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전직 (7/31)

7. 전직

전날 술래잡기를 하는 통에 새벽 3시가 넘어 기절하듯 자 버린 율이 눈을 뜬 시간은 9시 반이었다. 놀란 마음에 허둥지둥 일어나 씻고,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이미 출근해 텅 빈 집에서 홀로 아침을 먹었다. 외동으로 자라 밥 먹는 속도가 느린 통에 급하게 먹는다고 했는데도 시간은 어느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부랴부랴 뒷정리하고, 게임에 접속하자 텅 빈 쉼터가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율은 노아가 접속을 하지 않은 건가 싶어 길드 창을 열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전에 노아의 말이 자신을 반겼다.

[길드] [노아 : 어서 와요]

[길드] [율 : 아;;늦어서 죄송해요;]

[길드] [노아 : 괜찮아요 어제 늦게 잤으니까요]

[길드] [율 : 저;; 어디...세요?]

[길드] [노아 : 잠깐 글록시니아 왔어요 금방 갈게요 쉼터에서 기다려요]

[길드] [율 : 네]

금방 온다던 노아는 30분이 지난 후에야 주막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기다리라던 자신의 말에 30분 동안 주막에서 하염없이 기다린 율에겐 사과 한마디도 없이 태연하게 주막의 입구에 서서 율을 불러냈다.

[노아 : 가요 율님]

[율 : 네]

노아가 이끄는 대로 말없이 뒤따라온 율이 도착한 곳은 가름 협곡의 변방 필드였다. 마른 바람 소리와 음침한 배경음이 흐르는 필드의 끝에 도달하자, 커다란 절벽이 양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길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엔 글록시니아 기사단원 한 명이 서 있었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따라오기만 했던 율은 이곳에 온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 히든 퀘스트와 연관이 있나 싶어 노아에게 물어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노아의 채팅이 올라왔다.

[노아 : 우리는 그니타 평원의 드래곤 동굴로 가야해요]

[율 : 드래곤 동굴요?]

[노아 : 네 니벨룽겐족의 보물은 파프니르라는 드래곤이 지키고 있는데 이게 몬스터 정보도 없고 리젠되는 곳도 없어서 찾아보니까 지크프리트라는 히든 엔피씨랑 연관이 되어있더라고요]

[율 : 아...그때 제로사이드님이랑 서버챗으로 싸우시던?]

[노아 : 네 그 사람이요]

[노아 : 그런데 그니타 평원 자체가 진입불가 지역이에요 탐험 지역도 아니고 오픈예정 지역도 아닌 그냥 폐허죠 그 안에 지크프리트의 성역인 드래곤 동굴이 있는 것 같아요]

[율 : 그럼 어떻게...?]

[노아 : 퀘스트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진입방법이 있을 거예요]

[율 : 아...]

[노아 :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우선 가 봐요]

[율 : 네]

두 사람은 필드의 끝, 절벽 사이의 길로 진입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필드의 끝에 도달하자 그 앞에 서 있던 기사단원이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서며 대화 탭이 열리고 대화가 시작됐다.

[기사단원 : 멈추십시오. 이곳은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금지 지역입니다.]

[노아, 율 : 들어갈 수 없는 이유가 있나요?]

[기사단원 : 이곳은 옛날, 지크프리트와 파프니르의 싸움의 영향으로 폐허가 된 땅입니다. 그때 평원으로 흘러나온 파프니르의 피가 근처 몬스터들에게 변형을 일으켰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도.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노아, 율 : 들어갈 방법은 전혀 없나요?]

[기사단원 : 없습니다.]

기사단원의 짧은 답을 끝으로 대화 탭이 닫혔다. 이렇다 할 단서도 힌트도 얻지 못한 두 사람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있기도 잠시, 노아는 다시 한번 기사단원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단원 : 돌아가십시오.]

대화 탭이 열리고, 기사단원의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대화 탭이 닫혔지만, 노아는 또다시 기사단원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단원이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번엔 대화가 아닌 지문이 한 줄, 대화 탭에 떠올랐다. 그리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대화 탭이 닫혔다. 대화 탭이 닫히자마자, 노아는 또다시 기사단원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기사단원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럴 리 없겠지만 어쩐지 대화 탭이 신경질적으로 닫힌 것 같았다. 하지만 노아는 또다시 기사단원에게 말을 걸었다. 노아의 영문 모를 행동에 율이 홀로 진땀을 뺐다.

[기사단원 : 가십시오!!]

노아의 행동에 기사단원이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다.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까지 빼 들고, 위협하는 기사단원의 행동에 노아의 캐릭터도 덩달아 검을 빼 들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게임 화면을 바라보던 율도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상황이 진행되려는 이벤트 장면이라는 걸 아는데도, 노아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캐릭터의 행동에 절로 숨을 집어삼키게 됐다.

[기사단원 : 귀찮게 하지 말고 가시란….]

버럭 질러대던 기사단원의 외침은 등 뒤, 절벽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커다란 포효 소리에 묻혀 끝맺지 못했다. 절벽 사이에 진공하듯 울려 퍼지는 사나운 동물의 울음소리에 그저 어리둥절한 노아, 율과 달리 기사단원은 사색이 되어 볼썽사나운 비명을 내지르며 허겁지겁 도망을 가버렸다.

비어버린 절벽 앞에 멀뚱히 서 있던 두 사람은 포효 소리가 점차 잦아지며 낮은 그로울링으로 바뀌는 걸 들었다. 화면 속 율과 노아의 캐릭터가 스스로 움직이며 경계하는 듯 자세를 낮추며 절벽 사이를 주시하자, 그 사이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작은 호랑이 같은, 앞발 뒤로 날개 모양의 문양이 몸통에 그려져 있는 동물이었다. 동물은 절벽 사이를 빠져나오더니 노아에게 달려와 다리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려댔다. 동물의 황당한 행동에 노아가 몸을 낮춰 동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동물이 바닥에 벌러덩 뒤집어 눕더니 노아의 손길에 장난을 쳐대며 골골거렸다.

한참을 노아의 손길을 즐기던 동물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노아의 뒤에서 자신과 노아를 바라보던 율을 흘끗 올려다보곤 몸을 돌려 절벽 사이로 향했다. 성큼성큼 걸어가던 동물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두 사람을 향해 [크릉.] 하고 울었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듯 주둥이로 절벽을 가리키곤, 꼬리를 휙휙 휘둘러 대며 걸었다.

그니타 평원에 진입하자, 화면이 암전되며 게임 화면이 아닌 이벤트 영상이 시작됐다. 동물의 안내를 받듯이 평원이라기보단 사막이 되어버린 평원을 걸어 커다란 동굴 앞에 도달한 두 사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입구의 크기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 노아가 한발 앞서 먼저 동굴에 들어섰고, 그 뒤를 율이 따라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여주며 화면이 암전되더니 곧 로딩화면이 나타났다.

짧은 로딩 후, 게임 화면이 돌아왔을 땐 먼저 로딩을 끝낸 노아가 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노아의 모습에 율이 노아에게 다가갔다.

[율 : 노아님]

[노아 : 네?]

[율 : 저...궁금한 게 몇 개 있는데...물어도 되나요?]

[노아 : 네]

[율 : 그럼... 그 기사단 원한테 계속 말 거시던 거요]

[노아 : ?]

[율 : 그렇게 해야 퀘스트 진행된다는 거 알고 계셨던 거예요?]

[노아 : 퀘스트를 중엔 가끔 여러 번 말을 시켜야 제대로 된 본제로 넘어가는 변수가 있어요]

[노아 : 기사단 원한테 말 걸었을 때 처음엔 아무런 단서도 힌트도 주지 않았잖아요 그 상태에선 어떻게 해도 퀘스트 진행이 될 리가 없으니까 혹시나 해서 다시 말을 걸어본 거였어요 보통 지문이 거기서 끝이면 엔피씨한테 아무리 말을 걸어도 같은 반응만 반복될 텐데 그 기사단원은 말을 걸때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잖아요]

[율 : 그럼 그 호랑이는...?]

[노아 : 아 그거 저번에 율님 두고 저 혼자 비프로스트 파편 찾으러 갔을 때 그때 구해준 애였는데...이 상황에 또 나타난 걸 보면 아무래도 저희 퀘스트랑 연관이 있나봐요]

[율 : 아...]

[노아 : 끝이에요?]

[율 : 네?]

[노아 : 궁금한 거]

[율 : 아 네]

[노아 : 그래요 그럼 가죠 우선 풀 버프 주세요]

동굴의 안쪽으로 진입하자 새카만 어둠이 두 사람을 덮쳤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동굴 속을 걷던 노아와 율의 시야에 희미한 빛무리가 보였다. 그 빛무리는 무언가에 가려지듯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점멸하는 빛처럼 두 사람을 인도했다.

주변 1미터 안팎만 겨우 보이는 시야 속에 조심조심 걸어 빛무리로 다가가던 두 사람의 귓가에 거대한 무언가가 바닥을 끌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에 잠시 멈칫했던 두 사람이 주변을 살피다 다시금 걸음을 옮기자, 거대한 포효 소리와 함께 동굴의 안쪽에서부터 새빨간 불빛이 내부를 빙 둘러 타올랐다.

순식간에 밝아지는 내부의 모습에 절로 시야가 분산됐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던 눈이 불꽃이 처음 시작된 동굴의 안쪽으로 향하자, 일렁거리는 불꽃 속에 거대한 도마뱀 같은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안쪽에 산처럼 쌓아놓은 보물 더미 위에 몸을 낮추고, 두 사람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에 경계가 쌓이는 듯하더니 보물 더미 위에서 몸을 반쯤 내리고는 또다시 쩌렁쩌렁한 포효를 뱉어냈다. 니벨룽겐족의 보물을 지키는 용. 파프니르였다.

[노아 : 율님!]

멍하니 파프니르를 바라보던 율의 시야에 노아의 캐릭터가 뛰어 들어왔다.

(패링)

그리곤 율의 앞을 막아선 채, 패링을 사용해 무언가를 튕겨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어리둥절한 율의 시야에 몸을 꿈틀거리며 바닥을 빠르게 기어오는 파프니르가 보였다. 그리고 파프니르의 발밑으로 붉은 범위 표시가 나타났다.

[노아 : 저건 프로텍트 안 통해요 저항기로 피해요]

노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프니르가 몸을 비틀더니 꼬리를 힘껏 휘둘렀다. 노아는 타이밍에 맞춰 횡 이동으로 파프니르의 뒤로 이동했고, 율은 후방 이동으로 파프니르와 거리를 벌렸다. 두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공격을 피하자 파프니르가 낮게 그르렁거리며 머리를 마구 흔들고 격하게 다리를 굴렀다.

예기치 못한 행동에 파프니르의 뒤에 바짝 붙어 있던 노아가 파프니르의 다리에 맞아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그런 노아의 모습에 놀란 율이 파프니르와의 거리를 유치한 채, 동굴을 빙 돌아 서둘러 노아에게 향했고, 노아도 얼른 몸을 일으켜 율 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쫓아온 파프니르가 두 사람 사이에 안착하며 율에게 포효를 내질렀고, 정통으로 포효에 노출된 율은 그대로 스턴에 걸려버렸다. 머리 위에 별이 도는 표시와 함께 머리를 짚고 비틀거리는 율의 캐릭터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는 입을 쩍 벌려 율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쉴드 월)

하지만 파프니르의 뒤쪽에서 방패가 하나 날아와 율과 파프니르 사이에 꽂히고, 날아온 쉴드와 꼭 닮은 방벽이 그 사이로 우뚝 솟아올랐다. 파프니르의 공격은 그대로 방벽에 직격했다. 강력한 공격 한 방에 방벽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지만, 예기치 못한 방어에 덩달아 타격을 입은 파프니르도 잠시 비틀거리더니 머리를 흔들어 털고, 자세를 가다듬은 후, 뒤를 돌아 노아를 바라봤다.

스턴에 걸려 무방비 상태에 놓인 율을 지키기 위해 쉴드를 던져 버린 노아는 아예 양손 검으로 스위칭을 했다. 방패를 끼고 있으면 그만큼 디펜이 높아지지만 한 손 검을 껴야만 하므로 공격력이 낮아진다. 하지만 양손 검을 들면 디펜이 낮아지는 대신 공격력이 높아진다. 어차피 버린 쉴드니 양손 검을 드는 데 고민할 게 없었다.

(페너트레이트)

지척에서 파프니르에게 노아의 스킬이 직격했다. 그리고 바로 연계기가 이어졌다.

(스파이럴 인텐스)

(이그니션 인텐스)

연계기를 포함해 총 3방의 공격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던 파프니르가 빠르게 뒷걸음질 치며 노아에게서 벗어났다. 율과 자신의 사이에 버티고 서 있던 파프니르가 도망치자 노아가 서둘러 율에게 향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율도 스턴이 풀렸다.

(힐)

(디크리스)

(인크리즈)

(프리저베이션)

(블로우)

그리고 연이어 보조 버프들이 쏟아져 내렸다. 두 사람이 서로 재정비에 열중해 있는 사이, 파프니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동굴의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리고 느슨하게 벌린 입 사이로 붉게 타는 용액이 점액질 져 뚝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떨어져 내린 용액은 동굴 바닥을 녹이고, 그 주변을 바스러트렸다. 그리고 미끈한 눈으로 노아와 율을 바라보던 파프니르는 입안에 든 용액을 두 사람을 향해 뱉어내기 시작했다. 동굴 천장에 꼬리로 매달린 채, 흔들대며 자신들을 향해 붉은 용액을 뱉기 시작하는 파프니르의 행동에 재정비를 마친 노아와 율이 혼비백산을 했다.

(패링)

노아는 급한 대로 저항 옵션이 있는 패링을 사용해 막아보려 했지만, 용액은 튕겨 나가지 않고 그대로 노아에게 직격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남겼다. 그 모습에 놀란 율이 서둘러 노아에게 힐을 했다.

[노아 : 미친..저항으로도 안 피해지네요 바닥보면서 용액 피해요 율님]

노아의 말에 율이 동굴 바닥을 넓게 바라봤다. 파프니르가 용액을 뱉어내는 순간, 용액이 떨어지는 지점이 바닥에 붉게 표시되는 게 보였다. 딱히 피할 방도가 없는 공격이라서 바닥에 표시되는 붉은 지점을 봐가며 요리 조리로 피해 다니던 율과 노아였지만, 공격의 범위가 상당히 넓은지라 완벽하게 피하진 못했다. 결국, 파프니르가 용액 공격을 끝내고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 두 사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노아 : 율님 엠 괜찮아요?]

[율 : 아뇨; 출혈 때문에 계속 힐을 넣었더니;;]

[노아 : 엠 웬만큼 회복될 때까지 나한텐 힐 주지 말아요 포션으로 버텨볼게요]

[율 : 네; 죄송해요;]

[노아 : 파프니르 범위 벗어나서 리커버리하고 엠 회복하고 있어요]

[율 : 네]

노아의 말에 율은 동굴의 끝자락으로 향했다. 그리고 리커버리를 시전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런 율의 모습을 지켜보던 노아는 그대로 파프니르에게 돌진했다. 율이 엠을 회복하는 동안 파프니르에게 달려든 노아는 꽤나 오랫동안 파프니르를 상대했다.

공격하고, 저항하고, 회피하고, 다시 공격하고, 공격을 당하고. 한참을 고군분투하던 노아의 공격이 파프니르를 빗겨나갔다. 그러자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파프니르가 노아에게서 벗어나 거리를 벌렸다.

저를 공격할 만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물러나 버린 파프니르의 행동에 노아는 의아해하며 파프니르와 다시 거리를 좁혔다. 아니, 좁히려 했다. 멀찍이 떨어져 나가 바닥이 꺼질 정도로 힘을 주고 선 파프니르의 주변으로 미세한 진동이 시작됐다.

그 진동은 곧 바닥을 뒤흔들 정도의 큰 흔들림이 되었고, 파프니르가 서 있던 바닥에 쩍쩍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왠지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 엠을 회복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율이 벌떡 일어나 노아에게 달려갔다.

파프니르의 아래에 균열이 간 바닥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거대한 진동과 함께 파프니르의 온몸을 감싸듯이 휘몰아쳤고, 파프니르의 미끈한 눈이 붉게 물듦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포효 소리가 동굴 안을 왕왕 울렸다.

[파프니르가 광폭화를 시작합니다.]

[노아 : ??]

[율 : ?]

상황을 인지할 수도 없었다. 광폭화 알림이 뜨고, 파프니르가 몸을 잠시 움츠린다 했더니 그대로 브레스를 쏘아냈다. 그리고 주변에 공기의 울림 같은 타격 이펙트와 함께 두 사람의 캐릭터가 그대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로기 상태가 되어 쓰러진 두 사람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당황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파프니르의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그로기 상태로 공격을 한 번만 더 받는다면 그대로 전투 불능이 된다. 그러면 퀘스트 상황도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파프니르의 공격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손도 발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파프니르가 몸을 비틀며 꼬리를 휘두르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파프니르의 꼬리가 두 사람에게 직격하기 직전, 화면이 암전되며 이벤트 영상으로 전환됐다.

파프니르가 휘두르는 꼬리에 맞기 직전,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노아가 지척에 쓰러져 있는 율에게 구르듯 다가가 그를 감싸 안았다. 율을 감싸고 홀로 파프니르의 공격에 정통으로 직격된 노아는 공격의 반동으로 율을 감싸 안은 채, 동굴의 바닥을 구르듯 튕겨 나갔다.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노아는 율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자신의 너덜너덜한 오른팔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기침엔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놀란 율이 몸을 일으켜 노아를 살펴보려는데 멀리서 파프니르가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기어왔다. 율은 파프니르가 다가오기 전에 자신들의 주변에 생츄어리를 펼쳤다. 하지만 지척에 다가온 파프니르의 발 구르기에 바닥에 균열이 생기며 메마른 땅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 탓에 생츄어리의 형태가 무너져 내리며 스킬이 깨졌다.

생츄어리의 무효화에 아연실색한 율의 얼굴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잔뜩 흔들리는 눈동자로 위를 올려다보자, 파프니르의 거대한 앞발이 자신들을 향해 내리꽂히는 게 보였다.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율은 이번엔 자신이 노아를 보호하듯 그의 몸 위에 자신을 몸을 겹쳐 엎드렸다.

그 순간, 짐승의 거대한 포효 소리와 함께 동굴 안의 공기들이 비명을 지르듯 떨려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앞발로 두 사람을 짓누르려던 파프니르가 무언가에 놀란 듯 발을 걷더니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드리워진 그림자가 순식간에 없어지고, 넓어진 시야로 눈을 든 율은 또 한 번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포효 소리에 삐걱삐걱 시선을 들었다.

동굴의 천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 하나가 커다란 날개를 펼친 채,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그 동물은 곧 날개를 접어 몸통 옆에 붙이더니 추락하듯 파프니르를 향해 활강했고, 곧 제 몸을 파프니르에게 충돌시킨 후, 튕겨 오르듯 공중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돌며 율과 노아의 앞으로 착지했다.

[크르릉.]

사나운 그로울링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동물은 접었던 날개를 펼쳐 갈무리하더니 자신의 몸 옆에 붙였다. 그리고 그 날개는 몸통 옆에 그려진 무늬로 되돌아갔다.

호랑이를 닮은 몸체에, 앞발 뒤로 날개 같은 문양이 몸통에 그려져 있는 커다란 동물. 그니타 평원의 입구에서 두 사람을 도왔던 그 작은 호랑이가 성체가 되어 노아와 율의 앞에 서 있었다.

놀란 두 사람이 멍하니 동물을 바라보고 있자, 동물은 흘끗 뒤를 돌아본 후 고개를 까딱거리곤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동시에 물러났던 파프니르가 제자리에서 발 구르기를 몇 번 하더니 빠른 속도로 동물에게 달려들었다. 동물은 파프니르의 공격을 맞받아치며 조금씩 두 사람에게서 멀어져 갔다.

동물이 파프니르의 주의를 끌며 멀어져 가자 율은 얼른 노아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힐을 해줘도 노아의 상처는 나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큐어를 해봐도 노아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더욱 악화하여 가기만 했다.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자신이 흘린 피 웅덩이 속에 누워 있는 노아의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흐릿해져 가는 눈동자 속에 비친 율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그 사이, 파프니르와 상대하던 동물도 조금씩 밀리며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절망적인 사태에 율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볼렌테 데오)

그리고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 하나가 빛의 홍수와 같이 쏟아져 내려 노아의 몸을 흠뻑 적셨다. 흘러넘치듯 노아의 주변을 감싼 빛의 홍수가 사라지고 난 후, 노아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외형으로 탈바꿈해 깔끔하게 회복이 되어있었다.

변해버린 노아의 모습에 놀란 율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노아가 잠시 제 머리를 짚으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파프니르와 격전을 벌이는 동물의 모습을 보고 놀라며 율을 바라봤다. 그리고 노아의 눈동자에 비친 율 또한 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놀란 노아가 무어라 말하며 율을 가리키자, 율이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모습에 더 놀랄 겨를도 없이 자신들의 옆으로 커다란 무언가가 날아와 벽에 처박히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놀란 두 사람이 돌아보자, 호랑이를 닮은 동물이 바르작대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물의 뒤를 쫓듯 파프니르가 재빠르게 다가와 동물의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인 라피뎀)

놀란 율이 동물에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동물의 주변으로 녹색 빛의 벌집 같은 배리어가 펼쳐지며 파프니르의 공격을 튕겨냈다. 반동에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른 파프니르가 붉게 물든 눈을 희번덕이며 곧바로 율에게 달려들었다.

(아나토메)

하지만 파프니르가 율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노아의 검이 파프니르에게 직격하며 파프니르의 앞발 하나가 잘려나갔다. 고통에 찬 비명이 찢어질 듯이 울려 퍼졌다. 동굴 한복판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파프니르의 모습을 바라보던 율이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았다.

(콘템플라티오)

율이 경건히 자세를 잡고 앉아 명상을 시작하자, 율의 머리 위엔 작은 게이지 하나가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노아가 루아흐라는 성령을 불러냈다. 노아가 불러낸 성령은 푸른색의 불투명한 여인의 인영으로 노아의 곁에서 떨어져 나와 명상을 하는 율의 왼편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응답하듯 율이 프뉴마라는 성령을 불러냈다. 노란색의 불투명한 여인의 인영은 율의 오른편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두 성령의 노랫소리가 하나의 공명이 되어 합쳐지고, 율의 머리 위에 게이지가 점점 빠르게 차올랐다. 그리고 게이지가 가득 찼을 때, 율이 맞잡았던 손을 풀어 앞으로 뻗었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

두 성령의 노랫소리에 율의 노랫소리가 합쳐졌다.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음률이 동굴 안을 메우더니 노아의 주변에 빛의 조각들이 배리어를 치듯이 둘러쌌다. 자신의 주변에 떠오른 빛의 조각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노아는 시선을 돌려 멀지 않은 곳에서 성령들과 함께 노래하는 율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런 노아가 방심한 사이 파프니르가 노아에게 달려들어 꼬리를 휘둘렀다. 노아는 대책 없이 공격에 그대로 노출이 되었고, 엄청난 데미지를 입고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타격을 입은 동시에 연이어 힐이 들어오며 체력이 가득 찼다.

놀란 노아가 율을 바라봤다. 하지만 율은 여전히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채, 손을 앞으로 뻗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잠시 율을 바라보던 노아는 시선을 들어 파프니르를 바라봤다.

(카타스트로페)

노아의 등 뒤로, 무수한 검들이 부채처럼 펼쳐졌다.

(퀴리오스)

그리고 그 무수한 검들이 빗발치듯 파프니르에게 날아가 주변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파프니르에게 공격을 가했다. 주변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공격을 하는 검들의 동선에 파프니르가 마구 몸부림을 치며 검들을 떨구려 애썼지만, 파프니르의 움직임에 창상은 더욱 많고, 깊어질 뿐이었다.

가만히 서서 무수히 많은 검을 쏘아내고 있는 노아의 뒤쪽으로 거대한 동물이 튀어나와 파프니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노아의 검들은 용케도 그 동물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가고 있었다.

한참을 파프니르에게 달려든 동물과 함께 빗발치던 검들이 사라지고, 멀찍이 망부석처럼 서 있던 노아가 파프니르와의 거리를 좁히며 들어왔다.

(아나토메)

(파토스)

(니르케!)

(엑소시아)

그리고 연달아 끊임없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휘몰아치는 연계는 딜레이조차 없어 보였다. 엠도 마르지 않은 듯 끊임없이 이어진 공격에 파프니르가 쓰러졌고, 동시에 노아의 주변에 떠다니던 빛의 조각들도 사라졌다.

(메 아마)

인 데오 스페라무스를 끝낸 율이 몸을 일으키며 또 다른 스킬을 사용하자, 노아에게서 푸른색 이펙트가 빠져나와 율에게 빨려들어 갔다. 넓은 동굴 안엔 상처 하나 없이 우뚝 서 있는 노아와 율, 그리고 호랑이를 닮은 동물 한 마리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화면이 암전되며 게임 화면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재생되던 영상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율은 화면에 떠오른 알람 글을 보았다.

[캐릭터가 아크비숍으로 전직하였습니다.]

[컴패니언 노아님께서 퓨리 나이트로 전직하였습니다.]

[사흉 궁기가 노아님께 귀속됩니다.]

어안이 벙벙한 사태에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파프니르의 시체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남아있는 전리품 상자를 줍고는 한참을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레바테인 x1

그리다보르의 지팡이 x1

드랍형 S급 레어 아이템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전설 아이템이었다.

***

퀘스트를 진행하는 듯 한참을 말이 없던 두 사람이 조용히 쉼터로 돌아왔을 때, 쉼터에 남아 있던 일부의 길드원들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헉 하는 이모티콘을 연달아 띄웠다. 그리고 길드 창이 난리가 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길드] [질풍 : 노아 형이랑 율님 전직했어!!!!!!]

[길드] [도련 : 헐?!]

[길드] [복세편살 : ???]

[길드] [니지 : 진짜?!]

[길드] [무지개 요정 : 뭐야!?! 쉼터야!?!!!]

[길드] [KING Husband : 대박!!!!]

[길드] [광인한 남자 : 나도 보러 갈래!!!]

[길드] [세츠나 : 나도!!]

너도나도 전직했다는 노아와 율을 보러 쉼터로 몰려든 이들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노아와 율이 아니었다. 노아의 허리에 찰싹 붙어 엎드려 있는 커다란 궁기였다.

[무지개 요정 : 저...]

[무지개 요정 : 저건 뭐여?]

[광인한 남자 : 루팅펫이야? 저런 펫이 있었어??]

난데없는 소란스러움에 궁기가 슬쩍 눈을 들어 길드원들을 훑어보곤 꼬리를 좌우로 휙휙 흔든 후, 관심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도련 : 펫이 아닌 것 같은데? 뭐야?]

[노아 : 아마 퓨리 나이트 사역 수 같아요]

[니지 : ......반려묘 아니고?]

[츄파 : 반ㅋㅋㅋㅋ렼ㅋㅋㅋ묰ㅋㅋ]

[무지개 요정 : 별 희한한 게 다 있네...그나저나 두 사람 직업명이?]

[노아 : 퓨리 나이트요]

[율 : 아크비숍이요]

[KING Husband : 생소하다...]

[노아 : 그런 것보다...저희 전설 무기 먹었어요]

[무지개 요정 : ?!!?!?!?!]

[질풍 : ?!!?!]

[세츠나 : 헐?!!?!]

[KING Husband : ????????]

[광인한 남자 : 대박....]

[노아 : 마지막 퀘스트에서 보스 같은 몬스터를 잡게 됐는데...그거 잡으니까 하나씩 떨구더라고요]

[무지개 요정 : 이름이 뭐야???]

[노아 : 레바테인이요]

[율 : 그리다보르의 지팡이요]

[도련 : 처음 들어봐;;;]

[세츠나 : 히든 직업 전용 히든 무긴가 봐...]

[노아 : 근데 성장 템이에요 지금 옵션은 보통 레어 템이랑 엇비슷해요]

[광인한 남자 : 뭐가 됐든 부럽다...]

[무지개 요정 : 스킬은 어떻게 변했어? 로나때랑 같진 않을 거 아냐]

[노아 : 기존스킬은 전부 사라졌고... 스킬 스텟 전부 초기화되어있어요 다시 찍어야 하는 것 같은데 스킬 명들이 다 생소해서 애 좀 먹을 것 같아요]

[무지개 요정 : 율이도 같은 상황?]

[율 : 아...네;]

[무지개 요정 : 기존 스킬에 새로운 스킬들 포인트 올려서 찍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노아 : 네?]

[무지개 요정 : 나 너희 전직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있거든]

[율 : ??]

[무지개 요정 : 보탐가잨ㅋㅋㅋ]

무지개 요정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쓸모 있어 보이는 위주로 스킬을 찍은 노아와 율은 글리오라 오로가 나오는 포인세티아 변방 필드로 향했다. 보스 타임도 보스 타임이지만, 두 사람의 스킬들이 궁금했던 길드원들도 대거로 몰려와 풀 파티가 되었다.

[노아 : 율님 파프니르 잡을 때 영상으로 봤던 스킬들 기억해요?]

[율 : 어...네 기억해요 스킬도 찍어놨어요]

[노아 : 그거 글로 잡을 때 한 번 더 사용해 볼 수 있어요?]

[율 : 네 해볼게요]

노아와 율이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멀뚱히 두 사람을 지켜만 보던 길드원들에게 노아가 다가왔다.

[노아 : 글로 발견하면 치지 말고 조금 기다려 줘요]

[무지개 요정 : ??]

[노아 : 퀘스트 중에 율님이 사용했던 스킬이 있었는데... 그거 다시 한번 해보려고요 어떤 효과인지 퀘스트 중에는 알 수가 없었거든요]

[무지개 요정 : 알았어 그러지 뭐]

[도련 : 우선 글로부터 찾죠]

도련의 말에 길드원들이 각자 비프로스트의 조각을 사용해 필드 곳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각자 글리오라 오로를 찾아 필드를 헤매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리오라 오로를 찾아다닌 지 5분 남짓. 질풍이 글리오라 오로의 위치를 알려왔다.

[길드] [질풍 : 5시!!!! 튀어와여!!!]

다급한 질풍의 채팅에 모두 일사불란하게 5시 지점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금색 사슴벌레 같은 글리오라 오로가 보였다.

[노아 : 율님 우선 버프부터 주세요]

노아의 말에 율이 허둥지둥 스킬을 찾아 사용했다. 평소 하던 대로 스킬을 누르고 타깃을 지정하려는데, 스킬을 누르는 순간, 파티원 전원에게 버프이펙트가 떠올랐다.

[율 : ??]

[세츠나 : 전체스킬????]

[질풍 : 헐....]

[KING Husband : 전체 스킬인 것만 놀라운 게 아닌 것 같은데...]

[질풍 : 엉?]

[KING Husband : 스텟 가중치가 더 들어오는데;]

[니지 : 유지 시간도 두 배 이상 길어;]

[율 : ;;;;;]

[광인한 남자 : 쩐다 진짜...괜히 히든 클래스가 아닌가봐...]

웅성거리며 높은 관심을 보이는 길드원들의 반응에 율은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쭈뼛거리며 마저 버프를 모두 돌렸다.

올 스테이터스 증가를 시켜주는 (베네딕 티오) 이동속도와 공격속도, 회피를 올려주는 (베네피치움) 15번의 방어를 해주고, 방어 횟수가 끝나면 자동으로 데미지 감소를 시켜주는 (인 라피뎀)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을 모두 올려주는 (아우덴티아) 지속적으로 엠을 회복시켜 주는 (클레멘티스)

전부 다 전체 스킬로 사용하는 즉시 파티원 전원에게 버프이펙트가 떠올랐다. 게다가 생소한 스킬 명과 더불어 버프이펙트 또한 프리스트와 다르게 한층 더 웅장하고 화려했다.

(콘템플라티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콘템플라티오를 사용한 율의 캐릭터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맞잡고 명상을 시작했고, 그런 율의 머리 위로 게이지 하나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비활성화되어 있던 노아의 루아흐가 활성화되었다.

(루아흐)

노아가 바로 루아흐를 사용하자, 푸른색의 성령이 율의 왼편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율의 비활성화되어 있던 프뉴마도 활성화되었다.

(프뉴마)

연이어 율이 프뉴마를 사용하자, 노란색의 성령이 율의 오른편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게이지가 더욱 빨리 차올랐다. 하지만 게이지가 모두 차오르기 전에, 보스 타임을 돌고 있던 다른 파티 하나가 글리오라 오로를 찾아 모여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글리오라 오로를 뺏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카타스트로페)

그 상황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노아가 스킬을 사용했다. 무수한 숫자의 검들이 노아의 뒤로 부채처럼 펼쳐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멍하니 노아를 바라봤다.

(퀴리오스)

연이은 스킬에 모든 검이 한꺼번에 글로에게 빗발치며 종횡무진 돌진했다. 동시에 게이지가 모두 차오른 율이 맞잡았던 손을 풀어 앞으로 뻗었다.

(인 데오 스페라무스)

두 명의 성령과 함께 노래하는 율의 노랫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지고, 파티원들 모두에게 빛의 조각들이 배리어처럼 둘렸다. 율의 스킬 완성과 보스의 우선권을 가져온 노아 덕분에 길드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스킬들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모두 율이 걸어준 스킬의 효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용하는 모든 스킬에 엠이 들지 않았다. 캐스팅과 후딜레이를 없애줬고, 무엇보다 스킬의 재사용시간인 쿨타임까지 없애준 듯했다. 그 말은 즉, 직업별 궁극기와 히든 스킬이 무한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또한, 보스에게 피해당한 파티원들에겐 바로 힐이 되며 체력은 언제나 만피를 유지했다.

11명의 폭포수 같은 공격에 글리오라 오로는 형태도 없이 녹아내렸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된 상황인데도 율의 스킬은 아직도 발동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스킬이 끝나고 율이 몸을 일으켰다.

[질풍 : 대박...진짜 대박...]

[무지개 요정 : 이 무슨 벨붕 스킬이야...]

[세츠나 : 서버에 유일하니까 벨붕이라도 우린 오예죠...]

[KING Husband : 오진다...]

[노아 : 율님 그 스킬 쿨타임 얼마에요?]

[율 : 아... 30분...이요;]

[광인한 남자 : 쿨탐도 오지네...]

[율 : ;;;]

[노아 : 이 스킬 사용하고 난 다음에 다른 스킬 하나 더 쓰지 않았었나요?]

[율 : 아]

(메 아마)

율이 스킬을 사용하자 노아에게서 파란색 이펙트가 빠져나와 율에게 빨려 들어갔다.

[무지개 요정 : 뭐야?]

[노아 : 엠 빨아갔는데요?]

[도련 : 엠??]

[율 : 스페라무스 쓰면...발동되는 동안 제 엠이 0이 되요]

[노아 : 네?]

[율 : 그래서; 메 아마로 노아님 엠 일부를 가져오는 것 같아요]

[노아 : 얼마나 차는데요??]

[율 : 20프로...정도;]

[노아 : 잘못 쓰면 위험하겠는데요...]

[율 : 다른 스킬도 하나 더 있긴 한데...써 봐도 되나요?]

[노아 : ?? 써 봐요]

(메 아마테)

율이 스킬을 사용하자 이번엔 노아를 제외한 파티원 모두에게서 파란색 이펙트가 빠져나와 율에게 빨려 들어갔다.

[율 : 이제 만엠이에요;]

[노아 : 파티원 많을 때는 두 번째 거로 쓰는 게 좋겠어요]

[율 : 네]

노아와 율에게 정신이 팔려 떠들썩한 레인보우 힐 길드원들은 멀찍이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또 한 팀의 파티가 얼마나 경악에 차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