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처음 오셨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6화. 처음 오셨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녁 9시가 좀 넘은 시각이 되어서야 찾아온 환자의 진료를 모두 볼 수 있었다.
퀭한 눈의 허준이 줄이 사라진 간이진료소 밖의 어두컴컴해진 밤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허준의 시야 한쪽에는 당연히,
「퀘스트 ‘침을 놓아라. 1’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침술 Lv. 1’이 ‘침술 Lv. 2’가 되었습니다.」
[침술 Lv. 2]
- 침술의 효능이 소폭 증가한다.
보상을 얻었다는 문구가 나타나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진료를 보던 허준이 뻐근함에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그러자, 간이진료소 안에서 보조를 해주던 쉼터 직원이 허준에게 인사했다.
당장 보조를 한 자신조차 피로감이 몰려오는데, 직접 진료를 하는 선생님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
그런데도 찾아오는 노숙자들을 거절하지 않고, 끝까지 진료를 봐준 그의 모습에 감동한 상태였다.
“아닙니다. 괜히 저 때문에 퇴근 늦어지신 거 아닌가요?”
“그런 말씀 마세요. 이렇게 늦게까지 진료를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요. 많은 분들이 시기를 놓쳐서 악화되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선생님께서 오늘 늦게까지 진료를 봐주신게 그분들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허준이 초췌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간이진료소에 앉아 진료만 본데다가, 김진수를 비롯해 봉사자들 몇몇이 귀가하면서, 단순 침 환자뿐 아니라 상담부터 여러 증상의 환자들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대체 몇 명이나 본 거지?’
이 정도면 개인적으로 따져도 최고기록이었다.
처음에는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39명만 딱 채우자는 생각뿐이었지만,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이고 나니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눈앞에 줄지어 서 있는 환자들에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차마 매몰차게 말할 수가 없다 보니, 이 시간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허준은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침을 하도 놔서 그런지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 그리고 목과 팔꿈치가 뻐근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눈은 새롭게 나타난 퀘스트를 바라봤다.
<뜸을 놓아라. 1>
* 진행도 : 0 / 50
* 보상 : [구술 Lv. 1]
* 남은시간 : 7일
그것을 본 순간 처음 든 생각은 참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오늘같이 힘든 퀘스트는 아니었으니까.
‘에이, 일단은 다 모르겠고, 집에 가서 푹 쉬자.’
자리에서 일어난 허준이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봐야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지만.
가방을 들고나오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태까지 같이 남아 진료를 봐주신 나이가 지긋하신 한의사 선생님이셨다.
“자네. 실력이 꽤 괜찮더군. 우리 통성명이나 좀 합세. 나는 박진석이라고 하네.”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이허준? 허! 하는 행동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한의사 하기 딱 좋은 이름이구먼. 덕분에 나도 오늘 섭섭지 않게 귀가할 수 있겠어. 봉사시간이 끝난 뒤에도 줄 서던 환자를 보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았거든.”
“아닙니다. 오히려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다행입니다. 혼자였으면 집에 못 갔을지도 몰라요.”
“오늘 정말 고생 많았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언제 한번 같이 밥이나 먹으세. 내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겠네.”
그렇게 악수를 한 박진석이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고,
허준도 돌아섰는데,
“선생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들려오는 인사에 고개를 돌리니, 뒷정리를 하고 있는 쉼터 직원들과 노숙자들이 크게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얼굴은 피곤에 쩔어 있었지만, 또다른 무언가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
인제 보니 오늘 얻은 건, 능력만이 아니었네.
허준은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 * *
“아직 떠나지 마십시오! 진료를 더 보고 싶으신 분은 이리로 오십시오!”
허준이 진료소를 나와 외치는 모습이 화면에서 재생되었다.
이번에 [서울역의 사람들]이라는 추석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송국의 작업실이었다.
거기에는 다큐멘터리를 담당하고 있는 최은진 PD를 필두로, 두 명의 남녀가 같이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어때? 이 장면. 쩔지?”
“선배. 진짜 드라마 같은데요? 인물도 나쁘지 않고, 대사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지금 장면이 연출된 타이밍이 예술이랄까?”
“나만 그렇게 본 거 아니지? 지은아 넌 어때?”
“PD님. 그런데 이건 저희 취지와는 조금 안 어울리지 않을까요? 이번에 저희 프로그램 자체가 서울역에 머무는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거라면서요.”
“맞아. 그런데 잘 생각해봐. 주말에 봉사하러 서울역에 오는 사람도 결국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위해 오는 거잖아? 노숙자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아~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는 있네요.”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분량의 문제 아니겠어? 그거보다 이 사람, 이 장면 말고 다른 장면은 또 찍힌 거 없어? 돌려봐 봐.”
최은진의 말에, 모니터 앞에 앉은 남자가 키보드를 만지작거리자, 카메라에 짧게 짧게 담겨있는 허준의 영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너무 짧아서 딱히 쓸만한 장면이 보이지는 않았다.
대부분 영상이 나이든 한의사와 또 다른 젊은 한의사, 그리고 봉사자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저 사람 장면은 왜 이렇게 짧아?”
“아, 저 사람 제가 보니까 의료봉사 시작부터 로봇처럼 침만 계속 놓더라고요. 아니, 뭐 옆에 이 사람처럼 노숙자들과 소통하면서 공감도 하고, 그런 장면들이 찍혀야 하는데, 그런 게 통 없더라고요.”
“그래? 그럼, 저기 저 사람은 쓸만한 장면 좀 있어?”
“이 사람은 꽤 있어요. 한번 보실래요?”
“그래. 그런데 이분도 젊으시네?”
“제가 물어보니까, 강남에서 한의원 하고 계시는 원장님이라고 하더라고요.”
“강남의 젊은 한의원 원장이 토요일에 노숙자를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라? 이것도 꽤 괜찮네. 일단 모두 보관해 둬. 아직 시간 있으니까.”
“예. PD님.”
* * *
허준한의원이 있는 시장 거리에서 한 블록 정도의 거리에는 대학교가 있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학교이기에 언제나 대학생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는 원룸과 오피스텔, 그리고 고시원과 하숙집까지 대학생들을 위한 각양각색의 주거시설들이 즐비했다.
그중에 한 원룸에 거주하고 있는 졸업생 정지현.
그녀는 취업 준비를 한창 하던 와중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는데, 바로 인터넷 소설 작가였다.
처음에는 관심도 없었다.
인터넷 소설이란 소설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으며, 알고 난 뒤에는 문예창작과 졸업생이라는 자존감에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당시, 문예창작과생들에게 인터넷 소설이란 ‘진짜 소설이 아니다’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으며, 인터넷 소설을 쓴다고 하면 눈총을 받기 일쑤였으니까.
그런데, 졸업할 때 즈음이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인터넷 소설을 써서 성공하기 시작한 몇몇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을 본 정지현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문예창작과에서도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자신이 인터넷 소설을 쓴다? 이건 마치 체대생에게 배에 복근 있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란 생각에 가벼이 보고 시작한 도전.
몇 번의 쓰라린 고배를 마신 뒤에, 드디어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직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일어나서 밥 먹고 글 쓰고, 밥 먹고, 글 쓰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무언가 머리를 조이는 것 같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딱히 이상이 없다고 한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인터넷에서 유사증상을 찾아보니, 대부분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으면 좋아진다는데, 누가 봐도 광고 같은 글만 주르륵 나왔다.
그러다 결국엔 혹시나 해서,
눈앞에 보이는 한의원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허준한의원]
소설에서도 제목이 중요하듯 이름부터가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라고 합리화 중인 정지현.
하지만 실상은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한의원에 가자니, 대학교 후배들과 마주칠까 싶어서 이 시장 골목에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찾아온 시장 골목, 1층에 있는 한의원으로 할머니들이 잔뜩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나 마나 저런 곳에 들어가면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은 물론이요, 자연스럽게 할머니들이 이런저런 말을 걸어올 터.
이런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기에 정지현은 허준한의원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어서 오세요. 어라? 처음 오시는 분이네.”
“안녕하세요.”
“일단 여기에다가 이름하고 전화번호 먼저 적어서 주시겠어요?”
정지현은 서정숙이 내민 종이의 항목에 간단한 주소와 연락처 그리고 이름을 적어냈다.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3~4분쯤 지나자,
“정지현씨. 원장실로 들어가실게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지현이 원장실이라 적힌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준은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정지현을 바라봤다.
시장 골목 상권에서는 극히 드문 젊은 환자인 데다가 무려 초진 환자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한의원은 처음이시라고요?”
“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아, 그러니까 가끔 두통이 있거든요. 여기랑 여기요.”
정지현이 자신의 관자놀이 위쪽 부근을 가리키면서 답했다.
“음~ 콕콕 쑤시는 느낌인가요? 아니면 지끈지끈 하는 느낌인가요?”
“그게... 혹시 손오공 아시죠? 손오공 머리에 보면 긴고아를 쓰고 있잖아요. 비유하자면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조이는 것 같이 아프거든요.”
“잠시만, 실례할게요.”
허준이 손 소독제를 발라 비비고는, 정지현의 머리를 시작으로 목과 어깨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내려갔다.
어깨와 목의 근육이 딱딱하다고 느껴질 만큼 뭉쳐있었다.
“아악! 선생님. 살살요.”
“흠, 목이랑 어깨가 많이 뭉쳐있으시네요. 아마도 머리가 아픈 것은, 자세가 안 좋아서 그럴 거예요. 혹시, 평소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시는 편인가요?”
“네. 제가 글을 쓰는 직업이라서요.”
“글이요? 아 작가시구나?”
“네..”
“저도 책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허준의 대답에 정지현의 목소리를 죽였다.
한의사였기에 당연히 교양서적이나 인문 서적 같은 소설을 좋아하리라 짐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허준의 입에서 예상 밖의 제목이 나왔다.
“역시 소설은 나만렙이 최고죠.”
“어? 나만렙을 아세요?”
“물론이죠.”
허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을 원래부터 본 것은 아니었지만, 퀘스트가 생기고 나서부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검색결과에 소설들이 나와서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틈틈이 읽는 중이었다.
익숙한 소설 제목이 나와서일까.
정지현의 목소리가 조금 커지면서 말이 빨라졌다.
“저도 나만렙이랑 비슷한 그런 글 써요. 그, 막 상태창 나오고, 레벨 나오고, 능력이랑 아이템 얻고 그런 글이요!”
“그러면 보통 하루에 컴퓨터 앞에 얼마나 앉아 계시나요?”
“음.. 보통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앉아서 점심 먹고 다시 앉아서 저녁 먹고 다시 앉아 있죠. 특별한 약속 없으면요.”
“따로 하시는 운동은 있나요?”
“운동이요? 아니요...”
“그럼 일단, 침이랑 전기치료 한 번 해보죠.”
“치, 침이요? 제가 아직 침은 한번도 안 맞아 봐서..”
“긴장 안 하셔도 돼요. 별로 아프지는 않거든요.”
“아... 네.”
“그럼, 서 선생님 따라서 치료 복으로 갈아입으시고 치료실에서 뵐게요.”
정지현은 안내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는, 치료실에 누웠다.
벌써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침은 난생처음 맞아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치료 복이라고 받은 옷은 등 쪽이 휑해서 괜스레 쌀쌀한거 같았고,
그곳으로 바늘 같은 침이 자신의 몸에 박힌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쫙 올라왔다.
그때, 치료실 커튼이 열리면서 허준이 들어왔다.
허준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정지현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긴장되시나 봐요?”
“조금요.”
“음, 그럼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허준은 손가락으로 어깨의 혈 자리를 누르면서 말을 이었다.
“그 왜 요새 인터넷 소설들 보면, 상태창이나 퀘스트, 뭐 이런 것들 나오잖아요? 스킬도 얻고, 레벨도 오르고 하는 그런 거요.”
“그렇죠. 아무래도 요즘 트렌드니까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비밀 하나 이야기하자면 저도 그거 있어요. 상태창.”
“네?”
허준의 말에 정지현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침 맞아 본 소감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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