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7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어? 어, 그러니까 지금 침을 놓으신 거예요?”
“네.”
“정말요?”
정지현의 물음에 허준이 어깨에 놓은 침을 손끝으로 가볍게 톡- 건드렸다.
그러자 의료용 침대에 엎드려 있던 정지현은 등과 어깨 사이 그 어딘가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어?! 뭔가 느껴져요!”
“제가 방금 침을 살짝 건드렸거든요. 어때요? 그렇게 긴장할 만큼 아프지 않죠?”
“그러게요. 제가 괜히 긴장했나 봐요.”
침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자,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가뜩이나 최근에 잔뜩 침을 놔서였는지, 허준의 손길은 막힘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등과 어깨에 놨던 침을 다 뽑은 뒤, 허준은 알코올 솜으로 깨끗하게 침이 들어갔었던 자리들을 소독했다.
이어서 저주파 마사지기를 가져와서 마사지기의 패드 안쪽에 있는 스펀지를 물에 적시고는 정지현의 등에 붙이며 설명했다.
“이건 저주파 마사지기라고, 쉽게 말하면 전기자극으로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거예요. 이제부터 살짝 저릿저릿한 것 같은 느낌이 올 텐데, 강도를 맞춰야 하니 어느 정도로 자극이 오는지 말해주시겠어요?”
“네.”
처음 침을 겪으면서 허준에 대한 신뢰가 생겨서인지, 정지현은 마찬가지로 처음인 전기치료에 크게 경계하지 않는 듯했다.
허준이 저주파 마사지기의 레버를 돌려 강도를 살짝 올렸다.
“어때요?”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어요.”
“그럼 살짝 더 올려 볼게요.”
“앗, 찌릿찌릿해요.”
“음~ 혹시 불쾌감이 들거나 아프지는 않나요?”
“네.”
“좋아요. 이 정도가 딱 적당한 상태예요. 그럼 편안하게 누워서 계세요. 조금 있다가 올게요. 아, 그리고 혹시 자극이 너무 세진 것 같다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면 주저하지 말고 불러주세요.”
30분 후,
삐- 삐-
저주파 마사지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정지현이 눈을 껌뻑였다.
편안하고 푹신한 침대는 아니었으나, 은은하게 풍겨오는 한약재의 냄새와 따듯한 온도, 그리고 등에서 오는 자극에 온 몸이 나른해져 본인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자세가 자세였던지라, 벌어진 입 사이로 침이 흘러나와 있었다.
스읍-
사태를 파악한 정지현은 재빨리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고는 침대로 흐른 침을 닦았다.
그때, 드르륵 소리와 함께 알람을 들은 허준이 치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정지현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만히 눈을 끔뻑였다.
그 모습을 본 허준이 피식 웃었다.
커튼 사이로 이미 그 모습을 봐버렸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닦아도 소용없는데.’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잠드는 일은 생각보다 흔했고, 침이나 콧물, 피 같은 체액이 의료용 침대로 떨어지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서 선생님에게 소독 한번 해달라고 해야겠군.
허준은 패드를 떼어내면서 마지막 치료에 대해 생각했다.
정지현의 두통은 안 좋은 자세에서부터 시작된 것.
결국,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침이나 전기마사지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패드를 다 떼어낸 허준이 정지현에게 말했다.
“전기치료는 어땠어요?”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온몸이 나른해져서 깜빡 졸았지 뭐에요.”
“많이들 그러세요. 그럼 이제 다시 옷 갈아입으시고 원장실로 잠깐 와 보시겠어요?”
“원장실로요?”
“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장실로 온 정지현.
그녀를 본 허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천천히 어깨랑 목을 한번 움직여 보세요.”
허준의 말에 정지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팔도 몇 번 돌려보더니,
“어? 굉장히 가벼워진 것 같아요.”
“좋아요. 그럼 이제 마지막 치료가 남았네요.”
“또 해야 할 게 있나요?”
정지현이 살짝 경계하는 눈초리로 답했다.
인터넷에서 한의원에 대한 글을 찾으면 비싼 보약이나 한약 같은 것을 권유한다는 그런 글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게 남았거든요. 혹시 아까 제가 했던 말 기억하세요? 두통이 안 좋은 자세에서부터 시작된 거 같다고 한 말이요.”
“네. 평소 제 자세가 안 좋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죠.”
“기억하고 계시네요? 맞아요. 지금은 침과 전기치료로 뭉쳐있던 근육들이 잠시 풀린 거예요. 그 덕분에 당장은 시원하고 가벼운 느낌이 들면서 두통이 안 느껴지겠지만, 결국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근육들이 굳어지게 되겠죠. 그럼 두통도 다시 찾아올 테고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단히 답하자면, 자세를 고쳐야 합니다.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뿐이니까요. 컴퓨터를 사용하실 때, 바른 자세로 지내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사람 습관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허준의 말에 정지현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바른 자세란 무엇인가.
허리를 등판에 붙이고, 가슴을 곧게 펴며 턱을 조금 당기고 무릎은 90도에 가깝게 있어야 하는, 상상만으로도 불편함이 느껴지는 바로 그 자세다.
이 세상에 그 자세가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 이제부터 제가 하는 스트레칭을 따라 해주세요.”
“스트레칭이요?”
“네.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는 와중에 매시간 때마다 한 번씩만 틈틈이 해줘도 꽤 효과가 있을 거예요.”
자리에서 일어선 허준이 몸소 목과 어깨, 등과 허리를 쭈욱 쭈욱 펴는 스트레칭의 자세를 선보였다.
가운을 입은 채로 스트레칭을 하는 그 모습에 정지현은 살짝 웃음이 나왔으나, 어서 따라 하라는 허준의 말에 스트레칭까지 배운 정지현.
이렇게 그녀의 첫 한의원 방문이 마무리되었다.
한의원을 나서면서 손에 쥐어진 영수증에는 결제금액 7천 원이라는 한 끼 밥값 정도의 소박한 금액이 적혀있었다.
‘뭐야?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지 않잖아? 게다가 몸도 개운하고, 스트레칭도 알려주시다니..’
한의원에 처음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완전히 만족스러운 기분이 된 정지현은 벌써 다음 진료시간이 기다려졌다.
왠지 모르게 지금 글을 쓰면 잘 써질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 * *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목요일 저녁,
진료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허준한의원에는 칼퇴를 하려는 서 선생님의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원장실에 홀로 앉아 있는 허준.
그의 눈앞에는,
<뜸을 놓아라. 1>
* 진행도 : 32 / 50
* 보상 : [구술 Lv. 1]
* 남은시간 : 2일
‘월, 화, 수, 목. 나흘 동안 32명이라니.’
옛날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숫자였다.
찾아오는 모든 환자에게 뜸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았기에 완료하지 못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이번 주 들어서 하루 평균 12명의 환자를 기록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퀘스트를 완료한 것은 아니나, 예전처럼 하루 3~4명의 환자가 왔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달성률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이는 근처의 다른 한의원들이 이번 주부터 같이 탕약 이벤트에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지난 이벤트 때보다 선방하고 있다는 증거.
‘역시 탕제술의 효과인가?’
허준의 머릿속에 며칠간 늦게까지 탕약을 달이며 얻은 능력이 떠오르는 그때,
원장실 문이 열리며,
“김명자 할머니 오셨어요~”
서 선생님이 허준한의원의 오랜 단골이자 오늘의 마지막 진료 환자인 김명자 할머니의 방문을 알려왔다.
1번 치료실.
의료용 침대 위에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는 김명자 할머니가 계셨다.
“어서 오세요. 할머니.”
“그려. 요즘 한의원에 생기가 좀 도는 거 같더만?”
“하하, 네. 요즘 이벤트 때문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조금 늘었거든요.”
“잘됐네! 잘됐어. 그동안 맘고생 심했을 턴디.”
“운이.. 좋았죠.”
할머니의 말에 허준이 진심으로 답했다.
자신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연을 얻게 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라고 생각 중이었으니까.
“운은 무슨? 요즘 시장 여편네들 사이에서 쌍화탕이 진국이라며 입맛에 맞는다고 소문이 낫던디?”
“그래요?”
“그렇다니까? 게다가 내가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손기술에도 물이 올랐는가 봐. 엊그제 월요일에 침 맞고 가서 그날 밤에 아주 편안하게 잤어.”
할머니의 말에 허준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어느 정도 침술의 효과를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그 효과를 직접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것은 또 다른 기분 좋음이었다.
“그럼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놔 드릴게요.”
“그려.”
그렇게 침을 놓기 시작하는 허준에게 김명자 할머니가 물었다.
“듣자허니, 요즘에 어려운 사람들 무료로 침놔주러 다닌다면서?”
“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기는? 다~ 아는 수가 있지.”
허준이 의료봉사를 하러 간다고 말한 것은 서 선생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까지 알고 계시다니, 역시 괜히 이 동네의 터줏대감 중 한 분이 아니셨네.
“그래서 하는 말인디, 내가 살아 보니까, 좋은 일 하고 살면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 내 말 이해허지?”
“그럼요.”
“그려. 그보다 침은 언제까지 놓을 거여?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니까?”
허준은 할머니의 투정을 들으면서 정성스럽게 침을 한방 한방 놓아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지금 저렇게 투정을 부린 것은, 사실은 투정이 아니라 단골이었기에 던지는 일종의 농담 같은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할머니의 관심표현 같은 것이었다.
“이제 다 됐어요.”
“흥. 이렇게 느리면 나중에 환자들 많아지면 어찌 감당하려고?”
“그거야 뭐, 환자들 많아진 다음에 생각하면 되죠.”
“하여간 한마디도 안 지는구먼. 에잉 쯧쯧.”
그렇게 목요일의 마지막 환자인 김명자 할머니의 진료가 끝나고,
허준은 원장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최근 사람이 분명 늘었으나, 제한시간까지 퀘스트를 달성하기에는 버거운 상황.
앞으로 18명의 환자에게 뜸을 떠야 하는데, 토요일은 1시까지만 진료를 보는 데다가, 찾아오는 환자 중에 뜸을 사용해야 하는 환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
‘역시 방법은 다시 봉사활동을 가는 수밖에 없는 건가.’
문득, 김명자 할머니의 말이 떠오르자 허준이 피식 웃었다.
동시에, 지난 번 의료봉사를 갔다 온 뒤에 사라진 주말도 떠올랐다.
저번 주에 의료봉사에 다녀온 뒤로 일요일 내내 잠을 자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이는 의료봉사도 봉사였지만, 최근 들어 매일같이 탕약을 달이면서 쌓인 피로도 한몫 거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허준의 눈앞에 문득,
모니터 화면 안에 늘어난 환자의 숫자가 들어왔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당장 한의원들이 동참한 탕약 이벤트에서도 퀘스트가 가져다준 능력으로 쏠쏠한 전과를 올리고 있지 않던가.
사람이 등따스워지고 배부르면 금세 다른 생각을 한다더니.
딱 그 꼴인 셈이었다.
그때, 원장실 문이 열리며 퇴근을 하려는 서 선생님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밝았다.
“원장님~ 퇴근 안 하세요?”
“아, 저도 이제 곧 하려고요. 그런데 서 선생님.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당연하죠~ 내일이 벌써 월초잖아요.”
“아...”
“바로 모든 직장인이 가장 행복한 월급날이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원장님이 저번에 약속하셨던 인센티브 잊지 않으셨겠죠? 호호.”
서 선생님의 말에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진료에다가 탕약도 달이고 더해서 봉사활동까지 하다 보니, 어느새 금방 이렇게 시간이 지나간 것이었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용~”
그렇게 서 선생님이 퇴근한 이후, 허준은 환자들의 보험금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환자 수가 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숫자로 직접 표기된 금액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
그리고 그것을 본 허준은 굳게 다짐했다.
‘내가 피곤한 게 대수야? 봉사활동? 매일매일이라도 가주마!’
앞으로는 더 열심히 퀘스트를 깨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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