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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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창범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릴 무렵, 그의 뒤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자신과 거래하던 사내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중이었다.
“설마···.”
더듬거리는 창범의 말에 한쪽 눈썹을 추켜세운 사내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흔들었다.
“저 아닙니다. 이사님이 뒤를 밟히신 거 같은데 오해라니요. 섭섭하네요.”
들켜선 안 될 현장을 들킨 마당에 여유를 부리는 사내가 이해되질 않았지만, 이내 창범은 그 여유에 기대고픈 마음이 들었다. 분명 이 상황을 처리할 방법이 있으니 저런 여유를 부리는 걸 테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창범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뜻인지 사내는 입에서 길게 담배 연기를 토해내며 단유를 향해 삐딱한 시선을 보냈다.
“어이.”
단유를 불렀지만, 단유는 여전히 창범을 바라보며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당신 누구야?”
단유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내를 향해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창범만을 바라보는 단유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무시한다는 불쾌감에 화가 솟구친 사내. 용트림하듯 길게 담배 연기를 뱉은 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내려와’라는 짧은 한마디로 통화를 마친 사내는 인상을 잔뜩 쓴 채로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았다가 공중으로 뿜어냈다. 강바람에 금방 흩어지는 하얀 연기 아래로 사내가 가래침을 모아 뱉으며 물었다.
“이사님, 아시는 분입니까?”
“아니, 모르는 사람일세.”
턱을 죽 내민 사내는 눈을 좁히며 단유를 위아래로 훑었다.
“멀쩡하게 생겨서 위험하게 이런 데나 기웃거리고 그러면 쓰냐? 응? 혼자야?”
단유는 다시 한번 내밀었던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거, 주세요.”
이번에도 자신의 물음이 무시당하자 사내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일 만큼 어두워졌다.
“이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사내는 가래침을 뱉으며 창범을 뒤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단유에게 한발 다가간 사내. 시선이 차단되자 결국 단유의 시선이 사내에게로 향하고,
“저기요? 귓구멍 막히셨어요?”
단유의 얼굴이 역한 담배 연기로 뒤덮였다. 그러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단유의 입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내의 얼굴이 더욱 기괴하게 일그러질 즈음, 사내의 연락을 받고 멀리서 대기하던 사내의 동료들이 뛰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이 새끼들, 니들 여기 안 보여? 제대로 통제 안 했지?”
“죄송합니다.”
사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털었다.
“데려가서 정체 알아보고 알아서 잘 처리해.”
남자들이 단유에게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형씨, 같이 좀 갑시다. 어? 힘 주네?”
시비거는 남자들의 힘에 버티던 단유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이의 손을 슬쩍 보고 사내를 쳐다보았다.
“뭐? 왜?”
단유는 한숨을 내쉰 뒤 물었다.
“그쪽 정체는 뭡니까?”
“왜? 뭐? 알아서 뭐하게?”
“됐습니다.”
하긴 상대가 누구든 무슨 상관일까. 지금의 행실만 봐도 명확하지만, 준법정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선량한’ 모범시민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단유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는 손을 가만히 붙잡았다.
****
공중으로 치켜든 팔을, 지아가 달려가 붙잡았다.
“선배님!”
복잡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아와 눈이 마주친 창모. 어차피 휘두를 용기는 없었으나 몸이 앞쪽으로 쏠려있던 창모는 못 이기는 척 팔을 내렸다. 그리고 여전히 빈정이 상해 있었지만 귀찮다는 듯, 창모는 대리 기사를 향해 코를 씰룩이며 말했다.
“야, 그냥 가라.”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생각으로 대리 기사를 그냥 보내려는 창모의 말에 대리 기사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어이가 없네.”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놓고 창모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온 그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창모를 향해 이죽거렸다.
“별 같잖은 꼴을 다 당하네. 이봐요, 아저씨. 되게 뭐 있는 척 하면 좋아요?”
“뭐?”
“아저씨가 가라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말아야 하나? 응?”
“이 새끼가 진짜···, 야!”
“선배님!”
“뭐요? 때리게? 때리라니까? 깽값 벌어보자니까? 어차피 대리비도 못 받는데 깽값이라도 받게 때려봐요, 때려보라니까?”
결국 싸움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지아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저씨, 진짜 왜 그래요? 그냥 가시라니까요?”
대리 기사는 지아의 요구에 탄성을 뱉었다.
“이야, 끼리끼리 아주 죽이 척척 맞네, 척척 맞아. 저기요, 제가 아까는 그냥 열 받아서 그냥 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억울해서 그냥은 못 가겠네.”
“가시라니까요?”
“아니, 그냥은 못 가겠어. 내가 그냥 이렇게 가면 오늘 잠도 못 잘 거 같애요. 억울해서.”
“뭐가 억울한데요?”
“뭐가 억울하냐고? 하, 나 참. 저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차에 올라탄 창모는 운전석에 앉아 있던 대리 기사를 향해 말했다.
“이제 갑시다.”
대리 기사는 우선 엔진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중립에서 드라이브로 옮겼다. 그리고 액셀을 밟기 직전, 룸미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요, 이렇게 시간 걸리면 저희가 돈을 더 받아야 하거든요?”
“돈? 왜요?”
“원래 처음에 말씀하신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 안에 끝나야 저희가 다음 콜도 받을 수 있거든요.”
“나 안 취했거든요?”
“네?”
“술 취했다고 바가지 씌우려고 하지 말라고.”
“그게 아니고요.”
“그리고 그쪽 되게 말 이상하게 하시네? 시간이 걸리면 얼마나 걸렸다고 그러는데요? 차가 조금만 막혀도 10분 정도 늦을 수 있는 건데, 그걸 누가 딱딱 지켜요? 그리고 그쪽 콜 했을 때 바로 왔어요? 아니잖아요? 근데 그쪽은 자기 마음대로 오면서 가는 건 왜 시간을 칼같이 지켜야 한다는 건데요?”
“아, 놔.”
“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아 놔?”
더는 대화를 잇기도 힘든 데다가 운전석 쪽 헤드레스트를 흔들며 시비를 거는 창모 때문에 내렸다는 대리 기사.
지아가 창모를 곁눈질로 살피니, 창모가 버럭 화를 냈다.
“당신이 먼저 이상한 소릴 했잖아!”
“내가 뭐?”
“당신이 먼저 욕했잖아?”
“누가 욕을 해?”
“와, 이렇게 발뺌한다고? 내가 차에 타자마자 씨발씨발 거려놓고서는 발뺌한다고? 내가 못 들었을 거 같애?”
창모의 지적에도 대리 기사는 코웃음칠 뿐이었다.
“당신은? 사람을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면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당신 운전기사도 아니고 당신 종도 아닌데 미안하단 말도 없이 그냥 가자는 대로 가야 해? 내가 왜? 씨발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더는 말도 필요도 없다는 듯 머리를 쑥 내밀며 쳐보라고 시비를 거는 대리 기사. 창모는 가슴을 툭툭 치며 쳐보라는 대리 기사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결국 상대를 거칠게 밀어냈다.
“어? 쳤어? 쳤어?”
대리 기사의 도발에 더욱 화가 난 창모가 팔을 걷어붙이며 달려들려 하자 지아가 옷깃을 강하게 붙잡아 당기며 말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창모를 막을 수 없었다.
창모가 대리 기사의 멱살을 쥐며 흔들자 대리 기사는 흔들리는 대신 거칠게 손을 뿌리치고 도리어 창모를 강하게 밀었다.
“당신이 먼저 쳤어. 정당방위야?”
기사의 말에 창모는 이성을 잃었다. 싸움에 자신은 없지만 지금 지아도 보는 앞이라 그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주먹을 야무지게 쥐고 결국 휘두른 창모. 그러나 정확히 타격점을 정해놓고 때린 게 아니라 초등학생 때 애들이 그러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휘두른 주먹이었다. 그리고 그 주먹에 대리 기사의 어깨가 맞았다.
때리라고 도발하긴 했어도 막상 맞고 나니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건지 대리 기사도 눈을 번들거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어디를 어떻게 때리는지도 모르고 서로 한 대라도 먼저 더 때리기 위해 휘두르는 와중에 지아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경찰이죠?”
****
사내의 전화로 다가온 남자는 2명. 단유도 한 덩치 하지만 그 둘은 단유보다 더 덩치가 좋았다. 외견상. 그러나 늘씬해 보이는 단유의 정장 속에 오랜 세월 단련된 근육이 꽉꽉 들어차 있는 것과 달리 정돈되지 않은 지방덩어리를 두둑이 키운 덩치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남자가 끌어당기는 힘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단유. 어깨에 올려진 손을 잡고 비틀자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위기감을 느낀 남자가 재빨리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상대의 손을 단단히 거머쥔 단유는 상대의 의도에 따라주지 않았다. 대신 상대의 힘에 끌려가는 척 상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깨로 상대의 가슴을 강하게 타격하는 단유, 그리고 놀라는 사내가 또 다른 반응을 보이기 전에 잡고 있던 손의 손목을 다른 손으로 붙잡고 힘껏 비틀었다.
“아악!”
이곳에 CCTV는 없지만, 밤중에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혹시 모를 목격자가 생길 수 있으니 막아야 했다. 손목을 놓고 상대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니,
“컥!”
숨통이 틀어막힌 남자가 당황할 새도 없이 단유는 상대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시멘트로 대충 뒤덮여있는 바닥으로 상대의 머리를 찍어내리 누르듯 누르니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남자는 정신을 잃었다.
단유가 남자의 손을 잡고 쓰러뜨리기까지 거의 순식간에 벌어진 일. 주변의 누구도 단유를 막지 못했고, 눈 몇 번 깜빡거리는 사이에 동료가 정신을 잃었다. 머리가 깨진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소리를 내며.
“이 새끼가!”
누군가에게 밀회 현장을 들키지 않게 신중히 이 장소를 고른 일당 덕분에 CCTV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조용하게 처리하는 게 좋았다. 상대도, 단유도. 그래서 단유의 다음 목표 역시 악을 쓰듯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남자가 목표였다.
이번에는 좀 더 간단하게 처리했다. 주먹을 힘껏 뒤로 당겼다 내지르려는 상대를 향해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곁에서 보는 이들에겐 단유가 그저 가만히 서서 자신을 향하는 주먹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 결과로 단유를 치려던 상대의 목이 반쯤 날아갔다.
“끄어억!”
팔을 휘두르던 힘이 빠짐과 동시에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두 손으로 목을 붙잡은 채 담배를 물고 있던 사내를 바라보았다.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그 눈빛 앞에서 사내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무, 뭐야?”
사내는 꿀렁꿀렁 피를 쏟아내는 동료를 바라보다 단유를 쳐다보았다. 네가 그랬어? 라고 묻고 싶어하는 눈빛에도 단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완전히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 치던 창범에게로 시선을 던지며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다, 당신이 한 짓이야?”
“주세요.”
단유는 주변을 에워싼 어둠보다 더 어둡고 검은 눈빛으로 창범을 바라보았다. 창범은 더 버틸 수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엄지손가락보다 더 작은 USB 메모리칩을 단유에게 건넸다.
그때 넘어진 남자에게서 눈을 뗀 사내가 단유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얏!”
같잖은 기호성을 토해내는 사내에게 겁먹을 리 없는 단유는 사내의 주먹이 닿기 전에 몸을 비틀어 피하고는 가볍게 발을 내밀어 상대를 넘어뜨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진 사내. 하지만 처음 쓰러졌던 동료처럼 어딘갈 다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단유는 공평하게 그에게도 바람의 칼날을 던졌다.
“웁!”
화끈한 느낌을 느꼈다 싶은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의 눈빛과 마주했고, 남자의 눈빛이 급격히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고 사내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혹은 급격히 빠져나가는 피 때문에 떨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두 사람은 모두 죽게 될 터였다.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어린 남자는 생각보다 냉정하고 잔인한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