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forev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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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절로 한숨이 나올 상황이긴 했다. 팀장만이 문제가 아니라 팀장과 얽힌 관계들이 적잖이 있는데 그들을 모른 척 둘 수 없다는 문제 때문이다. 드러난 사람만 나열해도 벌써 작곡팀, 신인개발팀, 홍보팀의 팀장들이 엮인 판이다.
그러니 머리를 감싼 채로 고민하는 대훈의 심정을 단유는 이해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겠죠?”
대훈의 물음에 단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깊은 한숨만 내뱉는 대훈이었다.
팀장은 형법 31조의 교사범으로 입건되었다. 대리 기사로 가장하고 나타나 어울렸던 이 역시 폭행 및 공동정범으로, 창모도 같은 죄목으로 입건되었다. 폭행 부분은 둘 모두 전치 4주 정도로 그리 심하지 않은 단순 폭행 사건이었던 바, 합의에 의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이지만, 교사죄와 계획적 범행이라는 점이 추가되어 입건이 되었다. 일단 경찰 수사선에서는 그렇게 진행되었지만, 이후 법적으로 어떻게 해석되고 어떻게 처리될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계속 직무를 맡을 순 없게 되었으니 팀장이 사정을 한들 그와 함께 가기는 어려웠다. 굳이 해임안을 내놓을 필요도 없이 대표 선에서 팀장은 해고되었고, 다만 창모나 다른 두 팀장, 그리고 직접적으로 사건에 가담하진 않았으나 희수와 함께 비밀리에 투자건을 진행하던 몇몇 직원들의 명단이 대훈에게 보고되어 대훈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대훈으로서 심히 복잡한 마음이 들 뿐이다. 막말로 굳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일을 처리했어야 했냐고 단유에게 묻고 싶기도 했고, 이 사태가 벌어지도록 제대로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탓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단유가 그들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었던 때가 오래전인데도 대훈은 차마 결정을 할 수 없어 이제껏 질질 끌고 있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나오고 말았다.
“내 잘못입니다.”
대훈은 이 상황에까지 오게 된 것이 자신의 책임임을 통감했다.
“제가 좀 더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어야 했는데.”
“그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대훈은 고개를 저었다.
“참 많은 일들을 보고 듣고 겪었다 생각했는데, 늘 상상 이상의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네요. 그런 세상입니다, 여기가.”
대훈은 고개를 들고 단유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역시 제가 많이 모자란 탓입니다.”
단순히 연예계의 경험이 많으니까 좋은 기획사 대표가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가졌던 게 자만이었다.
그렇게 대훈의 후회 속에서 회사는 내부 정리에 들어갔다.
동요의 여파가 없지 않았다. 직원들은 물론이고 연습생들까지도 불안 속에서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누구도 탓하지 못했고 탓할 겨를도 없었다. 당장에 그들을 관리하는 신인개발팀의 팀장이 사라져버린 마당이다. 임시 팀장이 정해졌으나 불평형에서 오는 진동의 폭은 점점 커지니 빨리 안정시키지 않으면 무고한 이탈자가 발생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러다 회사 망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을 느끼는 이도 있었지만 다행이랄까, 마침 하반기 채용이 맞물리면서 정리된 직원들의 자리를 메꿀 수는 있었다. 하지만 주요 간부들의 빈자리를 공개 채용으로 메울 수는 없는 법.
스카우트를 통해 유능한 인력을 모집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회사 내부의 사정이 외부로 알려지더라도 감수해야 했다.
사실 그 문제는 크게 고려할 사항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데다, 후각이 좋고 손이 빠른 기자들이 기사화시켰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들을 여럿 영입하면서 이름을 서서히 알리던 시점이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회사는 아니더라도 아는 사람은 아는 정도의 회사였기에 충분히 기삿거리가 될 만했다. 더구나 사건 자체가 유니크한 일이다보니 호기심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시은의 소속사’라는 부제를 달아도 조회수는 충분히 나올 수 있고, 폭행과 교사라는 워딩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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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연습에 몰두해야 할 시간이지만 연습생들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해 프로젝트는 무기한 보류. 데뷔의 꿈은 날아갔다.
“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자, 우리. 아직 너희들 실력, 솔직히 데뷔하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거 다 알잖아? 조금 더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자.”
임시 팀장이 된 진 실장의 말이 위로가 될 리 없다. 그렇다고 반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마음이란 게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노트북에서는 회사에서 벌어진 기막힌 사건에 대한 기사가 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읽었던 터라 내용은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아이들이 보는 것은 기사가 아니라 그 아래 달린 댓글들.
―미친 회사.
―망했네.
따위의 댓글들이 주르르 달린 걸 보며 참담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몇몇은 진지하게 회사를 옮겨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할 정도였다.
“너희 연습 안 해?”
그때 밖에서 상황을 보고 들어온 이들은 여자 뮤지션 클래스 연습생들이었다. 지서가 묻자 남자 연습생들이 지서를 힐끗 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연습 안 하냐고?”
“왜 묻는데?”
“연습 안 할 거면 우리가 연습하게.”
“우리 연습시간인 거 몰라?”
“그건 프로젝트 동안만이었잖아.”
그 말이 마치 너희 이제 데뷔 안 하잖아, 라는 말로 들렸고 거기에 욱한 남자 연습생들이 벌떡 일어섰다.
“뭔데? 왜 갑자기 들어와서 시빈데?”
“시비는 누가 시비를 걸었다고 그래? 어차피 안 쓰는 연습실이면 비켜줄 수 있잖아?”
그동안 프로젝트 때문에 연습실 사용 시간을 비교적 많이 할애받은 데뷔팀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다른 연습생들은 단체 레슨 시간을 줄이거나 개인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데, 지금까지는 회사 정책이라 그저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데뷔를 꿈꾸지 않는 연습생이 아니다. 절실함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연습생들.
그렇지만 데뷔조 연습생들에게 그 마음이 통할 리 없다.
“말했다, 우리 연습 시간이라고.”
“그럼 뭐라도 하든가. 거기 가만히 앉아서 노트북이나 보고 있으면서.”
“아, 놔.”
설령 그녀들이 특별한 의도 없이 꺼낸 말이라고 해도 듣는 입장에서 굉장히 민감하고 불쾌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 화가 안 날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연습생들을 살피러 내려왔던 진 실장에 의해 두 집단 사이의 마찰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다만 진 실장이 조금 화가 났을 뿐.
“뭣들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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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입니다.”
휴게실에서 만난 진 실장의 얼굴에 수심이 한가득이라 단유가 물었더니, 진 실장은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연습생들도 지금 상황이 불안하니까 그런 거겠죠.”
“저도 압니다. 아이들 마음도 이해하고. 그래서 자주 찾아가서 멘탈을 좀 잡도록 해주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힘든 시기죠. 아마 우리 회사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위기가 아닐까 싶네요.”
짧은 시간 급성장한 회사였기에 이런 부작용이 발생한다. 아직까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공고하게 마련되지 못한 상황. 퇴사를 한 직원들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 그리고 새롭게 채용된 직원들이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다.
신인개발팀 역시 팀장이 날아가고, 진 실장이 임시라는 타이틀로 팀장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래도 팀장이니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 는 욕심이 인내심을 갉아먹는다. 덕분에 진 실장은 연습생들을 호되게 혼내고 돌아와 홀로 감당하는 중이다.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단유의 위로가 별로 도움이 되진 않으리라. 무엇보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쪽은 진 실장이 아니라 회사 분위기에 힘없이 흔들려야만 하는 연습생들 쪽이었다. 한번 마음이 꺾일 위기에 놓인 그들을 이대로 두기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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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참 그렇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고생 사서 하는 스타일이야.”
“고생이라고 생각 안 해.”
단유의 대답에 명수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안 한다니 다행이라고 할까? 관둬. 네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뭐야? 심심해? 돈은 남아도는데 할 일이 없어서? 너 좋아하는 거 있잖아? 그냥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든지 그래. 괜히 돈 쓰고 시간 들이면서 안 좋은 꼴 보지 말고, 너 좋아하는 공부해.”
“지금 하는 일도 좋아. 재밌어.”
“정말?”
“응.”
가만히 단유를 지켜보던 명수는 씨익 웃으며 잔을 들었다.
“많이 변했네? 우리 석고.”
단유는 잔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듣는다, 그 별명.”
“안 부른지는 꽤 됐지만 가끔은 네가 석고라는 별명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까 이제는 그 별명으로 못 부르겠다.”
“왜?”
“얼굴이 살아 있잖아?”
“무슨 뜻인데?”
“네가 정말로 지금 하는 일을 재밌어하는 것처럼 보여서 하는 말이야.”
“것처럼이 아니라 정말로 그래.”
“그러니까 살아 있다고, 네 얼굴.”
“언제는 죽어 있었나?”
“너 집만 나가면 거의 석고상이나 다름없는 얼굴이었지. 무표정 그 자체였잖아? 가끔은 섬뜩할 때도 있었다고.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래도 저 얼굴 좋다고 쫓아다니는 여자들이 있다는 게 참 신기했는데.”
“없는 이야기 지어내지 마.”
“없는 이야기라니? 야, 설마 진짜 모르고 하는 말이야,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거야?”
“관둬.”
“에이, 다 아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거였네. 에이, 뻔뻔한 새끼.”
단유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란 투로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화제를 돌렸다.
“몸은 어때?”
“괜찮아. 괜찮으니까 이렇게 맥주도 마시지. 나이롱이야, 나이롱.”
명수는 리그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부상을 입고 쉬는 중이었다. 90분간 쉬지 않고 달려도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은―마법의 힘으로―키웠지만, 그렇다고 무쇠 강철처럼 다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악의성이 다분한 깊은 태클에 발목을 채이며 바닥을 구른 명수는 그대로 필드 밖으로 나왔고 이후 6주간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병문안 차 잠시 들렀더니 대뜸 술이나 한잔하자기에 같이 어울려주면서 근황이야기를 하다보니 최근 회사에서 벌어진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은 네가 일을 하는 게 좋다고 하셨지만, 내 생각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
“왜?”
“좋잖아? 백수. 우리 와이프처럼.”
“듣겠다.”
“방송 중이라 못 들어.”
단유는 닫혀 있는 방문을 힐끔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쨌든 말이야, 내가 아는 단유란 놈은 틀에 갇히기를 싫어하던 놈이란 말이지. 좋아하는 건 곧 죽어도 해야 하고. 아니었으면 진작에 나랑 같이 축구하지 않았을까? 중학교 때 우리 축구부에서 같이 뛰면서. 그런데 너 안 한다고 했잖아? 왜? 싫으니까. 축구는 좋지만, 클럽에 가입해서 뛰는 건 싫으니까. 그리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니까. 내가 곧 죽어도 공부는 싫어하는 것처럼, 내일 죽어도 당장에 공을 차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넌 책을 붙잡아야 속이 후련하던 놈이란 말이지. 그런 놈한테 직장을 가지라거나 하면서 구속받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겠냐 이거지.”
말이 슬슬 길어지는 걸 보니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했나보다.
“네가 대학원엘 가지 않겠다고 한 거, 솔직히 그 친구 때문이잖아? 새벽인가? 그 친구 다친 게 왜 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친구 때문에 대학원도 안 가고 졸업했잖아.”
“지난 이야기를 왜 꺼내? 그만해.”
“답답하니까 하는 소리지. 너 돈 많잖아? 그 돈 평생 펑펑 쓰면서 살아도 다 못 쓸 정도라매? 그런데 굳이 그 돈 써가면서,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이사라며? 게다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자기 시간 뺏기는 그 짓을 네가 왜 하냐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이사라는 지위가 ‘고작’이란 수식어가 붙는 위치는 아닐 테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이.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야.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런데 지금 보니까 네가 달라졌다, 이거지.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네 모습이 진짜처럼 보였다, 이거야.”
명수가 단유처럼 사람을 세밀히 관찰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조건부로 단유 못지않게 능력이 발동되는 경우가 있다. 그 조건이란 바로 단유, 하은, 그리고 이제는 그의 와이프가 된 상미 앞에서였다.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능력이 발휘되는 이유는 역시 ‘가족’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지금 널 보니까 행복하단 말이지. 내가 다 행복하다 이 말이지. 너무너무 좋아서 아픈 것도 모를 정도란 말이지.”
그보다는 술이 취해서 못 느끼는 것일 테지만, 단유는 굳이 대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만 명수를 재워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