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온 킹-52화 (52/82)

52화

강소중은 자신이 이 시대의 EPL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이끌어 올만한 플레이를 보였다. 완벽했다. 실수란 없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예상하기 어려운 플레이로 골을 기록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강한 압박, 가르시아가 공을 빼냅니다.]

총합 스코어는 2대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무난한 다음 라운드 진출이 예상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 예상을 뒤엎는 경기였다. 강소중이 그 정도의 선수라는 건 인정할 수 있었다. 지금 세계 최고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강소중의 수준이 곧 맨체스터 시티의 수준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특유의 강력한 수비로 다른 선수들을 꽁꽁 묶었다.

[강소중이 왼쪽에서 공 잡습니다. 후안프란의 수비, 흘러나온 공을 김우주가 백힐 패스로 코스타에게 연결합니다. 코스타가 드리블로 맨체스터 시티 진영을 노립니다! 어! 콤파니!]

[완전 치열하네요!]

[콤파니의 멋진 슬라이딩 태클이었습니다!]

소중은 주로 왼쪽에서 공격을 시도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오른쪽 수비수 후안프란은 소중의 드리블을 차단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1대1 수비라면 소중을 막기 어렵겠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은 제대로 위치를 잡고 소중의 시도에 대응했다.

[짧은 연결로 공격 풀어가는 맨체스터 시티, 왼쪽의 강소중입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은 최대한 2, 3명이서 소중을 막을 수 있도록 위치를 잡았다. 그 때문에 소중은 득점 이후엔 별다른 기회를 맞이하지도, 만들지도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이 정도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 메시라도 득점을 올리기 어려웠다.

[반대편 멀리 봤습니다! 사발레타!]

[...아!]

[사발레타가 공 제대로 받아내지 못합니다. 정말 긴 패스였는데요.]

[사발레타가 움직이는 과정에서 필리페 루이스의 수비를 생각하다 보니까 정작 공을 제대로 터치하지 못했어요.]

언제라도 중요한 패스를 시도할 수 있는 시야는 위협이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은 소중을 더 강하게 압박했다. 거친 몸싸움을 시도하기도 하고, 은근히 팔꿈치로 고통을 가하기도 했다. 소중을 막기엔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소중은 몇 차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항의는 동료 선수들의 몫이었다.

[전반전 끝납니다. 2대0으로 맨체스터 시티가 앞선 전반전, 총합 스코어는 2대2로 후반전을 맞이하게 되겠습니다.]

드레싱룸으로 가서 만난 시메오네는 약간의 착잡함도 느낄 수 없는 무표정으로 선수들을 대했다. 그는 실점 과정에서 많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오늘의 경기력도 여전히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뒤지고 있는 경기였지만 경기 내용만으로 봤을 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질만한 경기는 아니었다. 시티 선수들은 리그에서 힘을 많이 빼고 왔던 상태였는데, 오늘 경기에서 이미 많은 움직임을 가져갔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시 리그 경기를 치르고 왔던 상황임은 똑같지만 위치를 지키고 위험 지역에서만 압박을 가하는 전략으로 체력을 아꼈다.

후반전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시간이다. 우주는 자신 있게 피치로 나갔다.

[역시 강소중이란 말 밖에 나오지 않는 건 오늘의 2골이 말하고 있죠.]

[네, 그렇습니다. 뛰어난 드리블 기술과 침착한 결정력이 장기인 강소중 선수인데, 오늘 멋진 2골을 만들었어요.]

또 강소중이 해낼 수 있을까. 우주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경기에 임했다.

[강소중이 왼쪽에서 돌파 시도합니다. 제쳐내는데요!]

소중이 또 측면에서의 드리블 돌파를 결국 성공해내며 박스 안쪽으로 침투했다. 소중은 골문 앞으로 움직이는 공격수에게 패스를 보냈다. 패스는 연결되지 못하고 그대로 흘러버렸다. 수비에 복귀하던 필리페가 굴러나오는 공을 잡아내고 돌아서자마자 전방으로 패스를 연결했다.

[코케에게 패스, 코케가 한 번에 띄워주면서 코스타에게 패스 시도합니다! 콤파니의 헤더 차단!]

코케가 굴러오는 공에 발만 갖다 대며 방향을 바꿔 코스타에게 패스해주었다. 공중으로 떠오른 공은 코스타에게 연결되기 전에 콤파니에게 막혔지만, 콤파니의 클리어링이 페르난지뉴에게 연결되지는 못했다.

[가비가 바로 전진 패스!]

[오!]

[김우주에게 연결!]

[기회에요오옷!!!]

우주는 콤파니가 클리어링한 공이 가비에게로 가자 바로 데미첼리스 옆을 지나가며 뒷공간을 노렸다. 가비는 우주의 움직임을 보고 바로 띄워주는 패스로 우주에게 패스했고, 우주는 아무도 없는 수비 뒷공간에서 공을 받아냈다. 완벽한 기회였다.

[김우주의 슛!!!]

[아!!!]

[골!!!]

[들어갔어요옷!!!]

축구인생을 걸어오면서 거쳐온 수많은 기회들처럼, 우주는 골키퍼 옆을 지나가는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이 거세게 환호했고 역전을 노리던 시티는 잠깐 동안 정신의 붕괴를 느꼈다.

[아, 역시 김우주우우!]

[한국축구의 영웅! 떠오르는 샛별 강소중을 상대로 자신의 이 어떤, 그... 아무튼 정말 대단함을 보여주네요!]

그간의 업적으로 쌓아온 자존심은 몰락을 거부했다. 우주는 이 1골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승리를 확실히 했다.

그 후 경기에서 소중이 아무리 고군분투를 펼쳐도 결국에 또 다시 골문을 열어낼 수는 없었다. 소중이 공을 잡을 때면 수비수들은 강하게 소중을 몰아붙였고, 소중은 승리를 위한 어떤 방도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경기 끝납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1대2로 패배했지만 총합 스코어 3대2로 앞서면서 4강에 진출합니다!]

홈팬들은 패배는 신경쓰지 않고 4강 진출에 열광했다. 우주의 골이 결정적이었다. 우주는 자신의 골에 울상을 짓게 된 소중에게로 가서 그제야 인사를 나눴다.

“수고했다.”

울상을 짓던 소중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둘은 유니폼을 교환했다.

그리고 머뭇거리던 소중은 상심한 표정으로 피치 밖으로 빠져나갔다. 패배의 충격이 큰 상태인 것으로 보였다.

‘코리안 더비, 김우주의 승리!’

다음날 포털 사이트에는 편협적인 기사 제목이 올라왔다. 승리는 맞지만 개인적인 승리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수비수들이 실점 장면 외에는 강소중을 제대로 묶었을 뿐이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 스페인 출국’

‘김우주 복귀 가능성’

우주는 한국에서 뿌려대는 대표팀 복귀 가능성 루머를 말없이 비웃었다. 홍명보 감독이 스페인으로 오는 이유는 한미르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이고, 우주와 만나는 건 단지 예전 축구대표팀 선후배 사이로 간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의중이었다.

“집 좋네.”

한미르의 경기를 지켜본 홍명보 감독은 다음날 마드리드에 있는 우주의 집을 찾았다. 은솔이는 엄마 뒤에 숨어서 홍명보 감독에게 수줍게 인사했다. 홍명보 감독은 은솔이를 보고 그 어린애 같던 우주도 딸이 생겼다면서 막연히 놀려댔다.

“너 처음 볼 때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렇죠. 와인이라도 한 잔 하실래요? 스페인 하면 와인이잖아요.”

발코니의 테이블에 마주앉게 된 둘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홍명보는 지금에서야 감독이라 불리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무서운 선배였다. 2002년 때부터서야 히딩크 감독을 통해 편해졌다.

“요즘 잘하는 애들 많던데. 걔네들 가르치려면 형이 고민이 참 많을 것 같아요.”

한창 예전 추억으로 이야기 꽃을 피울 때, 우주가 요즘 어린 선수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때까지 웃음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홍명보 감독이 조금 얼굴을 굳혔다. 우주는 그런 표정 변화를 알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은후는 애가 밝았는데, 이탈리아 생활이 좀 힘들어서 그런지 성격이 달라졌다고 하고... 미르는 애가 좀 소심한 거 빼면 괜찮아요. 낯을 가리는 건 나도 그랬던 거니까. 강소중은 같이 경기하니까 진짜 크게 될 것 같고. 형, 최현이랑 같이 해보니까 어때요? 포항 10번이잖아요, 걔가. 최연소 포항 10번.”

우주로서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홍명보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그 어린 선수들의 이름이 나오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느새 혼자만 이야기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우주가 조심스레 홍명보 감독의 표정을 살폈다.

“우주야.”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그리고 불안감이 샘솟았다. 왜 불안감이 드는지는 몰랐다.

“다시 대표팀 와라.”

그 말을 듣는 순간은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2010년처럼 고통스러운 경기도 했고, 2002년처럼 즐거운 경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모두 추억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경기들이 지금의 김우주를 만들었으니까.

“라커룸 스태프요? 베컴처럼? 뭐...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저 이번 시즌 지나면 백수니까. 축구협회에서 운동도 시켜주고 경기도 가까운 데서 보여주고, 좋겠네요.”

애써 모른체. 홍명보 감독은 우주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니, 선수로.”

불안감을 현실로 만드는 홍명보 감독의 대답은 우주를 떨게 했다.

“형, 아니 감독님. 나 거기 다시 안 가요. 감독님이 잘 아시잖아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우주야.”

“다리가 부러져라 뛰고 또 뛰었어요. 나중엔 진짜 다리가 부서졌고요. 내 아내는 그 때 내 다리 부서진 충격 때문에 내 경기 보면서 울어요. 행여나 또 다칠까.”

대표팀이 행복했던 적은 사실, 2002년을 제외하면 없었다. 우주는 다시 몰려오는 수치심과 자기모멸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몇 년 동안 몸 버리면서 축구하니까 나한테 돌아온 게 엿이었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래요. 2002년에 내가, 우리가, 4강에 갔으니까. 또 가야 한다는 거잖아요. 안 가면 못난 놈이 되잖아요. 형, 4강은 그 애들 위해서라도 다시는 가면 안 돼요. 대표팀이 그런 곳이에요. 온갖 모순으로 가득한 곳. 형이, 아니, 감독님이 대표팀 맡을 때도 말리고 싶었던 거 알아요?”

우주는 그간의 설움 때문에 숨김없이 진심을 드러냈다. 홍명보 감독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쉽게 뜻을 굽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주의 뜻이 강경하나, 여전히 우주는 대표팀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새로 모습을 드러낸 어린 선수들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우주야. 한 번만 더 생각해 주라. 그 애들은 네가 있어야 해. 안 그러면, 2002년은 다시 안 와. 우리가 2002년 덕분에 뭘 얻었는지 생각해 봐.”

우주는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도 말없는 우주에게 더는 설득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대표팀 감독이 된 홍명보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처음엔 배신감 비슷한 감정도 생겼다가도, 이내 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대표팀에 복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우주는 밤 동안 잠에 들지 못하고 계속 고민했다.

[최현! 놀라운 드리블 돌파!]

[어떻게 이런 개인기를 보일 수 있죠! 강소중!]

[한미르의 패스! 엄청난 감각입니다! 마치 조준한 것과 같은 정확도!]

[황은후의 슛! 여지없이 들어갑니다!]

우주는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 어린 아이들의 경기 장면을 찾아보았다. 고민의 이유는 이 애들이었다. 이 애들만 아니었어도 홍명보 감독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을 거다. 물론 이 애들은 우주가 없어도 잘하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이 애들과 가까이서 지내고 싶었고 함께 축구를 해보고 싶었다. 우주의 순수한 열망은 그랬다. 이제야 대한민국에 이런 선수들이 나왔는데, 이대로 떠나버리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우주... 슛-!!!]

[슈우우우웃!!!]

[고오오올!!!]

[고오오올!!!!!]

한참을 천장만 쳐다보던 우주는 자신의 꿈이 시작된 98년 월드컵, 네덜란드전에서 자신의 골영상을 찾았다.

[김우주우우우!!!!]

[기가 막힌 중거리 슛!!!]

이때만 하더라도 네덜란드 같은 강팀에게 골만 넣어도 기뻐했다. 한국이 축구를 못하니까.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한국은 축구를 못한다. 물론 다른 남미나 유럽 강팀들에 비하자면. 사람들의 눈높이만 높아졌을 뿐이다.

‘정말 잘 찼구나.’

우주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러 각도로 보여주는 자신의 골 장면에서 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무슨 정신머리로 저렇게 공을 찼는지 모르지만 반 데 사르가 긴장을 풀고 있었다 해도 지금 와서 보면 정말 잘 찼던 슛이다.

이 슛으로 모든 게 시작되었던 것일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우주는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봤다.

우주는 곧 알게 되었다. 가슴이 말해주고 있었다. 98월드컵, 네덜란드를 상대로 김우주가 찬 공은 아직도 골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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