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요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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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훈에게는 간략하게 보고된 내용이지만, 현재 회사의 수익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금융투자 수익분’이었다. 작년 말부터 2/4분기까지 발생한 이익금의 일부를 금융상품에 투자하였고, 얼마 전 일부 상품의 옵션을 행사하며 꽤 괜찮은(?) 수준의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여기에는 단유 본인의 자산 관리를 만들어두었던 프로그램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공공연히 말하기가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때문에 회의 때도 그 부분은 언급하지 못하고 대신 투자 이익으로 인해 회사 자금 사정이 조금 풀렸고, 다음 해 투자분을 제하고도 남는 금액을 보너스로 직원들에게 지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설명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연말에 있을 이사회에서 현황 보고를 할 예정이니 지금 간부 회의에서 모든 걸 밝힐 필요는 없었다. 다만 직원들에게 보너스가 지급될 것임을 공시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단유는 이쯤에서 마이크를 다음 사람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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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더 강해지는 생각인데, 애초에 단유 씨한테 이런 투자를 권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택윤이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런 투자’라 함은 D&D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투자를 가리킨다.
“왜요?”
“돈을 이렇게 잘 버니까요. 본인 돈도 잘 굴리고, 회사 돈도 잘 굴리니 이참에 나랏돈도 한 번 굴려보심이 어떨지?”
88년 이후 누적 연평균 수익률이 6%대인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 수익금을 2% 정도 더 끌어올릴 수도 있지 않겠냐는 농담에 단유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니긴요. 작년까지는 수익이 많이 나지 않기도 해서 이제 새로운 투자처를 모색해야 한다, 고 말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울 정돕니다.”
“공 이사님이 미래를 보시는 분은 아니시잖아요? 게다가 세계 경제가 이렇게 살아날 거라고 예측한 사람도 없었는걸요.”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중국 경제가 갑자기 호황을 맞이하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아직 몇몇 전문가는 지금의 호황이 일시적이며 다시 긴 침체기에 들어갈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일시적인 기간에 단유는 꽤 좋은 수익률을 거뒀다. 또한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며 꾸준히 프로그램을 유지한 덕분이기도 했다.
덕분에 회사의 유보금이 크게 늘었고, 겸사겸사 한동안 제자리던 단유의 개인 자산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미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프로그램으로 투자와 자산관리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겠죠.”
태블릿을 툭툭 두드리며 택윤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 자산관리사가 되기 위해 지난한 공부를 해왔던 날들과 증권사에서 고객의 자산관리를 맡으며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했던 날들이 떠오른 택윤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래에는 지금 단유와 같이 프로그램이 알아서 자산관리와 증식을 도와줄 테니 사람의 손이 닿지 않게 되는 날이 오리라.
“기술의 발전이란 게 참 무섭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그런 논의들이 있었죠. 무인 자동화 공장이 본격화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할 곳이 없어질 것이니 과연 그런 기술 발전이 인류 문명에 도움이 될 것인가, 라고요. 그때 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었어요. 다들 그랬어요. 무인 자동화가 실현되면 회사의 주가는 한없이 올라갈 거라고. 생산성은 높아지고 인건비는 최저로 낮아지니 수익률이 좋아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중산층, 저소득층의 실업문제와 소득의 불균형 같은 문제는 차후에 논의될 문제, 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게 단순히 1, 2차 산업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네요.”
“너무 극단적인 예시가 아닐까요? 이 프로그램이 향후 일반에게 보급된다 해도 사람은 여전히 필요로 할 겁니다.”
“글쎄요. 소수의 사람들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조기 퇴직하고 집에 들어앉아야 할 겁니다.”
“이사님이 평범하다고 하긴 어렵지 않나요?”
“단유 씨와 함께하다 보면 제가 너무 평범해서 가끔 무기력해질 때도 있답니다, 하하.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그게 큰 문제는 아닌 게 이런 프로그램 하나 가지고 있으면 적어도 밥 굶고 다니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글쎄요. 지금은 저 혼자 사용하는 거니까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되면 결국 수익률은 낮아지겠죠. 제로섬 게임처럼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그래도 현재 여러 증권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거기는 툭하면 마이너스니까요.”
택윤은 웃으면서 몸을 굽혔다. 태블릿을 다시 집어든 택윤은 꺼져있는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다 단유를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저 나중에 은퇴하면 퇴직금 대신 이 태블릿을 받아도 될까요?”
단유도 택윤의 표정을 따라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그냥 지금 가져가셔도 되지만, 은퇴는 너무 이른 거 같네요.”
“저도 아직은 아닙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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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간부 회의의 주요 의제는 프로젝트 진행 현황에 대한 점검과 향후 계획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란(?)으로 인해 연습생들의 실력이 급상승하고 있음을 기뻐하지만, 그와 별개로 작곡팀과 A&R팀 사이에 묘한 대치 기류가 형성되는 중이었다.
곡 하나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특정한 요구에 맞춰 곡을 만든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라는 게 거의 필수적으로 댄스가 가능한 곡이어야 한다.
“뻔하지 않은 곡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를테면 머니코드를 쓰지 말란 소린가요?”
“그런 뜻은 아니고 다만 듣는 대중들이 뻔하지 않다는 느낌만 주면 됩니다.”
작곡팀은 그 묘한 ‘느낌’을 찾아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몇 달을 씨름해야 했다.
“곡이 너무 단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DM으로 가지 말란 이야긴가요?”
“서사성이 담긴 곡이었으면 합니다.”
작곡팀은 3분대의 곡에 들어갈 서사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창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좀 더 강렬한 임팩트가 필요합니다.”
임팩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찾아 여러 버전의 곡을 만들어가면,
“조금만 더 대중적이면 좋지 않을까요?”
라는 피드백에 무너지고 만다.
돌려보내진 곡만 10곡이 넘고 보류된 곡이 7곡. 타이틀로 쓸만한 곡은 여전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A&R 팀은 쉽게 오케이 사인을 내지 않으니 작곡팀도 뿔이 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작곡팀이 무조건 A&R의 요구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주까지 부탁드립니다.”
“그건 불가능하죠. 곡이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A&R의 피드백에 작곡팀은 시간을 요구했다. 반복되는 심사와 피드백에 시간은 점점 늘어났고, 이 부분이 프로젝트 완성 시한을 늦추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곡만 빨리 나왔다면 안무 창작, 마케팅 전략 등등 다음 단계로 넘어갈 테지만, 곡이 나오지 않으니 계속 미뤄지다, 결국 올해를 넘기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동안 최대한 연습생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되니까. 하지만 프로젝트가 길어지면 피로도도 급증하게 되고, 지출되는 비용도 더 커지게 마련. 지출되는 비용 대비 예상 수익의 차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A&R 팀의 성과평가 역시 낮아지는 법이니 더 시간이 길어지면 차라리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하는게 낫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A&R팀이 마음대로 중단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 무엇보다 A&R 팀장은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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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들었어. 요즘 그거 때문에 A&R팀 직원들 곡소리 난다고 그러더라.”
A&R팀의 고충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작곡팀의 곡을 반려하는 것도 따지고보면 팀원들이 아니라 팀장이 하는 결정이다. 팀장의 결정을 전하는 역할을 팀원들이 하는 것이고, 팀원들은 작곡팀의 수장 창모로부터 내내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겠지. 뱉은 말이 있는데.”
나윤은 혼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젓가락으로 면을 휘적휘적 저었다.
회사 근처에 일식 라면집이 생겼는데, 일식 라면을 좋아하던 나윤이 한 번 맛을 본 뒤 그 맛을 칭찬하며 종종 단유를 끌고 왔다.
간장 차슈 라면을 좋아한다는 나윤은 질리지도 않는지 매번 그 라면을 주문했고, 대신 단유에겐 다양한 라면을 주문하도록 권했다. 다양한 라면을 먹어보면서 자신한테 맞는 라면을 찾으라는 배려, 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은 다양한 맛을 즐기고픈 나윤의 한입을 위한 주문이었다.
“한 입만.”
그렇게 이번에도 단유의 그릇을 앞에 끌어다 ‘한 입만’을 외친 후, 젓가락에 라면 한 뭉텅을 건져 올린다.
“컨셉이 완벽한 아이돌이라며? 팀장님 본인이 말한 거니까 어떻게 되나 지켜보는 재미는 있네. 그 팀 직원들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입안 가득히 라면을 채우고 다시 그릇을 단유 쪽으로 슥 미는 나윤. 단유는 아무런 불평 없이 그릇을 받아 남은 라면을 먹었다.
단유도 일식 라면이 싫지는 않았다. 예전에 일본에 잠시 머물렀을 때 많이 먹어보기도 했으니 나윤의 배려를 굳이 따를 필요는 없이 그 맛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일식 라면의 짠맛이 조금 부담스러워 많이 먹지 않을 뿐. 때문에 늘 너그러이 나윤에게 양보할 수 있었다.
“말하다보니 생각났는데, 누나 예전에 직접 곡 쓰겠다고 하지 않았어?”
나윤은 작은 단무지 하나를 집어 입에 쏙 넣었다.
“어릴 때였으니까.”
어릴 때는 뭐든 하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는 나윤. 마침 데뷔도 하니까 작곡도 배워서 다음 앨범에 자작곡으로 참여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반이었단다.
“나머지 반은 뭔데?”
나윤은 대답 대신 그릇 채로 들어 국물을 후르륵 마시기 시작했다. 나트륨 과잉섭취로 인한 골다공증 및 만성심부전, 뇌졸중 및 고혈압을 경고하는 대신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릇을 내려놓은 나윤이 휴지로 입 주위를 닦아내며 대답했다.
“너무하네.”
“응? 왜?”
“내가 그때 왜 작곡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었는지, 기억 안나는 척 하는 거야?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거야?”
단유가 볼을 긁적이자 나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는 너랑 뭐라도 같이 하고 싶었으니까. 그때 너 되게 신기한 짓 했었잖아? 짓이라고 하니까 좀 표현이 그런데, 아무튼 그때 너, 무슨 곡이 차트에 오를지 맞추고 그랬었잖아? 기억 나?”
“그건 운이 좋아서 가능했던 거고.”
“어쨌든.”
사실 단유가 음악에 관심이 없었다 하더라도 같이 배우자고 했을 것이다. 단유는 늘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마침 자신도 작곡을 배우고 싶었으니, 배움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고픈 마음이었다.
“그럼 이후로는 작곡 같은 거 안 했어?”
“하다 말았어. 더 했어도 나한테 작곡의 재능 따위 있었을까 싶고, 지금에서는 배워봤자 써먹을 데도 없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 취미로 한 두 곡 만들 수는 있겠지만 남들한테 보여줄 정도는 안 될 테니 컴퓨터 하드 깊숙이서 영원히 봉인 당할 테지.”
“모르지. 혹시 알아? 누나한테 작곡의 재능이 있었을지도.”
“그런 재능이라도 있었다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
말을 잠시 멈춘 나윤은 이내 피식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시선으로 단유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엄청나게 유명한 작곡가가 되어서 단유 네가 날 쳐다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 그치?”
“그럴 리가.”
나윤은 헛기침을 한 뒤, 허리를 곧추 세우며 연기를 시작했다.
“누구? 아, 몰라. 나 바쁜 사람이야. 아무나 안 만나는 거 몰라? 만나고 싶으면 미리 약속 잡고 부탁하라 그래.”
단유는 두리번거리다 물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내 비서.”
“비서도 있어?”
“몰라. 그냥 있을 거 같아서. 유명한 작곡가면 비서 정도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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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곡가기도 하고, 유능한 작곡가이기도 한 창모에게는 비서가 없었다. 대신 유능한 잠재력을 가진 후배 지아가 있었다.
“지아야.”
“네, 선배님.”
“여기 멜로디라인 수정 좀 해봐. 계속 같은 것만 나온다.”
“네.”
협업이 좋은 이유는 이럴 때다. 창작의 한계, 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가끔 같은 멜로디만 머릿속을 지배하며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 다른 머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지아가 짜는 멜로디라인은 기존 작곡가들과 다른 면이 있었다.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라인은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이긴 해도 영감을 준다는 측면에서 지아의 오리지날 멜로디라인을 활용하는 창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