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32화 (33/230)

32화. 충분했다

32화. 충분했다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쓴 김명훈이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모자 안으로 귀가 눌려 있었지만, 후드티 덕분에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대파가 2천 원~ 대파가 2천 원~ 어머니 오늘 대파 물 좋아요~”

“자~자~ 어머님들 지금부터 딱 5분간만 세일합니다~ 오늘 들어온 생물이에요~”

누가 봐도 평범한 토요일 시장 골목의 모습.

한쪽에는 몇 군데 듬성듬성 빈 가게가 보이지만, 그 앞에는 옆 가게의 좌판이 펼쳐져 있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 사거리를 지나니, 선배님들이 추천해준 허준한의원이라 적힌 한의원이 나타났다.

김명훈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서 오세요. 처음 오셨죠?”

젊은 선생님이 웃으며 맞이한다.

단번에 처음 온 것을 알아맞히다니 주로 단골들이 많이 다니는 한의원인가 보네.

“네.”

“여기에 성함이랑 전화번호 그리고 아프신 곳을 간단하게 적어주시겠어요?”

선생님의 안내대로 접수를 하고 잠시만 대기실에서 기다려달라는 말에, 김명훈은 대기실에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말 여기가 맞나?’

수술 이후에 나타난 후유증으로 유명하다는 한의원부터 여기저기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한의원까지 꽤 많이 돌아다닌 김명훈이었다.

그중에는 강남에 있는 번지르르한 곳도 있었지만, 이렇게 동네에 있는 작은 한의원도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위화감이 드는 한의원은 처음이었다.

대기실에는 재밌는 이야기라도 하시는지 깔깔거리며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과 그 옆으로 이제 4~5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 하나. 또 한쪽에는 탕약을 들고 무엇이 저리 급한지 바쁘게 나가는 아줌마가 보인다.

게다가 한의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또 이곳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 젊었다.

한마디로 혼란스러운 느낌이라는 뜻이다.

혼자 대기실에 앉아 있다 보면 눈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도 귀는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법.

“권 여사가 요샌 신나서 여기저기 잘 걸어 다녀.”

“그래? 허준 선생한테 고마워해야겠네.”

“아주 사람이 달라졌다니까?”

대충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력은 꽤 괜찮나 보다.

그때, 옆에서 놀던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어디가 아파요?”

“아영아 그렇게 아무한테나 가서 그런 거 물어보면 실례야.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아영이라 불린 아이가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눈빛에 김명훈이 웃으며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인상을 쓰더니 엄마 쪽으로 후다닥 도망갔다.

왠지 모르게 억울한 김명훈이었다.

“김명훈 환자님. 원장실로 들어가시면 되세요~”

이 무안한 상황에서 때마침 불리는 자신의 이름.

김명훈이 헛기침과 함께 원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도 못 한 젊은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당연히 시장 골목에서 침을 잘 놓는다고 하니 나이 드신 선생님이 계실 줄 알았는데, 젊은 허준이 앉아 있으니 김명훈이 느끼는 의심과 위화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김명훈 환자분.”

허준이 원장실로 들어온 김명훈에게 먼저 인사했다.

근래에는 여기저기서 초진환자도 종종 오다 보니, 이제는 꽤 자연스러워진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허리가 안 좋으셔서 오셨다고요?”

“네.”

“어떤 식으로 아프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허준의 물음에 김명훈의 설명이 이어졌다.

설명을 들은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디스크 수술을 이미 받으셨고, 재활도 다 끝났다는 말이네요.”

“네. 그런데 가끔 무리하면 짜릿한 느낌과 함께 다리의 힘이 풀려버리더라고요.”

“혹시, 운동하다가 다치신 건가요?”

“네? 아, 네. 그걸 어떻게...”

허준이 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처음 보는 모양이었지만, 그것이 레슬링을 했을 때 생기는 모양인 것은 알고 있는 허준이었다.

“제가 한때 격투기를 많이 봤거든요. 보통 그라운드 베이스이신 분들이 귀가 그렇게 생겼더라고요.”

“아, 아시는군요. 사실, 제가 유명하지는 않지만, 격투기 선수였거든요.”

“그럼, 지금은 격투기 안 하시는 건가요?”

“이제 은퇴하려고 합니다. 부상도 있고, 나이도 있어서. 그런데, 그냥 이대로 은퇴하기에는 좀 아쉬워서요. 마지막으로 은퇴 시합으로 정리하려고요.”

“그러시군요. 일단, 이리로 엎드려 보시겠어요.”

베드에 누운 김명훈이 입고 있는 후드티셔츠를 살짝 올리자 허리에 디스크 수술을 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는데 아무런 자극이 없다는 듯이 편안한 모양새다.

“평소에는 통증이 없으신가 보네요?”

“네. 평소에는 괜찮은데, 시합 중에 데미지가 누적되면 처음 디스크가 왔을 때처럼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더라고요.”

“병원에서는 별다른 말 없고요?”

“네. 병원뿐만 아니라 한의원도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아직 그렇다 할 효과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김명훈의 마지막 말에 묘한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알겠습니다. 치료실로 가시죠.”

그렇게 치료실.

허준이 도침을 꺼내 들었다.

디스크 수술로 인한 유착으로 생긴 증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수술 자국 주변으로 허준이 침을 찔러 넣었다.

“윽..”

김명훈의 작은 신음과 함께 침이 허리로 들어갔다.

허준이 집중하여 손끝에 감각을 느끼면서 찔러 들어가자 단단한 뼈가 느껴진다.

아마 이 부근일 거야.

침을 움직여 치료를 마치고, 빠른 회복을 위해서 마무리로 근처에 약침을 놨다.

30분 뒤,

자리에서 일어난 김명훈이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개운함을 느꼈다.

당장 효과를 확인해볼 방법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기분이었다.

정말 신비로운 곳이네.

이틀 뒤에 또 오라고 했었지?

*   *   *

토요일 진료가 끝나고 혜민서라는 이름 아래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허준한의원의 이허준, 경희한의원의 김 원장과 박 원장.

옆 동네에서 같이 참여하고 싶다며 찾아오신 선생님 두 분 그리고 최인호까지.

최인호가 허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최인호라고 합니다. 이 선생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이허준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준이 그 손을 맞잡았다.

최인호?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누군지 잘 모르겠네.

그런 허준에게 김 원장이 다가와 속삭였다.

“저희 한의원 대표님이십니다.”

“대표님이요?”

“네.”

“여기에는 무슨 일로?”

“글쎄요. 저도 그것까진 잘... 오늘 아침에 갑자기 참여하고 싶다고 하셔서 이렇게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뭐, 잘됐네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으니까요.”

허준이 웃으며 답하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김 원장도 따라 웃었다.

“선생님들 그럼 가실까요?”

그렇게 김 원장과 새로 오신 선생님의 자동차 2대로 시작된 이동.

오늘 방문할 첫 장소는 작은 양로원이었다.

<천사마을 양로원>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100

* 남은시간 : 10시간 31분

‘좋아. 시작해볼까.’

허준이 앞장서서 양로원으로 들어서자,

원장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보다 원장님이 고생이 많으시죠.”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어떻게 따듯한 커피라도 한잔?”

“괜찮습니다. 저희가 여기 말고도 또 들려야 할 곳이 있어서요.”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곧바로 시작된 진료.

허준과 김 원장, 박 원장이 능숙하게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어울렸다.

그 모습을 본 최인호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는데,

“뭐해? 침놔준다면서.”

“앗,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놔드릴게요. 어디가 편찮으세요?”

“어이구, 이 나이쯤 되면 어디가 편찮은 게 아니라 어디가 괜찮냐고 물어야지.”

할머니의 거친 대답에 최인호가 이를 꽉 물었다.

기껏 의료봉사까지 하러 왔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니 자존심 강한 최인호의 성격을 긁은 탓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의료봉사의 현장.

주변에 지켜보는 시선도 많고, 더군다나 휘하의 두 원장과 이허준 선생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옆에서 웃으면서 진료하는 분위기 속에서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높였다가는 모두의 시선이 쏠릴 터.

최인호가 꽉 다물었던 입으로 미소를 만들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그럼 어디가 괜찮으세요?”

그렇게 한 명, 두 명, 세 명.

진료를 볼 때마다 최인호의 얼굴은 급격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그런 최인호의 눈에 진료를 보는 허준이 들어왔는데, 아직도 환하게 웃으면서 진료를 보고 있었다.

‘힘들지도 않나?’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옆에서 진료를 보던 김 원장이 다가와 속삭였다.

“원래 저런 사람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해 못 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되더라고요.”

이렇게 첫 목적지의 방문은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그런 허준의 눈앞에는,

「퀘스트 ‘천사마을 양로원’을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00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획득하였다는 메시지가 나타났고,

사람이 늘어난 만큼 당연하게도 시간은 아직 한참이나 여유가 있었다.

“자 그럼, 다음으로 가시죠. 저희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다음 장소.

그리고 그곳이 끝나면 또 다음 장소.

시간이 지날수록 최인호의 얼굴이 어두워져 갔다.

이러다 내가 먼저 쓰러지겠어.

이 엄청난 강행군 속에서 오늘 처음 참여한 두 선생님은, 중간에 다음에도 참여하겠다는 인사와 함께 박수를 받으며 사라졌다.

하지만,

“대표님. 다음 장소로 가시죠.”

최인호는 그럴 수 없었다.

빠지려고 눈치를 볼 때마다 김 원장이 이렇게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녁 9시쯤이 되어서야 끝난 의료봉사.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이젠 좀 익숙해졌는지 할만 하네요.”

“오늘은 참여하신 분들이 많았잖아요.”

“선생님들 고생하셨어요. 여자친구가 데리러왔다고 해서 먼저 가볼게요~”

박 원장이 먼저 사라지고,

“이 선생님은 어디로 가세요? 가까우면 태워드릴게요.”

“전 한의원으로 가려고요.”

“한의원이요?”

“네. 월요일까지 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나머지 일행도 갈 길이 정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가는 길에 내려드릴게요.”

허준이 차에서 내리며 최인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오늘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최인호가 헛기침하며 답했다.

“이 정도야 뭐, 거뜬하지.”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푹 주무세요. 이거 드시면 한결 괜찮을 겁니다.”

허준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쌍화탕을 꺼내 최인호에게 건넸다.

“고맙네. 잘 먹을게.”

“뭘요, 그보다 최 대표님 다음에도 오실 거죠?”

허준이 씨익 웃으며 최인호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최인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론이지. 내가 일이 많아서 장담은 못 하겠지만, 최대한 노력해 보지. 앞으로 종종 보자고.”

그렇게 한의원에 도착한 허준이 오늘 모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무려 600포인트 가까이 모은 상황.

보유 포인트 : 1372

역시 사람이 많은 게 최고야.

허준은 고민 없이 바로

「‘구술 Lv. 4’에 1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구술 Lv. 4’이 ‘구술 Lv. 5’가 되었습니다.」

[구술 Lv. 5]

- 뜸의 효능이 꽤 증가한다.

포인트를 사용하고는 이어서 주문받은 총명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월요일까지 다 소화하려면 바쁘겠는데.

*   *   *

녹초가 돼서 집에 도착한 최인호에게 돌아온 것은 구박이었다.

내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데.

“여보, 그러길래 왜 평소에 하지도 않던 일을 하고 그래? 무섭게.”

“내가 뭘...”

"밥은?"

"대충 먹었어."

"그래? 그럼, 빨리 가서 씻기나 해. 빨래할 거니까 옷 벗어 놓고.”

좋은 일 하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자 괜히 슬퍼진 최인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한 뒤 소파에 걸터앉았다.

“온몸이 쑤시는 구먼.”

그때, 빨래를 돌리려던 부인이 혀를 찼다.

“으이구, 이건 또 뭐야? 빨래할 때 이런 거 다 빼랬지.”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이허준 선생에게 받은 쌍화탕이었다.

아들 먹이려고 사 온 총명탕과 쌍화탕의 포장지가 같은 걸 보고, 화가 올라오던 최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화낼 힘도 없을 만큼 피곤했기 때문이리라.

‘그래 저거라도 먹자. 피곤할 때는 쌍화탕이지.’

최인호가 허준에게 받은 쌍화탕을 꺼내 덥혀서 한 모금 마셨다.

예전에 이미 마셔본 기억이 있던 쌍화탕이었지만,

“...!”

한 번 더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