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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21화 (21/82)

21화

끝없는 아쉬움을 삼키던 우주는 호흡을 한 번 크게 내뱉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말디니와의 경합 과정에서 파울 선언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결국 파울은 선언됐다. 더 신경을 써봐야 경기력에 영향만 줄 뿐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게 부담이긴 해도 지금은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했다.

[3번의 파올로 말디니가 뒤에서 따라와서 김우주 선수를 방해하려 했고, 김우주 선수가 손으로 말디니를 밀어내는 장면에서 주심은 파울을 선언한 것 같습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김우주였는데요. 오히려 김우주를 방해하려 한 건 말디니인데, 참 아쉽습니다.]

계속 진행되는 경기. 김남일이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부상을 입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 있는 시점에서 히딩크 감독은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천수가 들어가네요.]

이젠 미드필더의 무게를 덜어내고 공격진에 신경을 쓰며 동점을 노렸다.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더 몰아붙이길 원했다.

[한국 선수들이 못한다고, 꼬집기 보다는 상대 수비 조직이 워낙 견고하다...]

[안정환이 수비 뒤로 파고드는데요! 공은 골라인까지!]

대한민국이 수비진에서 공을 돌리던 도중 오른쪽 측면의 송종국이 같은 우측면에 위치한 안정환에게로 가는 긴 패스를 시도했다. 순식간에 수비수들 사이로 빠져 들어간 안정환은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어내고 측면 공간에서 패스를 받아냈다.

[중앙으로 센타링!]

골라인 밖으로 튀어갈 것 같던 공을 안정환은 기어코 잡아냈다. 공을 멈춰두지는 못하고 튀어오른 공을 얼른 페널티 박스 안으로 우겨넣는 크로스를 시도해야 했지만 안정환은 골문 앞으로 움직이는 선수를 믿고 있었다.

[김우주!]

[어어!]

송종국의 패스가 전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박스 안으로 뛰어들었던 우주는 안정환의 크로스에 재빨리 반응했다. 말디니와 율리아노의 사이에 떨어지는 절묘한 크로스였다.

우주의 헤더슛은 골키퍼가 막기 어렵게 바운드되며 골문 왼쪽 구석으로 향했다. 헤더슛 자체가 방향을 읽기 어려워 골키퍼들이 가장 막기 어려운 슛이라 불리는데, 거기다 타이밍까지 뺏어버리는 바운드까지 있었으니 우주의 헤더슛은 부폰 골키퍼가 막기 어려울만 했다.

우주의 의도대로 부폰은 방향을 읽긴 했으나 몸을 던지는 타이밍을 뻿어냈다. 부폰이 다이빙을 할 때, 공은 이제야 잔디 위에서 튀어올라 골문으로 갔다. 이대로라면 부폰의 위를 지나서 그대로 골라인 안으로 흘러들어갈 판이었다.

‘먹혔다!’

우주는 공을 보면서 자신의 헤더슛이 완벽히 적중했음을 느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른 다이빙 탓에 넘어져있는 부폰이 다리를 들어올렸다.

[아!]

골문 안으로 흘러갈 것 같던 공이 부폰의 무릎에 맞고 골문 앞으로 튀어나왔다. 자신의 위로 지나가는 공을 부폰은 다리를 들어올려 무릎으로 막아낸 것이다.

[다시! 아!]

[아아...!]

[걷어내는 말디니! 김우주가 결정적인 헤딩슛을 시도했습니다만...! 이번에도 막힙니다!]

[정말 부폰 골키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골키퍼 이적료의 선수인데... 아... 정말 대단한 선방을 보여주네요.]

[망연자실 하는 김우주! 하지만 괜찮아요!]

완벽히 골인줄로만 알았던 슛이 막혀버렸다. 우주는 허무함을 느끼고는 그 자리 그대로 서서 부폰을 바라봤다. 부폰 뿐 아니라, 이 주위의 있는 선수들이 세계 수준에 있는 선수들이었다. 어째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열세에 시달릴 것이라는지 세계 언론의 반응을 알만했다.

[뭔가 될 듯 하면서도 말이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우주가 다시 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방금 그 부폰의 말도 안되는 선방은 동점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릴 정도였지만, 그렇다 해서 이 경기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중앙선 부근에서 떨어지는 공, 김우주가 버텨내면서 따주는데요.]

[좋아요.]

[안정환이 머리를 찰랑거리며 공 잡아냅니다. 돌아서서 전진 패스 시도!]

우주가 공중볼을 따내자 전방에 있던 안정환이 내려와 공을 잡아냈다. 잠브로타가 안정환을 견제했고, 안정환은 잠브로타를 등지고 있다가 재빨리 이탈리아 수비진을 향해 뛰어가는 우주에게 터닝 패스를 보냈다.

[치고 들어갑니다!]

안정환의 패스를 이어받은 우주가 공을 길게 치고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 때, 가투소의 발이 우주의 발에 놓인 공을 멀리 쳐냈다.

[나뒹굽니다. 김우주가 돌파 시도하려 했지만 막혀버렸습니다.]

[8번의 젠나로 가투소, 투지가 상당한 이탈리아의 수비형 미드필더죠.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은 지금 대한민국의 승부욕을 원천적으로 꺾으려고 거친 수비를 지시했을텐데요. 여기에 가투소라는 거친 플레이의 선수가 들어오게 된다면 대한민국 선수들이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오늘 이탈리아 선수들은 완전히 킥복싱을 하고 있으니까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 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대표팀이 이겨내야 합니다. 이겨낼 수 있고요.]

가투소의 슬라이딩 태클에 걸려 잔디 위를 나뒹굴던 우주가 주먹으로 그라운드를 짚고 일어났다. 이젠 어지간한 고통에도 무감각해졌을 정도로 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점점 초조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황선홍이 투입됩니다. 김태영을 빼고 황선홍을 투입하는 히딩크 감독.]

[경험이 많은 공격수니까 지금 같은 경기에서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경기를 이끌어 가는데 좀 더 수월해질 수 있어요. 공격수만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히딩크 감독의 의중은 역시 잠그기만 하는 이탈리아의 수비진을 열어제치겠다는 건데요.]

[빗장은 아직도 잠겨있고, 우린 빗장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히딩크 감독은 여기서 황선홍까지 투입시켰다. 무엇을 노리는지는 뻔한 투입 결정이었다. 골 결정력이 있는 선수들을 여럿 투입해 결국 이탈리아 수비진을 열어내겠다는 의도였다.

“우주! 잘 하고 있어! 계속 하던 대로!”

황선홍이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감흥을 느낄 겨를도 없긴 하지만 우주는 지금 자신이 스틸러스 선수로서 스틸러스의 상징적인 인물과 함께 월드컵 경기에 나서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영광을 떠나서, 황선홍이라는 거대한 선수가 자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속의 미묘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4년 전만 하더라도 황선홍과 같은 방을 쓰면서 방장 황선홍의 눈치만 봤다. 그건, 황선홍이란 사람을 대접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황선홍이라는 선수를 존경하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존경하는 선수의 믿음은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기로 한 결심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영표가 스로인, 공 잡고 있는 김우주. 휘슬 붑니다. 이탈리아의 율리아노의 파울을 선언하는 주심입니다.]

[김우주 선수가 공을 잡고 있을 때, 유니폼을 잡아당겼죠.]

[코너킥과 비슷한 위치의 프리킥인데요.]

[가까운 포스트로 붙여놓는 센터링을 기대할 수 있겠는데요.]

우주가 얻은 프리킥에 이영표가 킥을 준비했다. 코너 에어리어 근처에서의 프리킥, 아까 이탈리아가 그랬듯 대한민국도 골을 노릴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멀리! 아, 부폰이 잡아냈어요...]

[너무 멀리 보고 찼어요. 공이 솟구치고 말았죠.]

부폰은 대한민국의 높은 크로스를 점프 캐치하고는 수비수들에게 소리쳤다. 어떤 상황에서든 집중력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멀리 찹니다. 자, 홍명보가, 아, 잡아끌어요.]

전방에 홀로 남아있던 토티는 부폰의 긴 패스를 가슴으로 받아내긴 했으나 결국 홍명보에게 공을 뺏겼다. 뺏기는 순간까지도 유니폼을 잡아 당기며 어떻게든 공을 되찾으려 했지만 홍명보는 토티를 뿌리쳐내며 오른쪽 측면의 송종국에게 패스했다.

[아아, 지쳤나요. 송종국의 패스 받을 때 안정환이 넘어지네요.]

다리에 힘이 풀려가는지 송종국의 간단한 패스를 받을 때 안정환이 잔디 위에서 넘어져 상대에게 공을 헌납했다. 아까부터 매순간 전력을 다해 뛰었기에 체력을 거의 모두 소진한 듯 싶었다.

[무려 5명이 공격에 가담해서 승부를 보는 대한민국인데요.]

[송종국이 멀리 봤습니다만! 말디니가 머리로 받아냅니다.]

90분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2분. 이탈리아의 감독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는 물을 들이키며 손목 시계의 초침을 재촉했다. 개최국 대한민국은 조별예선에서 3승씩이나 거두고 온 팀이기에 힘든 경기를 예상했고, 이번 경기는 예상만큼 힘들었다.

[다시 송종국이 가로챕니다! 중앙으로 올려주는데요! 아, 율리아노가 공 따냅니다. 조금 높다 싶으니까 황선홍이 가세하려 했었는데요. 괜찮아요, 이런 충돌은.]

그리고 그 예상만큼 힘든 경기에서, 예상한대로 힘든 승리를 가져오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압박이 강한 팀이다. 그건 이 선수들이 개최국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어드벤티지를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켰고, 대회를 준비하면서 체력까지 완벽한 상태로 만들어놓았던 탓이다.

그렇지만 축구는 이탈리아가 더 잘한다. 축구를 잘하는 팀이 경기에서 이기기 마련이다. 트라파토니 감독은 이 경기의 끝이 대한민국의 이번 월드컵의 끝이라고 여겼다.

[이젠 중앙으로 띄워주고, 흘러나오는 볼을 주워먹는, 그런 공격이 필요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시도하는 공격은 특별한 전술이 아니었다. 이탈리아는 이런 축구에 강하다. 공중으로 공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이탈리아가 특별히 제공권이 약한 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뒷공간을 그대로 내줄 조잡한 조직력의 팀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잘 싸워왔다. 단지 조 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올라와 이탈리아를 상대로 맞이한 것이 불운했을 뿐이다. 트라파토니 감독은 아시아 팀을 여기까지 끌고 온 히딩크 감독에게 박수를 쳐줄 생각이었다.

대한민국엔 세계 최고의 트레콰르티스타 프란체스코 토티도, 판타지스타라고 불리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도, 수비수의 교과서 파올로 말디니도 없다. 그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일 뿐이고, 이탈리아는 이런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놓은 팀이다. 어느 팀이 이길지는 사실 경기 전부터 자명했다.

[모 아니면 도입니다.]

비에리와 함께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던 토티는 이 경기가 결국 자신의 말대로 끝날 것을 기대했다. 이탈리아는 1골을 넣고, 그 1골이 승리를 결정하는 골이 되는 것. 수비가 강한 이탈리아 축구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기였다.

[박지성이 공 보내고, 황선홍, 황선홍!]

교체되어 들어온 황선홍은 박지성이 가투소의 키를 넘겨 연결해준 공을 가지고 이탈리아 페널티 박스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공을 이탈리아 진영 깊숙한 곳으로 운반해 최대한 기회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맹렬한 노장의 돌진을 막는 건 율리아노였다. 율리아노는 긴 다리를 길게 뻗어 페널티 박스 앞으로 달려오는 황선홍의 드리블 돌파를 저지했다.

[박지성!]

이탈리아 페널티 박스 주위엔 8명의 선수가 있었다. 저마다 위치를 잡고 있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율리아노의 태클이 운 좋게도 재차 박지성에게 연결되었다. 박지성은 이미 시야를 확보한 상태였다. 그는 이미 그의 시야 속에서 목표를 잡아놓은 상태였다.

[왼쪽으로!]

박지성은 자신에게 굴러온 공을 잡아놓지 않고 바로 원 터치 패스를 보냈다. 이탈리아 페널티 박스 왼쪽 공간으로 떨궈주는 패스였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시선이 모두 공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이 떨어지는 지점엔 이탈리아 선수들이 없었다. 모두 중앙으로 움직인 대한민국 선수들을 막기 위해 박스 중앙에만 위치해 있을 뿐, 측면에서 움직이는 선수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김우주!]

떨어지는 공, 박지성의 정확한 패스는 왼쪽에 빠져있던 우주의 앞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골문을 지켜야 하는 부폰은 긴장하며 자세를 낮췄다.

우주가 여기서 공을 멈춰 세운다면 슛 타이밍을 놓칠 것이 분명했다. 부폰은 우주도 그 사실을 알 거라고 생각했다.

수비수들의 방해도 없이, 그저 떨어지는 공을 기다리는 공격수와 그런 공격수의 슛을 막아내려는 골키퍼와의 대결이다. 골문을 45도 각도에서 바라봐야 하는 우주의 입장이 더 불리하긴 했지만 우주는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믿음을 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된다. 그럴 순 없었다.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사람들은 바로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기회는 놓칠 수 없다.

‘당신들이 해낼 수 있는 건.’

박지성의 발을 떠나 공중을 거쳐 우주의 앞으로 떨어지는 공은 이제 우주의 머리 높이에 있었다. 부폰은 가까운 포스트에 붙어 우주의 슛에 대비했다.

‘지금 우리도 할 수 있어.’

대한민국 진영에 있던 토티는 지금 이 순간이 대한민국과의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고 믿고 싶었다. 이 기회만 넘긴다면, 이탈리아는 8강에 간다. 트라파토니 감독도 그 짧은 순간 위기감을 느끼고 팔짱을 끼면서도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제 우주의 허리 아래로 공이 떨어졌다. 우주가 오른발을 먼저 앞으로 내딛었다. 왼발로 원 터치 슛을 시도할 생각인 듯 했다.

순간적인 디딤발의 각도와 몸이 틀어진 모습을 봤을 때 이 슛은 먼 포스트를 노리고 시도하는 강한 슛팅, 부폰은 몸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떨어지는 공을 강한 슛팅으로 연결할 경우 실수가 나오는 경우가 잦기에 어지간한 집중력이 아니고서는 골문을 벗어날 것이다.

‘더 멋지게.’

대한민국 벤치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지금이었다. 우주가 기회를 잡은 지금 무렵에 자리에 앉은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왼발-!]

우주의 왼발에 공이 걸렸다. 페널티 박스 주변에서 엉켜있는 대한민국 선수들과 이탈리아 선수들은 모두 이 공이 어디로 갈지, 저마다의 위치에서 지켜봤다.

공은 오른쪽 포스트 상단으로 뻗어가는 듯 했다. 부폰은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그 공을 손으로 훑어냈다. 말디니는 이 순간 환호할 수도 있었다. 이런 놀라운 슛을 부폰이 손으로 쳐낸 것이다.

“...!”

우주가 왼발로 시도한 슛은 부폰의 손에 걸렸다. 하지만 부폰은 직감했다. 이 슛, 막아내지 못했다고.

[골!!! 골!!!]

[골!!!!]

[동점골이 터졌습니다!!!]

[김우주!!!]

부폰의 손에 맞은 공은 방향만은 꺾이지 않고 그대로 골망에 닿았다. 골이었다. 공격수와 골키퍼와의 대결에서 공격수가 완전히 이겨낸 골이었다.

[이런 기적이 있습니까!!!]

[동점골!!! 동점골입니다!!!]

[기적이 벌어집니다아아!!!]

[기가 막히는 골이 터졌어요오!!!]

[한국이 16강에서 무너지지 않습니다아아!!!]

골이 들어가는 순간 맨 처음 토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붉은 불꽃을 연상시키는 응원단의 모습이었다. 트라파토니 감독은 할 말을 잃고 얼굴만 붉혔다. 토티도, 델 피에로도, 말디니도 없는 대한민국의 월드컵은 지금이 끝이 아니었다.

[김우주가 해냈어요!!!]

적어도 지금 이 대회 동안의 세계 최고 공격수 김우주가 벼랑 끝까지 몰려있던 대한민국을 살려냈다.

‘1-1’

승부는 이제 원점. 90분이 되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제가 쓰는 글은 현실을 주제로 하는 축구 소설이고, 그런만큼 현실과의 비교는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싫든 좋든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제 글에 현 한국 축구 현실에 관한 코멘트가 올라오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딱 잘라 말하면 좀 싫어합니다.

전 축구 지식을 내세워서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 아닐뿐더러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대화하면 속만 까맣게 타거든요. 어차피 우리나라 축구 수준은 여기서 머물겁니다. 우리나라 리그가 발전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 우리 수준이 발전하지 않을 거고, 우리나라 리그는 영원히 발전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축구에 관해서 괜히 설전 벌이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축구는 내게 있어서 그냥 즐기는 취미라서 내 생각이 맞고 네가 아는 사실은 내게 있어 중요하지 않아, 그런 식의 소모적인 대화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축구 지식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넘친다고 누가 보상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제가 현실 축구에 관한 코멘트 쓰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고 어차피 후기에 아무 말도 안 적어놓는다고 해서 어떤 코멘트라도 안 올라올 것 같지는 않아 짤막하게 어제 경기에 대한 제 소감을 주절주절 해보겠습니다.

내가 이딴 경기 보려고 알람 맞춰서 일어났을까. 전반 45분 동안 경기 보면서 멍하니 그런 생각 하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근데 진짜 화가 나더군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딴 경기를 펼칠 수가 있을까.

어디 얼마나 더 깨지나 보자, 그런 오기로 잠을 안 자고 후반전을 봤습니다.

그리고 후반전부터 전 사람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던 정신력의 대표팀을 본 것 같습니다.

3대0 됐는데, 포기는 안 하더군요.

손흥민이 골을 넣으면서 3대1, 그리고 몰아붙이면서 기성용의 놀라운 중거리 슛까지.

이쯤되니 은근히 기대도 되고 경기도 재밌어지고.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갖자마자 4대1이 되었습니다.

그냥 결과에 대해선 그 때부터 체념을 했는데, 전반전처럼 화는 안나더군요. 한국영이 실수하긴 했지만 그건 한국영이 의욕적으로 뛰고 어떻게든 기회 한 번 더 만들어보려고 더 뛰느라 그런 실수를 한 거니까. 그게 대표 선수로 실력이 모자랐다고 한국영을 욕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전 그냥 박수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박수 보내줄 결과는 아닌 거 아는데, 그냥 열심히 뛰는 거 보여서.

결국 교체 들어온 김신욱, 이근호의 공이 컸던 두 번째 골이 나오고 그냥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결과는 물론 너무나도 실망스럽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속 상한 건 선수들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월드컵 때면 축구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축구에 관해서 열변을 펼치는 나라죠. 그만큼 2002 월드컵을 계기로 더 월드컵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표팀을 봅니다. 이번 대표팀이 최악의 구성이니 뭐니 말이 많았지만 그건 이 나라의 축구 수준이 딱 그 정도니까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축구를 좋아하면서 축구를 즐기기도 하기에, 축구란 게 얼마나 어려운 스포츠인지도 압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전 그냥 박수 보내주고 싶습니다. 축구선수로서 월드컵같은 커다란 무대에 서는 건 엄청난 영광이면서도 부담일텐데, 그런 무대에서 볼품없는 모습을 보였으니 선수들 본인들이 가장 아쉽고 속상하겠죠.

이번 대회는 기대 안하고 보는 게 좋다, 주위 사람들에겐 그렇게 떠벌리고 다녔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대했던 입장으로서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최선을 다했을테니까. 이 대회가 마지막이 아니라 계속해서 월드컵은 개최될테니까요.

마지막 남은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자신들의 모든 걸 쏟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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