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5화 (26/230)

25화. 내일은 새로운 한의원에서 뵙죠

25화. 내일은 새로운 한의원에서 뵙죠

“그럼, 수고하세요. 원장님. 다음 주에 봬요.”

차에서 내린 허준의 눈앞에는 [천사의 집]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작은 주택이었다.

대문에는 조그만 천사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허준의 눈에는,

<천사의 집>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

* 남은시간 : 10시간 47분

천사뿐만이 아니라, 퀘스트도 나타났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진 것일지는 몰라도, 기연에 대해 조금은 알아낸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것에서, 그 다음엔 더 많은 환자를 요구해서 서울역까지 찾아 가게 만들더니, 결국은 사람들을 도우라는 뜻이었구나.

그렇다면 나도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해 줘야겠지.

평일에는 한의원에 전념하고, 토요일마다 이 명단에 나와있는 곳을 돌아다녀야겠어.

허준이 벨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아침에 전화드렸던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아, 들어오세요.”

열린 문을 허준이 밀고 들어가려는데, 짹짹거리는 시끄러운 새소리가 울려댔다.

문이 고장이라도 난 건가?

현관문이 열리며 나이 지긋하신 수녀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괜찮아요. 놀라지 마세요. 그거 고장난 거 아니에요. 그냥 이리로 들어오시면 돼요.”

“아, 네.”

“최 아가다라고 해요. 그거 무겁지 않으세요? 저한테 하나 주세요.”

허준이 쌍화탕을 번쩍 들어 올리며 답했다.

“아니에요. 그렇게 무겁지는 않아서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그런데, 현관문에 새소리는 왜 해놓으신 거예요?”

“아~ 우리 자매님 중에 치매를 앓고 계신 분이 계셔서요. 혹시 밖으로 혼자 나가실까 봐서 해놓은 일종의 경보장치랍니다.”

“그러셨구나.”

그렇게 작은 마당을 지나서 거실에 도착한 허준이 본격적으로 진료 준비를 시작했다.

“제가 뭐 도와드릴 거는 없나요?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녹차나 커피 같은.”

“괜찮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두유라도 한 잔..”

“그럼, 시원한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그렇게 물 한잔과 시작된 진료.

할머니들이 계시는 이곳의 상황은 여태 갔었던 그 어느 곳보다 좋았다.

“어디 편찮으신 데 없으세요?”

“됐어. 대충 아무 데나 놔줘. 빨리 가서 드라마 봐야 하니까.”

“알겠어요. 금방 끝내 드릴게요.”

허준이 진맥을 잡았다.

진짜 건강하시네?

그렇다고 그냥 돌려보낼 허준이 아니었다.

끈질기게 캐물어서 결국에는 불편한 부위에 침을 놔드렸다.

그렇게, 한 명.

“나 여기 아야해.”

“할머니. 알겠으니까 이리로 오세요. 선생님이 고쳐주실 거예요.”

수녀님이 손을 잡고 한 할머니를 모셔왔다.

치매가 있으신 분이 계시다고 하더니, 저분이신가 보다.

“할머니께서 걸으실 때, 균형을 잘 못잡으셔서 기울어져서 걸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쪽이 자꾸 단단해져서 제가 마사지를 종종 해드리거든요.”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볼게요.”

허준이 할머니의 오른발 종아리를 눌렀다.

확실히 묵직하고 단단했다.

“할머니, 이쪽으로 누워 보시겠어요?”

수녀님의 도움으로 할머니가 누우셨고,

허준은 할머니가 입고 계신 바지를 살짝 걷은 뒤, 침을 찔렀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대충 시간을 가늠한다.

“움직이시면 안되니까 수녀님께서 옆에 계셔 주세요.”

“네.”

이어진 진료는 빠르게 끝나가고 있었다.

약 20분쯤 지나서 침을 맞은 할머니들에게는 침을 뽑은 이후에 뜸을 놔드렸다.

진득한 쑥의 냄새가 거실에 가득 찼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어이구, 이제야 누워서 텔레비전 좀 볼 수 있겠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할매가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내가 한 번 더 인사할게요. 감사합니다.”

“이거 내가 아껴둔건데, 가서 먹어. 고마워서 그래. 고마워서.”

진료를 받은 할머니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고마움을 표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안 끝났어요.”

“네?”

“수녀님이 남으셨잖아요.”

“저요?”

최 아가다 수녀님이 놀란 듯이 되물었다.

“아까 보니까 할머니들 부축하시고 자꾸 어깨를 주무르시더라고요. 어깨 불편하지 않으세요?”

“조금요...”

“이리로 앉아 보세요.”

예상대로 이곳에 와서 본 환자중에 가장 정도가 심했다.

어쩌면 할머니들을 홀로 챙기시고 있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허준이 어깨에 침을 찔러 넣었다.

손끝에서 묵직한 느낌이 침을 타고 전해진다.

자극을 위해서 침을 툭툭 건드렸다.

20분이 지나서 허준이 침을 뽑자,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나올 때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와, 정말 시원하네요. 선생님.”

“힘드셔도 스트레칭 꼭 자주자주 해주세요. 그리고 이거.”

허준이 들고 온 쌍화탕 한 박스를 턱- 하고 건넸다.

“이건 뭔가요?”

“쌍화탕이에요. 따듯하게 덥혀서 하나씩 드시라고요. 수녀님도 같이 드시고요.”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뭘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 잘되시라고 제가 매일 기도드릴게요.”

3시간이 채 넘지 되지 않고 천사의 집을 나선 허준.

‘여기 계신 할머니들은 그래도 밝으시네.’

이는 아마도 사람이 사람을 서로 보듬어 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허준이 배낭을 들쳐메고서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했다.

진행도 : 100%

「퀘스트 ‘천사의 집’을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5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139

어디 보자.

다음 장소는 거리가 좀 애매하네, 그냥 걸어가야겠다.

그렇게 발에서 땀이 날 때쯤, 허준이 도착한 곳에는 평화의 집이라 적혀있었다.

그리고,

<평화의 집>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

* 남은시간 : 6시간 34분

허준이 가볍게 평화의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월요일 점심.

“원장님. 점심 뭐 드실 거예요?”

“아, 죄송해요. 점심에는 일이 있어서요.”

“그러시구나. 그럼 저희끼리 먹을게요.”

“네. 맛있게 드세요.”

허준이 한의원에서 나와 상가 안에 있는 소망부동산으로 향했다.

이 상가를 전담하고 있는 부동산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는 김영득이라 적힌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함께하는 곳이었다.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김 사장님.”

“곧 오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망부동산 문이 열리며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셨는데, 한눈에 봐도 품격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구먼. 이야기는 자주 들었네. 반갑네. 상가 주인일세.”

“처음 뵙겠습니다. 2층에서 한의원 하는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고 싶다면서? 실력이 괜찮은가 봐.”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할 뿐이죠.”

“그래.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일단은 어떻게 할 건지 가보도록 하지.”

허준이 건물주 그리고 김영득과 함께 비어있는 1층의 상가로 향했다.

“일단 서류작업은 다 끝내 놨습니다. 선생님.”

“수고했네. 영득이.”

“아닙니다.”

“이허준 선생. 여기에다 문을 뚫고 싶다면서?”

“아, 네. 이쪽하고 이쪽으로 문을 내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노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마음대로 하게. 나중에 다시 원상태로 복구만 해놓으면 된다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다 된 거지?”

김영득이 깍듯하게 답했다.

“네. 선생님이 보실 거는 따로 없으십니다.”

“그래그래. 수고해 주고, 이허준 선생도 앞으로도 쭈욱 열심히 해서 월세 밀리지 말고, 환자들 잘 돌봐주게나. 내가 지켜보고 있겠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럼, 내가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으니, 영득이 자네가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주고, 이허준 선생은 나중에 또 기회 되면 보세나. 응원하지.”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선생님.”

건물주 어르신이 그렇게 떠나가시고, 김영득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상가 뒤에 있는 조그만 문을 열었다.

길쭉한 통로처럼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뭔가요?”

“여기는 예전에 창고로 쓰던 곳인데, 선생님께서 필요하시면 여기도 사용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요?”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이득이었다.

비록 한의원과 붙어있는 공간은 아니지만,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만큼 한의원의 공간을 넓게 쓸 수 있겠지.

“자, 그럼 마무리하러 사무실로 돌아가실까요.”

부동산 사무실.

김영득이 허준에게 말했다.

“2층에 오실 때와는 다르게, 여기가 시장 골목이다 보니 1층은 낮에 공사를 못 할 거예요. 아마, 가게들 문 닫은 밤에 공사하셔야 할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철거와 인테리어를 위해서 도로를 막고 있으면 시장 거리 한가운데를 막아버리는 꼴이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까 건물주분은 뭐 하시는 분이세요? 2년 전에는 제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 처음 뵙거든요.”

“아~ 모르셨어요? 저기 원장님이시잖아요.”

“네?”

허준이 김영득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손끝이 정우한의원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김정우 원장님이셨어?

어쩐지. 왜 낯이 익나 했더니.

“그건 그렇고 2층 자리는 내놓으실 거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에 마지막으로 사인 해주시면 다 됩니다.”

그렇게 허준한의원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인테리어는 너무 현대적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실은 적당한 가격대를 고른 허준이었다.

바닥은 그대로 재활용하고, 최소한으로 시설비를 들인 공사.

덕분에 공사기간은 짧았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진료실, 치료실, 탕약실, 대기실과 데스크까지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장 4일간의 공사 끝에,

금요일 진료를 마감한 허준이 두 선생을 호출했다.

“김 선생님, 윤 선생님.”

“네. 원장님.”

“내려가시죠.”

“드디어 공사 끝난 건가요?”

“네, 자리는 다잡았고, 이사는 오늘 밤에 끝낼 거에요.”

허준과 김 선생, 그리고 윤 선생이 새로 만들어진 1층의 허준한의원으로 들어섰다.

아직 아무것도 없었기에 확 트인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넓네요?”

“아직은 모델하우스 같은 거죠. 일단 따라오세요. 이쪽으로.”

허준이 앞장서고 뒤에 두 선생이 따라갔다.

“이쪽을 치료실로 쓸 겁니다. 베드는 현재 5개에서 2개 더 늘릴 거고요.”

“알겠어요.”

“그리고 이쪽은 진료실, 이쪽이 데스크입니다. 탕약실은 저 끝에 있는 작은 방이고요. 마지막으로 이 뒤쪽은 창고로 쓸 겁니다.”

“확실히 좋네요. 2층과 크기는 비슷해 보이는데, 구조가 달라서 그런가? 더 넓어진 느낌이에요.”

“그렇죠? 그리고 죄송하지만, 내일 조금만 일찍 나오셔서 진료에 차질 없게만 해주세요.”

“물론이죠.”

“알겠어요, 원장님.”

“그럼 내일은 새로운 한의원에서 뵙죠.”

*   *   *

같은 시각.

최인호와 같이 한 남자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몇몇 사람이 그를 보고 수군거리며 간혹 사인을 받아가거나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 여전히 인기 좋다?”

“이정도야 뭐, 제가 누굽니까 이진혁이잖습니까.”

미남한의사 이진혁.

TV 건강 채널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종종 공중파 채널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의 패널로 활동하고 있는 한의사였다.

깔끔하게 생긴 외모와 그럴듯한 목소리 그리고 한의사라는 것이 합쳐져 꽤 인기를 끄는 중이었다.

“그래서, 부탁할 일이 뭔데요?”

“별건 아니고. 너 예전에 기억나? 나 처음에 개원한 곳.”

“그럼요, 가보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개고생하셨다고 자주 이야기했잖아요.”

“기억하네? 거기로 일주일에 하루씩 몇 번만 출근해줘.”

“제가요?”

“아무래도 마케팅을 좀 더 강화해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야. 사람들에게 인지도 하면 또 이진혁이잖아. 안 그래? 그러니 몇 번만 와서 좀 봐줘. 물론,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게.”

“아무래도 사람들이 저를 좀 좋아하죠.”

“말 나온 김에 내일 가서 한번 둘러봐. 시장에 얼굴도장도 찍을 겸.”

“알겠습니다. 한잔 받으시죠.”

최인호가 술잔을 부딪쳤다.

다음 날.

경희한의원 원장인 김 원장과 박 원장이 한 방에 모여서 씩씩대고 있었다.

“아니, 대표님 너무하신 거 아닌가? 우리 보고 오늘부터 봉사활동에 나가라고?”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선배님이라지만,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는데.”

전날 밤에 최인호 대표가 전화해서는 허준한의원의 이허준 선생을 따라서 봉사활동을 다니라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래서 수당은 준대요?”

“모르지. 어제저녁에 갑자기 전화하셔서는 매출 이야기를 꺼내시는데, 내가 거기다 대고 물어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진짜 가시게요?”

“오늘만이라도 일단 가는 시늉은 해야 하지 않겠어?”

“참, 나.. 진짜 그만둬야 하나. 여자친구랑 약속 있는데.”

그때, 한의원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깔끔한 이목구비와 멋들어지게 옷을 입은.

“반갑습니다. 최인호 대표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김 원장과 박 원장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번엔 또 뭐야?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