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forever.(5) -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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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정식 대표 자리에 오르는 대신, 임시 대표라는 직함을 달기로 결정했다.
“전 그래도 대훈 씨가 돌아올 때까지 맡는 거로 하겠습니다.”
대훈이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다시 돌아올 때 언제든지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냐는 조언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그것까지는 ‘양보’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단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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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김 대표님? 김 사장님? 김 회장님? 뭐라고 불러드려야 해?”
문을 두드리고 대표실에 들어선 나윤은 단유를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음을 흘렸다.
“됐어. 그만 놀려.”
“놀리다니? 누가 우리 김 사장님을 놀린대?”
단유는 이마를 문지르며 물었다.
“일 없어?”
“일? 일은 우리 김 사장님이 만들어주셔야 있지.”
나윤의 대꾸에 단유가 책상 위에 올려진 전화기를 집어들려 하자, 나윤이 다급히 제지했다.
“왜? 왜? 뭐 하려고?”
“매니지먼트 팀에 전화해 주려고. 소속 연기자가 일이 없어 놀게 만드는 상황을 만든 책임자도 추궁하고.”
“단유야, 우리 농담은 농담으로 그쳐야지,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어떡하니? 아무튼, 자. 선물.”
등 뒤에 감추고 있길래 뭔가 했더니 책상 위에 올려두기에 딱 적당한 크기의 화분이었다.
“선인장?”
“월동자라는 거야. 다육식물. 크게 손이 가지 않으니까 여기 두면 돼.”
책상 구석 빈 자리에 올려놓는 나윤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나윤은 눈웃음을 지으며 단유를 바라보았다.
“이야, 이렇게 보니까 정말 태가 난다, 너. 전에 이사실도 잘 어울렸는데, 대표실도 잘 어울리네.”
“차이가 있어?”
“있지, 그럼. 이제 회사 대빵이 된 거잖아?”
저렴한(?) 용어에 단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김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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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는 취임 후 첫 행보는 간부진들과의 회의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간부들은 박수로 단유를 환영했다.
“혹자는 지금이 우리 회사의 위기라고 하지만, 전 이 위기가 회사를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제 겨우 3년 된 회사가 무슨 재정비냐 할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언제나 빠른 성장에는 그만큼의 성장통이 수반되기 마련이죠. 튼튼한 체력을 길러 이후를 대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쓰러지고 마는 법이니 차라리 조금 느리더라도 기반을 확실히 다지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단유는 본인이 만든 ERP 플랫폼을 공개했다. 기존에도 사용하던 ERP가 있었으나 지속적인 솔루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점, 회사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프로그램에 회사가 맞춰야 한다는 점 때문에 다소의 불편함이 있었다. 돈도 많고, 약간의 불편함이야 참으면 된다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이 업무의 효율성과 채산성을 해친다고 생각했기에 시간을 들여 새 ERP 플랫폼을 구상했다.
회사 조직도에 맞춘 새 ERP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용의 편의성을 도모하여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단유의 말에 간부들은 다시 박수를 보냈다.
돈 많은 투자자에서 못하는 게 없는 만능형 인재, 라는 이미지를 덧씌운 단유의 다음 제안은 조직 개편이었다.
대훈이 대표로 있을 때의 회사 조직은 수평적 의사 소통을 지향하는 수직적 위계였다. 이는 대훈의 이상론적 지향점이 반영된 조직구조였다.
그러나 단유가 보기에 이것은 어설프기도 하거니와 업무의 효율성을 그리 살려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수평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는 어떤 소통도 원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위계 질서를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풍조가 회사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아무리 수평적 소통을 지향한다 한들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었다.
완벽한 수평적 구조는 만들 수 없다. 대표라는 위치가 이미 직위의 고하를 나누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대표 휘하의 전 사원들의 직급을 수평적으로 놓는다는 것 역시 비효율성의 극치다.
물론 대훈이 지향했던 수평적 소통은 경영학적 접근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접근이긴 했다. 딱딱한 상하 관계보다는 친구처럼, 가족처럼 편안하게, 즐겁게 일하자, 라는 모토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유교문화가 뿌리깊게 박힌 한국 사회에서 대훈이 바라는 문화가 쉽게 자리잡을 리 없다.
더구나 ‘가족같이’, ‘친구같이’라고 해도, 팀장이나 다른 간부들이 진짜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마당에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있나.
휴게실에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편한 대표님이긴 했지만, 부서 사무실에서 팀장과 농담 따먹기나 하며 즐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분위기도 분위기이거니와,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쇄신할 겸, 단유는 조직 개편을 구상했다.
“제가 생각한 건, 전(前) 대표님의 이상을 최대한 구현하되 업무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건 바로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들의 양보입니다.”
수직적 조직에서는 상위 단계, 상위 부서에 속한 간부들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었다. 물론 그 권력이란 게 무작정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그 힘을 착각하여 부하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없진 않지만, 원칙적으로 간부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횡포를 위한 권력이 아니라, 정당한 업무와 정상적인 유지를 위한 권력이다.
하지만 단유의 구상대로 조직이 개편되면 권력이 사라지거나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처음부터 그 권력을 갖기 위해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은 없을 테니 별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르지만, 있다가 없어지면 서운해하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회사의 특성 상 부서간 업무 협력이 잦은 편이죠. 하지만 우리가 부서를 나눈 건 온전히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지, 부서 간의 고하를 나누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서간에 상위부서와 하위부서가 구분되어 같은 팀장임에도 어느 팀장이 다른 팀장을 아랫사람 다루듯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죠.”
단유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들 단유의 말이 지난 사건에 연루되었던 이들의 경우를 일컫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과거의 경력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선배 대접은 한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 부서의 팀장이 더 위에 있다거나 그의 업무 지시를 들을 이유는 없는 것이죠.”
때문에 단유는 모든 부서를 팀제화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팀은 상위 본부 소속으로 구성되었지만, 이제 상위 본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팀은 독립적으로 구성되며 각 팀의 팀장이 업무와 관련된 주요 결정의 전권을 가집니다. 결정권을 행사함에 있어 상위 전결은 없습니다. 다만 그 결정에 대한 책임 역시 각 팀장이 부담해야겠죠. 그 점을 감안하여 신중한 결정과 업무 진행을 부탁드립니다.”
경영본부와 매니지먼트 사업본부는 해체되며, 해당 본부는 각각 경영팀, 신규 사업팀 등으로 변경 및 신설을 결정했다. 경영본부 아래 있던 기존의 팀들, 인사팀이나 재무팀, 지원팀 등은 명칭은 그대로 유지하되 기존의 선결권자는 사라지고 바로 대표에게 결재 및 보고가 이루어지도록 조정한다. 매니지먼트 사업본부 역시 동일하다.
이로 인해 기존 상위 부서의 간부들은 전과 같은 권력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고, 대신 대표에게 권한이 집중되었다. 각 팀장들에게 전결권이 주어지며 전보다 넓은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대표의 권한이 보다 집중되어 그들의 통제하도록 조정하였기에 전과 같이 배신이나 반란이 일어날 소지는 적어졌다.
물론 대표가 자신에게 집중된 권한을 마음껏 사용한다면 그들이 가진 권한 따위는 무용하겠지만, 단유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전 임시 대표입니다. 김대훈 대표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맡을 뿐이니, 그때까지 전 회사의 정상화, 그리고 전보다 나은 성장을 이루어 그분께 전하고픈 마음입니다. 그러니 염치없지만 부디 여러분들께서도 제 뜻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단유는 처음과 같이 간부들을 향해 허릴 숙임으로서 대표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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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의 다음 행보는 연습생들과의 면담이었다.
“어려운 사정이 있었음에도 회사를 믿고 남아준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회사에 보여준 신뢰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울러 여러분들의 데뷔와 이후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대표로서 약속드립니다.”
간부들이 채웠던 자리를 메운 연습생들이 단유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간부들과 다른 점은 좀 더 요란한 환호성이 곁들여 졌다는 것이다.
“이사님, 아니 대표님이 대표님이시니까 더 좋아진 거 아니에요?”
“시화야,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해야지.”
“그러니까 제 말은, 대표님이 대표님이 되셨으니까 더 좋다고요.”
“그럼 전 대표님은 싫었어?”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요. 지금 연습실도 대표님이 바꿔주신 거잖아요? 되게 신기한 거울이요. 그러니까 대표님이 계속 대표님이면 계속 환경이 좋아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좋다고요.”
단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연습생들 레슨 과목에 스피치도 넣어야겠네요.”
방송이나 행사에 가서도 저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 놀림받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화나 다른 연습생들이 단유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데 거기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지난 데뷔 프로젝트는 불행히도 무산되었지만, 그렇다고 여러분들의 데뷔를 마냥 미룰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데뷔는 여러분들의 꿈이기도 하지만, 이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니까 회사 차원에서도 여러분들의 데뷔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다시 한번 데뷔를 언급하자, 연습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처음 오디션 합격 소식을 전하고 면담했을 때, 회사 측에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여러분들의 데뷔와 성공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다하겠노라고. 대형 기획사 못지 않은 체계적인 트레이닝과 환경을 제공하여 여러분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회사는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분들의 데뷔를 준비하기에 이르렀죠.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그건 여러분들과 전혀 관련없는 이야기에요. 다시 말해 여러분들은 이미 데뷔를 위한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죠. 단지 회사만 준비가 끝나면 언제든지 무대 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대감에 부푼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연습생들의 반응을 살피며 단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당장은 어렵습니다.”
단유의 담담한 고백에 화를 내는 이는 없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작곡팀의 수장격이었던 창모가 회사를 떠났고 A&R 팀도 팀장을 비롯 주요 직책의 인사들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었다. 아직 업무에 채 적응도 못한 상황인데다 기존의 프로젝트는 애초에 제대로 진행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각오하고 있어요.”
아름이 연습생들을 대표해서 대답했다. 단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신의와 인내에 감사를 표시했다.
“준비 기간이 좀 더 늘어난 거라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고맙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게 있는데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단유는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진 팀장에게 신호를 보냈다. 진 팀장은 손 아래 깔고 있던 제안서를 연습생들에게 한 장씩 교부했다.
“이미 간부 회의 때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회사 차원에서 그냥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여러분들의 의견도 묻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연습생들은 각자 한 장씩 받은 제안서를 들여다보았다.
“인터넷 방송이요?”
회사 개인 채널을 이용, 연습생들의 연습 과정 및 일상을 편집 영상을 통해 공개하는 방식은 많이들 애용하는 마케팅 방법이라고 한다.
“물어보니까 대부분 회사들은 연습생들을 외부로 공개하길 꺼리는 편이지만 더러는 인터넷 방송이나 팬카페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데뷔를 앞둔 연습생들을요.”
심지어는 데뷔를 목전에 둔 연습생들의 경쟁 과정을 온전히 공개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까지도 여과없이 공개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면모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우호적인 팬층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게 장단점이 있더군요. 연습생들의 장점이 미리 노출됨으로써 대중의 호감을 끌 수 있고, 그게 데뷔 후에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인지도와 인기를 동시에 잡을 수도 있는 기회가 되지만, 반대로 비호감으로 낙인찍혀버리면 데뷔를 하기도 전에 망하는 경우도 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