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46화 (946/956)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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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협박이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협박이라뇨?”

“지금 하고 있는 게 협박이잖아요? 지금 그걸 들고 와서 제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뭡니까? 나가라는 겁니까?”

“제가 팀장님을 협박할 이유가 있나요?”

당연하게도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라죠. 팀장님 역시 그 점은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만, 그게 협박 때문은 아니죠. 아무튼, 궁극적으로는, 그런 결정도 선택할 수 있겠지만 그전에 묻고 싶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벌이신 건지.”

“나는!”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지른 희수는 파티션 너머 쥐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목소리를 낮췄다.

“···나 혼자 이 일을 계획한 게 아닙니다. 창모, 그 사람도 같이 계획했고 그가 동의한 일이란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일지도 모른다. 창모가 희수에게 약점이라도 잡혀서, 그의 표현대로 ‘협박’을 받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단유는 그런 정황을 찾아내지 못했다. 찾지 못했다고 해서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우선은 그의 말을 들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 단유는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희수를 향해 물었다.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죠?”

****

계속되는 A&R 팀의 반려에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창모는 팀장과 독대를 요청했고, 두 사람은 프라이빗룸에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러라뇨? 저희가 일부러 곡을 거절할 이유가 있습니까?”

되묻는 희수의 말에 창모는 속이 탄다는 듯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손등으로 입을 훔치며 되물었다.

“일부러 거절하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곡을 계속 반려하는 이유가 뭡니까?”

희수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반대로 여쭙죠. 지금까지 만들어 주신 곡들, 창모 씨는 만족하십니까? 저희가 정한 컨셉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솔직히 괜찮다고 생각한 곡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컨셉’과 어울리냐고 묻는다면 딱히 자신있게 ‘Yes’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그럴만도 한게, 애초에 컨셉이 ‘완벽’인데 완벽한 곡이 어디 그리 쉽게 나오겠느냔 말이다.

“지금 그걸 트집잡는다고 하시면, 저희가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들이 다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설마 전부 다 엎고 컨셉부터 새로 시작하자는 이야긴가요?”

필요하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역설하고픈 창모였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작곡 팀에 의뢰를 했을 때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신다면 그간 들어간 비용과 노력들은 어떻게 합니까?”

“······.”

“물론 힘든 작업이란 거 압니다. 설마하니 제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저희가 힘을 합치면 정말 최고의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냐는 희망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 저는 창모 씨도 충분히 동의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믿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제가 아는 창모 씨는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반박하기 힘든 희수의 말이었다. 물론 적당히 창모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다고 해도, 창모 역시 스스로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었으니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꿀 뿐이었다.

“스트레스가 많이 심하신가 보네요.”

“저 뿐만 아니라, 작곡팀 전원이 다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하긴 이제 임의로 정해 둔 프로젝트 종료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작곡팀도 그렇지만 저희 A&R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대리 한 명은 스트레스 때문에 아침마다 머리 빠진다고 하소연하더라고요.”

창모는 깊이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안면을 벅벅 문질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희수가 은근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정 그러시면 적당한 곡으로 그냥 통과시킬까요?”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나을, 그런 제안이었다. 이제와 그런 제안이 통할 리가 있나. 그냥 받아주마 해도 창모가 먼저 거절할 것이다. 본인이 납득하지 못할 곡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긴 싫었다. 그것이 작곡가로서의 창모의 자존심이었다.

“아닙니다. 단지···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희수는 주변에 사람이 없음에도 목소리를 낮췄다.

희수가 계획하고 창모가 실행했다. 대리 기사와 변호사의 섭외는 희수의 역할. 맞는 것이 두려운 창모를 설득하는 것도 희수의 몫.

“고작 그런 이유로, 창모 씨가 응했다고요?”

“전 단지 창모 씨를 위해 생각을 짜냈을 뿐이란 말입니다.”

단유는 볼을 긁적거렸다.

“그런가요?”

“네, 그게 전부입니다. 물론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제가 잘못한 건 알아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운 건 분명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창모 씨가 간절히 원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희수는 목소리를 낮춘 채로 절절하게 호소했다.

“A&R팀이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곳이기에 갑질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여러 팀들과 조율해야 하고, 그쪽의 편의도 잘 봐주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번 일도 그 선상에 있어요. 우리 작곡팀의 메인인 창모 씨가 힘들다하니 그 편의를 봐주기 위해 꾀를 낸 겁니다. 다소 과격한 형태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되야 다른 사람들이 수긍할 거라고 생각했고요.”

“알겠습니다.”

단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하던 희수의 표정이 살짝 풀릴 때쯤, 단유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

“네?”

“지금 일하시는 건 많이 힘드십니까?”

이제껏 하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뜬금없는 질문에 희수는 눈을 껌뻑이며 되물었다.

“예?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여기 저기 편의도 봐주셔야 하고 자기 일도 해야 하고. 할 일은 산더미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고 하시니까요.”

설마 진짜 걱정이 돼서 묻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희수는 단유의 속내를 짐작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누구와 달리 표정이 한결같은 단유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딱히 짐작할 만한 게 없었다. 적절한 답변을 생각하다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다 참고 견디는 거죠. 그래도 보람이 있으니까 이렇게 일하는 거죠. 전 제 직업을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요.”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실 때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고 하시던데 덜 스트레스 받는 쪽으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설마···지금 절 자르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고작 창모 씨를 도왔다는 이유 만으로?”

“오해십니다.”

단유는 고개를 저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회사를 위해 지금까지 헌신해오신 팀장님이 스트레스로 힘들다고 하시니 그에 대한 배려를 해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분노한 희수의 목소리와 파티션 너머 웅성대는 소리를 뒤로하고 단유가 대답했다.

“조금 전 팀장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나니 방금 제 제안이 마냥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전혀 다른 경우 아닙니까? 전 정말 순수하게 창모 씨를 돕고 싶었고 그 때문에 그런 계획을 세웠던 거란 말입니다!”

“저도요. 아까 팀장님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하셨기에, 이 회사의 이사로서 차마 팀장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 힘드네요. 사원 복지 차원에서 덜 스트레스 받도록 제안드리는 겁니다.”

“뭐, 이런···!”

“아, 제가 팀장님의 직위를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 되는 거죠? 하지만 걱정마세요. 다음 이사회 회의 때 꼭 팀장님의 해임을 결의해 내겠습니다.”

그 대답에 저도 모르게 욕을 뱉을 뻔한 희수. 당장이라도 기함을 토하며 화를 내고 싶은데 마지막 이성이 아슬아슬하게 끈을 붙잡고 있어 입술을 비집고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단유는 팀장의 심경 따위 신경쓰지 않는 듯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팀장님이 느끼시는 감정이 아마 조금 전 제가 느낀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팔을 반대 팔로 받치고 턱을 만지작거리며 희수의 반응을 살피던 단유는 다시 자세를 바로하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진실 속에 거짓을 섞으면 그것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래 속에 바늘이 섞이면 손에 찔리기 마련이죠. 팀장님의 바늘은 어디 있을까요?”

단유는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희수를 바라보며 버튼을 눌렀고, 곧 통화연결음이 들리더니 이윽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느릿하고 힘이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창모였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오늘 새벽에 저한테 해주셨던 말씀?”

잠깐의 침묵 후 창모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지분 분배를 약속하셨어요.

“모함이야!”

이번엔 정말로 비명을 지르고 만 희수.

새벽에 단유는 창모를 찾아갔다. 밤새 모았던 증거들을 가지고 병원에 있는 창모를 찾아간 단유는 그에게 진실을 요구했고, 약간의 저항이 있었으나 단유가 압박하자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팀장님께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새로운 투자자를 찾았는데 투자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투자 후 지분 조정이 발생하는데 그때 도움에 대한 댓가로 지분 일부를 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도 약간의 배려가 있을 거라고.

갓 만들어진 회사지만 단유를 통해 유입된 자금이 충분히 투자되어 베이스가 튼튼해진 D&D 엔터테인먼트. 희수는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된 이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고, 이 상태에서 팀장 정도의 월급쟁이로 남아서는 손해가 많을 거라고 판단했다.

물론 자신이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 향후 그 위치가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더 빨리 더 높이 오르고 싶었다. 마침 운 좋게도 대표라는 작자가 경영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이상주의적인 운영만을 고집하니 잘하면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인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제 1투자자인 단유였지만, 새로운 투자자를 데려와 투자를 성공시키게 되면 지분 조정에 따라 단유의 힘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두 가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과 투자를 받도록 대표를 설득하는 문제였다. 다행인지 대표는 제 1투자자 단유에게서 추가 투자를 받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 대훈의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고, 법인 명의의 대출도 일부 가진 상황. 그럼에도 단유의 지분율은 압도적이니 보통의 방법으로는 단유의 힘을 꺾기 힘들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프로젝트의 장기화였다. 대표가 웅녀 프로젝트라는, 실소가 나올 법한 작명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자고 간부회의에서 선언했을 때 희수의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갔다.

‘기회다!’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그리하여 시작된 기만 작전. 우스운 작명의 프로젝트에 걸맞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컨셉부터 밀어붙이면서 판을 깔았다. 그리고 뒤로는 이 회사에 투자할 투자자를 남몰래 찾아다녔고, 운 좋게도 선이 닿아 만난 이는 괜찮은 투자처를 찾던 중국의 부호였다.

그런데 지지부진한 프로젝트로 인해 지출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훈이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거기에다 거의 1년간 일을 하는지 마는지 모르겠다 싶어 사실상 ‘식물이사’ 수준으로 봤던 단유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재정 상태가 생각보다 빨리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투자를 제안하기가 어려워지기에 희수는 다른 수를 생각해야 했지만, 당장에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랬기에 당장 필요한 것은 바로 시간. 마침 창모가 곡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했고, 희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를 꾀기로 결심했다. 작곡가로서 자존심이 강한 창모지만 명예욕도 적잖이 가지고 있던 창모였기에 희수는 회사 이사 자리를 걸고 그를 유혹했다.

“가만히 앉아서 떠먹여줄 순 없어요. 창모 씨가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주셔야 저도 그에 걸맞게 보답을 해주죠.”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사천리, 까지는 아니었지만 창모에게 적당히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고, 지난 밤 그 작전이 시행되었다.

그랬는데, 설마하니 그가 이리도 쉽게 입을 열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회사 내부에 팀장님의 손길이 닿은 분들이 적잖이 있는 듯 보입니다.”

“······.”

“제 친구가 좋아하는 표현이 하나 있는데요, 그 친구가 인터넷 방송을 하거든요?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채팅으로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는데, 종종 분위기를 흐리거나 불쾌한 언어로 다수의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고 해요. 그럴 때 그 친구가 이런 표현을 쓰더군요.”

―칼춤 한 번 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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