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911화 (911/956)

결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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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만두면 뭐 하려고? 다른 회사 가게?”

진 실장은 호주머니에 구겨져 있을 담배를 꺼내고 싶다는 충동을 누르며 물었다.

“······.”

대역죄를 지은 죄인마냥 고개를 숙인 채 답이 없는 시율. 진 실장은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혹시 다른 회사에서 접촉한 적 있어?”

“그건 아니에요.”

혹시나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부정한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접었다는 말이야?”

“······.”

대답은 없었지만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 가수가 되기 위해 작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포기하고 기획사에서 살다시피 했던 소녀다.

‘지친 거겠지?’

뮤지션 클래스로 반이 나뉜 후, 금방 데뷔할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못해도 2년 내엔 데뷔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을 했을지도 모른다. 시율 뿐 아니라 당시의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회사는 남자 데뷔조를 결정했다. 여자 연습생들에겐 꽤 충격이었을 테다. 만약 멘탈도 정량할 수 있다면, 그 선언 이후 여자 연습생들의 멘탈은 반쯤 깎여 나갔을 것이다.

이후 그녀들을 잘 다독여 멘탈이 회복될 수 있게 도왔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건 마치 12시가 점심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반복된 일상 속에서 익숙해져 버린 것 마냥, 데뷔조의 선정과 탈락이라는 이벤트 역시 달리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데뷔조로 선택된 아이들은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탈락된 아이들은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 그게 진 실장에게는 익숙한 패턴이었다. 때문에 달리 연습생들의 멘탈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어느 회사든 마찬가지겠지만, 연습생들 모두가 데뷔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고, 연습생 과정에서 포기하는 아이들이 생기는 경우는 반드시라 해도 좋을 만큼 빈번한 일이었다.

어차피 연예인이란 직업은 겉보기에는 화려해도 실상은 속이 썩어들어가는 직업, 이라 봐도 무방하다. 남들처럼 수면 시간 지켜가며 생활하는 건 어렵거니와, 먹는 것 하나도 통제되어 식욕을 충분히 만족시키기 힘들다. 스포트라이트가 밝을수록 스트레스는 늘어나고 매시간 매분 시험을 받는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멘탈을 강조하고, 멘탈이 약하다면 차라리 연예인을 그만두는 게 낫다고 조언할 정도다.

멘탈은 회사나 매니저가 보조해 줄 순 있어도 기본적으로 자기 관리의 영역이고,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연습생은 스스로든, 회사의 요구로든 그만두는 게 낫다.

그러니 애초에 멘탈이 약한 녀석이라면 트레이닝 과정 중에 포기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데뷔까지 하고 난 뒤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단 나으니까.

하지만, 시율은 그렇게 멘탈이 약한 아이가 아니라는 게 진 실장의 고민이었다. 약하긴커녕 오히려 누구보다 리더쉽 강하고 팀을 운영해도 잘 이끌 수 있는 멤버라는 생각이었다. 아니, 다 떠나서 그녀는 놓치기 아까운 멤버라는 게 진 실장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시율아.”

“···네.”

“가수 할 거지?”

“···모르겠어요.”

짐작해보면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것이리라. 이대로 회사를 나가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 계약을 하지 못하면 꿈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그것은 곧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아.”

뭔갈 계속 물어보고 답을 요구해도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기 힘들 듯 했다.

“시율아, 일단 오늘은 집에서 쉬어라. 그리고 내일 회사에서 다시 이야기하자.”

“······.”

“너 임마, 지금 너 지쳐서 그래. 지쳐서 제대로 생각을 못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일단은 쉬고 있어. 저녁 때 다시 올 테니까.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자. 알겠지?”

“······.”

“대답해.”

“네.”

바닥에서 일어나려 하니 입에서 절로 끙, 앓는 소리가 났다. 무릎을 짚고 일어난 진 실장은 꾸물대며 일어나는 시율에게 다시 한번 나중에 보자고 약속을 받은 후 집을 나왔다.

혼자 고민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 얼른 회사에 가서 신인개발팀장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지금 당장은 시율이 혼자지만, 거기에 동요한 다른 아이들에게서 또 다른 탈주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

저녁에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숙소를 찾은 진 실장은 시율과 방 하나를 잡고 독대했다.

“좀 쉬었어?”

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은 좀 정리했고?”

“네.”

“아직도 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데뷔를 빨리하고 싶으니까?”

“빨리하고 싶다기보다는 늦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윤이랑 지서, 슬기는 너보다 나이 많잖아? 걔네들은? 니 생각대로면 그 애들은 이미 늦은 거 아냐?”

“제가 이기적인 것일지도 몰라요. 언니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진 실장은 순간 그녀에게 ‘넌 걔들보다 경쟁력이 있잖아?’라는 말을 할 뻔 했다. 그러나 매니저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말.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지금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말할게. 난 니가 데뷔하면 충분히 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는 조건이라면 아니야. 너 아직 실력 안 돼.”

“알아요, 저도. 더 실력을 쌓아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면 아무것도 못 할 수 있잖아요.”

“뭘 무작정 기다려? 지금 데뷔조 나오면 그 다음에는 너희잖아?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어?”

“······.”

“나이 중요해. 하지만 나이만큼이나 중요한 건 실력이야. 실력이 되지 않으면 나이 아무 상관 없어. 그렇지? 실력만 좋으면 나이가 좀 들어도 문제가 없고, 오히려 나이가 좀 있는 편이 컨셉에 따라서는 더 좋을 수도 있어.”

솔직히 말하면, 시율을 설득하는 진 실장 본인이 스스로의 논리에 자신이 없었다.

실력은 중요하다. 요즘 아이돌은 완성형 아이돌이라고 불린다. 안무와 가창이 동시에 가능한 아이돌은 이미 지난 세대 아이돌들부터 가능했던 일이다. 때문에 지금은 디테일 싸움이 되버렸다. 누가 더 완벽하게 안무를 하고 노래를 하느냐의 싸움. 누가 더 안정적으로 고음을 낼 수 있느냐, 누가 더 유연하게 춤을 출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되었다. 칼군무나 라이브는 이미 기본인 시대.

그래서 더 중요해진 것은 이미지다. 다른 의미에서의 디테일이 중요해진 이유다. 누가 더 예능에서 부각되며, 누가 더 개성적이며, 누가 더 비쥬얼이 남다른가, 라는 식의 이야기가 붙어야 아이돌로서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현 세대 아이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좀 더 어리고, 좀 더 예쁘고, 좀 더 밝고, 좀 더 긍정적이며, 좀 더 ‘아이돌’스러울 것.

좀 더, 좀 더.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치킨의 껍질이 좀 더 바삭하길 바라고, 이왕에 식당에 갈 일이면 좀 더 예쁘고 아기자기한 식당엘 가고 싶어 하고, 비슷한 스펙의 차를 사더라도 이왕이면 디자인이 괜찮은 차를 사고 싶은 게 그렇다. 모두 디테일의 싸움이다.

시율과의 대화는 생각대로 흐르지 않았다. 진 실장 스스로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한 논거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탓도 있었고, 그녀의 고집이 진 실장이 생각하기에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고 보였다.

남에게 뭐라하기 전에 우선 자신부터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니코틴도 충분히 보충해야 할 것 같고.

“잠시만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생각 좀 하고 있어.”

진 실장은 주방에서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있던 아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거실을 가로질러 숙소를 나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때, 문득 위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여기 방음이 안 되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고, 동시에 위층이 남자 숙소임을 떠올리며 진 실장은 걸음을 옮겼다.

남자 숙소의 비밀번호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따로 초인종을 누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여자 숙소보다 더 출입이 자유롭기에 진 실상은 바로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들려오는 고성과 소음.

“이 새끼가!”

장난처럼 떠드는 소리도 아니고, 노느라고 투닥대는 소리도 아니었다. 욕설과 둔탁한 소음, 말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저항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뒤섞여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 소리들을 정확히 이미지화 시켜놓은 장면이었다.

“뭐하는 짓이야!”

진 실장이 대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커피를 마시려고 휴게실에 들렀던 진 실장이 고개를 돌리자 단유가 눈앞에 있었다.

“이사님, 지금 출근하신 겁니까?”

“네.”

단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부터 오렌지 주스를 축내기 위해 휴게실에 들린 참이었다.

한껏 어깨가 축 처진 진 실장을 발견한 단유였지만, 진 실장은 누가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딴 데 팔려있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단유가 먼저 그를 불렀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요.”

“무슨 일 있나요?”

“아, 그게···.”

어지간하면 별일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이내 상대가 단유라는 걸 상기한 진 실장은 말끝을 흐렸다.

“싸움이 났다고요?”

“제 잘못입니다.”

“왜 싸웠대요?”

“데뷔조 애랑 자존심 싸움이 났는데, 그게 실제로 주먹까지 간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그랬다. 집안 청소나 자기 개인 물품 정리 같은 일로 갈등이 생겼고, 사소한 말다툼이 자존심 싸움이 되고, 한 명이 분에 못 이겨 선을 넘겼고, 결국 주먹 다툼까지 갔다.

어쨌든 책임은 진 실장의 몫이었다. 물론 진 실장이 싸움을 부추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율의 일이나, 남자 숙소에서 벌어진 일이나 결국 진 실장의 관리 문제로 이어진다.

“제가 아이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생긴 일이죠.”

“그 때문에 못 주무셨다는 건가요?”

“그것도 그거지만···.”

결국 진 실장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율의 일까지 털어놓으니 단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드시겠네요.”

거기까지 말하고는 ‘힘내세요’라며 오렌지 주스를 진 실장의 손에 쥐어주는 단유였다.

하지만 진 실장도 괜히 이야기를 모두 꺼낸 게 아니었다.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떻게요?”

“물론 이사님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전에도 보니까 아이들이 이사님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같고, 게다가 이사님은 말씀을 잘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시율이를 설득하려는데 도움을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시율 양을 설득해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직접 하지 않으시더라도, 어떻게 말해야 설득할 수 있을지 힌트를 주시면 해서요.”

“글쎄요.”

난감해하는 단유를 보며 진 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나간 거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고요. 단지 상대를 설득하려면 상대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지 않겠어요? 이런 식으로 실장님의 이야기만 듣고 힌트를 드리기엔 정보가 없으니까요.”

단유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괜찮다면 제가 직접 만나봐도 될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할 거 까지야. 저도 이 회사 사람인데요.”

“그래도 이사님이 직접 나서주신다면 아이들이 훨씬 말을 잘 들을 겁니다.”

아무래도 실장이나 매니저는 그녀들에게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반면 단유는 ‘이사’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동경하는 대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니 설득을 한다 해도 단유가 한다면 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한 사람 더 데려가도 되겠죠?”

“누굴 말입니까?”

“우리 연습생들을 많이 아끼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 한 명 있어요.”

단유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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