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 오즈 (19/31)

19. 오즈

[홍(虹)안의 성녀⋩⊰민지⊱⋨ : 길마님, 저 언제 다시 길드 넣어 주실 거여용?]

[무지개 요정 : 오지 마]

[제로사이드 : 오지 말라잖아 그쪽 아이디만 봐도 멀미 남]

[무지개 요정 : 너도 오지 마]

[제로사이드 : 왜요?!]

[무지개 요정 : 둘 다 오지 마]

[홍(虹)안의 성녀⋩⊰민지⊱⋨ : 이잉ㅠㅠㅠㅠ왜여ㅠㅠ]

[무지개 요정 : 제발 둘 다 껒여줘!!]

쉼터에 앉아 있던 무지개 요정은 자신의 양 사이드에 자리를 잡고 자신을 괴롭혀대는 민지와 제로사이드의 행태에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다. 둘 다 툭하면 찾아와서는 한쪽에선 길드에 다시 넣어달라며 성화고, 한쪽에선 끊임없이 좋아하고 있다는 마음을 어필해대기 바빴다.

문득 지긋지긋한 두 사람이 쫓아올 수 없는 곳으로 도망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부응하듯 한 가지 방법이 뇌리를 스쳤다.

[무지개 요정 : 오즈공략을 가자]

[노아 : 네?!]

[율 : 네?]

[도련 : 잉?]

[KING Husband : 대뜸?]

[광인한 남자 : 갑자기요?]

[질풍 : 할 거면 방학 중에 하지!!!!!난 개학했는데!!!]

늦은 오후, 대뜸 시작된 무지개 요정의 말은 평화롭던 길드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무지개 요정 : 저번에 한 번 실패한 이후로 시도해본 적 없잖아]

[노아 : 그건 그렇지만..]

[무지개 요정 : 게다가 히든 클래스까지 두 명 있으니까 지금이 최적기인 것 같아]

[KING Husband : 확실히 미아 누나 자리를 율이가 대신하게 될 테니까 안정적이긴 하겠다만..]

[광인한 남자 : 시간적으로 맞추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무지개 요정 : 대충 무리를 하더라도...]

[노아 : 오즈 안전구역에선 하루 8시간 브레이크 타임 있으니까 잘 활용만 하면 평일에도 문제없이 돌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무지개 요정 : 솔직히 지금 난다 긴다 하는 놈들도 오즈 들어가선 최장이 6일이었잖아]

[무지개 요정 : 우리 수준에선 최대한 길게 잡아도 3~4일이 한계야]

[무지개 요정 : 금토일월 이렇게 잡고 금요일 월요일엔 그냥 브레이크 없이 풀로 돌린다고 생각해 토,일엔 브레이크 타임 8시간으로 컴터 좀 쉬게 해주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아]

[KING Husband : 아니..컴터가 문제가 아니라 파일럿이 문제인 거잖아요..]

[광인한 남자 : 우선 길마님이 생각하는 멤버는 누군데요?]

[무지개 요정 : 나랑 노아랑 율 왕광풍 도련?]

[노아 : 시간 조율이 필요한 사람도 두엇 보이네요]

[질풍 : 왜 방학 끝난 후에 그러는 거예요!!ㅠㅠㅠ]

[무지개 요정 : 풍이가 영 힘들다 싶으면 집사라던가..]

[질풍 : 갈 거예요!!! 무단결석을 하는 한이 있어도!!]

[KING Husband : 장하다]

[광인한 남자 : /박수]

[KING Husband : 결의를 본받자]

[광인한 남자 : 무단결근을 하는 한이 있어도!!]

[노아 : 잘린다...]

[율 : ㅋㅋㅋㅋㅋ]

[도련 : 미친놈들ㅋㅋㅋㅋㅋㅋㅋㅋ]

[KING Husband : 자! 길마님도 결의를 보여주세요!!]

[무지개 요정 : 난 내가 사장인데?]

[도련 : ?!]

[KING Husband : ?!]

[광인한 남자 : ?!]

[질풍 : ?!]

[율 : 와...]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KING Husband : 빌어먹을 자본주의]

길지 않은 준비 기간을 거치고, 그 주의 금요일. 레인보우 힐은 멤버를 정비해 오즈 공략에 나섰다.

무지개 요정을 필두로 노아, 율, 도련, KING Husband, 광인한 남자, 질풍. 7명을 정원으로 글록시니아에서 비프로스트를 사용해 오즈로 이동했다.

[무지개 요정 : 우선 공략키트부터 사야겠다]

[노아 : 제가 사올게요]

[무지개 요정 : ㅇㅇ]

무지개 요정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로비의 잡화상인에게 향한 시언은 잡화상인에게서 공략 키트를 구매했다. 공략 키트의 구성품은 오즈에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과 안전구역의 잡화상점을 사용할 수 있는 이용권, 안전구역에서 캠핑할 수 있게 하는 라이선스, 그리고 오즈에서만 활성화 가능한 펫 한 마리였다.

그리고 공략 키트는 그 키트를 지닌 한 사람만이 대표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풍부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게 올바른 사용 예이기도 했다. 키트를 사고, 파티원들과 함께 입장관리인 앞에 선 시언은 엔피씨에게 말을 시키기 전에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아 : 위? 아래?]

[무지개 요정 : 지난번엔 위로 갔으니 이번엔 아래]

[노아 : ㅇㅇ]

그리고 입장관리인을 통해 오즈의 지하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노아 : 오늘은 안전구역에서 쉬나요?]

[무지개 요정 : 내일은 토요일이라 안 쉬고 24시간 달릴 거니까 오늘은 쉬는 게 낫지?]

[노아 : 그러네요]

일렬로 이러진 동굴 같은 통로를 무지개 요정과 선두로 걸으며 공략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시언은 전방에서 불쑥 리젠되어 공격을 가하는 몬스터 한 마리에 가볍게 칼을 꽂았다.

초반이라 그런지 몬스터들의 수준은 막 3차 전직을 한 유저들에게도 어렵지 않을 정도였다. 무지개 요정은 멀리서 리젠되는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자신은 근거리에서 리젠되는 몬스터들을 해치워 주는 덕에 뒤에서 걷고 있는 다섯 명은 유유자적 두 사람의 뒤를 걷기만 할 뿐이었다.

[KING Husband : 잘 들어 율아]

[율 : 네]

[KING Husband :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란다]

[율 : 네?]

[KING Husband :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선빵!]

[광인한 남자 : 서로의 기량을 재보는 척하며 치고 들어가는 기습!]

[질풍 : 상대방의 공격과 동시에 치고 들어가는 반격!!]

[KING Husband : 자 완벽한 방어는 고로 공격이지 공격이야말로 최고의 방어이자 최고의 공격인 셈이야]

[광인한 남자 : 너의 뇌내에서 앞으로 방어라는 단어는 공격이란 단어로 대체하자]

[질풍 : 방어 이꼬르 공격!]

[율 : 아...]

선두에서 길을 열어주는 덕에 할 일이 없던 왕광풍은 아까부터 희한한 논리를 율에게 주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도련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한편에 뿌리를 내리는 걸 느꼈다.

그렇게 걷기만 하길 1시간쯤.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거대한 문 앞에 당도한 그들은 문 앞에 있는 장치를 활성화하고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도련 : 벌써 보스 방이야?]

[노아 : 첫 번째 보스는 도달하기 쉬워 중간중간 중보도 없고 다만 보스 방 열려면 일정 숫자 이상의 장치를 활성화해야 해서 좀 걸릴 거야]

[도련 : 일정 숫자?]

[노아 : 오즈에 있는 모든 보스 방은 레이드니까 첫 번째 보스 방은 도달하기 쉬운 대신 문이 열리는 조건이 좀 까다롭지]

[노아 : 지금 오즈에 진입해서 우리처럼 지하 길을 선택한 파티들이 보스 방 앞에서 장치들을 활성화하고 그 활성화 숫자가 일정 개수를 넘어가면 방이 열려 충분한 파티의 숫자가 모이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는 거지]

[무지개 요정 : 운이 나쁘면 우리는 이대로 여기서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는 거야 ㅋㅋㅋㅋ]

[도련 : 켁...]

[무지개 요정 : 첫 번째 보스는 레이드 하는 파티의 수가 많기 때문에 패턴은 간단한 대신 피통이 엄청나지]

[율 : 얼마나요?]

[무지개 요정 : 수십 개의 파티가 달라붙어도 한 시간 안에 끝나지 않을 정도?]

[율 : ;;]

[노아 : 아마 갈수록 보스 패턴은 복잡해지고 피통은 적어질 거야 레이드 하는 파티 수가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무지개 요정 : 보스 방 들어가면 모든 파티는 팀으로 묶이게 되는데 그럼 팀 음성 대화가 활성화되거든? 가끔 나대는 놈들이 리딩을 하려고 드는 경우가 있어 그럴 땐 그냥 무시해]

[율 : 네..]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KING Husband : 열린다!!]

[도련 : 오?]

[노아 : 들어가자]

[율 : 네]

육중한 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드러난 보스 방은 광활하다고 할 정도로 넓었다. 이끼와 풀이 가득한 돌바닥에 아치형으로 깎인 높은 천장엔 여기저기 나무 덩굴과 이끼들이 들러붙어 있고, 벽면 틈새로 여기저기서 물이 흘러 내려 바닥 일부에 고이고 있었다. 왠지 공기마저 눅눅하게 느껴지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리고 보스 방을 빙 둘러싼 수십 개의 문에서 수많은 파티가 쏟아져 들어왔다. 웅성거리며 아직 비어 있는 보스 방에 들어선 수많은 파티가 보스 방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서자, 들어왔던 문들이 일제히 닫혔다. 그리고 모든 파티가 팀으로 묶여 화면 왼쪽 위의 파티 창 아래 팀으로 묶인 총 파티의 개수가 표시됐다.

[제로사이드 : 형]

그리고 수많은 인원 중에서 무지개 요정은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아이디에 기겁하고 말았다. 어느샌가 자신의 옆에 다가온 제로사이드가 손을 흔드는 모션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지개 요정 : ?!!?!?!?!?!?]

[제로사이드 : 열렬한 반응이네요?]

[무지개 요정 : 네가 여기 왜 있어!?]

[제로사이드 : ??]

[제로사이드 : 당연히 공략하러..]

[무지개 요정 : .....]

[무지개 요정 : /짜증]

[제로사이드 : ㅋㅋㅋㅋ 레이드 잘 부탁해요 형?]

무지개 요정이 제로사이드와 전투적인 채팅을 나누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던 KING Husband의 눈에 또 한 명, 반기고 싶지 않은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다.

[KING Husband : 와...]

[광인한 남자 : ?]

[율 : 왜요?]

[KING Husband : 미친... 저기 미아 누나 있는데?]

[노아 : ?!]

[도련 : 헐?]

[질풍 : 켁...?]

KING Husband의 말에 모두의 시선은 백 명이 넘는 인파 중 단 한 명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와글와글 모여 있는 사람 중, 어렵지 않게 보고 싶지 않은 아이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숨기지 않고, 각자 모니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한 명이 또 얼마만큼의 변수를 불러일으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텅 비어 있던 보스 방 정중앙에서 땅을 울리는 진동과 이펙트가 연달아 터져 나오고, 단단해 보이는 지면을 뚫고 다리가 8개 달린 엄청난 크기의 도마뱀같이 생긴 보스 ‘파라움’이 기어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KING Husband : 와... 씨... 운도 드럽게 없지]

[율 : ..?]

[도련 : 왜?]

[KING Husband : 나 여기 오기 전에 오즈 공략 영상 전부 찾아봤거든 보스 몹들도 방마다 랜덤으로 나오니까... 근데 저 보스 몹 나온 거 한 번도 못 봄...]

[광인한 남자 : 대미친...]

[무지개 요정 : 그럼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보스라는 거?!]

[KING Husband : 아마도요... 보스 방마다 히든 보스가 있다고도 하던데.. 그거일지도 모르겠어요]

[무지개 요정 : 히든?!]

[질풍 : 그놈의 히든..]

[광인한 남자 : 우리 길드는 히든의 축복을 받은 거야? 저주를 받은 거야?!]

처음 보는 보스의 모습에 당황한 건, 비단 레인보우 힐뿐만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시작되는 채팅들에 보스 방 안에 렉이 걸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두를 진정시키려는 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 진정하시고요. 채팅 때문에 렉이 생기잖아요. 이제는 그냥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세요. 팀 리딩은 저 아네미아가 합니다.”

정말 염병이 따로 없었다.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아네미아와 그에 반발하는 팀원들의 갈등으로 말싸움이 번지고, 그럼에도 꿋꿋히 리딩을 추진하려는 그녀의 태도를 관람하듯 지켜보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말없이 버프를 시작하는 율을 따라 전투태세를 취했다.

(베네딕티오)

(베네피치움)

(스페스)

(아우덴티아)

(클레멘티스)

(인 라피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언에게 오라티오를 건 율은 다른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이 보스인 파라움에게 한 가지 스킬을 걸었다.

(옵타티오)

1회 공격의 데미지를 2배로 받게 하는 스킬이었다.

[노아 : ????]

[무지개 요정 : ?!]

그리고 다른 이들이 율의 행동에 제대로 반응할 시간도 없이 파라움이 율을 인식하고 그대로 공격을 시작했다.

8개의 다리로 땅을 짚으며 빠르게 율에게 다가온 파라움은 율에게 기다란 꼬리를 휘둘렀고, 율은 당황하지 않고 후방 이동으로 공격을 피했다.

(마리오네트 렌더링)

동시에 KING Husband이의 스킬이 질풍에게 직격했다. 붉은 오라 같은 이펙트가 KING Husband에게서 질풍에게 이어지고, 연이어 질풍이 애로우 레인을 시전 했다.

율이 파라움에게 걸어놓은 옵타티오 스킬 효과 위로 KING Husband의 스텟 절반을 넘겨받은 질풍의 궁극기가 직격했다.

순식간에 보통 히든 스킬 저렙 수준의 데미지가 파라움에게 떠오르고, 그대로 어글자가 율에게서 질풍에게 넘어갔다.

(페너트레이트)

그리고 두 사람의 바통을 넘겨받듯 광인한 남자의 스킬이 파라움을 겨냥하고, 그대로 스킬을 사용하며 파라움의 지척에 도달한 광인한 남자의 연계기가 펼쳐졌다.

(스파이럴 인텐스)

(이그니션 인텐스)

“뭐 하는 거야!”

네 사람의 행동에 팀 음성 대화로 리딩하려던 아네미아의 카랑카랑한 고함이 들려왔다.

“미친 거 아냐!”

(디 블라우에 플라메)

하지만 아네미아의 고함 직후 시언의 스킬 또한 파라움에게 직격하며 질풍에게 향했던 어글이 시언에게 향했다. 그게 시발점이 된 듯 백 명이 넘는 이들의 궁극 기가 파라움에게 빗발치기 시작했다.

어글도 시언이 안정적으로 가져가고, 모두의 공격이 파라움에게 빗발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율은 파라움의 광역 기가 닿지 않을 정도의 후방으로 이동을 했다.

(콘템플라티오)

(루아흐)

(프뉴마)

(인 데오 스페라무스)

그리고 게이지를 채워 곧바로 스페라무스를 사용했다. 성령들과 함께 노래하는 율의 노랫소리가 너른 보스 방 안에 울려 퍼지고, 파티원들의 주변으로 빛의 조각들이 배리어처럼 둘렸다.

스페라무스 효과를 등에 업은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스킬의 효과가 끝날 때까지 궁극 기와 히든 스킬을 즉시 시전으로 끊임없이 쏟아부을 수 있었다.

(메 아마테)

스페라무스 스킬이 끝나고, 몸을 일으킨 율은 자신의 마나를 채우는 스킬을 사용하고, 파티원들의 버프를 재정비했다. 풀 세팅을 끝내고, 한숨 돌리며 보스의 남은 피를 확인하던 율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의 스페라무스 스킬 효과로 쏟아 넣은 파티원들의 공격과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도, 파라움의 피는 이제 5%가량 깎여 있을 뿐이었다.

파라움의 괴물 같은 체력과 방어력에 질린 듯 한숨을 내쉬던 율은 파라움의 발밑이 드드드 거리며 땅 울림이 시작되는 걸 보았다.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인 라피뎀을 쓰려던 율은 순식간에 파라움의 발밑이 터지며 피해 범위가 확산하는 걸 보았다. 굉음과 함께 보스 방 전체가 뒤흔들리고, 파라움의 기괴한 포효 소리가 왕왕 울려 퍼졌다.

눈 깜빡할 새에 벌어진 참상은 차마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파라움의 광역기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프리들 몇 명을 빼고, 전투 중이던 백 명이 넘는 유저들이 모두 그로기에 빠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눈에 벌어진 참상에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율은 서둘러 시야를 돌려 살아남은 사람들을 확인했다.

“허….”

동시에 절로 헛숨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반대편에 있는 프리들은 멀어서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자신의 주변에 살아남은 프리들은 하나같이 눈에 익은 아이디들뿐이었다.

자신과 머스킷 티어의 꽃잔. 그리고 Queen의 아네미아.

그로기 상태가 되어 즐비하게 바닥에 늘어선 팀원들을 바라보던 율은 살아남은 일부의 프리들이 서둘러 자신의 파티원들을 살리러 중앙으로 뛰어들어 가는 걸 보았다. 하지만 중앙에 버티고 선 파라움 때문에 순식간에 인식을 당하고 공격을 당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분주해지는 상황 속에 율의 주변에 있던 꽃잔과 아네미아도 자신의 파티원들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앙으로 뛰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율은 급하게 꽃잔을 불러 세웠다.

[율 : 꽃잔님!]

[꽃잔 : 네?!]

갑작스러운 부름에 놀란 듯 멈춰 서며 반사적으로 답하는 꽃잔의 행동에 율이 서둘러 꽃잔의 곁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율 : 죄송한데 파라움 어글 끌어서 중앙에서 끌어내 주실 수 있나요?]

[꽃잔 : 네??]

[꽃잔 : 어글을요...? 파티원들부터 살려야 하는 게..]

[율 : 제가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전부.]

[꽃잔 : 전부요? 그로기 되어 있는 팀원들 전부?!]

[율 : ...아마도요]

[꽃잔 : 아마도?!]

[꽃잔 : 그런 어중간한...]

[율 : 무리..일까요?]

[꽃잔 : ....]

[꽃잔 : 밑져야 본전이네요...율님이 실패해도 어차피 리트각인 것 같은데]

[꽃잔 : 해볼게요]

[율 : !]

[율 : 감사합니다]

꽃잔과 얘기를 끝내고, 중앙으로 달려가는 꽃잔을 보며 율은 후방으로 이동한 후, 인 라피뎀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했다. 동시에 꽃잔이 파라움에게 홀리 라이트를 사용하며 어글을 끌기 시작했다. 한 번에 너무 멀어지면 점프를 해오는 통에 조금씩 거리를 벌리며 맵의 가장자리로 서서히 이동하는 꽃잔과 파라움을 보며 율은 서둘러 맵의 중앙으로 달려갔다.

멀어져가는 파라움이 비워준 중앙 자리에 도달한 율은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콰드리 파리우스)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도, 시언조차도 처음 보는 스킬. 아크 비숍의 궁극기였다.

율의 주변으로 작게 시작된 마법진은 순식간에 확산하듯 퍼지며 중앙 전체를 뒤덮을 만큼 커졌다. 그리고 그로기에 빠진 팀원들 대부분을 범위 안에 담을 만큼 커진 마법진은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한 마법진은 한순간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그로기에 빠져 있는 범위 안의 모든 팀원 캐릭터 위로 리저렉션 이펙트를 띄웠다.

하지만 팀원들이 걸린 상태 이상은 전투 불능이 아니라 그로기였던 탓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렬하게 뿜어내던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마법진은 또다시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번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이번엔 힐 이펙트를 띄웠다. 동시에 범위 안에 있던 팀원들의 그로기가 풀리며 모두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일어나고 있는 비현실적인 일에 모두 어안이 벙벙한 듯 중앙에서 스킬을 시전 중인 율을 바라봤다.

자신들의 발밑에서 잠잠해지는 빛과 함께 또다시 천천히 돌기 시작하는 마법진 위에 멍하니 서 있던 팀원들은 또다시 강렬하게 뿜어내는 빛과 함께 자신들에게 걸리는 베네딕티오와 그 후에 또다시 잠잠해진 빛과 함께 원을 그리며 돌던 마법진이 다시 한번 강렬한 빛과 함께 베네피치움까지 걸고 나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걸 지켜봤다.

최종적으로 끝을 맺은 율의 궁극기에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멍하니 있던 팀원 몇 명이 환호하며 고마워하기 시작했고, 그에 번지듯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번지듯 커지는 소란스러움의 중심에 존재하던 율은 팀원들이 모두 살아난 걸 확인하고는 서둘러 중앙에서 빠져나와 후방으로 물러섰다. 그런 율의 움직임을 따라 팀원들의 시선도 절로 율을 쫓았다.

주시해야 할 파라움은 여전히 꽃잔이 고군분투 중이고, 다들 손을 놓은 듯 율을 바라보기만 하던 그때, 부지불식간에 율의 곁으로 다가온 아네미아가 파라움에게 스킬을 날렸다.

(아도라무스 떼 도미네!)

꽃잔의 홀리 라이트보다 월등히 높은 데미지로 어글을 뺏어온 아네미아는 자신과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파라움이 자신에게 다가오기 위해 점프를 하는 걸 바라보며 자신에게 프로텍트를 걸었다.

아마도 그녀는 율이 모두의 주목을 받는 게 싫었을 것이다. 히든 스킬 보유자에 퀸이라는 길드의 길드 마스터. 게다가 현재 팀의 리딩을 맡은 자신에게 쏠려야 마땅할 주목이었기에.

그래서 파라움의 공격을 유도해 대처하지 못하고 엉망으로 당하는 율의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줘 망신을 주려고 했다. 솔직히 자신의 컨트롤에 거의 범접할 만큼 성장한 율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를 찍어 누르고 싶었다.

하지만 파라움이 점프를 하며 아네미아와 율에게 추락하는 순간, 아네미아의 옆에 있던 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부지불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율의 행방을 찾아 당황하며 시야를 돌리던 아네미아의 눈에 그리 멀지 않은 곳. 노아의 옆에 소환되는 율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점프해 떨어지는 파라움의 공격과 함께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에이히루어)

(노아)

율의 옆으로 이동해 히든 스킬로 어그로를 끌고, 공격을 유도하는 아네미아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녀와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그냥 둬도 율은 스스로 상황을 모면하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만 있을 길드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해볼 틈도 없이 시언이 소환 스킬로 율을 자신의 옆으로 소환해버렸다. 동시에 소환된 율의 캐릭터 위로 프로텍트 이펙트들이 연속으로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율 본인과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눈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율의 주변, 꽃잔을 포함해 스킬이 닿는 범위에 있는 모든 프리들이 동시에 율에게 프로텍트를 걸어주었다. 파라움의 공격으로부터 율을 보호하기 위해.

순식간에 시언의 곁으로 소환된 것도 당황스러웠던 율은 말 한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의 호의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고마워하고, 어색해할 틈도 없이 주변에 포진되어 있던 격수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지며 파라움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런 팀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율은 서둘러 후방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율의 움직임을 따라 팀의 프리들도 모두 파라움의 광역 기가 닿지 않는 후방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자, 아네미아의 음성이 아닌 침착한 남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원거리 격수 분들도 프리 분들처럼 공격 범위 밖으로 나가세요. 사정거리가 범위 밖에서 닿지 않는 분들은 적어도 프리 분들 근처에 계셔 주세요. 그리고 극딜 부탁합니다. 저 덜떨어진 프리한테서 어글을 뺏어 와야 안정이 될 것 같네요.”

남자의 말에 여기저기서 ㅋ이나 ㅎ을 남발하는 채팅들이 빗발쳤다. 하지만 스킬의 쿨을 기다릴 것도 없이 파라움의 공격을 연속으로 받아내던 아네미아가 순식간에 전투 불능에 빠졌고, 동시에 파라움에게 직격한 시언의 스킬로 어글자가 바뀌었다.

“오, 이제 어글 튀는 일은 없겠네요. 그래도 패턴을 알 수가 없으니 근거리 분들은 조심해주세요.”

한 시간가량 같은 몬스터를 잡으면 싫어도 패턴은 눈에 익게 마련이지만, 파라움은 말 그대로 패턴이랄 것이 없었다. 페이즈를 나눌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내키는 대로 공격을 퍼부을 뿐이라서 즉흥적으로 대응을 하며 운 좋으면 살고, 운 나쁘면 죽고를 반복하며 전멸하는 파티의 수도 점점 늘어났다.

결국,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진 공략이 끝나고, 바닥에 쓰러진 파라움과 함께 살아남은 파티는 70%밖에 되지 않았다. 첫 번째 보스 방의 특히나 어려웠던 공략을 끝내고, 마냥 들떠 있는 팀원들의 수많은 채팅이 채팅창과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 안에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도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보스공략에 성공한 것보다는 율이가 사용한 스킬의 정체에 대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무지개 요정 : 율이 너 무슨 스킬을 쓴 거야?!]

[율 : 네?]

[질풍 : 맞아!!! 뭐야 그거!!]

[노아 : 나도 처음 보는 거던데?]

[도련 : 완전 사기!!]

[율 : 아...아크비숍 궁극기요]

[KING Husband : ?! 궁극기????]

[광인한 남자 : 궁극기는 그 스페라무스 아녔어?!]

[무지개 요정 : 아녔어?!]

[율 : 그건 노아 형하고 쓰는 합동기요]

[질풍 : 헐?!]

[노아 : 파티원이나 길드원이 아니어도 동시에 다 살려져?]

[율 : 네 파티 길드 팀 친구... 근데 인원이 10명 이상이어야 살려져요;]

[노아 : 허...]

[KING Husband : 오졌다...]

율의 스킬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어느샌가 제로사이드와 꽃잔이 다가왔다.

[제로사이드 : 율님 덕분에 리트 없이 끝났네요]

[율 : 아...]

[노아 : 네 리딩도 한몫한 거 아닌가?ㅋㅋ]

[제로사이드 : 뭘 그렇게 까지ㅋㅋㅋㅋ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ㅋㅋㅋ]

[꽃잔 : 그래도 길마님 덕분에 딜이 더 안정적이었던 것 같아요ㅋㅋ]

[제로사이드 : 노아가 탱을 잘 봐서 그런 거지ㅋㅋㅋㅋ 어글이 한번도 안튀었고 중앙에서 벗어나지도 않았잖아]

[꽃잔 : 그것도 그런가요?ㅋㅋㅋㅋㅋ]

[노아 : 띄워줘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ㅋㅋㅋㅋㅋ]

그리고 두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시언의 모습에 모두 놀란 듯 멍하니 대화를 지켜봤다.

[무지개 요정 : 뭐야?]

[노아 : ?]

[제로사이드 : ?]

[꽃잔 : ??]

[무지개 요정 : 너네...왜 친해?]

[노아 : 네?]

[제로사이드 : 잉?]

[꽃잔 : 네?]

[무지개 요정 : 니들이 왜 친해?!]

[노아 : 아...스왑갔을때요]

[무지개 요정 : 스왑?!]

[노아 : 네 제로랑 저랑 동갑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친해졌어요]

[제로사이드 : 인맥이 이렇게 중요합니닼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

두 사람의 친목 과시에 얼이 빠진 무지개 요정이 굳어 있는 사이, 율은 쭈뼛쭈뼛 꽃잔에게 다가가 그녀를 불렀다.

[율 : 저..꽃잔님..]

[꽃잔 : 네?!]

그리고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율의 말에 꽃잔은 또다시 과하게 놀라며 반사적으로 답했다.

[율 : 그..아까는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꽃잔 : 네?!]

[꽃잔 : 앗]

[꽃잔 : 아뇨! 율님 아니었으면 전멸 각이었는데요..]

[율 : 꽃잔님 아니었으면 실패했을 거예요]

[꽃잔 : 아....ㅎㅎㅎㅎ;;]

[율 : 정말 감사했습니다]

[꽃잔 : 어....괜찮은데...]

[꽃잔 : 근데..뭐랄까...율님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하고 많이 다르신 것 같아요^^;;]

[율 : 네?]

[꽃잔 : ;;;]

[율 : ?]

[꽃잔 : 그...기억 안 나세요?; 율님 저한테 좆까라고...]

[율 : 네?!]

[질풍 : 아!!]

[광인한 남자 : 맞아!!!]

[KING Husband : 앜ㅋㅋㅋㅋ]

[도련 : 아! 꽃잔님 그거.. 저희길마님이 시킨 거래요 율이 대신 사과드릴게요 나쁜 어른이 있는 길드라서 죄송합니다]

[꽃잔 : 에?]

[제로사이드 : ...]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아...아니;;;그게;;]

[율 : ;;;]

[SYSTEM] [파티별 기여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SYSTEM] [파라움 공략의 성공으로 안전 지역이 오픈됩니다.]

모두의 증언으로 구렁텅이에 떨어질 뻔했던 무지개 요정은 타이밍 좋게 떠오른 시스템 글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무지개 요정 : 오!!! 보상!!!!]

보스 방을 클리어할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은 던전의 공략을 모두 끝낸 후, 로비의 전리품 관리인으로부터 각자 지급 받을 수 있다. 다들 보상으로 어떤 아이템이 나올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며 보스 방 중앙에 생긴 워프를 통해 안전구역으로 이동했다.

안전구역에 도착해, 캠핑 키트를 사용해 위치 지정과 세이브를 끝마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아직 널널하게 남아버린 시간 동안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그리고 그런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 사이엔 제로사이드가 천연덕스럽게 끼어 들어와 있었다.

[무지개 요정 : 그나저나 아까 선빵 날린 건 율이 네가 잘못한 거야]

[율 : 네?]

[노아 : 수습이 잘됐으니 다행인데 만약 리트 했으면 율이 네가 욕을 먹었을 거야]

[율 : 그런..거예요?]

[무지개 요정 : 보통 익숙한 사람이 리딩을 하고 탱을 정한 후에 딜을 시작하는데..]

[제로사이드 : 그런데 아까 같은 상황에선 그다지 상관없지 않았어요?]

[무지개 요정 : 뭐?]

[노아 : 확실히...처음 보는 보스라 헤딩을 해야 하는 판이었으니 누가 선빵을 날렸는지는 중요하진 않았지]

[제로사이드 : 응 그러니까 율님 좀 전 같은 경우는 괜찮았지만 그래도 섣불리 선빵은 날리면 안 돼요 게다가 프리잖아요 ㅋㅋㅋ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

[율 : 네...죄송해요;]

[도련 : 근데 그거 율이 탓 아닌데..]

[노아 : ?]

[무지개 요정 : 뭐?]

[제로사이드 : ?]

[도련 : 아까 왕광풍이 율이한테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라면서 이상한 지식을 주입시키던데..]

[무지개 요정 : 뭣?]

[광인한 남자 : 최고의 방어는 곧!!!]

[KING Husband : 선빵!]

[질풍 : 반격!!]

[광인한 남자 : 기습!!]

[율 : 역습!]

[노아 : .....]

[제로사이드 : .....]

[도련 : ...]

[무지개 요정 : 저 미친놈들이...]

[노아 : 당분간...율이는 왕광풍하고 어울리지 못하게 하죠..]

[질풍 : ?!]

[KING Husband : 어째서!!]

[광인한 남자 : 왕광풍의 반열에 율을 올리면 을매나 멋있게요!!]

[질풍 : 오!! 왕광풍율!!!]

[무지개 요정 : ...너희는 오즈 나가면 율이한테 접근하지 마]

[질풍 : 헐!!]

[KING Husband : 왜욧!]

[광인한 남자 : 와이!!]

[율 : ;;]

[노아 : 저런 애들이랑 놀지 마]

[제로사이드 : 놀지 마요]

[도련 : ㅇㅇ]

왕광풍의 야심 찬 계획을 저지하며 시끌시끌하던 그들 사이에 반갑지 않은 아이디 하나가 끼어들어 왔다.

[아네미아 : 저기요!!!]

[무지개 요정 : ?]

[노아 : ?]

[제로사이드 : ?]

그리고 불쑥 나타난 아네미아가 율의 옆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아네미아 : 거기 율님!!!]

[율 : 네?]

[아네미아 : 아까 율님 때문에 큰일 날 뻔한 건 알고 있어요?!]

[율 : 아;]

[아네미아 : 나도 그쪽 때문에 죽었잖아요!!]

[제로사이드 : 이 여자 또 시작이네?]

[아네미아 : 뭐라고요?]

[제로사이드 : 그쪽은 뭐가 문젠데? 선빵 날린 건 잘못하긴 했지만 율님이 상황 수습도 다 했고 덕분에 리트 없이 끝날 수 있었는데?]

[제로사이드 : 그쪽은 혼자 히든 스킬 날려놓고 수습 못 해서 뒤진 거 아냐 지가 싸질러 놓은 똥을 왜 남더러 수습하라고 난리야?]

[아네미아 : 똥?!]

[제로사이드 : 율님이 선빵을 안 날렸어도 그쪽이 하는 개 같은 리딩만으로도 우리 팀은 수백 번 리트 했을걸?]

[제로사이드 : 애초에 그쪽이 하는 리딩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겠지만]

[아네미아 : 저번부터 그쪽은 왜 자꾸 끼어드는 거예요?!]

[제로사이드 : ?]

[아네미아 : 레인보우 힐 길드원도 아니잖아요? 주제넘게 자꾸 끼어들지 마시고 좀 빠지시죠]

[제로사이드 : 아~ 그쪽의 개떡 같은 논리를 반박하려면 레인보우 힐 길드원이어야만 하는 거였어?ㅋ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레인보우 힐 길드원한테 치욕 당하는 걸 즐기나봐?]

[제로사이드 : 형 나도 그쪽 길드로 받아줘욬ㅋㅋㅋㅋㅋㅋ]

[노아 : ? 미친놈이넼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

[아네미아 : 논점 자꾸 흐리지 말고요!! 율님같이 위험한 컨트롤 하는 사람하고 불안해서 앞으로 어떻게 팀을 해요!!]

[노아 : 그쪽은 애초에 던전 시스템을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은데?]

[아네미아 : ?]

[노아 : 지금 팀이 된 파티들이 다음 보스 방에서 또다시 팀이 된다는 게 정말 희박한 확률이라는 걸 모르나?]

[아네미아 : ...?]

[노아 : 지금 오즈에 들어와 있는 파티가 설마 여기 있는 팀이 전부라고 생각해?]

[노아 : 안전구역을 나가서 다음 보스 방까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만날 수 있는 팀원들이 결정되는 거야 그쪽하고 우리가 또다시 같은 팀이 될 확률은 거의 없어 게다가 보스 방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노아 : 운도 더럽게 없게 지금 그쪽하고 우리하고 같은 팀이 된 게 정말 기적 같은 확률이라고 던전 공략을 올 거면 기본적인 정보는 좀 숙지하지?]

[아네미아 : ...]

[노아 : 그쪽은 우리하고 팀이 된 게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입장에선 재앙 수준이니까 좀 꺼져줬으면 하는데?]

[노아 : 앞으로 마주칠 일도 없고 마주치고 싶지도 않으니까]

[제로사이드 : 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래서 레인보우 힐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노아 : ??]

[노아 : 미쳤냐곸ㅋㅋㅋ]

[율 : 뭐가 됐든...아까 선공 날린 건 제 잘못이니까 사과드릴게요..]

[제로사이드 : 크~ 맘씨도 좋아]

[노아 : 그러게 굳이 사과 안 해도 되는데 아깝게]

[아네미아 : ....]

[아네미아 : 정말..갈수록 상종 못 할 길드네요]

[질풍 : ㅇㅇ]

[광인한 남자 : 인정!]

[KING Husband : ㄱㅅ]

[도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어휴...]

[아네미아 : ....]

비꼬는 말과 진심을 담은 한숨 소리를 듣고도 제자리에 못 박힌 듯 꼼작도 하지 않던 아네미아에게 두 사람의 축객령이 동시에 내려졌다.

[노아 : 뭐해? 안가?]

[제로사이드 : 안 가고 뭐함?]

안전구역에서 8시간 동안의 브레이크 타임 동안 게임을 끄고, 숙면을 한 그들은 다음 날 아침 게임에 접속하며 하나둘씩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게임을 끈 이후부터 한 사람이라도 8시간 안에 접속하지 않으면 그대로 던전이 초기화되는 탓에 이른 아침부터 게임에 접속한 율은 자신보다 먼저 접속해서 자신을 반겨주는 시언을 발견하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즈를 공략하는 동안은 컴퓨터를 왔다 갔다 할 수 없으므로 각자의 집에서 플레이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주말엔 부모님이 집에 계시기 때문에 시언의 집에 갈 수 없는 율이었기에 딱히 현재 상황에 불만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예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게임에서는 주야장천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전원이 모이기를 기다리기도 잠시, 제일 마지막으로 접속한 도련을 끝으로 파티원이 모두 모였고, 각자 재정비를 하며 안전구역을 떠날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무지개 요정 : 노아는 상점가서 소모품 좀 채워 넣어 줘]

[노아 : 네]

[노아 : 참 율아 나도 만나 좀 만들어놔 줄래?]

[율 : 네]

무지개 요정의 부탁으로 잡화상점으로 가기 직전 자신에게 만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멀어지는 시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율은 후다닥 스킬을 시전했다.

잡화상점 안으로 들어선 시언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유저들의 숫자에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서둘러 상인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소유 중인 오즈 전용 펫을 불러낸 후에, 펫의 인벤을 열어 소모품 등을 잔뜩 사서 꽉꽉 채워 넣었다. 꽤 많은 리블이 들었지만, 시언은 괘념치 않는 듯 산뜻하게 상점을 벗어났다.

[아네미아 : 노아 오빠]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자신을 부르는 아네미아의 채팅이 보였다. 시언은 못 들은 척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아네미아 : 노아 오빠!!]

하지만 질리지도 않는 듯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자신을 불러대는 상대방의 보기도 싫은 아이디에 결국, 멈춰선 시언은 아네미아를 바라봤다.

[아네미아 : 저랑...잠깐 얘기 좀 해요]

[노아 : 일없어]

[아네미아 : 오빠!!]

[노아 : ?]

[아네미아 : 자꾸 저한테 이렇게 대하시면 언젠가는 후회하실 걸요?]

[노아 : ??]

[아네미아 : 지금이면 저도 충분히 오빠한테 잡혀줄 의사가 있으니까 잡혀줄 때 잡으라는 뜻이에요]

[노아 : 뭐를?]

[아네미아 : 솔직히 노아 오빠 그쪽 길드에 있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잖아요?]

[노아 : ?]

[노아 : ㅋㅋㅋㅋ그래서?]

[아네미아 : 툭 까놓고 단도직입적으로 저희 길드 오셨으면 좋겠어요]

[노아 : 나름 고급 어휘도 구사할 줄 아네?]

[아네미아 : ??]

[노아 : 그래서?]

[아네미아 : 저희 길드엔 저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편살 오빠나 꼼수랑 오이 같은 걸로는 택도 없죠 그 사람들하고 저는 급이 다르니까요]

[노아 : 그래서?ㅋㅋ]

[아네미아 : 노아 오빠 정도면 저하고 거의 같은 급에 있다고 생각해요]

[노아 : 그래서?]

[아네미아 : 나 정도면 노아 오빠한테도 나쁜 조건은 아니지 않아요?]

[아네미아 : 내 조건 수락하고 당장 그 길드랑 파티 나와서 나랑 파티도 다시 짜줬으면 하고요 저랑 같이 오즈 공략해요]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미치겠네]

[아네미아 : ??]

[노아 : 사람을 열 받게 만드는 재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웃기게도 만들어주네?]

[아네미아 : 네?]

[노아 :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노아 : 나에 대한 태도 손바닥 뒤집히듯 변한 거 부끄럽지 않냐고]

[아네미아 : 부끄럽지 않아요]

[노아 : 골 때리네 진짜...]

[아네미아 : 나쁜 남자 컨셉? 아니면 밀당? 그런 거 안 해도 전 오빠한테 잡혀줄 맘 있다고 말했잖아요]

[아네미아 : 율님하고 사귀는 사이니 뭐니 했던 것도 제 마음 떠보려고 했던 거 아녜요?]

[노아 : 마음에 병이라도 있나?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오지?]

[아네미아 : 노아 오빠하고 율님이라니 뭐로 보나 말도 안 되는 수준차이잖아요? 게다가 둘 다 남자고요]

[아네미아 : 차라리 세츠하고 사귄다고 하지 그랬어요? 그럼 믿었을 지도요]

[노아 : 애인이 버젓이 옆에 있는데 뭐하러 거짓말을 해?]

[아네미아 : 끝까지 그러실 거예요? 지금 오빠가 율님이랑 사귀고 있다는 말을 저더러 믿으라는 거예요?]

[노아 : 네가 믿건 말건 상관없는데?]

[아네미아 : 거기에 제가 껴있으니까 그러는 거잖아요!!]

[노아 : 어디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네미아 : ...]

[노아 : 대체 내가 그쪽한테 어떤 여지를 줘서 그쪽이 그런 착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건 난 여태껏 그쪽한테 거짓말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는 거]

[노아 : 율이 하고 사귄다는 것도 그쪽하고 마주치는 게 재앙 수준이란 것도 꺼져줬음 한다는 것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전부]

[아네미아 : ...]

[노아 : 제발 김칫국 그만 퍼먹고 내 앞에서 좀 꺼져]

[아네미아 : 그럼..정말 율님하고 사귀고 있다는 거예요?]

[노아 : 여태껏 그렇다고 말하고 있지 않나?]

[아네미아 : 노아 오빠..게이였어요?]

[노아 : 내가 뭐든 간에 그쪽하고는 상관없지?]

[아네미아 : 그럼 헤어지면 되겠네요]

[노아 : 뭐?]

[아네미아 : 헤어지고 내 길드로 오지 않으면 율님이 남자나 후리고 다니는 게이라고 인벤에 올릴 거예요 정말 사귀는 사이라면 율님한테 피해가 가는 건 피하고 싶지 않으세요?]

[노아 : 해]

[아네미아 : 네?]

[노아 : 후회 안 할 자신 있으면 해보라고]

소모품을 사기 위해 상점에 갔던 시언이 돌아온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늦어진 그의 귀환에 무지개 요정이 노발대발하며 화를 냈지만, 시언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결국, 남들보다 한참 늦은 채로 안전구역을 벗어난 그들은 다음 보스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KING Husband : 2번째 보스 방은 가기 전에 중보가 2마리쯤 나왔을 거예요]

[광인한 남자 : 첫 번째 보스 방을 클리어한 것만 해도 역사적인 거 아니냐?ㅋㅋㅋ]

[질풍 : ㅋㅋㅋㅋㅋ전에는 미아 누나 때문에 패망했었으니까 ㅋㅋ]

[무지개 요정 : 그때 얘기는 하지 마라...복장 터진다]

[도련 : 소규모 파티는 프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죠ㅋㅋㅋ]

[노아 : 거기다 율이가 두 사람 몫은 거뜬히 해내고 있잖아요ㅋㅋㅋ]

[질풍 : 든 to the 든]

안전구역을 나오자 이끼 낀 동굴 같던 던전 내부는 오래된 신전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미로같이 복잡한 길들이 계속돼서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한 그들은 그저, 이어지는 길을 찾아 하염없이 헤매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누구 하나 던전의 진행에 대한 불안을 보이는 이는 없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산발적으로 덮쳐오는 몬스터들을 해치워 갈 뿐이었다.

왠지 사냥보다는 수다에 점점 치중해 가는 파티원들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던 율은 문득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한 톤, 한 톤, 다운되어 가는 느낌.

[율 : 저기..아까보다 조금 어두워지지 않았어요?]

[노아 : 응?]

[무지개 요정 : 어두워져?]

그리고 율의 말에 모두들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질풍 : 어? 확실히...조금 어두운데요?]

[광인한 남자 : 뭐지?]

[KING Husband : 어? 나 안 움직여]

[도련 : 뭐?]

육안으로도 확연히 구분될 만큼 어두워져 있는 주변의 상황에 조금씩 당황하며 어수선해지던 그들 사이에서 KING Husband가 상태 이상을 알려왔다. 모두가 놀라며 KING Husband를 돌아봤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을 뿐 KING Husband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순 멈췄던 공기가 빠르게 휘몰아치며 다들 KING Husband를 찾기 위해 바쁘게 시야를 돌려댔다. 그러다 어느 한 곳에 모두의 시선이 멈춰 섰다.

[KING Husband : ...]

KING Husband는 여전히 자신이 서 있던 곳에 서 있었다. 문제는 몸뚱이는 땅속으로 끌려들어 간 채, 머리만 땅 위에 박혀 있는 모양새였다는 거였다. 황당한 KING Husband의 모습에 다들 말을 잃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파티원들의 모습에 덩달아 말이 없던 KING Husband는 주변을 점점 잠식해오는 어둠에 다급한 듯 버럭 화를 냈다.

[KING Husband : 꺼내줘!!!]

(루케테)

동시에 율의 스킬이 시전됐다. 꼬리를 길게 빼며 빛나는 무기체 같은 것이 주변을 밝히며 율의 주변을 맴돌았다. 어둠에 잠식되던 주변이 밝아지며 땅에 박혀있는 KING Husband에게서 검은색 그림자 같은 게 툭 튀어나오더니 KING Husband의 몸이 땅 위로 튕겨 나오며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박쥐 모양의 그림자가 날개로 몸을 감싼 모양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광인한 남자 : 중보같은데?!]

[질풍 : 뚜까패!!]

전략이나 공략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질풍의 말대로 달라붙어서 뚜까 팼을 뿐인데, 중간 보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박쥐 모양의 그림자는 너무나도 손쉽게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중간 보스를 잡자마자 미로가 사라지며 갈림길이 나타났다. 모두는 가슴속에 서늘하게 느껴지는 허무함을 맛보며 길을 선택했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길을 사방에서 덮쳐오는 몬스터를 해치우며 걷던 그들은 어느덧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임을 확인하고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두 팀으로 나눠 빠르게 끼니를 해치웠다.

하지만 번갈아 가며 먹은 덕에 아무리 빨리 먹는다고 해도, 30분 이상이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충 끼니를 때운 그들은 또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던전을 걸었다.

갈림길에서 길을 선택하고, 또다시 오래된 신전 같은 내부를 걷던 그들은 사사, 삭, 사사 삭, 하는 소리가 자신들을 쫓아오는 걸 들었다. 하지만 연신 소리만 들릴 뿐 도무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방심할 때쯤, 천장에서 뚝 떨어진 거대한 거미 한 마리가 그들 사이에 안착했고, 동시에 질풍의 채팅이 올라왔다.

[질풍 : 뚜까패!!!]

그리고 여섯 명이 들러붙어 열심히 뚜까 팬 결과 역시나 바닥에 뒤집어져 죽어버린 중간 보스였다. 왠지 싱거울 정도로 약한 중간 보스의 수준에 모두는 성에 안 찬 듯 아쉬운 입맛을 다셔댔다.

그 후에 또 얼마큼의 거리를 걸었을까, 화려하게 조각된 거대한 문 앞에 도착한 그들은 장치를 활성화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질풍 :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저녁 시간이야]

[KING Husband : 우리가 점심을 늦게 먹어서 그렇지 뭐]

[광인한 남자 : 근데 대충 먹어서 그런가? 벌써 배고파]

[질풍 : 응...]

[율 : 저도...]

[무지개 요정 : 헐?! 내 새끼가 배가 고파?!]

[노아 : 많이고파?]

[도련 : 뭐 간단하게 먹을 거라도 없어?]

[율 : 네...]

[노아 : 아...]

[무지개 요정 : 조금만 참아ㅠㅠㅠㅠ 여기 보스 공략하고 나면 안전구역 가서 편하게 밥 먹자 내 새끼 ㅠㅠ]

[율 : 네 ㅋㅋㅋㅋ]

[질풍 : 엄마네..]

[광인한 남자 : 엄마야..]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그때, 알림 글과 함께 보스 방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육중하게 보이는 문이 쿠구궁, 하는 소리와 함께 양옆으로 서서히 열렸고, 오래 묵힌 먼지들이 뿌옇게 일어나며 시야를 가렸다.

[무지개 요정 : 오 빨리 드가자!]

그리고 그들은 서둘러 보스 방의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광활할 정도로 너른 보스 방의 모습에 모두는 멍하니 실내를 둘러봤다. 거대한 신전의 알현실 같은 공간에 높은 천장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들이 화려한 조각을 새긴 채 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색색의 휘장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방의 정 중앙엔 붉은 벨벳으로 장식된 화려하고 거대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엔 새의 깃털과 소뿔로 만든 원반 형태의 왕관을 쓴 여성이 힘없이 눈을 감고 늘어져 있었다.

[KING Husband : 이시스다..]

[무지개 요정 : 이시스?]

[KING Husband : 네...아..골치 아프네;]

[광인한 남자 : 왜??]

[KING Husband : 이시스는 공략 영상이 없었던 건 아닌데.. 영상마다 패턴이 다 달랐어요;]

[질풍 : 뚜까패?!]

[무지개 요정 : 닥치렴]

[KING Husband : 패턴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지금 저 모습이 본체가 아니거든요]

[도련 : 잉?]

[KING Husband : 본체로 변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는데 그 방법이 영상마다 다 달라서...]

[노아 : 상황보고 대처할 수밖에 없겠네]

[율 : 어렵네요..]

[무지개 요정 : 하지만 내 새끼의 식사를 위해 뚜까패줄께!]

[율 : 네?]

[율 : ㅋㅋㅋㅋㅋㅋㅋㅋ]

[노아 : ㅋㅋㅋㅋㅋㅋ]

보스 방을 빙 둘러싼 수많은 문에서 쏟아져 들어온 파티들이 문이 닫힘과 동시에 하나의 팀이 되고, 팀 대화가 활성화되었다.

“꺄악! 율님이다!”

그리고 귀를 찢을 듯한 남자의 째지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율님! 내 사랑!”

“날 만나기 위해 이 험한 곳까지 왔나요?”

그리고 수많은 사람 속에서 가장자리를 빙 둘러 서둘러 달려오는 왈도의 모습이 보였다.

[노아 : 아...시발..]

[율 : ?!]

[질풍 : 엌ㅋㅋㅋ? 노아 형 욕하는 거 처음 봄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대밬ㅋㅋㅋㅋㅋ]

[도련 : 얼마나 싫어하는 거얔ㅋㅋㅋㅋ]

“율님! 내 사랑! 오늘 밤은 내 품 안에서….”

“이시스는 초반 패턴이 항상 다르다니 공략 의논 없이 바로 갑니다. 초반 패턴 이후에 패턴 잘 아시는 분이 리딩 부탁드려요.”

연신 빽빽대는 왈도의 말을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가 갑자기 끊고 들어왔다. 부산스럽게 째지는 목소리를 끊고 들려온 듣기 좋은 중저음의 울림에 모두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리둥절해 있는 와중에 율만이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꼬박 하루 만에 듣게 된 시언의 목소리였다.

시언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부산스럽게 달려오는 왈도를 무시한 채, 선두로 달려나가 잠들어 있는 이시스를 공격했다. 그의 행동을 따라 다른 격수들도 산발적으로 튀어나와 이시스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잠든 채로 공격을 당하던 이시스는 흰 눈을 번쩍 뜨고는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시스의 근처에 있던 격수들이 튕겨 나가듯 나가떨어졌고. 이시스는 급하게 몸을 웅크리며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SYSTEM] [이시스가 데미지 회복을 위한 정기를 흡수합니다.]

알림 글과 함께 공중에 떠오른 이시스의 하반신이 커다란 뱀의 꼬리로 변해 웅크린 몸을 휘감고는 남은 부분을 땅속으로 꽂아 넣었다. 곧이어 땅속으로 박아 넣은 꼬리는 수많은 뱀으로 변해 프리들의 발밑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붙잡은 프리들의 몸을 옭아매고, 그들의 정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율 : ?!]

[팀] [KING Husband : 막아요!!! 정기 흡수 끝나면 프리들 다 죽어요!!]

보스 방 여기저기서 이시스의 뱀에게 붙잡힌 프리스트들이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유저들은 팀 말로 올라온 KING Husband의 채팅을 보고는 다시 이시스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중에 떠오른 이시스의 주변으로 보호막 같은 게 생기며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붙잡힌 프리스트들의 체력이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해가자 이시르를 향한 공격은 더욱 맹렬해졌지만, 이시스는 철옹성이라도 몸에 두른 듯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있었다.

시언도 타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이시스에게의 공격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율의 체력이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야를 돌렸고, 이시스에서 벗어난 그의 타겟팅이 율을 비추는 순간, 하얗던 타겟팅 창이 붉게 물들며 공격 가능 표시를 나타냈다.

보통 pvp모드가 아니고서야 유저들 간에 공격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시언은 율에게 고정된 타겟팅이 공격 가능 상태인 걸 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대로 율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아나토메)

스킬과 함께 빠르게 율에게 접근한 시언의 공격이 율에게 먹혀들어 갔다.

[율 : ???]

정확하게는 율을 옭아매고 있는 뱀들에게. 하지만 놀랄 새도 없이 율을 옭아매고 있던 뱀들이 시언의 공격을 받고, 비명을 지르며 율의 몸을 더욱 옭아맸고, 율의 체력을 깎는 속도를 가속 시켰다.

아마도 계속 뱀들을 공격했다간 율이 죽고 말 터였다. 하지만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이시스와 공격이 통하는 뱀들.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이시스 말고, 프리들 잡은 뱀들을 공격하세요.”

아비규환의 북새통 속에 초연하게 울려 퍼진 낮은 목소리는 고저 없이 한 가지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난리 통 속에 그 목소리에 주목해주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시스에게 득실득실 붙어있는 격수들 말고, 후방에서 뱀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프리스트들은 무리 속에 섞여 있던 몇 명의 행동 변화를 눈치채고도 남을 수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시언의 말에 레인보우 힐 길드원만이 즉각 반응하며 무리에서 튀어나와 자신들의 프리스트인 아크 비숍에게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여섯 명이 달려들어 집중포화를 쏟아붓자, 아크 비숍은 아슬아슬한 체력을 남기고 뱀의 속박에서 풀려나 있었다.

[팀] [사라사 : 그쪽 말고!!! 날 묶은 뱀을 공격해!!!]

“뱀 잡으면 프리들 풀려납니다. 뱀 공격해주세요!”

[팀] [신전 : 야!!! 못 들었냐?!! 이시스 말고 뱀 공격해!!!]

[팀] [하리보 : 율님은 벌써 풀려났잖아!!!이 머저리들아!!]

“벌써 반피다! 더 지체하다간 나 진짜 죽어!”

“이시스 말고, 저한테 와서 뱀 잡아주세요.”

레인보우 힐 길드의 행동을 지켜보던 프리스트들은 아크 비숍인 율이 속박에서 풀려나자마자, 팀 채팅과 팀 음성 대화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말보다는 여러 사람의 말이 전달력이 좋은 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결과로 이시스에게 몰려 있던 팀원들이 점점 흩어지며 파티의 프리스트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이미 율을 속박에서 풀어낸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다른 파티의 프리스트들을 구하는 데 협력을 하며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결국, 모든 프리스트에게서 뱀을 떼어낼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프리스트를 구해낼 수는 없었다. 절반 이상이 뱀을 다 잡기 전에 체력을 모두 소모해 전투 불능에 빠져버렸다. 살아남은 율과 다른 프리스트들은 전투 불능에 빠진 프리스트들을 살려주기 위해 보스 방 여기저기를 바쁘게 뛰어다녀야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 이시스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공중에 떠올랐던 이시스의 몸이 점점 부피를 키워가고, 어느덧 떠올랐던 몸의 하체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캬아아아아악!”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보스 방 내부를 왕왕 울렸다. 놀란 팀원들이 그제야 이시스를 깨달은 듯 서둘러 시야를 돌렸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건 인간의 상체와 뱀의 하체를 가진 거대한 여인이 보스 방 중앙을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시스의 1페이즈 패턴은 양손을 번갈아 가며 바닥을 쓸듯 좌우로 흔들고, 그 후에 꼬리를 들어 올려 사방을 찍어 내립니당. 이게 1페이즈 동안 반복되니 주의합시다!”

그리고 멍하니 이시스의 모습을 바라보던 팀원들의 귓가에 리딩을 시작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기 거슬릴 만큼 째지는 목소리. 왈도였다.

“딜은 누가 제일 많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으니, 우선, 제가 탱 봅니다! 나한테서 딜 뺏을 수 있는 사람은 이어서 탱 보시던가요~ 꼬우!”

왈도가 설명을 하는 사이, 여기저기서 버프를 돌리는 프리들의 스킬들이 산발적으로 떠올랐다. 율도 마찬가지로 서둘러 버프를 돌리고, 마지막으로 공격력을 올려주는 아우덴티아를 사용하는 동시에 왈도의 신호가 떨어지고, 모두들 산발적으로 튀어 나가 공격을 쏟아부었다.

(디 블라우에 플라메)

여기저기서 스킬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이시스에게 직격한 시언의 스킬은 누구도 거치지 않고 단번에 시언에게 어글을 가져왔다.

“헐….”

동시에 당황한 듯한 왈도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자신에게서 어글을 뺏을 수 있으면 뺏어봐라, 라고 자신만만하게 선전포고를 했는데, 어글을 뺏기는커녕, 먹어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시언에게 뺏긴 셈이었다.

그리고 시언이 안정적으로 어글을 가져가자, 율은 곧바로 스페라무스를 시전했다. 파티원들 주위로 빛의 조각들이 배리어처럼 둘러졌다.

“앗, 율님! 나도 스페라무스 받아보고 싶은 데에~”

동시에 칭얼거리는 왈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율과 그들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공격에만 집중했다.

왈도의 조잘거리는 리딩과 함께 한없이 이어지던 공격이 멎어 든 건, 이시스가 2페이즈에 돌입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시스는 꼬리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공격을 막아내며 체력을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2페이즈 돌입했네요~ 이시스는 소량 체력을 회복시킨 후에 맵의 중앙으로 이동해서 광역기를 준비할 겁니다. 이때 우리는 속성별로 차례차례 이시스에게 공격을 가해야 합니다. 속성 공격을 넣어야 하기에 법사분들이 힘내주셔야 하구용.”

“순서는 지, 화, 수, 풍입니당. 지, 수 속성에선 공격이 아닌, 굳히는 스킬을 사용하셔야 해요. 지 속성에선 어스 하든을 사용하셔서 굳혀주시고, 수 속성에선 프로스트를 사용해서 굳혀주세요. 그후 지, 수 속성의 상극인 화, 풍 속성으로 데미지 뻥튀기시켜 주시면 됩니당. 이걸 2페이즈 동안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바로 광역기 옵니다. 법사 계열 분들은 한발씩 앞으로 나오세요. 서 있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갑니다.”

왈도는 목소리는 듣기 싫었지만, 리딩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설명도 그럭저럭 이해가 잘되게 하는 편이라 파티는 어려움 없이 공략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반대편에서부터 순서를 지켜 공격을 넣는 팀원들의 단합을 지켜보던 율은 무지개 요정이 어느 타이밍에 어느 속성으로 마법을 넣게 되는지를 계산했다. 그리고 한 가지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생겼다.

남들 모르게 혼자 초조하게 순서를 재던 율은 무지개 요정의 바로 전 사람이 스킬을 시전하는 걸 보며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자신도 스킬을 사용했다.

(프로스트)

(옵타티오)

프로스트는 수속성 공격으로 소량의 데미지와 함께 몬스터를 얼어붙게 만드는 스킬이었다. 얼어붙은 몬스터는 수속성이 되므로 여기에 상극인 풍 속성 공격을 가하면 50%의 추가 데미지가 들어간다. 하지만 수 속성으로 얼어붙거나, 지속성으로 굳어버린 몬스터에는 보조 스킬이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율은 수 속성 공격이 가해지고, 몬스터에게 잠깐 찾아오는 그 경직의 찰나에 1회 공격에 2배의 데미지를 입게 하는 스킬을 찔러 넣은 것이었다.

[노아 : ?!]

[질풍 : ?!]

[도련 : ???]

[광인한 남자 : 뭐여?]

[KING Husband : 저게 먹혀?!]

그리고 연이은 무지개 요정의 풍 속성 공격은 율이 끼워 넣은 옵타티오 효과에 수 속성 상극 효과까지 합쳐져 총 150%의 어마어마한 추가 데미지를 낳았다.

“헐… 율님 대박!”

원체 남들보다 좋은 장비를 하고 있던 무지개 요정이라 단일로 공격해도 뛰어난 데미지를 자랑하는 그였다. 하지만 율이가 써준 스킬 효과 덕분에 정말 상상 못 할 데미지가 떠올랐고, 동시에 왈도의 호들갑스러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 왈도의 목소리에 묻혀서 다른 사람들의 감탄사들도 간간이 들려왔다.

“역시 내 사랑! 여러분! 저 자랑스러운 율님을 봐줘요! 신이 내린 컨트로올!”

[무지개 요정 : 율아!!!]

[무지개 요정 : 대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한 거야 넠ㅋㅋㅋ]

[율 : 저도 될지는 몰랐어요;]

[노아 : 와 진짜ㅋㅋ]

[도련 : 아니 스킬을 어떻게 그렇게 활용할 생각을 하지?!]

[질풍 : 얘 천재 아니에요?!]

[KING Husband : 말이 안 나오네..]

[광인한 남자 : 쩔어...]

그리고 공격을 마친 무지개 요정을 필두로 수다를 떨어대는 그들은 왈도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율은 프로스트 스킬 이후엔 반드시 옵타티오 스킬을 끼워 넣었다. 결국, 율이의 스킬 덕분에 2페이즈에서 이시스의 체력을 어마어마하게 깎아 놓은 팀원들은 패턴이 제일 어려운 3페이즈를 짧게 끝내고, 이시스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SYSTEM] [파티별 기여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SYSTEM] [이시스 공략의 성공으로 안전 지역이 오픈됩니다.]

이시스를 쓰러뜨리고, 잠시 보스 방에 머물던 팀원들은 알림 글과 함께 보스 방 중앙에 생기는 워프를 사용해 안전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

안전 지역 여기저기에 캠핑 키트를 펼치는 다른 파티들을 바라보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한적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캠핑 키트를 사용하지 않고, 원하는 시간만큼만 쉬었다가 바로 공략을 떠날 참이었다.

[무지개 요정 : 와 율이 진짜 힘썼다]

[노아 : 그러게요 ㅋㅋㅋ 뿌듯하네요]

[질풍 : 자랑스러워 죽겠엌ㅋㅋㅋ]

[광인한 남자 : 어디 가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ㅋㅋㅋㅋ]

[KING Husband : 맞앜ㅋㅋㅋㅋㅋㅋ]

[도련 : 아...누가 아까 그거 녹화해서 좀 올려줬으면 ㅋㅋㅋ]

[질풍 : 누군가 공략 영상 찍지 않았을까?!]

[무지개 요정 : 그러고 보니 옵타티오는 아크 비숍만 있는 스킬이지?]

[노아 : 네 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우리 길드 특산이다!!!!!]

[KING Husband : ㅇㄱㄹㅇㅂㅂㅂㄱ!!!!]

[광인한 남자 : 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아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질풍 :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컨트롤ㅋㅋㅋㅋㅋㅋ]

[도련 : 미쳤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율 : ;]

[무지개 요정 : 우쭈! 내 새끼 배고프지?! 얼른 밥 먹고 와 얼른~!]

[노아 : 그래ㅋㅋㅋㅋ 무말랭이는 좀 그만 먹고 ㅋㅋㅋㅋㅋ]

[율 : 맛있는데...]

[도련 : 무말랭이 뭐야 ㅋㅋㅋㅋㅋㅋ]

[질풍 : 전에 노아 형이 율이 무말랭이 닮았다고 그러더닠ㅋㅋㅋㅋㅋ 이유가 있었엌ㅋㅋㅋ]

[율 : ㅜㅠ]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자 다들 빨리 밥 먹고 다시 모이자 ㅋㅋㅋ]

[광인한 남자 : 한 끼 정도는 여유롭게..]

[KING Husband : 인정...]

[무지개 요정 : 어..그래...여유롭게..먹고 모이자..]

[율 : ㅋㅋㅋㅋㅋㅋ]

율의 웃음을 마지막으로 다들 식사를 하러 갔는지, 채팅창이 조용해졌다. 시언은 밥을 먹으러 가기 전에 인벤토리를 정리하기 위해 소지품 창을 열었다. 그리고 한창 정리에 열중이던 그의 시야에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율의 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 하나가 보였다.

[왈도 : 율님~]

[왈도 : 율님~?]

[왈도 : ...]

[왈도 : 내가 왔는데 잠수하기 있기에요?!]

조용히 왈도의 행동을 지켜보던 시언은 소지품 창을 닫았다.

[노아 : 좀 꺼지지?]

[왈도 : ?]

[왈도 : 왜 그쪽이 난리?]

[노아 : 꺼지라고]

[왈도 : 신경 쓰지 마시죠 난 율님을 보러온 것뿐이고?]

[노아 : 율이는 너 안 보고 싶어 하니까 꺼져]

[왈도 : 흐흫~ 그걸 노아님이 어찌 암?]

노아의 견제에도 깐죽깐죽 대며 율의 옆을 방황하던 왈도는 불시에 율의 옆에 바짝 붙어 뽀뽀하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그런 왈도의 행동에 짜증이 난 듯 미간을 와작 구긴 시언이 빠르게 채팅을 치는데, 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노아 : 주인 없는 캐릭터에 개 같은 짓 하지 말고 꺼지 율아?]

그리고 치던 타자의 내용을 잊고 그대로 이어 붙여 율을 불렀다. 하지만 시언의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던 율은 노아의 반대편 옆에 가서 캐릭터를 앉혔다.

[노아 : 율아? 밥 먹으러 안 갔어?]

[왈도 : 내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던 거 아님? 북흐럼쟁이~]

[노아 : 닥치고 꺼지라고 좀!]

[왈도 : 흐흫~]

[율 : 더럽게 뭐하시는 거예요]

[노아 : ?]

[왈도 : 잉?]

[율 : 좀 가세요;]

[왈도 : 왜용~ 사실은 내가 온 거 좋아하면서~/ㅅ/]

[율 : 누가 좋아한다고 그러세요;]

[왈도 : ㅇㅅㅇ?]

[율 : 징그러워요;]

[노아 : ?]

[왈도 : 흐...흫?]

[율 : 오늘 들어본 왈도님 목소리도 싫고 왈도님 캐릭터도 싫어요; 왈도님 자체도 싫고 그냥 다 싫어요;]

[율 : 솔직히 왈도님 볼 때마다 끔찍해요]

[왈도 : 끔...]

[율 : 괜히 노아 형 화나게 하지 말고]

[노아 : ...?]

[왈도 : ㅇㅅㅇ]

[율 : 가세요;]

***

[무지개 요정 : 어..그래...여유롭게..먹고 모이자..]

[율 : ㅋㅋㅋㅋㅋㅋ]

정신없이 이어지던 수다가 끝이 나고, 율도 서둘러 저녁을 먹기 위해 방을 나섰다. 하지만 율이 방을 비웠던 시간은 불과 5분 남짓.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되돌아온 율의 두 손 안엔 우유 한 잔과 여러 개의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배가 고팠는지 빵 봉지 하나를 주섬주섬 뜯어 의자에 앉으려던 율은 그대로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모니터 가득 보이는 길드원들과 자신의 캐릭터 사이로 반갑지 않은 한 명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왈도 : 율님~]

자신을 부르며 다가오는 상대방의 모습에 입맛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왈도 : 율님~?]

[왈도 : ...]

[왈도 : 내가 왔는데 잠수하기 있기에요?!]

그리고 껄떡대기 시작하는 왈도의 모습에 율은 들고 있던 빵 봉지를 손에서 놓았다. 뭐라고 한마디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면 이대로 무시를 하고, 길드원들이 돌아오는 걸 기다려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의 고민에 대한 시간은 길게 가지 않았다.

[노아 : 좀 꺼지지?]

틀림없이 밥을 먹으러 갔다고 생각했던 시언의 채팅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율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시언은 왈도를 싫어했다. 어렴풋이 그 이유는 알 것도 같았지만, 보스 방에서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욕설을 내뱉는 시언의 격한 반응에 깜짝 놀란 율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왈도와 기 싸움하듯 대화를 나누는 시언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다. 왈도가 찾아온 건 자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왈도 때문에 시언은 화를 내고 있었고.

자신으로 인해서 시언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었다. 왠지 안절부절못하게 된 마음으로 왈도를 쫓아내기 위해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키보드에 손을 올리던 차에, 왈도가 자신의 옆으로 바짝 붙으며 뽀뽀하는 이모티콘을 띄웠다.

그런 왈도의 행동에 율은 저도 모르게 캐릭터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왈도를 피해 시언의 반대편 옆으로 이동해 앉았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언젠가의 기분 나쁜 문자를 받았을 때의 느낌.

[율 : 더럽게 뭐하시는 거예요]

자신의 말에 놀라는 시언과 왈도의 반응을 보면서 진심으로 왈도에 대해 하고 싶었던, 그를 보며 느끼고 있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줄줄이 늘어놨다. 이런 말까지 해도 되는 걸까, 하는 머뭇거림이 손끝을 스치며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율은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거부감이 드는 자신의 감정보다는 시언이 화를 내는 게 싫었다. 시언을 화나게 만들고 있는 왈도가 싫었다.

[율 : 괜히 노아 형 화나게 하지 말고]

[노아 : ...?]

[왈도 : ㅇㅅㅇ]

[율 : 가세요;]

[노아 : 율아?]

[왈도 : 와...율님 이런 성격일 줄은 몰랐네..]

[노아 : ?]

[율 : ?]

[왈도 : 싸가지 밥 말아 먹었나?]

[율 : ;;]

[왈도 : 사람 면전에 대고 징그럽다는 둥 끔찍하다는 둥 더럽다는 둥]

[왈도 : 오냐오냐했더니...]

[왈도 : 너 같은 새끼는 몇 대 처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노아 : 이 새끼가?]

율의 말에 본성이라도 드러낸 듯 위협하는 왈도의 말에 시언도 한층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질풍 : 더럽다...]

[광인한 남자 : 끔찍해..]

[KING Husband : 징글징글 하구만.]

[도련 : 몇 대를 처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진짜?]

[무지개 요정 : 저 추접스런 새끼가 남의 집 막내한테 뭐라고 씨부려댄거야?]

[질풍 :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 우리 집 막내인데!!]

[광인한 남자 :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있는 중인데?!]

[KING Husband : 엄마도 때려본 적 없는데!!]

[무지개 요정 : 금지옥엽 내 새끼인데!!!]

[도련 : 아빠는 누굽니까?]

[KING Husband : 제로사이드?]

[무지개 요정 : 닥치렴]

[왈도 : 놀구들 있네]

[무지개 요정 : 뭐라?]

[노아 : 새끼가 꺼지라고 몇 번을 말해? 한두 번 말해서는 못 알아듣나? 이해력이 좀 부족해? 그럼 게임을 처 하지 말고 초등교육부터 다시 받던가]

[왈도 : 잉?]

[노아 : 이런 데서 시간 때울 여유가 있으면 가서 글자 하나라도 더 봐야 머가리가 공동인 게 커버가 될 텐데?]

[왈도 : 뭐라고?]

[노아 : 너도 지능이 오늘내일하나 본데, 모자란 거 티 내지 말고, 얼마 없는 머리로 던전 공략에나 힘쓰지?]

[노아 : 꼴을 보아하니 얼마 못 가 전멸 각인거 뻔 하긴 하지만]

[왈도 : 지랄ㅋㅋㅋㅋㅋㅋㅋㅋ 전멸은 너네 같은 오합지졸들이나 당하는 거겠지?]

[왈도 : 내가 장담하는데 율 새끼가 제일 먼저 죽고 너네 다 전멸할 듯?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존나 미래라도 내다 보나 봄?ㅋㅋㅋㅋ]

[질풍 : 노스트라다무스 납셨넼ㅋㅋㅋㅋ]

[KING Husband :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데 그 능력을 게임에서 쓰고 있는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도련 : 이번 주 로또 번호 좀]

[왈도 : 또라이 새끼들이..]

[질풍 : 뉘예 뉘예 알게쭙니다아~]

[왈도 : ...]

[왈도 : 수준 떨어져서 상종을 못하겠네]

말과 함께 캐릭터를 움직여 자리를 떠나는 왈도의 뒤로 왕광풍 세 사람의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질풍 : 잘 가라 더러운 놈]

[광인한 남자 : 잘 가라 끔찍한 놈]

[KING Husband : 잘 가라 징그러운 놈]

왈도가 떠나고 나서도 한참을 더 왈도의 욕을 하며 열을 올리던 길드원들은 왠지 의기소침해져 있는 율을 위로하며 더욱 신랄하게 왈도의 호박씨를 깠다. 그렇게 채팅에 열중해 있는 사이, 한결같이 통하는 마음으로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책상 앞에서 먹으려던 왕광풍, 도련, 무지개 요정의 라면은 퉁퉁 불어 있었다.

결국, 불어터진 라면을 꾸역꾸역 먹고 안전 지역을 벗어난 그들은 길고 끝없는 회랑에 들어섰다. 일렬로 늘어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몇 시간을 걸었지만, 몬스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오류가 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쯤, 전방에 거대한 제단이 보였다. 그리고 제단 앞에는 7개의 워프가 있었다.

[KING Husband : 아....함정길이네;]

[노아 : 함정 길?]

[KING Husband : 응..저기 각자 워프 타고 가서 하는 건데..]

[KING Husband : 그냥 함정 피해서 길 끝까지 가면 되는 거긴 한데 전원이 전부 통과할 때까지 안 끝남...]

[질풍 : 저기서 죽으면 어케 돼??]

[KING Husband : 죽으면 다시 이 제단 앞으로 와질걸 그럼 다시 워프 타고 가서 하면 돼]

[광인한 남자 : 말만 들어보면 별거 없어 보이는데?]

[KING Husband : 공략에서도 함정길이라는 말만 있지 저길 통과하는 영상은 없어서..]

[무지개 요정 : 근데 넌 대체 공략을 얼마나 봤기에 다 알고 있냐?]

[KING Husband : 길잡이 한 명쯤은 있으면 좋잖아요 그래서 유명한 영상만 찾아서 정독했죠]

[무지개 요정 : 유명한 영상?]

[KING Husband : 대표적으로 제로님 영상이요]

[KING Husband : 레토르 공략 영상 유튜버로 유명하잖아요]

[무지개 요정 : -ㅛ-]

[광인한 남자 : 하긴 나도 공략 영상은 대부분 제로님꺼로 보긴 하는데ㅋㅋㅋ]

[도련 : 공략 영상 보려면 제로님꺼 선호하게 되긴 하더라]

[KING Husband : 응응]

[무지개 요정 : 그 자식은 오즈를 얼마나 다녔기에..]

[KING Husband : 초반에 오즈 나오고 공대짜서 정기적으로 다녔던 것 같더라고요]

[무지개 요정 : 쓸데없이 한가한 놈일세?]

[KING Husband : 덕분에 정보도 많이 풀리고 좋죠 뭐]

[무지개 요정 : 그래서? 여기는 그냥 각자 워프 타고 함정만 피해서 빠져나가면 되는 거야?]

[KING Husband : 네 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가자]

그들은 무지개 요정을 선두로 각자 워프를 하나씩 골라서 이동을 했다. 그러나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전부 제단 앞으로 재소환 되었다.

[무지개 요정 : ...]

[질풍 : ㅠㅠㅠㅠ]

[광인한 남자 : ??]

[KING Husband : 이 씨..]

[노아 : 음...]

[율 : ...;]

[도련 : ㅡㅡ]

한 명도 빠짐없이 재소환 되어 모인 서로를 바라보다, 다시 워프로 달려 들어간 그들은 몇 차례나 재소환 되어 재단 앞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무지개 요정 : 이거 깰 수는 있는 거냐!!]

[노아 : 으음...]

[광인한 남자 : 누구를 탓하리오..]

[도련 : 다시 갑시다..]

[KING Husband : ㅇㅇ...]

하지만 횟수가 늘어갈수록 모이는 숫자는 줄어들고 있었다. 반복할수록 함정의 위치를 외우게 되고, 임기응변으로 피하게 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벌써 몇 시간째 함정 길에 붙잡혀 있다는 거였다.

[파티] [율 : 저!! 빠져나왔어요!!]

[파티] [노아 : ?!]

[파티] [질풍 : 헐?!]

[파티] [무지개 요정 : 내 새끼?!!!]

[파티] [도련 : 어떻게 나갔어?!]

[파티] [율 : 인 라피뎀쓰고 달렸어요!]

[파티] [KING Husband : 엌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율 : 빠지는 함정 빼고는 방어가 되더라고요]

[파티] [광인한 남자 : 오? 레알?]

[파티] [율 : 네 ㅋㅋㅋㅋ]

[파티] [노아 : 각자 방어스킬 쓰고 달려보죠 ㅋㅋㅋㅋㅋ]

[파티] [무지개 요정 : ㅇㅇㅇ!!]

율의 성공을 시작으로 각자 방어스킬을 활용하며 한 명, 두 명 함정 길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풍을 마지막으로 함정 길에서 모두 빠져나온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길을 재촉할 수 있었다.

다시 긴 회랑 길을 하염없이 걷기를 잠시, 그들 앞에 거대하고 육중한 보스 방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둘러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무지개 요정 : 보스 방이 왜 나와?]

[질풍 : 우리 중보 한 번도 안 거치지 않았나?]

[노아 : 몹도 한 마리도 없었잖아]

[KING Husband : 함정 길은 지름길이거든요]

[광인한 남자 : 잉?]

[KING Husband : 저 길로 오면 몹이랑 중보 없이 바로 보스 방으로 올 수 있어요]

[도련 : 헐 개꿀]

[율 : 운이 좋았네요ㅋㅋㅋ]

대화를 나누며 보스 방문 앞에 있는 장치를 활성화한 그들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다린다는 행위만으로도 지쳐갈 때쯤, 육중한 문이 거대한 진동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활짝 열리는 문을 피곤한 눈으로 바라보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안쪽으로 향했다.

3번째 보스 방은 앞선 보스 방들과는 다르게 밝은 조명을 하고 있었다. 바닥엔 알록달록한 색색별의 매트들이 폭신하게 깔려 있고, 내부 여기저기엔 장난감들이 즐비했다. 중앙을 조금 크게 둘러싼 레일엔 거대한 장난감 기차가 끊임없이 돌고 있었고, 방 한구석엔 관람차가, 다른 한구석엔 회전목마가 있었다. 또한, 수많은 장난감 병정들이 줄을 맞춰 일사불란하게 방안을 걸어 다녔다.

그리고 방의 정중앙엔 호박 머리를 한 삐쩍 마른 신사가 O자 다리를 스프링 튕기듯이 튕기며 지면에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3번째 보스 방의 보스. 잭 오 랜턴이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2번째 보스 방까지의 보스들과는 다른, 확연히 작은 크기. 그리고 보스 방을 띄엄띄엄 둘러싼 문들의 숫자. 3번째 보스 방에 진입한 파티의 숫자는 레인보우 힐을 포함해 다섯. 급격하게 달라져 버린 레이드 인원에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지개 요정 : 뭔가 불안한데..]

[KING Husband : 잭 오 랜턴은 시작하자마자 팀원 중 한 명을 제물로 삼아요]

[노아 : 제물?]

[KING Husband : 응 우선 제물로 삼은 유저를 제 앞으로 끌고 와서 죽여 버림]

[질풍 : ???]

[KING Husband : 그리고 2페이즈 돌입하면 죽어있는 유저를 꼭두각시로 부활시켜서 자신을 돕게 해]

[광인한 남자 : 엌ㅋㅋㅋㅋㅋ 여기서 왈도의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거 아니냨ㅋㅋㅋㅋㅋ]

[KING Husband : 미친놈앜ㅋㅋ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맠ㅋㅋㅋ]

[도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아 : 율이 제물 되면 소름 좀 돋겠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율 : 으아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고사를 지내라 이것들앜ㅋㅋㅋㅋ]

그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지잉- 하는 울림과 약간의 노이즈가 남자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인원이 적으니까 스펙 살펴보는 게 쉬워서 좋긴 하네요. 현재 스펙으론 노아 님이 탱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리딩을 하려는 듯한 남자의 물음에 웃고 떠들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괜찮습니다.”

“네~ 그럼 탱은 노아 님이 봐주시고요. 제물은 누가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자신이 제물이 되든 남이 제물이 되든 크게 동요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대응해주세요. 노아님 먼저 들어가시고, 나머지 들어가도록 할게요.”

남자의 말에 노아가 아나토메 스킬을 사용해서 잭 오 랜턴에게 순식간에 접근했다. 그리고 연이은 연계기를 모두 명중하자, 대기 중이던 팀원들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왔다.

너도나도 튀어 나가는 팀원들을 바라보던 율은 평소처럼 광역기의 범위 밖에서 자리를 잡고 보조를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화면이 흔들리며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펙트가 화면 가득 차올랐다.

“?”

그리고 화면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캐릭터는 잭 오 랜턴의 손아귀에 잡힌 채 하늘 높이 치켜들려 지고 있었다.

쾅, 쾅-!

두 번, 잭 오 랜턴의 손아귀에 잡힌 율이 마구잡이로 바닥에 내리쳐지며 짓이겨진 숫자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잭 오 랜턴의 발치 아래 내동댕이쳐진 율과 그런 율의 모습에 멍하니 손을 놓고 있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채팅창에 떠오르는 알림 글을 보며 다들 숨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파티원 율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헐….”

율의 사망과 동시에 리딩자의 나지막한 한탄이 들려왔다. 충격에 휩싸인 팀원들의 행동이 일순 멈췄고, 모두의 시선은 잭 오 랜턴의 발치 아래 누워 있는 율의 캐릭터에 모여들었다.

“여러분 멈추지 마시고, 공격은 계속해주세요.”

동결된 것만 같던 시간이 리딩자의 말 한마디에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기 시작한 팀원들 속에서 유일하게 레인보우 힐 길드원만이 당황한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제물이 정해졌으니 이제 보스의 패턴을 초기화시키는 일만 남았습니다.”

“2페이즈 돌입하면 제물이 꼭두각시가 되어 부활할 텐데요, 그 꼭두각시를 해치우면 보스의 패턴이 초기화되면서 피를 회복하고 1페이즈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면 제물 패턴도 사라지니, 그때 제물은 부활시켜 드리면 됩니다.”

“지금은 리저가 안 먹히나요?”

리딩자의 막힘없는 설명에 시언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네, 지금은 리저 안 먹힙니다.”

“아….”

“2페이즈 돌입하면 레인보우 힐 길드원분들이 제물 처리하러 가주시면 될 것 같아요. 나머지는 잭 오 랜턴 딜에 집중해주시는데, 2페이즈에서 다운은 절대 넣으면 안 됩니다. 다운 넣었다간 우리 전멸해요.”

리딩자의 정리로 군말 없이 잭 오 랜턴의 딜에만 집중하게 된 팀원들과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예상외로 1페이즈부터 애를 먹기 시작했다. 잭 오 랜턴의 1페이즈 패턴은 솔직히 별 볼 일 없었다. 그저 단순하게 점프를 뛰었다가 떨어지는 진동으로 공격하는데, 문제는 쓸데없이 체공 시간이 길다는 거였다.

근거리 격수들은 보스가 점프를 뛰어서 공중에 머물러 있는 시간 동안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 격수들은 지상이든 공중이든 상관없이 딜을 넣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팀에 원거리 격수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였다.

[팀] [KING Husband : 보스한테 사일런스 안 걸리나요? 점프하는 거 자체가 스킬일 텐데]

[팀] [보야보아 : 꾸준히 넣고는 있는데 바탈이 높은지 잘 안 걸려요;ㅁ;]

[팀] [KING Husband : ㅠㅠ]

“엇?”

딜보단 팀 대화에 잠깐 집중하던 KING Husband의 귓가에 놀란 듯 외치는 리딩자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덩달아 놀란 KING Husband가 서둘러 시선을 들자, 중앙에서 보스와 대치하던 시언이 보스의 큰 한방을 미처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멀리 나가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프리분들 노아님한테 힐 좀 주세요!!”

그리고 동시에 들려온 리딩자의 말에 사방에서 시언에게 힐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시언은 피를 다 채울 수 없었다. 프리스트들의 힐량이 율에 비해 적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어글자와 일정 이상 떨어져 버린 잭 오 랜턴이 시언을 향해 점프를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쿵-

시언은 거대한 진동을 남기며 점프해 온 잭 오 랜턴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자신의 곁에 있다가 말려든 팀원 몇 명은 그대로 전투 불능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노아님은 천천히 보스 끌고 중앙으로 되돌아가 주시고요, 프리분들은 좀 기다렸다가 죽은 사람들 리저 부탁드려요.”

리딩자의 말과 함께 시언은 천천히 보스를 끌고 중앙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일정 거리 이상이 벌어지면 또다시 점프를 해오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움직였다.

[팀] [무지개 요정 : 저거 끌고 다니는 동안은 점프 안 하는 것 같은데요?]

“어…?”

그리고 그런 시언과 잭 오 랜턴의 행동을 유심히 보던 무지개 요정의 한마디에 시언을 제외한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팀] [무지개 요정 : 중앙으로 가지 말고 주변 천천히 무빙시키는 건 어때요?]

“해보죠, 중앙을 피해서 좀 크게 원을 돌 테니까 근거리는 저를 따라 무빙을 하시고, 원거리는 중앙으로 들어가세요.”

무지개 요정의 말에 리딩자의 목소리가 아닌 시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언은 무지개 요정의 말을 바로 수긍하며 모두의 포지션을 재배치했고, 팀원들은 불평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시언의 지시에 따랐다.

(카타스트로페)

(퀴리오스)

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스킬을 사용한 시언의 등 뒤로 무수히 많은 칼이 소환됐다. 그리고 지정한 타깃을 스스로 공격하게 하는 스킬을 연달아 사용하며 천천히 무빙을 시작했다.

동시에 중앙에 들어가 있던 원거리와 프리들은 방향만을 바꿔가며 잭 오 랜턴에게 공격을 퍼부었고, 근거리들은 시언과 함께 무빙을 하며 잭 오 랜턴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합이 잘 맞는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잭 오 랜턴의 피가 30% 정도 빠지자 잭 오 랜턴은 어글자를 무시한 채 중앙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중앙 나오세요.”

그런 잭 오 랜턴의 행동에 리딩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팀원들은 후다닥 이동해 중앙을 비웠다. 중앙으로 되돌아간 잭 오 랜턴은 곧바로 2페이즈에 돌입했다. O자 다리를 한,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중앙에 선 잭 오 랜턴은 어디선가 지팡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지휘하듯 허공에 손짓하기 시작했다.

“레인보우 힐 길드원분들 제물 처리 부탁드립니다.”

긴장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리딩자의 말과 함께 잭 오 랜턴의 발치에서 쓰러져 있던 아크 비숍이 삐걱삐걱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우선 아크 비숍이랑 잭 오 랜턴이랑 분리부터 시키죠.”

몸을 일으키는 아크 비숍의 모습에 시언이 말을 이으며 후방 이동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의 말과 행동에 레인보우 힐 길드원을 포함한 팀원들이 의아한 듯 그의 행동을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곧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에이히루어)

(노아)

시언의 스킬과 함께 잭 오 랜턴의 발치에 비틀비틀 서 있던 아크 비숍이 단숨에 시언의 옆으로 소환이 되었다.

“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지고, 둘로 나뉜 팀은 각자 잭 오 랜턴과 아크 비숍을 공략하려 흩어졌다. 아니, 흩어지려 했다.

(에이히루어)

(율)

시언의 곁으로 소환된 아크 비숍이 시언을 따라 하기라도 하듯 같은 스킬을 사용했고, 아크 비숍의 옆에 소환이 된 건 시언이 아니라 잭 오 랜턴이었다.

“…뭐야?”

황당함을 담은 시언의 목소리가 허탈하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크 비숍은 멈추지 않고, 연이어 스킬들을 줄줄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베네딕티오)

(베네피치움)

(스페스)

(아우덴티아)

(클레멘티스)

아크 비숍은 현재 잭 오 랜턴의 꼭두각시였다. 아크 비숍이 사용하는 보조 스킬은 모두 잭 오 랜턴에게 추가적인 버프 효과를 부여할 것으로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아크 비숍의 버프는 여전히 파티 중인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에게 효과를 부여했다.

(올 스텟이 감소하였습니다.)

(이동속도, 공속, 회피가 감소하였습니다.)

(LUK이 감소하였습니다.)

(공격력이 감소하였습니다.)

(마나의 회복속도가 감소하였습니다.)

“디 버프?”

[무지개 요정 : 디 버프?!]

[광인한 남자 : 디 버프?]

[도련 : 디 벞?!]

[질풍 : 디 버프???]

[KING Husband : 디 벞???]

공격보다 더 무서운 디 버프였다.

자신의 캐릭터가 스스로 버프를 돌리는 모습에 율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더 황당한 건 자신에게 부여되는 버프는 정상인데, 파티원에게 부여되는 버프는, 전부 디 버프라는 사실이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보고, 키보드를 마구 두드려 봐도 자신의 제어가 들지 않았다. 거기다 여러 번 엔터를 쳐봤지만, 채팅창도 활성화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율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화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버프를 모두 돌린 아크 비숍은 자신의 옆에 소환되어 온 잭 오 랜턴에게 힐을 마구 퍼부어 넣기 시작했다.

(아나토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시언이 스킬을 사용해 아크 비숍에게 접근했다.

(파토스)

연이어 연계기를 사용했지만, 아크 비숍은 어느새 자신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었다. 잭 오 랜턴과 똑같은 움직임. 아크 비숍 또한, O자 다리를 한 채 뿅뿅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

방정맞아 보이기까지 하는 그 움직임에 시언은 말을 잃었다. 알아서 잭 오 랜턴의 곁에서 벗어나는 아크 비숍을 따라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우르르 따라나섰지만, 문제는 이동속도 감소가 되어있는 터라 아크 비숍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거였다.

아크 비숍은 팀원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여유롭게 잭 오 랜턴의 주위를 돌며 유저들에게 1회 공격의 2배 데미지를 받는 옵타티오 스킬을 걸었고, 잭 오 랜턴에게는 힐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런 아크 비숍의 뒤를 느려터진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엉금엉금 따라가고 있었다.

“프리분들 레인보우 힐 길드원분들한테 퀵스텝 좀 걸어주세요.”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의 행동을 눈치챈 리딩자가 팀 내의 프리스트들에게 지시를 내렸지만, 프리스트들이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시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 비숍 스킬 위에 일반 프리들 스킬은 덧씌워지지 않습니다….”

“헐….”

[팀] [보야보아 : 와... 존심상해 ㅠㅠㅠㅠ]

[팀] [환타 : 이 상대적 박탈감은 뭐지?ㅠㅠ]

[팀] [오로나민C : 넘사벽이네...]

[팀] [국민은행 : .....]

“그럼… 저 아크 비숍을 어쩌죠… 이대로 두다간 우리가 아무리 공격해도 잭 오 랜턴 피를 몽땅 채워 넣을 것 같은데….”

“우선, 누가 발 좀 묶어주세요. 더럽게 발발거리네요….”

“발발….”

주고받는 대화 속, 왠지 짜증이 배인 시언의 말에 리딩자는 발발거린다는 아크 비숍을 바라봤다. O자 다리를 한 채, 잭 오 랜턴 주위를 뿅뿅거리며 뛰어다니는 아크 비숍은 정말 발발거린다는 표현이 제격이었다.

“그럼 제가 어스 체인 써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어스체인)

리딩자가 시전 한 어스 체인은 아크 비숍에게 직격했다. 땅에서 솟아 나온 수많은 사슬이 아크 비숍의 발을 옭아매 움직임을 막았다. 동시에 시언의 캐릭터 주위로 만피와 같은 양의 힐과 수많은 아크 비숍의 스킬 이펙트가 연달아 떠올랐다.

시언은 율이 만들어 줬던 3개의 만나 중 한 개를 사용했다. 솔직히 절반은 도박이었다. 만나는 아크 비숍이 만들어 줬던 것이고, 지금 아크 비숍은 잭 오 랜턴의 꼭두각시가 되어있다. 그가 걸어준 버프는 전부 디 버프가 되어있고 말이다.

그래서 만나를 사용하며 걸리는 버프까지도 디 버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똑같이 디 버프여도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건 없다고 생각했기에 망설임 없이 만나를 사용했다.

하지만 만나를 사용하며 체력이 회복되고, 아크 비숍이 걸어놓았던 디 버프 위에 율의 버프가 덧씌워지며 능력치가 향상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낮게 흘리는 웃음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져 나오고, 시언은 그대로 아크 비숍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디플로스)

검으로 내리친 지면에 균열이 생기며 그대로 전방을 향해 비틀린 균열이 뻗어 나갔다. 그리고는 아크 비숍이 서 있는 주변으로 타격을 가했고, 그 덕에 균형이 무너진 아크 비숍이 바닥으로 넘어지며 다운이 됐다.

(아나토메)

연이어 거리를 좁히는 돌진 스킬을 사용한 시언이 지척에 다가오자,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 아크 비숍이 배리어인 인 라피뎀 스킬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했다.

(디스펠)

동시에 뒤쫓아 온 무지개 요정의 스킬이 아크 비숍에게 직격하고, 방어는 물론 버프 상태까지 몽땅 벗겨져 나갔다. 하지만 버프와 방어 스킬이 벗겨졌다고 해도 율은 두르고 있는 장비만으로도 상당한 디펜스를 자랑하고 있는 상태였다.

히든 클래스 퓨리나이트인 시언과 무서운 공격력을 자랑하는 앙그르보다의 지팡이를 든 무지개 요정, 두 사람의 공격도 그다지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힌들라의 시)

하지만 지척에 다가온 KING Husband가 연주하는 스킬로 순식간에 아크 비숍의 디펜스가 녹아내리며 무시무시한 데미지들이 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방어도 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열심히 힐만 넣고 있던 아크 비숍은 자신의 발을 묶던 어스체인이 풀리자마자 후방 이동으로 도망쳐, 그들의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나르케)

하지만 무지개 요정의 디스펠 덕분에 이동속도가 감소한 탓에 금세 자신을 따라잡은 시언의 스킬로 다시 한번 이동 불가 상태가 되었다. 급소를 찔러 상대방을 공격하는 시언의 스킬은 마비라는 상태 이상을 걸어버리기 때문에 아크 비숍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힐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폭딜을 넣으려던 순간, 아크 비숍의 위험을 감지하기라도 한 건지 먼 곳에 있던 잭 오 랜턴이 아크 비숍을 향해 점프를 해왔다. 그런 잭 오 랜턴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충격에 밀려 나가떨어졌다.

그사이, 마비에서 풀려난 아크 비숍이 자신에게 힐을 하며 체력을 채워 넣고는 잭 오 랜턴 주위를 또다시 뿅뿅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런 잭 오 랜턴과 아크 비숍의 주위로 다른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공격을 시작했고, 나가떨어져 있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무지개 요정 : ......짜증난다..]

[질풍 : ㅇㅇ]

[도련 : 진짜..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죽여 버리고 싶다..]

[광인한 남자 : 인내심의 한계가 오고 있음]

[KING Husband : 레알..개 얄미움..]

[노아 : 그냥 한방으로 죽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질풍 : 못 죽이지 않나..?]

[노아 :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KING Husband : 다른 팀원들이 발 묶고 힌들라 써주고 내가 길마님한테 마리오 써준 다음 길마님이 콰트로 날리는 건?]

[노아 : 디펜 위주 장비라 그렇게 해도 죽을지 안 죽을지...]

[무지개 요정 : 대체 장비가 얼마나 좋은 거야?!]

[노아 : 무기랑 투구에서 마공은 충분히 채워서..나머지 장비는 죄다 방어 위주로 맞춰줬거든요..레어 급 이상으로다가만..]

[무지개 요정 : 네놈 짓이냐..]

[노아 : ....]

[도련 : 그냥 다 같이 궁 날려버리는 건 어때요?]

[광인한 남자 : 오?! 그렇게 좋은 방법이?]

[질풍 : 오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무지개 요정 : 그럼 발 묶고 힌들라 해서 다 같이 궁 날리자]

[노아 : 네 좋은 방법 같아요]

[KING Husband : 근데]

“레인보우 힐 길드원분들~ 산통 깨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꼭두각시한테는 궁이 안 통합니다….”

[KING Husband : 꼭두각시한테는 궁 안 통하는...]

[KING Husband : 그러하다]

[무지개 요정 : 염병...]

[질풍 : 옌병...]

[광인한 남자 : ...]

[도련 : 어떻게 잡으라는 거여...]

“보통 꼭두각시를 잡기가 이렇게 까다로운 적이 없었던지라 저도 좀 당황스럽네요.”

아크 비숍 공략이 잭 오 랜턴 공략보다 더 고된 것 같다고 덧붙이며 헛웃음을 터트리는 리딩자를 따라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럼… 잭 오 랜턴의 궁은 어떨까요?”

“네?”

하지만 그중에 불쑥 끼어 들어온 시언의 질문에 리딩자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잭 오 랜턴의 궁을 반사해서 아크 비숍한테 맞추는 건 먹힐까요?”

“잉? 그런 스킬이 있어요?”

“네.”

“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인데….”

“가능성 있을까요?”

“밑져야 본전인데요, 해보죠.”

[팀] [무지개 요정 : 근데 잭 오 랜턴이 궁을 언제 써줄지가..]

“아, 2페이즈 잭 오 랜턴은 다운시키면 일어나면서 주변에 정말 큰 광역기를 시전하거든요? 그게 궁이라고 보시면 돼요. 보통 한 방만 맞아도 어질계는 한 큐에 죽어버리고, 극 바탈에 레어급 이상으로 장비 처바른 사람들만 간당간당하게 살아남기 때문에 잭 오 랜턴 공략에 다운은 금기거든요.”

“그럼 다운 넣고 반사하면 되겠네요.”

“근데, 노아님 그거 맞고 괜찮으실지….”

“모르죠, 뭐… 다른 분들은 범위에서 나가 주시고, 아크 비숍한테 어스 체인이랑 힌들라 부탁드려요.”

“네.”

[팀] [KING Husband : ㅇㅇ]

[팀] [무지개 요정 : 우선 잭 오 랜턴한테서 아크 비숍 떼어낼게요]

말과 함께 무지개 요정의 공격이 아크 비숍에게 직격했다. 그리고 후방 이동으로 거리를 벌리는 무지개 요정을 따라 잭 오 랜턴의 곁에서 아크 비숍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웬만큼 잭 오 랜턴과 거리가 벌어진 아크 비숍에게 리딩자의 어스 체인이 직격하고, 아크 비숍은 발이 묶인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멀리서 아크 비숍의 발이 묶이기를 기다렸던 시언은 그대로 잭 오 랜턴에게 다운 기술인 디플로스를 사용했다.

지면이 갈라지고 비틀린 균열이 뻗어 나가며 잭 오 랜턴에게 직격했고, 균형이 무너진 잭 오 랜턴이 그대로 넘어지며 다운이 됐다.

여전히 O자 자리를 유지한 채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발라당 나자빠진 잭 오 랜턴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허공에 뜬 다리를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노아 님 준비하세요. 광역기 옵니다.”

그리고 예고하듯 들려온 리딩자의 말에 시언은 차례차례 스킬들을 사용했다.

(뒤나미스)

(엑소시아)

무기의 공격력을 상승시키는 스킬과 함께 자신이 받은 데미지를 증폭시켜 되돌려주는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허공에 허우적거리던 잭 오 랜턴의 다리가 그대로 지면을 향해 내리쳐졌다.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그 충격으로 퍼지는 공기의 흐름이 이펙트가 되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물결치듯 너울너울 퍼지는 흰 파도 같은 이펙트가 여유롭게 시언을 통과했지만, 시언은 연속으로 휘몰아치는 데미지를 온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모두의 시선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잭 오 랜턴의 광역기가 끝난 뒤, 시언은 축적된 데미지를 증폭시켜 그대로 발이 묶여 있는 아크 비숍에게 되돌려 보냈고, 힌들라의 시로 디펜스를 녹여 놓은 아크 비숍은 시언이 되돌려 보낸 잭 오 랜턴의 궁극기에 맞아 체력이 0이 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SYSTEM] [잭 오 랜턴의 꼭두각시를 쓰러뜨렸습니다. 잭 오 랜턴의 패턴이 초기화됩니다.]

“패턴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이제 제물 패턴은 없어졌으니, 잭 오 랜턴 공략은 지금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해주세요. 탱은 처음처럼 노아님이 봐주시면 되고요, 격수분들 들어가신 후에 프리분들은 율님 살려주시면 됩니다.”

아크 비숍이 죽고, 패턴이 초기화되며 피를 회복하고 중앙으로 되돌아간 잭 오 랜턴을 피해 다시 보스 방의 가장자리로 물러난 팀원들은 O자 다리로 중앙에서 깡충깡충 뛰고 있는 잭 오 랜턴을 바라보며 리딩자의 말을 경청했다.

[팀] [무지개 요정 : 패턴에 큰 변화는 없나요?]

“네~ 똑같습니다. 다만, 2페이즈에서 제물을 부리는 게 아니라 주변의 장난감 병정들을 부릴 거예요.”

[팀] [질풍 : 뚜까패?!]

“네~ 뚜까 패 주시면 됩니다.”

“노아님 준비되시면 바로 들어가 주세요.”

“1페이즈 했던 것처럼 끌어내서 무빙하겠습니다.”

“넵.”

리딩자와 시언의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 팀의 프리스트들은 부랴부랴 자신의 파티원들에게 버프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 팀원들의 행동에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잭 오 랜턴의 근처에 죽어 있는 자신들의 유일한 프리스트의 버프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어글 먹으면 바로 아크 비숍 리저 부탁드려요.”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튀어 나간 시언의 스킬이 잭 오 랜턴에게 직격했다. 시언의 공격과 동시에 어글자가 결정되고, 시언에게 공격을 시작하는 잭 오 랜턴을 지켜보던 팀원들이 일제히 잭 오 랜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사이에 끼어 달려온 몇몇의 프리스트들이 율에게 리저렉션을 사용했고,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둥실 떠올라 땅에 발을 디딘 율은 곧바로 후방 이동으로 잭 오 랜턴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후방 이동을 하는 율의 양옆으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스치듯 달려나갔다. 모두의 머리 위엔 율의 귀환을 환영하는 말을 대신하는 길드의 엠블럼이 새겨진 깃발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베네딕티오)

(베네피치움)

(스페스)

(아우덴티아)

(클레멘티스)

(비아트리스)

(인 라피뎀)

버프를 받지 못해 남들보다 느리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의 캐릭터 주변으로 수많은 스킬 이펙트가 떠올랐다. 무시무시하게 향상되는 능력치들과 함께 모두의 이동속도가 빨라졌다.

(오라티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언에게만 걸 수 있는 체력 지속회복 스킬을 건 율은 곧바로 콘템플라티오 스킬을 사용했다. 두 손을 맞잡고 무릎을 꿇고 앉아 명상을 시작하는 율의 왼쪽으로 루아흐가 소환되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율이 불러낸 프뉴마가 율의 오른쪽에 서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

그리고 맞잡았던 손을 앞으로 뻗으며 루아흐, 프뉴마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율의 노랫소리가 보스 방을 가득 메우며 울려 퍼졌다. 두 성령과 함께 노래하는 율의 노랫소리는 음률을 진동과 같은 이펙트로 한없이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파티원 모두의 주변으로 빛의 조각들이 배리어처럼 둘러졌다.

“와….”

율이 사용하는 스페라무스 효과를 등에 업은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무섭게 폭딜을 시작했다. 그리고 스킬의 효과를 증명하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잭 오 랜턴의 피가 깎여 나가고 있었다. 왠지, 빛의 조각들을 배리어처럼 두른 그들 모두 범접할 수 없는 별세계의 사람들인 것만 같아서 지켜보던 리딩자의 입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리딩자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감탄은 비단 그 혼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율의 인 데오 스페라무스 스킬에 대한 효능은 타나 섭에 거주 중인 유저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스킬을 동영상이 아닌 실제로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히든 클래스 아크 비숍이라는 건, 타나 섭을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진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의 궁극기와 히든 스킬에 잭 오 랜턴은 금세 1페이즈를 넘기고, 2페이즈에 돌입을 했다.

스페라무스를 쓰느라 홀로 후방에 있던 율을 빼고, 중앙에 자리 잡고 있던 원거리와 프리스트들이 부랴부랴 중앙을 비우고 달려 나왔다. 동시에 스페라무스 스킬이 끝난 율도 몸을 일으키고 마나를 회복하는 스킬을 사용했다. 그사이, 중앙으로 되돌아간 잭 오 랜턴은 지휘봉을 꺼내 들어 허공에 손짓을 시작했다.

“병정들 옵니다. 병정들은 딱히 공격을 가하진 않지만, 닿으면 튕겨 나가며 다운이 되니 병정들한테는 닿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자칫 잘못되면 연속으로 당구공처럼 튕겨 나갑니다. 하지만 프리의 프로텍트로 방어가 되니 프리분들은 파티원들 프로텍트 안 풀리게 유지해주세요.”

리딩자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던 율은 방의 가장자리를 줄 맞춰 걸어 다니던 병정들이 방향을 바꿔 중앙 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았다. 일렬로 발맞춰 걸어오는 병정들에 한 번 잘못 닿기라도 하면 정말 리딩자의 말처럼 당구공처럼 연속으로 튕겨 나갈 것 같았다.

(인 라피뎀)

사방에서 중앙으로 줄줄이 모여드는 병정들을 바라보던 율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동시에 파티원 전원의 주변에 녹색의 벌집 같은 배리어가 둘러싸였다.

스킬을 사용한 율은 병정들을 피해 보스 주변을 무빙하며 끊임없이 옵타티오 스킬을 걸었다. 1회 공격의 2배 데미지를 입히는 옵타티오 효과 덕분에 빠르게 빠지는 듯했던 잭 오 랜턴의 체력이 어느 순간부터 정체된 듯 빠른 변화를 보이지 않게 됐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옵타티오를 걸고, 파티원들을 보조하던 율은 의아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아….”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팀원들의 3할이 병정들에 부딪혀 이리저리 튕겨 다니고 있었다.

전체 스킬을 사용하는 자신과 달리, 딜에 집중하는 격수들에게 일일이 프로텍트를 걸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딱히 도와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빨리 2페이즈를 넘기는 것뿐.

그렇게 생각한 건 비단 율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딜에 집중하면서도 주변 상황을 살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겹쳐, 자신의 파티원을 제외한 모두는 제대로 된 딜을 넣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딜로스로 1페이즈 때와는 현저하게 다른 속도로 2페이즈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3페이즈에 돌입하며 병정들은 대기하듯 방의 가장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잭 오 랜턴은 목에서 폭죽이 터지는 이펙트와 함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팀] [무지개 요정 : ...]

[팀] [질풍 : 저게 뭐람...]

“몸통 쪽은 무시하셔도 됩니다. 문제는 머리인데요, 저 머리가 곧 보스 방 구석구석을 굴러다닐 겁니다. 절대 공격을 하시면 안 돼요.”

[팀] [도련 : ?]

“머리가 굴러다니기 시작하면 병정들이 저희를 타깃 삼고 움직일 거예요. 타깃팅 당한 분들은 병정들 운전해서 저 머리통에 부딪히게 해줘야 합니다.”

“머리가 병정에 부딪힐 때마다 남은 체력이 큰 폭으로 깎여 나가니 타깃팅 당하신 분들은 운전에 유념해 주세요.”

리딩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잭 오 랜턴의 머리가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팀원 중 몇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타깃팅을 당한 유저들인 듯했다.

3페이즈는 너무나 여유롭고, 너무나 평화롭게 지나갔다. 단 한 명의 실수도 없이 타깃팅 당한 유저들이 병정을 운전해 잭 오 랜턴의 머리에 부딪히게 했고,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잭 오 랜턴의 머리는 남아 있던 체력을 모두 소모하고,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수고하셨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잭 오 랜턴의 머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팀원들은 공략의 끝을 알리는 리딩자의 인사에 긴장을 풀고 다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나저나, 보스보다 제물 잡기가 어려웠던 건 처음이었네요.”

달아오르는 분위기 속에 리딩자의 웃음기 배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수긍하는 말들과 채팅이 난무했다.

[팀] [율 : 죄송해요ㅠㅠㅠ]

[팀] [보야보아 : 아니에요 ㅋㅋㅋㅋ 솔직히 보스공략은 어려워야 재밌잖아욬ㅋㅋㅋ]

[팀] [오로나민C : 그런 것보다 율님 장비랑 직업이 넘나 부럽네요ㅠㅠㅠ]

[팀] [질풍 : 잘 키운 막내 하나 열 넴드 안 부럽다]

[팀] [티라미수 : 앜ㅋㅋㅋㅋ놀리시는 거예요?!]

[팀] [광인한 남자 : 자랑하는 검다]

[팀] [빈츠 : 열 넴드 안 부러운 막내님이 있는 레인보우 힐에 가고 싶네요...]

[팀] [무지개 요정 : 무지개 요정이 살고 있는 무지개 언덕으로 오셔요~]

[팀] [KING Husband : 하지마욬ㅋㅋㅋㅋㅋ때와 장소는 가리라고욬ㅋㅋ]

[팀] [도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노아 : 리딩해주신 분도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ㅋㅋㅋㅋ]

[팀] [아타락시아 : ㅠ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

[팀] [아타락시아 : 그래도 뭔가 두 분에 의한 변수가 생긴 것 같아섴ㅋㅋㅋㅋ색다르고 재밌었어요 ㅋㅋ]

[팀] [율 : ㅠㅠㅠㅠ]

[팀]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KING Husband : 그나저나 이제 겨우 3번째 방인데 왜 파티가 5개밖에 안 모인 걸까요?]

[팀] [아타락시아 : 그러게요 저도 깜짝 놀랐네요 평소의 절반밖에 안 돼서]

[팀] [아타락시아 : 아마도 전멸한 파티가 생각보다 많았나 봐요]

[팀] [아타락시아 : 이대로 가다간 던전 후반으로 가기도 전에 단일 파티로 보스공략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팀] [KING Husband : 그렇게 까지요...?]

[팀] [아타락시아 :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ㅋㅋㅋ]

[팀] [아타락시아 : 아무튼 이번 오즈 탐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네요 ㅋㅋ]

[SYSTEM] [파티별 기여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SYSTEM] [잭 오 랜턴 공략의 성공으로 안전 지역이 오픈됩니다.]

잭 오 랜턴 공략에 성공하고 오픈된 안전 지역으로 이동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생각보다 피로한 심신을 달래며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광인한 남자 : 와... 해 뜨겠네]

[도련 : 눈꺼풀이 막 감긴다...]

[질풍 : 헛! 난 괜찮은데!!]

[KING Husband : 젊어서 좋겠다..]

[노아 : 율이는 안 피곤해?]

[율 : 아까 너무 놀라서...]

[질풍 : 잠 다 깼구나 ㅋㅋㅋㅋㅋ]

[율 : ㅠㅠㅠㅠ]

[노아 : 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아무래도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는 게 나을 것 같다..]

[도련 : 찬성!!!]

[무지개 요정 : 마을에 앉아서 수다만 떨 때는 하룻밤 새는 것쯤이야 끄떡도 없었는데..계속 던전 공략으로 움직이다 보니까 피로 쌓이는 게 장난이 아니네..]

[KING Husband : 게다가 지금 던전 상황이 되게 안 좋은 것 같아요]

[KING Husband : 이대로 가다간 4~5번째 보스에서는 단일 파티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무지개 요정 : 오즈에 보스 방이 총 몇 개지?]

[KING Husband : 아마도...10~13개쯤?]

[광인한 남자 : ....]

[무지개 요정 : 난리구만...]

[무지개 요정 : 아무튼...이대로 계속 진행하다간 우리 졸다가 전멸할지도 모르겠다]

[노아 : 캠핑키트 필까요?]

[무지개 요정 : ㅇㅇ]

[무지개 요정 : 푹 쉬고 8시간 후에 보자]

무지개 요정의 말을 끝으로 하나둘씩 게임을 종료시켰고, 율도 게임을 끄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몇 시간을 앉아만 있었던 탓에 허리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율은 기지개를 켜며 굳어 있던 몸을 풀고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묻었다. 조용한 방안에 누워 창밖으로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금세 졸음이 몰려들었다.

***

까무룩 잠겨있던 정신에 잡음이 섞여들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한 소음은 점점 크게 들려왔고, 여전히 수면 속에 잠겨 있던 정신이 계속되는 소음에 억지로 끌려 나오며 그게 자신의 핸드폰 벨 소리라는 걸 깨닫게 했다.

“으….”

짓눌리는 것 같은 피로감 속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 율은 손을 더듬어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곧 베개 옆에 두었던 핸드폰이 손에 잡혔고, 비몽사몽 중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네.”

「...율아?」

“…….”

「… 율아?」

그리고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노아님!”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놀란 듯 자신을 불러주는 율의 반응에 시언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율은 무의식중에 종종 자신을 노아님이라고 불렀다. 전에 한번 침대에 그를 끌어들여 노아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던 후로,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시언 형, 노아 형, 시언님 등등을 입에 담았지만, 시언은 이후로 그 점에 대해 딱히 바로잡아 주려 하진 않았다.

그가 자신의 호칭에 애를 먹고 있는 게 보여서. 게임에서는 노아라는 아이디가 보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노아 형이라고 불러주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래도 선뜻 이름을 부르기엔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라고 불러주든 결국 그가 부르는 건 자신이니까, 조급해하지 않고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잘 잤어?」

“어… 네.”

「그런데 슬슬 접속해줘야 할 것 같은데….」

“네?”

「브레이크 타임이 20분밖에 안 남았어.」

“…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시언의 말에 율은 불에 댄 듯 놀라며 시계를 확인했다. 자신이 게임을 끈 게 5시. 그리고 지금은 12시 40분.

“으악!”

절로 튀어나오는 볼썽사나운 비명과 함께 구르듯이 침대에서 내려온 율은 서둘러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아직 여유 있으니까, 너무 서두르진 말고.」

“죄송해요.”

「괜찮아.」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율의 말에 전화기 너머에선 낮은 웃음소리만이 흐를 뿐이었다.

[컴패니언 율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원 율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율 : ㅠㅠㅠㅠㅠㅠ]

[노아 : 왔어? ㅋㅋㅋㅋ]

[율 : 늦어서 죄송해요 ㅠㅠㅠㅠㅠㅠ]

[무지개 요정 : 오구 우리 막내 피곤해 쪄요? 더 자고 싶었쪄요?]

[율 : ㅠㅠ]

[질풍 : 나도 더 자고 싶었쪄여!!]

[무지개 요정 : ㄲㅈ]

[질풍 : ...]

[노아 : 미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야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KING Husband : 뭐 하냐 질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련 : 온도차 어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던전 공략에 나선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그날따라 묘하게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은 길드원들이 순번을 정해놓은 것처럼 사이좋게 돌아가면서 전투 불능이 되는가 하면, 길을 잘못 선택해 3시간 동안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으며, 어이없는 함정에 걸려 시언을 제외한 모든 파티원이 전투 불능에 빠지기도 했다. 더욱 조마조마했던 건 시언조차 체력게이지가 붉게 물든 위험한 상태였었다는 거다.

[무지개 요정 : 미친 아주....전멸할 뻔했네..]

[KING Husband : 3일 동안의 행보가 도루묵이 될 뻔했네요..]

[질풍 : 진짜 간담이 서늘했다..]

[도련 : 뭔가 오늘은 되게 안 풀리는 느낌인데요..]

[노아 : 액땜했다고 생각해야 할 듯]

[율 : 액땜..]

[광인한 남자 : 액땜을 몇 번을 한 거야..?]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던 일들을 생각하며 보스 방 앞에 도달한 그들은 장치를 활성화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노아 : 그나저나 이번 보스 방에선 몇 명이나 모일까요?]

[무지개 요정 : 으음.....두 번째랑 세 번째랑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KING Husband : 어차피 네 번째 방까지는 타임어택이 없어서 괜찮아요]

[KING Husband : 다섯 번째 방부터 타임어택이 있어서 문제지..]

[질풍 : ㅠㅠㅠㅠㅠ]

[KING Husband : 보통 다섯 번째 방에서 4~5개 파티가 모여야 하는 건데..]

[도련 : 딜 로스로 끔살 당하게 생겼네]

[율 : 제가 딜을 못 넣어서... 죄송해요ㅠㅠ]

[무지개 요정 : 응?!]

[노아 : 무슨 소리야? 네 버프가 세 사람 몫은 하는데]

[도련 : 인정ㅋㅋㅋㅋㅋ 세 사람 몫이 뭐야 ㅋㅋㅋ스페라무스 써주면 열사람 몫도 채우겠구만ㅋㅋㅋ]

[질풍 : 맞앜ㅋㅋㅋㅋㅋ 스페라무스 킹왕짱]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 알림 글과 함께 보스 방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잔뜩 얼어붙어 냉기를 뿜어낼 것 같은 커다란 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육중한 문이 바닥을 끄는 소리와 함께 문 사이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 조각들이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광활할 정도로 너른 보스 방은 살을 에는 냉기를 뿜으며 온통 얼어붙어 있었다. 천장엔 종유석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거대한 고드름들이 가득 매달려 있었고, 벽면과 바닥 모두 쏟아져 내리는 물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 같은 모양새로 거칠게 자리하고 있었다.

방의 중앙을 조금 벗어난 곳에는 거대한 끈끈이 버섯이라는 식물이 빙 둘려 띄엄띄엄 자라나 있었는데, 몬스터는 아닌 모양인지 타깃팅이 되진 않았다.

그리고 보스 방의 중앙엔 거대한 빙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빙산이 보스인 듯했다.

[제로사이드 : 어? 형]

그리고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다가오는 한 유저의 익숙한 아이디를 보며 다들 반색을 표했다.

[질풍 : 오! 제로 님이다!]

[도련 : 와 또 만나네요 ㅋㅋㅋ]

[율 : 안녕하세요]

[광인한 남자 : 오오!! 왠지 든든하다!]

[노아 : 또 만나네 ㅋㅋㅋㅋ]

[KING Husband : 제로님 방가!]

[무지개 요정 : 으엑..]

유일하게 무지개 요정을 제외하고.

[제로사이드 : 으엑이라니..]

[꽃잔 : 안녕 하세요~]

[율 : 꽃잔님도 안녕하세요]

[꽃잔 : 안녕하세요 율님ㅋㅋㅋㅋ 오즈는 어떠셨어요?]

[율 : 아 ㅠㅠㅠ 어려웠어요..]

[질풍 : 우리가 더 어려웠어...]

[광인한 남자 : 맞아..보스보다 더 잡기 어려웠어..]

[꽃잔 : 네?]

[제로사이드 : ??]

[노아 : ㅋㅋㅋㅋ 세 번째 방에서 잭 오 랜턴을 만났는데 율이가 제물이 돼섴ㅋㅋ ㅋㅋㅋ]

[꽃잔 : 아 진짜?]

[제로사이드 : 아크 비숍은 공격 못 하니까 오히려 잡기 수월하지 않나?]

[도련 : 저희한테 디 버프 걸던데요..]

[제로사이드 : 엑?!]

[꽃잔 : 앜ㅋㅋㅋㅋㅋㅋ]

[노아 : 게다가 어찌나 발발거리고 돌아다니던지..]

[질풍 : 우리한테 이감 걸어놔서 따라잡지도 못하겠고..]

[광인한 남자 : 진짜 겨우 잡았어요..]

[제로사이드 : 와...공격을 못 해도 괜히 히든 클래스가 아닌가 보네 ㅋㅋㅋ]

[KING Husband : 후후후...우리막내가 이렇게 대단합니다]

[질풍 : 후후후...]

[광인한 남자 : 후후..]

[율 : ;]

금요일 날 만나고, 일요일 날 다시 만난 거니 그렇게 오래 보지 못한 것도 아닌데, 서로가 겪어온 일들이 다사다난했던지라 상당히 오랜만에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파티 분들은 서로 아는 사이신가 봐요?”

그런 그들 사이로 단정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끼어 들어왔다. 네 번째 보스 방엔 무지개 요정의 파티와 제로사이드의 파티 외에 하나의 파티가 더 있었는데, 아마도 그 파티의 누군가인 듯했다.

[제로사이드 : 아 네 그쪽 분들도 잘 부탁드려요]

[무지개 요정 :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유명한 분들이랑 팀 짜게 돼서 오히려 행운이네요.”

여자는 말 중간중간에 웃음소리를 흘렸다. 단정한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온화하게 퍼졌다. 다들 그녀의 목소리가 정말 듣기 좋은 음색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방에서 정말 지독했거든요… 어휴.”

[제로사이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서치 되는 것도 오즈공략에 큰 몫을 하죠]

“뼈저리게 느낍니다….”

[무지개 요정 : 그런데 저희는 거의 초행이라 서요…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제로사이드 : 겸손하시네요 ㅋㅋㅋㅋ]

“겸손하시….”

[무지개 요정 : ;]

“흠흠… 저, 리딩은 제로님이 해주시나요?”

[제로사이드 : 딱히 제가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 원하시는 분 계시면 하셔도 됩니다]

“아뇨, 아뇨… 부디 제로님이 해주세요….”

[제로사이드 : 그럼 그럴게요ㅋㅋㅋ]

[제로사이드 : 그럼...지금 팀이 된 파티가 저희가 다인 것 같은데, 형네 파티랑..그...저...]

[제로사이드 : 여성분....파티...가..]

말을 써 내려가던 제로사이드는 문득 그녀의 아이디를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제로의 당혹스러움을 읽었는지, 말 대신 빠르게 채팅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욕정벌레 : 접니다]

라고 욕정벌레가 말했다. 그리고 모두는 그녀의 아이디를 보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외쳤다.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저거!

[제로사이드 : ....]

[무지개 요정 : ....]

“…왜요?”

[제로사이드 : 아뇨...]

[무지개 요정 : 아뇨...]

“…?”

짧은 침묵이 일고, 지잉- 하는 귀 울림과 함께 침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여기 나오는 보스는 설인입니다. 1페이즈에서의 설인은 냉기 보호라는 걸로 본인을 보호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데미지가 먹히지 않아요. 설인은 랜덤으로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고 붙잡아 쥘 텐데요, 그럼 주변 버섯에서 끈끈이 진액을 채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설인이 잡은 유저를 공중에 던질 때, 우리도 끈끈이 진액을 유저에게 던져야 합니다. 그럼 유저는 공중에 묶여서 한동안 내려오지 못하는데, 설인은 그 유저를 쳐다보느라 멍하니 위만 올려다보게 됩니다. 그때만 데미지가 먹혀요.”

“프리분들이 버섯 근처에 계시다가 버섯 활성화되면 진액 채집해서 던져주시면 됩니다. 순번이 꼬이지 않게 프리분들께서 순서 정해주시고요. 참, 율님. 1페이즈에서는 딜 사이클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으니까, 스페라무스는 2페이즈에서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율 : 네 알겠습니다]

“그럼, 탱은 노아가 보도록 하고, 팀 정비 되는 대로 들어가죠.”

제로의 말을 끝으로 3개의 파티는 각각 버프를 돌리기 시작했다. 대상 지정 스킬을 쓰는 하프들보다 전체 스킬을 사용하는 율은 순식간에 파티원 전부에게 풀 버프를 걸어주었고 다른 파티들의 정비가 끝나는 걸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팀원 모두의 준비가 끝나자, 시언이 중앙의 빙산을 향해 달렸고, 인식 범위에 들어서자 빙산이 산산조각이 나며 그 안에서 온통 흰색 털로 뒤덮인 거대한 설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언이 설인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대기 중이던 격수들이 산발적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고, 프리스트들은 각자 끈끈이 버섯의 옆으로 이동을 했다.

팀의 프리들은 율, 꽃잔, 아이해브노아이디어 총 3명. 그들은 아이해브노아이디어, 꽃잔, 율 순으로 끈끈이 진액을 채집하기로 했다.

맹공을 퍼부어도 체력이 전혀 줄지 않는 설인 덕에 공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주변을 설렁설렁 무빙하던 팀원 중 한 명이 덮쳐오는 설인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설인에게 단 한방을 얻어맞은 유저는 그대로 전투 불능에 빠졌다.

[팀] [레이몬드현식 : 헐...]

“어?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냉기 보호 중인 설인에겐 한 방만 맞으면 바로 골로 갑니다.”

갑작스러운 유저의 전투 불능 상태에 얼이 빠져 있던 팀원들은 연이어 들려오는 제로의 말에 다들 기겁을 했다. 그리고 정말 영혼을 갈아 넣은 방어와 저항을 시작했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팀원들의 무빙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듯한 설인은 제 가슴을 마구 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제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낚아채기 옵니다. 잡히면 프리분은 바로 진액 채취해 주세요.”

제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설인은 손을 휘둘렀고, 곧 누군가가 설인의 손에 잡혀 들려졌다.

[욕정벌레 : 야메떼~]

라고 설인의 손에 잡힌 욕정벌레가 말했다.

“…큽.”

“…풉.”

생각지도 못한 이의 생각지도 못한 대사에 마이크를 통한 두 남자의 짧은 침묵과 억눌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상황에 여유도 없이 공중으로 내던져진 욕정벌레의 모습에 모두 숨을 죽였다. 동시에 어디선가 날아든 끈끈이 진액이 거미줄처럼 퍼지며 욕정벌레의 몸을 옭아매고 천장에 매달린 고드름에 들러붙었다.

정말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매달린 욕정벌레의 모습에 설인이 고개를 들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딜 들어갑니다!”

그런 설인의 행동에 아직 웃음기를 머금은 제로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너 나 할 것 없이 공격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맹공격이 먹히는 것도 잠시, 금세 공격이 통하지 않게 된 설인은 팀원들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시작했고, 팀원들은 혼비백산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그러다 또다시 자신의 가슴을 마구 쳐대기 시작하는 설인의 모습에 다들 무빙을 멈추고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휘두르는 설인의 팔에 누군가가 낚아채졌다.

[욕정벌레 : 브라더 다메요!]

라고 또다시 설인의 손에 잡힌 욕정벌레가 말했다.

[팀] [질풍 : 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광인한 남자 : 왜 또 저 님이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꽃잔 : 목소리랑 채팅이랑 매치가 안 돼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STARBABS : 그런 것 좀 하지 마ㅠㅠㅠㅠㅠ]

[팀] [레이몬드현식 : 왜 구래 진짜 ㅠㅠㅠㅠ]

[팀] [아이해브노아이디어 : 창피함은 우리 몫이라고 ㅠㅠㅠ]

단정하고 부드럽던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아이디를 가진 욕정벌레의 어울리지 않는 행동에 팀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녀의 파티원들은 칠색 팔색을 하며 그녀를 말리기 바빴다. 하지만 웃고 떠드는 팀원들 사이에서 율은 서둘러 버섯의 진액을 채취했다. 그리고 공중으로 내던져지는 욕정벌레를 향해 진액을 던졌다.

진액이 거미줄처럼 퍼지며 고드름과 그녀를 하나로 옭아맸고, 그런 욕정벌레의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설인에게 팀원들은 또다시 맹공을 쏟아부었다.

짧은 공격 시간이 지나고, 다시 냉기 보호 상태가 된 설인은 여전히 무자비한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설인의 일정한 행동 패턴에 팀원들은 익숙한 듯 방어와 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방어와 저항에도 한계가 있는 법. 스킬 쿨이 돌아오지 않거나, 한순간의 실수로 죽어 나가는 팀원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프리스트들은 바쁘게 자신의 파티원들을 살리러 다녔고, 조금씩이지만 형태가 무너져 가는 팀의 모습에 제로사이드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욕정벌레 : 모 야메룽다!]

라고 욕정벌레가 말했다.

[팀] [KING Husband : 저 사람 똨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도련 : 왜 자꾸 저분만 잡히는 거얔ㅋㅋㅋㅋㅋㅋㅋ]

[팀] [무지개 요정 : 개그가 따로 없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레이몬드현식 : 아 제바류ㅠㅠㅠㅠㅠ]

[팀] [율 : ㅋㅋㅋㅋㅋ웃겨 죽을 거 같아욬ㅋㅋㅋㅋ]

[팀] [무지개 요정 : 내 새끼 죽으면 안 되는ㄴ뎈ㅋㅋㅋㅋㅋㅋㅋ]

[팀] [STARBABS : 창피해 ㅠㅠㅠㅠㅠㅠ]

[팀] [노아 : 돌겠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제로사이드 : 저 이상한 말들은 왜 자꾸 하는 건뎈ㅋㅋㅋㅋㅋㅋㅋ]

[팀] [비비탄 : 아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팀] [빠라바라바라밤 : 웃느라 배아프다곸ㅋㅋㅋㅋㅋㅋㅋㅋ]

모두에게 웃음폭탄을 선사한 욕정벌레 덕분에 1페이즈의 냉기 보호 패턴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넘길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욕정벌레는 여러 번 낚아채기 스킬에 당했지만, 당할 때마다 이상한 일본어를 해대는 통에 모두는 웃느라 제대로 딜을 못 넣기도 했다.

“이제 2페이즈 넘어왔네요… 1페이즈에서 웃느라 딜 로스가 좀 났는데,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이 그 부분은 충분히 채워줄 것 같으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욕정… 아니, 벌레… 아니, 으음… 욕정벌레님… 이번 페이즈에서는 적어도 덜 웃겨주세요… 딜 로스가 또 나면 곤란하니까요.”

[욕정벌레 : ㅠㅠㅠ]

“2페이즈에서는 냉기 보호 패턴은 없습니다. 대신 냉기중독 패턴이 있습니다.”

[팀] [무지개 요정 : 냉기중독?]

“네~ 설인 주변에 얼음 장판이 깔릴 겁니다. 범위가 상당히 넓어요. 원거리고 프리고 몽땅 범위에 들어올 만큼이요. 이 얼음 장판은 냉기에 중독을 시키고, 지속적으로 체력을 깎아 갑니다. 자칫 잘못하면 훅 갑니다.”

“보통 2페이즈에서는 프리들에게 힐을 바라면 안 됩니다. 프리들도 체력이 지속해서 깎여나가니까요. 엠 포션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7명 모두에게 힐을 하다간 프리들이 먼저 오링나서 죽습니다. 힐은 오직 프리들이 자신들을 위해서만 하게 두시고요. 나머지 격수들은 포션을 꺼내 듭시다. 포션은 안전구역에서 비축할 수 있으니 여기서 모든 포션을 다 써버리겠다는 각오로 전투적으로 드세요.”

[팀] [율 : 노아 형은 포션 못 드시는데..]

[팀] [노아 : 내 목숨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아, 율님 정도면 두 사람 체력 채울 엠은 될 거라고 생각되는데… 아니면 노아 몫의 포션을 율님이 먹으면 어떨까?”

[팀] [노아 : 그거 좋네]

“그럼 율님이랑 노아는 그렇게 하는 거로.”

[팀] [율 : 네]

“나머지 분들도 포션 배분해서 챙겨주세요.”

제로의 설명을 듣던 팀원들은 분주하게 오즈 전용 펫에 가득 담아온 비축용 포션들을 꺼내 나눠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팀원들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제로사이드는 잠깐의 여유를 두고 말을 이었다.

“준비 다 되셨으면, 탱 먼저 들어가고 시작할게요.”

얼음 장판 위에 서 있는 캐릭터의 온몸에 하얗게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지속해서 빠져나가는 체력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여기저기서 힐이 난무하고, 포션 소비가 빠르게 이어졌다.

율은 마나의 회복속도를 향상하는 클레멘티스가 끊기지 않게 유지하며 자신과 시언의 체력을 관리 중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쿨이 돌아오는 즉시 전체 힐인 플로레스 니비움을 써주며 파티원들의 체력도 추가로 관리해 주고 있었다.

시언에게는 추가로 체력 지속회복 스킬인 오라티오까지 걸어주고 있어서 틈틈이 힐을 넣을 필요 없이 웬만큼 체력이 떨어지면 대량 회복 힐인 볼렌테 데오로 한 번에 체력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스페라무스로 이미 설인의 체력을 상당량 깎아 놓은 후라 모두 조금은 느슨해진 마음으로 딜을 넣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제로도 평소라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부분이 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저기… 욕정벌레님?”

딜에 집중을 하던 욕정벌레는 조심스레 자신을 부르는 제로의 부름에 의아한 듯 채팅이 아닌 말로 답을 했다.

“네?”

“포션… 이펙트가 혼자 좀 특이하신 것 같은데.”

[팀] [STARBABS : ?!]

[팀] [아이해브노아이디어 : 설마...벌레 너!!!]

[팀] [산꼴짜귀 다람쥐 : ??????]

하지만 제로의 물음엔 욕정벌레의 답 대신 그녀의 파티원들의 그녀를 추궁하며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팀] [레이몬드현식 : 너 아직도 그거 써?!]

[팀] [욕정벌레 : 맛쪼니~]

[팀] [질풍 : 헐?]

[팀] [광인한 남자 : 잉???]

[팀] [KING Husband : ????]

[팀] [꽃잔 : 네?]

[팀] [무지개 요정 : 뭐......]

[팀] [노아 : ........]

[팀] [율 : ?]

[팀] [율 : 맛쪼니가 뭐예요?]

그리고 모두의 황당함을 종식시키는 율의 질문이 올라왔다.

“맛쪼니는… 맛 좋은 열대어라고….”

[팀] [노아 : 아르메리아 라는 항구마을에서 특산품 상인이 파는 요리재료야..]

[팀] [질풍 : 소비 템이라 사용이 가능하거든...체력도 회복되고..]

[팀] [도련 : 값이 싸고...회복량도 좋기 때문에...많이 쓰지..]

[팀] [KING Husband : 응...많이 쓰지...]

[팀] [광인한 남자 : 저렙들이...]

[팀] [율 : 저렙?]

[팀] [STARBABS : 벌레 너 진짜 왜 그러냐 ㅠㅠㅠㅠㅠㅠ]

[팀] [레이몬드현식 : 아 진짜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

[팀] [욕정벌레 : ㅇㅅㅇ]

“아뇨, 뭐… 죄송할 것까지는… 맛쪼니로 잘 버티시네요….”

말을 잇는 제로사이드의 말투에서 황당함을 내포한 허탈한 웃음이 섞여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버틴다고 생각했던 욕정벌레는 얼마 못 가 전투 불능이 되어 설인의 발치에 쓰러졌다.

“…….”

역시 맛쪼니는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맛쪼니는 저렙들이 사용하기에는 싸고, 회복량이 많아서 최적의 회복 아이템 같지만, 사실 그 회복량은 포션 중에 제일 적은 회복량을 가지고 있는 ‘빨간포션’보다 조금 더 차는 정도였다. 결국, 질보단 양이라는 뜻이다.

당황해하는 팀원 중에서도 단연 부산스러워진 욕정벌레의 파티는 울음 표시를 남발하는 채팅을 쳐올리다 욕정벌레를 살리러 헐레벌떡 달려온 파티의 프리스트가 불시에 가해오는 설인의 공격을 맞아 욕정벌레와 같이 전투 불능에 빠졌다.

그 모습에 패닉에 빠진 건지, 팀에 살아 있는 프리스트 두 명을 잊은 건지, 레이몬드 현식이 달려와 세계수 잎으로 전투 불능이 된 프리스트를 살리려고 하다가 휘둘러오는 설인의 공격을 맞아 그로기 상태에 빠졌고, 그런 레이몬드 현식에게 힐 스크롤을 사용해주러 달려오던 STARBABS가 허둥거리다 자신의 체력을 관리하지 못해 그대로 전투 불능에 빠졌다.

“저, 저기….”

차례차례 설인의 발치에 쓰러져가는 욕정벌레 파티원들의 행태에 말문이 막힌 제로사이드가 이렇다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욕정벌레 어쩔 수 없네… 여기 욕정 무덤이 내 집인걸….”

[팀] [STARBABS : 야 이 너 진짜 ㅠㅠㅠㅠㅠㅠ]

[팀] [레이몬드 현식 : 너 진짜 왜 그르냐 ㅠㅠㅠㅠㅠ]

아련하게 울리는 노랫소리에 심취라도 한 건지 함께 누워 있는 두 사람이 욕정벌레를 나무라는 사이, 다른 파티원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달려갔고,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설인의 공격을 받아 전투 불능에 빠졌다.

[팀] [STARBABS : 뭐야ㅠㅠㅠㅠㅠㅠㅠㅠ]

[팀] [아이해브노아이디어 : 뭐하는 건데ㅠㅠㅠㅠㅠㅠㅠ]

“유… 율님하고, 꽃잔! 현식님 그로기 지속시간 끝나기 전에 힐을…!”

그 모든 상황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제로사이드는 욕정벌레의 파티원들이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지시를 시작했지만, 이미 늦은 듯 레이몬드현식 또한 전투 불능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떻게 손써볼 새도 없이 욕정벌레의 파티는 전멸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로비로 튕겨 나간 듯했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 또한 맛쪼니의 희생자….”

로비로 튕기는 로딩 사이에 아련하게 울리는 욕정벌레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더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전멸당한 욕정벌레의 파티가 로비로 튕기고 난 후, 제로사이드와 무지개 요정의 두 파티만이 남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설인을 잡을 수 있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타임어택이 없었던 것도 큰 몫을 했다.

[SYSTEM] [파티별 기여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SYSTEM] [설인 공략의 성공으로 안전 지역이 오픈됩니다.]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처럼 전원이 만신창이에 물약도 몽땅 써버린지라 그들은 서둘러 안전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

[도련 : 와...사람 너무 없다..]

[꽃잔 : 그러게요...거의 텅 비었네요;]

[제로사이드 : 아직 절반도 진행을 못 했는데 초반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노아 : 팀 단위로 전멸하기라도 했나..]

글록시니아마냥 사람들이 우글거리던 안전 지역이 텅 비어버리다시피 한 모습에 모두 기함하며 한마디씩을 했다. 그러는 중에 제로사이드와 시언이 슬쩍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제로사이드 : 난 노아랑 상점 다녀올 테니까 근처 아무 데나 자리 잡고 쉬고들 있어요]

[노아 : 갔다 올게요]

[율 : 다녀오세요]

율의 배웅을 받으며 나란히 상점으로 향한 제로사이드와 시언은 텅 비어버린 펫의 인벤에 소모품과 포션 등을 가득가득 채워 넣었다. 그리고 용무를 끝낸 두 사람은 파티에게 돌아가지 않고 상점 구석으로 향했다.

[제로사이드 : 나 진짜 하려고]

[노아 : 미쳤냐?]

[노아 : 진심이야?]

[제로사이드 : 그래도 네가 좀 도와주면 수월하지 않겠냐]

[노아 : 여태도 많이 도와줬잖아 길마님 이름도 알려줬고 오즈 오는 것도 흘려줬고 길마님이 아시면 난 퇴출감이야]

[제로사이드 : 퇴출되면 머스킷 와랔ㅋㅋㅋ]

[노아 : 미친놈이?ㅋ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기왕 도와준 거 마지막까지 신세 좀 지자 ㅋㅋㅋ]

[노아 : 네놈의 마지막이 언젠데? 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아무튼 오즈 나가면 바로 부탁 좀 할게]

[노아 : 너무 성급한 거 아니야? 좀 더 생각해보지그래]

[제로사이드 : 난 성급한 사람이야 ㅋㅋㅋㅋ]

[노아 : 또라이가 ㅋㅋ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그리고 이참에 글록 동맹도 좀 갈아엎는 게 좋지 않나 싶고]

상점에서 되돌아온 제로사이드와 시언은 파티원들에게 돌아가 수다를 가장한 적당한 휴식을 취한 후, 재정비해 다시 던전 공략에 나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이제는 한 마리 한 마리가 제법 강해진 몬스터들을 해치워 가던 파티원들은 어느덧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을 보며 기함을 했다.

[광인한 남자 : 와..벌써 1시 넘었어]

[무지개 요정 : 5번째 방에서 브레이크 타임 가져야 할듯하다]

[질풍 : 난 학교를 쨀 각오를 했어요!]

[도련 : 도랏?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뭐라? 질 수 없지!! 나도 무단결근을 하겠다!!]

[KING Husband : 제정신이냐 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넌 어차피 출근해서도 겜만 하는 놈이 ㅋㅋㅋ]

[노아 : 겜생 때문에 현생을 내던지는구나 ㅋㅋㅋㅋ]

[율 : 다들 멋져요ㅋㅋ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하 율이도 반하는 나의 광인함]

[질풍 : 하 율이도 반하는 나의 제낌력]

[무지개 요정 : ?!]

[무지개 요정 : 나도 파워 결근할 테다!!!]

[도련 : 사장이라면서요?ㅋㅋㅋㅋㅋㅋ]

[노아 : 다들 제정신은 아닌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즈에 입성한 지 4일 차.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오랜 던전 공략에도 지친 모습 하나 없이 여전히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늦은 시간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걷기를 몇 시간, 그들은 곧 거대한 보스 방문 앞에 도달해 장치를 조작했다.

[SYSTEM] [장치의 조건이 충족되어 보스 방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르는 알림 글과 함께 열리는 보스 방을 보며 다들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보스 방을 띄엄띄엄 둘러싸고 있는 문 중, 열린 문은 자신들이 서 있는 문이 전부였다.

결국, 5번째 보스 방에서 단일 파티로 보스공략을 하게 된 것이었다. 5번째 보스 방은 4번째 보스 방보다는 크기 자체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그리고 방 분위기 자체도 뭔가 아기자기해 보였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소꿉놀이 세트나, 인형의 집,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캐노피 침대, 바닥 전체에 깔린 분홍색 러그 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곰 인형. 그리고 검은색 고딕 의상에 하프보닛을 끼고, 방 중앙에 산처럼 쌓인 베개 사이에 앉아 있는 작은 여자아이. 5번째 방의 보스. 이자벨이었다.

[무지개 요정 : 돌겠네..우리뿐이야?]

[노아 : 다섯 번째부터 타임어택이 있다고 했었나?]

[질풍 : 아ㅠㅠㅠ여기서도 제로님 만났으면 얼마나 좋아 ㅠㅠㅠ]

[도련 : 우리끼리는 불안 불안한데..]

[광인한 남자 : 이렇게 망하나요?!]

[율 : 그래도 왕이형이 공략 좀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KING Husband : 응...우린 망한 것 같아..]

[질풍 : ?!]

[율 : 네?]

[노아 : 뭐?]

[KING Husband : 공략 영상 중에 한 번도 못 본 보스야...]

[무지개 요정 : .....]

[광인한 남자 : 여기까지가...끝인가 보오..]

[질풍 :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도련 : ...]

[무지개 요정 : 이번 오즈공략 우린 참 운이 안 따라준다..]

[질풍 : ㅇㅇ]

[광인한 남자 : 인정]

[KING Husband : ㅇ...]

[도련 : ㅎ..]

[노아 : 뭐가 됐든 헤딩이네요..]

[율 : 초반부터 스페라 갈까요?]

[KING Husband : 아무래도..초반엔 복잡한 패턴은 거의 안 나올 테니까 스페라 쓰는 게 좋을 듯]

[율 : 네]

[노아 : 탱 볼게요]

[무지개 요정 : ㅇㅇ]

시언과 요정의 대화를 끝으로 율은 서둘러 버프를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언에게 오라티오를 걸자, 시언은 곧바로 이자벨을 향해 튀어 나갔다.

시언이 이자벨의 어글자가 되자, 파티원들도 모두 튀어 나가 이자벨에게 향했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율은 콘템플라티오를 사용하며 스페라무스 스킬을 준비했다.

하지만 다음에 벌어진 상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격수들에게 공격을 받던 이자벨은 주변에 널린 베개 하나를 집어 들어 그대로 율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명상을 하던 율이 날아온 베개에 맞아 그대로 캐스팅이 끊겨버린 것이었다.

“뭐야…?”

당황함을 담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동시에 길드원들도 시야를 돌려 율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눈에 들어온 건, 캐스팅이 끊긴 율이 날아온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 모습이었다. 누워 있는 율의 캐릭터 머리 위로 연신 zZ하는 상태 이상 이펙트가 떠올랐다.

[무지개 요정 : 뭐시당가..?]

[질풍 : 잠들었어?]

[KING Husband : 갑자기 어글이 왜 튀어?]

[도련 : ;;]

[광인한 남자 : ?????]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모두 의아하기만 했다.

[율 : 저 왜 자요?ㅠㅠ]

그리고 연이어 올라온 율의 물음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없었다.

“우리도… 영문을 모르겠네….”

[율 : 아ㅠㅠㅠ]

[율 : 스페라 쿨 돌아요... 캔슬 돼서 그런가 봐요;]

[질풍 : 헐...]

[광인한 남자 : 좆망...]

이자벨보다는 잠이 들어 있는 율에 신경을 쓰느라 패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들은 베개를 휘둘러 대며 공격을 가하던 이자벨이 베개를 내팽개치고 부들부들 떨어대는 걸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축을 흔드는 진동과 함께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을 질러대는 이자벨의 목소리가 길드원을 가격했고, 그들은 그대로 튕겨 나가듯 나가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뭐?”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모두는 그제야 율이 아닌 이자벨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자벨은 계속 비명을 질러대며 서서히 몸을 구부렸다. 이자벨 주변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며 그녀의 머리칼이나 치맛자락을 마구 흐트러트렸고, 잔뜩 굽어진 등에서 무언가가 터진 듯 잔해물들이 튀어 올랐다.

엉망으로 해진 옷깃 사이로 보이는 척추에서 뚜둑, 뚜둑하며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게 보이는가 싶더니 척추를 타고 솟아오른 거대한 기계 다리 같은 것들이 불시에 튀어나와 바닥을 디디고, 축 처진 이자벨의 몸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변모한 이자벨의 모습에 모두 경악을 하고 말았다.

[질풍 : 징그러웟!!!]

[광인한 남자 : 이게 뭐야!!]

[도련 : 으억...]

[무지개 요정 : ;;;]

이자벨의 척추에서 솟아오른 기계 다리들은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바닥을 디뎠고, 이자벨의 몸은 축 처져 힘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꿈에 나올까 무섭네….”

흔들거리며 제자리걸음만 하던 이자벨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린 여자아이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나 손, 다리 등에 인형처럼 보이는 관절들이 보였다. 턱관절을 밀어내듯 입을 쩍 벌린 이자벨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율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괴이한 걸음걸이로 빠르게 율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이자벨의 행동에 놀란 길드원들이 서둘러 이자벨을 붙잡는 스킬을 쓰거나, 공격을 퍼부었지만 이자벨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잠들어 있는 율의 지척까지 다가온 이자벨의 기계 다리 중 몇 개가 높이 치 솟아올라 그대로 율에게 내리꽂혔다.

(엑소시아)

하지만 이자벨의 공격은 율에게 명중하지 못했다. 어느새 이자벨을 따라잡아 율의 앞에 선 시언이 스킬을 사용해 이자벨의 공격을 막고, 데미지를 증폭시켜 되돌려 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언의 공격에 직격당한 후에도 이자벨은 어글자를 바꾸지 않았다.

여전히 시언의 뒤에 잠들어 있는 율을 공격하려 했고, 어느새 이자벨에게 몰려든 길드원들도 합세해 이자벨에게 공격을 퍼부어댔지만, 이자벨의 척추에서 솟아오른 수많은 기계 다리들이 그들의 공격을 방어하며 역으로 공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난리를 부렸는데도 이자벨의 체력은 고작 10% 정도가 줄어 있는 상태라는 거였다.

“아무래도 타임 어택 걸릴 것 같은데요.”

[무지개 요정 : 돌겠네..]

[질풍 : 율이는 왜 안 깨어나는 거예요ㅠㅠㅠㅠ]

[율 : 죄송해요ㅠ]

“차라리 패턴 초기화 유도하죠.”

[광인한 남자 : 초기화??]

어그로가 튄 상태로 잠이 들어버려서인지 어그로는 율에게 고정된 듯했다. 그를 지키면서는 절대 이자벨 공략에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타임 어택 때문에 광폭화가 되고, 그대로 광역기가 터지면 절멸 효과로 누구 하나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의도적으로 율을 죽여서 어그로를 뺏고, 어글자를 제외한 다른 인원들이 이자벨의 타깃팅 범위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후에 어글자가 죽으면 타깃을 잃은 이자벨은 패턴이 초기화되며 방 중앙으로 되돌아갈 것이었다.

“내가 유도할 테니까, 다들 율이랑 정 반대쪽 구석에 모여 있어.”

[무지개 요정 : ㅇㅇ]

[질풍 : 응]

[도련 : ㄱ]

[KING Husband : ㅇ!]

[광인한 남자 : ㅇㅋ]

그리고 시언의 말에 모두는 이자벨에게서 떨어져 율이 있는 곳의 정 반대편 구석으로 향했다.

길드원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언은 율에게 가해지는 이자벨의 공격을 막지 않고, 그대로 옆으로 비켜섰다. 시언의 보호가 사라지자 율에게는 이자벨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연속으로 퍼부어졌고,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손쉽게 전투 불능에 빠졌다.

율이 전투 불능에 빠지면서 어글은 시언에게 향했고, 시언도 이자벨의 공격을 이렇다 할 저항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율의 캐릭터 위에 겹쳐지듯 쓰러지며 전투 불능에 빠졌다.

“이제 살려주러….”

“?!”

작전대로 착실하게 실행된 상황에 한숨 돌린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하던 시언은 다음에 벌어진 상황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어글자를 모두 잃은 이자벨은 중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뭔가 상당히 화가 난 듯 기계 다리를 구르며 바닥을 뭉개 놓더니 또다시 기괴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에 벌어진 상황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지개 요정 : ?!]

[질풍 : 어?]

[광인한 남자 : ??]

[도련 : 헐..]

[KING Husband : ?!]

어글자를 모두 잃으면 패턴이 초기화되고 중앙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이자벨은 그대로 타임 어택에 돌입을 했다. 남은 길드원들이 불에 덴 듯 놀라며 구석에서 튀어나와 이자벨에게 향했다. 하지만 타임 어택이 끝나고, 광폭화가 시작된 이자벨의 광역기에 이렇다 할 손도 써보지 못하고 전부 전투 불능이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레인보우 힐 길드의 4일간의 오즈 공략은 5번째 보스, 이자벨에 의해 전멸을 맞으며 끝을 맺었다.

***

파티원들의 전멸과 동시에 암전된 화면에 로딩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모두는 오즈의 로비로 튕겨 나와 있었다. 손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전멸당한 사태가 황당하고, 참담하고, 허무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파티] [무지개 요정 : 뭐가 됐든...4일 동안 수고들 많았어]

그렇게 한참을 침묵을 고수하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그들은 요정의 채팅으로 인해 오즈 공략이 끝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파티] [노아 : 고생..하셨습니다]

[파티] [도련 : 고생하셨습니다]

[파티] [KING Husband : 아쉽네요..고생하셨슴돠ㅠㅠ]

[파티] [광인한 남자 : 고생들 하셨습니다ㅠㅠㅠ]

[파티] [질풍 : 고생하셨어요ㅠㅠㅠ 으아ㅠ]

[파티] [율 : 고생하셨어요...4일 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파티] [노아 : 율이도 정말 고생 많았어 ㅋㅋㅋ]

[파티] [무지개 요정 : 응 ㅋㅋㅋㅋ 율이 진짜 잘해줘서 고마웠어 ㅋㅋㅋㅋ]

[파티] [광인한 남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든든한 보조였어!]

[파티] [질풍 : 아크 비숍 짱짱맨]

[파티] [KING Husband : 인정!ㅋㅋㅋㅋ]

서로 수고의 말을 건네며 오즈를 마무리 지은 그들은 전리품 관리인에게서 그동안의 전리품을 찾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전리품을 열기 전에 자신들의 귀환을 길드에 알리자는 생각을 했다.

[길드] [무지개 요정 : 그간 잘들 지냈어?]

[길드] [세츠나 : 헐?!]

[길드] [질풍 : 우리 방금 왔어!!]

[길드] [니지 : 헐!!!!]

[길드] [KING Husband : 우리 안보고 싶었엉?ㅋㅋㅋㅋ]

[길드] [광인한 남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세츠나 : 인벤가 봐요!!!!!]

[길드] [무지개 요정 : 잉?]

[길드] [니지 : 아 인벤가 보라고!!!!]

[길드] [노아 : ??]

[길드] [달빛 : 빨리!!!]

[길드] [크로이츠 : 큰일 났어요ㅠ]

[길드] [질풍 : 뭐야??;]

[길드] [츄파 : 가서 보라고!!]

[길드] [세츠나 : 인벤 난리 났으니까 가 보라고!!!]

4일 만의 재회를 기뻐해 줄 줄 알았던 길드원들은 돌아온 7명을 보자마자 인벤을 가보라며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길드원들의 분위기에 이제 막 오즈에서 돌아온, 전리품도 까보지 못한 그들은 하나둘씩 인벤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의 게시물을 확인하고는 다들 눈살을 찌푸리고는 황당한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크 비숍 율의 인성수준 [작성자 = 왈도]-

이라는 게시 글과 함께 천 개가 넘어가는 댓글들이 보였다.

서둘러 글을 클릭해 들어가자 채팅창만 잘라 올린 수개의 스크린 샷들이 보였다.

[율 : 더럽게 뭐하시는 거예요]

[율 : 누가 좋아한다고 그러세요;]

[율 : 징그러워요;]

[율 : 오늘 들어본 왈도님 목소리도 싫고 왈도님 캐릭터도 싫어요; 왈도님 자체도 싫고 그냥 다 싫어요;]

[율 : 솔직히 왈도님 볼 때마다 끔찍해요]

[율 : 가세요;]

나 율님이란 사람한테 밑도 끝도 없이 욕먹었다. 전에 노아 님 스왑때 레힐에 잠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좀 안면은 텄다고 생각을 했었음. 그래서 오즈에서 만난 게 반가워서 아는 척했더니 나한테 대뜸 저러더라?ㅋㅋㅋㅋ 사람을 두고 더럽다느니, 징그럽다느니, 끔직하다 느니...종국엔 꺼져달라더라... 나 진짜 반가워서 인사한 것밖에 없는데;ㅁ;

진짜 히든클래스도 인성검사 하고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의적으로 율이 한 말만 잘라서 올린 조작 글이었다. 왈도가 올린 글의 본문도 가관이었지만, 그 글의 댓글에선 패싸움을 방불케 하는 언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율을 옹호하는 사람들, 율의 말도 들어보자며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 밑도 끝도 없이 왈도에게 편승해서 율과 율이 몸담은 레인보우 힐까지 헐뜯고 욕하는 사람들이 댓글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이 사태를 알게 된 무지개 요정 일행은 절로 나오는 쌍욕을 멈출 수 없었다.

[길드] [무지개 요정 : 그래서...지금 이 시간까지 안자고 싸우고 있었다는 거야?]

[길드] [세츠나 : 빡치잖아요!!]

[길드] [니지 : 빡돌잖아요!!]

[길드] [츄파 : MC 빡돈!]

[길드] [달빛 : 왈와아라앙랑왈왈아르르를]

[길드] [크로이츠 : 이분들 무서워요ㅠ]

남아 있던 길드원들의 설명에 의하면 일요일 오후 느지막이 올라온 왈도의 글이 인벤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곧 서버 전체로 퍼진 율에 대한 이야기가 심화하여 레인보우 힐 길드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는 듯했다. 그 탓에 오즈에 가지 않았던 길드원들은 거의 늦은 오후부터 새벽 4시가 되어가는 지금까지 치열한 언쟁을 벌이고 있던 것이었다.

[길드] [세츠나 : 거지 같은 새끼들이 잘라 붙인 저딴 스샷 쪼가리 몇 개로 죽자고 달려들잖아요]

[길드] [니지 : 전문을 가져오라고 해도 왈도는 꿀 먹은 벙어리로 피코나 하고 있고ㅡㅡ]

[길드] [달빛 : 저희는 오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도 없고!!]

[길드] [츄파 : 그나마 화이트홀이랑 머스킷이랑 몇몇 사람들이 옹호해주고 일부는 중립입장이라 화력은 지지 않는 수준이긴 한데 왈도한테 붙은 새끼들이 답이 없어요ㅡㅡ]

[길드] [세츠나 : 그냥 앞뒤 분간 안 하고 덮어놓고 까더라니까요]

[길드] [크로이츠 : 저희도 해당 게시 글에 댓도 남겨 놓고 서버 말로 따져보기도 했는데;]

[길드] [달빛 : 결국 댓글에서도 쌈 붙고 서버로도 쌈이 붙어서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어요!!]

[길드] [니지 : 이런 상황에 잠이 오겠어요?!]

[길드] [무지개 요정 : ...]

[길드] [무지개 요정 : 쉼터 갈게]

인벤에 올라와 있는 글과 남아 있는 길드원들의 얘기로 대충 상황을 유추한 그들은 서둘러 쉼터로 향했다. 오즈를 벗어나자 그제야 쉴 새 없는 논란으로 달궈지고 있는 서버 말들이 보였다. 오즈에서 글록시니아로 이제 막 이동을 한 그들이 다시 한번 비프로스트로 포인세티아로 이동을 하려 했다.

[율 : 아; 귓속말이..]

[노아 : ??]

[무지개 요정 : 무슨 귓속말?]

[율 : ;;]

[도련 : 혹시 욕 같은 거 와?]

[율 : 네..]

[질풍 : 미친!?]

[KING Husband : 당장 차단해!]

[광인한 남자 : 맞아 상대해주지 마!!]

[노아 : 아니 차단하지 마]

[율 : 네?]

[KING Husband : ?]

[광인한 남자 : ??]

[노아 : 대꾸는 하지 말고 귓속말 오는 거 전부 캡쳐해]

[노아 :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무지개 요정 : 노아 말이 맞아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증거는 확보해두는 편이 좋아]

[도련 : 그것도 그러네요]

모든 귓속말을 캡처할 것을 권하는 노아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주변의 눈이 많은 글록시니아에서 도망치듯 포인세티아로 이동했다.

무지갯빛 웜홀 같은 비프로스트를 빠져나와 포인세티아에 도착한 그들은 서둘러 주막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막에 들어선 그들은 반긴 건 남아 있는 길드원들이 아닌 궁기였다.

평상 위에 배를 깔고 축 처져 있던 궁기는 주막에 들어서는 많은 인원의 기척에서 익숙한 기척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제 앞발에 괴고 있던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한달음에 주막의 입구까지 달려 나와서는 배를 보인 채 바닥에 드러누워 서는 땅에 등을 비비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분명… 호랑이는 고양잇과였을 텐데, 궁기가 하는 행동은 마치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았다.

[세츠나 : 와오...]

[니지 : 열광적이네..]

그리고 그런 궁기의 행동에 넋이 빠진 시언 일행을 맞이하는 길드원들의 채팅이 올라왔다.

[츄파 : 와..저거 며칠 동안 시무룩해서는 평상 위에서 내려오지도 않더만..]

[달빛 : 펫 주제에 되게 안쓰러워 보였다니까요..]

[크로이츠 : ㅠㅠㅠㅠ]

잠시 그렇게 난리 부르스를 떨어대는 궁기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들은 자리를 옮겨 하나의 평상 위에 모여 앉았다. 궁기도 그제야 몸을 일으키고 따라와서는 시언과 율의 뒤에서 두 사람을 감싸듯이 자리 잡고 앉았다.

[질풍 : 그나저나 이 왈도 개시키를 어쩌면 좋죠?!]

[광인한 남자 : 아니면 이참에..율이를 나쁜 남자로 이미지 메이킹을..]

[세츠나 : 용납할 수 없다]

[니지 : 오빠 광광 울어볼래?]

[광인한 남자 : ....]

[율 : 죄송해요..저 때문에]

[율 :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노아 : ?]

[노아 : 네가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니야]

[KING Husband : 맞아 왈도 그 새끼가 미친 거지]

[무지개 요정 : 엄마가 조져줄까?!]

[세츠나 : 언제부터 엄마였대?]

[니지 : 아빠는 누구래?]

[츄파 : 제로님?]

[달빛 : 으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개 요정 : ...]

[제로사이드 : 아빠 등장☆]

그리고 언제 왔는지 익숙한 아이디 하나가 대화 도중 불쑥 끼어 들어왔다.

[니지 : 으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츠나 :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츄파 : 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

[달빛 : 진짜가 왔닼ㅋㅋㅋㅋㅋㅋㅋㅋ]

[크로이츠 : 헐ㅋㅋㅋㅋㅋㅋㅋ]

갑작스러운 등장과 상황을 받아치는 말에 모두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고, 곧 주막 입구에서 걸어 들어오는 제로를 볼 수 있었다.

[노아 : 아드님을 주십쇼]

[질풍 : ?????????????]

[KING Husband : ????노아 형은 왜 저랰ㅋㅋㅋㅋㅋㅋㅋㅋ]

[광인한 남자 : 대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련 : 다들 약 빨았낰ㅋㅋㅋㅋㅋ]

[제로사이드 : ㅋㅋㅋㅋ 보아하니 레힐도 5번째 방에서 실패했나 보네요?]

[무지개 요정 : ...너희도?]

[제로사이드 : 네 ㅋㅋㅋㅋ인원이 없었는지 2개 파티로 공략하려다 보니까..]

[노아 : 우리는 단일이었어]

[제로사이드 : 헐...]

[제로사이드 : 암튼... 나와 보니까 서버가 난리가 났더라고요]

[제로사이드 : 꽃잔이도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율님]

[율 : 아; 제가 괜히 일을 키운 것 같아서..]

[제로사이드 : 왈도가 악의적으로 말을 잘라서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올린 것 같긴 한데 전문을 알 수가 없으니...]

[제로사이드 : 앞뒤 사정없이 맹목적으로 옹호하라고 강요할 수만은 없어서 글록 동맹한테는 섣불리 논란 일으키지 말고 중립 지키라고는 해뒀어요 그런데도 이미 왈도한테 붙어서 똥 싸지르는 인간들이 많네요]

[제로사이드 : 완벽하게 옹호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율 : 네? 아니에요! 충분히 감사해요]

[제로사이드 : 음...율님 행동이나 말투만 봐도... 이거 전적으로 왈도가 조작한 거 맞지?]

[노아 : 응]

[제로사이드 : 전에 스왑때도 레힐하고 문제가 있었다고 하던데?]

[노아 : 그게 지금까지 계속 진행돼서 이 사태를 낳은 거야]

[제로사이드 : ....]

[율 : 제가 처음부터 좀 더 똑 부러지게...왈도님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까요?]

[무지개 요정 : 네가 신경 쓸 거 없어]

[질풍 : 맞아 왈도한테 신경 써주는 거 자체가 감정낭비지]

[율 : 그래도..제가 너무 심한 말들을 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노아 : 그게 그렇게 심한 말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세츠나 : 쌍욕이라도 했어?]

[율 : 네?]

[율 : 아니요..]

[니지 : 그럼 된 거지]

[제로사이드 : 율님]

[율 : 네?]

[제로사이드 : 똑 부러지게 말 못한 건 율님이 무르게 대처한건지도 몰라요]

[율 : ...]

[제로사이드 : 그래도 기분 좋은 거절이란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제로사이드 : 오히려 남을 배려하려는 친절이 상대방한테는 여지를 주는 행동일 수도 있잖아요? 율님은 여태껏 왈도를 충분히 배려하며 거절을 해온 것 같은데.. 한두 번 말해서 안 들어 처먹는 저런 새끼한테는 더 매몰차게 굴어도 상관없어요]

[KING Husband : 팩폭 오진다]

[세츠나 : 자 율아 따라 해봐]

[세츠나 : 꺼져]

[율 : ??]

[니지 : 따라 해봐]

[니지 : 아이해이츠유!!!아이해이츠유!!!]

[율 : ...]

[츄파 : 자 따라 하자]

[츄파 : 개시캬!!!!]

[율 : ;;]

[달빛 : 잘 봐~]

[달빛 : 凸]

[질풍 : 헐...언제적...]

[달빛 : 닥치지 못해?]

[질풍 : 넵..]

[도련 : 이 사람들이..막내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평상 한쪽에서 율에게 매몰찬 거절을 가르치는 여성 길원들을 은근슬쩍 내버려 둔 채 나머지는 사태의 해결을 위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제로사이드 : 그나저나 대화 전문이라도 있으면 오해는 금방 풀릴 것 같은데]

[무지개 요정 : 그러게..]

[노아 :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피로 좀 풀고 내일 마저 얘기하죠]

[광인한 남자 : 잉?]

[무지개 요정 : ??]

[제로사이드 : ?]

[노아 : 율아]

[율 : 네?]

[노아 : 귓속말 오는 거 다 캡쳐했어?]

[율 : 네..지금도 하고 있어요]

[노아 : 그거 지금 길드박스에 전부 올려줘]

[율 : 네??]

[KING Husband : 어쩌려고..?]

[제로사이드 : 뭔가 대책이라도 있는 거야?]

[노아 : 그냥 증거를 남겨 두려고]

[노아 : 율아 빨리]

[율 : 네? 네]

갑작스러운 시언의 행동에 모두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리고 율이 부랴부랴 길드 박스에 찍어둔 스크린 샷들을 모두 올려놓자 시언은 내일 다시 얘기하자며 게임을 로그아웃해 버렸다.

말려볼 새도 없이 나가버린 그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모두는 허탈한 숨을 삼켜야만 했다.

발행일: 2018년 10월 5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