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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36화 (37/230)

36화. 부디 좋은 선생님이 오시길

36화. 부디 좋은 선생님이 오시길

커피 대신에 따듯한 쌍화차를 손에 든 김정우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의원에 찾아오는 할매들이 그러더군. 이허준 원장이 침을 그렇게 잘 놓는다고.”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그 할매들이 내 손을 하루 이틀 거쳐 갔겠나.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로 괜찮았다는 이야기겠지. 그래서 맘 편하게 결정할 수 있었어.”

호록-

“탕약도 좋구먼. 그렇게 매일 저녁 홀로 남아서 탕약을 달이더니, 이제는 도가 텄나 보네.”

“감사합니다.”

김정우에게서 탕약에 관한 이야기가 들리자 최인호가 귀를 쫑긋거렸다.

“표정을 보니 자넨 모르고 있었나 보네?”

“아, 네.”

“이 친구가 어느 날부터 해가 떨어지기만 하면 탕약을 달여대더라고, 처음에는 직원들이 달이는 줄 알았지. 그런데 볼 때마다 혼자서 퇴근을 하는 거야. 마치 옛날에 최 원장 자네를 보는 것 같았어.”

최인호도 예전에는 환자들에게 줄 탕약을 전부 직접 달였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지만.

“듣자 하니 요즘에는 자네 두 한의원 사람들끼리 잘 뭉쳐 다니면서 봉사도 다니고, 화기애애하게 지낸다면서? 진료 끝나면 이렇게 종종 모여서 공부도 하고.”

“네. 최 대표님이 제가 추나를 잘 몰라서 알려주고 계시는 중이에요.”

“보기 좋네. 그렇게 서로 도와가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 좀 잘 보살펴주게나. 여기 사람들이 어디로 가겠나? 보나 마나 여기 아니면 경희한의원으로 가지 않겠어.”

김정우가 허준과 최인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잘 좀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자네들이 있어서 맘 편하게 은퇴할 수 있겠어. 내 삶의 반을 함께했던 곳이라 정이 들었나 봐. 그냥 떠나려니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듣고 있던 최인호가 김정우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래. 최 원장. 뭐 할 말이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이 친구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싱겁기는, 쌍화탕 잘 마셨네. 이만 일어나야겠어. 늙으니 말만 많아지는구먼. 참, 이허준 선생. 그렇다고 월세는 밀리면 안 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농담일세.”

그렇게 허준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김정우 원장.

옆에 앉아 있던 최인호도 일어나며 허준에게 말했다.

“알려줄 만한 건 다 알려준 것 같으니, 이제부터는 자네가 경험하고 직접 해봐야겠지.”

“감사합니다. 최 선생님.”

“나도 이만 일어나겠네.”

그렇게 최인호가 약간은 멍한 얼굴로 허준한의원을 나서는데,

문 앞에서 김정우 원장이 최인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김정우 선생님. 왜 아직 안 가시고.”

“최 원장.”

최인호가 김정우와 눈을 마주치자 만감이 교차했다.

지금에야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어렵던 시절에는 시장 사람들이 아프면 직접 달려가서 진료를 봐주기도 하고, 먹고 살기 힘든 사람에게는 진료비 대신에 다른 것도 받던,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존재인 김정우 선생님.

이는 자신이 개원했을 때, 넘어설 수 없는 벽과도 같았으니.

그런 그를 뛰어넘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은퇴한다는 이야기는 진즉에 알고 있었으나, 막상 입으로 직접 전해 듣게 되니 온갖 생각이 겹치는 것이 당연했다.

김정우는 그런 최인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최인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진즉에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마주칠 일이 없어서 말이지. 이제야 해줄 수 있겠군. 자네가 이 시장 골목 식구 중에서 가장 잘된 사람 중 하나인 것은 알고 있지? 하나하나 다른 동네에다가 한의원을 늘렸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내 기분이 다 좋아지더라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떠나가는 선배로서 오지랖 한번 부려보는 건데, 욕심을 조금만 버려보게나. 뭐, 젊을 때 비해서 자네도 지켜야 할 것이 많아졌으니 이해는 하지만, 그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한의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럼, 이만 가보겠네. 기회가 되면 또 보세.”

그렇게 김정우가 몸을 돌려 시장거리로 사라져갔다.

“하하...”

최인호가 그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긴 여운과 함께.

그리고 그 시각 허준은 홀로 남은 원장실에서,

「퀘스트 ‘밀고 당겨라’를 완수하였습니다.」

「‘추나 Lv. 0의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추나 Lv. 0] 필요 포인트 1000

[진맥 Lv. 0] 잠김

···

보유 포인트 : 952

잠금 해제된 추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추나용 베드부터 하나 사야겠네.

*   *   *

다음날.

아침 진료 시작 전의 허준한의원.

“어...? 원장님 그건 뭔가요?”

김 선생이 허준이 들고온 무언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무언가 돌돌 말려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요?”

허준이 돌돌말린 것을 펼치자,

추나라고 적힌 큼지막한 스티커가 나왔다.

“어? 추나도 하시려고요?”

“추나면 그거 말하는 거죠? 저 알아요. 유툽에서 자주 봤어요. ASMR로 그만이거든요 소리가 시원해서.”

김 선생과 윤 선생의 물음에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늘 오후부터 시작하려고요. 점심시간에 맞춰서 추나용 카이로 베드를 설치하러 오기로 했거든요.”

“오~ 원장님 한의원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네요?”

“그럼요. 그러려고 1층으로 내려온 건데.”

“그거 이리로 주세요. 제가 이쁘게 붙여 놓을게요.”

“그래 주시겠어요?”

허준이 김 선생에게 스티커를 건넸다.

그렇게 진료 시작.

월요일이 아님에도 오전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본래 정우한의원에 다니던 환자들이 하나둘 이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허준이 원장실과 치료실을 한번 왕복하면,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잠시 동안의 휴식.

그리고 이어진 진료는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동안 텀없이 반복되었다.

대기실 또한 더욱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 정말 잘하는 거 맞아?”

“그럼, 정우 선생님이 괜찮다 했으니 괜찮은 거 아니겠어?”

“에이~ 그래도 난 젊은 선생은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던데.”

“일단 한번 맞아보고 생각하면 되지 뭘. 벌써 걱정하고 그래?”

“침이 또 잘못 맞으면 몸살 나잖아. 나 저번에 옆 동네에서 한번 맞고 이틀을 앓아누웠다니까?”

···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점심시간은 칼같이 지켜준다는 점이었다.

“휴~ 원장님 오전 진료 끝났어요. 점심 드시러 가시죠.”

“뭐 드실래요?”

“음...”

김 선생이 잠시 고민하더니,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백반집으로 가죠.”

“아, 골목 뒤쪽에 있는 뚝배기집이요?”

“네, 거기 맛있잖아요. 그리고 상황을 보니 오후에도 환자 많을 것 같아서 든든하게 먹어두려고요.”

“가시죠.”

그렇게 뚝배기집.

시장 골목에서 가장 맛이 좋기로 유명한 백반집이었다.

“어?”

앞장서서 들어간 김 선생이 가장 먼저 경희한의원의 두 원장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어, 안녕하세요.”

사람의 입은 같다고, 경희한의원의 두 선생님도 이곳에 점심을 먹으러 왔나 보다.

“김 원장님, 박 원장님.”

“안녕하세요 이허준 선생님. 다 같이 점심 드시러 오신 거예요?”

“네.”

“그럼, 저희랑 같이 드시죠. 5명인데.”

“저희야 좋죠.”

허준이 흔쾌히 동의했다.

하루 이틀 같이 밥 먹은 사이도 아닌데, 따로 밥을 먹자니 그것 또한 모양새가 이상할 터.

그렇게 각자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앞에 앉은 두 선생님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는 걸까.

“거기도 오전에 장난 아니었죠?”

그나마 쌩쌩한 박 원장이 물었다.

“네. 아침부터 많이들 오시더라고요.”

“저희도요. 힘들어 죽을 뻔했어요.”

“그래서 김 원장님이 저러고 계신 거예요?”

“아, 김 원장님은 오전에 쉬지 않고 추나만 계속하셨거든요. 당 떨어져서 그래요. 밥 먹으면 금방 괜찮아지실 거예요.”

대답을 들은 허준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나만 쉬지 않고 계속했다면 당연히 그럴 만하지.

그때, 보글보글 소리와 함께,

펄펄 끓는 찌개를 시작으로 주문한 백반이 빠르게 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맛있게 드십쇼.”

“맛있게 드세요. 선생님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빠른 인사와 함께 두 한의원의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덜컹- 덜컹-

“다 됐습니다.”

카이로 베드를 누르며 테스트해본 기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점심을 먹고 오자마자 딱 알맞게 도착해서 이제 막 설치가 끝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사용하시다가 궁금한 점 있으시거나, 무슨 문제라도 생기시면 언제든 전화해 주세요.”

“이거라도 하나 드시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허준이 쌍화탕을 하나 건넸다.

원장실에서 나가니 김 선생도 스티커를 깔끔하게 붙인 상태였다.

그리고 허준은,

보유 포인트 : 1013

「‘추나 Lv. 0’에 1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추나 Lv. 0’이 ‘추나 Lv. 1’이 되었습니다.」

[추나 Lv. 1]

- 추나의 효능이 미약하게 상승한다.

좋아. 시작해 볼까.

요즘에는 간단한 추나를 맛보기로 서비스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진료를 온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첫 환자.

특별히 아파서 오시기보다는 나온 김에 들려서 침을 맞고 가시는 할머니셨다.

“어라? 이건 뭐야?”

할머니가 갑자기 생긴 카이로 베드에 관심을 보이셨다.

허준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추나요법이라고 제가 손으로 이렇게 누르고 당기고 하는 치료법에 쓰이는 침대에요.”

“아~ 그럼 마사지 같은 건가? 그거 받으면 시원해?”

“한번 받아보시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이쪽으로 누우셔서, 힘 빼시고 이렇게 자세 잡으시고 숨 들이마셨다 내쉬어 주세요. 하나둘,”

허준이 할머니의 호흡을 느낌과 동시에, 손끝으로 감각을 느끼며 적절하게 힘을 사용해 압박했다.

톡-

달걀 껍질에 금이 가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손을 타고 올라왔고,

할머니가 숨을 내쉬었다.

“오~ 이거 좋네?”

“괜찮죠?”

“아주 좋아. 이렇게 시원한 건 정말 오랜만인데.”

“그럼 제대로 한번 받아보시겠어요? 보험 있으시죠?”

“당연하지. 우리 며느리가 보험을 팔아서 내 앞으로 아주 빵빵하게 들어 놨거든.”

“그럼, 보험처리 돼서 얼마 안 나오실 거예요.”

“그래? 그럼 한번 받아보지 뭐.”

*   *   *

추나는 체력소모가 심했다.

허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침은 감각에 집중하는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면, 추나는 감각도 감각이지만 반발력이나 각도 등 신경 쓸 것이 훨씬 많았다.

게다가 힘을 사용해야 했기에 체력에도 부담이 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추나를 할 때마다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5라는 점 정도.

‘이거 이러다가 내가 먼저 쓰러지겠어.’

아무래도 부원장을 구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원장실로 들어온 김 선생의 입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원장님. 퇴근 전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네. 말씀해주세요. 김 선생님.”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아무래도 저희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허준도 동의하는 바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조무사 선생님도 더 필요할까요?”

“아니요. 저희는 둘로도 충분해요, 저희야 어차피 아직 탕약도 안 달여서 괜찮거든요. 오히려 한의사 선생님이 부족해서 오늘 환자분들이 기다리다가 그냥 가신 일도 있거든요.”

허준이 원장실에만 있었기에 몰랐던 사실이었다.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기다리다가 가버리다니, 이건 명백한 한의원의 책임이었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저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알아보도록 하죠.”

“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허준이 원장실에 앉아서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부디 좋은 선생님이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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