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53화 (953/956)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는 나윤을 향해 물었다.

"누나도 방송할래?"

"방송?"

어리둥절해 머리를 정리하던 손을 멈춘 나윤의 동그란 눈이 단유를 향했다.

"누나 개인 채널 열어서 하는 거 말야. 연습생 애들처럼."

"에이, 아니야. 나 못해."

말도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손을 내젓는다.

"리포터 경력도 있고, 예능도 하니까 애들보다는 더 잘하지 않을까?"

"얘, 그거랑 그거랑 같니? TV는 방송 작가들이 대본 다 써주고 거기에 애드립만 조금 첨가해서 하는 건데, 이건 내가 다 해야 하는 거잖아?"

"작가든 연출이든 붙여주면 할 수 있고?"

"…갑자기 왜 그러는데?"

"생각해보니까 좋은 방법인 거 같아서. 연습생들 방송도 반응이 좋고, 덕분에 벌써 빨리 데뷔만 하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까.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도 많이 하더라고. 마케팅 효과든 홍보 효과든 다 좋으니까."

"…솔직히 자신 없는데."

"왜?"

"혼자 진행을 해야 하잖아? 리포터랑 MC는 아예 다르다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는 거지. 그리고 이런 것도 하면서 노하우를 쌓다보면 언젠가는 MC자리도 올 수 있지 않을까?"

"애가 뭘 모르네. MC가 그렇게 쉽게 되니? 게다가 이미 시장은 포화상태야. 우리 나라에 날고 기는 MC들 자리는 쉽게 안 바뀐다고."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거 아니면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언젠가는 그렇겠지. 하지만…그래도 난 자신없어. 아니, 현실적으로 나한테까지는 그 자리가 오지 못할 거야."

"난 그렇게 생각 안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며? 우리 나라에서 방송되는 예능 프로가 몇 갠데. 케이블 방송에 지역 방송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잖아? 꼭 주요 지상파 방송만 방송인 것도 아니니까, 지방이든 케이블이든 방송되는 프로의 MC자리부터 노리는 거지. 그리고 거기서 좋은 활약을 하면 혹시 모르잖아? 지상파까지도 갈 수 있을지."

"너 대표되고 나서 되게 낙관적으로 변한 거 같아?"

"칭찬이라면 고마워."

"칭찬으로 듣는다니 내가 더 고맙네.

"아무튼 아직은 잘 모르겠어. 게다가 단순히 생각해도 고민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너무 고민하지 마. 고민하는 건 회사에서 할 일이고, 누나는 회사가 만들어준 밥상에 숟가락만 얻으면 돼."

"대표님께서 이렇게 마냥 낙관적이면 안되는데?"

"누나한테는 그래도 돼."

"왜?"

"누나는 잘 할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하아. 그렇게 말하면 뺄 핑계가 없잖아?"

"추진해 볼게."

****

"인터넷 스트리밍은 괜찮은 홍보 수단인 동시에 수입이 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넓게 보급된 데다가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폰이나 PC에서도 TV에 준하는 화질로 시청이 가능해, 과거에 비하면 사용자들의 거부감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이기 때문에 가능한 컨텐츠와 자유로운 분위기도 시청자들의 호응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주요 요소입니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컨텐츠 사업팀 직원의 요지는 결국 효과가 좋으니까 방송 채널을 넓히는 게 좋다, 라는 것이었다.

"대신 1인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들과는 차별을 두기 위해 좀 더 많은 스태프와 비용이 투자되어야 할 것인데, 대표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려면 처음 저희가 산정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들 수 있습니다."

"돈 걱정은 마세요. 지금 고정비도 안정적인데다가 최대한 투자로 성장세를 끌어올려야 할 시점이니까요. 역량이 닿는 데 까지 모두 쓰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진행하세요."

"그렇다면야 문제가 없습니다. 또 희망적인 것은 연습생 채널에서 선보인 미러식 디스플레이의 선전 효과가 꽤 좋았다는 반응입니다. 전례가 생겼으니 이를 이용해 협찬사를 끌어와 돈을 절감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방송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스태프인데 이것도 새로 채용 공고를 내어 모집하면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연습생들 채널을 운용하는 것은 현재 컨텐츠 팀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전문 인력을 고용했다기보다는 카메라 하나를 연습실에 설치해두고 24시간 리얼버라이어티마냥 찍은 뒤에 편집만 그럴싸하게 할 뿐이어서 따로 전문 연출가나 작가진을 구성하고 있진 않았다. 편집을 담당한 직원의 수고가 많을 뿐이다.

"그 부분은 컨텐츠 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세요. 예산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문제는 없는 건가요?"

''네."

자신감 넘치는 컨텐츠 팀의 확언에 단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연습생 채널의 시작은 사실 기존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해도 할 말이 없다. 신선한 마스크와 그에 비례하는 풋풋한 매력, 그리고 연습생 특유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어설픔이 어우러져 딱히 컨텐츠를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보기에 무리가 없는 영상이 만들어졌던 탓이 컸다.

게다가 연습생 채널이 비교적 빠르게 입소문이 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미러식 디스플레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영상을 본 사람들은 CG를 넣은 게 아니냐고 갑론을박할 정도로 댓글창이 난리가 났었다. 연습생들이 거울 속의 이미지를 따라 안무를 연습하는 장면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안무가 끝난 후에도 게임처럼 거울 속에서 안무 평가가 줄줄 떠오르니 신기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연습생들의 생방송에서 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며 거울 속 디스플레이가 과학적 기술의 산물임을 입증하며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동시에 해당 디스플레이를 제공한 업체에서 이에 대한 기사까지 제공하면서 연습생들 채널에 대한 관심도가 대폭 상승했었다.

더구나 거울 속 이미지를 반복 연습하고 연습이 끝나면 후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연습이 필요한지를 제시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일인지라 대중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타 회사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관심이 이어져 과거 위탁 연습생 모집을 시도했던 사실을 들먹이며 위탁생을 받지 않는지 문의하는 회사도 있었다. 물론 연습생 오디션이 언제냐며 회사로 연락을 해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영상에 있기도 해서 연습생 채널이 생각보다 빨리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아티스트의 채널은 그런 식으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연예인의 일상 브이로그 정도를 찍는다고 한다면 특별한 준비없이 바로 시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튜브며 각종 동영상 사이트에서 범람한다 할 정도로 많은 게 브이로그 일상물이며 연예인들의 브이로그도 지금은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 한 마디로 레드오션이라는 말. 이런 상황에서 인지도가 부족한 아티스트의 브이로그 일상물은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다는 게 컨텐츠 팀의 결론이었다. 시은 정도가 된다면 이런 고민도 없겠지만, 애초에 시은은 회사에 오기 전부터 포탈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을 이용중이었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가 설정되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컨텐츠 팀은 벽을 만나 쉽게 넘지 못하는 중이었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없습니까?"

팀장의 질문에 팀원들은 하나같이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거나 입술을 잘근 깨무는 등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부팀장이 팀원들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저희도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경험치를 쌓지 않으면 안될것 같습니다."

"속 편한 소리 마세요.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어도 될지 모르지만, 방송에 나오는 아티스트들에겐 이미지가 걸린 문제입니다."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괜찮은 퀄리티의 영상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티스트에게 되려 폐만 끼칠 뿐이고, 이는 컨텐츠 제작팀의 팀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간부진의 대격변이라 할 만한 인사이동이 벌어진 이후, 자기 자리를 지킨 몇 안 되는 간부였던지라 개인적으로는 꽤 필사적으로 연습생 채널 오픈이라는 프로젝트에 전력을 다했다. 실패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편집 영상을 두 번 세 번 검수하는 일도마다 않고, 영상 업로드 뒤에도 사람들의 댓글들을 직접 찾아보고 감수하며 다음 영상 편집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리고 나름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며 한껏 어깨가 오른 상황에서 새롭게 내려온 미션. 팀장은 이번에도 실패해선 안 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허락도 있으니 제대로 된 인력을 구하는 게 어떨까요? 솔직히 연습생 채널은 조금 주먹구구식이었던 데다가 운도 좋았던 편이지 않습니까? 신영택 대리가 편집을 못 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신 대리도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게다가 지금보다 더 일이 많아지면 혼자로선 버거우니까 편집을 제대로 할 사람도 구해야죠."

"그건 당연한 이야기고요.''

"거기에 연출과 작가도 구성해야 제대로 된 세팅이 되지 않을까요? 얻어걸리란 식으로 이것저것 하는 건 효율도 좋지 않으니까, 정확히 컨셉을 잡고 촬영한 뒤, 촬영본을 편집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그걸 제대로 할 만한 인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차라리 의뢰를 하는 게 어떨까요? 영상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의뢰를 하죠?"

어찌 생각하면 그게 최선이다.

아니, 어떻게 생각해도 그게 최선이었다. 그게 최선이고 그게 컨텐츠 제작팀의 일이다. 괜찮은 업체를 찾아서 미팅하고 계약하고 관리하는 일이 제작팀의 일인데, 지금까지 그 일을 제대로 할 겨를이 없어 고작해야 소속 아티스트들의 협찬 파트너쉽 업무만 봐주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그렇게 진행하기로 하죠. 그래도 우선은 어떤 방향성으로 갈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잡고 있어야 이야기 하기 쉬울 테니 거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다른 업체와 계약이요?"

"아무래도 전문 업체와 계약을 맺고 영상을 촬영을 진행하는 게 퀄리티도 있고 좋지 않을까요?"

단유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되물었다.

"뭐,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만, 도대체 어떤 영상을 구상하시기에 전문 영상 업체까지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타사 연예인들 출연 영상들을 찾아보고 벤치마킹하기에 적당할 만한 사례들을 골라 봤습니다. 여기 보시면…."

어두워진 회의실 한쪽 벽에 프로젝트가 쏘아낸 빛이 영상을 만들어냈다. 동영상 플랫폼에 올라온 여러 연예인들의 영상물 들은 이미 단유도 찾아본 적이 있었기에 굳이 다 볼 필요도 없었다.

단유는 컨텐츠 팀의 설명을 들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전문 업체와 계약해 좋은 영상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이해하겠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좋은 건 알겠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라는 의문을 지우기가 어렵네요."

단유가 선뜻 결정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팀장은 돌 맞은 개구리마냥 어깨를 움츠리고 단유의 눈치를 살렸다.

"혹시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십니까?''

"좋은 생각까지는 아니고, 단지…그렇게 하면 좀 자연스러운 모습이 덜 나오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TV의 시청자층과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층은 결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물론 두 매체의 영상물을 보는 사람은 같지만, 두 영상물에 기대하는 질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각종 필터에 걸러지며 정제된 영상을 볼 때가 TV라면, 인터넷 방송은 필터링이 풀린 영상물이죠. 그렇다고 선정적이거나 금기시 되는 것을 아무렇게나 방송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영상의 질감이랄까, 느낌이랄까 그런 게 조금 다르단 말이죠. TV에서는 풀메이크업에 화려한 협찬 의상으로 꾸미고 나와야 한다면, 인터넷에서는 노메이크업에 츄리닝만 입고 나와도 좋을 수 있다 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내츄럴한 느낌을 원하신다는 뜻이시죠? 그것도 충분히 재현 가능합니다만."

"그걸 그대로 재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느낌으로 갔으면 한다는 뜻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지금 거의 10년째 개인 방송을 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는 스태프도 없고 작가나 연출도 없지만, 혼자서 방송하고 편집하고 영상도 올리고 그러거든요?"

물론 지금은 바쁜 남편을 보필하느라 제대로 방송을 못할  때도 있다지만 그래도 긴 시간을 방송하며 구축된 팬층은 여느 스트리머들 못지않다 할 수 있었다.

"그 친구처럼 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으로 가는 게 좀 더 경쟁력 있지 않을까요? 지금 이런 사례들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단유는 손가락으로 회의실 한쪽 벽에 멈춰있는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말을 하던 도중 단유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걔가 지금 놀고 있지, 아마?'

"그래서 나보고 와달라고? 한국에?"

"어차피 지금 비시즌이잖아? 명수랑 같이 한국 올 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네가 말한 건 그냥 오란 소리가 아니잖아?"

"내가 그동안 너한테 지원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무상지원 아니었어?"

"그래서 싫어?"

"…아니, 가야지. 친구가 도와달라는데 도와줘야지."

의리녀 상미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무 생각없이 귀국한다고 즐거워하는 명수를 데리고.

< Last forever. (7) > 끝 ⓒ 황금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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