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온 킹-81화 (에필로그) (81/82)

81화

<에필로그 - never say goodbye>

“국민들에게 환희를 안겨다 준 대한민국 대표팀의 귀국을 환영합니다!”

4년 전과 다르게 나는 한국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월드컵 결승에서 패배했다고 트집을 잡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순리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정말 높은 곳까지 올라갔고, 그에 따른 마땅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나는 내가 그러한 대접을 받길 원하지 않았다. 나의 후배들이 그런 대접을 받기를 바랐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였고...”

나를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은 청와대까지 가서 상을 받았다. 월드컵으로 인한 군면제를 검토하라는 여론도 형성되었다.

마치 특혜 같아 다른 운동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진심으로 어린 선수들이 군면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군면제만 된다면 앞길이 더 창창해 질 것이다. 나도 2002년 월드컵을 이유로 군면제를 받았고, 해외에서 무리없이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더 수준 높은 축구를 해야 기량이 향상된다는 점은 나로서도 동감하는 바이기에, 나는 어린 선수들의 군면제를 기원했다.

‘황은후, 레알 마드리드 입단.’

경미한 뇌진탕으로 실려갔던 은후는 다행스럽게 금방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계약을 맺었다. 아이를 갖고 있는 여자친구 아영이와도 결혼하고, 완전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이었다.

“끄오오오올! 신욱아! 세레모니 하러 고고!”

지성이의 은퇴 경기도 참가했다. 나는 특별 초청으로 얼굴만 비췄고, 운이 좋게도 관중석이 아닌 벤치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신나게 경기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올스타전이라 서로 웃으며 즐길 수 있는 그런 경기였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도 즐거워하는, 모두의 화합을 위한 축구의 진정한 의미에 걸맞았던 좋은 은퇴 경기였다.

“김우주 선수는 은퇴 경기를 계획하고 있나요?”

“아니요, 딱히.”

지성이의 은퇴 경기를 참관하는 동안 방송사에서 나의 은퇴 경기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나는 딱 잘라서 아니라고 말했다. 다들 놀라워 하는 눈치였지만 실은 예전부터 은퇴 경기에 대한 문제는 생각을 정리한지 오래였다. 내가 특별히 몸을 오래 담그고 있던 클럽도 없었고, 그렇다고 재단을 설립해서 은퇴 경기를 치를만한 깜냥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기에, 괜히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인터뷰가 나간 후에 축구협회에서 은퇴식을 열어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A매치 하프타임 동안 잠시 치러지는 은퇴식이었다.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우주라는 선수 본인의 영광보다는 김우주라는 선수를 보내는 축구팬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저를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은퇴식은 일사천리였다. 내가 그걸 원하고 있었다. 은퇴식을 하면 축구계에서 완전히 떠난다고, 스스로가 그걸 인지할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축구를 그만뒀음에도 얼마 동안은 운동 선수처럼 지나치게 꾸준하고 바른 습관을 유지했다. 예를 들면 아침 운동을 위해 새벽 6시부터 눈을 뜬다던가, 아니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밥을 먹지 않으면 어쩐지 불안하고 찝찝하다던가. 이상한 강박증 비스무리한 게 은퇴 이후에도 남아 있었다.

나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싶었다. 노을이도 은솔이도 그걸 바랄 것 같았다.

은퇴식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을이가 물었다.

“여보, 결승전에서 진 거, 안 아쉬워?”

노을이 딴에는 내가 아쉬움을 혼자 삭히고 분한 마음에 그저 은퇴를 서두른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노을이 탓이 아니라 그간 그런 행동을 보여온 나의 탓으로 보는 게 옳았다.

“아쉬운데, 별로 마음에는 안 남아.”

그게 나의 진심이었다. 내게 있어 패배가 마음 아프다고 한다면, 나의 후배들이 입을 상처의 크기를 알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같은 선수의 입장에서 결승전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던 것은 맞지만 이미 나는 많은 패배를 경험해 그러한 허무함을 대처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졌다고 그렇게도 우는 모습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애들처럼 내 자신을 최고라 믿을 정도로 다른 선수들보다 뚜렷한 족적을 남긴 기억은 없었다. 피치치를 수상하고 리그 우승을 경험하긴 했지만 그 외 리그 최우수 선수상이나 발롱도르 같은 개인상은 없었다. 그게 지금 와서 딱히 서운하지는 않다. 다만 신기한 것은, 그런 나를 최고의 선수나 다름 없이 대해주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함께 했던 지단도, 베컴도, 그 외 안첼로티 감독님이나 아직도 현역으로 활약하는 발렌시아의 선수들, 그리고 마지막 소속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수들과 시메오네 감독님은 나의 은퇴를 크게 아쉬워 한다는 뜻을 보였다. 그게 내게 있어선 최고였다. 최고가 아닌 나라는 선수를 기억해주는 것.

‘강소중, 결혼 계획을 밝히다.’

강소중은 조숙한 탓인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은후처럼 빠르게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결혼이 운동 선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은 아니다. 하지만 나만의 안식처를 찾음으로써 내가 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건 큰 의미가 될 수 있었다. 강소중에게 있어 자신의 여자친구는 내가 생각하는 의미 이상으로 보였으니까 나는 그 두 어린 아이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솔직히 그 어린 애들이 결혼한다고 하니 처음엔 귀여워서 웃음부터 나왔다.

아무튼 나를 국가대표로 되돌렸던 아이들은 각자 제 삶으로 돌아가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은솔아아앙, 유치원 가야죠오옹.”

“웅...”

“오늘은 아빠가 코디니까 안심해. 우리 은솔이는 절대 치마를 입어서는 안되지. 음, 안되고 말고. 후, 새끼 늑대들의 시선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네.”

평범한 삶을 위해 애쓰는 나는 연예계 복귀로 꽤나 바빠진 노을이를 대신해서 은솔이를 돌보느라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사랑하는 딸을 지켜보고 챙겨주는 일은 행복이었다.

유치원에 은솔이를 데려다 줄 때면 가끔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을 만난다. 그럼 부모님들은 나를 우러러 보듯 싸인을 요청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나를 알아보고는 기뻐한다. 은솔이는 그런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가끔 길을 같이 걸을 때면 대신 일부러 큰 소리로 나를 김우주 선수라고 부른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이 소중한 아이의 자랑이라는 게 너무도 다행스럽다. 그건 축복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제 뭐할래?”

정환이 형을 비롯해 나보다 먼저 은퇴했던 선배 선수들은 그렇게 물어왔다. 그런 질문은 내게 있어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할 게 없어.”

정말로 할 게 없었다. 내가 지성이처럼 재단을 설립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차범근 감독님처럼 축구 교실을 차린 것도 아니고, 딱히 몰두할 무언가가 없었다. 육아에 몰두한다면 모를까.

그러니 노을을 통해서 은근히 육아 프로그램 제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나나 노을이나 인지도가 장난 아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노을이가 처음에 연애하면서 본인 입으로 인기 많다고 했을 땐 그냥 장난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말이 진짜였다. 노을이는 정말 인기가 많았다.

노을이가 연예계로 돌아가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노을이 주위 동료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예전부터 TV에서 봐왔던 인기 연예인과 마주하기도 했다. 그 사람들을 보면 꽤나 신기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그 사람들도 나를 신기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그런 부분에서도 스스로 깨우친다. 나는 사람들에게 정말 나의 단면만 보여줄 뿐이구나, 나의 단면만 보는 사람들은 그 단면을 나의 전면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거듭하다가 결국 내 언행을 조심스럽게 갖추게 되었다.

원래부터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난 더 신중해졌다. 노을이 내가 우유부단하다고 느낄 정도로 조심스럽게, 그렇게 주위 사람을 조금씩 더 챙겼다.

[최현의 선제골입니다! 앞서가는 리버풀!]

월드컵 결승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현이는 잘 극복해낸 듯 보였다. 소속팀에 돌아가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통해 금방 주축 선수로 발돋움했다. 나중에 어쩌다 영국을 가보게 된다면 한 번 만나보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어린 왕자 소중이도. 그 애들은 나이 먹은 내가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내 쪽에서 한 번 만나고 싶다.

그렇지만 내 스스로도 절망적인 나 자신을 발견한 건 월드컵이 끝나고 몇 달 뒤 거울을 봤을 때다. 살이 뒤룩뒤룩 찌는 내 모습을 나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정환이 형이야 뭐 그런 쿨한 분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한노을의 남편, 내 스스로 망가질 수 없었다.

다시 운동을 시작할 무렵에는 의문을 가졌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게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난 휴식이 필요했을 뿐이지 인생 자체를 휴가로 보낼 생각까진 없었다.

자격증이라도 공부해볼까. 아니면 영어라도 공부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였다.

“여보세요.”

-잘 지내고 있나.

“네.”

은후를 통해서 안첼로티 감독님과 통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 나로서는 굉장히 반가운 연락이었다. 히딩크 감독님이 내게 열정과 힘을 찾아주었다면, 안첼로티 감독님은 축구에 대한 시야를 넓혀줘 지능적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었다. 나는 안첼로티 감독님과 통화를 하면서 은후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그는 인내심 있게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을 들어주었다.

-자네, 아직 하는 거 없지?

“그런데요.”

-그럼 여기 와서 연수나 받게.

“연수?”

-코치 연수.

안첼로티 감독님은 나의 재능을 다른 선수들과 나눴으면 하는 눈치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어도 좋으니 UEFA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해서 코칭 스태프의 단계를 밟도록 제안했다. 해부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교육을 받으면서.

안첼로티 감독님과 통화했던 그날 밤, 나는 깊게 고민해야 했다. 만약 내가 유럽으로 코치 연수를 받으러 가고, 유럽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된다면 노을이와 은솔이와 떨어져야 한다는 거다.

“그럼 한국에서 코치 생활 하면 되잖아.”

“아.”

노을이는 간단하게 내 고민을 일축했다. 그랬다. 유럽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코치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었다.

코치 연수를 결심하고, 일정까지 확정되자 약간의 불안감도 생겼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선수와 선수를 지도하는 역할은 완전히 다른 거다. 선수로 아무리 휘황찬란한 시간을 보냈다 하더라도, 감독으로서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내가 감독까지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여보, 잘 하고 와.”

“아빠 파이팅.”

“우우우웅, 우리 은솔이이잉.”

그런데도 결국 물러서지 않는 건 물러서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도전 의식도 있었다.

또, 코치 연수를 결심하자 새로운 꿈도 생겼다. 아주아주 흥미로운 꿈.

*

“아빠 잘하고 와야 돼.”

“아빠 파이티잉.”

현은 파주 NFC에 입소하기 직전까지도 딸 하늘이와 아들 새봄이와 함께였다. 이 아이들을 철부지 수정에게만 맡기고 가는 건 약간 불안한 일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대표팀 소집은 현에게 있어 거대한 의미를 띄는 것이었다.

“안녕.”

몇 년이 지났음에도 강소중의 시니컬함은 여전했다. 뭐 마주칠 때마다 이 모양이니 인사를 하지 않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요즘은 고개라도 숙인다. 생활관에 입소하자마자 만난 소중과 인사를 나눈 현은 휴게실로 가서 추억을 회상했다. 오늘은 그 추억마저도 의미 있었다.

현성도 미르도 원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입소했다. 은후만 지각했다.

훈련장으로 나갈 때 옷을 갈아입는 동안은 흥분의 연속이었다. 대표팀 막내가 된 것처럼, 맨 먼저 훈련장으로 나갔다.

“다 모였습니까.”

훈련장에서 가지는 첫 번째 미팅, 표면적으로는 대표팀의 신임 감독과의 첫 대면이었다. 그러나 신임 감독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알만한 인물이었다. 딱히 자기소개가 필요없는 그런 인물, 현은 신임 감독을 보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저는 이번에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김우주라고 합니다. 제가 정말 엄격하니까~ 눈치 있게 처신 잘 해주시고~”

우주는 훈련장에 모인 선수들을 모두 둘러보았다. 예전과 달리 다 자라난 선수들을 보자 어쩐지 벌써부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 목표는 뭐라 생각합니까?”

“우승!!!”

우주의 질문에 현성이 크게 대답했다. 우주는 손을 높이 들어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그래 우승!”

2014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심리학 수업에서 이런 동기 부여 방법이 있긴 있었다. 그런데 이건 심리학에 기초한 동기 부여가 아니었다. 그저 목표를 되새기게 하는 김우주만의 방식이었다.

우주는 활짝 웃으며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이번 월드컵 우리 대한민국 목표는 우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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