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2 (2/14)

Chapter 2

학기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렀다. 시험 문제를 푸는 대로 바로 나갈 수 있는 시험이었기에 남은 사람들 틈을 헤치고 나아가 시험지를 제출했다. 문을 열고 나오자 강의실 안 에어컨의 냉기가 가시며 덥고 습한 기운이 훅 끼친다.

천천히 걸어가며 보니 복도는 낡은 갈색 창틀의 창문들을 있는 대로 열어젖혀 바람이 들어오게 해뒀다. 쏟아지듯 들어오는 것은 햇볕뿐이라 도움 되는 게 없지만 말이다. 원형으로 돌아 내려가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며 생각했다. 사물함 가서 전공 책은 넣어두고 토익 책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

내게 남은 것은 토익뿐이다. 학점이 배신하고 인턴도 배신한 나의 삶은 토익만이 구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내가 받아둔 토익 점수는 800점 선에서 간당간당할 뿐이다. 자격증 시험 응시 자격 중에 토익 700점을 넘어야 하는 게 있다고 해서 받아둔 점수였다. 800점까지 받는 그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생각해보면 이제 고득점을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해야 할지 벌써 감이 온다. 행복한 여름방학을 보낼 수 있겠군.

나는 왜 하필 영어를 못할까. 그래도 시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확실히 아르바이트 같은 일들을 그만두니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다. 철제 사물함에 매달린 자물쇠를 열고 책을 밀어 넣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오늘 누가 연락할지는 안 봐도 뻔해서 누군지 보지도 않고 대충 귓가에 가져다 댔다.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왜.”

―언제 올 거야?

“책 넣어놓고 가져갈 거 꺼내서 정리한 다음에 내려갈 거야.”

―나 오빠 출근길 보고 건물 안에 들어가 있을게.

수연이가 있는 아트홀까지는 걸어서 제법 걸린다. 이 경영관에서부터 천천히 걸어가면 20분이 넘게 걸릴 텐데. 이 더위에 20분 넘게 걷고…… 거기에 토익 책 두꺼운 걸 두 개 들고 간다면…….

―듣고 있어?

“어. 생각 중이라 그래.”

―무슨 생각.

“토익 책 가져갈까 하는.”

―두고 와. 어차피 학교 도서관 가서 공부할 건데. 너 설마 집 가서 그거 펼쳐 보겠어?

아니, 살다 보면 집에서 한 번쯤 토익 책 펴 볼 수도 있는 거지, 이거 왜 이러시나? 수연이가 내 수준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 것 같아서 괜히 울컥한다. 약점을 찔린 사람처럼 말이다.

“볼 수도 있지.”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봐. 초중고 대학교 다 털어서 가져간 책 본 적이 대체 언제야?

그렇게 말하시면 또 할 말이 없지.

“두고 갈까?”

―응. 그리고 올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제 보니까 자기 커피 심부름시키려고 내 손을 자유롭게 만든 모양이다. 휴대폰을 끊기 전 기가 막혀서 한 번 쳐다봤지만, 토익 책은 꺼내지 않았다. 수연이의 커피 심부름은 커피 심부름이고 나는 내일 분명 도서관을 올 것이다. 그리고 이따 수연이를 보내고 나면 서점에 가서 자격증 책들도 한 아름 집어 들어야 될 텐데, 너무 무거우면 안 되지. 그렇잖아도 어깨가 아픈 나에게는 큰 문제지. 암.

가벼운 양손을 흔들며 학교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 기말고사는 남들보다 빨리 끝난 탓에 아직 학우들이 북적북적하다. 학생회관을 지나가다가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캔 콜라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셨다. 항상 후배들을 만나 사주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감개무량한 기분이다. 빨대도 꽂아 쪽쪽 빨며 내려가는 기분은 괜찮았다. 덥긴 하지만 그늘 아래는 시원했고 일단 학기는 끝났다. 사이좋게 모든 인턴을 말아먹은 영한이도 내게 아직 남아있고. 하하하.

번화가 쪽으로 나가기에는 귀찮아서 사람이 적은 편인 뒷길로 공연장을 향했다. 아트홀이라는 흰색의 복잡한 모양의 건물은 대충 눈으로 보기에도 크기가 컸다. 그리고 진짜 이상하게 생겼다. 건물 두 개가 제멋대로 서 있고 그 사이에 통로가 몇 개 겹쳐서 연결되어있는? 나도 가끔 버스 타고 지나갈 때나 본 거지, 여길 내가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건물 뒤쪽에 있는 파란 간판의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 캐리어에 넣었다. 조금 전까지 콜라를 마신 탓에 급하지는 않아 수연이를 만나면 같이 마실 생각이다. 걔는 정지운의 출근길을 보겠다며 공연 시작은 한참 뒤인데 이렇게나 일찍 왔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민석이 형도 아닌데 어쩜 그리 지극정성인지. 공연 전까지 남는 시간을 나더러 놀아달라고 그 난리였던 거고. 캐리어를 든 채 털레털레 걷다가 그 이상한 모양의 건물의 앞에 멈춰 섰다. 어디로 들어갈까.

일단 오른편의 길쭉한 건물은 1층이 전면 유리창인데 딱 봐도 사람이 없고 입점된 가게도 없다. 그럼 여긴 아닐 거고. 그리고 왼쪽 건물과의 사이에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것이 뻔해 보이는 넓은 길이 있다. 그럼 이것도 패스.

왼쪽의 뒷문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단차를 가지고 있는 왼쪽 건물 뒤편 그늘에는 남자 네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 너머로 문이 하나 보인다. 사람들에게 비켜달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돌아가기는 더워서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마침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가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랬다. 들어가려던 남자 중 하나가 내 얼굴을 흘깃 보고는 손짓했다.

“빨리 들어와.”

“네?”

“빨리.”

우리 아는 사이인가요, 아저씨. 절대 아닌 것 같았지만, 나머지 세 명이 들어가고도 계속 문을 연 채 나를 기다리기에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오자 철문은 보통 무게가 아니었는지 뒤에서 무거운 소리로 닫힌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계단 위로 남자 세 명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계단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여긴 내가 들어올 통로가 아닌 것 같은데…….

멈칫하고 뒤를 보려는데 뒤에서 철컥하는 열쇠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문을 잡아주고 있던 남자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자기 주머니에 열쇠를 넣었다. 멍하게 남자의 뒤를 보고 있는데 내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그렇게 자기 일행을 재빨리 따라가 버렸다.

나는 우두커니 혼자 남아 계단에 켜진 비상등을 보고 있다가 돌아섰다. 비어있는 한 손으로 문손잡이를 돌려봤지만 역시나 잠겨 있다. 여기 직원들만 다니는 통로인가. 어쩌지. 긁적긁적하다가 그냥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아마 위에 나가는 다른 문이 있을 거다. 그럴 거야.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방송국에서 대기하다가 건물 뒤편 같은 곳을 가면 다른 팬들이 왔을 땐 안 열어주는 문을 내게는 열어줄 때가 있다. 수연이 말로는 내가 팬처럼 안 생겨서 그렇다고 하고, 내 생각에는 일단 남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오늘은 마침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들고 있군, 그래. 그 뒷문으로 들어가던 애들이 많이 하던 것 중 하나가 커피 심부름이니, 책 한 권 없이 커피를 달랑달랑 들고 오는 내 모습이 심부름 갔다 오는 걸로 보일 수 있겠다.

2층은 복도가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문들이 드문드문 있다. 간혹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두 명쯤 있었지만, 휴대폰을 들고 통화 중이거나 양손에 무대 의상 같은 것을 들고 바쁘게 지나가는 탓에 말을 못 붙였다. 나가는 길만 알고 싶은 것뿐인데도 와서는 안 될 곳에 왔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말이 안 나온다. 어떤 문은 그 안을 살짝 들여다봤는데 마룻바닥과 온 벽면이 유리인 것을 보니 연습실인 것 같아 들어가지도 않았다.

어색하게 앞을 향해 걷는데 바로 옆의 문이 벌컥 열렸다. 짤막한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가 나오다가 지나치게 깜짝 놀라는 나를 봤다. 별 의도 없이 본 것이겠지만 입술이 말랐다. 그런 내 태도가 딱 봐도 이상해 보였는지 남자의 금테 안경 너머 눈동자가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거기서 내가 더 기겁할 정도로 놀란 것은 그 뒤로 보이는 남자였다. 정지운이 이목구비를 진하게 강조한 화장을 한 채 따라 나온 것이다. 여기서는 진짜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정지운도 그런 나를 보고 1초쯤 있다가 눈동자가 커졌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침묵이 잠깐 흘렀다.

“너 어디 애냐?”

남자는 그런 나를 보고 결국 물어보고야 말았다. 잘못 들어온… 까지 말을 하려는데 정지운이 뒤에서 덥석 말을 받았다.

“제가 데려온 애예요.”

천만다행으로 나를 보고 있던 남자의 몸이 뒤로 돌았다.

“니가? 매니저 다른 애잖아.”

“저 매니저 두 명 데리고 다녀요.”

남자는 정지운의 말을 듣고는 타박했다.

“뭘 둘이나 데리고 다녀, 이놈아.”

그러게 말입니다. 지가 뭔데 두 명이나 매니저를 데리고 다닌다고. 그 와중에 나는 아저씨의 편을 들었다. 그런데 날 배신한 아저씨는 나를 돌아보며 영 탐탁잖은 목소리로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너는 슬리퍼 말고 신발 좀 똑바로 신고 다니고. 아무리 편해도 일을 하러 다니는데, 쯧쯧.”

“제가 말할게요. 하여튼 말을 안 들어.”

“아니… 그게…….”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상황은 마무리됐고 아저씨는 자기 갈 길을 떠났다. 내가 가려고 한 입구로 추측되는 곳으로. 그리고 나는 얼떨결에 정지운의 손이 어깨에 둘러지더니 방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좁은 방 안은 지금껏 내가 브라운관 안에서 보던 그 모양새와 똑같이 생겼다. 문 오른편 기다란 옷걸이에는 별의별 요란스러운 옷이 걸려 있고, 왼편은 화장대처럼 생긴 가구에 조명까지 훤하게 달아놓은 그런 모양새 말이다. 그리고 내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두르고 있는 연예인님까지.

완벽한 배경과 완벽한 출연진. 나만 빠지면 드라마 속 한 장면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다. 나만 빠지면 말이다. 내가 겪기에는 지나치게 다이나믹한 사건이다.

그렇게 얼빠져 있는 사이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문이 쾅 닫히고 내 몸뚱어리는 휙 돌려져서 정지운에게 양어깨를 잡혔다. 매년 20대 30대 여성 선호 연예인 순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외모가 부담스러운 화장을 칠한 채 나를 빤히 바라봤다. 조명이 얼굴의 반을 비추며 콧대도 반듯하다고 강조해줬다.

이런 얼굴을 눈앞에 두고 딴짓하기에는 지나치게 주목받고 있는 터라 눈길도 돌리지 못한 채 매끈한 이마 위로 흐르는 정지운의 머리카락 가닥을 봤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건 무엇인가. 뱅뱅 도는 물음이 혼란스러워질 때 눈앞의 입술이 먼저 열렸다.

“이름.”

“네?”

“이름 말이야. 너.”

“……왜….”

여기까지 말하는데 눈매가 매서워졌다. 아니, 내가 뭐 그렇게 잘못했나.

“윤재현, 인데요.”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정지운의 말꼬리가 올라갔다.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쩌자고 이 깊은 곳까지 들어왔는지. 그사이 손에 들려 있던 커피 캐리어 안에서는 얼음이 녹는지 달각하는 소리가 울렸다. 기어이 내 대답을 듣겠다는 표정이기에 천천히 과거를 되짚어봤다. 그게 그러니까.

“건물 뒤에 있다가.”

“있다가.”

“누가 문을 열어주길래 그냥 들어왔는데요.”

“…….”

“나가는 길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그렇게 삐뚜름하게 봐도 나는 할 말을 다 했는데요. 정말 더 이상 붙일 사족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이게 다야. 물론 이놈이 뭘 숨기나 싶겠지만, 이게 다야. 진짜야. 좀 믿어라.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모를 표정이 이상해지고 내게 들이밀었던 얼굴이 천천히 떨어졌다. 어깨에서 손도 풀어주긴 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잔뜩 긴장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아, 어깨 결리는 것 같아.

정지운은 멀뚱하게 서 있는 내 모양새가 어이없다는 듯 팔짱 끼고 웃는다. 미소 짓다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도 지었다. 그리고는 내 손에 들린 커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줘.”

“아뇨. 별로 안 무거운데. 그냥 나갈 길만 알려주시면…….”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아귀에 잡혀 있던 커피 캐리어의 손잡이를 뺏어 드는 게 아닌가. 내 손가락을 아무렇지 않게 풀며 가져가는 바람에 접촉에 놀라 그냥 놔버렸다. 닿았던 손바닥과 손가락이 긴장 탓에 간질간질하다.

그 와중에 뺏어 간 내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서는 빨대를 꽂아 마시는 게 아닌가. 쪼로록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자 말문이 막혔다. 그거, 내 건데……. 정지운은 입술 사이에 물고 있던 파란색 빨대를 살짝 빼고 말했다.

“내가 마시려고 달라고 한 건데?”

“…….”

명절에 가끔 보는 사촌 형이 하나 있는데 딱 그 인간 같은 놈이다. 세상만사가 지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아는. 어이없어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킥킥거리더니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나를 의자에 앉혔다. 이번에는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뭐요.”

“휴대폰.”

“네?”

“매니저 불러서 내보내라고 할 테니까 휴대폰 줘봐.”

“왜 제 걸로 해요?”

“어디 뒀는지 기억 안 나.”

다름 아닌 내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 마시면서 저렇게 말하니까 싸가지 없어 보이고 좀 그렇다. 그래, 다 내 잘못이지.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 들어온 나 말이다.

천천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잠금을 풀자마자 기다란 손이 재빨리 낚아채 간다. 번호를 꾹꾹 누르고 진짜 자기 매니저를 부르는 것 같기는 했다. 잠깐의 통화 끝에 내게 도로 내밀어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 순간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 한 명이 불쑥 들어왔다. 이 사람도 뮤지컬을 하는지 얼굴에 분칠을 잔뜩 해둔 상태였다.

“정지운 씨. 아, 손님 있네.”

“곧 갈 거예요.”

“누군데?”

들어온 남자는 내 모양새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예의상 하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영 대답할 말이 없는 나를 대신해 정지운이 이번에도 먼저 대답했다.

“우리 회사 연습생. 잠깐 나 보러 왔어요.”

“아…….”

훑어보는 눈이 더 크게 위아래로 향했다. 바라보는 시선이 영 탐탁잖다. 내가 연예인처럼 화장이라도 하고 다녀야 하나, 아니면 이 사람도 슬리퍼가 그렇게 싫은 건가. 그래도 이런 애가 연습생 하냐는 말은 하지 않는 걸 보니 예의는 있는 것 같다. 생각보다 집요하게 시선이 붙자 정지운은 그 앞으로 가로막으며 캐리어에 남아있는 커피 한 잔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깜박였다.

“드실래요? 얘가 사 왔는데.”

“아, 고마워. 잘 마실게요.”

“아, 네…….”

얼떨결에 남은 커피 하나까지 빼앗겼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을 봤나.

좁은 방 안에서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남자가 공연 끝나고 회식을 어디로 갈 건지 말하는 동안 정지운은 화장대 같은 곳에 기대서서 빨대 끄트머리만 물고 있었다. 그래서 분위기는 몹시 어색했다. 오죽이나 어색했으면 기대서 있는 정지운의 기럭지가 몇 등신일까를 세보기까지 했다.

이렇게 가기 싫어하는 티를 내는데 같이 회식 안 가면 하늘이 무너질까. 남자에게 그런 말도 묻고 싶었지만, 나는 어느 누구와 다르게 사회성이 좋아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정규 회식도 아니고 그냥 배우들끼리 술 마시러 가자고 하는 것 같구만.

내 커피가 그리워질 때쯤 모습을 드러낸 매니저가 분위기를 깨고 소음을 만들어줬다. 문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고는 나 정도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커피 캐리어를 양손에 가득 든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앞의 남자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해 보이더니 커피들을 화장대 위에 내려둔다. 그렇게 말이 끊어진 사이 정지운은 나를 손짓했다.

“창식아, 얘 좀 밖에 데려다줘.”

“네, 형. 커피 가져왔어요.”

그룹 활동 다닐 때는 못 봤던 매니저 같은데. 정지운은 제 옆에 내려놓은 커피 중 두 개가 들어있는 캐리어를 내게 건넸다.

“이거 가져가.”

“아. 네.”

뺏어 갔던 거 다시 주는 거니까…… 고맙다고 할 필요 없는 거 맞지? 말없이 멍청하게 커피를 받아 드는 내 표정이 웃겼는지 도화지 같던 정지운의 얼굴에 표정이 스며들었다. 그것도 어색해서 재빠르게 나가려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한다.

“다음에 보자.”

진짜 다음에 또 볼까 무서운 인사는 하지 맙시다, 우리. 재빠르게 문을 닫고 앞서 걸어가는 매니저의 등을 쫓아가려니 식은땀이 난다. 어색해서 오그라드는 줄 알았네. 그렇게 몇 걸음 더 쫓아가는데 매니저가 불쑥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저는. 그러니까. 윤재현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나는 윤재현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매니저는 내 대답을 무슨 의미로 해석했는지 모르겠지만 고개 숙여 인사했고 나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리문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가기 전 마지막 감사 인사를 하고 유리문을 밀어젖혔다.

바깥은 소란스러웠다. 티켓을 배부하는 사람들. 돌아다니는 관객 몇 명. 나는 그 앞에 멍청하게 서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생각했다. 오른손에 덩그러니 들려 있는 커피는 아까 내가 사 온 커피가 아니라 정지운이 쥐여준 커피로 바뀌어있다. 현실감 없었던 방금 일의 증거를 들어 올리고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 콘서트장에서 나 왜 물 뿌렸냐고 물어볼걸. 아니다. 아마 기억도 못 하겠지. 아까 들어온 남자에게 신경도 안 쓰던 걸 보면 그럴 거 같다. 저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윤재현! 너 언제 올라왔어?”

“방금 전에.”

“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에이.”

햇살이 훤하게 들어오는 건물의 유리 외관 쪽 계단에서 수연이가 올라오며 나를 불렀다. 나는 터덜터덜 수연이를 향해 걸어갔다. 밖이 더웠는지 평소에 풀어 헤치고 다니던 머리는 높게 묶어뒀다. 가까이서 보자 이마에 옅게 비치는 땀방울도 보이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수연이가 내 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가져간다. 그게 무슨 아메리카노인지 말해줄까 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생길 것 같아 그만뒀다. 말해주더라도 나중에 좀 시간이 지나서 해줘야지. 게다가 아까 그게 무슨 상황인지 나도 아직 잘 몰라서 그렇다. 우리는 공연장 구석에 있는 소파로 걸어가 나란히 앉았다. 수연이가 제 손에 들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말했다.

“커피 왜 비싼 거 사 왔어, 미안하게. 돈 줄까?”

“아냐. 많이 먹어라. 남기지 말고.”

“응.”

남기지 말고 먹으라는 내 진심 어린 조언에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커피를 옆 소파 위에 예쁘게 내려둔다. 그리고 뭘 하나 봤더니 자기가 오늘 앉을 뮤지컬 표를 그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 중이다. 트위터에 올릴 모양이네. 그걸 보고 있다가 별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나도 조만간 다른 아이디로 트위터 다시 시작해야지. 특별하게 하는 건 없지만 습관적으로 열어보던 게 없어서 심심해.

와 있는 카톡들을 보는데 새로 온 문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모르는 번호라 더 눈에 띄었다. 열어보기 전부터 불길함이 엄습했건만, 그걸 괜히 무시하고는 열어봤다. 짧은 한 줄의 문자가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잘 가 사생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번호인데 보자마자 누군지 알 수 있도록 보내는 것도 능력이라는 건 알겠네. 수연이를 슬쩍 보니 자기 트위터 하느라 정신 팔려 있다. 각도를 틀어 액정이 보이지 않도록 한 다음 고심 끝에 답장을 꾹꾹 눌러 보냈다.

[아닌데요]

[앞으로는 들어오면 안 된다]

이거 봐라.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는 거. 인성이 왜 저 모양일까.

[아니라니까요]

[내가 사준 커피 잘 마셨어?]

아니, 뭐 이런……. 이젠 존댓말 따위 하지도 말자. 니가 마신 거 돌려준 거잖아!

[내 커피 가져가고 준 거잖아]

[그건 내가 도와준 값으로 쳐야지]

[무슨 소리야]

[내가 도와준 값]

아이고, 그냥 말을 말자. 대화할수록 내 성질만 버리는 기분이다. 정지운이 다른 개인 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는 성격이 이 모양 이 꼴인 게 드러날까 봐 막았던 게 아닐까 싶다. 혹시 그게 맞다면 소속사의 판단이 아주 현명했어.

이 번호 설마 자기 번호일까? 아니면 매니저 번호? 휴대폰을 그냥 끄려는데 문자가 다시 왔다. 그걸 무시했어야 했는데 또 읽고야 말았다.

[그리고 트위터에 이 번호 올리면 나도 니 번호 올릴게 알았지 재현아?]

아…, 재수 없는 새끼……. 욕은 안 하고 싶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라버렸네. 그래도 블래스트니까 욕 안 하고 싶었는데, 결국 욕해버렸어. 내 혈압이 걱정된다. 얘 나한테 대체 왜 이럴까.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크게 숨을 들이쉬자 옆에서 제 할 일을 다 한 수연이가 물었다.

“너 왜 그래?”

“왜?”

“얼굴 빨갛다. 더워?”

“아냐.”

그냥 아주 조금 화가 났을 뿐이다. 아주 조금.

수연이는 공연장 문이 열리자 오두방정을 떨다가 들어갔다. 마지막에 내 손을 꼭 잡고는 ‘다음에 같이 보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는 것으로 우리 우정을 지켰다. 나는 지금 자취방에 들어가면 노트북을 켜 정지운의 약력을 조사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약점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어디에 퍼트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찾아만 두려는 거다. 진짜다.

수많은 여자들이 공연장 입구로 들어가는데 나는 마치 연어인 양 그 흐름을 거슬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한 손 가득 안아 들었다. 자격증 문제집 하나와 토익 실전서는 두 권.

오는 길에 연락이 와서 잠깐 카페에 가 친구들 사이에 앉아있기도 하고, 건물 앞 편의점에서 도시락도 하나 데워서 가져왔다. 요즈음 편의점 도시락을 너무 자주 먹었더니 눈만 감아도 그 맛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걸 사 먹기는 귀찮고, 내일은 밥버거로 때워야지.

그러고 집에 들어와서도 빈둥거리다가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책상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숟가락을 막 들려는데 휴대폰이 진동한다. 무심결에 확인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정지운이다. 이번에는 무슨 시비를 걸려고 이러시나.

[뭐해]

[밥먹는다]

얘 친구 없나. 음, 생각해보니 그럴듯한 이론이다. 그 성질머리에 어디 친구가 있겠어. 회식도 안 나가, 싸가지도 없지. 아, 맞다. 물어볼 게 마침 떠올라서 문자를 눌렀다.

[나 왜 이렇게 괴롭혀?]

[내가 언제]

[콘서트에서 물 쏟은 거 기억 안 나?]

말하고 보니 기억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전송 버튼을 눌러버린 후였다. 이놈이 나 같은 새우젓에게 한 짓을 기억할 리가 없지. 괜히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이는데 그래도 답장은 빨리 왔다.

[그러는 너는 내 위치 트위터에 올렸으면서]

[나 아냐]

하도 욕을 먹은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일단 발뺌해봤다. 이렇게 잡아떼면 난 줄 어떻게 알아. 이미 계정도 삭제했는데. 아, 아까운 내 계정. 사진을 찍거나 팬 아트를 그리는 게 아닌 이상 나 같은 사람은 팔로워 모으기도 힘들단 말이다.

[너 맞는 거 같던데 남자팬]

[아니라니까]

[나 그날 런닝맨 찍었다 뛰는 거 귀찮아서 런닝맨 나갔을 때도 제일 먼저 잡혔거든 근데 너 때문에 그날 리얼리티 런닝맨 찍었어 내 친구가 너 잡으면 가만 안둔다고 함]

[다른 사람이야]

[애들이 너라고 이미 말했어]

내가 뭐 하늘이 무너질 만큼 큰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일단 못 본 척하기로 하고 휴대폰을 내려뒀다. 눈길을 도시락으로 돌렸다. 나는 문자를 보지 못한 거다. 밥을 먹는 중이다.

∞ ∞ ∞

2016년 여름방학. 나에게는 이상한 친구가 하나 생겼다.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친구라고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난 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딱히 성격이 맞는 것도 아니다. 도서관에서 꾸역꾸역 공부하다가 와 있는 문자를 보면 이상하게 성질나는 그런 사람.

생각해보니 친구도 아니군. 나보다 두 살이 더 많다. 이렇게나 이상한 접점과 애매모호한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정지운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그 이름 맞다.

내가 이렇게나 투덜거리는 것에 비해 문자를 잘 받고 차단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정지운이 내가 좋아하는 블래스트가 맞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비록 나와 정지운 사이에 의도치 않은 사건들이 좀 생겨서 감정의 골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가 맞다.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카톡 사이에 간간이 들을 만한 정보가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서 밥 먹었냐고 하길래 그러는 너나 먹어라, 라고 했더니.

[민석이 다이어트하는데 일부러 앞에서 자장면 먹었어]

라는 답변을 받는 일 같은 거 말이다. 나는 걷고 있던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다른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하면 관심병이 도졌나 하겠지만, 이 사람은 정지운이다. 블래스트의 멤버이고, 현재 그룹으로 활동 중은 아니지만 민석이 형과 밥 정도는 충분히 같이 먹을 수 있겠지. 남에게 관심받으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일상이 이럴 것이고. 그런데 민석이 형이 왜 다이어트야? 뺄 살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보다 손가락이 더 빠르고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다이어트한다는데 굳이 앞에 가서 먹는 건 뭐야 그럴 거면 정지운씨도 빼]

[나는 웨이트 하느라 그래서 넌 뭐 먹었냐고]

[삼각김밥 먹었다]

삼각김밥 먹고 컵라면도 먹고 아이스크림까지 해치웠지만, 다 말하기는 너무 귀찮았다. 다시 걸음을 도서관 쪽으로 향하는데 또 진동이 온다. 더워서 음료수라도 하나 더 사 마셔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넌 매일 김밥이냐]

그거야 니가 매일 뭐 먹냐고 묻길래 귀찮아서 내가 항상 김밥이라고 대답해버렸기 때문이지.

[내 맘이야]

[음료 기프티콘 가질래?]

기프티콘…? 아주 조금 설렜지만 나를 괴롭히려는 수작인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문장을 노려봤다. 뭘 보내줘서 눌러보면 바이러스 걸리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일단은 한 번 튕기자.

[어떤 건데? 너 써]

[나는 안 쓰는 거 많아 가져라]

[그럼 필요없는 거만 줘]

욕망과 자존심 사이에 갈등하다가 나만 아는 자존심 세우기를 뭐에 쓰겠냐 싶어 달라고 했다. 그때 지나가던 여자 후배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기에 자격증 이야기를 좀 했다. 손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까맣게 잊고.

후배를 보내고 난 뒤 확인하니 내가 안 보는 그 짧은 사이 정지운이 뭘 끝도 없이 보내놨다. 깜짝 놀랐다. 음료뿐만 아니라 대충 올라가는 걸 보니 별게 다 있다. 아직도 하나씩 보내고 있는 기프티콘을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만 보내 너무 많잖아]

[그래? 그럼 필요할 때 더 말해]

그동안 보내놓은 기프티콘을 세어보려 스크롤을 손가락으로 올리다가 꼼지락거렸다.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치킨, 피자, 프랜차이즈 커피점. 빕스, 아웃백 등등……. 무슨 기프티콘 종류가 이렇게 많지? 밥집도 요즘 기프티콘을 파네. 대충 세어보아도 열 몇 개가 넘어간다. 세상에.

[이걸 다 받았다고? 어디서?]

[친해지면 주더라고 너 써]

나 이거 써도 되는 걸까. 출처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느낌이 오지 않은가. 사람들이 정지운에게 왜 이런 걸 보내는지. 아부하고 작업 걸기 위해 보내진 기프티콘의 종착지가 고작 사생으로 착각 받고 있는 나라니. 그들이 알면 땅을 치고 울겠지 싶다.

내가 쓰기에는 양심이 걸리적거리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찝찝함을 떨쳐냈다. 정지운이 설마 이걸 쓰겠어. 왠지 입안에 스테이크만 넣게 생긴 놈이라 안 쓸 거 같아. 그래. 내가 안 쓰면 이거 다 유효 기간만 지나겠지. 나를 위한 합리화의 시간은 짧았다. 그리고 인사성 바르게 인사도 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래 저녁에 먹어]

그때부터 정지운은 자꾸 어디서 뭘 받았다며 기프티콘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내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서 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수연이에게 그 날의 일은 아직 비밀인 채로 남아있다. 그 뒤로 정지운과 문자를 주고받고 있고, 지난주에 내가 사준 커피가 사실은 정지운이 준 기프티콘으로 먹여준 것이라는 것 등등, 모든 일들이 말이다.

내 인생에서 정수연이 이렇게 새까맣게 모르는 일이 있었던가. 내 기억이 맞다면 없을 텐데. 일이 정리되면 말해주려 했건만, 진행형으로 바뀐 탓에 그 타이밍을 놓쳐버린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말하는 게 나았을까. 아니다, 그럼 지금쯤 내 휴대폰은 내 것이 아니라 정수연 손아귀에 들어가 있겠지.

그래도 수연이에게만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 어디에도 말을 못 하고 있는 터라 죄책감은 덜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믿기는 이야기라 그렇다.

생각해보자. 내가 학식을 먹다가 뜬금없이 영한이에게 ‘나 정지운이랑 카톡 한다. 짜잔.’ 이렇게 해서 무엇에 쓴단 말인가. 애들이 좋아하는 레이디즈라든가 하는 여자 아이돌이면 자랑할 만한 게 있겠지만, 남자 아이돌을 자랑하는 건 쓸 데가 없지.

그래서 정말 의도치 않게 혼자만의 비밀 카톡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끔 프로필 사진이 바뀔 때마다 부담스럽게 잘생긴 정지운의 얼굴을 한 번씩 눌러보고, 나는 또 괜히 정지운의 친구 목록에 내 못난 얼굴을 자랑하고 싶지 않아 풍경 사진 같은 걸로 프로필 사진을 바꿔두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토익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다음 달 토익을 또 등록한 우울한 일요일 저녁이다. 오늘도 정지운은 쓸데없이 나와 카톡 중이다. 결국 배우들과 술을 마시는 그 회식에 끌려간 상황이라 말이 많았다.

[가기 싫다더니 결국 끌려갔네?]

[오랜만에 술은 마시고 싶어서]

[같이 술 마실 친구도 없구나]

[하반기 준비하느라 다들 다이어트중이야]

[그럼 그냥 앉아서 먹어]

[너 나올래?]

[뭐?]

[여기 공연장 근처야]

어? 뭐? 뭐라고? 왜 나를? 졸려서 헛것이 보이나. 눈을 비벼봐도 액정에 나타나 있는 글자는 그대로였다. 너 나올래? 라는 정지운의 말. 우리 사이 그런 거 아니잖아. 그러니까 뭐랄까. 가운데 무언가 거대한 벽을 두고 알고 지내는…… 트위터의 트친 같은 존재 아니었어? 너는 내게 기프티콘과 정보를 주고 나는 너의 말을 들어주는 고민 인형 같은 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간 보기 위해 보낸 답장은 이랬다.

[그래도 예의상 앉아있는 게 낫지 않을까]

[아냐 지금 일어나주는 게 예의일걸]

[왜?]

[방금 옆에 여자가 내 허리 만지길래 욕해서 분위기 별로야]

이유가 신선하기는 하군. 보통 술자리에선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지운이 이런 걸로 괴롭힘당했다고 하니 신빙성 있기는 하다.

[진짜 나 나가?]

[사줄게]

[뭐 사줄 건데]

[이태원 넘어가서 칵테일 마실까]

이태원, 칵테일. 재밌기야 하겠지. 재밌을 거 같다는 이 생각도 추상적인 상상이다. 내가 가본 적이 있어야 아는 건데 거길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핫플레이스라고 유명한 곳이니 아마 재밌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정지운인데 재미없거나 맛없는 데를 가겠어. 잘나가는 애들은 이런 데도 잘 알 거야. 내가 나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

나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급하게 단체 카톡방에 조언을 구했다. 막 치킨집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나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얘들아 잠깐만, 연락은 자주하는데 거의 안본 형이 술사준다고 하면 나갈거임?]

[뭐사준대?]

[학교선배? 너귀찮게하거나 뭐상담한대?]

[이태원칵테일사준대 술먹고싶은데 먹을사람없다고 그냥부르는 듯]

[나가 ㄱㄱ]

[이태원 칵테일사준다는데 나라면 별소리해도 일단들을듯ㅋㅋㅋ]

애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 대신 많이 뜯어먹으란다. 별일이야 있겠나. 어색하면 다음부터 안 보면 되지. 뜯어먹는 데 별 부담도 없잖아. 그리고 연예인이 어떻게 노는지 궁금하다는 호기심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재밌는 것도 많을 것 같고. 마음을 다잡고는 단체 카톡방에서 나와 답장했다. 나름대로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 나 지금 씻고 나갈게]

[나올 때 말해 공연장 앞으로 갈게]

나 정말 나가나 봐. 세상에. 자리에서 일어나 해야 할 일을 세 봤다. 씻고 옷은 뭐 입지? 아무래도 잘생긴 놈을 보려니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떡 주무르듯 주물주물 해보다가 결연한 표정을 짓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젖은 머리는 수건으로 탈탈 털고 바깥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드라이까지 해보고 싶었지만, 정지운이 혹시라도 가버릴까 싶어 빨리 나왔다. 나도 핫플레이스는 핫한 모습으로 가고 싶은데 도움을 안 주네.

저 멀리 보이는 인영이 차근차근 가까워질수록 나는 긴장감으로 가슴 밑이 간질거린다. 가로등 옆에는 무성한 잎의 나무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고 정지운은 가로등에 기대 바닥을 보고 있었다.

보고 무슨 말을 해? 야, 안녕. 이렇게 말하기는 너무 어색하고. 안녕하세요, 정지운 씨. 이렇게 말하면 나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을 거다. 어색해서 말이다.

내 걸음 소리가 적막해진 거리를 울리고 거기에 맞춰 정지운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걸음을 천천히 했다. 그러니까… 말을……

“세수한다는 줄 알았더니 샤워했네.”

“어? 어.”

“근처에 괜찮은 생맥줏집 있어? 마시고 넘어가자.”

“아. 저기 골목 끄트머리에 작은 수제 맥줏집 있어. 사람 별로 없을걸.”

“저기?”

생각보다 어색한 건 없었다. 정지운은 지난주에도 만난 사람처럼 나를 대했고 나는 거기에 말려들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킨 학교 정문 왼쪽의 골목으로 우리는 나란히 향했다. 물론 그사이에 힐끔 돌아본 정지운의 생김새가 일반인스럽지 않아서 다시 어색해졌지만 말이다.

가까운 곳이라 금세 도착했는데, 늦은 시간이 좀 걱정된다 했더니 역시나 문을 닫으려는 분위기다. 항상 나와 있던 무릎 높이의 입간판이 접힌 채 입구 앞에 기대 있었고 주인아저씨가 나를 보고 미안한 듯 웃음 지어 보이셨다.

“재현이 왔어?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왔어.”

“아, 일요일이지. 지운… 씨. 우리 다른 데 가자.”

아저씨는 내가 처음 데려온 훤칠한 키의 정지운을 유심히 바라보셨다. 그리고 정지운은 그 시선을 부담 없이 받아들이며 제 머리를 덮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아저씨의 시선이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시다가 눈동자가 커졌다. 알아봐도 되나? 괜스레 내가 걱정되는데 정지운이 물었다.

“시간 다 됐나요?”

“아, 아닙니다. 저희 손님 계실 때까지 해요. 자, 들어오시죠. 재현아, 얼른 들어가.”

정지운은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가게 안으로 슥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이 믿지 못할 상황을 보고 기가 막혔다. 아저씨…! 우리가 왔을 때는 칼같이 닫았으면서! 내 배신감 넘치는 눈길을 보셨는지 아저씨가 겸연쩍은 듯 말했다.

“재현이 너 저런 친구가 있었냐?”

“아저씨 쟤 알아요?”

“티브이 나오는 그 잘생긴 애잖아.”

정지운의 위대함을 눈으로 확인하니 좀 그렇다. 별거 안 해도 잘생긴 걔로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근데, 잘생긴 건 그렇다 치고.

“그게 아니라 아저씨 닫는 시간이잖아요.”

“허허. 아냐. 어서 들어가서 앉아라.”

세상은 더럽다. 단골 술집 아저씨도 나를 이렇게 배신하다니. 그 와중에 제 얼굴을 써먹은 정지운은 창가의 높은 의자에 앉아 내게 손짓했다.

“뭐해?”

“……주문한다. 아저씨 에일 두 잔 주세요.”

성형외과라도 찾아볼까.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정지운의 맞은편에 앉았다. 맥주는 아저씨의 재빠른 솜씨로 바로 나왔고 우리는 가볍게 잔을 부딪친 다음 시원한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입안에 쌉싸름한 에일의 기운이 감돌았지만 기분은 좋아졌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창밖으로 보이는 담벼락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하게 이파리를 피운 채 바람에 흔들렸다. 조용했던 술집에 다시 음악도 흘러나왔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 되어 몸을 늘어뜨려 앉았다. 맞은편에서 모자를 테이블에 벗어둔 채 맥주를 마시는 정지운의 입술을 보다가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래, 잘생긴 건 좋은 거니까.

“무슨 생각하는데 그렇게 봐?”

“잘생긴 건 좋겠다 싶어서.”

“좋긴 하지.”

“나도 성형외과나 알아볼까.”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는데 정지운의 표정이 뚫어져라 내 얼굴을 샅샅이 훑는다. 눈꼬리나 턱선까지 꼼꼼하게 훑던 시선이 느릿하게 떨어져 나갈 때쯤 나는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뭘 저렇게까지 쳐다보냐.

“하지 마.”

“왜?”

“지금 균형이 딱 맞잖아. 건드리면 다 건드려야 돼.”

“답이 없다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라.”

정지운은 혀를 차며 맥주를 마신다. 나름의 칭찬임을 알았지만 냅다 받아들이기는 민망해서 그렇게 말한 건데, 너무 멍청이 취급해서 좀 후회 중이다.

빠르게 비워진 맥주잔이 치워지고 또 한 잔씩 눈앞에 서빙된다. 이번에는 흑맥주로 시켰다. 정지운은 제 앞에 놓인 맥주를 한 번에 절반이나 들이켰고 나는 몇 모금 마시다가 내려놨다.

“잘 먹네?”

“술 마시고 싶었다니까.”

“집에서라도 맥주는 먹을 수 있잖아.”

“오늘 회식한다고 핑계 대고 술 마시는 거야. 다른 건 다 먹어도 술은 자제해야지.”

“아.”

“살보다도 붓기가 심해져.”

그럼 오늘은 작정하고 마신다는 거군. 그래, 사람이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마시든 그냥 내버려 두고서 내 맥주를 마셨다. 정지운은 가끔 내 성질을 긁는 장난을 쳤지만, 그래도 괜찮은 술친구였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꽤 재밌는 이야기도 많았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 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다른 친구들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게 되는 걱정들이 이 자리에서만큼은 자취를 감췄다. 정지운은 이번 뮤지컬에 관련된 사람들 사이의 권력 구조를 이야기했고, 나는 정지운과 같이 공연하는 배우가 전에 찍었던 영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블래스트 이야기, 블래스트에게 곡을 준 유명 작곡가의 뒷담화 등. 취기가 살짝 오르자 나는 정지운에게 손가락질을 할 만큼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정지운 씨 너 안무 좀 더 열심히 하면 안 돼?”

“내가 안무까지 잘하면 너무 눈에 띄지 않겠냐?”

“아, 재수 없어. 아.”

“내 말이 맞을걸.”

“그래도 아이돌이잖아. 본업을 열심히 해야지.”

“내 마음이야. 그리고 너, 언제까지 정지운 씨라고 할 거야? 형이라고 해.”

“싫어. 너는 정지운 씨다.”

정지운은 그저 네 마음대로 하라며 웃었다. 눈을 살짝 접는 그 웃음이 보기 좋아서 나는 순간 이 인간이 여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아, 정말 좋겠다. 여자면 얼마나 예뻤겠어. 이따위 생각을 할 정도로 취했다. 이렇게 기분 좋을 만큼 취기가 올랐을 때 우리는 이태원으로 가기 위해 가게를 나왔다. 주인아저씨의 더없이 다정한 배웅 인사까지 들으면서 말이다.

“택시 타도 돼?”

“모자 쓰면 어른들은 잘 못 알아봐.”

그 말이 맞았다. 밤이라 빈 택시는 많았고 정지운이 모자를 쓴 채 올라타자 택시 아저씨는 우리의 목적지를 듣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는 별 관심도 주지 않으신 채. 안심하고서 택시 바깥으로 휙휙 지나가는 야경에 정신 팔려 있다가 택시가 공연장 앞을 지나가자 문득 생각났다. 아, 그 회식.

“그거 진짜야?”

“뭐.”

“여자가 허리 만진 거.”

“응. 진짜.”

“욕한 것도?”

“했어.”

굳이 따지자면 물론 허리를 만진 쪽이 잘못이긴 하다. 그래도 욕까지 했다니 좀 걱정이다. 정지운의 평판 같은 것 말이다. 내가 고민할 만큼의 평판이 남아있기는 할까 궁금하지만, 그렇다. 내가 조용해지자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고 옆에서 피식 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보고 욕했다니까 그래?”

“그게, 그렇기도 하고. 사람들 다 듣는데 좀 그렇지 않나.”

“거기서 내버려 두면 다음에 더 지랄이야.”

“그래, 나는 잘 모르니, 뭐.”

“그리고 걔가 그냥 허리에 손댄 게 아냐.”

“그럼?”

정지운이 내 옆으로 가까이 와 갑자기 거리를 좁혔다. 등을 기댄 시트가 옆으로 바싹 붙는 남자의 몸무게 때문에 기운다. 왼쪽 팔에는 체온도 닿았다. 가까워진 거리가 신경 쓰여 몸을 조금 일으키려는데 차 시트와 등 사이로 정지운의 팔이 슥 끼어들어 내 허리 오른쪽으로 감겼다. 허리를 꽉 잡는 손이 간지러워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이게 다가 아니라.”

그리고 손가락이 얇은 티셔츠를 걷고 안으로 쑥 들어오자 몸이 펄떡 뛰었다. 약간 뜨거워진 체온이 접촉된 적 없는 허리에 감겨오고, 나는 기가 막혔다. 진짜 이랬다고?

“이렇게 감고 만지다가.”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며 손가락이 맨살을 쓸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바지와 살 사이 약간의 틈을 파고들면서 말이다. 얼빠져 있는 사이 손가락이 어딘가를 꾹 눌렀다. 뼈가 도드라진 곳이었다.

내 입이 기겁해서 벌어지기 전 정지운의 손이 갑자기 들어왔던 것처럼 쑥 빠져나가 내 옷매무새를 다시 바로 한다. 걷어 올려진 티셔츠를 끌어다 잘 덮고는 도닥거리기까지 하면서. 나는 그런 정지운의 옆에서 일련의 상황에 당황을 느낄 새도 없었다. 방금 뭐였지. 뭔가……

“바지 속까지 손이 들어가는데 그걸 웃으면서 빼? 미친년아 꺼져, 라고 해야지.”

“어, 어? 진짜 이랬다고?”

“응. 그래서 걷어차고 나왔어.”

“아, 그래, 잘했어.”

순간 침을 꿀꺽 삼켰다. 정지운은 그새 아무 일도 없다는 양 내 옆에서 약간 떨어져 앉았다. 아, 심장이야. 그래, 인정해주자. 남자가 저래도 충격인데 여자가 갑자기 내 허리에 손을 두르고 옷 속에 손을 넣으려 한다고 생각해봐.

얼떨떨해진 정신이 다 돌아올 때쯤 택시는 이태원의 초입에서 멈췄다. 나는 잘 모르겠다. 정지운이 여기로 오자고 한 거니까. 아직 번화가가 시작되기 전 작은 가게들이 드문드문 이어진 주택가 쪽이었다.

택시비는 내가 내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오늘은 정말 내가 다 뜯어먹는 날인가 보다. 내 뒤를 따라 내린 정지운이 내 등에 손바닥을 가볍게 올리더니 물었다.

“그런데 너 샴푸 뭐 써?”

“뭐? 그냥…… 마트에서.”

“그래? 음.”

뭔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하더니 앞서 걸어 나갔다. 나는 그 뒤를 쫓아가며 혼란스러운 기분을 가라앉혔다. 내 허리. 아까 정지운이 손댔던 그 부분이 간질간질했다.

골목을 걸어가다가 어디론가 이동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정지운이 문을 연 것은 가까운 곳의 1층 가게였다. 좁은 가게는 전면 유리가 안을 훤하게 들여다보이게끔 되어있었는데, 옅은 나무색의 프레임이 마치 가게 안을 사각형 액자 안 풍경처럼 보이게끔 했다. 내부는 어둑하게 켜둔 샹들리에 같은 조명에 더해 테이블마다 촛불이 놓여 있었다.

벽처럼 생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밖에서 보던 것만큼이나 실내는 어두웠다. 좁은 테이블과 소파 사이를 거쳐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자 계단 세 개를 내려가고 벽 뒤로 카운터가 마련되어있다. 멀뚱하게 따라 들어간 나는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벽에 슬쩍 손을 대봤다. 회색 벽지나 페인트인 줄 알았는데, 건물의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채로 남아있는 거였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카운터 뒤의 사람들 중 통통한 여자가 정지운에게 인사했다.

“지운이 오랜만이네. 뒤에 친구야?”

둘이 알아서 인사 잘하고 앉으면 좋겠는데 여자는 굳이 나를 콕 집어다 지목했다. 정지운이 나를 흘깃 뒤돌아보고는 대답했다.

“소속사 아는 동생.”

“그래? 뭐 준비해요?”

변명을 해도 왜 저렇게 하냐. 내가 준비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토익과 취업인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내 두뇌가 한 바퀴 굴러가기도 전에 정지운의 입에서 먼저 변명이 나왔다.

“아이돌.”

“오, 그래?”

누나는 쉐이커 안에 술을 흘려 넣으며 활짝 웃더니 내게 데뷔할 때쯤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꼭 말씀드리겠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 역시 놀라울 테니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닐 생각이다. 플래카드도 걸 거다.

이런 의미 없는 대화가 끝나고 주인 누나가 칵테일을 서빙하러 나간 사이 나와 정지운은 카운터에서도 떨어진 가장 구석 자리 소파에 자리 잡았다. 소파는 푹신하고 낮아서 몸을 감싸 안아준다. 우리 사이의 낮고 동그란 나무테이블 위에는 진짜 양초가 녹슨 듯한 촛대에 꽂혀 방울진 밀랍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촛불이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여기서 잠깐 술이 깰까 싶었는데, 남자 바텐더가 주문도 하지 않은 우리 테이블에 칵테일을 두 잔 내려놓고 바쁘게 사라진다. 두꺼운 잔 안에는 주먹만큼이나 커다란 얼음 하나와 투명한 술이 담겨 있었다. 이게 무슨 술일까 싶어 빤히 내려다보는데 정지운의 기다란 손가락이 잔 하나를 가져가며 말했다.

“헨드릭스 진토닉인데, 다른 데보다 좀 더 셀 거야.”

“괜찮아.”

나에게는 좀 더 세다는 표현보다 이게 무슨 맛인지 그런 정보가 더 중요했지만, 여기서 모르는 티를 내기 싫었다. 고개를 끄덕해 보이고는 입안에 가득 털어 넣자 살짝 달면서도 강렬한 알코올 맛이 콧속을 가득 메웠다. 풀 냄새 같은 게 나기도 하고?

그래도 비싼 술이라 그런지 목 넘김에 거부감이 없다. 꿀꺽 넘기고는 뭔지 모를 맛에 입맛을 다시고 있다가 정지운이 내 표정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태연한 척 물었다.

“그런데 아까 시키고 왔어?”

“아니. 예전에 달라고 한 순서가 있어.”

순서가 있을 정도로 단골이라는 거야? 어떻게 마시는 건지도 모르고 한입에 비워버린 칵테일 잔을 가져가며 남자 직원이 또 다른 잔을 우리 앞에 하나씩 내려놓고 갔다. 같은 잔, 같은 얼음이 들어있는데 이번에는 붉은색의 술이다.

“무슨 순서인데.”

술을 맛있게 마시는 데 뭐 특별한 순서라도 있을까 싶어 물었는데 정지운은 잔에 꽂힌 납작한 빨대를 휘휘 저으며 웃었다.

“메뉴판 순서.”

황당해하며 또다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작은 잔은 아닌데 안에 든 얼음이 커서 그런지 금방 비워진다. 테이블 위에는 각양각색의 술잔이 늘어섰다. 길쭉하고 얇은 잔. 한 손에 다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큰 잔 등등.

세다가 그만뒀는데 아직 처음에 마신 것과 똑같은 게 나오진 않았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적어도 메뉴판의 목록을 한 바퀴 돌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 칵테일이 워낙 맛있어서 안주 생각도 안 났다. 촛불이 눈에 띄게 길이를 줄여가는 동안 나와 정지운은 실없는 대화들을 하며 술을 마셨다. 예를 들어서 이런 거 말이다.

“자기 팬들한테 그렇게 물 뿌리는 사람이 어딨어?”

“너한테만 그러니까 걱정 마.”

“더 열받네.”

빨대가 꽂힌 칵테일을 쪽쪽 빨아 마시는데 내 답답함이 웃긴지 또 웃으며 고갤 숙인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아까부터 계속 웃는데, 잘생긴 애가 웃으니 나도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차가운 벽에 기댄 채 따라 웃었다. 그러고 있는데 바쁘게 돌아다니던 주인 누나가 비어있는 옆 테이블의 의자를 조심스레 끌고 오더니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곤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재현 씨라고 했나? 나 잠깐 지운이에게 말 좀 해도 돼요?”

“네? 하세요.”

내 허락을 받은 누나는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몸을 소파 깊숙이 밀어 넣는 정지운에게로 고갤 돌렸다.

“지운아, 너 전에 같이 온 남자 있잖아.”

“누구?”

“이번에 너희 회사 신사옥 설계했다던 남자. 둘이 메뉴판 두 바퀴 돌 때까지 마셨잖아.”

“아. 어. 왜?”

“윤영이가 그분 마음에 든다고 하는데, 같이 또 올 일 있어?”

“아냐. 하지 마.”

민망스러울 정도로 딱 끊는 정지운의 표정을 보고 나는 못 본 척 눈앞의 술잔에 관심을 가졌다. 괜히 유리잔의 색을 촛불에 비춰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딱 봐도 아닌 태도에 누나는 재빠르게 말을 거둬들였다.

“아니, 그때 여자 친구 없다고 하길래 그랬지.”

“애인 있어. 자기 이사할 때마다 가게 새로 내줘서 데리고 다녀.”

“그렇구나. 내가 미안하네.”

“남이 자기 애인 말하는 것도 싫어해. 접근하면 윤영 누나 좋은 일 없을걸.”

“그럼 그렇지. 그런 남자가 어디 혼자겠니. 미안해. 재현 씨한테도 미안해요. 내가 괜히 끼어서 노는 데 분위기 안 좋아졌네.”

정지운은 거기에 부정도 안 하고 제 눈앞의 칵테일 잔을 만지작거렸다. 아오, 저런 싸가지. 사람이 모르고 그럴 수도 있지. 미안해하는 기색이 온 얼굴에 가득한 누나를 보고 내가 머리를 굴리다 생각해낸 대답은 이거였다.

“그럴 수도 있죠. 정지운 씨한테도 그러려는 여자 많을 거 같은데, 뭐.”

“아, 지운이?”

누나는 작게 웃다가 표현할 말을 찾는 듯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다가 말했다.

“지운이는 소개도 못 시키지. 애들이 대기표 뽑고 줄 서 있는데.”

“누나?”

그 순간 단조로운 목소리가 ‘누나’라는 단어를 말했는데 나는 다른 단어를 들은 것만 같았다. 두 글자의 다른 단어들 말이다. ‘꺼져’라든가. 혹은 ‘닥쳐’ 같은.

누나는 입술만 끌어 올려 미소 지은 정지운의 표정을 보고는 잠깐 버벅댔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발로 의자를 옆 테이블로 확 밀어버렸다. 앉을 때의 조용했던 몸놀림과는 전혀 달라서 멍하게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누나에게도 정지운의 어색한 미소가 전염되어있었다. 동그란 눈이 나를 향했다.

“아. 아아. 내 정신 좀 봐. 그래, 서비스 줄까?”

“아냐. 내가 알아서 할게. 잘 가, 누나.”

“그래. 알았어. 아. 그래.”

누나는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어색한 분위기만을 자리에 남겨두고 말이다. 정지운은 들고 있던 칵테일 잔을 한 번에 비워버렸고 나는 고심했다. 뭐라고 말하면 저놈의 기분이 풀릴까. 애초에 왜 저렇게 짜증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지운 씨 인기 많은가 보네.”

순간 미간을 팍 찌푸리기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런데 쟤는 자기한테 인기 많겠다고 해도 시비야. 나는 종업원이 가져다준 연두색 칵테일을 마시며 느려진 머리를 굴렸다. 정지운의 기분이 어떻든 내 알 바 뭔가. 나는 졸리다.

그다음에 마신 게 뭐였더라. 마티니였던가. 뒤집어놓은 삼각형 같은 예쁜 잔에 담긴 술은 맑은 색이었지만 독했다. 그런 종류를 두 잔 연속으로 마시자 취기가 확 몰려왔다. 벽에 기대 졸다 깨다 하는데 앞에서 무슨 말인가를 하던 정지운이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열 오른 이마에 찬 손가락 끝이 닿자 눈을 부릅떴다. 형체가 보이는데도 뇌에 입력이 안 되는 기분이다.

“그만 마셔도 돼.”

“응. 잠깐만. 먹을 거야…….”

그리고 소파 팔걸이에 양팔을 포개 올려두고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괜찮아. 일어나서 다시 먹을 거야. 일어나서……

추워진 몸을 누군가가 부축해 일으키는 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서기는 했지만 아직 눈이 뜨여지지는 않았다. 몇 마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며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졌다. 불안정한 자세 탓에 휘청거리는 몸을 등 뒤에서부터 감아온 팔이 옆구리까지 단단하게 꽉 잡아 부축했다. 발끝에 걸리는 계단을 올라 따뜻한 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추웠던 몸이 녹아간다.

멍한 정신에 어떻게 서 있는 건지 모르다가 얼굴에 닿는 감촉이 이상해서 눈을 떠 봤다. 바로 눈앞에 정지운이 입고 있던 회색 티의 무늬가 보인다. 시선을 올리자 흰 피부의 목덜미가 보였다. 미쳤구나. 어딜 기대 있냐. 손을 뻗어 더듬거리다 밀어내려는데 뒤로 둘러진 정지운의 팔이 등을 쓸어내리듯 토닥거렸다.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폰 액정 무언가를 만지던 중이다. 내 버둥거림에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깼어?”

“응. 괜찮아…….”

“너 아까 나오려다 문에 머리 박은 거 알아?”

키득거리는 웃음이 신나 보여서 입을 다물었다. 모르겠지만 그랬나 보지. 내 힘으로 서려다가 눈앞이 어질해서 도로 기댔다. 속이 안 좋거나 머리가 아픈 건 아닌데 너무 피곤하다. 졸리고. 힘들다. 멀어지듯 가까워지듯 정지운의 목소리가 귓가로 드문드문 들렸다.

“……자고 갈래?”

“……응?”

“그냥 재울 테니까……, 가.”

거기서 내가 끄덕거렸던 거 같기도 하고. 차 안으로 추측되는 어딘가에 앉은 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거기까지가 내 기억이 이어지는 한계였다.

나는 생사의 기로에서 눈을 떴다.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던 공간감이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하고서야 죽을 것 같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엎드려서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자고 있던 탓에 숨이 모자랐던 것이다. 뻣뻣하게 굳어 들리지도 않는 머리를 들려다가 도로 베개에 엎드렸다.

그러다가 이건 아닌데 싶어서 다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졸음으로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짙은 색의 침대 헤드였다. 크고 웅장하다. 일단 내 자취방은 절대 아니고 우리 집도 아니다. 내가 아는 집 그 어디에도 이런 침대를 쓰는 곳은 없었다.

베개는 하얗고 푹신했으며 침대 시트, 이불까지도 전부 허옇다. 몸을 일으켜 자리에 주저앉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 비싼 술을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거나 하진 않은데 몸은 피곤하다. 지나친 알코올이 온갖 맛의 음료와 섞여 몸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정신이 들 때까지 눈을 비비고 머리를 흔들다가 방 안 전체를 둘러봤다. 커다란 침대가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방이었다. 넓은 방의 소파, 테이블, 미니 바 같은 것을 인식하고야 여기가 호텔 방임을 알았다.

침대 옆쪽에 처진 커튼을 걷어내자 햇빛이 지나치게 쏟아진다.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호텔 앞 조경이 꾸며진 정원을 내려다보며 높이를 가늠하다가 옆을 보니 남산 타워가 있어 이곳이 서울 안. 그리고 높은 곳임을 알았다.

내가 왜 여깄을까. 정신이 들려 하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갈증이었다. 미니바로 무거운 발을 끌고 가 생수를 꺼내 들었다. 예전에 호텔 갔을 때에는 계산해야 할까 봐 꺼내 먹는 것들은 손도 안 댔는데,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바삭바삭하게 말라 죽을 지경이다. 작은 생수 한 통을 다 비우고 생수통을 구겨 작게 만들면서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왜 여기 있지?

아, 정지운. 같이 술 먹고 내가 죽었지. 그래, 그랬다.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 침대에 앉는데 지나치게 감촉 좋은 침구가 출렁인다. 옆으로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이대로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객실 문이 덜컥 열렸다. 일어날 기운이 없어 복도 쪽으로 눈길만 주고 있으려니 정지운이 들어왔다. 입에는 요즘 유행한다는 코코넛 음료를 물고 있었다. 깨어있는 나를 보고는 침대로 다가와 내 옆에 풀썩 앉았다. 그에 맞춰 흔들리는 매트리스를 느끼며 다시 눈이 감긴다. 그런 내 볼에 차가운 음료가 닿았다.

“일어나야 돼.”

“여기 어디야?”

“갤럭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저 이름은 학교 근처 여관이 아니라 소문만 들어봤던 고급 호텔이다. 생각지 못한 이름이 나오자 아깝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여기 하루 숙박이 대체 얼마일까. 편하게 잔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없네.

“아깝다.”

“조식 뷔페? 그거 끝났어.”

그거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고급 호텔을 왔는데 술 취해서 고작 남자랑 잠만 자다 나가기 아깝다는 뜻이었지만, 그것도 아깝네.

“조식. 맛있겠다.”

“다음에 먹으러 와.”

지금 가슴이 아픈 건 내 착각이 아니다. 여기가 학교 앞 주먹밥 집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먹으러 오냐, 이 나쁜 놈아. 속으로만 꿍얼대며 중얼거렸다.

“아깝다. 호텔. 침대. 밥. 제정신 차리고 있을걸.”

“그러게. 정신 차리지 그랬어.”

“너무 취해서 안 돼.”

“지금도?”

정지운은 내 머리맡에 앉아 머리카락을 동네 강아지 쓰다듬듯 하는 중이다. 잠과 제정신의 영역에 걸쳐 있는 나는 그 대접을 쳐내지 못한 채 졸았다. 차게 식은 손가락이 머릿결을 만지작거리다 귓가를 지분거렸다. 간지러워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개가 아닌데.

싫은 소리를 내며 떨쳐내려 했는데 손가락이 귀를 만지작거리다가 목덜미까지 내려간다. 아, 내가 졌다. 졌어. 힘겹게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제야 손이 거둬졌다. 그런 내 꼬라지를 물끄러미 보다가 정지운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게. 아깝다. 그런데 내가 지금 소속사에 들어가 봐야 돼.”

“체크아웃 시간도 오지 않아?”

호텔 체크아웃은 열두 시로 알고 있는데. 신발을 찾아 신고 걸어 나오는데 정지운은 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걸어 나갔다.

“연장하면 되지, 뭐.”

“그래.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구나.”

나라고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해줬다. 비꼬듯 한 말인데 아마 모를 거다. 하하하.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말은 거절하고 호텔 로비에 줄지어 서 있는 택시 중 하나에 올라탔다. 호텔 직원 아저씨가 너무 정중하게 문을 열어줘서 인사까지 하고 올라탔다. 그리고 택시가 어딘지 모를 남산 둘레길을 돌 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저녁 약속이 있었던 거 같은데 모르겠다. 일단 자자.

∞ ∞ ∞

TA엔터테인먼트의 신사옥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10층 건물로 사장의 오랜 염원인 신사동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석이라고 해도 차가 다닐 정도의 길은 옆에 뻗어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소 구시대적 감성을 가진 사장은 사옥을 올리면서 설계자와 부단히도 싸워댔는데, 그 덕이 건물이 잘 지어진 뒤에도 설계자는 휴대폰에 엔터테인먼트의 번호가 뜨면 받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 사장은 또 한 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건물이 잘 나온 건 맞는 터라 주변에 열심히 자랑을 하고 다녔다. 덕분에 설계자와 연결해달라는 부탁도 더러 있었는데 연락은 잘 되질 않았다. 아직 그 설계자와 연락을 하는 정지운이나 다른 소속 연예인들은 입을 다물고 모르는 척했다. 사장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답답하고 영 말이 통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굳이 끼어들어 참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나마 정지운이나 블래스트의 리더 차태원이 나서서 뜯어말리지 않았으면 건물은 무슨 구식 아파트처럼 생겨먹을 뻔했었다. 사장은 이 둘에게도 한 소리 하려 했으나 정지운의 차분한 한마디가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오 층까지는 누구 돈으로 짓는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오 층은 블래스트가 지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여기서 사장이 침을 튀기며 반박했지만, 사실이 그랬다.

블래스트는 TA의 최대 매출 상품이었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누구 하나 큰 사고 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달려와 준 데에 감사하는 마음도 손톱만큼은 있었다. 그래서 사장은 고집을 조금 꺾어 건물에 유리도 붙이고 둥그런 부분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옥 안에서 블래스트는 그룹의 마지막 수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생명줄의 길이를 정확하게 가늠하기 위해 오늘 멤버들은 2층 왼쪽의 끄트머리 회의실에 모였다. 건물의 둥그런 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전면 유리를 둘러 훤한 회의실 안에는 정지운을 제외한 네 명의 멤버가 모여 제멋대로 앉아있었다. 리더인 태원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건너편의 막내 안준영은 테이블에 엎드려 우는소리를 했다.

“나 졸려. 지운이 형 언제 와.”

“매니저가 아래 차 댔대. 올라올 거야.”

제멋대로이긴 해도 평소 시간은 잘 지키던 정지운이었기에 멤버들은 한 번쯤이야, 라는 생각에 별 불만 없이 기다렸다. 오히려 항상 늦던 준영은 오랜만에 일찍 온 덕분에 기다리는 것이 지루한지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제 옆의 민석을 툭툭 건드린다. 민석은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느라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도 뺐다.

“지운이 형 연애할 거라던데.”

“누구? 이주희 받아줄 거래?”

TA엔터테인먼트에서 직진으로 걸어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다른 소속사가 하나 더 나오는데, 이주희는 그 소속사의 아이돌 그룹 멤버였다. 이 년 전부터 정지운을 찍었다고 업계에 소문이 자자했지만, 정지운은 별말도 없이 이주희만 쏙 빼놓고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이전 연애를 끝내고 오래 안 만난다 싶더니 드디어 이주희 차례인가. 민석의 추측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팬 꼬시는 중이라던데?”

“뭐?”

모두의 시선이 준영에게 모였지만 의미 없이 흩어졌다. 순간 그들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우리 팬 사이에 정지운이 공들일 만한 인재가 있었다고?’였다.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기에 관심이 떨어지는 속도는 빨랐다. 김빠진 듯한 반응에 준영이 큰 소리를 내려던 찰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기다리던 정지운은 아니고 예전에 같이 현장에서 뛰다가 이젠 실장으로 사무실에 들어앉은 매니저다. 40대 아저씨로 솥뚜껑 같은 손이 팬들의 등짝을 얼마나 때렸던지 모른다. 여기 있는 멤버들의 등짝도 포함해서. 그는 빈 의자 중 하나에 앉으며 그나마 생기 있어 보이는 준영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형들 중 한 명이 팬 꼬시는 중이래.”

그 순간 실장의 커다란 손바닥이 리더라고 상석 근처에 앉아있던 태원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아악! 갑작스러운 폭력에 태원은 비명을 지르며 제 몸을 꼬았다.

“왜 그래!”

“너 이놈의 자식, 내가 올해는 더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나 아니야!”

“니가 아니면 누구야!”

“아, 정지운이래!”

태원은 제 등을 의자 등받이에 딱 붙이며 노려봤다. 그사이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이번에는 진짜 정지운이었다. 소란스러운 회의실 안의 분위기를 보고도 별말 없이 제자리에 앉는 동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정지운의 몸에 달라붙었다. 특히 실장의 시선이. 실장은 의뭉스러운 눈초리로 정지운에게 물었다.

“지운이 너.”

“응?”

“너 쫓아다니는 애들 중에 하나 건드리냐?”

정지운은 인상을 팍 구겼다.

“아직 안 건드렸어.”

“뭐?”

“어젯밤에 하려고 했는데 술 너무 많이 마셔서 못 했다고.”

정지운은 대답이 끝나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무슨 연락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실장은 나머지 멤버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본받아, 이놈들아. 술 먹었을 때 얼렁뚱땅 건드리지 말고. 싫어요 싫어요 하면 싫은 줄 알고. 요즘 그거 그냥 넘어가다가 너희들 인생 말아먹어.”

그게 지금 문제가 아니잖아요? 괜히 얻어맞은 것이 밝혀진 태원은 안전해진 등짝을 떼며 테이블 가까이에 몸을 붙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를 탁탁 두드려 지운을 불렀다.

“진짜야?”

“어.”

“그렇게 예뻐?”

그 말에 지운은 잠깐 얼굴을 떠올려 봤다. 예쁜지 아닌지. 눈동자도 새카맣고 머리카락도 새카맣고. 잘 때 표정 되게 야할 거 같은데 아직 못 해봐서 모르겠네.

“나중에 말해줄게.”

“이야, 진짜야? 왜 이렇게 안 숨기고 말해?”

“방금 창식이가 나 호텔에서 데려왔어. 어차피 다 퍼질걸.”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든 상관없이 딴짓을 하던 텐마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정지운은 태연했다. 그런 멤버들의 머리 위로 실장은 또 다른 설교를 시작한 중이다. 내가 니놈들에게 연애 시작하고 하라는 말은 안 한다. 친해진 다음에 해라. 너희들 요즘 진짜 큰일 난다? 라면서. 자잘한 다른 질문들에는 입을 다문 채 못 들은 척하는 지운에게 민석이 큰소리로 외쳤다.

“호텔 가고도 안 했어? 야, 언제 하려고 그래?”

“충분히 친해졌으니까…… 다음 주?”

정지운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 ∞ ∞

고작 하루 호텔 침대에 누워 봤을 뿐인데 내 몸뚱어리가 자취방의 침대를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어림없지. 영한이에게 오늘 점심은 같이 못 먹는다고 문자 한 뒤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자고 또 자다가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에 일어났다. 더듬더듬 켜 귓가에 대보니 도형이다.

―너 오늘 저녁 약속 안 나와?

“뭐였지?”

―지영이 전 남친이랑 난리 난 거.

“아, 맞다. 갈게. 어디로 가?”

―학교 앞 원샷 호프.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거였구나. 지영이는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도 몇 개월을 질질 끌고 연락 중이다. 헤어지면 뭐하는가. 무슨 일 있으면 몇 시간 동안 전화를 부여잡고, 우리랑 술 마시다가 지영이가 취하면 전 남자 친구가 데리러 오고.

그런데 얼마 전 진짜로 끝냈다며 단체 카톡방에서 난리가 났다. 오늘 그 이유를 맥주와 가볍게 듣기로 했었다. 가벼울 리는 없지만, 그랬지. 삐거덕거리는 몸을 일으켜 샤워부터 했다. 아직 집 나간 정신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는 됐다.

운동화를 구겨 신고 자취방 근처의 호프집에 가니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가 처져 있다. 도형이와 영한이 사이에 살짝 끼어 지영이 맞은편에 앉았다. 평소처럼 화가 났거나 욕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라앉아있다. 진짜 심각한가 보네. 나는 내 앞으로 온 생맥주를 예의상 한 모금 마시고 내려뒀다. 더 먹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 대신 무슨 이야기인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한이가 지영이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전 남자 친구 지영이랑 헤어지긴 했지만 헤어지지 않은 것처럼 지냈잖아.”

“응.”

“그런데 헤어지고 다른 여자랑 한 번 잤나 봐. 그래서 지영이는 완전 안 보겠다고 했고, 걔는 헤어진 사이에 생겼던 실수인데 왜 그러냐고 하고.”

“아…….”

음. 그래. 무슨 이런. 애매한 일이 있나. 나는 손을 더듬거려 안주 쟁반에 나와 있는 땅콩을 하나 들었다. 들고도 입에 넣지는 않고 만지작거리는데 도형이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 나는 솔직히. 그 전 남자 친구 말이 맞다고 생각하거든?”

“알아. 그런데 그냥 마음으로 납득이 안 돼. 그래서 안 볼 거야.”

“그래. 그게 다른 거니까. 나는 그걸 크게 상관 안 할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지.”

지영이는 꽤 단호했다. 그동안 질질 끌어온 사람답지 않게. 영한이는 뭐 어쩌겠냐는 표정으로 생맥주를 마셨고 나는 손안의 땅콩을 여전히 굴리는 중이다. 도현이도 나를 따라 오징어 다리 하나를 집어서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나라면. 음. 일단 영한이부터 물어보자.

“영한이 너라면 어떨 거 같아.”

“물론 사귀는 것처럼 있기는 했는데, 그래도 헤어진 때였으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싶은데…….”

그러면서 지영이의 눈치를 볼 거면 왜 말을 하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땅콩은 내려놓고 다른 걸 하나 들어 입에 넣었다. 오도독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나도 지영이랑 비슷해. 이게 맞다는 건 아니라 나도 좀 개방적이고 싶거든? 그런데 마음이 안 그래.”

“재현이 너도 오래 봐야만 만났지? 동아리나 팀플 등등.”

“어.”

다른 친구들은 어디서 만나서 잘만 사귀고 자고 오던데 나는 그게 영 편하질 않다. 사람을 오래 봐야 연애가 시작되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그것도 이해가 잘 안 가고 몸부터 맞춰보고 마음 맞추는 게 제일 이해가 안 간다. 그냥 내 입장이 그렇다는 거다. 여기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맥주잔을 반도 채 비우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던 도형이가 담배를 피우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그 덕에 이야기가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정지운에게서 와 있는 문자를 봤다. 아, 인사해야지. 어제 대체 얼마를 쓰게 한 거야.

[어제 고마웠어 너무 많이 나온 거 아니야?]

[괜찮아 대신 부탁 하나 할게]

부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게 놀랍군. 어제 하룻밤을 그렇게 놀고 나니 이제는 정지운이 엠티 같이 다녀온 친구인 양 친근하다. 실제로 친근하지는 않겠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느낌이.

[뭔데?]

[연기 연습 상대 좀 맞춰줘]

[내가?]

자기 연기 연습을 굳이 말아먹겠다면 나는 말릴 이유가 없다.

[알았어]

슈프렌디드 리히트. 어떤 대본이냐고 묻자 한참 뒤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대본이라 봐야 영화나 드라마 정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학술적인 제목에 약간 놀랐다. 교양 시간 외국 문학 작품명 중 하나에 오를 것 같게 생겼잖아.

인터넷 창에 검색해보니 뮤지컬이라고 나온다. 수연이에게도 물어봤더니 유명한 뮤지컬인데 한 명의 남자 주인공이 메인으로 대사, 노래 등등을 다 끌고 가야 하는 어려운 뮤지컬이란다. 보이는 대로 독일어이며 뜻은 빛이 뭐 어떻다고 했는데. 어쨌든 이건 해외에서 들어왔고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

원작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스토리가 파격적이었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진 시절의 불우했던 소년. 집안의 갈등.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품고 있던 꿈을 위한 도전까지.

길고 긴 스토리와 시대상을 읽다 보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과제로 이런 게 나왔으면 절대 안 했을 텐데 다른 할 일을 젖혀두고 볼 때는 재밌다. 그래서 나름 이것저것 자료를 정리했다. 줄거리도 긁어서 프린트하고, 그 당시의 시대상과 상황들도 정리해서 스테이플러로 찍어 준비했다.

마침내 만나기로 한 일요일 저녁이 되자 나는 정지운이 오라고 한 가로수길 구석의 카페로 향했다. 카페들마다 큰 테라스가 있는데 모델 같은 여자들이 앉아 길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생소했다. 이런 분위기의 큰 대로변을 지나쳐 중간의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골목길이 생각보다 많아서 한 번은 잘못 들어갔다 돌아 나오기도 했다.

전화로 왜 이런 데로 오라고 했느냐며 한 소리 했고, 정지운은 이것도 못 찾아오느냐며 내게 투덜거렸다. 아, 몰라! 라는 소리가 나오기 직전에야 저 멀리에 목적지인 카페가 보였다. 한 층뿐인 단출한 규모의 카페인데 안에 테이블이 두 개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 그래도 좁아 보이던 카페는 더 좁아 보였다. 그리고 가게 안 진열장에는 한입 크기의 초콜릿이 온갖 색과 모양을 하고 진열되어있다. 구석의 안락의자에 앉아있던 정지운은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는 나를 보고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태워서 오든가 해야지, 원.”

“차 있어, 정지운 씨?”

“왜 없다고 생각해.”

“회사 차만 타고 다니는 줄 알았어.”

“그렇긴 하지.”

곧이어 메뉴판을 가져온 주인아저씨에게 무언가를 주문한다. 분위기상 내 음료인 듯한데 자기 알아서 주문하는 것 같아 내버려 뒀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나무 쟁반에 받쳐 나온 것은 뜨거운 머그컵이었다. 진한 색의 초코 음료는 쇼콜라다. 뜨거운 음료는 좀 그런데. 나는 딸려온 은색 스푼으로 그것을 젓다가 결국 말을 꺼냈다.

“나 더운데 왜 뜨거운 거 시켜?”

“분위기가 있지. 알았어. 아저씨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하나 주세요.”

아니, 나는 그냥 찬물이라도 달라 그러려고 했지. 한눈에 봐도 크림색 벽지가 발려진 카페는 나 초콜릿 장인이다.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분위기상 내가 낼 것 같지도 않은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뜯어먹은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시원해 보이는 유리컵에 얼음까지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한 번 빨아 마시면 절반이 사라진다. 그런 내 옆에 올려둔 백팩을 눈짓하며 정지운은 다리를 꼬았다.

“그런 백팩을 메고 오니까 덥지.”

“아, 이거.”

목덜미의 땀을 식히느라 부채질하는 중이었다. 가방을 벗어 그 안의 프린트물을 꺼냈다. 이건 줄거리, 이건 시대상, 그리고 이건 영화, 다른 뮤지컬 배우들이 했던 연기 방식, 평가 등. 차곡차곡 쌓인 종이뭉치가 어느 정도의 두께가 되자 나는 자랑스럽게 그것을 정지운에게 밀었다. 기다란 눈매가 둥그레져서는 내가 내민 종이뭉치를 집어 든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고갤 숙이고 보는 탓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자부심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비싼 술을 사주고 재워주기까지 한 게 나름 미안했기에 열심히 준비했거든. 끝까지 넘겨보고, 다시 첫 번째로 돌아와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정지운은 서류의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읽어 내려가다가 고개를 들었다. 정지운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 미묘해 보였다.

“이걸 다 조사해온 거야?”

“그냥 내가 궁금해서 그랬어. 대본은?”

“아. 대본.”

정지운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대답했다.

“깜빡했네.”

“뭐? 그럼 나 오기 전에 가지러 가지 그랬어.”

“다음에 가져올게.”

“그럼 오늘은 뭐 해?”

“글쎄……. 이거 볼까?”

“이거?”

가지런한 손끝이 내가 가져온 종이뭉치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매만진다.

“재현이 네가 가져온 거. 영화는 봤어?”

“봤지. 뮤지컬이랑 거의 비슷하다던데.”

그러니까 그게 시작이. 전쟁 후 가난한 동독의 건물 사이를 주인공이 달려가는 거였는데. 더듬거리는 내 이야기는 주인공에 대한 나의 감상으로 이어졌고 정지운은 옅은 갈색 눈을 반짝이며 몸을 테이블 가까이 바싹 댔다.

∞ ∞ ∞

“정지운. 너 요즘 작업 거는 애 어떻게 됐어.”

“뭘?”

“이번 주에 잤어?”

“……다음 주에 할 거야.”

“뭐?”

“다음 주에 할 거라고.”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