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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사 (9/14)

유명인사

“안녕하세요. 윤재현 씨 맞죠.”

“네. 안녕하세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기분으로 테이블 맞은편의 남자와 악수했다. 남자는 머리에 푹 눌러쓰고 있던 야구 모자를 벗어 내려둔다. 샛노란 머리카락을 슥슥 쓸고는 다시 모자를 푹 눌러썼다. 하는 행동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제가 녹음실에만 있다가 방금 나와서 좀 그래요. 그냥 모자 쓰고 있을게요.”

“네. 그러세요.”

그리고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나는 눈앞의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셨고 안준영도 제 앞의 커피를 마신 뒤 하품을 한 번 했다. 한가로운 오후다.

여기는 논현동의 어딘가 뒷골목. 커다란 벤이 진입했다가는 불법 주차된 수많은 차들을 득득 긁고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의 카페 구석 자리다. 오늘 정지운은 자기가 뭐 할 일이 있어 멀리 가지 못하겠다고 나를 불렀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여기까지 왔다. 

난생처음 와 보는 거리라 버스에서 내려선 휴대폰으로 지도까지 켜고 찾아오는 데 고생을 했지만, 그 정도야 그럴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카페에서 마주 앉자마자 테이블에 내려둔 정지운의 휴대폰이 진동을 시작했다. 그것을 우리 두 사람 모두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인상을 팍 쓰며 뭐라고 욕을 하는데 안 봐도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전화를 받는 정지운에게 휙 손짓했다.

“다녀와.”

“미안. 벌써 연락 올 줄 몰랐다.”

“오늘 무슨 일 있을 거라고 말했었잖아. 나 놀고 있을게.”

“혼자 있기 심심하면 누구 불러다 줄까.”

그래서 나는 픽 웃으며 장난처럼 대답했다.

“응. 연예인 불러다 줘.”

“알았어.”

정지운은 벗어뒀던 재킷을 휙 들고 넓은 어깨에 두르더니 걸어 나갔다. 훤칠한 키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훤하다. 금세 사라진 정지운 때문에 혼자 심심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카페의 문이 열렸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의 모양이 익숙했다. 트레이닝복에 품 넓은 후드티를 입고 모자까지 눌러썼는데 말이다. 

키가 큰 남자는 카페 안을 휘휘 둘러보더니 내게로 곧장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앞 의자에 털썩 앉는 게 아닌가. 얼떨떨하게 바라보던 나는 앞에 마주 앉은 얼굴을 제대로 보는 순간 짐작이 맞았음을 알았다. 앳된 느낌의 남자는 화면에서 보던 것처럼 꾸민 생김새는 아니었지만 알아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첫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생각도 못 했건만 말은 먼저 나갔다.

“어. 안준영 씨…….”

“지운이 형이 잠깐 놀아주라고 해서 왔어요.”

도대체 나를 어떻게 알아본 것인가 등등, 물을 정신도 없었다. 그렇게 통성명을 하고 이 어색한 자리가 시작되었다.

안준영은 나와 놀아주겠다고 와놓고선 휴대폰만 열심히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래도 일단은 나랑 놀아주겠다고 온 건데도 손가락을 쉬지 않고 놀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썼다. SNS를 하는 걸까. 최신형 휴대폰의 뒷면만 보다가 커피를 홀짝이며 시간이 흘러갔다. 

드디어 휴대폰으로 할 일이 다 끝났는지 안준영은 휴대폰의 액정을 아래로 가도록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말을 걸어왔다.

“아, 죄송해요. 다른 형들한테 윤재현 씨 보고 있다고 자랑했더니 자꾸 캐물어서요.”

“형들이요?”

“블래스트 형들이요. 다 자랑했어요.”

대답하는 얼굴이 꽤나 뿌듯해서 민망하다. 나는 어디까지 유명인사가 되어있는 걸까.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정지운이 돌아오면 멱살이라도 잡아야 되나 보다. 내 반응을 주시하는 안준영은 무슨 신기한 생물체 보듯 계속 나를 관찰한다.

“지운이 형이 다른 사람 소개시켜준 적 있어요?”

“배우 하는 친구 한 명이랑 아는 형이요.”

“그래놓고 우리만 안 보여줬구나.”

“하하…….”

“저 집 가서 자려고 했는데 지운이 형 연락받고 뛰어왔잖아요. 진짜 궁금했거든요. 인스타로 얼굴은 봤었어요.”

“아, 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모르겠다. 내 대답은 별 상관없는 듯 안준영은 나를 열심히 관찰한다. 나는 아이돌에게 관찰당하는 일반인이 되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정말로 SNS를 끊어야 하는 건 나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건데, 정지운 친구라고 알려진 뒤부터 자꾸 말 거는 사람도 많고. 

얼마 전에는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공들여 셀카를 찍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걸 신경 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청나게 신경 쓰인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도 나는 또 열심히 머리를 만지고 셀카를 찍었다. 사람들에게 받는 관심이 이렇게나 무섭다. 이러다 실수할 거 같으니 꼭 탈퇴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내 계정은 아직 남아있다. 이번 주만. 아니. 이번 달까지만……. 

“지운이 형이 이상한 거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했는데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성질머리죠.”

공감할 만한 주제다. 정지운의 성격. 나의 가벼운 동조에 안준영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윤재현 씨가 지운이 형이랑 아직 사귀기 전에요.”

“네.”

“제가 맨날 언제 자냐고 장난으로 물어봤거든요?”

“네…….”

정지운이 이상한 거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했다면서 주제가 진짜 이상하다. 이 정도는 이상한 축에도 안 드나? 아이돌인 이상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절대 진실이 아님은 알지만,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건 도저히 적응되질 않는다. 아무리 막 나간다 해도 막내 포지션이잖아, 너. 

차마 말은 못 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켜보자니 더 황당한 말들이 입에서 줄줄 쏟아져 나왔다.

“형이 막 왜 물어보냐고. 뭐, 예쁘면 너도 하게? 하면서 저 죽이려고 했거든요.”

“…….”

“하여튼 성격 진짜.”

하게? 뭘 하게? 정지운의 성격을 까는 건데 나는 눈앞의 이놈 성격부터 욕하고 싶다. 예의는 집에 먼저 보냈나. 나는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이 바닥이 원래 이렇게 개방적인 건지 도대체 분간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짜증을 누르며 눈만 깜빡였다. 

다행히 이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카페의 유리문이 크게 열리고 정지운이 걸어 들어왔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거다. 나는 제자리에 앉아 다가오는 정지운을 멀거니 바라만 봤고 안준영은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여기야, 형. 하고. 정지운이 이 자리인 것을 모를 리도 없는데 신나게 우리의 자리를 알려준다. 옆자리에서 의자를 휙 끌어다 앉은 정지운은 마주 앉은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내게 물었다.

“너 표정이 왜 그러냐.”

“어?”

“안준영이 무슨 말 했어?”

“아니.”

분명 아니라고 대답했건만, 내 대답은 아무런 효력이 없는지 안준영에게 윽박지른다.

“너 무슨 말 했어.”

“별말 안 했어.”

“그래서 뭐.”

“그냥. 인스타에서 저분 얼굴 봤다고 하고.”

“또.”

“전에 형이 나한테 뭐라고 했던 거.”

“어떤 거?”

“전에 내가 잤냐고 물었더니 패려고 한 거 있잖아.”

정지운이 안준영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탓에 나는 그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귀를 활짝 열고 무슨 소리든 듣기 위해 대기 중이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행동이 결정될 것이다. 정지운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안준영을 내려다보았다. 턱짓으로 문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나 좀 보자.”

나와 안준영 둘 다 그 말을 듣고 아무런 말을 못 했다. 큰 목소리는 아닌데 목소리 톤이 좀. 묵묵히 서 있는 정지운에게 나 없을 때 이러면 안 될까, 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아니면 별일 없었으니 앉으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커피 잔만 만지작거리는데 안준영은 나와 정지운을 번갈아 보다가 대답했다.

“우와. 형 욕 안 하네.”

“나가자니까.”

“형 지금 자리 피해서 패려고 그러는 거야? 대박이다. 언제부터 이랬다고. 와.”

“일어나.”

“이야. 윤재현 씨, 죄송해요. 제가 지운이 형 성질 죽이고 산다는 말 들어서 진짜 궁금했었거든요. 아까 그런 말 해서 죄송하구요. 아. 근데 눈으로 보니까 더 안 믿겨.”

안준영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벌떡 일어나 테이블 위의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악수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나는 얼떨떨하게 그 사과를 받으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뭐야. 뭐하는 거야, 이놈들. 

정지운이 내 손을 잡고 있던 안준영의 손을 휙 낚아채고는 질질 끌고 나간다. 끌려 나가는 한 사람과 끌고 나가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뭐한 거야, 쟤 지금.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은 시끄럽다.

“아, 형. 잘못했어요. 나 너무 궁금해서 그랬단 말이야.”

“나가서 말해, 시발 새끼야.”

“형. 살려줘. 싸가지 없는 말 안 할게. 약속.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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