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온 킹-24화 (24/82)

24화

“대한민국!”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울리는 소리는 가슴 속에 불을 지폈다. 엄청난 에너지였다.

[우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결승 진출을 놓고 독일과 경기를 치르겠습니다.]

경기 시작 전, 독일 선수들과 나란히 섰다. 단순히 경기를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인데도 의미가 되었다. 세계에서 인정하는 선수들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는 점,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상상만 해봤던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게 됐다.

독일의 국가가 연주되었다. 독일 선수들은 국가를 따라부르며 자신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이제 대형 태극기가 또 너울되는...!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감격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애국가를 부르면 반드시 이겼고 진 적이 없습니다!]

[가슴이... 징하게 지금... 격해지는데요.]

그렇지만 그들의 기분이 자국에서 맞이하는 월드컵 4강 경기에 직접 출전하는 선수들만큼 고취될 수는 없었다. 단순히 애국가가 연주될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봤던 애국가가 지금은 단순한 애국가가 아니었다.

경기장의 대한민국 응원단이 전부 애국가를 불렀다. 그 노래에 무슨 에너지가 담긴 것인지 가슴이 벅차고 몸이 찌릿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월드컵 개막한 이후 가장 뜨거운 상태라는 생각인데요. 전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이 지금 이 상암에 쏠린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셀 수 없을 정도로 모여있는 국민들 앞에 서는 일은 낯설지가 않은데, 이 감정이 너무 일렀다. 그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우주는 기념 촬영을 마치고 선수들과 함께 둥글게 모였다. 주장 홍명보는 반드시 이긴다고 다짐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파이팅을 외치고 각자의 자리로 뛰어갔고, 킥오프를 위해 우주가 경기장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독일은 5골의 미로슬라브 클로제, 한국은 6골의 김우주. 양 팀 공격수의 득점력이 오늘 경기를 좌우할 수 있겠습니다.]

[김우주는 지금 월드컵 득점 1위란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호나우두와 클로제를 제치고 말이죠.]

[그의 발끝에서 골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독일의 11명을 모두 보면서 걸어가는 동안 이 대회에 걸린 기대감을 떠올렸다. 그러면 두렵기도 하고 의구심도 들었다. 그렇지만 무슨 생각을 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물러설 수 없다.

같이 킥오프를 준비하고 있는 박지성의 눈이 반짝였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박지성뿐 아니라, 등 뒤에 있는 대한민국 선수들 모두.

[이제 역사적인 순간이 됐습니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우리는 현해탄을 건너 요코하마로 갑니다!]

휘슬이 울렸다. 우주는 박지성에게 공을 굴리고 독일 진영으로 움직였다. 이제부터 4강전 경기는 시작되었다. 경기가 시작된 순간부터는 지금에 녹아들 뿐이다.

[독일은 역시 수비수 4명을 두고 경기를 하죠. 그동안은 3-5-2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지만 오늘은 한국이 측면 공격수를 둔 3명의 공격진을 상대하기 위해 4-4-2 포메이션으로 갑니다. 축구 경기는 말이죠, 상대팀의 전술에 대응하거나 자신들만의 전술을 내세울 수가 있는데, 독일은 한국에 대응하는 전술로 경기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다.]

체력적으로 앞서 있는 독일의 선수들을 이겨내기란 어렵지 않기에, 히딩크 감독은 오늘 이천수와 차두리를 내세우면서 우주를 최전방에 기용했다. 그러한 기용이 초반에 효과를 보는 듯 독일이 쉽사리 공격에 나서지 못했다.

[오른쪽의 프링스 선수는 원래 3-5-2 시스템에서 미드필더 역할을 맡는 선수인데 오늘은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나서고 있죠. 이천수의 측면 공격을 막는 겁니다.]

브레멘에서 뛰던 시절에 함께 경기를 치르던 토르스텐 프링스도 이 경기장에 있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긴 하지만 감회는 새롭다. 브레멘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프링스 정도 되는 선수는 꽤나 멀어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월드컵 결승전을 두고 겨루는 입장에 있다니.

[슈나이더. 올라가게 둬선 안 돼요!]

독일도 슬슬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오른쪽의 슈나이더가 이영표를 등지더니 몇 차례 발재간을 보이며 결국엔 골문 앞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이운재가 허용하지 않아요.]

[측면 쪽에서 센터링을 허용했을 때 바로 지금처럼 이운재는 적극적인 수비를 해야 합니다. 다른 때보다 이운재가 행동 반경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죠.]

미로슬라브 클로제의 머리에 공이 닿기 전에 이운재가 공을 낚아챘다. 대한민국 응원단은 이운재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천수가 공에 욕심이 많다는 그런 지적을...]

이천수는 오늘 마음을 먹고 나온 듯 공을 잡을 때면 독일 선수들 사이로 거침없이 돌파를 시도했다. 발락의 슬라이딩 태클에 한 차례 드리블이 막혀 독일이 역습을 시도하려 했지만 끝내 최진철이 차단하며 대한민국의 위기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시 역습이었다. 독일 선수들이 수비로 전환하기 전에 이천수에게로 공이 갔다. 이번엔 중앙선을 넘는 이천수를 막는 독일 선수들이 없었다.

우주는 수비진 뒤로 움직였다. 이천수에게 패스를 달라며 손짓했다. 수비수 두 명이 모두 이천수만을 시야에 두고 있어 이천수가 패스만 성공시킨다면 기회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수비수 뒤로 김우주가... 주면 안 돼요!]

하지만 이천수는 패스 타이밍을 놓쳤다. 본인도 자신의 드리블 기세를 제어할 수 없던 듯 싶었다.

이천수가 수비진을 두려워하지 않고 드리블을 하는 동안 우주는 다시 위치를 재정비해서 왼쪽에서 움직였다. 이천수는 오른쪽 빈공간으로 패스를 보냈다. 자신만의 아우토반을 달려온 오른쪽 측면의 차두리가 패스를 받았다.

[멈춰놓고 차두리!]

공을 멈춰둔 차두리는 메첼더가 다가오자 다시 이천수에게 패스를 보냈다. 이제 이천수는 박스 오른쪽 모서리에 서있었다. 자신에게 패스가 오는 것을 알고 이천수는 골문 쪽을 한 번 살폈다. 슛을 때리려는 심산이었다.

[슈우우웃!!!]

이천수는 마음먹고 왼쪽 포스트를 향해 공을 보냈다. 독일 선수들 가슴이 철렁할 정교한 슛이었다.

[아아아!!! 이걸!!!]

[아!]

[역시 칸입니다!]

칸은 몸을 던져내며 손끝으로 공을 쳐냈다. 뒤이어 라멜로우가 튕겨나온 공을 멀리 걷어내었고, 완벽히 대한민국의 기회를 끝내버렸다.

[참 때리기 어려운 각이었는데!]

우주도 놀랄 정도로 잘 때린 슛이었지만 칸이 완벽한 선방을 보여줬다. 튕겨나오는 공이 우주 앞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그조차도 의식한 듯 공은 완벽히 라멜로우 앞으로 갔었다. 의도적으로 튕겨내는 방향까지 조절했다는 거다.

칸의 능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우주는 독일이 4강에 올라온 이유를 수긍할 수 있었다.

[클로제에게! 독일은 부지런히 골문 앞의 클로제에게 올려주네요!]

[늘 우리는 공격수를 마크해야 합니다. 공격수 뒤에서 올라오는 공은 공격수가 맞추기 어렵거든요. 특히 클로제 같이 헤딩이 좋은 선수라도 말이죠. 최진철이 방금도 제공권에서 완전히 클로제를 이기잖아요. 그건 앞을 보고 수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1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 선수를 막다가 공이 올라오면 빠르게 대처하는 그런 수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일의 공격은 번뜩인다고 하기 보다는 꾸준했다. 클로제에게 연이어 공이 올라왔고 최진철은 그런 클로제를 막느라 바빴다.

[측면으로 갑니다. 문전으로 올리게 둬서는 안되죠.]

[으음, 막아야 돼요.]

[올려주고! 홍명보가 막아냅니다.]

독일이 꾸준히 측면 공격을 시도하며 크로스를 올리지만 대한민국 수비진은 결정적인 헤더슛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독일을 막아냈다. 이어서 왼쪽의 메첼더가 공격에 가담하지만 유상철에게 막혔다. 홍명보는 흘러나온 공을 잡아내고 재빨리 우측으로 달리는 박지성에게 패스했다.

[좋습니다! 측면으로 갑니다!]

박지성은 자신의 옆으로 달리는 차두리에게 패스했다. 차두리는 빠른 속도로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아우디처럼 독일의 오른쪽 측면을 허물어버렸다.

[치고 들어갑니다!]

[이천수에게 줘야...!]

어느새 페널티 박스 오른쪽까지 들어온 차두리에 독일 수비진은 혼비백산이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이 사이에도 독일 수비진을 어지럽혔다. 골문 정면 방향으로는 측면에 있던 이천수가 들어왔고, 차두리와 먼 거리의 골문 왼쪽으로는 중앙에 있던 우주가 이동했다. 서로를 가로 지르는 동안 독일 수비수들은 둘 중 어느 누구도 막지 못했다.

차두리는 재빨리 중앙의 이천수에게 패스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던 링케가 다리를 뻗어내 차두리의 공을 박스 밖으로 튕겨냈다.

[그러나 박지성!!!]

박지성이 링케가 쳐낸 공을 잡아냈다. 뒤에서 박지성을 따라오던 발락이 얼른 박지성의 앞을 막아버렸다.

박지성은 영리했다. 발락이 자리를 잡는 사이 방향을 꺾어 중앙으로 공을 치고 갔다. 발락이 역동작에 걸리게 함으로써 마크를 벗겨내는 동시에 슛 각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왼발 갑니다!!!]

박지성의 왼발이 날카롭게 골문 왼쪽 구석으로 파고 들었다. 슛을 기다리던 칸조차 막을 수 없는 코스였다. 슛이 지니는 예리함, 그 예리함이 독일을 관통했다.

[아!!! 골대!!!]

그렇지만 칸의 손을 피해간 공은 골망까지는 흔들지 못했다. 대신 골대 하단을 때렸다. 박지성은 실망하지 않고 눈으로 공을 쫓았다. 아직 공격이 끝나진 않았다.

[다시!!!]

[아아아!!!]

우주가 서있었다. 마치 공이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거기에서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링스와 동시에 반응한 우주는 프링스보다 먼저 공에 다가갔다. 그리고 발을 뻗어 넘어진 칸이 지키지 못하는 골문에 공을 밀어 넣었다.

[고오오오올!!!!]

[골!!! 골!!!]

칸이 골망에 걸린 공을 보고 미친 듯 수비수들에게 소리쳤다. 완벽히 상대 공격수들을 놓쳐버리며 결국 실점이 되었다.

하지만 칸은 프링스가 보는 곳을 보고 겨우 입을 다물었다. 칸이 바라본 곳에는 부심이 깃발을 들고 서있었다. 그 깃발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뻔하다. 골인 줄 알고 소리치는 바보 같은 응원단에게 입을 다물라는 메시지다.

============================ 작품 후기 ============================

이 글의 주인공 김우주가 1979년생이고, 2014 월드컵이 되면 은퇴를 앞둔 선수가 되겠죠.

사람이 언제까지나 주인공일 수는 없겠죠. 물론 제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은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이겠지만, 남들 앞에 서는 주인공은 말이에요.

글을 처음 쓰면서 딱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승승장구 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끊임없이 깨달아가는 주인공을요.

글의 주인공한테 인공이 인공이 거리는 사람들이야 맨날 주인공이 골 펑펑 넣고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와아 소리지르고 세계적인 스타들하고 술마시고 유흥을 즐기면 그게 재밌겠지만, 글을 쓰는 입장이나 몇몇 사람들은 그렇게 뻔한 이야기를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글을 쓸 거면 전 글을 쓰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런 글은 스스로도 쓸 수 있잖아요.

제 글에서 제발 그런 거 안 찾았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건 어떤 대회에서 얼마나 많은 골을 넣으면서 우승하느냐가 아니고 주인공이 무슨 가치를 얻느냐겠죠.

2002년 여름이면 92년생인 황은후는 이제 막 대동초의 축구부겠네요 ㅇㅅㅇ94년생인 최현과 신현성은 이제 이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를 시작할 거고, 한미르는 경기장에서 축구선수 엄마와 함께 직접 경기 관람을 ㅇㅅㅇ 95년생인 강소중은 진리에게서 떠나 미국 유학중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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