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형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무엇이었을까. 최고의 선수가 되어줘,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말들이 무슨 의미가 될 수 있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형은 사고로 삶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우주는 형과 함께 할 수 없었다. 같이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간들마저 사라졌다.
평범한 아이가 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여느 아이들처럼 이제 다시 웃긴 하지만 마음에선 여전히 허전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허전함을 간직한 채로 하는, 평소와 같은 등굣길이었다. 친구들과 시간에 맞춰 등교를 하고, 4학년으로 진급한 만큼 더 어려워진 수학책과 마주하고. 어떤 변화나 새로운 일이 일어날 거란 기대는 전혀 하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날.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반에서 가장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가 누구냐고.
“우주요!”
“우주는 오늘 학교 끝나고 남아라.”
반 아이들 모두가 우주를 보면서 외쳤다. 우주는 반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부정의 말도 꺼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담임 선생님은 우주에게 방과후엔 운동장에 가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고는 다시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우주도 평범하게 시간을 보냈다.
방과 후에 나간 운동장에는 달리기 꽤나 잘한다고 자부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체육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면서 한 명씩 달리기를 시켰다.
우주의 차례가 왔다. 우주는 늘 그렇듯 거침없이 땅을 박차고 달렸다. 목적지까지 다다랐을 땐 기록을 재고 있던 체육 선생님이 고무적인 표정을 지었다. 1등이었다. 우주의 뒷차례에 있던 아이들도 열심히 달렸지만 그래도 우주가 압도적인 1등이었다.
“우주야, 니 내일부터 육상부 하자.”
“육상부요?”
“그래! 끝나면 학교에서 빵도 주니까는!”
특별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누구나 겪는 그런 평범한 날에 누구나 겪지 않을 그런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알고 보니 학교에서 육상부를 개설한 이유가 있었다. 포항시에서 주최하는 육상 대회에 이름을 내걸고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급조라고 표현해도 학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우주는 그 다음날부터 다른 친구들보다 1시간 일찍 등교해서 육상부 연습을 했다. 달리기에 몰두하면서는 간혹 형을 떠올렸다. 형의 달리기를 따라가려고 애쓰던 그 때를. 그러면 조금은 더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더 빨라지자, 더 빨라지자. 매일같이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포항시에서 주최하는 육상 대회가 2주 앞으로 다가와 급조된 육상부에 대한 애착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허전함을 달래주기 위해 몰두할 무언가가.
“이게 우리 육상부 유니폼이다! 어때! 근사하제!”
육상 대회 2주 전에 급조된 육상부의 유니폼치고는 퍽 근사한 유니폼이었다. 우주는 육상 대회를 하러 가기 직전에야 처음으로 육상부 유니폼을 입었다. 거울을 통해 육상부 유니폼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자 꽤나 육상부스러운 폼이 났다. 누구보다 멀리, 그러면서 빨리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스파이크를 신은 순간엔 확신마저 생겼다.
육상 대회가 열리는 운동장에 가서는 조금 긴장도 되었다. 포항시에서 날고 긴다는 아이들이 모두 모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주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도전이었으니까. 애초에 육상에 엄청난 의미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에 우주는 스파이크를 신은 발로 트랙을 헤집었다. 1등이었다. 계속되는 1등, 결국 100m 부문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급조된 육상부가 우주가 있는 동부초등학교 하나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난 성과였다.
우주는 400m 계주에서도 우승을 이끌었다. 멀리뛰기에서도 여지없었다. 꽤나 큰 덩치였지만 우주만큼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가 적어도 포항에는 없었다.
학교로 돌아온 우주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상도 받고, 교장 선생님의 칭찬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은 우주 하나만 보고 정식 육상부를 만들 계획까지 세웠다. 단숨에 우주는 포항시의 육상 유망주가 되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아빠.”
“왔나 우주. 아저씨한테 인사드리고 방에 들어가라.”
그 다음날부터 가끔씩 집에는 손님이 있었다. 손님은 항상 우주가 오고 나면 얼마 있지도 않다가 자리를 뜨곤 했다. 꼭 우주를 보러 찾아오는 손님 같기도 했다. 우주는 하도 궁금해 한 번 아빠에게 물었다. 손님의 정체가 무엇인지.
“신경 안 써도 된다.”
아빠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를 망설이는 것 같기도 했다. 우주의 예감은 맞았다. 어느 날 아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주야.”
“네, 아빠.”
“니 축구 할 생각 있나.”
그렇게 말하는 아빠에게선 큰 욕심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단순히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빠도 분명히 형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우주는 아빠의 말에 한참이나 고민했다.
형이 떠올랐다. 축구를 아주 좋아하던 형이 떠올라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 긴 시간 같았던 고민도 몇 초 만에 끝났다. 사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네. 축구, 할게요.”
형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욕심 없는 육상을 굳이 계속 할 명분도 욕심도, 열정도 없었다.
“제철동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라니까.”
아빠는 그간 그 낯선 손님의 정체, 제철동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이야기들을 그대로 우주에게 전했다. 한국에선 전례 없는 유스팀 형식의 시스템으로 얽힌 학교가 제철동초등학교라고 했다. 다른 학원 스포츠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잘 한다면 프로 선수가 되는 건 정말이지 꿈도 아니란다.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하니까 그 이후로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막상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작별하며 전학을 가는 것도, 초등학생이면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것도. 독기의 일종이었다.
4학년 2학기가 되자마자 우주는 바로 전학했다. 육상부를 만들 계획을 세우려던 교장의 눈치를 보며 이사를 했다는 핑계로.
“우주야.”
전학 첫 날, 아빠를 어루고 달래어 결국 설득에 성공했던 낯선 손님, 이영환 감독은 우주에게 공을 건네주었다. 우주는 공을 받고는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가 이영환 감독을 올려다 보았다.
“리프팅 한 번 해봐라.”
“리프팅이요? 그게 뭐에요?”
축구를 배우러 온 자리에서 뭔가를 해보라니 황당했다. 이영환 감독은 황당해 하는 우주에게 차분하게 알려주었다. 공을 발등으로 톡톡 튕기는 것이라고.
리프팅이란 것은 처음인데 잘 될 턱이 없었다. 2번을 이어서 성공하기도 어려웠다. 낯선 사람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긴장한 탓도 컸다. 하지만 그 동그란 것을 계속 발등으로 몇 번씩이고 튕겨내면서 감각을 익혀갔다. 1번, 2번, 3번, 처음엔 몇 번 하지도 못하고 떨어트리던 공을 11번이나 발등 위에서 튕겨냈다. 형과 함께 축구공을 다뤄본 경험이 도움이 된 측면도 있었다.
“잘 했다!”
이영환 감독은 아주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외쳤다.
“넌 이제부터 센터 포워드를 보게 될 거다!”
키도 크고, 발도 빠르니 센터 포워드 역할을 맡으라고 했다. 우주로서는 생소한 단어였다. 센터 포워드가 무엇인가, 그 말만 되새기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1989년 가을, 어떤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급조된 육상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훈련량이었다. 공을 받고, 다시 건네는 일마저도 힘들었다. 형과 함께 하던 축구와는 아예 천지차이였다.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훈련해도 이영환 감독의 호통은 끊이지 않았다. 어루고 달래던 때와는 많이 달랐다.
그래도 우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5학년이 되었을 땐 슬슬 정식 경기에도 나갈 정도로 성장했다. 몇 번씩 골을 넣기도 했던 것이 이제는 무더기로 골을 넣었다. 6학년이 되어선 경상북도에서는 알아주는 공격수가 되었다.
“우주야.”
“네 감독님.”
초등학교 전국 대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영환 감독은 한창 훈련 중이던 우주를 불렀다. 우주는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다르게 동그랗기만 하던 눈매에 힘이 실려 있었다.
“네가 차범근 축구대상을 받게 됐다더라.”
“네? 정말요?”
“그래.”
형이 매일 같이 말하던 선수가 차범근이었다. 그래서 차범근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도 알고 있었다. 우주는 그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의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시상식장으로 가기 위해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까지 타게 된 것이다. 우주와 함께 시상식장으로 가는 부모님도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 것이었다.
시상식장에 도착해서는 처음으로 차범근이라는 한국축구의 전설적 인물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형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첫 번째였다. 형은 차범근이란 전설적 인물을 만나고 싶어 했다.
차범근 축구 대상 수상자의 이름으로 김우주라는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 때까지도 잠자코 자리만 지키고 있던 우주는 시상식장에 있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시상대로 올라갔다. 가까이서 본 차범근은 선한 인상과 다르게 커다란 체격을 갖고 있어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우주야, 너무 잘해줬다.”
우주의 경기를 한 번이나 지켜봤을까, 차범근은 우주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우주는 차범근에게 트로피를 건네 받으면서도 바싹 긴장했다.
축구라는 연결고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축구라는 틀 안에서 차범근은 전설적 인물이었고, 우주는 차범근을 동경하는 축구 유망주였다.
“네가 꼭 우리나라 축구를 빛내주면 좋겠다.”
차범근이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우주는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차범근처럼 대단한 인물과 함께 자리하는 것도 영광이지만, 그의 기대를 받는 것도 영광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붙이고 있던 우주가 그제서야 대답했다.
“네! 꼭!”
1991년. 색다른 경험이 또 새로운 꿈을 안겨다주는 해였다. 우주는 차범근이 그러했던 것처럼 유럽에서도 뛰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