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23화 (923/956)

진전(5)

-------------- 923/952 --------------

현진에 대한 평가는 한참 뒤로 미뤄졌다. 영상 속 현진을 본 대훈이 결정을 보류한 탓이었다.

“어려운데.”

첫째는 대훈이 월말 평가 도중에 잠깐 나온 거라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짧은 시간 영상으로만 봤음에도 주현진이라는 지원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탓이다. 오랜 경험에 비춰 볼 때, 확실히 현진이라는 아이는 범상치 않은 매력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검토해봐야 겠어요.”

“그렇게 해주세요.”

단유는 순순히 대훈의 결정을 따랐다.

월말 평가가 끝난 뒤, 트레이너들과 신인팀 팀장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현진에 대한 영상 평가를 진행했다.

“오늘 온 아이가 이 아인가요?”

“네.”

클로즈업된 현진의 비쥬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괜찮은데요?”

일자로 굳게 닫힌 입술과 묘하게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녀의 얼굴에서 일상적으로 보기 힘든 매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무조건 밝기만 한 캐릭터는 질릴 수 있으니까, 이런 캐릭터도 꽤 신선하네요.”

“카리스마도 있어 보이고. 그렇죠?”

클로즈업과 전신샷, 그리고 이어지는 가창 테스트, 안무 테스트, 유연성 테스트에 면접관―단유와 다양한 주제로 주고받는 대화까지, 영상은 대략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무슨 오디션을 이렇게 봤대요?”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두 담으려 애쓴 흔적이 보이는 오디션 영상이었다. 덕분에 그녀를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소녀에 대해 평가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을 정도다.

“아쉬운 부분도 조금 있지만, 레슨만 잘 시키면 꽤 괜찮을 것 같아요. 저희 연습생들 중에 이런 캐릭터가 없잖아요? 나이도 적당하니까 2, 3년 연습시켜서 데뷔시키면 좋지 않을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실물을 보면 더 확실하겠지만, 영상으로만 봐도 꾸미지 않은 외모가 저 정도라면 나중에 제대로 된 메이크업으로 무대 위에 올리면 꽤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은 타입이라고 여겨집니다.”

“전 김 이사님의 질문에 흔들리지 않고 대답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으로 여겨지는데요? 대담한 아이인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대훈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표님은 마음에 안 드세요?”

대훈은 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저도 마음에 듭니다. 다만, 이런 애를 왜 김 이사는 불합격이라고 했을까 해서요.”

“김 이사님은 불합격을 주셨단 건가요?”

대훈은 단유가 영상을 건네며 했던 말을 전해주었다.

“우리 이사님이 너무 눈이 높으신 거 아닐까요? 이 정도면 꽤 괜찮은데?”

“본인 입으로 잘 모른다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한테 합격 여부를 미룬 거고. 김 이사님이 아직 이 업계에서 일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시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대훈은 그 의견에 반대를 표시했다.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이 영상 누가 찍도록 했겠습니까? 김 이사가 지시해서 찍은 겁니다. 포인트를 알고 있다는 뜻이에요.”

정면과 측면을 포함한 클로즈업 샷과 바스트 샷, 그리고 다양한 자세를 취하게 하여 찍은 전신 샷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상대가 화면에 어떻게 담기는지를 세세하게 지시하여 찍었다. 노래도 한 곡만 부르게 한 것이 아니라, 레인지와 음정, 기교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곡을 선정해서 부르도록 하였다.

안무 역시도 춤을 춰본 적이 없다는 소녀를 위해 기본 동작으로만 주문했다. 리듬을 탈 수 있는지, 그리고 박자를 잘 맞추는지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불합격을 줬으면서 이 정도로 영상을 찍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저희들한테 보여줄 계획이셨나 본데요?”

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양입니다. 그리고 최종 합격 여부를 저희에게 넘긴 것이죠.”

“혹시 김 이사님은 왜 불합격을 주셨는지, 들으신 게 있으세요?”

물론이다.

녹음실을 나가려다 멈춘 대훈이 돌아보며 단유에게 물었었다. 왜 불합격이냐고. 물론 단유를 믿는다고 했지만, 일단 불합격이라 하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제 나름의 기준에서 현진 양은 통과점을 얻지 못했습니다.”

평가지에 기록된 내용으로 봐선 딱히 점수를 매기지 않아서 통과점이라는 과연 몇 점인지 알기 어려웠다.

“점수로 환산한 기준이 아니라, 연예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인지 묻자,

“자기 길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라고 짧게 답하는 단유였다.

안무 트레이너가 맞장구쳤다.

“그건 맞는 말이네요. 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연예인 시킬 거 아니면 굳이 그런 사람을 연습생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죠.”

그 말에 다른 트레이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론했다.

“전 잘 모르겠네요. 하기 싫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잖아요? 아직 잘 모르겠다고만 했지. 자기 길에 확신이라니, 솔직히 중학생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애초에 중학생은 연습생으로 받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자기 확신도 없는 사람에게 수천만원의 경비를 써가며 훈련시키고 그 훈련의 대한 대가를 빌미로 회사에 종속시켜 데뷔시키고 관리한다? 전 그런 방식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저희는 레슨 경비를 연습생들에게 부과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요?”

“비용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연습생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 전부터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애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전 연예인도 일종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 말리고픈 심정입니다. 괜히 연예인을 공인이라 부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들, 많이 보지 않습니까? 자신의 위치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어린 연예인들이 쉽게 타락의 길로 빠지는 것을요.”

“그건 연예인들의 문제기도 하지만, 회사의 문제도 있지 않나요?”

“회사가 모든 걸 케어해 줄 수는 없죠. 막말로 아이가 탈선을 저지르는 게 모두 부모의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케어해주면 탈선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탈선의 기회도 없을 겁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우리 주위의 환경이 그리 좋지만은 않으니까 문제죠.”

“지금 그 말씀은, 연예계가 좋지 않은 환경이다, 그런 말씀이신가요?”

“좋은 환경은 아니죠. 사실 연예계만큼···, 아닙니다.”

“저기요, 듣다 보니 좀 그런 게, 그럼 우리는 그런 환경으로 우리 애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는 셈이네요? 우리가 그들의 탈선을 방관하고 있는 건가요?”

“어떤 환경에서건 탈선할 수 있죠. 다만 사람이 올곧게 중심을 잡고 있다면 탈선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자, 두 분 다 그쯤 하세요. 갑자기 왜 백분 토론을 하고 그래요.”

팀장이 두 사람을 말리며 대훈의 눈치를 살폈다. 대훈이 가만히 있기에 저도 가만히 있었지만,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 같아 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대훈은 두 트레이너의 말싸움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고 생각하던 때 대훈이 입을 열었다.

“두 분 말씀 모두 맞는 이야기네요. 우리가 굳이 부정하려 하지 않아도 이 바닥이 그리 깨끗하지 못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점점 좋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부정한 일들과 말들이 오가는 바닥이잖아요? 부끄럽지만 우리도 작년에 곤혹을 치뤘던 일이고.”

대훈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깍지 낀 손을 책상 위에 걸쳤다.

“얼마 전에 김 이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재만이랑 세훈이 징계를 받았을 때요. 이 회사가 과연 바른 방향으로 가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자신이 그 두 사람의 연습을 지켜보고 싶다고 했어요. 하, 처음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냥 이 회사의 연습생들이 제대로 연습을 받고 있는지, 혹은 연습생들의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말처럼 들었어요.”

대훈이 옆에 앉은 트레이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때는, 그 두사람의 연습 상태를 확인한 뒤, 만약 김 이사가 보기에 흡족치 않으면 여기 있는 트레이너 분들 중 몇몇은 자리가 불안해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죠. 아무래도 김 이사님이 재무를 담당하시니 돈값을 못하는 트레이너들, 혹은 매니저들을 자르려는 게 아닌가, 그런 추측을 한 겁니다. 걱정들 마세요. 김 이사님이 여러분들에 대해 따로 한 말은 없으니까.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아, 김 이사가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어떤 생각 말입니까?”

팀장이 조심스럽게 되묻자, 대훈은 마른 세수를 하며 답했다.

“아마도 우리 연습생들에게 그런 각오가 있는지를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처음에 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 회사는 모두가 함께 같은 길을 걷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발판삼아 배를 불리는 회사가 아니라 다 같이 협력하고 고생하면서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루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대표님의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 나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하고는 있죠. 하지만 그게 과연 저만의 노력인지, 우리 모두의 노력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의 노고를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한 말이었습니다.”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나름 이쪽 업계에 오래 몸담고 있었지만 어떤 회사 대표도 지금 대표님처럼 하시는 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표님은 정말 타의 모범이 되시는···.”

“팀장님, 괜찮습니다. 그렇게 추켜세우시지 않으셔도. 당장 오늘의 월평만 봐도 그렇네요. 우리는 그 아이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성장하는지만 보았지, 그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너무 겉만 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고 또 이 자리가 고민을 상담하는 자리도 아니니까요.”

“그러니까요. 지금 그 말이 바로 답이네요.”

“네?”

“아이들이 가진 고민을 듣고 이해하고 상담해줄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건 여기 계신 트레이너 분들이···.”

팀장의 말에 트레이너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팀장을 바라보았다. 우리요? 라고 되묻고 싶어하는 표정에 팀장은 얼른 말을 바꿨다.

“우리 매니저들도 그런 상담을 하라고 배정되어 있는 거 아닙니까?”

“잘 들어주고 있습니까?”

“당연히···.”

팀장은 말문이 막혔다. 만약 대훈이 최근에 아이들로부터 들은 고민이 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내놓을 답이 궁했기 때문이다. 고민이라고 들은 게 없었다. 그저 아이들의 체중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거나, 상습 지각생이 있어 처벌 방법이 필요할 거 같다거나, 실력이 늘지 않고 도태되는 연습생들에 한해 특별 레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등의 보고만 들었을 뿐이다.

팀장의 굳어진 얼굴을 보며 그를 추궁하고 싶진 않았던 대훈은 다시 한번 마른 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리려했다.

“데뷔를 목표로 하고 달리는 와중이라 다들 외적 성장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 잘 압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우리가 가르치고 관리하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어른이고. 그냥 어른도 아니고 저 아이들의 인생의 일부분을 책임질 어른입니다. 당연히 우리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저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말이죠. 바르고 곧게, 그들의 꿈이 향하는 지점까지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입니다.”

그것은 주위에 앉은 트레이너와 팀장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스스로 다짐하기 위한 선언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 어떡할까요?”

모니터에서 가만히 멈춰진 형태로 서 있는 소녀를 가리키는 말에 대훈이 시선을 던졌다.

“······.”

****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향하던 길에 전화가 왔다. 네, 네, 대답만 하고 있으니 옆에서 함께 걷던 친구가 물었다.

“무슨 전화야?”

통화를 마치고 친구에게 ‘기획사에서 온 전화’라고 알렸더니 친구가 반색을 하며 되물었다.

“뭐래? 합격이래?”

현진은 잠시 주저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

“포기하긴 아깝더라고요.”

대훈의 말에 단유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있는 아이니까요.”

대훈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재능이 있습니까?”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단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상 보시지 않으셨어요?”

“아니, 보긴 했지만 그래도, 김 이사님은 불합격이라고 하셨잖아요?”

“불합격인 이유는 말씀드린 것처럼 각오가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게 재능이 없다는 말은 아니죠.”

재능이 없었다면 그렇게 자세하게 여러 가지를 확인코자 길게 영상을 찍지도 않았을 거란 단유의 말에 대훈은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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