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볶음밥
오늘도 퇴근은 저녁 먹고도 일을 한참 더 한 후에야 할 수 있었다.
망할 대출 서류. 대출, 상환. 연기. 대출의 지옥 같으니라고. 온갖 시재가 맞는지 확인하고 대출 업무를 처리하면 제 시간에 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나마 회식이 없는 게 오늘 하루의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아까 팀장님이 ‘오늘 다들 할 일 있어?’라고 물었을 때 용감하게 할 일이 있다고 외쳤던 대리님께 박수를 쳐드릴 뻔했다. 절대 나만 그런 건 아니었을 거다. 세상은 이렇게 용감한 사람들로 인해 하나씩 바뀌어가는 거다.
이렇게나 어려운 퇴근에 성공하고 회사에서 멀어지고도 한참 걷고 나서야 아직 사원증이 목에 걸려 있다는 걸 알았다. 가느다란 끈인데도 목을 조르는 것 같아서 얼른 벗어 서류 가방에 던져 넣었다. 꼴도 보기 싫다. 잠시 길에서 멈춰 고민하다가 우리 집이 아닌 정지운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제 아파트 로비에 있는 직원들은 나에게 주민을 대하듯 인사를 해주신다. 마주 인사하고 지갑을 뒤적거려 키패드에 카드를 찍었다. 얼마 전에 아예 내 거라고 하나 쥐여줬다. 답례라고 하긴 뭐하지만 정지운에게는 우리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이미 알고 있다고 했을 때 한 대 때릴 뻔했지만.
열린 유리문을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현관 도어락에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집은 조용하다. 신발을 벗고 복도를 통과해 거실로 들어왔다. 불을 켤까 하다가 유리 벽 너머의 야경이 마음에 들어 조명등만 켰다. 씻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소파에 풀썩 주저앉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집주인이 없는 집은 이렇게나 조용하다.
정지운은 이틀 전 예능을 찍으러 갔다. 강원도 어디 강과 접해 있는 시골 마을로 말이다. 그때그때 콘셉트에 맞는 연예인들이 농촌의 삶을 체험하며 시골의 정취를 느끼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나도 꼬박꼬박 챙겨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미 몇 회 방영이 되었고 반응도 좋은데 후반부를 촬영하러 다시 내려가는 정지운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가기 싫다며 소파에 들러붙어 있다시피 해서 창식이가 사정사정하며 끌고 데려간 거다.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신발을 신기 전 내게 당부하고 간 게 있었다. 자기 없는 동안 집 상태 좀 봐줄 겸 여기 와 있으라고.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을 때 ‘그냥.’이라고 대답하며 말끝을 얼버무리는 모습에서 저놈이 또 나의 작은 자취방을 비하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넘겼다. 이런 걸로 하나하나 싸우다 보면 진작 헤어져야 했다.
나도 이제는 슬슬 이사를 생각하는 중이다. 예전보다 걸어둬야 하는 옷도 많고 방이 점점 비좁아지고 있었다. 학교는 졸업했는데 굳이 학교 앞에 있을 필요도 없고. 회사와 멀고 본가와도 멀고 정지운의 집과도 멀다. 가끔 이 근처의 원룸을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알리지 않았지만.
소파 팔걸이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리모컨을 들어 티브이를 켰다. 푸르스름한 티브이의 불빛이 거실 바닥에 드리워진다. 뉴스를 지나고 드라마도 지나 채널을 돌리다 보니 예능이 나왔다. 마침 정지운이 찍으러 간 예능의 재방송이 방영되고 있었다. 익숙한 사람이 나와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끔 저렇게 연예인처럼 티브이에 나오면 적응이 안 된다.
정지운은 저녁거리를 마련해 오는 건지 바구니 한 가득 옥수수만 따서는 시골길을 따라 혼자 걸어오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배경처럼 두른 산과 밭은 초록색이 무성하다. 해가 길지만 저물어가는 여름 시골의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머리에 씌워져 있던 밀짚모자를 얼굴 뒤로 넘기자 정지운의 흰 얼굴이 약간 탄 게 보였다. 그리고는 애수에 젖은 표정으로 초록색 풀이 넘실대는 논을 보다가 시골 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정지운의 발치를 따라 흰 강아지 한 마리가 쫑쫑거리며 뛰었다.
한 번 쓰다듬어줄 법도 한데 제 발목에 몸뚱이를 문지르려는 강아지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그냥 걷는다. 점점 카메라가 멀어지며 풍경을 담고 장면이 바뀌었다. 나는 그런 광경을 멍하게 보며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저렇게 보니까 괜히 전화하고 싶다.
지금 잘까. 안 받으면 어쩔 수 없지. 일단 전화를 걸었다. 길고 긴 신호음 끝에 전화를 받는다. 혹시 바로 끊는 건가 싶었는데 움직이는 소리와 숨소리가 작게 들렸다. 나는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
―왜 전화했어.
“그냥. 하면 안 돼?”
―아니. 잘 줄 알았지.
“집에 와서 티브이 틀었는데 너 나와서.”
―어디 집.
“너네 집 왔어.”
―하긴. 너 방에 티브이 없지.
“곧 이사 갈 거야.”
―진짜?
“응. 시골로 이사 가고 싶다.”
―대체 왜?
목소리 사이에 한숨이 스며든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은 거겠지.
이제 옥수수를 깨끗이 씻어 가마솥에 쏟아 넣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다. 넓은 마당과 텃밭을 가진 시골집은 단출하지만 정겨워 보인다.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회사 가기 싫어. 이게 뭐라고 그렇게 취업하고 싶어 했을까.
“강아지 키우고 싶어.”
―그냥 집에서 키워.
“지금 티브이 보는 중인데 옥수수 따 오는 거 봤거든.”
―아, 그거.
“재밌어 보여. 좋겠다.”
―재미?
여기서 목소리가 많이 언짢아졌다.
―너 나를 그렇게 모르냐. 내가 행복해 보여?
“어?”
―집에 보내줘 씨발.
“에이. 일하는 중이잖아.”
―올라가면 소속사 건물부터 불 지를 거야. 재밌을 거라더니. 모기 개많아.
“그러긴 하겠다.”
―와이파이도 안 터져. 아침 먹으려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불 지펴야 돼. 미쳤냐고.
“아.”
―집 가고 싶다. 장독대 다 깨버릴까.
절절한 한이 서린 목소리였다. 스태프나 다른 출연자가 들으면 안 될 텐데. 일단은 말렸더니 진심 어린 한탄이 줄줄 흘러나왔다. 좁고, 잠도 못 자겠고. 음식 만드는 데 한세월이 걸린다고.
호텔 가고 싶다는 말에 나는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거실을 한 번 둘러봤다. 집이 호텔보다 더 좋으면서 왜 저리 호텔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끊이지 않는 말을 졸면서 듣다 보니 어느새 마무리 인사가 나오고 있더라.
―나 금요일에 돌아가.
“응.”
―집으로 바로 와.
“으응.”
―들어가서 자라.
“응. 금요일 맞지?”
―그래. 침대 가서 곱게 자.
보이지도 않을 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 한 번 잘못했다가 벌써 새벽이다.
금요일에 돌아온 정지운은 지금까지 봐온 중 가장 지친 표정으로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 집 안에서 빈둥거리고 있다가 현관 앞까지 마중 나갔는데 뭐라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정지운은 가방을 던지다시피 드레스룸에 내려놓고는 바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먼지 하나 없는 주방 싱크대의 서랍을 열어젖히더니 거기서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 나왔다. 배달 음식 전단지 말이다. 알록달록한 색의 표지가 흰 대리석 싱크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멍하게 보고 있는 나에게 한 번 묻기는 했다.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이 집에 배달 음식 전단지도 있었어?”
“당연하지. 가끔 먹어.”
“이럴 때?”
“응. 맛없는 거 먹어서 입맛 버렸을 때.”
꽤 신중한 태도로 책자를 넘겨보던 정지운은 치킨과 오돌뼈를 시키더니 욕실 쪽으로 갔다. 씻고 오겠다면서.
책자를 넘겨보며 또 시킬 게 없나 고민 중인데 욕실 문이 열리고 도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등 뒤로 체온이 달라붙었다. 고개를 돌리기 전에 가까이 온 얼굴이 뺨에 입술을 댔다가 떨어졌다.
“목욕물 받아놨네.”
“응.”
“옷도 꺼내놓고.”
“너 피곤하다며.”
“욕조 안에 너도 들어가 있었어야지.”
“미쳤네.”
어깨가 꽉 눌릴 정도로 세게 안았다가 다시 씻으러 들어간다. 나는 달아오른 뺨을 눌렀다 떼고 아무 일도 없는 척 책자만 열심히 봤다.
곧 배달된 음식들을 식탁에 하나하나 예쁘게 늘어놓고는 젓가락까지 꺼내다 두었다. 이제 다 씻었는지 편한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은 정지운은 내가 차려둔 음식 앞에 냉큼 앉았다. 마주 앉아 입에 치킨을 욱여넣었는데 바로 먹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음식을 지켜보기만 한다. 입안에 씹고 있던 것을 삼키고 물었다.
“왜 그래.”
“팔 아파.”
“왜?”
“이번에는 과일 따다 왔어.”
그러면서 내 앞에 손등을 위로 하고는 손을 쫙 펴 보인다. 군데군데 생채기가 있다. 불쌍하기는 한데 딱히 할 말이 없다. 나는 빳빳한 서류 만지다가 매일 손 베이고 난리인걸.
“저런.”
“먹여줘.”
나는 어이가 없어서 뚫어지게 바라봤다. 정지운이 양손을 냉큼 식탁 아래로 내리고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살짝 입을 벌리고는 나만 본다. 안 해주고 버티려다가 천천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안 한다고 버텨봤자 귀찮지.
젓가락으로 고춧가루 양념이 팍팍 들어간 오돌뼈를 집어다 입에 밀어 넣어줬다. 곧장 받아먹으며 웃는다. 눈매가 예쁘게 접힌다. 이번에는 순살 치킨을 집어서 다시 입에 밀어 넣어줬다. 그것도 냉큼 받아다 먹는다. 아기 새에게 밥을 주는 기분이다. 물론 그 아기 새의 키가 180을 넘는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화기애애한 식사를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나 그거 봤어.”
“뭐.”
“점심 당번 됐을 때 볶음밥 했던 거 있잖아.”
“계란 볶음밥?”
“응, 맛있겠더라.”
“맛없어.”
“해주면 안 돼?”
나름 예쁘게 물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예쁜 눈웃음과 함께 답변이 돌아왔다.
“싫어. 직접 해 먹어.”
“아, 왜. 거기 나오는 애들은 다 먹었잖아.”
“맛없다니까.”
“좀 해주면 안 되냐.”
“내가 입맛을 왜 버렸는지 알아? 내가 밥해 먹다 버린 거야.”
“에이.”
“재현아, 생각해봐. 내가 요리까지 잘해야겠어?”
“잘하면서.”
내 말에 정지운이 인상을 팍 구기고는 또 입만 벙긋거린다. 안 넣어줄까 싶어 한심하게 노려보다가 다시 치킨을 집었다.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생각이 없어 보여서 입에 물려줬다. 고기를 천천히 음미하듯 씹으며 하는 말이 고작 이거다.
“진짜 맛없어.”
“맛있어 보였는데.”
“비즈니스의 맛이야.”
꿈도 희망도 없는 놈. 나는 약간 삐쳐서 그의 입안에 치킨과 오돌뼈를 번갈아 밀어 넣어줬고 식사는 조용히 끝났다. 그날 밤 침대 사정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에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었던 나는 아침 내내 계란 볶음밥을 외쳤다. 어떤 것을 시켜준다고 해도 싫다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내 투정을 듣다 못한 정지운은 결국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침대 헤드에 기대 앉아 쟁반에 받쳐 가져 온 볶음밥을 내려다보았다. 희고 넓적한 그릇에 소복이 담긴 볶음밥은 티브이에서 보던 바로 그 모양이었다. 일단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숟가락을 드는 나에게 정지운이 나지막한 경고의 말을 하기는 했다. 진짜 맛없다고. 색색깔의 야채까지 다져 넣어진 노란 볶음밥을 숟가락 가득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두 번 씹기도 전에 으적 하는 소리가 입안에서 났다.
나는 씹던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고 정지운은 어색한 표정으로 손짓까지 동원하며 변명했다. 자기는 분명히 경고했다고. 일단 정성을 봐서 씹어 삼키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에는 소금 덩어리도 혀 위를 돌아다니다가 이에 꼈다.
“맛없을 거라고 했잖아.”
“이걸 먹였어?”
“카메라에 잘 나오면 만사 오케이야.”
“계란 껍질이 들어가면 체에 거르면 되잖아.”
아. 라는 감탄사와 함께 정지운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예 요리에 대해 상식이 없나 봐. 짭짤함이 입안에 감도는 것도 결국 한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무슨 소금이 이렇게 커?”
“그냥 있는 거 넣었어.”
“소금 언제 넣었어.”
“맨 마지막에 간하려고…….”
“중간에 넣어야 소금이 녹지!”
“그래?”
정말 난생처음 들었다는 표정이다. 이제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 때깔만 좋은 볶음밥을 그 사람들은 그렇게나 맛있다는 양 먹었다는 거지. 다들 한 연기 하시네. 다시 숟가락을 들어 퍼먹으려 하자 내 손을 잡아 만류했다.
“먹지 마.”
“먹을래.”
“왜. 먹고 나 욕하게?”
“응. 그리고 요리 안 시킬게. 내가 미안했다.”
단호하게 숟가락을 잡고 볶음밥을 퍼먹는 내 앞에서 정지운은 얌전히 앉아 내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하기는 했는데 두 번 다시 요리를 시킬 생각은 없었다. 어제 정지운의 말이 어느 정도 맞았던 거다. 얘가 요리까지 잘하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기대였던 걸까.
빈 그릇을 쟁반을 받쳐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배신감에 휩싸였다. 이렇게 맛없을 수가. 다 먹었는데도 여운이 남도록 맛없다니. 상상도 못 했던 결과다.
옆에 내려뒀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인스타에 들어가 앨범에서 사진을 골랐다. 방금 찍은 계란 볶음밥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조작해 최대한 맛있어 보이도록 보정했다. 정말 생긴 거 하나만큼은 완벽한데.
태그는 붙이지 않았지만 정지운의 인스타 아이디를 쓰고 아래 딱 한 문장만 썼다. ‘앞으로 지운이 형이 요리 많이많이 할 거래요. 시청자 여러분 기대하세요.’라고. 내 팔로워의 대부분은 정지운의 팬일 테니 여기 올리면 될 거다.
업로드 버튼을 누르고 침대 헤드에 기대 있는데 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쯤 볼까. 어느 때보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댓글과 하트가 끝도 없이 달리는지 손아귀 안의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린다. 설거지는 다 한 거 같고 이제 슬슬 휴대폰을 볼 때가……
“야! 윤재현-!”
봤다! 나는 재빨리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려 숨었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을 덮은 이불 위로 무언가가 던져진 것 같다. 휴대폰이겠지. 이불을 끌어당기길래 나도 지지 않고 몸을 둘둘 말았다. 정지운이 올라타다시피 해서는 내 등짝을 마구 때렸다.
“너 이거 뭐야. 어?”
“아. 아파!”
“안 속아. 너 이제 안 아픈 거 다 알거든? 나와. 좀 맞자.”
“아냐. 아프다니까! 아!”
사실 진짜 안 아프다. 그래도 일부러 아픈 척을 하며 몸을 동그랗게 말고 숨죽여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