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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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가던 시간, 주변 상가도 거의 문을 닫고 오렌지 빛 가로등 아래 뒤늦은 귀가를 위해 달리던 차들이 내는 소음이 거의 전부인 이곳에 단 한 곳, 지구대만이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밤낮없이 주민의 안전과 질서를 지키는 경찰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따뜻한 기분이겠지만, 실상 그 안은 따뜻함과 거리가 먼 상황이 연출 중이었다.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유는 꽤 소란스러운 현장과 마주해야 했다. 주취자들을 애써 진정시키려 들지만 말을 듣지 않아 곤혹스러워하는 경찰들과 핏대 세워 목청을 높이고 다투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싶을 정도다.
“아, 제발 진정 좀 하시라니까!”
점잖게 말리려는 경찰들은 보기 힘들었다. 그들이 딱히 성격이 나빠서라든가 경찰이라는 직책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윽박지르는 건 아니다. 단지 상황이 그렇게 몰고 갈 뿐이다.
“왜 나보고 그래? 왜? 저 새끼가 먼저 그랬다니까?”
“뭐? 새끼? 이 어린 놈의 새끼가···. 죽고 싶어? 응? 죽고 싶냐고!”
“알아요, 아니까, 일단 좀 진정하시고 여기 좀 앉으시라니까!”
점잖게 목소리 낮춰 이야기를 해도 듣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그래도 들은 척하지 않으니 서류철을 내리치거나 발을 구르는 등으로 주의를 끌려고 소리를 낸다. 시장터 떨이꾼의 호객 행위보다 더 과장되게 행동해야 겨우 시선을 돌릴 정도. 물론 효과는 미미하다. 그렇게 떨이꾼 흉내내는 경찰과 귀머거리 흉내내는 취객들 사이를 지나니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던 지아가 보였다.
마침 지아도 단유를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섰다.
“이사님!”
“지아 씨. 괜찮으세요?”
“전 괜찮은데 저기 선배님이···.”
그녀가 가리킨 방향에 경찰과 마주 보고 진술을 하고 있던 창모가 있었다. 지저분해진 옷과 산발이 된 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살피니 부어오른 얼굴과 찢어진 입술, 그리고 마른 피가 묻은 상의가 보였다.
단유가 다가가자 창모가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더니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가까이서 보니 오른쪽 눈두덩이도 꽤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퉁퉁 부어서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싸움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 이라고 생각하던 이가 저 꼴을 하고 있으니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 이사님?”
단유가 오는 것을 몰랐던 듯 휘둥그레진 표정이 되더니 단유의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지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네가 연락했어?”
“네.”
“아니, 왜···.”
책망하려는 듯한 모습에 단유가 끼어들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시고, 우선 괜찮으십니까?”
엉망이 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일부러 고개를 숙이는 창모는 시선을 내린 채로 대답했다.
“네, 뭐, ···죄송하네요.”
일을 벌인 것을 사과하는 것인지, 아니면 늦은 시간 단유를 오게 만들었다는 자체가 미안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어느 쪽이든 창모로선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일일 테다.
“어떤 사이십니까?”
창모의 진술을 받아 진술서를 작성하던 경찰이 단유와 창모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회사 동료입니다.”
라고 단유가 답했지만 이미 창모가 ‘이사님’이라고 호칭을 한 마당이니 단순한 동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경찰이었다.
“일단 지금은 진술을 받아야 하니까 뒤에서 기다려 주세요.”
단유는 창모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많이 다친 거 같은데, 우선 치료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찰 역시 창모의 얼굴을 보더니 콧잔등을 찡그렸다.
“우선 사건 파악부터 한 뒤에요.”
경찰은 고개를 돌려 반대편 멀찍이 앉아서 역시 진술 조사를 진행 중인 젊은 사내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아마 쌍방 폭행으로 입건되지 않을까 하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우선 불구속으로 진행될 테니, 일단 진술 끝날 때까지 그쪽 분은 뒤에서 기다려 주세요.”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단유는 지아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경찰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잠깐 밖에서 지아 씨랑 이야기 좀 나누고 있을게요. 괜찮으시죠?”
“괜찮습니다. 그리고···지아는 그냥 집에 가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지아를 집에 돌려보내려는 창모의 말에 경찰이 끼어들었다.
“그쪽 여성 분도 진술을 받아야 하니까 지금은 안 됩니다.”
“왜요? 쟤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는데요?”
“일단은 이 사건에 개입된 분이시니까, 진술은 받아놔야 합니다.”
“창모 씨, 일단 경찰분 말씀대로 하시고, 지아 씨랑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거니까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괜찮죠?”
“멀리 가시면 안 됩니다.”
피곤에 쩐 경찰의 허락을 받고 단유는 지아와 함께 지구대를 나왔다.
경위를 듣고 난 뒤, 단유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요청을 한 후 지아를 다독였다.
“걱정 마세요. 잘 처리될 겁니다.”
빈말로도 괜찮을 거라고는 못하겠지만, 법대로 처리는 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로 인해 작곡팀의 작업이 순조롭지 못할 것이란 부분이고,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이다. 때문에 대훈에게도 연락은 해줘야 했다.
―김 이사는 괜찮아요?
창모가 폭행 사건으로 지구대에 왔다는 이야기에 놀라던 대훈이 이어서 단유의 안부를 물었다.
“연락이 와서 온 거 뿐이니까, 전 괜찮아요.”
―그럼 창모 씨만?
“네.”
―많이 다친 건 아니고요?
“외견상 치료와 휴식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
―그래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아뇨, 여기는 제가 처리할게요. 강 변호사님께도 연락드렸고요.”
―아, 그럼···부탁드릴게요.
“연락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연락드린 것 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잘 처리할게요.”
그렇게 대훈에게 보고를 한 후 통화를 종료했다. 그때까지 조용히 곁을 지키던 지아가 단유에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창모 씨도, 지아 씨도 제게 사과할 일은 아니죠.”
“그래도···.”
“저한테 전화하신 건 잘하신 거예요. 이래 봬도 제가 이쪽으로는 경험이 없지 않아서.”
“네?”
단유는 지아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정리해 보았다. 지아가 가감 없이 팩트만을 말했다고 가정한다면, 사실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어렵다. 대리기사를 먼저 밀친 것은 창모 쪽이고, 대리기사가 도발을 했다고 하지만, 그 전에 차 안에서 둘 사이에 있었던 대화가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창모는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나 시동이 켜져 있던 차 안의 블랙박스를 통해 대화 내용이 녹음 되었을 테니 그것도 쉽게 입증이 될 것이다.
“그럼 선배님한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거네요?”
“대리 기사의 말이 다 맞다면요.”
지아는 주춤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그럼 제가 그 블랙박스를···.”
“아니요. 그냥 두세요. 아니, 경찰에 제출은 해야죠. 그런 거로 면피하려고 들면 더 이상하게 꼬일 수 있어요.”
만약 메모리를 없앤다거나 하면 경찰이 더 의심할 수도 있다. 물론 증거재판주의를 따르는 대한민국에서 증거가 없으면 유리한 게 사실이다. 정황증거에 준거하여 자유심증주의적 판단을 법원에서 내리기도 하지만 현 상황에서 정황증거는 각 당사자의 진술에 의거 5:5로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찰이 의심하더라도 메모리카드를 없애는 것이 최종적으로 유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일단 이 사건은 단순폭행 사건으로 쌍방의 합의만 있으면 반의사불벌죄라는 원칙에 따라 형사건으로 전개되지 않을 테니 법정 싸움을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고, 되도록 법정 싸움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 창모에게도, 그리고 회사에게도 좋다.
“너무 잘 아시는 거 아닙니까?”
늦은 시간에 서두르느라 정장까지 갖춰입지는 못했는지 캐쥬얼한 세미정장 룩으로 코트를 걸치고 나타난 법무팀 강 변호사였다.
“오셨어요?”
“제가 올 필요가 없었겠는데요?”
“그래도 변호사님이 계신 거랑 안 계신 거랑은 다르니까.”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죠.”
“먼저 들어가실래요? 전 잠깐 바람 좀 쐬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실래요?”
단유는 유리문 건너 지구대 안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입구에 누가 구토를 했는지 냄새가 좀 지독하더군요.”
“이 시간에 지구대에 오면 가끔 그런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저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죠, 이곳이.”
치우는 사람이란 아마도 지금 주취자들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는 경찰들을 일컫는 것이리라.
지아와 변호사를 안으로 들여 보내놓고, 단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과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었다.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인 지구대 앞 주차장. 하늘까지 막혀있으니 답답함이 쉬이 풀리지 않는다.
‘어이가 없네.’
불과 몇 십분 전까지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참 어이없고 한편으로는 우습기까지 했다.
비록 창모가 맞은 것처럼 그렇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한 상처와 공포를 상대에게 심어주었던 단유다. 세 사람에게는 맞설 생각 조차 못할 정도의 힘과 기술을 보여 의지를 꺾게 만들었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떠올리기 힘들 정도의 공포를 심어 정신을 잃도록 하였다.
그렇게 했던 자신이 몇십 분만에 다른 장소에서는 마치 선량하고 지혜로운 사람인 양 행동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도발을 먼저 했으니 정당방위는 되지 않을 거라고 조언하는 모습과 상대를 힘으로 눌러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자신과의 괴리가 부쩍 혼란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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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의할 수 없네요.”
나윤의 이야기가 끝난 후 한참을 더 침묵 속에서 생각을 곱씹던 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하나 여쭐게요. 혹시 언니는 가수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나요?”
“···누구와 견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자부해요.”
“가수로 데뷔하신 뒤에는요?”
“가수가 된 뒤로도 연습은 계속 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내부의 문제로 활동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었었지만, 그래도 연습은 계속 했어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제 스스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저는요.”
나윤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진이 입을 열었다.
“부끄럽지 않다고,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건 결국 합리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 부끄럽지 않고 슬프지 않다면 이제까지의 노력은 뭐였나요? 정말 영혼을 갈아 넣듯이 연습을 하고 노력을 했다면, 그 노력의 결과가 좋지 않게 되었을 때, 저는 엄청 슬펐을 거예요.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결과를 얻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열심히 찾을 것이고, 이유를 찾게 된다면, 그게 어떤 이유든, 고치든지 아니면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도전하고 노력할 거예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는 일이란 게 있어요.”
“아니요. 그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기 위안을 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결과 없는 과정은 무의미한 일이니까요.”
“4년간 죽을 힘을 다해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봐왔어요. 그렇다고 그들의 노력이 폄하될 수 있나요?”
“폄하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단지 난 노력했으니까 만족해, 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거죠.”
“뭔가 오해를 하시는 거 같네요. 노력했으니까 결과는 상관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결과, 중요하죠. 하지만 그 결과를 못 낸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슬퍼하지 말란 거예요. 그건 자기 위안이라는 것과 달라요. 슬퍼할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목표를 가지고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것이 더 좋지 않냐는 말이에요.”
“금메달을 따지 못했으니까 이제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보다 하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요? 금메달을 따기 위해 4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유년시절부터 보냈을 게 분명한 선수들에게 슬퍼할 시간에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과연 누가 그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유진 씨 말도 일리 있어요. 맞아요. 금메달이 목표고 꿈이라면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도전하는 거, 좋아요. 옳아요, 그런 도전이라면 저도 계속 응원할 거예요. 하지만 만약 선수들이 금메달이라는 결과만을 위해 불법적인 약물을 사용한다면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니 동의하자고 할 텐가요?”
“불법이라면 안 되죠. 하지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는 어떤 수를 써서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심판 매수도요?”
“심판을 매수하든, 뭘 하든 그것이 합법적이라면 도의적으로 비난을 받을 지라도 문제 없지 않을까요? 결국 사람들은 결과만을 이야기하게 될 테니까요.”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네요?”
“들키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들켜도 그게 문제가 될까요? 불법이 아닌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도 괜히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나 이러쿵저러쿵 떠들 뿐이겠지만, 그런 사람들까지 일일이 신경 쓰며 살 필요는 없다고 전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