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처음
북부해수욕장에선 동부초등학교 꼬마들의 수영 대결이 한참이었다. 수영 대결이라고 해도 룰도 없고, 그 흔한 간식거리가 걸린 내기도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잠수에 열중했다. 김우주를 이기기 위해서였다.
“또 김우주가 이겼어!”
자맥질을 하듯 제자리서 버둥거리는 꼴이나 다름없는 보통 아이들의 수영과는 달리, 우주가 한 번 수영을 한다 치면 물살을 가르며 쭉쭉 전진했다. 파도가 치는 와중에도 단연 돋보이는 수영 실력이었다.
우주와 감히 수영 대결을 펼칠 생각도 못하고 사장에 자리를 잡고 있던 친구들은 우주가 바다에서 의기양양하게 나오는 모습을 부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우주는 초등학교 3학년치고는 키도 꽤나 컸다. 이 나이대 남자 아이들에게서 힘자랑만큼 부러운 것이 없었다. 우주는 이런 아이들의 시선을 즐겼다.
“오늘도 내가 이겼다. 니들은 나한테 안 된다니까. 이걸로 오늘 수영 시합은 끝난 거다?”
“으휴, 정말. 별 수 없겠네.”
같이 수영 대결을 펼쳤던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우주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머리에 묻어있는 물기를 탈탈 털어냈다.
“배고픈데 우리 집에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지 않겠나? 우리집에 같이 갈 사람 없나?”
수영 대결이 끝난 뒤 우주 뒤를 따라 나오던 친구가 사투리 억양을 진하게 드러내며 제안했다. 모두가 신난 듯 손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나! 나!”
친구들은 모두 앞다투어 손을 들어올렸지만 우주만은 꾹 입을 다문 채로 가만히 있었다. 간식을 좋아하다 못해 사모하는 수준의 김우주에게 있어 의외의 반응이었다. 신기한 듯 우주를 쳐다보던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주 니, 갑자기 어데 아프나? 우리 집에서 라면 끓여 먹자니까는?”
“안 아프다. 근데 안 갈란다.”
“왜?”
“오늘 우리 형 오는 날이거든!”
물기가 잔뜩 묻어있는 머리를 모두 뒤로 쓸어 넘긴 우주가 벗어두었던 반팔티를 챙겨 입고는 가방을 둘러메었다. 그리고는 얼른 뛰어나갈 준비를 하며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난 오늘 먼저 갈게!”
“야, 야! 김우주!”
“형이 어데 있었길래 저리 야단인데?”
“축구부라더라. 어데 중학교 축구부 좋은 데 가서는 합숙 생활 한다던데...”
아이들이 뒤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우주는 집을 향해 달음박질했다.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형을 만나기 때문이었다. 축구를 잘하는 형, 축구부가 된 형, 나중엔 국가대표가 될 형, 자랑스러운 형. 그런 형이 아주 잠깐 집에 머무르는데 계속 친구들과 놀고 있을 시간만은 없었다.
*
축구를 배우고 잠깐 집에 돌아온 형은 질리지도 않는지 또 축구삼매경이었다. 우주는 형을 따라 집 근처 공터에서 축구를 했다. 그저 공을 주고 받는 단순한 놀이임에도 재밌다. 형과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우주 공부 잘하고 있지.”
“당연하지.”
형과는 5살 터울이 있었다. 그래도 형제지간에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고, 한 번도 나이차에 따른 거리감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형제 사이의 싸움도 해본 기억이 없다. 결국 싸운 적이 없단 거다.
“부모님 걱정 끼치지 말고.”
“알았어.”
합숙소에 들어가 축구를 배우는 형은 전보다 더 키가 큰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눈매가 더 날카로워진 느낌도 들었다. 하긴, 요즘 형은 부쩍 클 나이라고 했다. 우주와의 키는 더 격차가 벌어질 거다.
그 격차가 싫었다. 격차만큼 형은 더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지금도 살짝 느끼고 있다. 형이 더 외모뿐 아니라 마음씨도 더 어른스러워졌다는 걸.
“우주 니도 나중에 경찰 되려면 운동 하나는 잘해야 하지 않겠나.”
“맞다, 그래서 나 이번에 태권도 다니기로 했다.”
“태권도? 잘 할 수 있겠나?”
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걱정은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형 동생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할 거 아이가! 나는 경찰 돼서 나쁜놈들 때려잡고! 형은 아톰스 들어가서 축구 대표 되는 거고!”
형은 아무 말 없이 웃고 있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포근한 웃음이었다. 우주는 그 웃음을 따라했다. 우주에게 형은 웃음마저 따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
형이 합숙소로 돌아간 다음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우주를 불렀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혼란스러움이 엿보이기도 했다. 우주는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이 어떤 말을 꺼내기 전까지 그의 표정을 살피느라 한창이었다.
“우주야, 가방 싸라.”
“네?”
“오늘은 집에 일찍 돌아가는데...”
담임 선생님은 갑자기 우주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무섭던 담임 선생님이 벌써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다니.
이유를 묻자 담임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가면 알게 된다고만 대답했다. 별 수 없었다. 우주는 친구들의 물음을 뒤로 하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동안엔 일부러 형과 함께 축구를 했던 공터를 지나쳤다. 형이 다음에 돌아오면 드리블 기술을 하나 알려준다고 했다. 그 다음 기약을 떠올리면서 우주는 집에 들어섰다.
“우주야.”
집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봤던 건 열린 방문틈 사이로 엄마가 통곡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우주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얼른 우주를 맞이하며 말했다.
“가방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 있다가, 아빠가 부르면 나온나.”
“무슨 일 있어요?”
차마 무슨 일이 없다고는 말 하지 못하겠던지 아빠의 동공이 우주의 눈으로도 보일 만큼 흔들렸다. 우주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얼핏 느낄 수 있는 이 분위기는 어린 아이에게 불길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아침에 형이 탄 버스가... 다른 차랑 부딪쳤다고 하대.”
“그럼 형은요?”
“그래서 보니까는...”
아빠가 말을 더 못 이어가다가 결국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건 눈물을 감추는 행동 같아 보였다. 우주는 눈치챘다. 왜 아빠가 눈물을 감추는 행동을 하려고 하는지.
“형은! 형은 무사한 거죠!”
부모님 중 어느 한 사람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못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통곡하고 있었고, 아빠는 바로 앞에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어쩐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대답을 미루는 둘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주는 마음 속에서 기도했다. 형이 제발 무사하기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