 고쳤다는 이야기 듣고 정우 선생이 허준 선생을 찾아가서 칭찬을 했다지 뭐야.”

소문은 언제나 와전되는 법.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유도진이 흥미롭다는 듯이 허준한의원을 바라봤다.

언제나 칭찬에 야박하신 김정우 선생님이 칭찬할 정도로 침을 잘 놓는다는 것인가.

이것은 일종의 질투심이자, 의문 그리고 호승심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유도진이 허준한의원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처음이시면 이쪽으로 오셔서 이거 작성해주시겠어요? 죄송한데, 지금 바로 진료는 안 되시고요, 점심시간 지나서 오셔야 해요.”

데스크에서 젊은 선생님이 친절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기실은 이미 만석인 상황.

유도진이 데스크에서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환부는 손가락이라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어디 얼마나 침을 잘 놓나 보자고.

그렇게 1시간이 넘게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12시가 다되어가는 시각.

대기실에는 유도진 혼자 앉아 남아 있었다.

“유도진 님 원장실로 가실게요.”

유도진이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허준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이전에 들어왔던 환자분이 정우한의원의 유 선생이 왔다고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세요. 유 선생님.”

“저를 아시는군요?”

“그럼요. 정우한의원에 다니시던 분들 아니어도 유 선생님 좋아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감사합니다.”

“참,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셔서 오셨죠?”

“네. 제가 쉬질 못하다 보니, 이쪽이 좀...”

“잘 알죠. 저희 한의사들 직업병이잖아요. 잠시 볼까요.”

허준이 자연스럽게 진맥을 잡고,

그뒤에 여러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이어서 손으로 누르는 촉진까지.

유도진이 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진료였다.

“유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손가락 건염같네요. 침으로 치료해 보도록 하죠.”

그렇게 1번 치료실.

허준이 유도진의 손을 베드에 고정시키고, 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손에 감각을 집중한 채, 그대로 유도진의 손가락을 향해 나아갔다.

하나하나 집중하여, 정성스럽게.

“시원섭섭하시겠네요.”

“좀 그렇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당분간은 좀 쉬면서 살펴보려고요.”

“그러시구나. 선생님 같은 분이 한의원에 계셨으면 딱 인데.”

허준의 말에 유도진이 말없이 웃음으로 답했다.

거절한다는 뜻이리라.

“다 됐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허준이 타이머를 맞추고는 원장실로 사라졌다.

이제 곧 면접자들이 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머가 울리고,

김 선생이 유도진의 손가락에서 침을 뽑았는데,

유도진의 눈이 커졌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 오던 손가락 건염이 사라진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침술은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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