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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6화 (6/82)

6화

발목에 뼛조각은 제거되었고, 재활도 성공적으로 마쳐서 팔팔해진지 오래였다. 그래도 우주는 재활을 했던 병원을 매일같이 찾아갔다. 병원에 간다는 말 보다는 병원 근처에 있는 공원 산책로를 찾아간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보조기도 없으니 시간만 되면 육상부를 거쳤던 특유의 빠른 발로 하린을 찾았다.

어떤 날은 우주가 먼저 벤치에 앉아 있기도 하고, 하린이 먼저 벤치에 앉아 있기도 했다. 둘은 한 번도 내일 보자는 약속을 한 적이 없지만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만남을 반복했다. 처음 서로를 마주봤던 그 벤치에서.

“머리 이만큼 길었다.”

“정말이네. 축구부에서는 머리 막 자르라고 하잖아?”

“난 스틸러스에 들어갈 거니까 괜찮아.”

찾아오는 건 우주였지만 기다리는 것도 하린이었다. 둘은 만나면 항상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둘은 이제 편하게 대화할 정도로 친해졌다.

그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적잖게 알게 되었다. 하린은 원래 서울 토박이었고, 아빠의 일 때문에 포항으로 내려왔고, 이제 막 입원 하긴 했지만 언제쯤 퇴원할지 모른다는 시시콜콜한 사실들도.

“넌 어디가 아픈데 맨날 병원에만 있냐?”

“난 마음이 아파.”

“혹시 나이롱 환자 아니야?”

“마음대로 생각해.”

이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반응은 똑같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면서 꼭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더는 생각하기도 미안해지게. 그런데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우주는 하린이 퇴원할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포항 바다 구경 제대로 못 해봤다면서?”

“응?”

“구경 해야지. 우리 집 근처에 바다가 하나 있는데, 나는 거기서 맨날 수영했어. 너한테도 보여줄게. 퇴원하면 말이야. 답답하지 않아?”

하린이 얼마나 답답한지도 알고 있었다. 우주는 하린에게 퇴원을 하면 바다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고마워. 근데.”

“응?”

“그거 혹시 데이트 신청이니?”

짖궂게 웃으면서 하린이 되물었다. 왈가닥 같은 하린의 기세에 눌리는 쪽은 언제나 우주였다. 우주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린은 이미 우주의 얼굴이 빨갛게 됐다는 걸 눈치챘다.

“나, 나! 이제 스틸러스 숙소에 들어가!”

“어머. 진짜?”

“그러니까 한동안은 여기 못 올 거야! 넌 언젠간 퇴원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네 이름으로 편지 한 통 보내면...!”

“보내면?”

“그러니까, 내가 널 찾아가서, 바다 보여줄게!”

그 말만 남기고 우주는 후다닥 하린에게서 도망쳤다. 고교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던 그 명성 그대로 엄청난 속도였다. 그런데 도망치는 와중에 생각해보니까 영 고백 같은 멘트였다. 전혀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냥 하린이 답답해 보이는 게 안쓰러웠을 뿐인데.

겨울이 찾아오고 우주는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스틸러스 숙소에 입소했다. 말로만 듣던 홍명보와 황선홍이 있었다.

“네가 우주냐?”

“네!”

“잘해보자.”

카리스마 넘치기로 유명한 홍명보는 듣던 대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숙소에 지내는 동안에는 적어도 5살에서 10살은 많은 선배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지냈지만 우주는 그조차도 나름 괜찮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니면서 훈련을 할 때는 선배 공격수 황선홍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라면서 황선홍과 같은 방을 쓰게 했다. 엄격한 선배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일이 고된 일이긴 하지만 기분은 좋은 일이었다. 구단의 배려도 느껴졌고, 선배들이 마냥 무섭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또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었다.

동계훈련 와중에 영남대학교와의 연습경기였다. 경기 종료 20분 정도를 남겨뒀는데 포항 스틸러스가 2대1로 지고 있었다. 프로팀의 체면이 영 살지 않는 경기 내용이었다.

“우주야, 뛸 수 있겠어?”

“네. 뛰겠습니다.”

경기장 밖에서 몸을 푸는 우주에게 다가온 박성화 감독이 물었다. 이제 막 고졸신인 주제에 감독님의 말을 거스를 수도 없었기에 우주는 무조건 뛴다고 했다. 그렇게 경기에 투입되었다. 애초에 경기장에 우주보다 어린 선수들도 없었다. 대학교 선수들도 모두 우주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었다.

우주는 그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저돌적으로 드리블을 시도하고, 급격히 방향을 꺾는 드리블에 누구도 우주의 공을 낚아채지 못했다.

페널티 아크 정면에서 시도한 첫 번째 슛팅이 바로 골망을 갈랐다. 경기에 투입된지 5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선배 선수들은 박수를 쳐줬고, 우주는 긴장을 풀고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즐거운 일은 포항 스틸러스의 일원으로써 경기를 즐기는 일이었다.

역전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측면 미드필더의 크로스가 빠르게 들어오긴 했지만 영남대 수비수의 클리어링 실수, 포항 선수들은 우주가 있는 쪽으로 패스를 보냈고 우주는 공을 받자마자 돌아서서 터닝슛을 시도했다. 다시 골문 구석을 시원하게 가르며 역전골이 만들어졌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우주는 코칭 스태프들과 선배 선수들의 환호를 받으며 벤치로 돌아왔다.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박성화 감독도 웃으며 우주를 맞이했다. 꼭 청신호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프로 생활이 이보다 더 잘 풀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동계훈련도 끝나고 숨 가쁘게 바로 시즌으로 돌입했다. 포항 스틸러스는 J리그로 떠난 홍명보의 등번호 20번을 우주에게 그대로 물려주었다. 포항이 얼마나 우주에게 관심을 걸고, 스타로 키우려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였다.

우주는 천안 일화와의 개막 첫 경기부터 황선홍과 함께 공격수로 뛰었다. 스틸야드의 홈팬들은 이미 익숙한 우주의 얼굴에 환호성을 아끼지 않았다. 우주는 긴장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이도 어린만큼 주위 모두가 실수에 인색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에 인색한 사람은 오로지 우주 그 자신 뿐이었다. 더 완벽한 경기를 위해 우주는 개막전부터 열심히 뛰었다. 슛팅 2개가 모두 유효 슛팅이 되긴 했지만 골이 되지는 않았다.

그 다음 경기도 선발이었다. 이번에는 슛을 아예 시도하지 못했다. 완벽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더 공을 오래 끌었던 탓이다. 든든한 선배 황선홍도 그 점을 지적했다. 더 자신감 있게 슛을 시도하라고. 우주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프로 무대에 겁 없이 들어서긴 했지만 1경기에 꼭 1골은 넣던 고교 무대와는 확연히 다른 수준 차이를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족들이 우려한대로 팀에서 이도저도 아닌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몰랐다. 주위 누구도 우주를 압박하진 않았지만 우주는 득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었다.

그 때쯤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 엄마가 편지를 건네줬다. 엄마에게 말해놓았던 그 이름으로 편지가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아직도 그 병원에 있다고?’

하린이 보낸 편지에는 우주의 안부를 묻는 내용과 함께 자신의 근황까지 담겨 있었다. 우주는 다음날 오전 훈련이 끝나고 한 걸음에 그 공원으로 갔다. 계속 그래왔듯 하린과 만나기 위해서.

“김우주 선수?”

텅 빈 벤치에 묘한 허탈함이 들어 잠깐 가만히 서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고개를 돌려보자 하린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프로 선수 되니까 오히려 더 스포츠 뉴스에 안 나오잖아. 홍명보 20번 가져갔다는 거 말고는 스포츠 뉴스에서 본 적이 없어.”

하린은 여전히 밝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전과 다르지 않았다. 우주도 전과 다르지 않게 하린을 대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는 건, 눈에 띄게 핼쑥해진 하린의 모습이었다.

여전한 듯 하면서도 여전하지 않은 그녀와 만나고 나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린은 우주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말들을 모두 다 들어주었고,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 해주었다.

“그래도, 공격수한테 변명은 필요 없는 게 사실이야!”

“뭐?”

“공격수는 골을 넣는 포지션이니까. 그렇지?”

“그건 그렇지...만.”

“하던 대로 하면 돼. 완벽한 골일 필요 없잖아. 그냥 잘 주워 먹어도 골은 골이라고. 농구처럼 2점슛 있고, 3점슛 있는 거 아니잖아. 아니면 뭐 예술 점수가 추가 되는 것도 아니고.”

“으, 응.”

“힘 내! 응원할 테니까!”

하린이 주먹을 쥐어 보일 때는 가녀린 손목이 먼저 보였다. 당차고 밝은 아이인데 눈에 띄게 몸이 아파 보였다. 오랜 기간 동안 입원을 하는 정도라면 분명 많이 아플 거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어주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였다.

우주는 더 부담을 덜어내기로 했다. 다음 훈련부터는 완벽한 기회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슛 기회라고 직감하면 슛을 때리면서 공을 길게 끌지 않았다. 다음 경가 기다려질 지경이었다.

다음 상대는 전북 현대였다. 우주는 그 경기에서 후반 30분에 투입되었다. 팀은 이미 2대1로 이기는 상황이었다.

측면에서 좋은 크로스가 올라왔다. 우주는 번쩍하고는 뛰어올라 헤딩슛을 시도했다.

[골키퍼!]

골키퍼가 균형을 잃으면서도 어떻게든 쳐내긴 했지만 공은 다시 우주의 앞으로 흘렀다. 우주는 강하게 공을 걷어찼다. 고교 무대에서 그렇게도 많이 흔들었던 골망을 이제야 흔들어 낼 수 있었다.

[골! 김우주-!]

[김우주 선수! 역시! 최고의 신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골이네요!]

희열보다 먼저 찾아온 건 안도감이었다. 프로 무대에서 여전히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한 것만 같았다. 프로 무대 첫 골에 하린이 그렇게도 원하던 스포츠 뉴스의 하이라이트도 김우주라는 스틸러스의 신인을 조명했다.

골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 다음 경기, 전남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는 박태하의 헤더 패스를 그대로 바이시클 킥으로 연결했다. 골키퍼는 반응도 못하고 골을 허용했고, 우주는 또 스포츠 뉴스의 엔딩을 장식했다.

그 때부터 스포츠 신문은 우주의 이름을 도배했다. 무서운 고졸 신인, 차세대 국가대표 공격수, 황선홍의 후계자... 시즌이 개막하고 4월 한 달 동안 4골을 몰아쳤던 우주는 축구계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4월 29일, 생일이 되었다. 울산과의 경기가 끝나고 단기 휴가를 받게 된 우주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 생일 파티를 했다. 말이 생일 파티지 그저 지난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술자리였다. 사회 초년생답게 넘치는 패기로 술을 들이붓는 수준으로 정신도 못 차릴 만큼 마셨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우주는 친구 집에서 오전 늦게서야 일어났다. 그런데 무거운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30통이 넘게 와있었다. 집에서도 와있었고, 같은 팀 선배들한테도 와있었다. 혹시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가 싶어 우주는 얼른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 니! 당장 나가서 스포츠 신문이라도 하나 사 봐라! 기자들이 전화 걸고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다!”

급한 마음에 우주는 얼른 친구 집을 나서서 슈퍼로 가 신문을 샀다. 스포츠 신문을 사읽은 우주는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주는 한 걸음에 하린을 만나러 갔다. 하린은 기다리는 그 시간이 꽤나 길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기쁜 소식을 하린에게 전하고 싶었다.

“김우주! 훈련은 어떻게 하고?”

“휴가다 나! 그게 문제가 아니고! 신문 봤어?”

“수, 술냄새. 근데 무슨 신문?”

“안 봤으면 봐봐!”

대뜸 우주가 신문부터 보여주자 하린은 이상하다는 듯 우주를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이 신문을 받아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신문을 읽던 하린은 다시 우주를 봤다. 사람이 달라보였다.

“너, 대표된 거야? 차범근 감독이 널 뽑은 거야?”

“그래!”

“월드컵! 너 월드컵 나가는 거냐고!”

“그래! 그렇다니까는!”

우주가 번쩍 하린을 안아들고는 한 바퀴 돌았다. 숙취 때문에 어지러워 몇 바퀴 돌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긴 하지만 잔디와 입을 맞추는 와중에도 실실 웃음을 흘렸다. 하린은 우주와 함께 넘어진 와중에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신문을 확인했다. 포항 스틸러스 김우주, 20살. 분명히 이 앞의 김우주가 국가대표팀이 된 게 맞다. 그것도 프랑스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

“나 어제가 생일 선물이었는데, 이게 최고의 생일 선물이 아닌가 싶다.”

“아, 너 생일이었어?”

“그래. 생일이라 술 좀 마셨다. 근데 일어나 보니까 전화가 그렇게 많이 와 있더라. 다 나 찾는...”

“생일, 생일이었구나... 난 생일 선물도 준비 못 했는데...”

“야, 환자가 무슨 생일 선물이냐?”

하도 기뻐서 주위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우주와 다르게 하린은 생일 선물을 주지 못하는 게 그렇게도 마음에 남는 모양이었다. 다시 일어나면서도 계속 생일 선물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

“난 이 생일 선물로 충분하다 아이가. 아, 너무 좋아서 사투리가 막 절로 나오네.”

“너, 눈 감아봐.”

“눈은 와? 왜?”

“빨리.”

하린이 손을 끌어당기며 재촉하자 우주는 눈을 감고 대표팀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김우주의 모습, 스틸러스의 김우주와는 다른 모습일 거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에 볼때기에 이상한 게 닿았다. 뭐지 이거. 풀벌레가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나. 잠깐 그리 생각해보다가 그런 풀벌레는 없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또 달아올랐다.

“너!”

“생일 선물 겸 축하 선물.”

우주의 볼에 입술을 맞추던 하린은 우주가 눈을 뜨자마자 얼른 고개를 돌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잠깐 동안 둘 모두 침묵을 유지했다. 선물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부끄러워서 할 말이 없었다. 이 침묵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하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기다리는 거 잘 해. 넌 월드컵 때문에 다시 또 한동안 여기 못 오겠지만, 나는 네가 월드컵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아픈 거 다 나아서 퇴원할게.”

“...어.”

“너 돌아오면 바다에 가자. 네가 보여주기로 했잖아.”

바다에 가자는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하린도, 사실은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주는 하린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그래. 너 퇴원하면, 바다 같이 가자.”

============================ 작품 후기 ============================

후후 월급이 원래 예정보다 더 빨리 나온다고 하길래 패션 피플이 되기 위해서 슬립온을 질렀습니다. 이제 여름을 대비하고 있어요. 이미 여름인가 ㅇㅅㅇ또 무슨 스타일의 옷을 살지 생각 좀 하고 있습니다 ㅇㅅㅇ 근데 전 반바지가 그렇게 좋더군요 그래서 여름 내내 반바지만 입을 거라능 ㅇㅅㅇ 반바지 색깔별로 사야지 빨주노초파남보 레인보우로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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