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0화 (11/230)

10화. 환자가 있으니까요

10화. 환자가 있으니까요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허준은 샤워한 뒤에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면도를 끝내고는,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입었다.

비록 짧은 인터뷰지만, 조금이라도 더 멋지게 나오기 위해서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번갈아 가며 대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금 과한가?’

생각해보니 어차피 새하얀 가운을 입은 채로 앉아서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평소와 같이 깔끔한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오히려 평소에 잘 안 입던 정장을 입으면 어색해 보일 테니.

그렇게 출근한 허준이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서 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준을 노려보며 외쳤다.

“원장님!”

“네?”

“이런 일이 있었으면 진즉에 알려주셨어야죠. 아침에 한의원 문을 여는데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찾아와서는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린다고 하던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아니~ 그래야 제가 화장도 이쁘게 하고, 머리도 좀 볶고, 옷도 차려입고서 준비할 거 아니에요.”

'선생님 그런다고 이쁘게 나올 것 같지는..'

허준이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으며, 호들갑 떠는 서 선생님에게 나직이 답했다.

“서울역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예요.”

대답을 들은 서 선생님이 무언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준이 노숙자들에게 의료봉사를 하러 다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그럼 진작 말씀해 주시지. 저는 또, 홍보 촬영 같은 건 줄 알았잖아요. 그런데 ‘서울역의 사람들’이라면서 왜 여기까지 촬영하러 오는 거예요?”

“그게.. 말하자면 조금 긴데, 제가 젊은편이라서 PD님 눈에 띄었나 봐요.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구나..”

대답하는 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시들해졌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인터뷰라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TV에 나갈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허준이 그런 서 선생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어제 잠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PD님이 한의원에서 진료 하는 모습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연스러움을 중요시하는 분이라서 설치해두고 찍힌 영상을 편집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니까, 서 선생님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일 해주시면 TV에 나올지도 몰라요.”

“정말요?”

허준이 대답 대신에 스마트폰을 꺼내 최은진 PD에게서 온 카톡을 보여줬다.

최은진 PD : 인터뷰 진행은 점심에 할 예정이고, 촬영은 한의원 진료 시작인 9시부터 시작할 예정이에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평소의 모습대로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보셨죠? 그러니까 저희는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하면 돼요. 그러니 카메라 쪽 의식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해주세요.”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호호”

그렇게 시작된 월요일 진료.

그리고 돌아가는 카메라.

오전에는 늘 오던 환자들이 찾아와 평소처럼 진료를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진료를 보는 와중에 서 선생님이 설치된 카메라가 신경 쓰였는지 간혹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지만.

그렇게 이어진 점심시간.

드디어 원장실 안에는 최은진 PD와 카메라를 세팅 중인 카메라맨 그리고 허준. 이렇게 세 명이 마주 앉아 있었다.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 주소 받았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와보니 이런 옛날 스타일의 한의원일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

“그래요?”

“네. 나이가 젊으셔서 요즘 한의원들처럼 깔끔하고 이쁘게 인테리어 했을 거로 생각했죠. 아무래도 그게 대세니까요.”

최은진의 말에 허준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허준한의원의 인테리어는 처음에 개원한 원장님 이후로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뭐, 오히려 좋아요. 담백하달까요? 그래서 카메라에도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고요. 마침, 준비가 끝났네요. 자, 그럼 인터뷰 빠르게 끝내고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네. 저도 준비됐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린 대로 따로 대본은 없으니까, 제가 질문을 하면 생각나는 그대로 답 해주시면 돼요. 아셨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제가 대답을 못 하거나 조금 잘못 대답한 경우에는 어쩌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다 알아서 편집해드릴 테니까요. 어차피 TV에 나가는 장면은 아주 일부거든요.”

최은진이 손가락으로 가위질을 하며 답했다.

그 모습에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자, 그럼 시작할게요.”

“네.”

“의료봉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첫 의료봉사는 대학생 때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하고 보건의로 근무를 마친 뒤에 한의원을 개원하고부터는 바빠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럼 왜 하필 서울역이었는지, 혹시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질문을 들은 허준이 잠시 망설였다.

서울역으로 의료봉사를 하러 가게 된 이유.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는 진료를 할 환자가 많이 필요했고, 서울역에는 환자가 넘쳐났으니까.

“그곳에 환자가 있으니까요.”

짧은 망설임 끝에 나온 허준의 대답에,

최은진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환자가 있다라.. 정말 따듯한 대답이네요. 그럼, 의료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어떤···.”

···

30여 분 뒤,

최은진은 카메라를 잡은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촬영을 끝내겠다는 신호였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PD님 그리고 카메라맨님도.”

“그보다 어디서 연습이라도 해오셨어요? 솔직히 대답을 너무 잘해주셔서 중간중간에 좀 놀랐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답했을 뿐입니다.”

“선생님, 생각보다 더 좋은 분이셨네요. 덕분에 인터뷰는 잘 끝난 것 같긴 한데, 촬영 시간이 길어져서 식사는 어떻게...?”

허준이 원장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이제 고작 10여 분밖에 남지 않았다.

진료시간은 환자와의 약속과도 같은 것.

허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진료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아무래도 점심은 같이 못 할 것 같은데요.”

“그럼 점심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희가 뭐라도 사다 드릴까요?”

그녀의 물음에, 허준은 아무 걱정 없다는 얼굴로 원장실 책상의 제일 아래 서랍을 열어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너무나 익숙한 그것에 최은진이 피식 웃었다.

“역시 간단하게 때우기에는 컵라면만 한 게 없죠. 그럼, 이렇게 해요. 다큐멘터리 작업 다 끝내고 나면 제가 밥 한 번 살게요.”

“밥이요?”

“인터뷰하느라 컵라면 드시게 됐으니,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참, 그리고 편집하면서 선생님 나오는 부분이 선정되면 따로 연락드릴게요. 그럼 점심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허준한의원의 점심시간도 끝난 시각.

점심을 먹으러 집에 다녀온 서 선생님이 원장실 문을 벌컥- 하고 열더니, 흥분한 듯이 말했다.

“원장님! 지금 밖에 줄이...”

방송촬영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준이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오후 진료. 시작하죠.”

*   *   *

[경희한의원에서 전해드립니다.]

월요일부터 저희 경희한의원에서 제공되는 이벤트 탕약에는 녹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른 한의원과는 다르게 녹용을 넣어 정성스럽게 달였습니다.

“확실히 이거라면 떨어졌던 매출은 금세 돌아올 것 같네.”

“당연하죠. 김 원장님도 아시잖아요. 여기 어르신들 녹용이면 아주 그냥 꿈뻑 죽는 거.”

“어제저녁에 돌렸다고 했지?”

“네. 한의원에 등록되어 있는 번호로 전부 보냈습니다. 오늘부터 제공되는 이벤트 쌍화탕은 그냥 쌍화탕이 아니라, 녹용이 들어간 ‘녹용 쌍화탕’이라고요.”

지난주 허준한의원의 쌍화탕 맛을 본 최인호 대표와 두 원장이 고심 끝에 준비한 대응책.

그것은 바로 이벤트로 제공되는 쌍화탕에 녹용을 첨가해 고급화하는 전략이었다.

물론, 녹용이란 약재의 가격을 따지면 이벤트로 사용하기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있었지만, 최인호 대표가 이 문제를 가볍게 해결했다.

체질상 녹용이 안 받을 수도 있는 사람도 있었기에 극소량의 녹용만을 사용하여 제조하는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녹용 향을 입힌 쌍화탕이라고나 할까?

그야말로 최소의 비용투자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낼 묘수였다.

“수고했어. 박 원장.”

경희한의원의 김 원장과 박 원장.

둘은 월요일 진료가 시작되기 전에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웃었다.

그렇게 시작된 진료. 확실히 이벤트의 효과였을까.

가뜩이나 환자가 몰리는 월요일이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많은 사람이 온 것을 직접 몸으로 느낀 두 원장이었다.

“정말 녹용이 들었다고?”

“네. 할머니. 저희가 직접 달였습니다.”

“어쩐지, 힘이 솟는 거 같아.”

게다가 찾아오는 환자들 대부분이 같은 질문을 던진 뒤에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호평했고, 덕분에 매출은 오전 진료기준으로 근래 들어 최고를 기록했다.

“자, 우리도 점심 먹고 하지.”

“어우~ 죽겠네. 이벤트 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김 원장님, 이 정도면 벌써 저번 주 월요일 매출 넘어선 거 아닙니까? 하하.”

“오전에만 이정도니 오후에도 기대해볼 만해. 그보다 든든히 먹어야 오후 진료도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어때, 오랜만에 기름진 중국 음식?”

“좋죠. 이왕이면 탕수육도 함께요.”

그렇게 두 원장이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진료를 시작하려는데,

한의원에 환자가 안 오는 것이 아닌가.

5분.

10분.

15분.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 사태에, 김 원장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는 박 원장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박 원장.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안 되겠어. 내가 밖에 나가서 좀 둘러보고 올 테니, 잠시만 혼자 봐주겠어?”

“알겠습니다.”

가운을 벗은 김 원장이 시장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 거리에는 평소처럼 사람이 많았는데, 그랬기에 더욱 이상했다.

이정도라면 점심시간이 지나고 분명 환자가 와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장 사거리까지 오게 된 김 원장.

한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김 원장의 눈이 커졌다.

그곳이 2층의 계단으로 이어진 허준한의원으로 향하는 입구였기 때문이었다.

‘허준한의원에 가려는 사람이 저렇게 많다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김 원장을 알아본 한 환자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김 원장이 그녀를 알아보고 다가가서 먼저 인사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어머, 선생님이 여기까지 무슨 일로?”

“잠시 바람 좀 쐬러 나왔죠. 그런데 오늘 여기 무슨 일 있어요?”

“아~ 아침에 소문 못 들으셨구나?”

“무슨 소문이요?”

“여기 오늘 아침에 촬영하고 갔대요.”

“촬영이요?”

“네.”

“무슨 촬영이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TV에 나온다니까 다들 뭔가하고 한 번 가보자 해서 줄지어 서 있는 거죠.”

“그럼,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

김 원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2층에 있는 허준한의원 간판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TV 촬영까지 나온다는 말인가.

그러다가 문득,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은 김 원장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최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어 그래~ 김 원장. 새로 시작한 이벤트 반응은 어때?”

“그게 좋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또 뭐?”

“오전에는 환자들이 몰려와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는데, 점심시간 이후로 환자들이 통 오지 않아서 제가 지금 시장 골목으로 나와봤더니, 우리 한의원에 오시던 분들 대부분이 허준한의원으로 간 것 같습니다.”

“뭐? 어째서!”

“그게 저.. 허준한의원에서 무슨 촬영이 있었다고 해서···.”

“촬영? 무슨 촬영인데?”

“다들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만, 촬영은 오전에 끝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래? 짧게 촬영한 걸 보니, 보나 마나 별 볼 일 없는 거겠군. 그런 사소한 마케팅은 어차피 얼마 못 갈 테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지난주에 기획했던 추석 이벤트 있지?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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