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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59화 (59/82)

59화

전형이 4-4-2이든 4-3-3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전형 안에 있는 선수들이 역할이고 그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상대팀 대응 전술의 핵심이다. 러시아는 대한민국이 4-2-3-1의 전형으로 나설 것을 예상하고 경기를 준비했다. 16강을 위해선 이 첫 경기 대한민국을 상대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그들의 공격진이 강하긴 하지만 수비진은 가나와의 경기에서 허점을 보여줬다. 카펠로의 계산대로라면 1골 정도 차이로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크로스! 걷어내는 신현성, 공 받아내는 최현.]

최현과 손흥민이 공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고 강소중이 공격진에서 풀어나가고, 김우주가 마무리하는 그런 축구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월드컵 같은 무대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상대팀과 경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전형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고, 선수들의 능력도 매섭게 느껴졌다.

[최현이 한미르에게 패스, 한미르가 최현의 앞으로 공 굴려놓습니다!]

최현이 공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맞다. 그러나 그 플레이의 폭이 다양하다. 측면에서 공격을 만들어 가는 건 강소중과 마찬가지였고, 때로는 윙 플레이로 러시아를 흔들고 있었다.

[최현의 오른쪽 돌파!]

[네! 빨리 가야 해요!]

중앙선을 넘어 현이 러시아의 오른쪽 공간에서 뛰어나갔다. 러시아 선수들의 압박을 받지 않고 있는 현은 매우 자유로웠다. 최고의 속도로 순식간에 러시아 진영 깊숙한 곳까지 공을 몰고 왔다. 현과 1대1로 맞서야 하는 베레주츠키는 드리블 돌파를 의식하고 잔뜩 위축된 상태였다.

특별히 개인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멈춰서있는 베레주츠키는 힘껏 속도를 올리고 공을 몰고 온 현을 막아내긴 힘들었다. 현은 멈추지 않고 베레주츠키 옆으로 공을 치고 계속 달려갔다. 베레주츠키가 위기를 직감하고 현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 시도했지만 현은 베레주츠키의 발을 피해 잠시 터치라인 밖에서 달렸다.

[최현이 돌파 합니다! 최현!]

[올라가야죠!]

[크로스!]

[네!]

가까운 포스트로 날카롭게 붙여놓는 크로스에 우주가 움직였다. 러시아 수비수들은 우주를 막아내지 못했다. 우주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방향만 절묘하게 바꿔놓고 골을 노렸다. 골대와 골키퍼 사이로 보내는 예리한 헤더슛이었다.

[아! 아킨페프에게 막힙니다!]

아킨페프가 슛에 잘 반응하며 손으로 공을 쳐냈다. 튀어나온 공을 은후가 노렸지만 글루샤코프가 바로 걷어냈다.

[좁은 지역을 벗어나 바로 한 번에 러시아 진영까지 공을 몰고 왔거든요! 우리는 이런 공격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러시아 선수들이 최현을 따라가질 못해요!]

대한민국이 그간 곧잘 사용하던 4-2-3-1 대신 4-4-2의 전형으로 경기하는 건 상당한 위험부담이었겠지만, 곧 선수의 개인 능력으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게 보였다. 대한민국은 왼쪽과 오른쪽에 측면 모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배치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드리블 성공률으로만 따져도 60%에 가까운 괴물 같은 선수들이었다.

[강소중이 왼쪽 측면에서 공 잡고 있습니다. 중앙으로 들어오는데요. 한국영과 공 주고 받습니다.]

[강소중이 주고 받는 패스를 통해 상대 선수를 벗겨내는 걸 잘하죠.]

[왼쪽 측면으로 돌아섭니다. 강한 압박! 다시 돌아서는데요!]

[...네!]

[3명의 틈에서도 공 뺏기지 않는 강소중! 황은후에게 패스합니다!]

소중은 여러 선수들이 공간을 틀어막고 숨 쉴 틈도 없이 압박을 해왔지만 공을 절대 뺏기지 않았다. 러시아 선수들이 소중을 저지할 때는 몸을 건드리며 파울을 할 때 뿐이었다.

[황은후! 슈우웃!!!]

[슛!!!]

대한민국 선수들의 공격 전개는 매끄러웠다. 공격 전개 과정에서 기회를 얻을 때는 러시아 선수들의 실수를 통해 나오는 운이 좋은 기회가 아니라 정말로 선수들의 의도대로 공격이 풀리는 상황이었다. 소중은 3명의 압박을 피해내고 박스 앞으로 움직인 은후에게 패스했다. 은후는 그 순간 페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우주나 오른쪽 측면에서 박스로 가까이 다가오는 현에게 패스할 수 있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슛을 시도했다.

[골대 옆으로 벗어납니다! 아! 황은후 선수! 위협적인 슛으로 러시아 골대 위협합니다!]

[아! 좋았어요!]

[제 2의 차붐으로 독일에서 각광받고 있는 황은후 선수인데요! 위협적인 슛으로 러시아 위협해봅니다!]

[결정력이 굉장히 탁월한 선수죠!]

은후도 몸놀림이 가벼워 보이는 것이 가나전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러시아는 빌드업 과정을 거치는 대한민국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자꾸 박스 근처로 진입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움직임을 허용했다. 그건 경기에서 밀리고 있는 팀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선수들의 움직임을 자꾸 놓치다 보면 결국엔 실점을 허용하게 되어 있다. 우주는 그것이 러시아 선수들의 조직력 문제보다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움직임이 워낙 기민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한미르가 중앙에서 공 잡고 있습니다. 압박 들어오는데요. 돌아서는 한미르, 신현성에게 패스합니다.]

한미르는 공격을 전개하는 역할이면서도 압박이 들어올 때면 현성에게 패스를 주는 등 지혜롭게 대처했다. 자신이 공격을 풀어갈 때 공을 뺏기면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알고 있는 영리한 선수였다. 미르는 최대한 패스 실패를 줄이도록 노력하고 안정적인 패스를 보내주었다.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신현성이 공 받고 천천히 중앙선 넘어옵니다. 매우 활발한 선수인데요.]

현성은 가끔 공을 몰고 중앙선 넘은 곳까지 와서 공격을 시도했다. 현성의 빈자리는 미르나 한국영이 커버했다. 현성의 플레이를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 것은, 현성이 경기의 변수를 유도하는 중앙 수비수이기 때문이었다.

[신현성이 공 몰고 오고 있습니다!]

[너무 올라오면 위험한데...!]

현성이 러시아 진영 우중간에서 공을 잡을 동안 러시아 선수들이 일제히 현성을 압박했다. 한국영은 이미 현성의 부재로 만들어진 빈공간을 커버하며 위험 상황을 대비했다. 현성은 공을 지켜내면서 왼쪽 측면을 보고 움직였고, 러시아 선수들은 또 압박으로 현성이 갖고 있는 공을 뺏어내려 했다. 지금 역습을 시도한다면 큰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한미르에게 패스 내줍니다! 한미르는 왼쪽으로 흘려주는데요!]

현성은 공을 잘 지켜내며 미르에게 패스했다. 곧 미르에게도 압박이 들어왔다. 그러나 미르는 공을 잡지 않고 그대로 공을 흘려보냈다. 미르가 공을 잡는 순간 인터셉트를 위해 다가온 시메도프가 당황하는 사이 소중에게로 공이 굴러갔다.

‘공간.’

소중은 굴러오는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패스를 줄 공간이 보였다. 박스 안을 보고 달려가는 우주가 보였다. 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공에게 달려든 소중이 재빨리 공을 걷어찼다. 공은 높이 떠가며 순식간에 러시아 페널티 박스 안으로 떨어졌다.

[찔러주는 패스!!!]

[네!!! 좋아요!!!]

페널티 박스 안으로 떨어지는 공, 우주는 낙하지점으로 달리는 상태였고 아킨페프 골키퍼는 각도를 좁히며 달려나왔다. 이미 수비수는 우주를 놓쳤다. 아킨페프의 예상대로라면 우주는 이 공을 가슴으로 잡아내고 측면 쪽으로 이동하며 슛 기회를 노릴 터였다. 그렇다면 각도를 좁히고 나온 아킨페프와 우주의 타이밍 싸움이다. 공을 잡아낸 뒤 언제 어느 위치에서 슛을 시도할지, 실점을 막기 위한 아킨페프와 득점을 올리기 위한 우주의 대결이었다.

우주는 한 번의 고개짓으로 아킨페프를 확인한 뒤 떨어지는 공을 살폈다. 낙하지점으로 가면서도 어떻게 골을 넣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갈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멋지게 발리슛? 아니면 바이시클 킥? 안정적으로 트래핑 이후 터닝슛? 어느 순간 공은 떨어지고 있었고 우주는 골을 위한 본능적인 동작을 보였다.

“!?”

우주는 낙하지점을 지나쳤다. 아니, 아킨페프가 보기에 적어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우주는 떨어지는 공을 받아내지 않았다. 공을 받아냈다고 표현한다면, 우주는 허리로 공을 받아냈다. 떨어지는 공은 우주의 허리에 맞고 방향이 바뀌며 골문을 향해 굴러나갔다. 멈칫하던 아킨페프는 자신의 옆을 지나 골라인 안으로 들어가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킨페프가 몸을 던져내며 결국 골라인 부근의 공을 손으로 쳐냈다. 그러나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득점을 알리는 휘슬이었다.

[...고오오올!!!]

[고오오오오오올!!!]

[골입니다아아!!! 김우주우우우우!!!]

[역시 김우주가 해냈어요오오오!!!]

주심은 골라인 테크놀로지에 따라 공이 골라인 안쪽까지 굴러간 신호를 받고 득점을 선언했다. 대한민국의 선제골이 터지는 순간 평범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었던 우주의 시도에 어리둥절하던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대한민국의 선제골! 김우주!]

[아! 한 번의 공격 전환으로...!!]

[월드컵 통산 9번째 골입니다! 레프 야신 골키퍼의 후예, 이고르 아킨페프를 무너뜨리는 김우주입니다!]

[이게 베테랑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죠! 여유 있는 시도였습니다! 이 골으로 심리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되죠!]

그 골에 대한민국 선수들이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주는 자신의 골에 기뻐하며 주위로 몰려온 선수들에게 지금부터의 플레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골을 굳이 생각하지 말고 스코어는 잊어버린 뒤에 단지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는 점만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이제부터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 분명했다. 흥분한 상태로 경기를 하다가는 빈틈을 내주기 마련이었다.

골을 넣은 우주는 기쁘면서도 기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월드컵 득점은 언제나 흥분되는 것이기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몸이 달아올랐지만, 주장의 책임감으로 금방 진정하고 선수들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보였다.

[러시아가 거세게 공격 시도합니다.]

선수들의 라인 정리가 필요했다. 선수들은 선제골 이후 라인 간격 유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우주는 최전방에서부터 보이는 라인의 빈틈을 보이는 족족 소리치며 지적했다. 홍명보 감독의 힘만으로는 정비할 수 없는 것을 경기장 안에서 정리하며 러시아 선수들의 공격에 대응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냉정하게 대응해야죠.]

[지르코프가 박스 안쪽까지 들어옵니다!]

선제골 이후 최현과 강소중은 측면의 선수들을 자주 놓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선제득점에 경기가 편해져 자신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험부담이라 하면 저 선수들의 수비력이 문제였다. 볼란치를 내세운 4-2-3-1은 저 측면 선수들이 놓치더라도 볼란치 역할의 선수들이 커버해 줄 수 있지만, 4-4-2는 모든 미드필더들이 한 라인을 유지하며 일정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에 대응해야 했다. 이건 확실한 부족함이었다.

[막아내는 한미르! 신현성이 걷어냅니다!]

[네! 좋았어요!]

그래도 버텨내는 건 한국영과 한미르 같은 미드필더들과 신현성의 수비력이 녹록치 않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수비를 할 때에도 좋은 호흡을 보이고 있었다. 러시아 선수들은 중앙의 선수들에게 막히자 수비가 약한 측면을 노리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전 종료됩니다!]

러시아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부터 대한민국이 몇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결국은 스코어가 유지되며 전반전이 끝났다. 하프타임, 드레싱룸에서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에게 절대 상대 선수들을 놓치지 말라고 주문했다. 특별히 측면 선수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러시아가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주의를 당부했고, 그 이후로는 선수들의 체력 상태를 그나마 끌어올리기 위한 시간이었다.

하프타임을 끝내고 후반전 피치로 갈 때 우주는 현과 소중을 불렀다. 왼쪽엔 강소중, 오른쪽엔 최현. 우주는 그 두 아이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난 우리 현이랑 소중이가 지금처럼 발맞춰서 라인을 좀 유지 해주면 좋을텐데. 내 큰 소망인가?”

“아니요!”

현이 얼른 소리 높여 대답했다. 소중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비 위치 제대로 잡고 주위 잘 둘러보면서 막아. 너희 지금 역할은 공격수가 아니야. 공격수라도 수비는 다 해. 너희가 공격을 더 잘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수비는 도와줘야지.”

“네!”

“이 경기 잘하자. 센터백들이 느리니까 공격 때는 중앙으로 파고 들어와. 그리고, 이 경기 이기면 애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네!”

현은 우주의 말끝마다 소리 높여 대답했다. 뭐 어떻게든 잘 알아들었겠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니까. 우주는 안심하며 후반 시작 직전 다시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집중력 유지하고! 절대 상대 놓치지 마! 압박할 때 자기 자리 정확히 생각하고! 주위에 상대 선수 없으면 도와주러 가! 도와주는 거! 도와주는 게 진짜 중요해!”

패기 넘치게 우승을 외치던 전반 시작과 다르게 후반 시작 직전에 우주는 집중력을 강조했다. 우승이란 큰 목표에 한 발 다가서고 있는 건 좋지만 그렇다 해서 이 경기가 정말 잘 풀리고 있다고 맹신하고 집중력을 잃는 건 곤란하다. 적어도 카펠로 감독의 팀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집중력을 잃는 팀은 아무리 세계 최고의 팀이라도 패배하기 마련이다.

[후반전 시작됩니다. 1대0으로 대한민국이 앞선 채로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상대 선수들은 실점 이후 많은 움직임을 가져갔다. 그 전부터 압박으로 체력을 소진했다. 대한민국은 꽤나 템포가 느린 공격으로 상대보단 움직임을 아꼈는데, 후반전엔 그 결실이 나올 수 있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수비도 이미 한 골을 허용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준비한 그대로 부담없이 집중력만 유지하면 된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세트 플레이 조심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위협적인 중거리 슛으로 코너킥을 유도했다. 코너킥 상황에선 러시아가 조금 더 우세해 보였다.

[콤바로프의 왼발! 올라갑니다! 헤더슛! 옆그물입니다!]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베레주츠키가 고공에서 헤더슛을 시도해 골망을 흔들었다. 대한민국과 다르게 옆골망. 우주는 베레주츠키를 맡았던 선수를 찾았다.

“현성아. 끝까지 보고 움직여야지. 다른 애들이 있다고 따라가는 거 멈추지 마.”

“하잇!”

의욕적인 부분에서 지적을 받으니 이번 상황 같이 선수끼리 교차하며 마크맨이 애매해지는 순간엔 끝까지 따라가는 게 부담이었나 보다. 우주는 현성의 플레이를 바로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잘하고 있다는 격려까지 있지 않았다.

[준비된 팀만이 골을 넣을 수가 있습니다.]

현과 소중은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상대를 수비하며 공격 기회를 내주지 않았다. 러시아 선수들이 미드필더와 수비수들 사이 공간을 노릴 때면 한국영이 나섰다. 미르와 한국영은 전반전보다 수비수들과의 간격을 좁혀놓은 상황이었고, 대한민국은 러시아의 공격에 잘 대처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패스 미스.]

측면에서부터 압박이 강하니까 실수가 늘어나게 된다. 콤바로프가 공격에 가담해 중앙으로 패스를 시도했지만 압박 탓에 실수가 나오며 이상한 곳으로 패스가 갔다. 현성은 바로 전방으로 공을 띄워보냈다.

[황은후! 김우주 쪽으로 방향 돌려놓습니다!]

우주는 은후의 헤더 패스를 받고 상황을 분석했다. 센터백 2명이 앞을 막고 있고, 왼쪽엔 강소중이 있었다. 은후도 오른쪽으로 붙어오고 있었다.

[베레주츠키와 상대하는 김우주!]

딱히 패스를 시도할 이유도 없었고, 은근히 자신감도 생겼다. 베레주츠키가 우주의 앞을 막고는 있지만 공을 뺏길 것 같진 않았다.

우주는 왼쪽으로 공을 치고 나가며 베레주츠키를 피했다. 왼쪽에서 움직이던 소중은 수비수들이 자신을 놓친 사이 순식간에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주위 3명의 수비수들이 우주에게 시선을 뺏긴 순간, 오직 우주만이 소중의 움직임을 봤다.

우주는 수비수들의 틈으로 공을 굴려보내 소중에게 패스했다. 소중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혼자 공을 받아내었다. 오프사이드도 아니었다.

[완벽한 기회입니다!!! 강소중!!!]

[아!!!]

이번엔 수비수들의 시선이 모두 소중에게로 향했다. 소중은 공을 골문 앞으로 몰고 가다가 반대편에서 움직이는 은후에게 패스했다. 은후는 우주가 공을 잡을 때 쉬지 않고 페널티 박스 안으로 쇄도했고, 이제 그 가상한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을 때였다.

[골!!! 황은후우우우!!!]

[고오오올!!!!]

[황은후가 추가골 만들어 냅니다!!!]

[아아아!!! 아주 기가 막힌 골이에요오오오!!!]

은후는 빈 골문으로 공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골망까지 닿은 공을 주워들어 유니폼 상의 안으로 감싸 안는 특별한 셀레브레이션을 보였다. 주먹을 쥔 왼쪽손의 약지엔 입을 맞췄다. 아무래도 아영을 향한 셀레브레이션이겠지. 우주는 알 수 있었다. 은후도 지금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대한민국이 추가골 만들어내면서 점수차 벌립니다! 2대0!]

[그렇죠! 상대의 빈틈을 잘 노렸어요!]

[아주 유기적으로 맞아 떨어진 공격이었습니다! 제 2의 차붐으로 불리며 차범근 해설위원님의 총애를 받는 황은후가 추가골 만들었습니다!]

[...네 그렇죠!]

이 기분은 마치 2002년에 유상철의 추가골 때와 비슷했다. 은후의 골이 들어간 순간 직감했다. 이 경기에서 어떤 변수만 생기지 않으면 분명 이 경기는 이긴다. 하지만 우주는 내색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계속 긴장해서 더욱 완벽한 경기력을 보였으면 했다.

[정말 잘 해주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압박에 잘 대처하며 기회를 만들고 있어요.]

우주가 보기에 솔직히 러시아 선수들의 상태가 정상처럼 보이진 않았다. 브라질에도 늦게 입성했다더니 그 영향을 분명히 받는 모양이다. 현이나 소중의 볼 컨트롤에 어떻게 대처하지도 못하고 전진을 허용했고, 우주가 공을 잡고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때까지도 우주의 공을 뺏어내질 못했다.

요지는 그들의 압박이 효율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경기는 보통 강팀과 약팀의 경기에서, 약팀이 강팀의 전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강팀이고 러시아가 약팀일까? 우주는 자문했고, 그렇다는 대답을 내렸다. 오늘 대한민국은 최고의 팀이다.

[최현이 드리블 돌파하면서 중앙까지 치고 옵니다! 최현!]

[아주 몸이 가벼워요!]

[글루샤코프의 발에 걸려 넘어집니다!]

골문과 35m는 떨어진 지점에서 맞이하는 프리킥 기회. 현은 넘어진 자리에서 골문을 한 번 살펴보더니 먼 거리 프리킥을 맡고 있는 미르에게로 다가가 속삭였다. 자신이 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주는 페널티 박스 앞에서 위치를 잡고는 그 둘을 주시했다.

[한미르와 최현이 프리킥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미르는 왼발을 쓸 수 있고, 최현은 오른발을 쓸 수 있습니다.]

[최현 선수가 킥이 상당히 강력한 선수인데요.]

의욕이 앞서 기회를 그르칠 수도 있지만 일단은 현이 얻어낸 기회였고, 세트 피스 능력만 보자면 러시아가 앞서기에 적극적으로 슛을 시도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우주는 현을 믿기로 했다.

[최현이 달려갑니다. 그대로 슛!!!]

[...슈우우웃!!!]

우주는 레알 마드리드와 밀란에서 매일 같이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축구를 했다. 그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공을 다루는 자신들만의 기술이 있었고, 그 기술의 완성도는 높았으며, 무엇보다 남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것이었다.

“!”

그들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경외심처럼, 지금 현의 킥에서도 그게 분명히 느껴졌다. 공은 골대와 35m는 떨어진 거리였지만 회전 없이도 골대까지 힘 있게 날아갔다. 마치 피를로, 호날두가 보이는 킥과 비슷했다. 이 킥은 새삼 우주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고...!!!]

아킨페프는 자신의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을 손으로 쳐냈으면서도 골을 허용했다. 손에 맞은 공이 아킨페프의 어깨를 지나 골라인 안으로 떨어졌다. 손으로 공을 쳐내기엔 슛이 너무도 강했고, 애초에 막을 슛이 아니었다. 오늘은 그에게 가혹한 날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올!!!]

[골!!!!!!]

[역시 러시아는 산유국입니다아아!!! 아킨페프가 완전히 기름손이 되어버렸습니다!!!]

3대0. 그제야 우주가 굳은 표정을 풀고 활짝 웃었다. 현은 손목 위에 입을 맞추고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승리를 확신하게 된 순간이었다. 현에게로 달려간 우주는 현을 번쩍 안아들었다.

이 마지막이 어떤 마지막이 될지는 모른다. 남들이 박수를 보내주지 않을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주 스스로가 만족하고 있었다. 우주는 지금 행복했다. 그거면, 그것만으로 화려한 피날레였다.

============================ 작품 후기 ============================

우주 : ㅇㅅㅇ 브라질에 오니까 심심하다능. 노트북으로 영화나 봐야겠다능.

현 : ㅇㅅㅇ 영화볼 때는 초코에몽이랑 같이 하는 게 최고라능. 드셔보시라능.

우주 : 후배가 주는 건데 사양하기도 미안하다능. 한 번 마셔보겠다능.

현 : ㅇㅅㅇ..(두근두근)

우주 : 당장 내 눈 앞에서 치우라능. 두 번 다시 권하지 말라능. 혼난다능. ㅇㅅㅇ (단 걸 싫어하는 아저씨)현 : ㅠ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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