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48화 (948/956)

Last forev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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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안 취했어.”

“취했어. 이만 들어가 자.”

“괜찮다니까. 너 나 몰라? 운동장 100바퀴 뛰어도 지치지 않는 사나이! 하이브리드 심장의 사나이!”

“그건 또 뭐야?”

“뭐긴, 내 별명이지.”

“그런 녀석이 다리가 부러져서 이래?”

“심장이 튼튼한 거지, 다리가 튼튼한 건 아니니까. 솔직히 내가 좀 자만했어. 그동안 체력이 많이 좋아져서 몸도 그만큼 좋아진 줄 알았거든. 어지간해서는 부러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그렇게 쉽게 똑 부러질 줄 몰랐네.”

“바보는 영원히 고쳐지지 않는 병인가보다.”

“그치? 근데 그거 알아? 나 바보 아니다.”

“그래, 알았어. 너 바보 아냐. 아니니까 이만 들어가 자자.”

“행복한 친구야, 나도 같이 행복하자.”

“불행해?”

“아니, 행복해.”

“그럼 됐네. 들어가서 푹 자면 더 행복할 거야.”

“정말?”

“응. 정말.”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니가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행복하겠지. 아, 우리 여보 보러 갈까?”

“그 방문 열었다가는 너 내일 당장 쫓겨날지도 모르니까 그냥 침실로 가.”

“그치? 나도 솔직히 저 방 문 열 용기가 없어. 너 알아? 상미 되게 무서워.”

“알아.”

“알아? 어떻게 알아?”

“같이 살았으니까 알지.”

“어? 너 내 와이프랑 왜 살아? 내 와이픈데?”

“이러다간 끝도 없겠다. 들어가라.”

“그럴까? 같이 잘래?”

“지금 안 들어가면 앞으로 나 보기 힘들어질 거다. 빨리 들어가라.”

잠시 후, 조용해진 거실에 홀로 남은 단유가 술자리를 치울 때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며 상미가 고개를 내밀었다.

“끝났니?”

“응. 시끄러웠어?”

“아니. 방음이 잘 돼서.”

“다행이네. 명수가 소리를 너무 크게 질러서 혹시 싶었는데.”

“그런 일이 종종 있어서 방음시설을 철저히 했지. 안 피곤해?”

“괜찮아.”

“그럼 한잔 할까?”

“방송은?”

“오늘은 일찍 끝냈어. 괜찮으면 같이 한잔 하자. 오랜만인데.”

“부창부수네, 너희 둘.”

단유는 냉장고에서 다시 맥주를 꺼내 상미에게 하나를 건네고 마주 앉았다.

“그러고 있으니까, 네가 이 집 주인 같애.”

“원래 주인이란 사람들이 칠칠치 못해서 그래.”

“미안하다, 칠칠치 못한 친구라.”

“됐어.”

“짠하자.”

“건배.”

입가심 정도만 하려나 싶었는데 벌컥벌컥 들이키는 폼이 아예 캔 하나를 한 번에 원샷 하려는 기세다.

“카아, 시원하다!”

“목이 말랐으면 물을 마시지.”

“얘 또 모르는 소리하네. 맥주는 원래 이렇게 마시는 거야. 안주는, 이게 다야?”

“여기 집주인은 너 아냐?”

“니들 이걸로 안주 먹은 거야?”

무슨 맛인지도 모를 스낵 부스러기를 가리키는 상미의 말에 단유는 되물었다.

“다른 거 있어?”

“아니.”

단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간이 지나고, 사는 곳이 달라지고, 한동안 떨어져 지냈지만 여전히 그대로여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것까지 변하지 않는 건 피곤하다.

“···너도 피곤하면 들어가 자라.”

“괜찮아. 일찍 방송 끝내서 아직 쌩쌩해.”

“내가 피곤해지려 그래.”

“그래? 그럼 더 피곤해지기 전에 말해야겠네.”

“뭔데?”

“명수가 네 걱정 많이 해.”

“누가 누굴 걱정해? 걱정이나 끼치지 말라고 해. 지금처럼 다치기나 하는 주제에.”

“나도 걱정했고.”

“······.”

“뉴스에도 났었잖아?”

“그 뉴스가 영국에도 났어?”

“아니, 그건 아니고. 내가 방송을 하니까 한국 사이트에 자주 접속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그래도 꽤 말이 나오더라고.”

“신경 안 써도 돼. 금방 정리될 거야.”

“알아.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 명수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우리가 비록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항상 네 걱정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혹시라도 힘든 일 있으면 말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진 못할 수 있어도, 그런 말 있잖아? 힘든 일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혹시 많이 힘들고 그럴 때 털어놓을 때가 없으면 답답하고 그렇잖아? 그럴 때면 부담 갖지 말고 말해. 뭐든 들어줄 테니까. 알지? 우린 항상 네 편인 거.”

“알아.”

“그래. 알면 됐어. 알고 있으라고 하는 소리야. 우린 친구잖아?”

“분위기 깨는 거 같아서 미안하지만, 너희들도 힘들면 말해.”

“우리가 힘들 게 뭐 있어? 우린 괜찮아.”

“혹시 돈이 없어서 끼니도 못 때우면 말해. 도와줄게.”

“돈이 왜 없어? 명수 주급이 얼만지 몰라? 그리고 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도 생활비 할 정도는 벌고 있고.”

“그래? 난 또, 이런 걸 안주라고 내놓고 주워 먹던 명수랑 널 보니까 괜히 걱정돼서.”

“다른 안주 없어? 냉장고에?”

“그러니까, 네가 이 집 주인이라고.”

****

대훈과 상의한 단유는 회사 차원에서 단체 M.T를 기획했다. 소속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조정하여 적당한 날짜를 잡아 연습생들과 직원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M.T가 되도록했다.

명분은 문자 그대로 멤버쉽 트레이닝, 단합을 위함이었다. 영입된지 얼마 되지 않은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보은과 약속, 그리고 새로 채용된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휴가, 회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꿋꿋이 자리를 지켜준 직원들에 대한 보상. 무엇보다 묵묵히 회사 방침에 따르며 휴식없이 달려온 연습생들에게 주는 선물이 되길 희망했다.

일단 명분은 그랬다.

“같이 안 가고?”

“전 남아서 할 일이 있으니까요.”

“무슨 할 일을···?”

단유는 그저 기대하란 말로 대신했다.

이후 단유는 새벽에게 연락했다. 연구소에 다니던 새벽과 만난 단유는 오랜간만에 공부를 했는데, 대학 때와는 반대로 새벽이 선생님이 되어 단유를 가르쳤다.

“여기에 전자와 정공이 각각의 전자수송층, 정공수송층을 통과해서 발광층에 도달하면 이렇게 결합되거든요?”

평소에 관심이 두지 않던 분야였던지라 단유는 새로운 공부를 하는 셈치고 열심히 들었다.

“근데 형.”

“응?”

“갑자기 이건 왜 하시는 거예요?”

“궁금해서.”

“별일이다, 싶기도 한데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형답다는 생각도 드네요. 대학 때도 복수 전공도 아닌데 호기심 때문에 컴공과 수업 듣던 형이었으니.”

“알아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쓸모란 게 생각보다 많아서 다행이었다. 들인 시간과 노력 대비 활용도는 단연 으뜸이라 포장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근데 여기서 더 자세히 들어가면 우리 연구소 밑천이 들어나는 거라 기본만 알려드릴 수밖에 없는데.”

“기본만 알면 돼.”

“하긴 설마하니 형이 기술 빼돌려서 어디 팔아먹을 것도 아니고. 그렇죠?”

“혹시나 싶어서 묻는 거라면, 절대 그럴 일 없어.”

“의심하는 거 아니예요. 형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득을 보겠어요. 이미 돈이라면 넘치실 정도잖아요.”

“도대체 나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아냐.”

한때는 그 정도긴 했지만, 지금은 회사에 들인 돈이 워낙 많아서 이제는 과거 가장 많았을 때와 대비해 거의 20% 수준만 보유한 실정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 20%도 넘칠 정도라고 볼 사람이 있겠지만.

더 나아가, 사실 돈이란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지금 당장 돈이 없다고 해서 단유가 힘들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열심히 제 몫을 다하는 투자 관리 프로그램도 있는 데다가 정 급하면 ‘보석’을 만들어서 해외 거래 기업에 판매를 해도 된다. 시장에 혼란이 생길 정도로 무분별하게 보석을 공급하지 않는 이상 평생 단유의 비상금고 역할을 톡톡히 할 능력이다.

아무튼, 한 번 호기심이 생기면 식음을 전폐하고서라도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매달리는 단유의 성격을 잘 아는 새벽이었기에 지난 4년 간 연구소에 구르고 밤새며 익힌 지식의 일부를 아낌없이 베풀었다.

“흠.”

“어려우세요?”

“어렵겠는걸?”

“뭐, 그래도 형은 똑똑하시니까 금방 이해를···.”

“혼자 만들기는 어렵겠지?”

“···네?”

“대충 원리만 알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개인이 제작하기엔 무리가 좀 있겠어.”

“설마, 이걸 형이 만들려고 했다고요?”

“안 되겠지?”

“당연히 무리죠. 아, ‘당연히’란 건 없다고 하셨죠? 그래도 안 되요, 이건. 다 떠나서 매우 정밀한 가공이 필요한 작업인데 이건 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거라고요.”

“그럼 사야겠네. 혹시 너희 연구소에서 살 수 있을까?”

“저기, 조금 전에 말씀 드렸듯이 저희는 일개 연구소에 불과하고요. 이런 패널은 전문 제작 시설에서나 만들 수 있다고요. 그리고 보통은 대기업에 그런 시설이 만들어져 있고요.”

“너희 연구소에 연구한다고 하지 않았어?”

“저희는 영세 연구소에 불과하다고요. 그나마도 대기업에 수주를 받아서 품질 개선을 위한 연구를 할 뿐이지, 실제 유기LED 패널을 자체 제작하진 못해요.”

“그런가? 그래도 난 패널만 있으면 되는데. 그럼 TV를 사서 패널만 분리해야 하려나?”

“어느 정도나 필요한 건데요?”

“대충···.”

단유는 고개를 들어 좌우를 빙 둘러보았다. 현재 단유와 새벽이 자리한 곳은 새벽이 다니는 연구실 근처의 카페.

“여기 전체 벽을 두를 수 있을 정도면 좋겠네, 최소한으로.”

“여기 전체를요?”

단유의 대답에 깜짝 놀라는 새벽.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덧붙였다.

“최소한.”

말문이 막혀 소리도 내지 못하는 새벽의 눈에는 ‘이 형이 왜 또 이러시나’라는 의문이 가득 담겼다.

그래도 새벽의 도움으로 해당 패널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체와 접촉한 단유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후, 겨우 합의를 보고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며칠 뒤, 회사 전 직원이 M.T를 떠난 사이 공사에 들어갔다.

****

짧지만 알찬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연습생들은 1박 2일간 느꼈던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며 출근했다. 연습복을 갈아입고 연습실에 들어서니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 같은 게 느껴졌다.

“뭐가 바뀐 거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연습실 여기 저기를 살피던 아름에게 보민이 대답했다.

“거울이 달라진 거 같지 않아요?”

“거울?”

그 말을 듣고 나니 연습실 한 벽을 가득 채운 거울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평소에도 열심히 청소를 하기에 전면 거울에는 손 때 하나 묻지 않는 청결함을 유지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쩐지 새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새 거 아냐?”

“거울을 왜 바꿨지?”

이런 의문이 들 때쯤, 아이들을 놀래키는 일이 벌어졌다.

거울 중간에 ‘9:00’라는 문자가 뜬 것이다.

“뭐, 뭐야?”

글자는 5초간 떠 있다가 사라졌다.

“봐, 봤어?”

“봤어요. 뭐예요, 언니?”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연습생들은 다시 한 번 글자가 나오는지 보려고 거울 앞에 다가가보고 두드려도보고 문질러도 봤지만 이후로는 어떤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나 혼자 본 거는 아니니까 내가 이상해진 건 아니지?”

“실장님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때, 마치 짠 것처럼 실장이 들어왔다.

“실장님! 여기 거울이요.”

“알아, 나도 그 이야기하러 왔어.”

진 실장은 아이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노트북으로 향했다. 도대체 뭔가 싶은 아이들이 진 실장의 뒤에서 바라보니, 진 실장은 바탕화면에 떠 있는 아이콘 하나를 찾아 실행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거울에 또 한 문장이 생성되었다.

‘연습 프로그램(ver 0.9)을 실행합니다.’

“실장님, 글자요, 글자!”

진 실장도 그걸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탄성을 뱉었다.

“정말 되네.”

“뭔데요, 실장님?”

진 실장은 조금 전 단유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했다.

“너희가 엠티를 간 동안에 실장님이 여기 거울들을 모두 싹 바꿨다더라.”

“글자 나오는 거울로요?”

“정확히는 무슨 패널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너희 연습할 때 도움이 될 거라더라.”

“이게요?”

그때 거울 앞에 서 있던 경빈이 소리쳤다.

“언니 이거 봐요!”

모두의 시선이 경빈에게로 향했을 때, 경빈은 예전에 배웠던 기본 안무를 추고 있었다. 그런데 동작에 맞춰 거울이 반응을 했다. 마치 경빈이 오로라를 뿜어내는 것 마냥, 경빈의 몸선을 따라 연한 파란빛이 번쩍거리는 것이다.

“우와, 이게 뭐야?”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와 경빈의 뒤에서 거울 속 경빈을 바라보았는데, 가만히 있는 아이들에게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경빈의 동작에만 반응하는 거울이었다.

“동작 체크라는데?”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진 실장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진 실장에게로 향했다.

“같은 동작을 반복 시, 틀린 동작이 나오거나 박자가 달라지면 알림을 준다, 고 되어 있는데?”

잠시 경빈이 동작을 먼추고 진 실장의 이야기를 듣던 타이밍에 거울 속에서 붉은 빛이 번쩍거리더니 ‘동작 불일치, 더 연습하세요.’ 같은 대사가 아래쪽에서 네온사인처럼 나타났다.

“경빈아, 다시 춰봐.”

언니들의 주문에 다시 춤을 추니, 좀 전까지와 달리 붉은 빛이 연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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