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forever.(4) -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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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대표로 복귀하는 것을 대훈이 거절했다.
“거기서 뵙죠.”
대훈의 휴가가 끝날 무렵, 연락이 왔다. 대훈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여의도 공원 근처의 한 카페였다.
“매니저 시절에 자주 찾던 곳이었는데, 한동안 안 왔었지만 여전하네요, 여기는.”
단유는 수수하게 꾸며진 카페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사실 딱히 인테리어라고 부르기도 뭣할 정도였다. 비싼 돈 들여 SNS에 올리기 딱 좋은 감성 인테리어가 요즘 카페들의 트렌드라면, 이 카페는 ‘너네가 사진을 찍든 말든 난 관심 없어’라는 주의라도 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넓지 않은 카페는 가운데 넓은 홀이 있고 그 주위로 격벽이 쳐진 작은 공간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외에는 딱히 주목할 만한 장식이나 인테리어가 없어 오히려 대화에 집중하기 딱 좋은 구조였다.
위치상 방송국 관계자들과 조용한 미팅을 갖기 좋은 카페였다. 바꿔말하면 이 카페를 찾는 이들은 대체로 연령대가 높은 쪽이라는 것. 그리고 고객층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기에 딱히 인테리어를 바꿔 손님을 더 많이 유치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카페였다. 그냥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카페 사장의 의지가 투영된 카페였다.
“쉬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잘 쉬었네, 회사는 어떻네 하는 이야기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대훈은 경영자로서 자신의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노라고 말했다.
“늘 믿어준다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단유 씨는 투자자잖아요? 절 믿고 투자해준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잘 해낼 자신이 없어졌어요. 만약 제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거라면 이런 부담감도 못 느꼈을 거예요.”
“저 이 사업으로 큰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또 그렇지 않아요. 모르죠, 혹시 나중에라도 회사가 잘 되고 이익이 많이 생기면 자부심도 생기겠죠.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그건 제 노력 때문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전 말만 대표지, 실제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 같아요.”
“이 회사의 시스템을 구상하고 그것을 구현해낸 건 전부 대표님의 의지였어요.”
“어느 회사나 다 하는 걸 따라한 것 뿐이에요. 조금 더 나은 면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건 제가 지금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고, 이제까지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았던 미련이에요.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느낀 건 제가 정말 대표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본인이 스스로 부족함을 느낄 수는 있어요. 하지만 회사의 다른 사람들은 대표님이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솔직하게 말하면, 대표라는 자리, 생각보다 자기 만족도가 떨어지는 자리였습니다, 저한테는요.”
새끼 매니저 시절에는 감히 꿈도 못 꿨다. 야망에 불타오르는 성향도 아니어서, 향후 대표가 되리란 꿈을 가지지도 않았다. 다만 경력이 쌓이면서 보이는 게 많아지다보니, 이랬으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같은 생각들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그때도 생각만 그랬다. 자신이 회사의 사장이 되어서 좌지우지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물론 빨리 승진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죠. 승진을 하면 월급도 많이 받게 될 테고, 밑에 부릴 수 있는 사람도 생기니까 조금은 편해질 거란 생각도 들었죠.”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소속 아티스트의 꼬장도 웃으며 받아넘기고, 상사의 횡포, 대표의 전횡도 묵묵히 견뎠다. 업계의 더러운 꼴을 보고 들으며 더러워진 눈과 귀를 소주로 씻어내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대훈은 일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예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광식에게 조인트를 까여 절뚝거릴 때도 그만두진 않았다.
“일이 재밌었거든요.”
우연히 기회가 닿아 하게 된 매니지먼트였고, 때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일이 익숙해질수록 대훈은 즐거웠다. 누군가의 성장과 성공을 돕는다는 게 생각보다 보람찬 일이었다. 그들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성공인 것만 같았고, 그들이 시상식에서 스쳐가듯 잠깐 자신의 이름을 불러줘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
천직, 이란 게 과연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에게 생각지도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의 대표가 되어주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였다. 생각지도 못했기에 준비도 안 됐었다. 단유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아니, 했었다고 착각했었죠. 실은 더 고민했어야 했는데, 너무 섣불렀던 것 같아요.”
솔직히 광식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던데다가, 승진도 생각만큼 빨리 되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만약 자신이 대표가 된다면 속으로만 생각했던 ‘이상적인’ 회사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단유의 제안을 수락하도록 했다.
그리고 3년. 단유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스스로도 한껏 달아올라,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했지만 회사가 수치적인 성장을 보이는 것과 반대로 대훈은 점점 위축되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중소 기획사 사장들을 불러다가 회사 연습실을 보여주며 위탁 연습생 제도를 설명할 때는 솔직히 자긍심에 부풀기도 했다. 회사에 대한 루머로 잠시 흔들릴 때도 대훈은 그 모든 게 후발주자에 대한 견제, 혹은 질투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기분 좋게 넘기려 했다.
그러나 과감하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의도와 달리 진행이 원활치 않을 때, 대훈은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소 카리스마로 주위를 통제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요컨대 대훈이 자주 보았던 여느 회사의 대표들처럼 윽박이라도 지르며 채찍질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훈은 그런 스타일의 리더가 아니었고, 그래서 단지 주위를 다독이거나 격려하며 기다려주는 것 외에는 딱히 선택지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내는 여유와 달리 속은 퍽퍽한 고구마를 가득 먹는 것처럼 답답해져만 갔다.
“그때 짐작했어요. 내가 사람을 통솔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번 일이 터졌다. 공채로 뽑은 직원도 아니고 대훈이 직접 스카우트를 한 간부급에서 터진 일이니 더 충격으로 와닿았다.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상상도 못 했죠.”
“그건 대표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어요?”
대훈은 단유의 대꾸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고 때문에 비싼 연봉을 약속하고 데려온 거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됐던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만약 우리 회사가 아니라 다른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다른 대표가 운영하는 기획사였다면 과연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러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 말은, 제가 그들에게 빈틈을 보였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게끔 제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거죠. 대표로서 우유부단한 모습만 보이고 경영자로서 회사를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거죠. 그러니까 딴 마음을 품고 일을 계획했던 거고.”
“너무 자학이 심하신 거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 제 심정은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 탓을 하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는 그 사람들, 그렇게 믿음을 주고 높은 연봉을 약속했는데 왜 배신을 한 것이냐고 비난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하니 그렇더라고요. 나도 잘한 건 없구나, 라고 말이죠.”
거기까지 듣고 나니 단유는 대훈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졌다. 아니, 설득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며칠 간의 휴가 정도로는 회복할 수 없는 멘탈의 상처였던 모양이었다. 굳이 대훈을 설득해서 대훈이 복귀한다해도 깨진 멘탈이 채 복구되지 못해 오히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그럼 회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대훈은 머리를 숙였다.
얼마 되지 않는 지분이지만, 그거라도 정리해서 은행 대출을 갚은 뒤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말했다. 단유가 기다려주겠다고 했더니, 대훈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다시 돌아가면, 아마 똑같은 반복이 될 겁니다. 전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혹시 나중에 다시 이런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제대로 준비가 된 상태에서 받아들이고 싶어요. 그러니 그 준비를 할 겁니다.”
한 마디로 대훈은 백의종군을 선택했다. 누구도 대훈을 죄인이라 칭하지 않았건만, 스스로를 회사의 위기를 불러온 죄인이라고 평가한다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단유 씨가 앞으로 나설 차례에요.”
“저요?”
“저보다는 단유 씨가 더 대표로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 가장 이상적인 리더는 바로 단유 씨거든요. 아,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고백했었죠? 그래도 단유 씨만큼은 확실합니다.”
단유는 곤란함을 느끼며 대훈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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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없어요?”
택윤이 물었다.
“네.”
“잘할 거 같은데.”
“아시잖아요? 저 앞에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대표라고 해서 꼭 앞에 나설 필요는 없죠. 필요한 자리에서는 나서야 하겠지만, 대체로 대표는 대표실에 죽치고 앉아서 결정만 내리면 되니까.”
“농담이시죠?”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진담이죠. 대훈 씨가 말한 것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타입의 리더도 좋지만, 냉정하고 빠르게 결정할 줄 아는 리더도 좋은 리더라고 난 생각하니까요.”
“제 기준에서 좋은 리더는 사람들을 잘 통솔하는 사람이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는데, 전 그런 거 잘 못 하니까 문제가 될 거 같아요.”
“굳이 비유하면, 마치 삼국지의 유비 같은 캐릭터겠네요. 인덕으로 휘하 장수를 아우르는 덕장 캐릭터. 딱 대훈 씨 같은 캐릭터죠? 아마 그래서 단유 씨가 대훈 씨를 좋아했던 모양이네요. 하지만 대훈 씨가 으뜸으로 꼽는 리더는 조조같은 스타일이었던 모양이죠? 냉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 대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조직의 성장만을 강요하기보다는 정당한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성장시키기를 바라는, 조금은 이상적인 리더쉽을 원했던 것 같고요.”
“저랑은 전혀 맞질 않는 것 같은데요.”
“본인이 아니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도 단유 씨는 대훈 씨의 이상향에 얼추 들어맞는 편이라고 보여요. 일단 냉정한 결단력과 빠른 계산, 그리고 추진력은 모두 갖추고 계시잖아요? 재무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면 부하 직원들에게 신망도 얻고 있는 편이고. 딱이네요.”
조금 과장된 표정으로 말을 잇는 택윤은 어쩐지 신이 난 듯 보였다. 단유를 놀리려는 의도는 없지만, 단유가 난감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은 분명했다.
“단유 씨는 배움을 중요시하잖아요? 이참에 한 번 해봐요.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거, 좋은 기회잖아요?”
“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노력해야죠.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단유 씨는 대훈 씨에게 노력을 요구하셨잖아요? 마찬가지로 단유 씨도 노력해야죠. 좋은 리더가 되도록. 단유 씨가 대훈 씨를 믿어준 것처럼, 저도 단유 씨를 믿으니까 이번 기회에 열심히 해봐요. 그리고 정 안 되면, 뭐 그때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되고.”
단유는 경영권에 큰 욕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재무 이사를 맡은 것도 회사의 경영권이나 이사회의 한 자리를 맡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냥 할 일 없이 회사에 출근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는 이유로 맡은 것이었기에, 대표라는 직도 언제든 내놓을 수 있지 않겠냐는 택윤의 지적이었다. 동시에 대표라는 직함에 너무 부담 갖지 말라는 조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말은 그렇게 해도 택윤은 단유가 그리 쉽게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표직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일단 뭐라도 한 번 맡으면 결코 허투루 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단유는 최선을 다해 회사의 경영에 임할 것이고, 그 결과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좋은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른다. 이제껏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