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foreve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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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의 여러 환경을 통해 대중들은 평가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숱하게 제작되어 방영되었던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 단유가 제안한 형태의 방송도 다양하게 섭렵하며 대중은 때로는 심사위원처럼, 때로는 비평가가 되어 연습생들을 분석하고 평가한다.
또한 호감도가 낮은 상태에서의 평가는 냉정한 경우가 많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익명성에 숨을 수도 있으니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비판과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기도 한다.
과장하지 않고, 데뷔도 전에 안티가 생겨 융단폭격을 맞는 경우도 생기니 단유의 제안에서 마냥 긍정적인 면만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만약 방송을 원한다면, 보통의 각오로는 견딜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연습생들은 고뇌에 찬 보헤미안들 같은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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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의 다음 행보는 소속 아티스트들과의 만남이었다. 매니지먼트 기획사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역시 어떤 아티스트가 소속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고, 그런 기준에서 D&D 엔터테인먼트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려 시은이라는 대스타가 소속된 회사가 보잘것없다고 말하긴 어려울 테니까.
“그러니까 얼마든지 감사하게 생각해도 되요.”
몸매를 모두 가리는 롱패딩을 입고도 이쁘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늘씬한 다리를 꼬고 거만한 척을 해 보이는 시은의 장난스런 눈빛이었다. 물론 스타이기에 가능한 자세다. 그리고 갓 대표가 된 단유로선 응당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회사가 어지러운 분위기에서 흔들릴 때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리를 지켜준 사람이니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물론이죠. 그래서 말인데요, 그런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저희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뭐든 해 줄 수 있나요?”
“가능한 조건 내에서는요.”
“어디까지 가능한데요?”
그녀의 커다란 눈에 5살짜리 꼬마 여자 아이가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글쎄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고 싶은데요?”
“음, 우리 대표님 돈 많다고 소문났던데 돈 달라고 하면 되나요?”
“돈을 원하시나요?”
미안하게도 단유는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질 못한다. 흥이 식어버린 시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농담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네. 솔직히 바라는 건 없어요. 돈은 저도 충분히 벌고 있으니까. 차 바꾼지도 아직 1년이 안 지났고.”
“그래도 뭔가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럴 필요 없어요. 대표님이 되셨다고 뭐라도 해주고 싶으신 모양인데, 전 이 회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고 계약 파기하고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 신경쓰지 마시고요. 대신 다른 사람들한테 신경 쓰세요.”
다른 소속 연예인들 중에는 회사에서 벌어진 일에 우려를 드러내며 몰래 다른 기획사를 알아본 이도 있었다. 다행히도 단유가 빠르게 일을 수습하면서 실제 떠난 이는 없지만, 조금 서먹해져버린 이는 있었다.
그런 이유때문에라도 단유는 시은이 고마웠다.
“정말 바라는 게 없으세요?”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프리하게만 해주시면 만족해요. 무리하게 스케줄 잡지 말아주시고. 아, 그리고 내년에 낼 앨범 준비나 하게 여행 보내주실래요?”
“여행이요?”
“제 스탭들이랑 다 같이 여행이나 가서 쉬고 오면 딱이겠는데요?”
“그런 거라면 언제든 가능하죠.”
“그거 해주시면 되겠네요.”
“너무 소박한데요.”
“제 이미지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 욕심 별로 없어요. 전 그냥 제 음악 계속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음악 활동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최선을 다해 지원해드릴 예정입니다. 전 대표님이 약조하신 내용은 저 역시 지킬 테니까요.”
대훈은 시은에게 음악적 성공과 자유로운 활동을 약속했다.
“오케이, 그럼 일 이야기는 여기서 끝?”
“뭐, 네.”
시은은 밝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럼 사적인 이야기로 넘어가서, 같이 저녁 한 번 드실래요?”
“저녁이요?”
“전에 언니랑 같이 밥 한 번 먹은 이후로 같이 자리한 적 없잖아요? 새로 대표도 되셨는데 축하도 할 겸 밥 한 끼 하시죠?”
“시간 내 볼게요.”
“언니도 부를 테니까 전처럼 다 같이 술도 하고 그래요. 그때 되게 재밌었는데.”
단유는 스타일리스트인 도경과 시은, 대훈과 함께 했던 술자리를 기억해냈다. 즐겁다면 즐거운 기억이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술을 마시느라 힘들었던 기억도 있었다.
재미보다는 곤혹스러웠던 느낌이 강했던 술자리, 였음을 떠올리며 단유는 볼을 긁적였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다음 날, 단유는 그들과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속으로 다짐까지 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나오니 차마 거절할 핑계가 없었다.
“술도 잘 마시더만 괜히 또 빼시네.”
시은은 벌써부터 한 잔 들이킨 것처럼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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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을 이끌고 점멸하는 가로등 불빛 아래를 지나던 아이는 하마터면 가로등 쇠기둥에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다행히 스마트폰 건너로 미리 기둥을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이래서 길을 걸을 때 스마트폰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아이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찾아서 봐도 되는 영상이긴 하지만, 라이브로 진행되는 영상과 그 옆으로 이어지는 댓글들을 같이 감상하며 즐기는 맛은 지금 당장이 아니면 느끼기 힘들기에 아이는 스마트폰 속 작은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스마트폰에서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는 이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신생 기획사의 연습생이었다.
―지금 두 시간 내리 안무연습을 하느라 힘들어서 더는 춤을 추기 힘들겠네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못할 게 뭐 있겠어요? 그렇죠?
땀방울이 송글 맺힌 연습생의 번들거리는 이마까지도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다, 는 게 아이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게 팬심이구나 느끼며 동시에 자기와 같은 마음으로 연습생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댓글들도 살폈다. 만약 누군가 악의적인 댓글을 달면 바로 신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 시청하고 있는 스트리밍 방송에 대해 알게 된 건, 시은 때문이었다. 사생팬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사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쉬는 시간마다 시은의 영상을 찾아보거나 그녀의 SNS를 수십 번씩 들락날락 거리는 열정을 보이던 아이였다. 심지어는 그녀의 소속사에서 공지하는 스케줄에 변동사항은 없는지 매일매일 체크하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찬가지로 시은의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소속사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가 홈페이지에 뜬 공지 팝업을 보게 되었다. 회사에 속한 연습생들의 리얼한 모습을 생방송으로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의 홍보 광고였다.
“와, 얘네들 데뷔하나 보네.”
시은의 팬클럽에 속한 이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연습생들이었다. 우연히 함께 했던 자원봉사 활동 중에 만난 연습생들의 우월한 외모 탓도 있지만, 역시 시은의 후배라는 이름으로 종종 시은의 SNS에 모습을 드러내던 탓이었다.
그러나 SNS에 올라오는 사진에 나오는 것 외에 그들에 대한 정보는 알 방법이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그들에 대한 관심은 그저 얼굴은 안다, 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방송이란 걸 한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겼다.
“한 번 볼까?”
팝업에 연결된 페이지에서 등록된 영상을 클릭하고 감상을 했다. 전문가의 촬영과 편집으로 보기에 깔끔한 영상이기도 했지만, 풋풋하기 그지없는 연습생들의 브이로그 일상물 같은 영상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억지 대본을 만들어 어색한 연기를 펼치는 대신 실제 연습 과정이라거나 식사를 위해 모여서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들을 엿듣는 재미가 있었다.
괜찮네, 정도가 그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아이가 느낀 감정이었다. 그러나 특별히 마음이 동한다거나 관심이 생겨 계속 찾아봐야지, 라는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시은의 스케줄을 확인할 목적으로 찾던 소속사 홈페이지에서 지속적으로 영상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한 편 두 편 찾아보게 되었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데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습생들의 노력을 보면서 조금씩 그들의 다음 영상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새 아이는 연습생들 개개인의 소소한 매력들을 찾게 되었고, 그것들을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연습생들에 대한 호감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직까지는 시은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그들이 연습실에서 흘리는 땀방울과 샐러드를 먹으며 토로하는 고민들에 공감하며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자기와 비슷한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작은 커뮤니티 카페도 생기고 연습생들에 대한 작은 정보들이 교환되며 그들이 어떤 이들이며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이야기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정보를 조금씩 모으다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매력이 보이기 시작하고 개중에는 정말 꼭 데뷔만 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시은의 팬카페 접속률만큼이나 연습생들의 팬카페도 자주 찾게 되었고, 이미 봤던 영상인데도 두 번 세 번 반복 시청을 하며 미소를 짓는 자신을 발견했다.
―부디 데뷔만 해 다오.
팬카페에서는 그런 글들이 자주 올라왔다. 같은 마음이었다.
연습생들의 팬이 많아지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지더니 회사에도 닿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팝업 공지가 떴는데 생방송을 진행한다는 소식이었다. 아이는 부푼 마음을 안고 방송을 기다렸다.
첫 생방송은 기존의 편집 영상과는 사뭇 달랐다. 채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있었다. 게다가 다행히도 연습생들 중에는 진행에 소질이 있는 아이도 있어 방송이 중구난방으로 튀지 않아 팬심이 아니더라도 보기에 거북하거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생방송 직후 팬 카페에서는 연습생들에 대한 호감이 부쩍 올랐다는 감상들이 줄을 이었다. 아이도 마찬가지여서 그날 이후 주변 친구들에게 ‘D&D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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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연습생들을 위한 선물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 방송을 시작한 뒤로 얼마간은 크게 반응이 없어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영상이 누적되고 팬이라고 할 만한 고정 시청층이 생기면서부터 연습생들에게 고무적인 응원의 메시지가 닿기 시작했다. 당연히 연습생들도 신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의 우려와 달리, 방송으로 인한 장점이 많았다. 우선 스피치 능력이 부족하거나 낯가림이 심해 카메라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던 연습생들이 실전을 통해 경험치를 쌓으며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데뷔 후에도 긴히 쓰일 능력치가 될 것이라 기대되었다.
또한 처음의 예상처럼 연습생들의 인지도가 오르고 호감이 생겨 팬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이 역시 회사나 연습생들에겐 호재였다.
“대표님, 단독 채널을 꾸려도 되겠는데요?”
다른 소속 아티스트들과 구별하여 따로 채널을 만드는 게 효율적이라는데, 단유가 거절할 리 없었다.
“그렇게 하세요.”
연습생 채널은 구독자 수가 점점 늘기 시작했고, 댓글이나 좋아요 버튼의 수도 크게 늘어났다. 거기에 비례해 악플도 생기고 ‘싫어요’ 버튼을 누르는 수도 늘었지만, 긍정적인 효과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정도가 심한 수준이면 법적 대응도 단호하게 취하세요.”
“데뷔 전인데 팬 관리가 심하다는 반발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오히려 더 단호하게 대해주길 바랄 겁니다.”
단유는 용서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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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표직후, 불안요소라 여길만한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며 대신 건강한 조직 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흔한 말마따나 회사 내에는 긍정적인 흐름이 돌기 시작했고, 사업적으로도 성장세를 유지하게 되었다.
“단유 너, 너무 바쁜 거 아냐?”
“대표가 바빠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는 거지.”
“그래도 대표가 너무 빡세게 굴면 아랫사람들이 힘들어져.”
“힘든 게 일인걸.”
“우와, 이제 완전히 보스 마인드네. 그러면 밑의 사람 골병들어.”
“그러지 않도록 계속 시스템을 보완하는 중이야.”
“그건 모르겠고, 나 힘들어.”
“왜? 스케줄이 많아? 적당히 잡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그게 아니라, 너 볼 시간이 너무 없어져서.”
아침햇살을 닮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나윤. 단유에게 오렌지 주스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고, 무리하지 말라고.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고. 전에 보니까 집에 먹을 것도 없던데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어?”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보시다시피 나 되게 건강해. 매일 아침 운동도 빼놓지 않으니까.”
“다행이네. 그래도 좀 쉬엄쉬엄 해.”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더 힘이 나는 거 같네.”
“우와, 단유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점점 로맨틱해지네? 불안하게.”
“왜 불안해?”
“다른 사람이 너 이렇게 멋있는 거 눈치채고 눈독들일까봐.”
“농담이라면 관둬. 관심없으니까.”
“네가 관심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너한테 관심두는 게 문제지.”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접어두라고.”
피식 웃으며 단유는 나윤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렸다. 싫다는 소리 없이 마주보며 웃어주는 나윤이 참 고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