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foreve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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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션 센서를 활용한 간단한 시스템이예요. 최초 안무를 저장 후 그 동작에 틀린 동작이 구현되면 바로 알람이 작동하죠. 또는 최초 안무 동작을 반복 재생하여 보면서 습득할 수도 있고요. 활용하기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가능할 겁니다.”
단유의 설명에 대훈은 혀를 내둘렀다.
“처음에 말로 설명 들었을 때도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이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인데요? 이건 뭐 완전히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거 아니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 있더라고요.”
거울형 투명 디스플레이 상용화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새벽으로부터 전해 들은 단유는 곧바로 해당 개발사에 연락했고 약간의 협상 끝에 구매에 성공할 수 있었다. 타사의 디스플레이보다 투명도를 높여 일반 거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화면에다가 높은 해상도로 가독성 및 가시성을 높였다. 거기에 단유가 개인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적용시킬 수 있을 정도의 호환성도 갖춘 다목적 디스플레이로도 준수한 제품이었다. 단순히 돈을 주고 구매만 한 것이 아니라, 디스플레이 활용에 대한 홍보로서 광고도 겸한다는 조건이 붙은 것이었는데 단유네 회사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도 아니고 오히려 반길만한 계약이 되었다.
“금액이 적지 않을 거 같은데.”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제 돈으로 한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아니, 왜요?”
“제가 돈이 없어서 투자를 더 안하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비록 봐줬으면 했던 대상이 현재 검찰에서 국밥 먹으며 수사받는 중이라 이 장면을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지만.
모션 인식에 관한 것은 단유가 집에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시스템을 약간 변형시켜 적용했다. 집에서 사용하려고 만들어뒀던 프로그램을 약간 수정하였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런 시스템 구축을 시도한 이유는 괜히 돈을 쓰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언제까지 단유가 몰래 환상 마법으로 연습생들 개인의 성장을 도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 개인의 실력을 성장시키는 요인은 반복된 연습과 개인의 깨달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물론 안무라는 게 단순히 형태만 따라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란 건 압니다. 안무에도 감정이 들어가고 동작마다 개인의 필이나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 같을 수는 없겠죠. 그러니 이 프로그램은 단지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이용될 겁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강사님들의 지도라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마치 학교나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따로 문제집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교부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강사님들의 효율적인 지도를 위한 도구로 활용해 주시면 됩니다.”
단유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트레이너들은 이 시스템의 활용에 대해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습생들도 개인 자율 연습 시간에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더욱 연습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설비 투자가 회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높이는 데 약간(?) 기여했다. 분위기에 다소 흔들렸던 연습생들은 더욱 좋아진 연습 환경에 200%만족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직원들도 회사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다시 업무에 집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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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신기하다.”
나윤이 거울 앞에서 손을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면서 감탄했다.
“신기할 게 뭐 있어.”
뒤에서 지켜보던 단유의 덤덤한 목소리에도 나윤의 목소리는 더 높아져만 갔다.
“와, 이거 무슨 게임하는 거 같애. 여기를 이렇게 딱 맞춰야 하나?”
낮에 트레이너가 등록시켜놓았던 안무 동작을 따라하던 나윤은 몇 번 허우적 거리더니 해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오랫동안 안무 연습 같은 걸 안 했더니 실력이 녹슬었나 봐. 어릴 때는 한번만 봐도 금방 따서 췄는데, 이제는 안 되네.”
나윤은 손등으로 이마를 닦는 시늉을 하며 단유에게로 돌아섰다.
“다 했어?”
“응. 사람들이 하도 대단하다길래 얼마나 대단한가 봤더니, 이건 그냥 SF잖아?”
며칠간 같은 대답을 반복하느라 지친 단유는 그저 손을 좌우로 흔들어보였다.
“애들 반응은 어떤데? 좋아하지?”
“나쁘지 않은 정도?”
“나쁘지 않긴. 이 정도면 우리 나라, 아니 세계에서 제일 좋은 연습실이겠구만. 나중에 애들이 무대에서 칼군무 딱딱 맞추면 그게 전부 이거 때문일 거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동작이 맞아 떨어지도록 연습할 수 있으니 칼군무도 그저 하는 소리만은 아닐 테다.
“칼군무 뿐 아니라 연기 연습을 할 때도 녹화기능을 이용해서 모니터링을 할 수 있으니까.”
“혹시 이거로 TV도 볼 수 있어?”
단유는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가능은 하지.”
“한 번 봐봐.”
“안테나나 셋탑박스에 연결된 게 아니라서 지금 당장은 어려워.”
“그래? 하긴 만약에 TV도 나오면 연습은 안 하고 땡땡이 부리겠다.”
“그런 의도로 연결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제품 특성상 일반 디스플레이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영상은 보기 힘들거야.”
“그래도 이렇게 보는 게 어디야? 되게 신기할 거 같은데.”
어린애같이 호기심에 눈을 빛내는 나윤의 모습에 단유는 피식 웃으며 노트북을 조작했다.
곧 중앙에 놓인 거울 하나가 검게 변하더니 연습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나윤에게 매우 익숙한 전주였다. 그리고 곧 화면에 등장한 것은 어린 시절의 단유.
“우와! 되게 오랜만이다, 이거!”
곧 화면이 전환되며 풋풋했던 시절의 나윤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앗! 안 돼! 꺼, 꺼!”
“나 나올 때는 좋다고 박수치더니? 왜?”
“아니야, 꺼! 안 볼 거야.”
사실 단유 손으로 직접 가디스R의 데뷔 뮤직비디오를 튼 것은 처음이었다. 명수가 억지로 보여줘서 본 적은 있어도 이후로 단유가 찾아서 본 적은 없었다. 한때 회사 내에서 단유의 뮤직비디오 출연 사실이 입에 오르며 유행처럼 찾아 볼 때도 단유는 보지 않았었다.
“어때, 오랜만에 보니까?”
“완전 촌스러워. 뭐야, 저게.”
“10년 전이니까.”
“와, 저게 벌써 10년이나 지났다니.”
손사래 치며 질색할 땐 언제고, 지금은 추억에 회상하는 듯 촉촉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나윤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화면이 투명해지자 조금 전 앳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나윤이 부쩍 자란 모습으로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잠깐 놀라던 나윤은 이내 복잡한 눈으로 거울 속 자신과 시선을 맞췄다.
“단유야.”
“응?”
“이렇게 보니까, 나 많이 늙었다.”
“늙었다, 는 표현을 쓰긴 이르지 않나?”
“고작 10년인데 이렇게 다를까?”
“10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은 걸?”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자조적인 웃음으로 농담하듯 말을 꺼내보지만, 복잡한 심사를 채 감추지 못하는 나윤. 단유는 그런 나윤을 위로했다.
“다시 10년이 지나도 누나는 그대로일 거 같애.”
“그 말은 내가 겉늙어 보인다는 말?”
“그런 뜻이 되나?”
“김단유!”
짐짓 화난 척을 해보이던 나윤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지금 모습도 나쁘지 않아.”
“응.”
“어때?”
“뭐가?”
“지금의 나랑, 예전의 나랑 비교하면?”
“말했잖아? 똑같다고.”
“그냥 똑같아 보여?”
단유는 가만히 나윤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지금이 더 좋아보이는 것 같기도 해.”
“지금이? 왜?”
“눈이 더 깊어졌어.”
눈이 깊어졌다, 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지 나윤은 눈웃음을 지었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 더 행복한 것 같긴 해. 어릴 때 난 너무 맹목적으로 꿈을 쫓기만 했던 것 같거든. 세상 물정 모르고 말이야.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후의 일들에 많이 힘들었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지금은···확실히 아는 게 많아진 탓일까? 아니면 여러 경험을 해서일까? 이제는 어떤 일을 겪어도 마냥 두려움에 벌벌 떨거나 좌절하진 않을 거 같애.”
“어른이네.”
“그치. 어른이지. 그게 어른이라서 느끼는 행복의 하나인 거 같애. 철모르던 때 느끼던 순수한 행복과 즐거움과는 또 다른 행복. 세상을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앞으로 더 많은 괴로움이 있을 거란 걸 알지만, 알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고 즐길 수도 있는 행복. 그게 어른의 행복인 거 같애.”
이제 정말 어린 시절의 나윤은 오랜 영상 속에만 존재하는 듯 하다. 순수, 맑음 등으로 포장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추억으로서 남기자, 나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수줍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 나윤은 단유 앞에 서더니 히죽 웃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제일 기분 좋은 건 역시 너 때문일 거야.”
“나?”
나윤은 오른 손을 단유에게로 내밀었다. 단유가 내밀어진 손과 나윤을 번갈아 바라보며 무슨 뜻인지 묻자 나윤은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 악수라도 하자는 걸까, 싶어 손을 잡았더니 나윤이 깍지를 끼며 상하로 흔들었다.
“이제 욕심 안부릴거야.”
“욕심?”
“응. 그냥 지금 이대로를 즐기고 싶어. 소확행이랬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 딱 지금 내 상태가 그래.”
단유는 나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따라하며 대답했다.
“누나가 행복하다니 좋네.”
“응.”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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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렸던 회사가 다시 정상화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회사의 대주주인 단유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설비 투자를 감행한 것에 감명(?) 받은 탓도 있지만, 대표인 대훈이 평소 강조했던 경영 철학이 빛을 발했다.
요컨대, 상하의 엄격한 수직적 권위적 관계를 지양했던 것이 직원들의 화합을 이끌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잘린 사람들이 간부급이었다는 것도 위기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원인이기도 합니다.”
택윤은 그렇게 분석했다. 앞서 수평적 관계도 그려 화합을 이끌려는 대표의 경영 철학에 반하는 이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이 일종의 ‘반란자’ 혹은 ‘적’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그 덕에 오히려 ‘우리 편’이라는 인식이 내부를 뭉치게 했다는 말이다.
“피아식별은 아군을 단합하게 만드는 데 유용하니까요.”
주요 간부가 퇴출됨으로 인해서 해당 부서에 동요가 있었고 몇몇 평직원들도 회사를 나가는 일이 있었지만, 오히려 회사의 짧은 역사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회사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까지 생각보다 적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뜻밖에도 대훈에게 있었다.
“전 경영자로서 자질이 없나 봅니다.”
자신감을 잃은 대훈이 속을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다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죠.”
“아뇨.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단지 이쪽 물정을 잘 안다고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탓에 제 분수를 몰랐던 겁니다. 전 경영자로서 부족해요.”
경영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경험도 일천한 탓에 느끼는 좌절은 대훈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단지 우울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 동안 넘치도록 흘리고 다녔던 에너지가 모조리 말라버린 것처럼 보였다.
“진짜 휴가가 필요한 사람은 대표님이셨네요.”
단유의 말에 택윤이 동의했다.
“차라리 이 참에 잠시 휴가 좀 다녀오세요. 그러고보니 대표님, 지난 3년간 한 번도 제대로 쉰 적 없잖아요?”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번아웃 증후군에라도 걸린 사람마냥 기력을 잃고 대표실에서 두문불출하는 대훈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대표님께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회사 설립 당시의, 신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경영 철학을 설파하고 다니던 에너자이저 같은 모습을 요구하진 않는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대표도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이니, 지금은 지금에 맞는 대표의 옷을 입을 필요가 있다, 고 택윤이 설득했고 단유가 반강요하듯 동조하여 결국 대훈은 사임하는 대신 휴가를 선택했다.
“이런 시기에 대표가 휴가를 간다고 하니 많이 욕먹을 것 같네요.”
“그건 다녀와서 해결하면 될 문제예요. 일단은 주변보다 본인을 먼저 챙기세요.”
단유는 대훈을 배웅했다.
그리고 대훈은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