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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16화 (16/82)

16화

황선홍의 선제골 이후에 분위기는 완전히 대한민국의 것이었다. 벤치에서도 좋은 분위기로 시간을 즐겼다. 뭔가 느낌이 좋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선수들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예감은 붉은 악마들과 같았다.

[한국의 공격루트는 오른쪽이 57%로 가장 높습니다.]

[오른쪽의 송종국과 박지성을 활용한 공격이 왼쪽에 비해서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주요 공격수로 경계대상이었던 올리사데베는 몇 차례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긴 했으나 득점으로 연결되기엔 미약했다.

[수비 조직이 만들어져 있을 때 빠르게 공을 돌려서 역습을 시도하기 보다는 상대가 우리 진영에 모여들면 그 때 역습을 시도해야 하는 거죠.]

[네.]

[상대 수비 조직이 갖춰졌을 때는 빠른 역습 보다는 공격 속도를 늦추면서 시간을 벌고, 또 한국으로서는 경계심을 갖고 축구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 이거 잘못된 처리에요. 그러나 유상철의 커버 플레이 좋습니다.]

대한민국이 압박 수비를 쉬지 않고 있기에 폴란드가 제대로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눈으로 봐도 경기력은 대한민국이 나았다.

[어, 이거 미드필더에서 자유롭게 놔둬요.]

[박스 안으로 공 띄워줍니다!]

[오프사이드에요!]

[오프사이드!]

[상대 미드필더, 상대 플레이메이커가 지금처럼 공을 마음대로 잡고 있게 놔둬서는 안 돼요. 지금 한국이 수비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데, 하나는 측면에서 돌파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과 또 하나는 이렇게 한 쪽의 압박에 치중하면서 상대 미드필더 한 명을 가만히 놔둔다는 문제점이죠. 빨리 정비를 해야 합니다.]

[차분히 잘 지키면서 풀어가야 합니다.]

위기가 한 번씩 올 것 같으면서도 끝내 실점할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유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우주는 자신의 자신감과 경기장 위에 있는 선수들이 갖고 있을 자신감이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송종국, 유상철에게로 패스!]

[아!]

[오프사이드! 골은 들어갔는데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어요!]

폴란드의 공격 전개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공을 차단하고 바로 역습으로 이어갔지만 마지막으로 유상철에게 연결된 패스가 오프사이드였다. 그런데 유상철의 킥 감각이 심상치 않다. 비록 이미 오프사이드가 선언된 순간이긴 했지만 페널티 박스 모서리 근처에서 시도한 슛이 잔디를 가르고 두덱의 옆을 지나 골망을 흔들었다. 보아하니 두덱도 막으려고 움직였던 것 같은데, 막지 못한 슛이었다.

[김남일,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아주 좋지 않은 플레이.]

[김남일과 자주 부딪쳐야 하는데 경기가 안 풀리니 저렇게 거친 플레이를 할 수 밖에요.]

경기 분위기가 과열되는 양상이긴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테크니컬 에어리어까지 나와서 선수들에게 흥분할 필요 없다면서 독려했다.

곧 전반전이 종료된다. 수비진에 위치하고 있던 홍명보는 선수들을 직접 호명하며 집중을 요구했다.

[황새 황선홍이 황새에서 봉황이 되는 전반전이었습니다.]

[네, 후반전까지 이 상태로만 간다면, 월드컵 첫 승을 거두게 됩니다.]

[전반전에 선제골을 따낸 대한민국. 이건 이변이 아닙니다.]

전반전 종료, 벤치에 있던 모두가 일어나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에 있는 응원단도 응원의 소리를 늦추지 않으며 대기실로 돌아가는 선수들에게 끝까지 응원의 뜻을 전했다.

그 쯤 코치진이 안정환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후반전에 교체 투입될 듯 했다.

우주도 여전히 긴장하며 안정환과 함께 워밍업을 시작했다. 안정환은 지금에 집중하려는 듯 많은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몸만 풀었다. 말이라도 건네볼까 했던 우주도 지금은 많은 말이 필요가 아니란 걸 알고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올리사데베를 마크하는 것도 좋지만 미드필더를 경계해야 합니다. 미드필더에서 만들어지는 공격을 견제해야 올리사데베의 빠른 발을 막을 수 있거든요.]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폴란드는 공격수를 한 명 더 투입시켰다. 이제부터 승부를 보려는 것 같았다.

[한국 대표팀은 0대0이라고 생각하며 경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이 수비적으로 경기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여전히 활력이 넘쳤고,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코너킥! 헤딩! 뒤로 흘렀고! 슛!]

[아! 좋아요!]

[아! 박지성인가요!]

[발리슛으로 연결했거든요!]

[이번 경기 박지성의 컨디션이 상당히 좋습니다!]

코너킥에서 경합 과정 이후 떨어진 공을 박지성이 그대로 터닝 발리슛으로 연결했다. 깜짝 놀란 두덱이 머리 위로 날아오는 공을 손으로 쳐내며 위기를 넘겼고, 폴란드로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들끓듯이 말이죠. 일취월장하고 있는 박지성 선수에요.]

벤치 쪽에서도 바빠졌다. 히딩크 감독 감독은 황선홍의 체력을 염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우주는 몸을 풀면서도 히딩크 감독에게 은근한 기대감을 가졌다.

[안정환 선수가 준비하네요.]

[그렇습니다.]

[황새 황선홍 선수를 빼고요.]

[안정환이 투입됩니다. 해결사 안정환!]

[히딩크 감독 감독도 승부를 거는 거에요. 황선홍 선수의 체력을 배려해주고, 앞서 황선홍 선수가 코너킥 때 충격이 있던 것 같아요.]

[더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는 안정환이 들어갑니다.]

안정환이 투입될 때는 은근한 기대감 때문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미 생각하고 있던 기용이었다. 황선홍, 안정환, 그리고 마지막 순번은 김우주. 모든 걸 감수하고 인내하면서 여기까지 함께 했으니, 누구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황선홍이 벤치로 돌아올 때 응원단이 다시 소리 높였다. 대한민국의 이번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에게 건네는 감사의 표시였다.

[프리킥.]

김남일이 중앙선 넘은 곳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박스 앞의 안정환에게 패스했다. 안정환이 움직이면서 공을 받으려 했지만 수비가 한 발 빨랐다. 수비의 발을 맞고 튕겨나간 공은 안정환의 뒤로 흐르며 루즈볼이 됐다.

[좋습니다! 유상철!]

유상철이 루즈볼을 따내며 박스 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안정환에게 시선이 모여져있던 터라 유상철을 직접적으로 막는 수비수가 없었다.

[슛-!]

몸을 풀고 있던 우주가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뛰어올랐다. 유상철의 중거리 슛이 두덱의 손을 맞고 그대로 골망 안까지 안착했다. 두 번째 골, 점수차를 2대0으로 벌려놓는 엄청난 골이었다.

[골-!!!]

[골!!!]

[추가골입니다!]

[유상철!!!]

[유상철이 해냅니다!]

[월드컵 첫 승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응원단석에 있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였다. 우주는 벤치 쪽 선수들과 함께 이 경기의 승리를 확신했다. 도무지 질 것 같지 않은 이 예감은 선수들을 춤추게 하고 있었다.

[이천수가 나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득점을 하고 나서 치열한 공방전 끝에 유상철이 들것에 실려나오게 되었다. 큰 부상은 아닌 듯 했지만 여전히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의 체력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무리하게 유상철을 재차 경기장에 투입시키는 대신,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상대 수비 조직이 무너지고 있고, 체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발빠른 이천수 선수를 기용하는 거에요. 이제는 빠른 공격으로 대한민국이 변화를 꾀합니다.]

수비에 있어 김남일에 가중되는 부담이 더 커지겠지만 오늘 김남일의 수비력은 굉장하다.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거침없이 상대 공격수에게 따라붙어 공을 처리하고 있었다.

[안정환이 발끝으로!]

[아주 좋아요!]

[이천수에게!]

폴란드가 공격에 치중하는 사이 이천수는 히딩크 감독 감독의 지시대로 상대 진영에 머무르고 있었다. 수비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안정환의 패스 하나로 한 번에 폴란드 진영으로 공을 넘겼고, 이천수는 폴란드 진영에서 수비 하나만을 상대하게 되었다.

[돌파해야 돼요!]

페널티 박스 안까지 오로지 수비수 한 명만 앞에 있었다. 이천수는 뒤로 돌아서지도 않았다. 두려움이 없는 듯, 자신을 내세우며 수비수와 상대했다.

[슛! 아!]

[옆그물!]

수비수를 기어코 따돌리며 시도한 슛이 불발되었어도 누구도 이천수를 탓할 사람이 없었다. 이천수의 거침없는 돌파와 슛 시도는 지금 대한민국이 지니고 있는 승부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우주.”

경기 종료 시간이 다가올 무렵, 히딩크 감독이 우주를 불렀다. 우주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히딩크 감독에게로 갔다.

“네가 들어간다.”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의 짜릿함은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었다. 그간의 노력이 보답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히딩크 감독이 등을 두드릴 때 우주는 최대한 담담한 척 하면서 설기현을 기다렸다. 설기현은 터치라인까지 다가왔고, 우주는 극한의 흥분을 억누르면서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K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김우주 선수가 투입되네요.]

[네. 저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득점했던 김우주가 들어갑니다.]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투입이라고 할 수 있겠죠. 폴란드는 지금 힘이 없어요.]

후반 45분이 되었다. 다가온 월드컵 첫 승에 이미 응원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열띤 응원을 보내며 승리를 자축했다.

[인저리 타임이 됐죠.]

안정환과 함께 공격진을 이루는 일은 항상 설렌다. 우주는 단 몇 분만이 남지 않았지만 안정환과 같은 센스를 가진 선수와 월드컵에서 공격진을 이루게 되어 기뻤다.

[뒷짐을 지고 있는 히딩크 감독의 여유가 참 좋아보입니다.]

폴란드의 오프사이드로 얻은 프리킥을 홍명보가 길게 처리했다. 공이 페널티 박스 오른쪽 모서리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주는 힘이 빠진 폴란드 수비수 둘을 한 번에 상대했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우주의 몸에 그저 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우주는 어려움 없이 머리로 공을 받아냈고, 우주의 헤더 패스가 안정환에게로 갔다.

[슈...!]

[걸렸어요!]

오른발로 슛을 할 것처럼 보였던 안정환이 공을 한 차례 접어놓고 수비수 하나를 제쳐냈다. 그리고는 왼발 끝으로 공을 쳐내며 골문으로 공을 보냈다.

[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안정환의 움직임에 폴란드 수비가 모두 공간을 허용했지만 두덱만은 공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공은 두덱의 손에 맞고 튀어나왔다.

“!”

그 때, 우주의 앞으로 공이 굴러왔다. 수비수들이 모두 안정환의 움직임을 보고 있느라 우주의 움직임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김우주-!]

골을 넣는다는 것은 환상적인 일이다. 언제나 그랬다. 그렇지만 교체 투입된 지 1분도 안되어 골을 넣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주는 두덱의 손에 맞고 나온 공을 다시 골문으로 밀어넣었다. 골이 들어간 순간 부심의 깃발은 여전히 내려가 있었고, 우주는 세상에서 가장 붉은 함성을 맞이했다.

[골!!! 김우주!!!]

[아아 쐐기골!!!]

[김우주가 자축포를 쏘아올립니다!]

3대0. 이것으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승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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