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21화 (921/956)

진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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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바로 전날, 단유는 대훈을 만났다.

“들었어요. 단독 오디션 심사를 본다고.”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될 건 또 뭐 있습니까? 바쁠 땐 서로 돕고 돕는 거죠.”

“아는 게 없으니까요.”

“에이, 이제 겸양은 그만. 솔직히 모르는 게 뭐가 있을까 궁금할 정돈데, 아는 게 없긴요. 어쩌면 저나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보다 더 자세히 사람을 보지 않을까 싶은데요?”

“보는 건 어렵지 않죠. 하지만 어떤 사람을 어떤 기준에서 관찰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심사를 해야 할지는 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자의적으로 선발해도 기준이 없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달리 특별한 기준이 있겠습니까? 그냥 김 이사가 보고 마음에 들면 선발하는 거죠.”

“무책임하신 거 아닙니까?”

“김 이사를 믿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게다가 전에 같이 오디션을 봤었잖아요?”

“그때는 말 그대로 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어떤 기준점을 들어 평가를 해야 하는지 지침이 필요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김 이사가 보고 좋겠다 판단되면 뽑으세요. 전 김 이사의 선택을 존중하고 신뢰합니다. 그래도 굳이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열정적인 사람이면 좋겠네요.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이는 연습생.”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는 대훈을 보며 단유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약간의 욕심을 더 부리자면, 외모도 대중적으로 호감을 끄는 외모였으면 좋겠고요.”

“네.”

“성격도 좋은 사람이면 좋겠네요. 아무래도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니까.”

“고려하도록 하죠.”

“하나 더 말씀드리면···.”

“그냥 대표님이 잠깐 시간 내서 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데요?”

“하하, 아닙니다. 전 김 이사님을 믿습니다. 그럼요.”

****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스튜디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서는 소녀. 시디 크기만한 작은 얼굴 안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이목구비는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서 대리가 옆에 서서 검지로 카메라를 가리켜 보였다.

“여기 카메라 보이시죠? 여기 보시면 돼요.”

소녀의 검은 눈동자가 카메라와 단유 사이를 오갔다. 단유가 말없이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키니 그제야 카메라 렌즈에 고정된다. 모니터 속에 그늘진 얼굴 하나가 가득 들어차는 것을 확인 후 단유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미리 작성된 오디션 심사 서류에는 이름과 나이 등 간단한 프로필과 자기 소개글이 적혀 있었다. 내용이 별로 길지도 않아서 두 번 볼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주현진 씨?”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던 소녀가 단유의 부름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네?”

표정이 다소 굳어있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인지 긴장을 한 탓인지는 모르겠다. 다르게 보면 다소 차갑다는 느낌도 드는 얼굴이다. 느낌으로만 따지자면 뮤지션 클래스의 채린과도 비슷하다. 그래도 채린은 다소 낯가림 때문에 차갑다는 정도였다면, 현진은 성격이 꽤 어두울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드는 차가움이었다. 어둡고 차갑다면 아이돌로서 별로이지 않을까?

“긴장하셨어요?”

“조금요.”

단유와 시선을 못 마주치는 현진을 보며 잠시 생각을 하던 단유는 서 대리에게 부탁했다.

“오렌지 주스 하나만 가져다 주실래요?”

“이사님 꺼요?”

“제 거는 아니지만, 저만 마시는 중인 그 음료수요. 부탁할게요.”

서 대리가 부스 밖을 나간 후, 스튜디오에는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원래 꿈이 아이돌이나 연예인이었나요?”

“아뇨.”

현진은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그럼요?”

“뭐가요?”

“꿈이 뭐냐고요.”

“꿈, 없어요. 아직. 특별히는.”

무덤덤한 현진의 목소리의 끝에는 특별한 잔향이 남았다. 일단 그것을 기억해두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요?”

“네.”

“연예인 싫어해요?”

“싫지도 좋지도 않아요.”

“그럼 왜 오디션을 보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예요?”

“약속을 해서요.”

“서 대리님이랑요?”

“네.”

“왜 약속을 했는데요?”

“그게 중요해요?”

“어떤 면에선 중요할 수 있다고 봐요.”

“왜요?”

“현진 씨가 어떤 생각으로 오디션을 보겠다고 결심했는지를 아는 것도 현진 씨를 판단하는데 중요하니까요.”

“그것 때문에 안 좋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럼 말 안 하면 안 돼요?”

“불리하니까?”

“네.”

단유는 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여기는 오디션을 보는 곳이지, 사건 진술을 받는 곳이 아니니까 묵비권을 행사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 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전에 오디션을 볼 때도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아이들은 몇 있었지만, 현진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축에 속하는 아이처럼 보였다. 이후 어떻게 오디션을 진행할까를 고민하는 단유의 속을 모르는 현진은 카메라에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녹음실이에요?”

“네.”

“녹음실이 이렇구나.”

흡사 오디션을 보러 온 게 아니라 녹음실에 견학 온 아이 마냥 호기심을 드러내는 현진이었다.

“관심 있어요?”

“가끔 TV보면 나오잖아요? 이런 데 배경으로 앉아 가지고 막 인터뷰도 하고. 지금 제가 그럼 느낌으로 나오지 않나요? 거기?”

현진이 손가락으로 단유 옆에 놓인 모니터를 가리켰다.

“비슷하네요.”

“잘 나오나요?”

“잘 나와요.”

“볼 수 있어요?”

단유는 모니터를 돌려 현진이 볼 수 있게끔 해주었다. 고개를 조금 기울여 모니터를 바라보던 현진은 신기한지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고, 그 동작이 그대로 모니터에 비춰지자 그게 또 재미있는지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구겨보이기도 했다.

“긴장했다는 말 거짓말인 거 같네요.”

단유가 입을 떼자 현진은 머리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거짓말아니고 진짜 긴장은 했었는데요, 지금은 많이 풀렸어요.”

“어떤 계기로요?”

“전 오디션 볼 때 되게 많은 사람들이 앞에 앉아서 무섭게 쳐다보고 있을 줄 알았거든요. 아저씨들이 인상쓰면서 노려보면 무섭잖아요? 그럴 줄 알고 긴장했던건데, 지금은 별로요. 근데 아저씨, 아저씨가 이사님이예요?”

“네.”

“혹시 연예인이에요?”

“아니요.”

“아니시구나.”

어느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자세도 풀려 있었다. 이대로 두면 아예 발을 쭉뻗고 동동거리기라도 할 참일 것 같다.

“오디션 합격하고 싶어요?”

“음, 잘 모르겠어요.”

“왜요?”

눈동자가 위를 향하며 뭔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가 다시 단유에게로 시선이 향할 때 그녀의 입이 열렸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었는데요, 길거리 캐스팅이란 거 처음이니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차라리 안 되는 게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그 이유는요?”

“아저씨 혼자 이런데서 오디션 보고 이러는 게 좀···, 수상해서요.”

“수상해요?”

“네. 여기 진짜 시은이 있는데 맞아요?”

“시은이라면 가수 시은?”

“네. 진짜예요?”

“진짜, 가짜를 떠나 시은 씨가 그쪽보다 나이도 많은데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건 아니지 않나요?”

“······.”

“뭐, 아무튼 시은 씨는 진짜 저희 회사에 있어요.”

“봤어요? 시은···언니?”

“몇 번?”

“예뻐요?”

“예뻐요.”

“저는요?”

“응?”

“저는 어떤데요?”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보통은 그렇게 예쁜 사람들이 연예인이 되는 거잖아요. 예쁘고 노래도 잘하는 사람. 전 제가 별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연예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요.”

“예전부터 많이 듣던 질문이기도 하고 많이 생각도 해 본 문제인데, 미의 기준이라는 게 워낙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딱 무엇 하나로 이 사람을 예쁘다, 혹은 예쁘지 않다로 구별하기가 어렵네요. 게다가 요즘은 예쁘다는 기준보다 개성을 더 중시하는 편이라니까, 대중적인 미의 기준에서 조금 떨어지더라도 개성적인 매력이 있으면 예쁘다고 받아들여지는 편이죠.”

“제가 매력적인가요?”

“그건 지금 제가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심사위원 분이시잖아요? 그런 거 보시는 거 아니예요?”

현진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니 처음의 어둡기만 하던 얼굴과 다른 얼굴이 화면에 떠 있었다. 15살이라고 했던가? 치기어린 당돌함과 호기심이 뒤섞여 처음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얼굴이 모니터에 보인다.

“그렇네요. 제가 심사위원이죠, 지금은.”

단유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잠시 놓고 있던 펜을 집어들었다.

“현진 씨?”

“네.”

“노래, 할 줄 알아요?”

“노래요? 잘 못하는데요.”

“춤은요?”

“춤도 춰본 적 없어요.”

“연기는요?”

“해본 적 없어요.”

단유는 팔짱을 끼고 현진을 지켜보았다. 서 대리가 올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하다 다시 팔짱을 풀고 다음 질문을 건넸다.

“만약 여기서 오디션을 끝낸다고 해도 후회 없겠어요?”

“후회요?···잘 모르겠는데요.”

“분명 저희 회사가 연예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 기획사가 아니기도 하고, 게다가 마침 장소도 이러니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비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굳이 빗속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 전혀 생각이 없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거든요? 만약 합격을 한다면 회사와 계약을 해서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될 텐데, 그런 각오는 되어 있는 건가요? 그리고 만약 불합격이라면 지금의 오디션에 대해 전혀 불만을 갖지 않을 건가요?”

현진은 눈을 느리게 껌뻑였다. 단유를 가만히 지켜보며 대답을 생각하나 싶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쉰다.

“합격이 되든, 안 되든 별 의미는 없을 거 같아요.”

“왜요?”

“합격한다고 바로 연예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연습생 생활을 해야 하잖아요. 오랫동안. 그러다가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거나 학교 다니면서 공부해서 대학가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공부한다고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다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더라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고. 불합격이라고 해서 딱히 슬플 이유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 같네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 뿐이고, 학교랑 집, 학원 이렇게 오가는 생활이 딱히 싫다고 느낀 적은 없으니까.”

“꿈이 없기 때문인가요?”

“그 꿈이란 거요. 솔직히 초등학교 때나 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 그런 꿈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 주위에도 그런 꿈 들먹이면서 사는 애들 없거든요? 꿈이 있다고 더 열심히 한다거나, 꿈이 없다고 놀면서 인생 포기하는 경우도 없거든요. 꿈은 그냥 꿈이고, 어차피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잖아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니까.”

“특별한 꿈을 꾸고 특별한 삶을 기대할 수도 있죠.”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라잖아요? 전 그런 실망 별로 안 하고 싶거든요. 그냥 평화롭게, 평온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녀의 독특함은 그녀가 하는 말에 꾸밈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녀의 평소 가치관에 대해서야 논외로 치더라도 그녀가 단유를 마주하고 꺼낸 말들이 모두 솔직한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런 대화는 꽤 오랜만에 해본다, 싶었다. 상대를 특별히 배려하는 언어가 아니라서 보통은 건방지다거나, 버릇없다느니 하는 말을 들을 법한 대화였지만 단유에겐 오히려 익숙하고 편했다. 억지로 예의와 예절을 고민하며 말을 꾸밀 필요가 없는 대화니까.

하지만 지금의 자리는 대화나 즐기며 시간 때우자고 있는 자리가 아니니 단유는 본분을 찾으려 했다. 우선, 그녀의 진심은 알았으니 혹시라도 가진 재능이 있는지를 봐야 했다. 만약 그녀에게 재능이란 게 있다면 그녀를 설득해야 할 것이고,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녀의 말처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권하면 그만이다.

“노래 한 번 해 볼래요? 저기서?”

단유는 녹음실 안쪽 부스를 가리켰다.

“해도 돼요?”

“하고 싶었어요?”

“그냥 들어가서 부르면 어떨까 궁금했거든요.”

“해봐요.”

자리에서 일어난 단유는 현진을 부스 안쪽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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