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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3화 (4/230)

3화. 물 들어왔으면, 노를 저어야지

3화. 물 들어왔으면, 노를 저어야지

북적북적하던 시장 골목의 불빛이 하나둘 사그라들 때면, 골목 한쪽의 낡고 작은 술집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시장 상인들과 동네 주민들이 주로 찾아와, 이제는 서로가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그런 술집.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어이구~ 이놈아. 그만 마시고 집에 들어가라. 내일 장사 안 할 꺼여? 너거 여편네 혼자 가게 열게 할라고 그러지. 쯧쯧.”

“에헤이 명자 이모, 그러지 말고 딱 한 병만 더 주쇼. 내 금방 마시고 들어갈 테니. 우리가 몇 년이나 봤는데, 섭섭하게.”

“그럼, 딱 하나만 더 마시고 들어가는 기다?”

술집의 주인이자, 시장 골목 터줏대감인 김명자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퍼런 술병을 건넸다.

그렇게 밤이 무르익다 보면, 이제는 이 작은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사그러들 차례.

“성님.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이리 팔팔하다요?”

주방을 청소하고 있던 주방 이모 최명숙이 물어왔다.

지금은 자정이 다되어 가는 시간. 이 시간쯤 되면 허리가 쑤신다며 늘 앓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청소하던 김명자 여사님께서 이리도 조용한 날이 있다니.

“왜긴? 오늘 한의원 다녀와서 그런가 보지.”

“어쩐지~ 성님도 정우네 다니나 봐요? 거기가 여기 시장 골목 아지매들 사이에서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 말이 진짠가 보네.”

“정우네? 아닌디, 나는 그 건너편 2층 허준네 가는디?”

“허준네요? 그 망했다가 새로 들어온, 그러니까 저기 저 시장 구루마 나눠준 곳?”

주방에 있던 최명숙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큼지막하게 허준한의원이라는 글자가 박혀있는 바퀴 달린 시장바구니가 세워져 있었다.

“그래 저기. 난 저기가 좋거든. 한의사가 좀 젊긴 해도 성격은 싹싹하지, 예의도 바르고, 무엇보다 손재주도 조금 있는 듯허이. 나도 예전에는 정우네로 갔었는디, 허준네 한번 가보고 나서는 그리로 바꿨어. 게다가 이름부터가 허준이잖아. 허준.”

“허? 별일이네. 깐깐한 성님의 입에서 칭찬이 다 나오고, 그럼 나도 내일은 허준네로 한번 가볼까?”

*   *   *

한의사가 되어 진료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을 겪게 된다.

환자에게 평소처럼 같은 치료를 했을 뿐인데, 환자는 굉장히 크게 효과를 봐서 만족해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은 주변인에게 추천하게 되고, 이것이 곧 입소문으로 퍼져나가면서 새로운 환자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는 시장 골목에서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이게 침술의 효과?..’

수요일 아침부터 새롭게 찾아오는 환자들을 본 허준은 알 수 있었다.

그들 모두가 침을 맞으러 방문하신 분들이었으니까.

똑, 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허준이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떨쳤다.

“원장님. 2번 치료실에 최명숙 할머니 오셨어요.”

“네. 바로 갈게요.”

엊그제 화요일 오전에 처음 찾아오신 환자로, 김명자 할머니와 몇 년간 같이 일하시고 있는 할머니라고 하셨다.

허준은 손을 깨끗하게 씻고 2번 치료실로 향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지난번 치료받고 가신 뒤에는 어떠셨어요?”

“아이고, 말해 뭐해요. 내가 우리 성님이 칭찬하기에 어떤가 싶어 궁금해서 왔는데, 괜히 그러는 게 아니더만요. 그날, 침 맞고 밤새 주방에서 팔팔하게 날아다녔어요.”

환자의 대답에서 느껴지는 만족감과 표정에 허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생명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외과 의사와 장르는 달라도, 치료를 받은 환자가 눈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의료업에 종사 중인 그 누구라도 이렇게 느낄 것이다.

“시원하셨다니 다행이에요.”

“어쩜 젊은 분이 손재주가 이리도 좋으시데? 이렇게 시원할 줄 알았으면, 진즉 이리로 다닐걸.”

“하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자주 오시면 되죠.”

허준이 대답을 하면서 침을 놓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치료를 마친 최명숙 할머니는 개운하다는 얼굴로 치료실을 나섰다.

그렇게 한차례 진료를 끝내고 소강상태에 접어든 한의원.

원장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은 나는, 늘어난 초진 환자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이전과 비교하면 환자가 늘어난 것은 분명 좋은 신호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아주 짧은 단발성 호재라는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본 것도 아니고 간혹가다가 연중행사로 이미 몇 번 경험해 본바,

얼마 지나지 않으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늘어났던 환자 대부분은 다시 줄어들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찾아오는 모든 환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때문에,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단발성 호재를 최대한 살려서 한 사람이라도 더 한의원의 단골로 만드는 것.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그때, 원장실 문이 열리며 서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손에 종이로 된 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원장님. 이것 좀 드세요.”

“계란빵이네요?”

“네. 최명숙 할머니께서 주시고 가셨어요.”

마침 촐촐했는데 잘됐네.

허준은 서 선생님이 건넨 계란빵을 꺼내어 입에 물었다.

이제 겨우 두 번 진료를 보신 분이 이런 선물까지 주시다니,

일단 단골 한 분은 만든 걸지도.

*   *   *

그날 저녁 진료를 끝내고,

허준은 한의원 창고에 보관되어있는 약재들의 재고를 파악했다.

앞으로 올 초진 환자를 단골로 만들고, 새로운 퀘스트까지 해결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이 시장 골목에서 처음 개원할 때 사용했던,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이벤트 ‘탕약’이었다.

사실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나자마자 탕약을 달여보려고 했었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탕약기가 고장이 난 바람에 A/S를 받을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이벤트를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이참에 창고에 쌓여있는 약재들 소진도 하고, 단골도 굳히고, 퀘스트까지. 이거야말로 일석삼조의 묘수지.’

그렇게, 약재 창고를 뒤적이고 있는데,

뒤에서 퇴근하려던 서 선생님의 놀랍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원장님. 탕약 내리시려고요?”

“아, 네.”

“웬일이세요? 저희 지난 몇 달간 탕약 내린 건, 명절 선물이라면서 원장님이 저에게 주신 거 말고는 없었잖아요? 오늘 오셨던 분 중에서도 따로 문의는 없었던 것 같은데, 따로 누구 선물이라도 하시려나 봐요?”

“그건 아니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 바람이 불어오잖아요? 찾아오시는 어르신분들한테 탕약이라도 하나씩 드리려고 그러죠.”

“어!? 그거 설마, 오픈 때 했던 이벤트?”

“맞아요. 근 며칠간 초진 환자분들이 오셨잖아요. 단골 굳히기 들어가야죠.”

“좋은 생각이에요! 그러면 저도 동네 어머니들께 적극적으로 소문내면 되는 거죠?”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감사는요 무슨, 당연히 원장님이 그때처럼 인센티브도 챙겨 주실 텐데. 호홍.”

‘그럼 그렇지.’

하지만 그 대답만으로도 충분했다.

서 선생님은 이 동네에서 꽤 오래 살아왔기에, 어르신들과 유대 관계가 좋은 편이다.

한의원을 찾아오시는 몇몇 환자분은 그녀와 수다를 떨기 위해 찾아오는 일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내일 봬요~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원장님.”

“들어가세요.”

서 선생님이 퇴근하고, 허준은 약재들을 챙겨 탕약기 앞에 홀로 앉아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만들고자 하는 것은 바로 쌍화탕.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작은 유리병에 들어있는 그것과 같은 이름을 가진 탕약이지만, 성분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다른 곳에서 파는 쌍화탕은 공장에서 액기스를 넣어 배합해 만든 것이고, 지금 내가 만드는 것은 약재를 직접 달여서 만드는 약이니까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공장에서 커피의 성분을 추출해 만든 캔커피와 직접 커피를 볶고 갈아 만들어 내리는 드립 커피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질 때는 이 쌍화탕만 한 게 없지.’

게다가 몸의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는 이 탕약은, 공장에서 만들어질 정도로 그 범용성이 넓다는 장점도 있다.

쉽게 말하자면,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에게 해가 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탕약을 달이기 시작한 지 몇 시간째,

한의원이 쌍화의 냄새로 가득 차면서, 완성된 쌍화탕이 자동포장기를 거쳐 먹기 좋게 한 팩씩 포장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탕약을 달여라. 1>

* 진행도 : 1 / 10

* 보상 : [탕제술 Lv.1]

허준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중이었다.

*   *   *

“그 이야기 들었어? 허준한의원에서 쌍화탕이 공짜래.”

“에이~ 쌍화차겠지.”

“차 말고, 탕이라니까 탕. 재작년에 원장 바뀌었을 때 했던 이벤트 있잖아. 그거 또 한다더라고.”

“진짜?”

“그렇다니까? 어때, 이따 우리 같이 한번 갈려?”

“에이~ 그래도 정우네 바로 코앞인데, 그러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탕이라니까 탕? 이벤트 끝나고 다시 정우네 가면 되지. 안 그래?”

탕약 이벤트의 효과는 정말로 신의 한 수였다.

시작한 지 일주일 째, 오랜만에 한의원이 시끌벅적하다고 느껴질 만큼 환자들이 찾아온 것이었다.

몇 달 전, 심지어 개원했을 때 찾아 왔던 환자들이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그 덕분에, 허준은 토요일인 오늘도 진료를 끝내고 홀로 남아 탕약을 달이는 중이었다.

<탕약을 달여라. 1>

* 진행도 : 9 / 10

* 보상 : [탕제술 Lv.1]

매일매일 늦게까지 달인 덕에 퀘스트도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다.

탕제술이란 이름을 보아하니 아마도 탕약의 효과를 올려주는 것이겠지.

‘나 이러다 진짜로 엄청난 명의라도 되는 거 아니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한의사의 모습이 허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웠다.

괜히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명의고, 덕이 있는 한의사고, 일단은 먹고살 만해야 하는 거지.

‘이벤트 반응 좋은데 이참에 아예 무기한으로 가버려?’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만한 소리였지만, 진심으로 든 생각이다.

한의원 사정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물론, 이 푸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다.

에이~ 그냥 한의사 중에서 조금 번다는 이야기잖아? 그래도 전문직인데 안 그래? 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 논리대로라면 세상에 망하는 병원이나 한의원은 없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또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하겠지.

그래? 그럼, 차라리 한의원을 팔고 월급 주는 곳으로 가면 되잖아. 라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허준도 한의원을 양도하기 위해 한의사 카페 게시판에 글을 여러 번 올렸지만, 이곳에 직접 다녀간 몇몇 원장님들 모두가 생각 좀 해보고 나중에 답변을 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허준이 이곳을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시장 사거리를 기준으로 길 건너편의 재개발이 급물살을 타듯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시장의 반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줄어들 테고, 거기에 더해서 길 건너편에는 아파트가 올라가기까지 최소 1년 이상짜리의 공사장이 펼쳐지게 될 터.

그러니 어떤 바보가 이런 곳의 한의원을 인수하려고 하겠는가.

과거의 허준처럼 눈먼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때 혹하지만 않았어도.’

보건의 복무를 끝내자마자,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한의사 카페를 뒤적이던 허준의 눈에 띈 게시글.

아내에게 지병이 생겨 더는 운영을 못 할 것 같다며, 낮은 권리금에 추가 비용 없이 시설까지 그대로 다 넘기겠다는 말에 혹해버린 것이 허준이 이 한의원을 운영하게 된 계기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즈음,

퇴근한 서 선생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 길 건너 정우한의원이랑 시장 입구에 있는 경희한의원에서도 다음 주부터 내원 환자들에게 서비스 탕약을 준대요!

잊고 있었다. 그래. 작년에도 이랬었지.

이렇게나 반응이 좋았던 서비스 탕약 이벤트가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시장 골목 상권의 환자들이라 해봐야 결국 동네 주민들과 시장 상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이벤트를 한다는 것은, 근처 한의원들 입장에서는 내원하는 환자들을 빼앗아 가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던 것.

그 선전포고는 결국 허준의 백기 투항으로 끝이 났었다.

지금처럼 주변의 한의원에서도 똑같은 이벤트를 시작하면서 탕약을 받기 위해 이곳에 몰렸던 환자들이 다시 본래 다니던 한의원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애초에 체급 차이가 너무 심해.’

결국, 자본주의적인 논리다.

돈 잘 버는 한의원이 더 많은 약재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

피 튀기는 출혈경쟁을 해봐야 말라 죽어가는 것은 언제나 허준한의원이었다.

그때, 삐- 소리와 함께,

탕약기가 마지막 탕약의 완성을 알렸다.

동시에,

<탕약을 달여라. 1>

* 진행도 : 10 / 10

* 보상 : [탕제술 Lv.1]

「퀘스트 ‘탕약을 달여라. 1’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탕제술 Lv. 1’을 얻었습니다.」

[탕제술 Lv. 1]

- 미약하게 탕약의 효능이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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