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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4화 (5/230)

4화. 탕약이 팔리다

4화. 탕약이 팔리다

[탕제술 Lv. 1]

- 미약하게 탕약의 효능이 증가한다.

허준은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왠지 모르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때와 지금은 다르잖아.’

다른 사람에게는 말해도 믿지 않을,

이 엄청난 기연이 나를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침을 놓아라. 1>

* 진행도 : 0 / 100

* 보상 : [침술 Lv. 2]

* 남은시간 : 7일

이어서 허준의 눈이 새롭게 나타난 퀘스트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그러다 문득,

‘어?...’

처음 보는 새로운 문구 ‘시간’을 볼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진행도와 보상 이 두가지로 이루어져 있던 퀘스트에 새로운 조건이 추가된 것이었다.

허준도 어릴적에 게임을 꽤 해봤기에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퀘스트가 반복될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이제 겨우 두 개의 퀘스트를 해결했을 뿐인데, 이렇게 갑자기 난이도가 올라갈 줄이야.

어차피 불평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허준은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탕약 이벤트로 이번 주에 한의원을 찾은 환자는 120명이 조금 넘은 상황.

그러나 다음 주부터 인근 한의원들이 탕약 이벤트에 참여하기 시작한다면, 그 영향으로 내원하는 환자는 분명히 줄어들 터.

‘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이것은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게임에서는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하면 단순하게 퀘스트의 보상을 얻지 못하고, 다른 퀘스트가 주어지면서 친절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장르에 따라서는 그대로 게임이 끝나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마디로 퀘스트를 실패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뜻이다.

말도 안되는 엄청난 기연을 통해서 기껏 얻은 능력을, 제대로 사용해보기도 전에 잃어버리는 바보같은 짓을 할 수는 없잖은가.

‘어떻게든 해야 해.’

기연이 마냥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허준은 탕약기를 물로 헹궈 내면서 고민에 빠졌다.

*   *   *

시장 한의원들이 탕약 이벤트에 동참하겠다고 밝힌 월요일의 이른 아침.

가장 먼저 시장 안의 작은 횟집에 불이 켜졌다.

횟집의 특성상, 싱싱한 활어를 공급받기 위해서 활어를 실은 트럭이 직접 횟집 앞까지 들어와야 했는데, 인근의 점포가 문을 열고 물건을 내놓기 시작하면 이 트럭이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따라서 이 작은 횟집은 시장 골목 안에서 언제나 가장 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싱싱한 횟감을 받는 일은 보통 직원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 강진구의 몫이었다.

“아으~ 오늘따라 유별나게 춥네요.”

“인마, 그럼 옷을 더 입으면 되지.”

“에이, 아저씨 그러면 옷이 젖잖아요. 안 그래도 저것들 잡다 보면, 가뜩이나 옷에 비린내도 배는데, 아침부터 축축하게 젖어있기까지 하면 온종일 끔찍하다니까요?”

“그 맘 잘 알지. 그래서 내가 횟집에서 일하다가 이 생선 트럭으로 넘어온 거잖아.”

활어 트럭을 몰고 온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역시 젊음이 좋아~ 나도 너처럼 젊었을 적엔 한겨울에도 너처럼 반팔 차림으로 일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나이 좀 드니까 그냥 냄새 좀 나도 따듯한 게 최고더라고.”

“대충 된 것 같은데, 이만 들어가세요. 쟤네들은 제가 마무리 할게요.”

“오냐. 그럼, 수고해라. 그리고 이거는 김사장에게 전해주고.”

강진구는 활어 트럭 아저씨가 건넨 전표를 눈으로 한번 스윽 훑고는 주머니에 넣으며 흘러나오는 콧물을 닦았다.

그렇게 활어 트럭이 떠나가자,

차가운 아침 공기에 쌀쌀함을 느낀 진구가 재빨리 횟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시장 골목의 가게들이 하나, 둘 장사를 위해 문을 열기 시작했고, 휑하던 길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건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횟집에도 드디어 주방 이모가 출근했는데,

그녀는 주방에서 홀로 코를 훌쩍이며 조개를 손질하고 있는 진구에게 인사했다.

“진구야, 좋은 아침.”

“아, 주방 이모.”

“너 어디 아프니? 얼굴이 창백한데?”

“저요? 아니요. 오늘 생선 들어오는 날이라 아침에 찬바람 맞아서 그럴 거예요.”

“그래? 콧물도 흐르는걸?”

“에이~ 별거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에취!”

주방 이모는 마침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너 그러다가 괜히 감기 걸리지 말고, 근처 한의원에 가서 쌍화탕이라도 하나 얻어먹어. 아프면 너만 고생이라니까?”

“쌍화탕이요? 그거 그냥 저기 앞 편의점에서 사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야. 편의점이랑 한의원 거랑은 다르거든? 게다가 들어보니 오늘부터 그날이잖아. 한의원들 탕약 이벤트 하는 날. 아마 그거 때문에 달여둔 쌍화탕들 있을 테니까 가서 그거 하나 사다가 먹는 게 좋겠다.”

“흠.. 그럼 그럴까요?”

“나머지는 내가 손질할 테니 갔다 와. 9시부터 진료 시작이니까 금방 열거야.”

“그럼, 금방 다녀올게요. 이모.”

진구는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으며, 횟집을 나섰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정우한의원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이미 사람들 몇 명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니 허준한의원의 간판이 보였다.

‘아, 저기 보람이네 아줌마가 일하시는 곳이라 그랬지?’

그렇게 2층으로 계단을 올라 문을 여니,

아무도 없이 고요한 한의원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딸랑- 딸랑-

“아직 진료시간... 어? 진구야? 무슨 일이야?”

서정숙은 반가운 얼굴이 나타나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싶어 물었다.

같은 빌라에 살면서 자기 딸과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였던 진구가 한의원에 올 일이 딱히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이런 곳에는 젊은 친구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왔으니까 말이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저.. 감기 기운이 조금 있는 것 같아서요. 주방 이모가 약국 쌍화탕보다는 한의원 쌍화탕이 효과가 좋다고 해서요. 혹시 지금 하나 살 수 있을까요?”

“쌍화탕? 거기 소파에서 잠깐만 기다려봐. 아줌마가 가져다줄게.”

서정숙은 탕약실로 향했다.

주말을 보내고 출근하니, 언제 달여둔 건지 꽤 많은 쌍화탕이 낱봉으로 포장되어 쌓여있었다.

언제 이렇게 많이 달여 놓은 거지? 이정도 양이면 주말 내내 달여야 했겠는데?

어림잡아 100여 개는 넘어 보이는 쌍화탕들.

그녀는 그중 손에 잡히는 쌍화탕 두 개를 꺼내 가지고 나와 진구에게 건넸다.

“이거 가지고 가서 따듯하게 덥혀서 마셔.”

“감사합니다. 아줌마. 얼마예요?”

“됐어. 어차피 서비스로...”

그때였다.

막 출근을 한 허준과 서 선생님의 눈이 마주친 것은.

허준은 재빠르게 눈을 굴리는 서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건장한 키의 청년.

‘응? 횟집 청년이잖아?’

매일 출근길에 얼굴을 보며 가볍게 인사를 하는 사이였기에 허준은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서 선생님의 손에 들려있는 쌍화탕 봉지와 함께.

단편적인 모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허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원장님 좋은 아침이에용.”

인사에 서 선생님의 콧소리가 섞인 걸 들은 순간,

허준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안녕하세요. 서 선생님. 그리고 횟집 청년이죠?”

“네. 맞아요. 선생님.”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씩씩하게 인사하는 청년.

하지만 그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창백한 얼굴에 입술 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흐르는 콧물까지.

감기 기운이 있나 본데?

그의 차림새를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일교차가 큰 요즘에, 짧은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 선생님. 그거 따듯하게 덥혀서 가져다주시겠어요?”

허준은 서 선생님이 횟집 청년에게 건네려다가 만, 쌍화탕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콧물도 조금 나고 그러죠?”

“아, 네. 오늘 아침에 생선이 와서 그거 봐주다가 찬바람을 많이 맞은 것 같아요.”

“잠시만요.”

허준이 손을 뻗어 청년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다행히 열이 펄펄 끓거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하니,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서 선생님이 쌍화탕 따듯하게 데워오시면, 여기 소파에서 천천히 다 마시고 가세요. 탕약이란 게 먹으면 바로 효과가 나오는 그런 약이 아니라서 시간이 조금 필요하거든요. 여기서 충분히 몸을 따듯하게 덥힌 다음에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즘 날씨 쌀쌀하니까 겉옷 챙겨 다니시고요.”

“아, 네.. 그런데, 저.. 계산은 어떻게?”

횟집 청년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됐어요. 아직 진료 시작 전이라 제대로 진료를 본 것도 아닌데요. 게다가 이웃사촌이잖아요.”

“그래도...”

“정 뭐하면 나중에 횟집 갔을 때, 서비스나 좀 주세요.”

“당연하죠. 선생님. 언제 한번 오세요. 제가 서비스 팍팍 드릴게요.”

허준은 청년을 뒤로하고,

원장실로 향했다.

하얀 가운을 걸치면서 창밖을 바라보니,

정우한의원으로 들어가는 한 무리의 노인들이 보였다.

그들 중 몇몇은 꽤 낯익은 얼굴이었다.

지난주에 한의원을 방문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엊그제까지 여기 오셨던 분들인데...쩝’

예상은 했지만,

그 모습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 괜스레 아쉬움이 남는 허준이었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진료부터 생각하자.’

그런데 그때,

원장실 밖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 우와?”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파에 앉아서 쌍화탕을 마신 횟집 청년 강진구였다.

“진구야 갑자기 왜 그래?”

“아줌마. 몸이..”

“몸이 왜? 어디 아파?”

“아니요. 그게 아니라 막 몸이 으슬으슬하고 덜덜 떨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멀쩡해졌어요.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주방 이모 말대로 편의점에서 사 먹는 쌍화탕과는 다르다더니 진짠가 봐요.”

“휴~ 난 또, 그야 당연하지. 우리는 원장님이 직접 달여서 내리는 거니까.”

“아줌마, 이거 지금 주문하면 바로 살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한약이라면 질색을 하던 녀석이 한약을 사려고 하는 거 보니, 진짜 좋았나 보네? 그래. 몇 개나 사려고?”

“한 박스에 몇 개나 들었어요?”

“박스로 사려고? 보통 30팩에서 31팩 정도 들어있는데, 일단은 원장님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잠시만 기다려 줄래? 이벤트용으로 미리 만들어 둔거라서.”

허준의 귓가에 서 선생님의 슬리퍼를 끄는 소리와 함께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원장님. 쌍화탕 주문이 들어왔는데요. 지금 달여 놓은 거로 포장해서 줘도 될까요? 박스로 사고 싶다는데.”

“물론이죠.”

“저, 그리고 가격은 얼마로 받아야..?”

서 선생님이 기대감 어린 얼굴로 가격을 물었다.

이는 아마도 올해 처음으로 팔리는 탕약이었기에 진짜로 가격을 물음과 동시에, 지인 할인에 대한 문의도 섞여 있는 물음일 것이었다.

허준이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저희 개원 때, 쌍화탕 한 박스에 6만 원이잖아요. 그대로 가죠. 그리고 지인 할인은 10% 가량 할인해서 5만5000원으로요.”

“네. 알겠어요.”

몇 달 동안 팔리지도 않던 탕약이 팔릴 줄이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허준이었다.

‘좀 더 비싸게 팔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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